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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약재와 과자를 만들때 반드시 필요했던 귀한 ‘꿀’

옥담 이응희(1579∼1651년)의 시 한 편으로 ‘꿀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의 제목은 ‘심 직강 인시가 편지와 함께 꿀을 보냈기에 사례로 보내주다[謝贈沈直講姻侍致簡遺蜜]’이다.고맙게도 그대 늙은 나를 불쌍히 여겨/그동안 끊임없이 안부를 물어주었지/한 폭 편지는 천금처럼 귀하고/항아리 가득 꿀은 백화(百花)의 정화/봉투를 뜯으니 정이 가득 담겼고/ 꿀을 삼키니 묵은 병이 낫는 듯/보답하고 싶으나 경거(瓊琚)가 부족해/송료(松醪)를 만안으로 담아 보내노라옥담은 비록 왕손에서는 멀어졌지만, 왕족 신분이다. 시에 나오는 직강(直講)은 정5품직 벼슬아치다. 안산 수리산 기슭에서 전원생활을 했지만, 왕족이니 꿀 선물이 있었을 것이다. 선물은 꿀과 편지다. 답으로는 편지와 답례품을 보내야 한다. 대신 이 시구를 보냈을 것이다. 문장이 짧아서(‘경거’가 부족해) 그럴 듯한 답장을 보내지 못한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꿀 대신의 답례품은 ‘송료’다. 송료는 ‘소나무 술’이다. 중국에서는 송방(松肪, 송진) 혹은 송화(松花)로 빚는 술이라고 설명한다. 송방주 혹은 송화주라고 부른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솔향이 좋은 술이었을 것이다.세종대왕은 양녕대군의 동생이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다. 세종은 마지막까지 양녕을 챙긴다. 술고래이면서 ‘문제적 인간’이지만 ‘조선왕조실록’ 군데군데 형을 향한 세종의 따뜻한 마음씨가 드러난다. 세종 6년(1424년) 3월 7일의 짧은 기사다. ‘약주 10병과 청밀(淸蜜) 한 그릇을 양녕 대군에게 내려 주었다.’꿀은 ‘청밀(淸蜜)’이라고 불렀다. ‘밀’이 꿀이다. 청밀은 맑은 꿀이다. 봉밀(蜂蜜)은 벌꿀이 만든 것이라서 붙인 이름이다. 색깔이 누렇다고 황밀(黃蜜), 상품(上品)으로 흰 색깔을 띤 맑은 것이라서 백청밀(白淸蜜)이다.조선 시대에도 양봉을 했지만 꿀은 자연산이 대부분이었다. 귀한 것은 아니지만, 채취가 불안정하니 수급이 고르지 않았다. 가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꿀을 둘러싸고 사건, 사고가 잦았던 이유다.중종 24년(1529년) 5월, 홍문관의 유여림이 민간에서 발생한 살인 미수사건을 보고한다. ‘계동’은 떠돌이 꿀 장사다. 꿀 장사 계동을 유인, 자기 집에 재운 사람은 어리금이다. 계동은 이미 꿀 장사를 통하여 말도 한 필 마련했고 무명도 지니고 있었다. 어리금은 계동의 말과 무명이 탐났다. 어리금은 계동을 죽이려 했지만 다행히도 실패한다.유여림은 이 사건을 보고하면서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라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소문을 전한다”고 말한다.16세기 초반에 이미 ‘민간의 꿀 장사’가 있었다. 주막도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꿀 장사는 전국을 떠돌고 있었고, 민간에서 숙박을 미끼로 꿀 장사를 유인하는 일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듬해인 중종 25년(1530년) 이행(1478∼1534년), 윤은보(1468∼1544년) 등이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 편에 꿀을 파는 가게가 등장한다. ‘청밀전(淸蜜廛)’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청밀전 도가는 하피마병문(下避馬屛門) 동쪽 가에 있다”라고 했다. ‘하피마’는 ‘아래 피맛골’이다. 서울 종로구 장사동 일대다. ‘전(廛)’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가게다. 당시 공식적인 전의 주 고객은 궁중과 세금을 대납하는 공납업자들 혹은 권문세가, 부호들이었을 것이다.꿀은 궁중에서도 귀하게 사용했다. 궁중 내부에서 사용하기도 하고, 중국, 일본 규슈, 오키나와 등과의 조공무역에도 사용했다.‘승정원일기’ 인조 17년(1639년) 12월 3일의 기사다. 제목은 ‘세 사신이 요구한 청밀 등의 숫자를 줄여서 주고 정 역관에게도 약간 지급하겠다는 호조의 계’다.김육이 호조의 말로 아뢰기를, “정 역관(譯官)이 세 사신이 청구한 청밀(淸蜜) 각 10두(斗), 호도(胡桃) 각 15두를 얻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숫자대로 주지는 못하나 각각 1, 2두를 줄여서 주되, 정 역관이 으레 세 사신이 청구할 때 또한 바라는 바가 있었으니 약간을 아울러 구해 지급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사신들이 원하는 것은 호두 각 15두와 청밀 각 10두다. 그대로 줄 수는 없다. 양이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꾸짖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다. 통역관들이 늘 문제다. 중간에 이간질도 하고 사신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한다. ‘정 역관이 으레 바라는 바가 있다’는 표현은 이제까지 대부분 역관이 부정부패, 추가 뇌물 요구에 능했음을 보여준다. 굴욕적인 병자호란(1636∼1637년)이 끝난 지 겨우 2∼3년이 지났다. 국가 재정도 엉망이다. 처절하게 당한 패전국이다. 힘센 나라가 억지로 요구하는 공물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조의 태도가 눈에 보인다.꿀을 구해서 세금으로 올리는 지방의 문제는 더 심각했다. 꿀 공납을 빌미로 각종 부정부패가 일어났다.‘승정원일기’ 영조 3년(1727년)11월 24일의 기사 제목은 ‘품질이 좋지 않은 청밀(淸蜜)을 진상한 영광(靈光) 등의 해당 봉진관을 엄하게 추고할 것 등을 청하는 사옹원 감선 제조의 계’다.박필철이 (중략) 아뢰기를, “전라도에서 12월에 각 전에 진상하는 물품이 (중략) 청밀(淸蜜)의 품질이 몹시 좋지 않아 색과 맛이 모두 나쁩니다. (중략) 부득이 퇴짜를 놓아 보내고 (중략) 봉진관이 신중을 기하지 못했으니 일이 몹시 놀랍습니다. 그러나 허다한 수령을 일시에 모두 파직할 수는 없으니 영광(靈光) 등 37개 읍의 해당 봉진관을 모두 엄하게 추고하고, 감사도 살피지 못한 잘못을 면하기 어려우니 역시 추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놀랍게도 꿀 문제를 일으킨 지방 관청의 숫자가 무려 37개 읍이다. 인근의 모든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일어났다. 추고(推考)는 사건의 경과를 따져본다는 뜻이다. 당장 벌을 내리는 것은 아니되, 일의 경과와 잘못 여부를 따져보는 일이다. 지방 관청의 벼슬아치로서는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다. 이유는? 꿀의 색과 맛이 나쁘기 때문이다.꿀은 조선 초기부터 꾸준히 문제를 일으킨다.세종 5년(1423년)2월 14일,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다. 제목은 ‘사헌부에서 김득상을 탄핵하다’이다.사헌부에서 계하기를, “김득상(金得祥)이 사천 병마사(泗川兵馬使)가 되었을 때에, 관청의 물건으로 집정(執政)과 모든 친한 이에게 뇌물을 주고, 화살촉과 청밀(淸蜜) 등을 거두어들이고, 탐오(貪汚)하여 법을 어기면서 백성의 재물을 손해 보였으니, 죄를 주기를 청합니다.” 라고 하였으나, 일이 사죄(赦罪) 전에 있었다고 하여 죄를 주지 말도록 하고, 다만 장물(贓物)만 징수하도록 명하였다.다행히 사면령 이전에 죄를 지어서 장물만 징수 당하고 끝난다.비슷한 시기인 세종 11년(1429년) 1월, 형조의 보고다. 내이포(乃而浦, 경남 창원 진해)의 천호 조안중이 크고 작은 죄를 저질렀다. 보고 중에 “선군(船軍) 2인의 역을 면제하여 주고 대신 꿀(淸蜜, 청밀) 4그릇을 거둬들였다”는 내용이 있다. 꿀 4그릇을 뇌물로 받고 배를 젓는 등 힘든 일에서 빼주었다는 것이다. 사천병마사 김득상에 비하면, 그리 큰 죄가 아닐 듯한데 조안중은 곤장 80대를 맞았다. 곤장 80대는 중벌에 속한다.꿀을 귀하게 다룬 이유는 간단하다. 약재나 과자를 만들 때 반드시 꿀이 필요했다.의학 서적인 ‘의방유취 권1_총론_원약(圓藥) 만드는 방법[員藥法]’에 “꿀[蜜]이 들어간 약제에는 약물 1근(斤)당 꿀 1근을 사용한다”는 내용이 있다. ‘의방유취’는 1445년(세종 27년) 편찬했다. 원전은 중국 송(宋)나라 주좌(朱佐)가 편찬한 ‘주씨집험방(朱氏集驗方)’이다.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일찍부터 꿀을 약재에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꿀은 민간의 문서에서도 나타난다. 경북 성주의 ‘성산 이 씨 문중_이해진가(李海鎭家)’ 고문서 중 간찰(簡札, 편지)에 꿀이 나타난다. 1771년(영조 47년), 이 집안 이정언(李正言)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편지를 바란다. 객병(客病)이 남아있으니 한탄스럽다. 석어와 민어, 꿀 등을 보낸다.”는 내용이 있다. 전체적으로는 새해 인사와 안부를 묻는 것이다. 석어(石魚)는 석수어(石首魚)로 조기다. 민어와는 사촌지간이다. 둘 다 말려서 유통했다. 제사 필수품이다. 꿀도 마찬가지. 제사를 모시려면 조과(造菓), 과자가 필요하다. 과자를 만들려면 꿀이 필수적이다. 이외에는 나이든 노인들이 ‘약으로 여기고 한, 두 숟가락’ 먹는 정도였다.사족이다. 경북 북부 일대는 꿀의 명산지다. 사람 발길이 드문, 태백산 깊은 산속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벌꿀도 있다. ‘안상규 벌꿀’이다. 꿀에 양봉하는 이의 이름을 붙인 경우다. 경북 경산의 ‘안상규 벌꿀’은 대추나무 벌꿀이 특이하다. 경북 안동 예안의 ‘박영근 벌꿀’도 마찬가지. 농장주 이름을 걸었다. 속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박영근벌꿀’은 ‘숙성 벌꿀’이다./맛칼럼니스트

2019-07-16

시인으로 살아가기 - 최승자의 자서에 대해

시인 최승자는 1952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고려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1979년 ‘문학과 지성’ 가을호에 다섯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활동을 했다.‘이 시대의 사랑’(1981), ‘즐거운 일기’(1984), ‘기억의 집’(1989) 등의 시집을 발표했고 이 시집들은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그녀는 많은 시인들에게 영감과 영향을 주었다. 진은영 시인은 언젠가 최승자를 ‘우리들의 시인’이라고 칭한 바 있다( 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 ‘시인의 말’ 중).그녀는 1994년 국제작가회의(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에 참가하였다. 주최 측에서는 참가자의 시 열 편 정도의 영어 번역시를 요구했다. 최승자는 첫 시집 중 번역하기 쉬운 시들을 우선 번역했는데 그것이 열 편이 넘었다고 한다.하지만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두 번째 시집을 번역했고,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세 번째 시집을, 다시 네 번째 시집을 번역했다.결국 마흔네 편의 시를 번역했다. 그녀는 당시를 이렇게 쓰고 있다.“생각해보라, 올 여름이 얼마나 지독한가를.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완전히 발가벗다시피 한 채 머리가 뜨끈뜨끈해져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게 아닌가 싶어 30분에 한 번씩 샤워를 하면서 번역을 했는데, 그밖에 달리 무슨 일을 또 할 수가 있겠는가.”(최승자, ‘어떤 나무들은―아이오와 일기’, 세계사, 1995, 12~13면) 그리고 이렇게 번역된 시에서 다시 17편의 시를 골라냈다.그녀가 고른 시들은 하나 같이 자신을 학대하며, 자기모멸적이고 위악적이며, 비속한 언어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아리고 쓰린 시들이다. 이 시들을 시집별로 정리하면 ‘이 시대의 사랑’에서 네 작품, ‘즐거운 일기’에서 가장 많은 시가 뽑혔는데 여덟 작품이다.그리고 ‘기억의 집’에서 세 작품, ‘내 무덤, 푸르고’에서 두 작품을 골랐다. 시가 ‘4→8→3→2’의 순서로 줄어들고 있다.피학, 가학, 위악, 자기모멸, 비관, 절망, 허무가 최승자의 본령이라면 시집이 상재될수록 그러한 것들의 강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새로운 것들은 낡기 마련이며, 모든 강렬한 것들은 식기 마련이다. 최승자 역시 스스로 이런 사실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1993년에 출간된 ‘내 무덤, 푸르고’의 자서에 이런 위기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시집을 엮으면서 다시 읽어보자니, 이 시들이 너무도 뒤늦고 뒤처진, 그리고 너무도 낡고 늙은 시들이라는 느낌이 든다. 뒤늦게, 뒤처져 길 떠나는 이 낡고 늙은 시들이 제 힘으로 제 갈 길을 만들어낼 수 있을는지 걱정스럽다.”열 편으로 충분한 데도 마흔네 편이나 번역했던 것은, 더 강렬한 시를 원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운 여름을 자신의 시를 번역하면서 견뎌냈던 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자신의 시를 찾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아이오와를 다녀온 후 최승자는 번역도 못하고 시도 못 쓰게 된다.그 이유에 대해 “언제부터인가 노장(老莊)·명리학·사상의학·점성술 등과 같은 신비주의 공부에 빠졌던 겁니다. 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의 세계가 아닌, 현상을 뛰어넘는 세계로 좇아갔어요. 답이 있을 듯하면서 손에는 답을 쥐기 어려운 공부였어요. 그 공부에 빠지면서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최보식이 만난 사람: 정신분열증…. 11년 만에 시집을 낸 시인 최승자’, 조선일보, 2010.11.22.)라고 말했다. 언제부턴가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고, 서울의 친척집에 머물던 그녀는 1999년부터 고시원과 여관방을 떠돈다. 최승자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어느 해에는 여섯 달쯤 잠을 못 잤어요. 아무런 음식도 먹지 못했고. 잠을 못 자면 소주를 마시고 쓰러져 잤는데, 나중에 심해지면서 술을 마시는 것조차 생각나지 않았어요. 정신이 휑했지요.”최승자는 시에 매달려 살아갔다. 시가 “밥벌이를 할 수도 없고 이웃을 도울 수도 없고 혁명을 일으킬 수도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배고파 울 때에 같이 운다든가, 다른 사람들이 울지 않을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울어 버릴 수 있다는 것뿐이다.”(‘이 시대의 사랑’, 뒷면의 글)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시와 더불어 살았다. 배우가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하여 그 캐릭터와 같은 사람이 되어버리듯 최승자는 어느 순간부터 시를 쓰지 못하고 자신의 시속에 매몰되어 자신의 시처럼 살게 된다. 자신의 시처럼 비관적이고, 자신의 시처럼 혹독한 그런 삶을 살았던 것 같다.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지 시를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다. 시인이 시가 되어버릴 때 시인의 생은 끝나고, 시인은 시인이 아니라 전설이 된다.이미 그녀가 알고 있었듯 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녀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시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길 바랐다.‘내 무덤, 푸르고’의 시집 뒤편에 “시 혹은 시 쓰기에 대해 이제까지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도 믿지도 않았지만, 이제 비로소 나는 바라고, 믿고 싶다. 시 혹은 시 쓰기가 내 마음을 병석에서 일으켜 세워줄 것을”이라고 썼다.그녀는 한편으로 시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시가 자신을 일으켜 세우길 바랐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던 것은 아닐까.그녀의 말처럼 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게 될 때 그것은 시일 수 없다. 오랜 세월을 떠돌았던 최승자는 다시 아무것도 아닌 시에게로 돌아와 있다. 이제 안도해도 좋다, 그럴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나는 지금 최승자의 시집들을 늘어놓고 그녀의 자서들을 읽고 있다. 그녀의 자서는 하나같이 짧아서 채 백 글자를 넘지 않는다. 이 짧은 자서에는, 글이 아니라 시로만 말하려고 했던 그녀의 의지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이제 나는 시를 읽는 대신 ‘이 시대의 사랑’을 펴놓고 시어들을 만지고 있다. 나의 지문이 시집 위를 지나갈 때 글자를 느낄 수 있다.그 글자들 덕분에 내 지문의 위치를 알게 되고 이런 지문을 가진 나를 실감하게 된다. 지문을 가진 나와 나를 휘감고 있는 대기와 빛과 소리, 그런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언젠가 나의 언어로 이 세계의 삶고, 이 세계에 없는 이들을 만질 수 있길 바란다.

2019-07-16

이름을 지어 불러주는 특별한 동물

몇 년간 직장인, 학생들에게 의사소통능력과 관련한 특강이나 교양수업을 진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깨달은 것이 있다. 인간은 말과 글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데, 사회생활에서 언어는 개인이 사회에서 얼마나 적응하였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핵심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언어와 관련된 장애아동과 가족의 관계성 연구의 결과를 보면, 아무리 심한 장애가 있는 아이라도 그 아이에게 실제적인 언어이해 능력만 있으면 가족간 애정 정도가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가벼운 장애가 있더라도 언어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인간관계나 사회적응이 매우 어렵고, 가족은 심한 좌절감을 느끼고 아이에 대한 애정도 매우 적었다. 최근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교육에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데, 가장 먼저 학내 한국어 어학당 운영을 추진한 이유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이주자나 망명자들이 새로운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언어를 배우는 속도와 숙달 정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이해와 사용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사람이 그런 것처럼 개가 인간사회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개의 언어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개의 언어를 잘 이해한 사람은 개에게 사랑을 줄 수 있고, 개도 사람에게 잘 적응할 수 있게 되어 사람과 개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우선 알아야 할 사실은 개는 사람이 말하는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세 살 아이가 말은 하지 못하지만 어른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을 경험한적 있는가? 외국어를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말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을 이해할 수는 있는 것이다. 언어능력은 말을 알아듣는 수용언어와 말을 하는 생산언어로 구분할 수 있다. 개는 수용언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지시에 따르거나 사람의 단어에 반응하여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구강구조 등의 해부학적 특징으로 언어를 사람처럼 생산할 수 없을 뿐 수용언어는 발달해 있다. 한집에 여러 마리의 개를 기르고 있다면 개들이 자신의 이름에 정확히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이제 자볼까?” 라고 말했을 때 개들이 침실과 침대로 향하고 “배고파?”라는 말에 개는 자신의 밥그릇으로 다가가기도 한다.“산책하러 가자”라는 말에 개는 현관문에 가서 기다리기도 하고, “앉아”, “손”, “엎드려”, “붙어”, “점프”등의 다양한 명령어에도 정확히 반응한다. 이외에도 개체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개의 언어수용능력 때문에 정식으로 가르치지 않은 단어에도 개들은 반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와 의사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 개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집에서 다른 가족을 향해 “이리와, 앉아서 같이 TV보자”라고 이야기 했을 때 사실개의 입장에서는 크게 당황할지도 모른다. 개들이 흔히 알고 있는 “이리와”, “앉아”라는 명령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개는 사람이 말하는 수많은 단어 중에서 어느것이 자신에게 향한 것인지를 사람의 몸짓(눈짓)을 보고 판단한다. 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주의를 끌면서 “이리와”, “앉아”라고 했다면 개는 당황하거나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일상생활에서 몸짓이나 시선 없이도 개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 방법은 개 이름을 먼저 불러주는 것이다. 그러면 개는 자신과 관계있는 사람의 단어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주목해! 다음에 말하는 메시지는 너에게 향하는 거야”를 의미하게 된다. 개에게 말을 걸때는 명확하게 해야 하는데, 개에게 뭔가를 시키고 싶을때는 반드시 먼저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자몽, 이리와”, “자몽, 앉아” 라고 하면 된다. “이리와, 자몽”, “앉아, 자몽” 하는 것은 좋지 않은데 개의 이름이 불린 후에 의미를 가진 단어가 지속되지 않으면 개는 뭘할까요? 라는 표정으로 당신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번 더 “앉으라고”라고 이야기 하면 앉겠지만 개는 이름이 불리는 순간 사람의 요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름을 먼저 불러주고, 원하는 행동을 이야기 하는 것이 개와의 의사소통에서 기본이며 간단하지만 중요한 일이다.개 이름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 개는 두 음절 정도의 이름이 부르기 쉽고 반응을 이끌어 내기 좋다. 개의 이름이 주변사람들에게 개를 인식하게 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강한 이름, 혐오스러운 이름은 개가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개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수 있으므로, 밝고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주변 사람들이 내 개에게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7-16

불국사역

역(驛)은 고대부터 동서양의 중요한 교통수단을 담당하던 장소다. 교통수단이라고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이곳에서는 역마를 갈아타기도 했고, 인마(人馬)와 마차(馬車)가 머무는 여관의 역할도 했다. 또 통신을 전달하는 일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조선 후기 공무로 급히 가는 사람이 타는 말을 파발마라 했는데, 역은 지친 파발마를 바꿔 타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우리나라에 기차가 들어오자 철마(鐵馬)라 불렀다. 옛날부터 말이 사람을 태어 나른다는 데서 유래한 탓이다. 나라의 재정에 관한 내용을 수록한 조선시대 ‘만기요람’에는 전국의 역마 수가 504군데 5천380필에 달한다고 했다. 교통수단으로서 역의 중요성을 잘 대변해주는 수치라 하겠다.지금은 철도역으로 의미가 대폭 축소됐지만 60대에 접어든 기성세대한테는 그래도 기차역은 추억이 서린 정겨운 장소로 기억된다. 대중교통이 원활치 못하던 그 시절 우리지역의 역은 내 고장의 모든 관문 역할을 맡았다. 지금으로 말한다면 역과 고속터미널, 소규모 공항의 역할을 몽땅 담당한 장소다. 그 시절의 모든 만남과 이별은 이곳에서 이뤄졌다.철도가 고속화되면서 우리 주변의 수많은 간이역들이 사라지고 있다. 중앙선 이설로 간신히 남았던 불국사역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야 할 운명에 처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18년 11월 1일 영업을 시작한 불국사역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조선시대 건축물로 지어져 코레일은 이를 철도기념물로 지정하고 있다.2020년 신노선이 개통되면 철로 폐선으로 불가피하게 불국사역도 인적이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불국사역은 인근에 위치한 불국사와 석굴암 등을 찾는 관광객과 수학여행 학생들로 많이 붐벼 한 때는 전국 최고의 관광명소라고 이름을 날렸다. 관광도시 경주의 상징인 불국사역을 살리자는 2천여 주민의 건의서가 관계기관에 전달됐다고 한다. 많은 이들은 아직도 수학여행, 추억여행하면 경주 불국사를 손꼽는다. 낭만과 향수, 추억과 역사가 뒤엉킨 불국사역을 테마로 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좋을듯 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7-16

2년차 이철우 지사의 과제

이창훈 경북도청본사 본부장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경북도청호(號)의 닻을 올린지 2년차에 접어들었다. 취임한 후 1년여 동안 이 지사는 조직 분위기 쇄신과 향후 성과의 발판을 놓기 위해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고 여러 가지 사업들도 발목을 잡히는 등 힘든 한해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은 새로운 수장에 적응하는 기간을 비롯, 새 인물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마찰 등도 있었다. 도청 공무원은 김관용 전 지사가 연속해서 도정을 12년간 이끌어온 만큼 김 전 지사스타일에 길들여져 새로운 수장에게 적응하기가 쉽지않았던 게 사실이다.김 전 지사와 이 지사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김 전 지사는 보스형으로 실국장들에게 상당한 권한을 위임했으나, 이 지사는 리더형으로 모든 것을 직접 챙기는‘만기친람(萬機親覽)’스타일이다. 또 이 지사 취임 후 도청을 비롯 산하기관에 20여 명의 새 인물이 둥지를 틀었다. 이 또한 행정가 출신인 김 전 지사 시절과는 다른 분위기로 설왕설래도 많았다. 이 지사는 3선 선량의 정치인 출신으로 과거 한솥밥을 먹던 직원들을 비롯 평소 눈여겨봤던 사람들을 스카웃, 도정을 변화시키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1년여가 지나면서 합격점을 받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전문성 부족 등으로 옥상옥이라는 말도 나오는 등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 지사는 도청 분위기 쇄신을 위해 ‘환골탈태’라는 모토로 고군분투했다. 구두 대신 운동화에 점퍼를 입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달리며 분위기 쇄신을 주도했지만 직원들이 따라가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기를 가진만큼 올해부터는 취임 첫해의 프로젝트에 가속도를 내야 한다.정책이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우선 직원들과 조화가 되어야 한다. 지사가 아무리 동력을 걸더라도 직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사휴의다. 현재 직원들의 분위기는 지사가 너무 큰 목표치를 내세워 홀로 독주, 따라가기가 힘이 들고 너무 세세한 것까지 챙겨 힘이 든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조직의 수장은 일할 수 있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야하는 만큼, 실국장들에게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또 도가 추구하는 프로젝트가 국가도 해내기 힘든 너무 큰 스케일이라 순항할 수 있을지, 아니면 돈먹는 하마가 되어 흐지부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이 지사의 빅프로젝트는 저출산인구 극복, 일자리창출, 투자유치 등이지만 이 세가지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멸해가는 지역의 인구를 늘리고 투자유치를 이끌어 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보다 더 좋은 정책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정책들은 대통령도 하기 힘든 것으로 자치단체 차원에서 결실을 보기에는 지난한 과제다. 이에따라 일부에서 이 지사가 너무 큰 공약을 준비해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성과가 부진할 경우 동력을 잃어 도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하고 있다.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 지사가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을 위한 포석을 너무 처음부터 과하게 잡은 것 아니냐는 말들이다. 광역단체장이 지역을 발판으로 업적을 쌓아 대권에 성공하면 지역민으로서 더이상 바랄게 없겠지만 너무 처음부터 헛심을 빼는 것 아니냐는 걱정에서 나온 말이리라. 또 이 지사는 직무수행에 있어 절대다수의 지지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이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지지를 받야야 하겠지만, 분명한 자신의 철학을 보이고, 철학이 다른 사람은 따라오게 하든지 아니면 과감히 도태시키는 등 결단력도 필요하다.더불어 도는 건강한 언론에 의한 건전한 비판 속에 더욱 단단한 열매가 열린다. 시도민의 여론과 도정이 조화를 이루기 위한 미세조정 차원에서 언론정책 재고도 필요해 보인다. 경북도청호의 선장을 맡은지 2년차에 접어든 이철우 지사가 향후 도정에 더욱 매진해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2019-07-16

삶이 말(言)로 말에서 글(文)로

1960년대. 경북 시골 초등학교에 깡마른 선생님이 부임합니다. 어느 교실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국어 수업을 진행합니다.“어린이 여러분. 글짓기하지 마세요.”선생님은 시골 아이들에게 글은 짓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네 가지를 당부합니다.첫째, 자신이 평소에 하던 ‘말’을 그대로 글로 옮겨 써도 괜찮아요. 둘째, 더러 서툰 말이 나와도 아무 상관없어요. 착한 어린이가 된 것처럼 꾸며서 쓰지 마세요. 칭찬을 받거나 잘 보이기 위해서 글을 꾸미지 마세요. 셋째, 슬프고 괴로운 일, 부끄러운 일도 괜찮아요. 얼마든지 좋은 글이 될 수 있어요. 넷째, 잘 쓴 글이라고 해도 남의 글을 절대 흉내 내지 마세요. 단 그 글에서 정직함만 배우세요. 만들어 내는 ‘글짓기’는 하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를 쓰는 ‘글쓰기’를 하세요.옳은 가르침은 위대한 결과를 낳습니다. 하얀 백지처럼 순수한 아이들에게 글 짓기가 아닌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쓱쓱, 삶을 놀랍도록 맑고 순수한 글로 풀어내기 시작합니다.내가 학원을 / 밤 일곱 시에서 아홉 시까지 해서/ 마치고 오는데 / 별이 있나 없나 / 하늘을 보면서 / 터벅터벅 걸어간다. / 집 가까이 가는데 / 현호가 있어 / 함께 한 바퀴 또 돌고 / 외로운 길을 두 번 간다.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 /외로운 길 전문이오덕(李五德) 선생 이야기입니다. 아동 문학계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때까지 동시 속 아이들은 곱디고운 천사같은 천편일률적인 모습이었는데 동심 천사주의를 여지없이 깨 버린 작품들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이오덕 선생은 힘주어 말합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는 사람다운 감정과 생각을 갖고 사람다운 행동을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글쓰기는 그런 삶을 가꾸는 참으로 귀한 수단입니다. 글을 쓰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이 있는지를 나는 모릅니다.“이오덕 선생이 항상 강조한 것은 삶이 말이 되어야 하고 말이 글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비로소 올바른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삶에서 말로, 말에서 글로.” 당연한 말씀입니다. 선생은 되묻습니다. 삶은 말이 되고 말이 글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오히려 정반대라고 지적하지요. 글이 말을 지배하고 말이 삶을 지배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아니겠느냐고요.(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16

앞으로의 경제전쟁에서 이기려면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일본이 소재를 무기로 한국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가늠하려는 간보기가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에 맞섰던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당시 만세운동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목숨 건 대한의 애국지사들이 한민족의 자존감을 세계만방에 알린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흘렀다. 우리는 한국전쟁과 전후 재건, 고도성장, 올림픽, 민주화운동, 외환위기 등 산재한 현안 해결에 골몰하느라 불과 36년 동안 일본이 뿌리내렸던 잔재들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거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게다가 밀레니얼세대들은 부모세대들과 달리 공무원시험 준비생이 아닌 한 ‘국사(역사)’라는 과목은 말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과거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던 과정만큼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은 각 분야의 모든 계층과 계급이 치밀한 계획 하에 한반도에 사전 침투하여 바닥을 다진 다음에야 사후적으로 조약이라는 형식을 갖추어 공식화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조약 체결 시점 이전부터 이미 식민정책은 선행되고 있었던 것이다.이를 고려하면 최근 일본이 수출 제한이라는 칼을 빼든 것도 그저 일본 총리의 즉흥적인 발언이라 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분명 한국이 보일 다양한 반응에 대해 사전시뮬레이션을 수없이 거친 후 시기와 범위 등을 결정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장 매출감소를 우려하는 일부 대기업들이야 과거처럼 정부가 나서서 정치적인 협상이나 양보를 통해 현재의 위기상황을 넘겼으면 하겠지만 앞으로 이러한 일이 다방면에 걸쳐 재발할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최근 일본의 한 언론에서는 한국 내 일본 불매운동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논조를 피력하였다. 사상 최악의 한일관계였다는 지난 수년 간 한국이 정치나 역사문제로 일본을 기피하였으나 실제 한국인의 문화와 소비, 레저 등에서는 반대로 일본 붐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하였다. 한국인의 일본방문은 2005년 174만 7천명에서 2018년 753만 9천명으로 늘어났다. 또한 2019년 상반기 수입차 중 일본차 비중은 21.5%였는데 이는 2015년의 2배 수준이다. 그리고 2017년 한국인 청년의 일본취업비중은 해외취업자중 약 29%에 이른다. 이외에도 한국 내 일본음식전문점이 늘어나고, 어패럴이나 일용잡화는 유니클로나 무인(無印)양품이 시장을 석권중이라 밝히고 있다. 실제 편의점에서 일본 주류, 과자, 커피 등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지금 세계는 ‘자유’와 ‘공정’보다는 ‘국익’을 최우선하는 경제 전쟁이 한참이다. 사드배치를 빌미로 한 중국의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의 여파가 여전한 가운데, 미국우선주의로 촉발된 미중간 무역전쟁도 현재진행형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전쟁에는 해당국 국민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엔 일본이 불씨를 지폈다. 어떠한 전쟁이건 승리를 위해서는 후방의 협력이 있어야만 한다. 경제전쟁에서 과연 우리의 경제체질과 구조가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받는 순간이 왔다. 후방의 국민들이 경제전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저 평소 생활습관에서 의식하지 않았던 의식주와 관련된 소비재의 선택에 조금만 유념해도 충분하다. 일례로 2018년 일본으로 여행했던 한국인이 가령 2박 3일 일정으로 60만원의 경비를 지출하였다면 이것을 국내여행으로 바꾸기만 해도 단순 계산으로 한일 양국에는 4.5조원이 각각 가감되는 효과를 발휘한다. 적어도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우리를 향한 일본의 작은 불씨조차 제대로 밟아 끄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떠한 경제전쟁에도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2019-07-16

인(忍)·인(仁)·인(人)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어교육과얼마 전 갓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방실 웃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어느 정도의 직책을 얻은 후배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다. 늘 둥글둥글 살아왔던 후배였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들이 너무 못살게 굴어 도저히 참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이가 가장 어린 데다 싱글이라는 이유로, 잡다한 업무는 당연히 모두 그의 몫으로 여길 때는 참을 수 없는 분노마저 일기도 했다는 것이다.업무 몰아주기는 물론, 직장 내 따돌림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솥밥을 먹는 식구끼리 고소·고발하고, 네가 옳니 내가 옳니 하는 아웅다웅은 이제 너무나 식상할 정도다. 그래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큼의 칼부림정도가 나면 모를까, 더 이상 이런 건 이슈거리도 아닌 세상이 되었다. 심지어 그것이 인간사라며, 직장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는 이들을 오히려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찍기도 한다.이는 비단 직장에서만의 문제도 아니다. 학교에서도 소위 ‘왕따’, ‘은따’를 당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10대들의 비율이 해마다 늘고 있다. 집단의 횡포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여지없이 밟아서 사회적 약자들을 공동체의 테두리 밖으로 쫓아내는 또 하나의 어긋난 ‘권력’행사다. 최근 노인이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센터 직원들의 횡포와 눈가림, 직위와 직권을 남용해 대학원생들을 착취하는 교수들, 하청업체 직원이라는 이유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며 거들먹거리는 대기업 인사들 등. 우리 주위에는 ‘집단’이라는 이름으로, 또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소수자의 권익을 짓밟고 있는지 모른다.인간관계에서, 남들과 마찬가지로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억울함’이 생겨나고 ‘분노’가 싹튼다. 이러한 분노는 심지어 범죄 행위로 이어지거나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기까지 한다. 위나라 때, 시문에 뛰어난 조식(曹植)이라는 인물은, 일곱 걸음 걷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벌을 주겠다는 질투 많은 권력자 형 조비(曹丕) 때문에, 울음을 삼키며 ‘칠보시(七步詩)’를 지었다. ‘콩대를 태워 콩을 삶으니/솥 안에서 콩이 눈물 흘리네/본래 같은 뿌리에서 났건만/어찌 이리 심하게 들볶는고’라고. 결국 조식은 시달리다 못해 울화병으로 죽었다.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은 늘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늘 이야기하듯,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어제 강자였다고 해서, 오늘 강자가 되라는 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약자가 또 내일의 약자가 되라는 법도 없다. 힘이 센 개가 늘 큰 밥그릇을 먼저 차지했는데, 힘이 약한 개가 늘 밀려 제대로 먹지 못하니, 이를 불쌍히 여긴 주인이, 오히려 힘없는 개 밥그릇에 더 많은 음식을 주자, 어느새 비실비실하던 개가 더 크게 자라, 큰 개가 제 밥그릇을 기웃하니 쾅하고 짖어대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만사가 그런 것이다.맹자의 ‘고자(告子)’ 장구(章句)편에는 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 할 땐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굶주려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지럽게 하나니, 그것은 타고난 작고 못난 성품을 인내로 담금질 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그 기국(器局)과 역량을 키워주기 위함이다.’맹자의 구절대로, 현재의 힘듦은, 더 큰 일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담금질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담금질 과정은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기에 인간의 인내(忍)를 시험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담금질이 되고 나면, 웬만한 일들은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된다. 참고 또 참으며 인(忍)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널리 보는 안목과 어짊(仁)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忍)은 무작정 참는 것이며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갈고 닦는 과정에서 인(仁)을 얻는 것이자, 나아가 각양각색의 인간(人)을 이해하는 토대이기도 한 것이다.

2019-07-16

선글라스의 과학

여름철 뙤약볕 아래서 눈을 보호하기 위한 선글라스는 과학문명의 산물이다. 여름철 자외선은 염증 반응과 광산화 반응, 광화학 반응 등을 일으켜 결막, 수정체, 망막 조직에 손상을 일으키고 대사 노폐물 생성을 촉진시킨다.이에 따라 광각막염, 결막주름, 익상편, 백내장, 황반변성 등의 안과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여름 눈 건강을 위해서는 선글라스가 필수다.각막을 보호하는 색소상피와 맥락막의 멜라닌 성분이 나이가 들수록 더 약화돼 고령자일수록 햇빛이 강한 날에는 반드시 선글라스를 써야한다.어떤 선글라스를 고를까. 우선 자외선 차단율이 100%인 렌즈가 좋다.단, 렌즈 착색 농도는 70∼80% 정도가 좋다. 너무 짙은 선글라스는 오히려 동공이 빛을 받기 위해 커지기 때문에 좋지 않다. 렌즈 크기가 커서 렌즈의 옆 공간으로부터 들어오는 자외선도 차단되는 형태가 좋다. ‘UV400 인증’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이는 400㎚ 이하 파장을 가진 자외선을 99% 이상 차단한다는 의미여서 지표에 도달하는 UV-A와 UV-B를 대부분 차단할 수 있다. 선글라스의 자외선 차단지수는 가장 높은 수치인 100%가 가장 좋고, 최소 90% 이상은 돼야 한다. 또 UV-A와 UV-B 코팅이 돼 있는 멀티코팅이면 더욱 좋다. 자외선은 파장에 따라 UV-C(100-280㎚), UV-B(280-315㎚), UV-A (315-400㎚)로 구분되며, UV-C는 대부분 오존층에서 흡수되지만, UV-B 일부와 UV-A는 지표면까지 도달하기 때문이다.렌즈 색상에 따라 기능이 약간씩 다르다. 가장 많이 쓰는 검정색이나 회색, 갈색은 운전할 때나 자외선이 강한 바닷가에서 쓰면 좋다. 회색은 명암이나 색을 왜곡시키지 않아 자연색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녹색렌즈는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색으로 시원해 보이는 효과가 있고, 붉은색 계통의 렌즈는 사물과 주변 환경이 또렷하게 보여 자전거 탈 때나 골프 칠 때 적당하다. 미러렌즈는 백사장이나 스키장 등 자외선 반사가 심한 곳에서 착용하면 좋다. 과학문명이 눈을 보호하는 선글라스 하나에도 짙게 반영돼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7-15

글로벌탐방단이 만난 스페인 MTA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함께 가는 사람에 의해서 결정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도록 우리의 호기심을 다듬기 때문이다.”‘여행의 기술’에서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스페인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Mondragon Team Academy)’에 주목하게 된 것은 학생들과 다녀온 글로벌탐방단 덕분이다. 7월 1일 출발해 10박 11일동안 ‘플랫폼 협동조합’을 주제로 빌바오와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사회적경제의 상징인 몬드라곤 지역은 빌바오에서도 한 참 떨어진 작은 소도시였지만 협동조합의 성공을 통해 전 세계의 관심을 모으는 곳이었다.몬드라곤 대학은 스페인 내전 이후 피폐해진 바스크 지방을 살리기 위해 호세 마리아 신부가 세운 기술학교로 시작되었다. 현장에서 쓰임새가 있는 실질적인 교육을 강조하는 몬드라곤 대학의 MTA 졸업생들이 설립한 협동조합 TZBZ은 바스크어로 “Why not?”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여러 스타트업이 실험하며 공존하고 있는 현장에서 우리가 만난 LEINN(Leadership, Entrepreneurship and Innovation)의 팀 코치들과의 대화는 한국의 대학교육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교수와 학생, 수업과 시험이 없는 교육, 팀코치가 유럽 학사학위과정으로 인정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Talk, Do, Connect’라는 슬로건 하에 혁신적인 창업을 하는 글로벌 리더들을 육성하고 있었다. MTA는 사회적 경제를 인큐베이팅하는 랩이다. 협업을 위한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만남과 아이디어를 논의하며 창업을 시도하는 젊은 기업가들을 키우고 있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과 관심을 나누며 유럽, 미국, 중국 등 전세계를 다니면서 창업 프로세스를 익히고 경영관리기법을 배우는 실제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LEINN은 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협력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을 혁신적인 사업가로 육성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우리가 MTA 랩에서 만난 세 명의 젊은 여성 팀코치들의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은 학생들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다.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교육에 대해 말한다. “학교는 기술적 기량의 교육 비중을 낮추고 종합적인 목적의 삶의 기술을 강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낯선 상황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앞으로 AI가 인간보다 더 잘하는 기능적인 교육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성(Creativity)을 키우는 4C교육으로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MTA는 학습자들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창업하는 과정에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익히며 융합적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 가는 모델이었다. 실제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가운데 세계시민의식도 키우고 공동체 정신을 형성하고 있는 점도 교육적 의미가 있었다.이번 글로벌탐방단 일정을 함께 하며 ‘모든 길은 구글로 통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앱 네이티브(App Native) 세대답게 학생들은 구글 맵으로 약속된 장소의 주소를 입력하여 익숙하게 찾아다녔다. 스마트폰과 구글로 장착한 신세대들은 거침이 없었다. 구글로 관련 정보를 입수하고 구글맵을 활용해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며 낯선 곳에서의 여러 일정들을 소화했다. 7명의 학생들이 한 팀을 이루어 스스로 주제를 선정하고 기획서를 작성하며 주도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였던만큼, 직접 스페인에 와서 현지 담당자를 만나 질문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더 깊은 공부로 이어졌다. 강의실 밖에서 이러한 구체적인 배움의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 온 몸으로 현장 분위기까지 기억하며 체험을 내재화하기 때문이다.

2019-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