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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빛과 그림자

캔디 챙은 동네 빈집 담벼락을 빌려 지나가는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소망을 적는 것 일종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칠판을 만듭니다.뉴욕 한복판에서는 ‘살아가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을 적는 코너’도 있었습니다. 여기 적힌 수많은 대답의 공통점은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하는 내용이었습니다.의학 공부를 시도하지 않은 것, 꿈을 좇아 따라가지 않은 것,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 않은 것, 내 안의 예술가적 기질을 무시한 것, 더 나은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한 것. 무언가 시도하지 못하고 훗날 큰 후회로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아닐까요?의학 공부에 도전했다가 실패할 것을, 꿈을 따라가면 생계가 어려울 것을, 사랑을 고백했다가 버림받을 것을, 예술가로 살려 했다가 영감이 고갈돼 실패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리는 선뜻 심장이 뛰는 삶에 도전장을 내밀기 어려워합니다.오래전 도올 김용옥의 미학 강의를 우연히 EBS에서 듣다가 무릎을 친 경험이 있습니다. 인간이 극한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아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지고의 예술품이나 감탄을 자아내는 풍광을 만나면 누구나 감동하고 전율하고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10분만 지나면 대부분 지루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지요.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같은 말을 합니다. “인생의 변화, 인생의 매력, 인생의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은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기 마련이야.”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낮이 지나 밤이 오는 것을 어색하지 않게 여기는 것. 이 과정이 삶의 진리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무언가 시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카뮈는 말합니다. “깊디깊은 겨울에 결국 내 안에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여름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9

경험과 기억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얼마 전 ‘무등공부방’에서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1990)을 쓴 정지아 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기억’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단출하되 선명하다. 빨치산이었던 어머니가 올해로 94세가 되었는데, 그이의 기억에 자리한 장면은 200개 남짓이라 한다. 9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그것도 한반도 남단의 피어린 상처를 경험한 인간이 체화한 기억의 총량이 그것뿐이라니.“여러분도 살아온 날들의 기억을 헤아려 보세요!” 작가의 말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대단한 기억력은 아니지만, 나는 세 살적부터 경험한 기억에서 출발할 것이다. 문제는 기억이 반드시 정확하지 않으며, 기억이 경험의 총량을 보존하지도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단편소설 ‘덤불 속’에서 인간의 선택적 기억과 경험의 왜곡을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그것을 바탕으로 구로사와 아키라는 영화 ‘라쇼몽’을 만들 수 있었다.그럼에도 기억의 힘은 단단하고 강력하다. 설령 왜곡되고 굴절된 기억이라 하더라도 기억이 가지는 힘은 대단하다. 어쩌면 그래서 아흐마토바는 “태양에 관한 기억이 흐려져 간다”고 아쉬워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남자와 엮이지 않은 청춘의 아쉬움과 미련을 감상과 낭만의 영탄으로 교직(交織)한 아흐마토바. 사랑의 올가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20대의 지독하게 아름다운 슬픔과 기억을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 사이로 퍼져 나가는 햇살에 의지한 그녀.무상한 자연이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무렵 페테르부르크의 운하를 서성대면서 아련하도록 애틋한 지난 일을 추억하는 아흐마토바. 그녀를 둘러싼 자연과 사물의 변화에 눈길을 주면서 자신의 헛헛한 내면세계를 돌이키는 시인. ‘그의 아내가 되지 않았음’을 그녀는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지만, 한여름을 시뻘겋게 달구던 태양에 관한 기억은 점차 시들어간다. 암흑과 겨울이 하룻밤 사이에도 닥칠 것을 예감하는 우울하고 고적(孤寂)한 아흐마토바. 그녀는 어떤 경험을 ‘그’와 공유하고 있을까?! 언제 어디서 그와 만나고, 어떤 과정을 거쳐 그와 작별하여 오늘에 이른 것일까. 그녀가 기억하는 경험의 무게와 색깔은 그가 경험한 사랑의 색깔과 무게와 동일한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녀처럼 그 역시 선택적 기억과 그에 따른 독자적인 경험의 세계에 자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기억의 세계에 빠져드는 순간,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은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나한테는 얼마나 많은 기억이 내재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찾아든다. 언젠가 나 또한 켜켜이 쌓여있는 기억의 씨줄과 날줄을 찬찬히 엮고, 상상력과 통찰에 기초하여 기나긴 이야기를 풀어볼 요량이다. 문학은 기억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기억이 배제된 문학은 없다. 그런 까닭에 공상과학소설과 무협은 아직도 문학의 범주 밖에서 맴돌고 있다.기억을 배제하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죽어도 잊히지 않을 경험과 기억이 있다. 그것의 색깔과 무게가 어떠하든 우리는 최후의 그날까지 기억과 함께한다. 그래서다. 우리가 과거를 물어야 하는 까닭은.

2019-09-18

진보 386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박준섭 변호사386세대는 60년대에 태어나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을 일컫는다.386세대는 20대 때 독재에 대항하면서 목숨을 걸고 지하활동과 야학, 학회활동을 통하여 조직력을 키웠고, 이를 바탕으로 시민들과 연대해 마침내 절차적 민주주의를 성취했다.어떤 사람들은 과거에는 6·3세대와 민청학련, 긴급조치 세대가 민주화 선배세대로 있었고, 같은 시대에는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비로소 87년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으므로 민주화의 영광의 열매를 386세대가 독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기도 한다.그러나 386세대는 도시 빈민 및 노동자계층과 중산층의 연대를 통해 민주화를 주도적으로 이끈 세대만은 분명하다. 그들 가운데 진보진영은 집단적으로 공장으로 진출해 스스로를 ‘하방’ 시키면서 평등을 몸소 실천한 세대이다. 이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독재화된 권력에 대항하면서 러시아와 중국, 북한으로부터 들여온 혁명적 사회주의를 이념적 도구로 사용했다. 이 세대는 90년대 구 소련이 몰락하자 집단적으로 전향하거나 전환했다.1997년 IMF를 통하여 대한민국이 신자유주의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선배들은 주류에서 탈락됐고, 그들의 후배들은 아직 주류로 진입하지 못하면서 생긴 공백 상태가 오랫동안 계속됐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가장 강력한 비판자들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IMF사태 이후의 신자유주의 97경제체제가 그들을 일찍 사회의 주류에 올려놓았고 이후로도 20년 동안이나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진보 386세대는 노무현 행정부 때 국가정책의 결정권을 행사했으나, 정책적으로 무능하다고 의심받았고 패권적 권력을 추구하다가 몰락해 스스로 ‘폐족’선언을 하면서 사라졌다가 10년만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사건 때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국민들은 산업화, 민주화가 성취된 이후에 이명박, 박근혜 행정부의 10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기에는 너무 수구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으며, 무능하고 욕심 많은 집단의 정체나 퇴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진보 386세대를 다시 소환했다.이제 국민들은 광복 된지 70년이 지난 우리나라가 산업화·민주화를 거치는 동안에 왜곡된 국가구조를 그들이 새롭게 혁신해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국민들은 이번 조국 장관의 임명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뒤에 있는 그림자를 슬쩍 보았다.니체의 말처럼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 버린 386세대라는 괴물의 그림자를. 평등과 기회균등을 외치면서도 자신이 가진 모든 기득권을 사용하여 자신의 권리로 만드는 탐욕을 부렸으며 어쩌면 이제는 낡은 사상과 방법일 지도 모르는 것을 옳다며 자신들의 장기인 조직과 프로파간다를 통해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반대하는 사람들과 싸움만 일삼는 괴물 말이다.국민들은 이제 자신들이 기득권자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윤리를 통해 절제하고 희생하는 법을 모르는 괴물을 통제하고 다스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9-09-18

꿈의 나라, 몽상가의 땅

2017년 할리우드 최대 화제작은 ‘라라랜드’ 였습니다.골든 글로브 7개 부문, 아카데미상 6개 부문을 석권한 수작입니다. 3천만 달러 저 예산 영화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라라랜드(La La Land)는 ‘꿈의 나라’로 사전에 나오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비현실적 세계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몽상가의 땅 정도 뜻이겠지요.영화는 불가능한 꿈을 위해 분투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여줍니다.LA는 4월 어느 날 ‘라라랜드 데이’를 선포하고 시장이 피아노로 영화 OST를 연주할 만큼 반향을 일으켰죠. 재즈 음악도 환상적이고 화면 구성이나 카메라 앵글, 의상, 색상 등을 유심히 보면 재밌습니다.배우를 꿈꾸며 LA에 온 미아. 마음껏 재즈를 연주할 수 있는 바(Bar)를 꿈꾸는 세바스찬. 두 사람의 꿈과 사랑 이야기입니다. 미아가 오디션 보는 장면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지요.“제 이모는 파리에서 산 적이 있어요/ 여행 중 일을 얘기해 주었죠/ 맨발로 강에 뛰어든 적이 있대요. (중략) 그 열정을 기억해요/ 그녀는 말했어요/ 그런 정신 나감이 세상을 보게 해 준다고/ 세상과 거꾸로 간다 해도/ 그 작은 조약돌이, 화가가, 시인이, 배우들이 말이죠./ 꿈을 꾸는 그댈 위해/ 비록 바보 같다 해도/ 상처 입은 가슴을 위해/ 우리의 시행착오를 위해…이모는 꿈꾸는 바보의 삶을 미아에게 보여줍니다.라라랜드는 이 영토 문법과 논리로 해석할 수 없는 저 영토 세상을 꿈꾸는 자들의 나라죠. 안전과 안정, 움켜잡은 것을 지키기 위해 꿈을 잃어버린 삭막한 세상에서 이해받을 수 없는 몽상가의 삶입니다.세상은 이런 정신 나간 라라랜드 시민들이 있기에 한 뼘씩 앞으로 전진합니다. 삶에 지쳐 꿈을 놓아버리고 먹고사는 일에 지쳐 방향과 기력을 잃었다면, 라라랜드 돈키호테 삶이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8

새 공보준칙의 허실

공보준칙은 공적으로 보도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되는 규칙을 말한다. 조국 장관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피의사실 공표가 논란을 불러일으킴에 따라 공보준칙 개정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새 공보준칙인‘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안)’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을 계기로 2010년 마련된‘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공보 준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법무부 훈령이다. 이는 피의자에게 불리한 일방적 혐의사실 등이 언론을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돼 피의자가 재판도 받기 전에 수사과정에서 이미 범죄자로 확정되고마는 폐해를 근절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다만 새 훈령은 국민의 알권리보다 무죄추정의 원칙 등에 기반해 공소제기 전 수사상황이나 혐의사실 등 피의사실 공표를 최대한 금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검찰도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엄격하게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울산지검이 울산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2명을 피의사실 공표죄로 입건한 바 있다. 당시 울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약사면허증 위조 혐의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수사 결과를 보도 자료로 언론에 배포했는데, 검찰이 이를 두고 재판에 넘기기에 앞서 피의사실을 알렸다며 문제삼은 것이다. 경찰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송치하는 단계에서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보도 자료를 배포하던 일반 관행에 제동을 건 셈이다.문제는 이로 인해 일반에 알려야 예방 가능한 보이스피싱·이웃간 범죄·부동산 사기·인터넷 물품 사기 등 생활밀착형 범죄 정보마저 묻힐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새 공보준칙이 인권을 보호한다니 부작용을 없애는 방향으로 바뀌면 좋겠다. 또 누군가에게 특혜가 되지도 않는다니 반대할 일도 아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9-18

확인했어?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사람은 이기적이다.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바빠서 그렇다. 내 주변만 걱정하고 살아도 시간이 모자란다. 생각거리가 많고 걱정거리도 많다. 청년은 입시와 취업에 목이 마르고, 어른은 가계와 생업에 목숨걸고 산다. 하루하루가 전쟁같은 판에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나와 내 가족 챙기기도 만만치 않은 세상에 남들과 사회를 염려할 여유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북대화가 궁금하고 한일관계가 걱정이며 북미관계도 안타깝다. 나아가 4대강사업에도 관심이 있고 지구온난화도 띄엄띄엄 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투가 마음에 거슬리고 아베 총리의 망언에 핏대가 선다. 온갖 사건사고에 마음이 쏠리고 사회적 거대담론에도 제법 호기심이 발동된다.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매우 이기적이긴 하지만 또 한편 끊임없이 무엇이라도 알아야 하는 우리는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까. 언론(言論). 언론의 유익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언론이 있어 나라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고, 언론이 있어 이웃과 세상이 사는 모습을 알게 된다. 언론이 전하지 않았으면 알 길이 없었을 뉴스가 하루에도 온갖 미디어에 한가득 실린다. 권력을 감시하고 정보를 전달하여 시민이 적절하게 판단하도록 돕는 언론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버팀목이 아닐 수 없다. 알아야 결정할 것이므로. 미디어환경이 급격하게 변해 가지만, 언론의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시민으로 알게 하라’.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지 본사 복도에 현수막이 붙었다. 그것도 대문자로만. ‘엄마가 널 사랑한다 말한다면, 그거 확인해! (WHEN YOUR MOM SAYS SHE LOVES YOU, CHECK IT OUT!)’ 취재와 보도에 나선 기자들이 분명히 해야 할 일은 ‘확인하고 확인하는’ 일이라는 의미. 당연한 사안이라도 기자가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한 줄도 쓰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 취재원으로부터 보내오는 보도자료는 그들 입장에서 적혔을 게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보도자료는 기사가치를 결정하고 취재에 나설 시발점이기는 해도, 그 자체로 기사는 될 수가 없다. 기자의 이름을 걸며 적어 내릴 기사는 기자가 손수 확인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어야 한다. 검찰이 던져주는 단서가 기사의 줄거리가 되거나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에게 묻는 일로 취재를 대신하는 일은 일선기자라 불리기에 아직 흡족하지 못하다.언론인 빌 코바크(Bill Kovach)와 톰 로젠스틸(Tom Rosenstiel)은 ‘저널리즘의 본질은 확인(verification)에 있다’고 하였다. 사실을 일어난 그대로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는 생각. 팩트가 기사의 토대가 될 때에만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팩트는 정확해야 하고 충분해야 하며 공정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 누군가 던져준 사실과 문건은 기자가 확인하기 전에는 아직 취재를 위한 재료일 뿐이다. 시민의 민주역량은 ‘언론의 확인’에서 시작한다.언론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언론이 민주주의를 그르친다.

2019-09-18

제1차 산업혁명과 안젤루이스의 종

제1차 산업혁명, 이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채 일곱 글자 밖에 되지 않는 이 단어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먼저 ‘제1차’란 산업혁명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이란 기존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쓸어 가버리는 쓰나미와도 같은 거대한 변혁이다. 산업 혁명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학자들이 가장 먼저 사용했다고 하지만 일반화된 것은 영국의 경제사가인 아널드 토인비가 영국경제발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였다고 한다. 이후 이 용어는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되어왔다. 이러한 산업혁명은 ‘농경’ 중심의 사회를 ‘산업’ 중심의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삶의 중심에는 농업이 있었다. 땅에 작물을 심고 그것을 가꾸어 수확하는 삶, 이것이 모든 인류의 공통된 삶의 방식이었다. 농업 중심의 사회에 산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 즉 삶의 방식 역시 여기에 맞춘다는 것이다. 문학, 예술, 음악 등은 농업과 그러한 농업을 가능케 하는 자연을 중심소재로 삼았다. 릴케의 ‘가을’, 드뷔시의 ‘목신에의 오후’와 같은 시와 음악들이 그것이다.또한 이것은 우리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침에 해가 뜨면 들에 나가서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집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자연환경에 인간의 삶을 맞춘다. 변화하는 자연에 맞춰 옷을 입고, 제철 음식을 먹으며 자연의 순환을 인식하게 된다. 나아가 자연을 순환시키는 정체 모를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인간의 삶 역시 그러한 순환적임을 인식하게 된다. 자연의 순환이 이미 정해진 것처럼 거부할 수 없는 숙명과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감자를 심으면 감자가 자라고, 보리를 심으면 보리가 자라는 것을 보게 된다. 콩 심은 데 팥이 나는 일은 없고 불을 때지 않은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일은 없다. 콩을 심으면 그에 비례해서 콩이 나는 것이지 이의없을 만큼 적거나 터무니없이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없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것, 원인에는 그에 합당한 결과가 따른다는 인과론적 세계관이 자리잡게 된다. 운명론, 인과론은 농경중심사회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에서 기반한 지식이며, 이것이 당대의 종교와 윤리로 자리 잡았다.산업혁명과 함께 농업이 이룩한 삶의 방식 역시 사라진다. 사람들은 들에 나가서 일을 하지 않고 공장에서 일을 한다. 낮에도 일을 하지만 밤에도 일을 하기도 한다. 밤에도 일을 하려면 어둠을 극복해야 했다. 전기와 전구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출현한다.자신이 일하는 논과 밭을 중심으로 농촌에 드문드문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들은 공장 근처로 몰려 거대한 규모의 집성지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집성지에 새로운 공장이 들어선다. 왜냐하면 인력을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다시 여기로 사람이 모이고, 또 그런 사람을 따라 공장이 지어진다. 공장들이 대규모로 들어서고 인간의 규모도 커져 거대한 도시를 이루게 된다.조용하고 따분한 농촌과 달리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시끌벅적하고 야단스러운 일들이 매일 같이 일어난다. 인간보다 자연을 중심으로 삼았던 예술은 이제 도시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집중하게 된다. 도시의 사람들은 공장에서 스스로 물건을 만들어 낸다. 운명보다는 개인의 역량을 중시하게 된다. 개인은 노력에 비례하여 결과를 얻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우연히 성공을 이룩하기도 한다. 우연히 사람을 만나 우연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필연보다는 우연을 더 믿게 된다.산업은 농업의 자리를 차지하고 군림하며 인간을 산업에 맞게 개조한다. 인간은 더 이상 운명과 필연에 매달리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저항하며 스스로의 운명은 스스로 헤쳐 나가고자 한다. 프론티어 정신! 산업사회는 이것을 종교처럼 섬기고 윤리규범처럼 따르고자 한다. 산업혁명은 대륙의 한 구석에서 시작하여 이제 전 세계로 들불처럼 번져나간다.‘만종’으로 널리 알려진 밀레의 ‘안젤루이스의 종’이라는 그림이 있다. 넓은 들판, 어둠이 서서히 다가오는 시간, 멀리 교회에서 종이 울려 퍼지면 일을 마친 농부 부부가 기도를 드린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들 가운데 놓인 감자바구니를 통해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하는 것이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엑스레이로 촬영해 본 결과 밀레가 처음부터 감자바구니를 그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저들 사이에는 감자가 담긴 바구니가 아니라 강보에 싸인 아기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농부 부부는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묻기 위해 들판으로 나왔던 것이다. 아기를 묻기 전 그들은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그들이 경건하고 한편으로는 슬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사실 1857년 즈음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물이 파문을 일으키듯 유럽대륙으로 번져나갔다. 이 그림과 산업혁명의 전파시점이 유사한다는 것은 공교롭게 느껴진다. ‘안젤루이스 종’에서 보인 농부와 그의 아내의 애도는 이제 저물어가는 농경 사회에 대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2019-09-17

개의 위협에 대한 대처와 예방방법

개에게 위협을 받았을 경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난 칼럼에서 카밍시그널(calming signal)을 이야기 했는데, 적용해 보도록 하자.개가 당신을 위협하고 있다면 개에게 어떻게든 진정시키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개가 위협신호를 보내고 있을 때 등을 보이고 달리면 안 된다. 등을 보이고 달려서 도망갈 경우 개의 추적본능을 자극할 수 있다.우선 가장 좋은 방법은 개의 눈을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시선을 약간 옆으로 돌려 밑을 보고 한두번 눈을 깜박인다. 눈을 깜박이는 것은 개들이 이해할 수 있는 카밍시그널로, 화해를 청하는 반응이다.그래도 개가 공격할 것으로 보이면 천천히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때도 절대 개와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된다. 호흡을 정돈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얼굴을 약간 옆으로 돌려 하품을 하는 것이 좋다. 개들을 진정시키는 카밍시그널 중 하품하기를 적용하는 것이다. 개와의 사이에 충분한 거리가 있다면 몸을 돌려 옆모습을 개에게 보인다.개에게 옆모습을 보였을 때 개의 흥분이나 위협의 정도에 변화가 없으면 천천히 물러나야 한다.평소에 개를 다루는 방법을 알면 개가 사람을 위협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데, 당신이 개의 확실한 리더가 되는 것이다. 개들 세계에서 무리의 리더를 결정하는 법칙은 무리의 리더인 개가 먹을 것이나 놀이도구 등 재산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즉, 개 주인이 개에게 뭐든 공짜로 그냥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개가 바라는 것을 주기 전에 뭔가를 반드시 개에게 요구해야 한다. 먹을 것을 주거나 쓰다듬어주기 전에 “앉아” 나 “엎드려”정도의 명령을 따르게 하는 것이 좋다. 평소에 이렇게 하는 것은 특별히 개에게 위협이나 공격의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개보다 주인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전달할 수 있게 한다.개가 배워야 할 것은 개 주인의 이야기에 꼭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인데, 당신의 이야기를 잘 따르는 것에 대한 대가로 리더인 당신이 개에게 바라는 것을 주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개를 당신 옆에 세우든가 앉혀서 당신의 손이나 팔을 개의 어깨에 얹어보라. 이것은 개들 세계에서 머리나 앞발을 다른 개의 어깨에 얹어 우위성을 확립하는 것과 같다. 만약 당신이 손이나 팔을 개의 어깨에 올렸는데 이것에 개가 저항한다면 개가 당신을 아직 리더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이동훈동물행동학자 로렌츠는 강아지를 길들이는 방법으로 목덜미를 쥐고 흔들어 돌리는 방법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이 방법은 말을 듣지 않는 강아지에게 어미개가 취하는 행동을 근거로 한 것인데, 훈련사들이 다 큰 성견이 주인에게 거스르는 행동을 할 경우에도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대형견의 경우 목 양쪽의 피부를 쥐고 노려보며 격하게 흔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하면 폭력적 강압방법을 개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개를 복종시키기 위해 개를 드러눕게 하여 배를 보이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두 방법 모두 해석은 맞는 이야기 일 수 있지만 방법은 잘못된 것이다. 개들끼리는 우위에 있는 개가 열위에 있는 개를 힘으로 눕게 하지 않는다. 열위의 개는 상대 개의 우위를 인정한 후에 스스로 드러눕는 것이다. 개를 힘으로 드러눕게 하는 것은 훗날 개의 분노를 더욱 부추겨 더 큰 공격을 유발시킬 수도 있는데 개를 무리하게 드러눕히거나 개의 목덜미를 쥐고 흔드는 육체에 공격을 가하는 행동은 향후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서라벌대 교수·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09-17

자녀와의 친목도 포항을 살리는 길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최근 포항의 부동산시장이 여전히 약세인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절대적인 가격수준만 보면 최근 몇 년간 최고점에 비해 낮아진 것이지 장기적인 추세로는 상승세를 이어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000년대 이후 지역 주민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포항은 가장 조용히 그리고 안전하게 부동산시장에서 가격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고맙게 여겨야할지도 모른다. 지역의 인구가 유출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지 못한 채 일정기간이 경과하게 되면 부동산시장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기 쉽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선제적인 시장의 가격조정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포항의 부동산시장이 아직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 대구와 같이 한국전쟁의 피해가 적었던 지방 대도시에서는 세대 간 부동산 상속시장이 형성된 지 오래다. 반면 포항은 부모에서 자녀로 이어지는 부동산 상속시장이 이제부터다. 타지에 거주하는 자녀세대들은 부모가 생존했던 도시와의 유일한 끈은 상속부동산뿐이다. 결국 이것을 급매로 시장에서 처분하고 나면 그 끈도 끊어진다. 포항에서 분가해 거주하던 자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녀세대가 상속으로 추가보유하게 된 부동산은 결국 포항의 상속시장으로 들어가 지역 부동산가격을 하락시키는 계기로 작동할 우려가 있다.결국 이를 억제하려면 부모와 자녀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부모세대들은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을 쓸쓸하고 외롭게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일이 우선, 힘들면 다음기회에 등으로 타지에서 생활하는 자녀들을 배려해 인내하며 고향방문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녀에 대한 배려는 결국 지금 부모세대가 지키고자 애쓰는 지방도시 포항을 소멸도시로 이끄는 최대의 원인으로 작용하기 쉽다. 실제 지금 포항을 고향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조차 과거 70, 80년대에 포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왔던 자녀세대들이 아니었는가.다행히 다른 지방도시와는 달리 포항에는 부동산시장에 긍정적인 재료도 적지 않다. 그동안 국제항만이라고는 하지만 약점이었던 인입철도, 국제여객부두 등도 내년이면 해결된다. 적기에 영일만관광특구도 생겨났다. 이를 통해 유동인구가 증가하고 국내외 방문객들이 넘쳐나면서 지역경기가 호전되면 자연스럽게 국내외 관련 기업의 진출, 새로운 주거지를 찾는 부동산투자자들은 생겨나기 마련이다.지금 포항에서 살고 있는 부모세대들이 할 일은 하나다. 틈만 나면 자녀들을 포항으로 부르기만 하면 된다. 추석, 설날과 같은 명절에 자녀들을 굳이 배려하고 싶다면 명절을 피해 오도록 시기만 조절해주자. 그래야만 부모가 살고 있는 포항이 변화하는 모습, 부모들과의 추억거리가 많아질수록 포항과 타 지역 자녀들과의 끈은 단단하게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가족 간의 친화라는 최대의 행복을 맛보겠지만 그와 더불어 지역 부동산 상속시장의 약점을 최대한 보완하는 것이기도, 그로인한 자신들의 재산 가치를 보호하는 최고의 수단도 되기 때문이다.

2019-09-17

‘학교 내 대안교실’의 가능성은? (上)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민족 최대 명절인 한가위라고 하지만 시끄러운 조국은 국민의 흥을 꺾어버렸다. 필자 또한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한가위를 보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가족들로 고향집이 보름달보다 더 꽉 찼고, 달빛보다 더 따뜻한 웃음이 집 안에 넘쳤다. 그런데 올해는 필자 가족과 어머니만 고향집을 지켰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아버지의 자리는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는 한가위였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이들이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허사였다.추석 당일 필자의 식구들은 이른 차례를 지내고 병원으로 향했다. 비록 병원일망정 한가위를 가족과 보내려는 사람들로 병원은 떠들썩했다. 오랜만에 병원 냄새가 아닌 사람 향기에 아프신 모든 분들의 병이 치유되는 듯 했다. 꼭 그렇게 되길 필자는 기원했다.그런데 진상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필자는 한가위 병원에서 확인했다. 필자가 본 진상의 모습은 환자도 아니면서 복도와 쉼터를 돌아다니며 양치를 하는 사람들과 마치 놀이동산이라도 온 것처럼 아이들과 고성방가에 가까운 소리로 떠드는 젊은 아버지들이다. 필자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생각했다. 어린 손주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병상을 내어주는 환자복의 할아버지, 그 병상 위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를 훈육하기보다는 더 신이 나서 더 큰 목소리로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을 부추기는 젊은 아버지들! 과연 이렇게 자란 아이들의 초중학교 모습은 어떨까? 이 아이들이 예의 바르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꼭 그렇게 되길 필자는 빌고 빌었다.왜냐하면 최근 교사들의 명예퇴직 사유 중 부동의 1위가 교권추락과 생활지도의 어려움이고, 이것의 근본적인 원인이 ‘예의를 상실한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자기 통제와 절제가 안 되는 학생들, 그들에게 학교는 자신들의 원초적 감정을 발산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학교에는 이런 학생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그 속도보다 더 빠르게 학교도, 교실도, 교육도 무너지고 있다.교육 당국에서는 ‘학교 내 대안교실’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무너져가는 교육을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느 지자체에서는 ‘한 아이도 놓치지 않는 학교 내 대안교실’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대안교실을 홍보 중이다. 뭔가를 해보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응원을 보낸다. 이 노력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안교실 운영 목적 몇 가지를 인용한다.“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리는 다양한 교육 기회 제공, 학교부적응 학생에게 유의미한 학교생활이 되도록 지원, 다양한 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대안적 교육 기회 제공, 위기 학생들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존중하고 협력하는 교육기회 제공”정말 좋은 말이고, 대안교실이 아닌 우리 교육이 해내야 할 교육 목적들이다. 그런데 필자는 지금과 같은 대안교실 프로그램으로는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필자가 교육부 컨설턴트로 대안교실 프로그램을 컨설팅하던 3년 전과 바뀐 것이 별반 없기 때문이다.

2019-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