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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공인의 신뢰

김락현 경북부신뢰(信賴)란 서로 믿고 의지한다는 뜻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꼭 갖춰야 할 필수 요건이다. 이런 신뢰를 깨뜨리는 사건이 구미시의회에서 발생해 지역사회에 파장이 일고 있다.더불어민주당 소속 한 시의원이 간담회에서 동료 시의원들의 발언을 녹음해 감청 논란을 일으킨 것도 모라자 이와 관련한 거짓 해명을 해 거짓말 논란으로 비화됐다. 더 큰 문제는 이 시의원은 아직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백번 양해해 녹음한 사실이 실수라면 동료 의원들에게 사과하고, 녹음을 지우면 될 일이다. 동료들과의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에 대해 사과했다면 이 사건이 이렇게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 시의원은 동료들과의 신뢰는 뒤로하고 녹음에 아무 문제도 없다는 억지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정말 아무 문제가 없을까. 본인이 없는 상황에서 타인의 대화 등을 녹음하는 것은 현행법상 엄연한 불법이다. 그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이 시의원은 사회관계서비스망(SNS)에 최근 불법 영상자료 수집으로 논란이 된 다른 시의원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답글에 감청하거나 청취하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진다고 스스로 언급했다.그가 동료 간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감청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SNS상에 올리면서 끊임없이 동료 시의원들을 비하하고 있다.이 사건에 대한 취재와 관련해 그는 “수준미달 의원의 제보에 언론이 휘둘리지 말라”라고 밝혀 동료 시의원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또 이 시의원은 지난달 열린 제231회 제1차 구미시의회 정례회 상임위에서 한 인터넷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3월 승진을 앞두고 모 간부가 심야에 승진대상자를 불러내어 노래방에서 유희를 하고 성 알선과 청탁 등을 했다”고 언급해 공무원노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결국 이 내용은 언론중재위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정확한 사실도 아닌 것을 공개적으로 발언해 시 공무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구미시의회에 대한 신뢰도에도 타격을 준 셈이다.한 구미시의원의 이러한 신뢰 상실은 결국 구미시의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나아가 결국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신뢰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 뻔하다.지금도 늦지 않았다. 해당 시의원과 구미시의회는 깨진 신뢰를 어떻게 다시 회복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kimrh@kbmaeil.com

2019-07-24

괴롭힘금지법의 민낯

괴롭힘금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으로, 직장에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동이 확인되면 사업주는 가해자를 즉시 징계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최근 직장인 퇴사 결심 이유 1위로 뽑힌 상사 갑질(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결과),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의 간호사 태움 문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 등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실제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만 20∼64세 남녀 1천500명 중 73.7%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런 직장 갑질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가 많아지면서 직장내 괴롭힘금지법이 2018년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지난 16일부터 시행됐다. 법안에서는 직장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의무도 명시했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는 경우 즉시 이를 조사하고, 피해 직원의 희망에 따라 근무 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만약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했음을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 처우를 하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그러나 시행 일주일여 만에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가 드러났다. 우선 괴롭힘방지법은 국가·지방공무원법의 적용을 받는 공무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공무원노동조합에서는 공무원도 괴롭힘을 당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도록 공무원 복무규정이나 행동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도 갑질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국회 보좌관들의 페이스북 계정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올라온 내용을 보면 “의원 보좌진은 국가공무원이지만 정작 국회의원들은 보좌진을 공무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노비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라며 “의정 활동과 관련 없는 잡다한 일들을 보좌진에게 시킨다”라고 했다. 괴롭힘 방지법을 만든 국회에서 직장내 갑질과 괴롭힘이 성행하고 있다니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7-24

새옹지마(塞翁之馬)

장규열 한동대 교수옛 중국 한 노인에게 아끼는 말 한 마리가 있었다. 도둑이 들어 그 말이 없어졌는데도 노인은 오히려 ‘이게 좋은 일이 될지 누가 아느냐’며 태연하였다. 노인을 잊지 못한 그 말이 좋은 말 하나를 더 끌고 돌아왔다. 기뻐하는 이웃들에게 노인은 ‘이게 나쁜 일이 될지 누가 아느냐’며 경계하였다. 말타기를 즐기던 아들이 그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노인은 이번에도 ‘이게 좋은 일이 될지 누가 아느냐’며 안타까워하는 이웃을 오히려 달래주었다. 나라가 전쟁에 휘말려 젊은이들이 싸움터에서 죽어갔지만, 그 아들은 곁에서 노인을 보살펴 주었다. 시골 노인의 그 한 마리 말. 새옹지마(塞翁之馬).한국과 일본. 갈등이 깊다. 해외 언론마저 사설로 다룰 만큼, 이번 한일통상마찰 사태에는 무역 관계 외에도 깊은 골이 함께 보인다. 두 나라 역사의 흔적과 경제 논리뿐 아니라 국민의 자존심마저 함께 걸려있어, 스스로 헤어나오기는 어려울 모양이다. LA타임즈(LA Times)는 ‘한일무역갈등은 역사의 아픔을 품고 있다’고 하였다. 블룸버그(Bloomberg)통신은 ‘양국은 각자의 관점에 포획되었다’고 적었다. 특단의 해법이 필요하고 특별한 다짐이 요청된다. 일제강점기의 그림자가 아직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서, 우리는 어쩌다 이처럼 집요하고 사나운 이웃을 만났을까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할 터이지만, 이후에 일본과 또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지 귀추에 국민의 관심이 쏠린다. 우리에게 일본은 어떤 이웃인가.일본이 우리에게 수출하지 않겠다는 품목들은 오히려 그들도 다시 수입해 갈 완제품들의 원재료가 되는 물품들이라고 한다. 제한되는 원료들을 우리의 기술로 만들어 내는 날에는 일본이 오히려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될 터이다. 실제로 우리 정부와 업계는 연구와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이들 품목에 대하여도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또한, 일본이 무역에 있어 호혜적인 특혜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는 발상도 분명한 사실과 논리에 근거한 설명이 부족한 상태라고 한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무대에서 일본이 오히려 설명과 설득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터이다. 뉴욕타임즈(NYT)는 ‘G20회의에서 자유롭고 공개적인 통상이 평화와 번영의 기초라고 천명했던 아베 수상이 이틀 만에 모호하고 불특정한 근거를 토대로 한국과의 교역에 제한을 가하였다’고 하였다. 이 어려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2차대전은 74년 전에 끝났지만, 일제강점이 남긴 그림자는 아직도 길다. 물리적인 조건들이야 전후 태반이 복구되고 개선되었지만 한국민들의 마음 속에 드리워진 상처와 아픔은 여전히 길고 어둡게 여러 갈래로 작동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일본의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하여 안타깝다. 전후 독일이 유럽에서 보여주는 참회와 회복의 노력에 비하면 못 미쳐도 한참 못 미친다. 우리에게도 일본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인식 가운데 부적절한 앙금을 혹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피해의식이나 패배의식은 물론 혹 일본이 우리보다 낫다는 식의 열등감은 이제야말로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 역사와 문화뿐 아니라 경제와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나으면 나았지 손톱만큼도 모자란 부분이 이제는 없다. 글로벌시장에서 우리 상품이 절대우위를 더러 가지고 있으며 기술력과 정보력으로도 뒤질 바가 아니다.세계와 씨름하던 중에, 뜻밖에 일본의 일격을 만난 셈이다. 지혜롭게 대처하여 슬기롭게 이겨내야 하며, 이후에는 오히려 더욱 믿음직한 이웃으로 만들어 갈 아량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이 위기는 기회가 될 확률이 높다. 새옹지마이며 전화위복이므로.

2019-07-24

아베의 황당한 백일몽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지난 7월 1일 시작된 일본의 경제침략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대한민국을 콕 집어서 일본이 자행한 경제보복이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도조 히데키가 주도한 진주만 공습에 비견되는 아베의 급습이 무엇을 겨냥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7월 21일 참의원 선거, 남북과 북미의 급속한 해빙과 평화체제 구축방안 논의에서 일본의 배제, 한국과 중국의 부상(浮上)에 따른 열패감 등등.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제기돼온 징병과 징용, 위안부 문제, 과거사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갈등,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출신의 역사의식 없는 어리석은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체결한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문재인 정부와 아베의 대립과 각축, 일본 우익의 입맛에 맞는 수구적인 인물과 친일정당을 통한 한국의 정권교체, 트럼프와 제휴해 아베가 세계최강 한국의 반도체를 손보려 한다는 대리청정 주장도 난무한다.모든 것을 합치고 거기 무엇을 덧댄다 해도 남는 문제가 있다. 일본과 일본인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151년 전인 1868년 명치유신(明治維新)으로 일본은 아시아 최초-최강의 근대화를 성취한다. 애국적이고 진취적인 청장년 지식인 계층이 위로부터 개혁을 강인하게 추진해나간 결과다. 과거의 낡고 무기력한 일본과 작별하고 새롭고 강력한 일본을 드러내려는 문구가 ‘탈아입구(脫亞入歐)’다.후진동양(後進東洋)의 맹주 청나라를 부정하고, 선진서양에 의탁해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계몽주의를 수용한 일본. 근대국가의 이념과 내용을 혁신을 위한 방편의 전면에 내세우고 유럽을 배워 아시아를 탈피하려던 일본.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려 했던 일본 지식인들의 열망이 ‘탈아입구’ 네 글자에 각인되어 있다. 나쓰메 소세키 같은 인물마저 러일전쟁의 승리에 도취하여 전염됐던 동북아 오리엔탈리즘의 원조 일본. 제국건설의 야망을 품은 그들이 실현한 식민주의는 유럽의 그것과 판이한 양상을 가진다. 그것은 가까운 이웃 나라들을 병탄(倂呑)하고 그 인민을 노예로 삼은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는 인접국을 병탄하여 그 나라의 인민을 노예화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웃 나라에 대한 도리이자 예의이기 때문이다. 인도차이나를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의 반목(反目)이 극에 달했을 때조차 그들은 태국을 중립지대로 삼아 유혈사태를 피한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논거로 태평양전쟁을 촉발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허다한 인민을 전장으로 내몰았다.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일제의 총알받이로, 탄광의 매몰사고로, 일본군 성노예로 죽어갔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우리는 일본 국왕에게 제대로 된 사죄 한 번 받아본 일도 없다. 그저 ‘유감’이니 ‘통석(痛惜)’이니 하는 수사(修辭)로 덧칠한 언어유희만 있었을 뿐.이런 맥락에서 이토 암살 100주년인 2009년 8월 30일 일본의 정권교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탈아입구’ 대신 ‘탈미입아(脫美入亞)’를 외쳤다.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돌아오겠다는 선언. 일본의 정체성을 유럽과 미국이 아니라, 동북아에서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 그러나 성숙하지 못한 일본의 관변 민주주의, 무기력한 소수의 시민사회, 강력한 비판적 지식인 세력이 부재한 일본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폭발로 속절없이 무너져버린다. ‘탈미입아’ 역시 허공 중에 산산이 부서진다.참의원 선거는 끝났지만, 일본군의 한반도 진군(進軍)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개정을 향한 아베의 백일몽은 진행 중이다. 아베와 일본의 극우세력을 대놓고 엄호하는 한반도의 정치 모리배와 정당과 언론의 칼춤도 끝날 줄 모른다. 강력한 시민사회와 비판적 지식인 세력,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국민의 나라가 아베의 꿈을 황당한 백일몽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라 확신한다.

2019-07-24

베네치아 뱃사공의 노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초간단 유머 심리검사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베네치아 여행 중입니다. 곤돌라 뱃사공이 노래를 시작합니다. 잘 아는 노래입니다. 이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1. 화음을 넣어 함께 부른다. 2. 멜로디를 따라 노래한다. 3.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4. 웃으며 손뼉친다.”화음을 선택했다면 서로 감사할 줄 아는 환상의 커플, 같은 멜로디를 따라 부르기를 선택한 경우는 자신의 욕심을 챙기기보다 상대에게 맞춰주는 커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면 관계에 확신이 낮은 커플이랍니다(이런). 손뼉만 치는 것은 서로 오해가 자주 발생할 수 있다지요. 그대 선택이 궁금합니다.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베네치아 사공의 노래를 언급합니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가운데 곤돌라에 올랐다. 두 명의 가수는 배의 앞뒤에 각각 앉았다. 이들은 노래를 시작했고 번갈아 한 소절씩 불렀다. 폐부를 뚫고 들어가는 노랫소리는 잔잔한 물 위를 퍼져 나간다. 그때였다. 마치 이 노래 가사를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어 보이는 어떤 사람이 멀리서 듣고 이어지는 시구로 응답했다. 그의 노래가 멈추자 다시 사공이 응답한다. 이렇게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메아리로 기능한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슬픔이 증발한 가여운 탄식처럼 들렸지만, 눈물 나게 감동적인 경이로운 요소가 담겨 있다. 기분 탓으로 돌리는데 늙은 하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 노랫소리가 이상하게도 사람 마음을 흔드네요. 들을수록 감동적인데요.”늙은 하인은 내가 리도의 여인들, 특히 펠레스트리나 출신 여인들의 노래도 들어 보기를 바라며 말했다. “그 여인들은 남편들이 고기잡이를 나가면 바닷가에 앉아 폐부를 찌르는 목소리로 이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하곤 합니다. 그러면 남편들도 멀리서 아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런 식으로 서로 노래로 대화를 나눈다고 합니다.” 하인의 말에 괴테는 이렇게 대답하지요. “이 노래는 인간적이고 진실해서 어느 고독한 자가 같은 기분을 느끼는 다른 사람이 듣고 응답하도록 저 멀리 드넓은 세상으로 보내는 노래이구려.”뱃사공이 노래를 부를 때 아련히 들려오는 메아리 같은 화답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물론 뱃사공 두 사람이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괴테 일행을 즐겁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풍부한 성량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수로 사이 건물의 울림을 통해 감동을 선사했겠지만 무언가 부족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7-24

400년 전의 눈으로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통영 세병관이다. 수차례 와보았던 장소이고, 그때마다 설명을 들었던 터라 필자는 교감 자격 연수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홀로 앉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쪽 귀는 문화관광해설사 방향으로 열어 놓았다. 설명의 앞부분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귀의 일부만 놔두고 마음을 거두고 다른 일을 했다.시원하게 불어오는 통영 바닷바람이 잔뜩 힘이 들어간 눈을 달래어 줬다. 이젠 힘을 빼고 살아도 된다는 바람의 속삭임에 눈꺼풀은 속절없이 내려왔다. 간간이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어쩌면 이순신은 지금 시대에 더 필요한 영웅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목숨 바쳐 지켜낸 이 나라가 아직도 일본에 쩔쩔매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신다면 ‘어떤 마음이실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생각의 끝에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겹쳐서 일어났다.“이제부터는 등을 편하게 기대시고 왜 세병관을 이곳에 지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세병관이 처음 지어질 때는 당연히 앞에 보이는 건물들은 없었겠지요. 400년 전의 눈으로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구즉생(久卽生)이라는 말을 소개드리면서 저의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나라 발전을 위해 큰 교육을 하시는 교감 선생님이 되세요. 장마의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통영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400년 전의 눈’이라는 말에 필자의 눈이 번쩍 떠졌다. 해설사의 말이 수십 년 동안 필자를 답답하게 구속하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 등을 단번에 날려줬다. 필자의 눈 앞 있던 복잡한 현대 건물들이 하나둘 지워졌다. 그러면서 400년 전 이순신께서 내려다보신 통영의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시원해졌다. 최근 며칠 동안 무겁기만 하던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세병관(洗兵館)의 뜻에 대해 다시 찾아보았다. “하늘의 은하수를 가져다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낸다.”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세병관! 평화를 지키기는 가장 큰 힘은 상대보다 더 강한 힘을 갖기 위해 늘 노력하는 것이라는 이순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역부족이었지만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는 신념으로 두려움을 떨쳐낸 이순신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이순신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스스로에게 말문이 막혀버린 필자는 생각을 전환하기 위해 주역에 나온다는 궁즉변(窮卽變 궁하면 변하고) 변즉통(變卽通 변하면 통하고) 통즉구(通卽久 통하면 오래가고) 구즉생(久卽生 오래가면 살아남는다)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말의 핵심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을 가장 잘 실천하는 것이 자연이다. 그래서 자연은 끊임없이 변한다. 변화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자연은 인간들의 이기적인 욕심이 만들어낸 자연 파괴라는 대참사에도 끄덕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들을 위로하고 지켜주고 있다.뉴스는 5호 태풍이 온다고 야단이었다. 뉴스의 선동에 인간들은 한 술 더 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자연은 달랐다. 자연은 겸손한 자세로 태풍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수백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세병관은 분명 자연의 모습이었다.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필자는 세병관의 너른 품을 좀처럼 떠날 수가 없었다.우리 사회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많이 있다. 인간의 이기심, 정치인들의 탓하기, 옆 나라의 막무가내 떼쓰기, 그리고 교육! 다른 것들은 몰라도 교육을 하고 있는 필자이기에 세병관을 떠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 교육은 변화할 수 있을까?” 그랬더니 딸아이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아빠 내 친구 이번 여름 방학에 학원 다섯 개나 다닌다.” 우리는 언제 아이들의 눈으로 교육을, 그리고 방학을 볼 수 있을까? 지워졌던 현대식 건물들이 더 어지럽게 세병관 앞을 흐렸다.

2019-07-24

무궁화 사랑

우리나라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근화(槿花)라고도 부른다. 신라시대 효공왕 때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으로 표현한 글이 나오는데, 이는 ‘무궁화가 많이 피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밖에도 우리의 옛 문헌에는 근원(槿原) 혹은 근역(槿域)으로 표현한 글이 나오나 이는 ‘무궁화 땅’이라는 의미다. 우리 민족 스스로가 무궁화 땅에 살고 있음을 알린 표현들이다.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도 한반도에는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는 곳이라 소개하고 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가 된 배경에는 이 같은 오랜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음을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무궁화가 나라꽃이란 말은 법령 어느 곳에도 없다. 애국가나 태극기와 같이 나라의 상징인 표상물이면서 법령에 명기되지 않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국민 다수가 국화로 여겨왔던 것으로 보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이홍직의 국어대사전에도 “무궁화는 구한국시대부터 우리나라 국화가 되었다.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고 국민 대다수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 설명했다.무궁화가 국화로 본격 인정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다. 일제의 침탈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국화가 자주 사용되면서다.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가 등장하고, 독립투사들이 무궁화를 우리나라와 일체화하는 글을 많이 남기면서 무궁화는 나라꽃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무궁화 꽃은 우리 겨레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이라 한다. 단결성과 협동심을 상징하기도 하고 인내와 끈기로도 표현한다. 꽃 말도 ‘일편단심’이다. 변하지 않는 민족의 마음과 통한다고 한다.한 때 국가의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나라는 무궁화 꽃으로 애국심을 가르쳤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이라는 노래도 부르고 학교와 직장 곳곳에는 무궁화 꽃을 심어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시켰다. 나라 꽃 하나로 애국심을 똘똘 뭉치게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지금쯤 곳곳에 활짝 피어 있어야 할 무궁화 꽃이 구경하기조차 어려워졌다고 한다. 애국정신이 그만큼 희미해진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7-23

일본의 제재 뒤에 숨은 것 있나

김학주 한동대 교수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금지가 단순히 아베의 반한 감정이라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일본의 전략적인 계산이 숨어 있다면 한국경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일각에서는 아베가 반한감정을 자극하여 참의원 선거에 이용하려는 술책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베는 일본 내에서 아베노믹스를 통해 일본기업들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혁신의 발판, 즉 르네상스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굳이 반한 감정을 자극하여 극우세력을 결집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이런 식의 보복은 일본 반도체 부품업체들에게도 타격을 준다. ‘경제 동물’이라고까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계산적인, 그리고 용의주도한 일본이 이런 대응을 한다는 것이 매우 낯선 상황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무역 제재 뒤에 뭔가 숨은 것이 있지 않을까?일본의 최대 고민은 미국의 자동차 수입 관세다. 일본경제가 현재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미국 정부로부터 일본 차에 수입관세가 부과되면 일본경제는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 일본 내 자동차 생산에 직접 종사하는 종업원 규모가 83만명 정도로 알려지지만 자동차 수리, 보수, 마케팅, 금융까지 포함하면 500만명이 넘는다.1985년 9월 플라자 합의는 일본의 엔저에 따른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를 시정하기 위한 강제 엔고 조치다. 그런데 당시 미국의 무역적자를 특히 키웠던 것이 자동차였으므로 그 후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일본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훨씬 더 큰 전자산업이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IT의 주도권을 한국에 뺏긴 상황에서 자동차 관세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결국 일본은 자동차 산업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것을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내도록 하려는 것일까? 반도체 소재나 장비의 경우 세계적으로 독과점적인 것이 여럿 있고, 그 가운데 일본이 주도하는 분야도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제재 품목에 포함됐던 감광액(photo resist)이 공급되지 않으면 차세대 노광장비(EUV)를 쓰기 어려워 삼성전자가 야심 차게 준비하던 비메모리 분야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또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 소재 가운데 일본업체가 독점하는 것들도 있다.만일 일본이 삼성전자를 힘들게 하면 당장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러지가 메모리 부문에서 반사이익을 받고, 또 인텔과 같은 미국의 비메모리 업체들이 삼성전자 같은 미래의 경쟁자를 제거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과거 마이크론은 일본의 엘피다를 인수했었다. 그러나 마이크론 내 일본 지분은 없다. 즉 일본이 전략적으로 삼성전자 대신 마이크론을 밀어준다면 미국 제재를 피하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이런 생각이 “트럼프와 합의된 것인지, 아니면 아베가 알아서 기어보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일본의 무역제재가 왜 하필이면 G20회담 직후에 나왔을까? 물론 단순한 아베의 반한 감정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물론 여기에는 일본 소재 업체들의 희생도 따른다. 반도체 부품의 소비자들이 삼성전자처럼 독과점 지위에 있으므로 납품선을 돌리기가 어렵다.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일본의 소재 및 장비 구입을 원하지만 트럼프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마이크론이 설비를 충분히 확장할 때까지 일본 기업들도 기다리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정부 말을 잘 듣는다. 일본 정부가 “일본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하자”고 설득하면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들이 따를 가능성이 높다.세계경제가 저성장으로 돌입하며 먹이가 줄어드는 가운데 힘이 약한 나라로 피해가 넘어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 성장기에는 모두가 너그럽지만 이제는 누가 하나 사라져 주면 나머지가 행복해지는 시대가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2019-07-23

개 세 달 버릇 15년 간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가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개가 교육을 받지 않으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된 삶을 살게 된다. 산책할 때 말을 듣지 않는다고 심하게 목줄을 당겨지게 될 것이고, 손님이 왔을 때 짖거나 공격하려 들테니 개 집에 가두어 두게 될 것이다. 식사 때 식탁에 오르려는 개들은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하고 묶여 있게 될 것이다. 개는 15년 정도가 평균 수명이다. 이 시간동안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생활에 필요한 필수적인 행동방법을 교육받아야 한다.낯선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의 개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경계심이나 수줍음을 보이지 않고 당신의 곁에서 얌전히 잘 있어야 한다. 당신과 같이 있을 때 낯선 사람이 다가와 개를 만졌을 때 당신의 개는 경계심이나 수줍음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개들이 많이 가는 장소인 동물병원이나 애견미용실, 애견 카페를 갔을 때 당신의 개는 어떠한가? 수의사의 진찰행동에 잘 응할 수 있는가? 애견미용사에게 까다롭게 굴지는 않는가? 애견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처음보는 개들에게 약간의 관심정도가 아니라 다가가서 거친행동을 하지는 않는가? 당신의 개는 당신이 가자는 곳으로 가고, 앉아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다니는 길과 공공장소에서 얌전히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에 따라 앉아있고, 엎드려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이 부르면 개는 당신의 말을 듣고 당신에게 달려올 수 있어야 하고, 처음 보는 물체를 가진 사람들을 보더라도 당황하거나 짖거나 공격하거나 도망가는 행동을 보여서는 안 된다. 개는 어린이들 주변에서도 안전해야 하고, 이웃들이 보기에 안심할 수 있어야 하고, 주인과 있을 때 행복함을 주면서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아야 한다. 당신의 개는 어떤가? 이런 조건을 만족하고 있는가?우선 강아지를 데려와서 함께 살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를 먼저 해본다. 프로이트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분석하며 유아기부터 성장기별로 성격형성에 관련된 주요한 단계를 설명한 바 있다. 개들도 태어나서 시기별로 특징을 알아야 하고 단계별로 교육을 위해 중요한 시기가 있다. 따라서 엄마 개가 강아지를 어떻게 교육시키는지를 아는 것이 엄마개의 역할을 대신 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하겠다. 엄마 개는 강아지가 생후 5주가 되면 바른 행동을 가르친다. 젖을 먹는 시기에 엄마 개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강아지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엄마 개는 으르렁거리거나 짖고, 물기도 하여 강아지를 가르친다. 강아지들은 이런 상황을 몇 번 겪으면 엄마 개를 살피기 시작한다.이 시기에 엄마 개는 강아지에게 리더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게 되는 것인데, 이런 교육을 받지 못한 강아지는 성장 후 보호자의 질책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생후 7주 정도가 되면 강아지는 감각기능이 발달하여 사람과의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새로운 집으로 가기 적당한데, 그 전에 엄마 개와 헤어지게 되면 향후 사람 보호자를 만났을 때 과잉집착, 공격성, 불안, 지속적인 짖음을 보일 수 있다.강아지가 12주가 넘도록 엄마 개나 형제 개들과 같이 생활한 경우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져서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은 강아지의 사회화 능력이 지나치게 단순해져서 자신의 행동을 관리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인데 이런 강아지는 사람가족에게 신경을 안 쓰게 되므로 가정에서 길들이는 교육이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개는 생후 7주에서 12주 사이에 보호자가 되는 사람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다른 개들과의 만남을 통한 사회화 과정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 강아지가 어린이들과 접촉을 많이 못했다면 성장해 어린이와 함께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 시기의 정신적 충격이 있는 사건이나 나쁜 경험, 특히 공포감을 느끼는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 강아지를 만져주거나 안심시키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괜찮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데, 차라리 강아지가 좋아하는 것으로 주의를 돌려 겁먹은 행동이 사라지게 하는 편이 더 낫다. 강아지 시절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은 경험이 되어 훗날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반려견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기억하라. 생후 7주에서 12주 사이는 강아지가 보호자를 잘 따를 때이므로 생애동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과 환경을 겪게 해주고 특별히 좋은 경험과 다양한 대상들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장(마사과 교수)

2019-07-23

이효석 정본 작업과 이상옥 선생님

△이효석 정본 작업이상옥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지난 2012년 5월께로 이효석 전집을 재출간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면서이다. 전집을 처음 출간하는 것도 아니고 재출간하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원문과 이본 등을 비교하고 교정하여 원문에 가장 가까운 정본(定本)을 출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검토한 내용을 가지고 매주 만나 토론하여 텍스트를 확정하는 이 지난한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채정 선생님, 그리고 대학원 동료 두 명,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이 팀이 최종적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다. 이상옥 선생님은 70대에 뵈었는데 이제 80대가 되었다. 그리고 20대의 풋풋했던 친구는 30대가 되었고, 나도 지금은 40대가 되었다.우리 팀은 연령층이 다양하고 성장 지역도 각양각색었다. 연령층과 성장지가 다르다는 것은 이 작업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인간을 닮아서 나이와 출신지를 갖는다. 30대에게 생소한 단어가 50대에겐 무척 익숙한 언어일 때가 있고, 서울 사람이 모르는 말을 강원도 사람은 일상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작업을 통해 이러한 낯섦과 낯익음의 격차를 줄이고, 한자나 영어, 아주 곤란할 때는 각주를 덧대어 말을 곧추세웠다. 때로는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되는 오식과 비문을 바로잡았다.이 작업을 하면서 기억나는 건 ‘말결’이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다. 두고 볼수록 예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결’은 ‘무늬’라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겨를’(때, 사이, 짬)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무늬라고 했으나 기실은 ‘조직이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라고 해야 분명하다.) 무늬라는 뜻의 ‘결’과 사이라는 뜻의 ‘겨를’의 줄임말인 ‘결’은 음은 같지만 그 뜻은 현저히 다른데, 이를 동음이의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결’이 ‘잠’이나 ‘물’과 같은 명사와 결합하면, 동음이의어적 성격이 헐거워져 ‘무늬’와 ‘겨를’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된다. 예컨대 물결은 물의 무늬이면서 물의 흐름과 흐름의 사이이다. 잠결은 ‘잠을 자는 사이’이기도 하겠지만, 잠과 잠 아닌 것 사이의 일렁임이다. 그리고 말결은 말의 사이이자 말의 무늬다. 이렇게 보니 ‘무늬’와 ‘겨를’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닌 것도 같다. ‘사이’의 흐름, ‘사이’의 이어짐이 ‘무늬’이니 말이다.이효석 정본 작업은 이렇게 우리말을 더 풍성하게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2012년 가을께 ‘메밀꽃 필 무렵’의 4교를 끝냈는데 2년이 지나 다시 열어봤더니 여전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아 몇 번의 작업을 더 거쳐야 했다. 그렇게 해서 2016년에 ‘이효석 전집’ 전 6권을 상재했다. 이 작업을 통해서 기존의 오류와 실수를 바로잡았다. 그 과정은 한글 프로그램의 ‘검토’와 ‘메모’ 기능을 활용하여 기록하였다. 품이 많이 들지만 그 빛은 미약할지 모른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일들과 꼭 필요한 일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러니 이 일을 하게 되어 즐거웠고,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계속 즐거울 것이고, 그리하여 오래도록 즐거울 것을 생각하니 벌써 뻐근하다. 갈비뼈 하나 쯤 떼어낸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이상옥 선생님이 작업을 하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상옥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기왕이면 정본 전집을 출간하고 싶어 하셨고, 이효석문학재단 측에서 이러한 선생님의 뜻에 선뜻 동의해주었기에 이 일은 가능했다. 우리는 이 작업을 ‘정본 작업’으로, 우리 스스로를 ‘정본 팀’이라고 불렀다. 매주 두세 번 정도 모여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상옥 선생님은 지각이나 결석을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다. 선생님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시는 동안에도 강의 시간에 늦은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이런 분이라면 으레 당신과 같지 않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선생님은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나를 책망하기보다는 격려하고 이해해주셨다.선생님은 정본 작업에 단지 참여만 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를 해오셨고, 원문의 어려운 한자는 물론 활자가 흐릿하여 어린 나조차 알아보기 힘든 글자까지를 읽어내셨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견해를 고집하는 법이 없으셨고, 우리가 내놓는 의견을 귀담아 들으셨다. 선생님은 아침 10시부터 때로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이 지난한 작업을 하면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셨고, 팀에 활기를 불어넣으셨다.정본 작업을 하는 동안 선생님은 재단 측으로부터 단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으셨다. 심지어 전집에 편자나 감수라는 명목으로 당신의 이름을 올릴 법한데 그렇게 하지도 않으셨다. 어떤 영광도, 명예도, 이익도 없이 선생님은 정본 작업에 열정을 쏟으셨고, 그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으셨다.선생님은, 나이로 치자면 우리보다 서른 살 이상 더 많으시고, 고작 박사학위를 막 받았거나 박사수료생인 우리와는 격이 다른 위치임에도 모든 팀원들을 동등하게 존중해주셨다. 선생님의 지식은 넓고 깊어 이야기는 끊어지는 법이 없었고, 마르는 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듣는 법을 잊지 않으셨고, 토론을 포기하는 법이 없으셨다. 심지어 나와는 정치적 견해도 달랐지만, 선생님은 설익은 내 말을 들어주셨고, 내 생각을 존중해주셨다. 지금도 그러하시다.나는 평생 이처럼 고고(高高)하며, 학학(鶴鶴)한 분을 뵌 적이 없다. 나는 원체 막돼먹어 누군가를 존경할 줄도 모르고 나 잘난 맛에 살아왔다. 이상옥 선생님은 그런 내게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해주셨다. 이상옥 선생님에 대한 이러한 마음은 비단 나의 사견만은 아닐 것이다. 정본 출판을 마무리한 이후에도 여전히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매년 서너 번의 모임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우리 정본 팀 역시 이상옥 선생님의 성결에 감화된 듯하다.올해 5월, 우리 정본 팀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3박 4일간의 짧은 여행이었다. 내내 비가 오긴 했지만, 덥지도 않아서 좋았다. 이 여행을 선생님은 일종의 시험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함께 여행을 오래 할 수 있는 ‘족속’인지 서로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아무래도 이 시험에 통과하게 된듯하다. 이제 오랫동안 함께 가고자 했었던 영국으로 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나는 이상옥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없고, 선생님은 나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하신 적도 없다. 선생님은 내게 그저 당신의 행동만으로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셨다. 이러한 선생님을 더 자주, 더 오래 뵐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2019-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