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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현지 누나’, 세긴 세구나

“정치권에서 형, 형님, 누나, 누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선배 동료들을 살갑게 부르는 민주당의 일종의 언어 풍토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지난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또 “동료 후배 의원들께서도 저를 의원, 전 대표보다는 대부분 거의 형님, 큰형님이라 부른다”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이 이 글을 올린 이유는 분명하다. ‘현지 누나’를 비호하기 위해서다. 박 의원은 83번째 생일이 6개월이나 지났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자칫하면 그의 사소한 언행이 김 전 대통령에게 누를 끼칠 수도 있는 처지다. 그때도 그랬느냐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런 박 의원까지 나서서 ‘현지 누나’를 엄호하는 것을 보면, ‘세긴 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동료 의원들끼리 ‘살가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쁠 리가 없다. 그런 호칭이 굳이 민주당이나 호남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풍토도 아니다. 경북 출신인 한 대학 총장도 젊은 시절 만나는 사람마다 ‘형님’, 아니면 ‘아우님’이라고 부른다고 소문이 난 적이 있다. 친화력이 좋고, 마당발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국민의 힘 정치인 중에도 ‘형님’이라는 호칭을 버릇처럼 내뱉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치인이 ‘형님’, ‘누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뻔하다. ‘공식적인 관계보다는 가깝게 지내자’는 제의다. ‘너무 야멸차게 원칙만 들이대지 말아달라’는 응석이다. 친 형님처럼 푸근하게, 친 누님처럼 따뜻하게 대해달라는 부탁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인사나 청탁을 잘 챙겨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남의 부탁은 몰라도 형님이나 아우 부탁은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계산이 담겨 있다. ‘형님’이란 말을 정치인보다 더 잘 쓰는 집단이 ‘조폭’이다. 무슨 말을 하건 ‘형님’을 갖다 붙이는 게 조폭 어법이다. 개그맨들이 종종 그런 말투로 조폭을 흉내 내 관객을 웃기는 걸 본다. ‘형님’에는 논리가 없다. 명령과 복종뿐이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단순 무식’이 이 세계의 절대 규율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정치권, 공직 사회에 얹혀지면 곤란한 일이 생긴다. ‘공(公)’과 ‘사(私)’가 비빔밥이 되는 것이다. 문진석 민주당 수석원내부대표가 김 남국 전 대통령실 디지털소통 비서관에게 보낸 문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남국 아, 우리 중대 후배고···”. 같은 대학 동문이니 내가 챙기는 것이고, 너도 챙겨야 한다는 논리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업무와 관계없는 줄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는 민간단체다. 공직, 공공기관, 정부가 공식으로 관여하는 자리가 무수하다. 그런데, 이런 민간단체장까지 대통령실이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디지털소통비서관은 자동차산업과 관계가 없다. 인사 와도 거리가 멀다. 제1부속실장도 인사담당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거대 여당의 원내 제2인자가 그런 줄을 잡고, 인사청탁을 했다. 대통령실 비서관도 ‘현지 누나’가 인사를 좌우하는 실력자라고 지목했다. 이걸 단순한 해프닝으로 덮을 수 있나.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여권 실세들이 모두 ‘현지 누나’가 민간협회장을 낙점해줄 수 있다고 믿었을까. ‘만사현통’이라는 시중의 소문만 믿은 건 아닐 것이다. 야당이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을 국회로 부르자, 이재명 대통령은 그에게 문고리 권력을 맡겼다. 국회 출석을 회피할 수 있는 자리다. 문자 소동 끝에 김현지 실장은 “나는 아주 유탄을 맞았다”라며 억울해했다. 그렇다면 진즉 국회에 나왔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서원(최순실의 개명)으로부터 사소한 도움을 받다 비선 논란에 휘말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의 지나친 국정 개입을 감싸려다 제 발등을 찍었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비선(秘線)’은 권력은 휘두르는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무책임한 권력만큼 위험한 게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재 풀은 매우 좁다. 성남 시절 지인이 아니면, 자기 사건 변호인들이다. 그 밑에서 돌아가는 모양도 ‘끼리끼리’다. 사적 관계에서 살갑고 정이 넘치는 건 좋다. 하지만 공적 영역은 다르다. 달라야 한다. 국정 운영은 더욱 그렇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2-07

호칭 문화

한국사회의 호칭문화는 매우 복잡하고 독특하다. 사회적 구조와 나이, 서열, 직장에 따라 호칭하는 방법이 각기 다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애로를 겪는 분야 중 하나다. 친가, 처가, 외가 등에 따라 호칭이 다르고 나이에 따라 존댓말과 반말이 구분된다. 직장에서도 상사와 부하 간 사용하는 호칭이 별도 있다. 영어의 YOU에 해당하는 단어도 ‘님’ ‘씨’가 있는 반면 ‘놈’ 혹은 ‘것’까지 다양하다. 자칫 잘못된 단어 선택은 상대에게 큰 실례가 된다. 4년 전 가장 권위 있는 영어사전인 영국 옥스퍼드는 한국의 단어 26개를 표제어로 등재했다. 먹방, 김밥, 불고기, 삼겹살 등 한류문화와 관련한 단어다. 그중 눈여겨볼 것은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오빠(OPPA)와 언니(UNNI)가 등재된 사실이다. 옥스퍼드 측은 K팝이나 K드라마가 등재의 결정적 이유라 했다. 외국인은 한국 배우나 가수를 부를 때 자신의 성별과 무관하게 ‘오빠’와 ‘언니’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남성 외국인이 ‘오빠’ ‘언니’라 불러도 이상할 것 없다는 뜻이다. “Oppa JinJa Deabak!”(오빠 진짜 대박)과 같은 말들이 K-컬처를 타고 세계 곳곳에서 들을 날도 멀지 않을 것 같다. 청탁문자 파문으로 대통령실 비서관이 사직했다. 이와 별개로 공적 관계 속에 그가 사용한 “형” “누나” 호칭을 두고 논란이다. 일부에서는 “민주당의 일종의 언어풍토”라고 했지만 공직자가 근무 중 “형, 누나”같은 사적 호칭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다. 사적 친밀감을 나타내는 표현의 사용은 공적 영역에서는 신중한 게 옳다. 공적 기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07

무지와 빈곤

사노라면 우연한 계기로 변화와 마주하는 수가 있다. 무슨 연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2012년에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레미제라블’을 읽게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 오페라와 뮤지컬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지만, 정작 원작을 읽지 않았던 터였다. 6권짜리 2400쪽이 넘는 대작이었지만, 대가의 솜씨 덕분에 비교적 빠른 기간에 완독할 수 있었다. ‘레미제라블’ 첫머리에 위고는 쓴다.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런 종류의 책도 쓸모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위고 이전에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1812~1870)는 19세기 영국에 만연한 무지와 빈곤에 대한 소설을 출간했다. ‘올리버 트위스트’(1838), ‘크리스마스 캐럴’ (1843), ‘데이비드 코퍼필드’(1850), ‘어려운 시절’(1854)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디킨스의 소설 작품들은 위고의 ‘레미제라블’만큼 울림이 크고 깊지 않다. 필시 그것은 디뉴의 미리엘 주교와 죽음을 눈앞에 둔 86세의 노정객 국민의회 의원 G 사이에 펼쳐지는 프랑스 대혁명 관련 논쟁 때문일 것이다. 왕당파이자 보수주의자 미리엘 주교와 진보적인 공화주의자 국민의회 의원 사이의 기나긴 논쟁은 소설의 백미(白眉) 가운데 하나다. 국민의회 의원은 말한다. “루이 16세 처형은 여성에게는 매춘의 종말, 남성에게는 노예의 종말, 어린이에게는 어둠의 종말이오. 공화제(共和制)에 찬성함으로써 나는 그 일에 찬성한 것이오.” 그의 선택은 왕과 그 아내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무지와 빈곤에 신음하며 매춘과 노예 노동, 출구 없는 암흑에 빠진 가난한 다수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얘기다. 파괴적인 분노에 반대한다는 미리엘 주교를 반박하면서 의원은 말을 잇는다. “정의에는 분노가 있는 법이오. 올바른 분노는 진보의 요소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예수 탄생 이래 인류의 가장 힘찬 일보였소. 대혁명은 비천한 인간들을 해방했소.” 여기서 우리는 위고의 정치적 입장이 궁금해진다. 그에게는 왕당파와 공화주의자 양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 같다. 어떤 영화나 오페라에도 이런 기막힌 서사는 나오지 않는다. 공연에 필수적인 상업적 고려 때문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소설에서 독자는 무지와 빈곤에 시달리는 여러 인물과 대면한다. 장발장, 팡틴, 코제트, 에포닌, 가브로슈 등등을 거명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자기 손으로 무지와 빈곤을 극복한 유일한 인물은 장발장이다. 무지와 빈곤의 최대 피해자 팡틴은 매춘하다가 병에 걸려 죽는다. 그래서 위고는 여자가 비참한 경우에 빠진 것을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애인에게 버림받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미혼모임이 밝혀지면서 쫓겨나고, 저임금으로 바느질하다가 머리털을 잘라 팔고, 끝내는 거리의 여자로 전락해 죽어갔던 비운의 여인 팡틴! 고교교육을 의무화한 한국 사회는 무지와 작별했다. 하지만 빈곤은 여전히 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2014년 2월의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사회 안전망과 경제적 양극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창밖 바람이 차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07

지속 가능한 포항시 2040 도시기본계획의 조건

지난주 금요일부터 포항시의회는 내년도 예산 심사에 돌입했고, 건설도시위원회는 첫 순서로 도시안전주택국 예산을 심사했다. 특히 이번 심사에는 포항시 도시계획과가 제출한 2040 도시기본계획 수립 용역비가 포함되어 있다. 본 의원은 도시안전주택국 정책 질의에서 ‘2040 도시기본계획 수립의 중요성’을 집중 다뤘다.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이 계획은 앞으로 포항시의 행정·재정·공간정책을 이끄는 도시의 헌법과도 같은 존재다. 사실 그동안 포항시의 도시기본계획은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대표적으로 △생활권 구조 분석의 부족 △인구·경제 전망의 과도한 낙관주의 △구체적 실천 전략의 부재 등이다. 특히 지난 계획에서는 인구 감소 추세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해 택지 과잉 조성, 녹지 훼손, 공동주택 공급 과잉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포항 시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2040 도시기본계획은 이런 문제점을 제대로 검토한 다음 계획 수립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산업 전환을 반영한 미래 도시상을 제시해야 한다. 포항은 오랜 기간 철강 산업 중심의 산업도시였지만 지금은 AI, 2차전지, 수소 등 신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 다변화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변화다. 산업이 바뀌면 도시공간의 기능, 주거와 교육, 교통체계, 청년 정주 환경까지 모두 달라져야 한다. 둘째, 남·북구 균형 발전을 실질적으로 실현할 도시계획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 포항은 남구에 산업단지와 공업시설이 집중되면서 환경 부담이 커지고, 반대로 북구는 주거와 상업 기능이 몰리며 지역 간 편차가 심화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출퇴근 시간 증가, 교통 혼잡, 주거·교육 서비스 격차 등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남·북구 생활 SOC 균형 배치, 원도심 활성화 전략 등을 포함해 도시 전체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 셋째, 2040 도시기본계획은 개발 중심을 넘어 지속 가능한 도시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동안 많은 도시는 “아파트를 지으면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개발 중심 논리를 앞세웠지만, 저출생·고령화·인구 유출이라는 구조적 변화를 고려하면 이러한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포항 역시 1인 가구가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도시 인프라, 아이를 키우며 일할 수 있는 보육·교육 환경, 어르신의 돌봄 공백이 없는 촘촘한 복지체계를 우선적으로 담아내야 한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도시 숲 확대, 안전도시를 위한 환경·재난 계획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2040 도시기본계획은 행정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계획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산업 전환, 균형 발전, 지속 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방향을 중심으로 2040 도시기본계획이 설계된다면 포항은 단순히 ‘성장하는 도시’를 넘어 시민이 살기 좋은 도시, 다음 세대가 꿈꿀 수 있는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2040 도시기본계획이 지속 가능한 포항시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해본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5-12-07

혐오하기의 즐거움을 넘어서려면

며칠 전 12·3 계엄 1주년이 지났다. 12·3 계엄 선포는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혐오가 극단적으로 표현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포고령 1호의 1번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런 혐오하기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제인 엘리엇은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해된 다음 날 자신이 담임을 맡았던 3학년 학생 20여 명을 대상으로 이틀간 ‘푸른 눈, 갈색 눈’ 실험을 시도했다. 교사 엘리엇은 평소 서로 잘 지내던 아이들을 푸른 눈, 갈색 눈 두 집단으로 나눠서 첫날은 푸른 눈이 열등하다고 차별하고, 둘째 날은 갈색 눈이 열등하다고 차별했다. 처음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했으나 우월하다고 지목된 집단의 아이들은 하루 만에 바로 열등하다고 지목된 집단의 아이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며 공격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혐오는 단순히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혐오 다음에는 반드시 폭력이라는 행동이 뒤따른다. 작년에는 당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에서 기자간담회 도중 칼로 피습 당했고, 같은 해 7월에는 트럼프도 피습 당했다. 윌리엄 피터스의 ‘푸른 눈, 갈색 눈’을 번역한 김희경은 책 말미에 해설과 후기를 아주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섬뜩했던 것은 엘리엇이 이 실험 결과를 책으로 낸 후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는 뒷이야기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이 몇십 년이 지난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격 행동을 유발하는 혐오가 여전한 것을 보면, 어쩌면 혐오하기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실제로 영국의 수필가 윌리엄 해즐릿 (1778-1830)은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산문에서 ‘인간은 순수한 선에 금방 싫증을 내고 변화와 활기를 원한다’면서 ‘혐오할 게 없으면 생각과 행동의 원천마저 잃어버릴 것 같다. 삐걱거리는 이해관계, 제멋대로인 열정으로 계속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면 삶은 고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썼다. 해즐릿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우정과 사랑의 가치를 믿었다가 배신당한 후 냉소적으로 쓴 것이기는 하지만, 그가 제시한 자료들을 보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이 있다는 것은 그다지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사이코패스도 좋은 교육을 받으면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인간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올해 92세를 맞이한 교사 엘리엇이 여전히 강의 활동을 하는 이유다. 한편, 혐오하기의 즐거움이 가슴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한, 남의 신발을 신어보라는 ‘푸른 눈, 갈색 눈’ 교육만으로는 혐오를 다 해결하기 어렵다. 행복한 사람은 혐오에 휘둘릴 가능성이 적다. 혐오를 즐기지 않기 위해서는 우정과 사랑의 가치를 믿는 행복한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2-07

AI 데이터센터, 축복인가 숙제인가

전 세계적으로 AI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데이터센터 유치가 각 지자체의 새로운 산업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포항 역시 이 흐름에 올라탔다. 오픈AI와 NeoAI Cloud가 추진하는 글로벌 AI 데이터센터가 조만간 착공될 예정이고 2027년 1월 본격 운영할 목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내년 포항시장 자리를 노리는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들도 이에 관한 포항의 미래를 그리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사업이 잇따라 중단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6일 최근 약 3개월간 미국 내 약 242억달러(약 35조7000억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개발사업이 주민 반발로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소규모 일자리 외에는 전기요금 상승, 소음, 환경오염 우려와 같은 ‘외부 불경제 시설'이라는 것이 핵심 이유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혐오시설’로 분류되기도 했다. 전력 문제가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다.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전력을 24시간 사용한다. 미국 버지니아주는 데이터센터 밀집 이후 전기료가 전년 대비 13% 상승했다. AI 데이터센터 비상발전기용 디젤 연료가 배출하는 PM2.5와 NOx가 건강 위험 요인이어서 주민 반대여론에 불을 붙였다. 미국 UC리버사이드는 2028년 데이터센터발 환경비용이 연간 2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사례는 포항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광명산단은 국가 간선망 수준인 345kV 변전소를 기반으로 별도 이중화 없이도 전력공급 안정성이 확보돼 유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산업전환과 지역 수용성 측면에서는 과제가 적지 않다. 포항의 데이터센터가 ‘기회’가 될지, 미국처럼 ‘갈등의 불씨’가 될지는 여러 측면에서 어떠한 해법을 제시할 지에 달려 있다. 데이터센터는 지역사회와 밀접한 시설인 만큼 발열·소음·전력소비 등 운영데이터의 투명한 공개와 감시·평가 구조에 시민 참여가 필요하다. 또 미국의 사례처럼 지역과 무관한 데이터 처리·저장시설에 그치면 지역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는 거의 없다. 포항이 지닌 철강, 배터리, 바이오, 가속기 등 방대한 기술데이터가 AI와 연계되는 전략이 뒤따라야만 한다. 데이터센터의 고용유발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 반면 AI 연구·운영·서비스 생태계가 함께 구축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포스텍·한동대·RIST·KIRO 등 기존 R&D 인프라와 융합된다면 포항은 AI 전문도시로 성장할 수도 있다. 포항은 지금 변곡점에 있다. 데이터센터는 미래 산업의 심장이지만 심장은 혈관과 조직, 생태계가 연결돼야만 제 역할을 한다. AI 데이터센터 유치로 포항의 미래를 바꾸려면 처음부터 그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포항은 데이터센터를 ‘보유만 한 도시’에 그칠지, 이를 계기로 ‘AI 산업을 주도하는 도시’가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12-06

로비가 본업(?)

대규모 정보유출 사고를 낸 쿠팡의 로비가 언론을 통해 구설수에 올랐다. 최근 언론을 통해 밝혀진 쿠팡의 정관계 로비는 국내 굴지 대기업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정관계 인사 영입에서 입증된 결과다.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쿠팡은 2020년부터 올 9월까지 4급 이상 고급 공무원 44명을 영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만 18명을 채용했는데 그중 절반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라 한다. 특히 연초 정권교체가 예상되면서 더불어민주당 보좌관을 대거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고, 또 최근에는 고용노동부에서만 8명을 데려왔다고 한다. 이들은 억대 연봉과 임원급 대우를 받으면서 정관계를 대상으로 쿠팡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한 방송에서 “쿠팡은 보안 내실보다 정관계 로비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같은 사실은 쿠팡의 정보보호 투자액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쿠팡의 정보보호 투자액은 매출 대비 0.2%(660억원)로 카카오나 SK텔레콤 등 다른 IT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업은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불합리한 규제나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과정에서 로비의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다. 미국 등 일부 나라에선 로비를 합법화해 신고 및 관리한다. 대신 기업은 로비 활동 내역을 분기별로 공개해야 한다. 국가든 기업이든 일에는 원칙이 우선이다. 기본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이 오게 마련이다. 사자성어 정본청원(正本淸源)은 “기본에 충실하자”는 뜻이다. 이커머스 회사의 기본은 정보보안이다. 로비는 그 이후 문제다. 쿠팡 사태는 기본을 망각한 데서 나온 경영의 실패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04

초코파이 한 개와 기소편의주의

작년 1월 전북 완주군의 한 물류회사에 보안업체 직원이 순찰을 하다가 사무실 냉장고를 열어 초코파이 한 개와 커스터드 한 개를 꺼내어 먹었다. 대기실 같은 곳에 놓여 있는 손님용 다과가 아닌 사무실 내 냉장고에 들어있던 과자였으니까 이것은 회사의 직원들이 먹기 위해 사둔 간식이지 외부인인 보안업체 직원이 먹는 것은 허락되지 않은 것일 수 있었다. 필자의 변호사 사무실에도 캡스 직원이 출동할 일이 있다. 그럴 때 점검을 끝낸 캡스 직원이 사무실 입구 대기의자에 놓인 사탕을 몇 개 집어먹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탕비실에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안에 보관해 둔 박카스나 귤을 꺼내어 먹는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보안업체 측에 문제 제기를 하거나 고소를 생각할 여지도 있다. 이번 초코파이 사건도 그렇게 바라보면 절도죄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불법영득의사와 절취의 고의가 있어야 한다. 불법영득의사란 권리자를 지속적·계속적으로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자기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처분할 의사를 말한다. 포장이 바뀐 초코파이의 사진을 잠깐 찍기 위해 꺼냈다가 넣어놓으면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금방 다시 사 와서 넣어둘 생각으로 초코파이를 꺼내어 먹고 실제로 금방 같은 초코파이를 사 와 냉장고에 넣어두었더라도 이것은 불법영득의사가 있는 것이고, 절도죄는 기수이다.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다는 점에 대한 고의도 있어야 한다. 회사 측의 명시적인 허락이 있었든 아니면 그동안의 관행에 비추어 묵시적 허락이 있었던 것이든 순찰을 오는 보안업체 직원들도 냉장고 속 과자를 먹는 것이 허락되었다면 절취의 고의는 없는 것이 되겠지만, 반대로 회사의 허락의 의사가 명확하지 않았다면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물류회사는 초코파이를 꺼내 먹은 보안업체 직원을 고소했고, 검찰은 고의와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해 절도죄로 기소했다. 1심 법원도 절도죄를 인정하며 벌금 5만원형을 선고했지만, 이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며 2심 법원은 불법영득의사는 인정되나 절도의 고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단 한 번, 1050원치의 과자 두 개를 꺼내 먹은 이 사건은 이렇게 오랜 수사와 기소와 재판과 기자들의 취재와 사회적 논란 등을 거쳐 마침내 무죄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 사건을 절도죄로 인정한 검찰의 판단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법리적으로 절도죄가 맞든 아니든 이런 사건에 이 정도의 공권력과 사회적 에너지를 쏟는 것이 맞는가? 기소독점주의만큼 강력한 검찰의 기소편의주의라는 것이 있다. 기소는 오로지 검사만이 할 수 있지만 검사는 재량으로 기소를 하지 않아도 된다. 법리적 논란도 있고 피해액도 극도로 경미한 이런 사건을 굳이 기소하지 말고 국민세금과 공권력 아끼라고 기소편의주의가 있는 것이다. 처벌받아 마땅한 사건들도 이유 없이 경찰의 불송치결정, 검찰의 불기소결정이 나곤 해 답답한 요즘, 초코파이 한 개, 커스다드 한 개 사건을 보며 당신들 기소의 기준이라는게 도대체 무엇인지 경찰과 검찰에게 묻고 싶어진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5-12-04

계엄 이후의 민주주의

어두운 시절의 철 지난 유품처럼 여겨졌던 계엄을 목도한 지도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문학으로 비유하자면 삼류 소설이자 흔한 졸작조차 되지 못할 어설픈 국가 폭력의 시도를 떠올리면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내란 종식에는 한 치의 타협도 있을 수 없건만 별의별 사족들이 왜 그렇게 달리는지 모르겠다.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아닌가. 계엄을 선포한 자나 이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의 위증을 지켜봐야 하는 일도 고되다. 조속히 응분의 대가를 받길 바랄 뿐이다. 요즘 들어 출근길 지하철 역사의 안내방송이 눈에 밟힌다. “특정 장애인 단체의 불법 시위로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식의 내용이다.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 농성의 의미를 축약할 수 있을까. 법대로 소수자들의 권리가 쟁취되는 꼴을 여태껏 보고 들은 경험이 없다. 직장이나 학교에 조금 늦는 일도 각자의 일상에서 작지 않은 손실일 수 있겠지만, 남은 생애를 바쳐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에도 귀를 좀 열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쿠팡 새벽 배송에 관한 논란들은 어떤가. 야간 근무에 시달리다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을 뒤로하고, 나름 배웠다는 정치인도 그들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한다. 노동권의 자발적 행사였으면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건가. 그런 논리면 자살 방지 대책 같은 것들도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이다.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하는 자들을 정부나 지자체에서 왜 챙기려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건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계엄 이후의 민주주의는 불법이라 호명되는 소수자들의 행진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수호되는 노동자의 죽음에 천착하는 태도로부터 비롯되지 않을까 한다. 민주주의란 본래 소란을 의미한다. 질서의 반의어라는 말이다. 계엄 이전에도 윤석열 정권은 ‘입틀막’으로 버티고 있었다. 독재는 고요한 법이다. 권력에 반하는 무수한 말들을 억누르는 힘의 강제야말로 전횡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주의란 사회에서 자신의 몫이 없다고 간주되던 자들이 여기저기서 자기의 권리를 주창하고 나서는 사태를 의미한다. 숨죽이며 지내던 이들의 목소리로 세상이 분란할 때야말로 민주주의를 실감할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어떤 이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퀴어 축제나 장애인 시위, 노동자 파업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자신들의 주장을 왜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며 해야 하느냐는 성토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란 거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불편 따위가 무슨 큰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바쳐 행해야만 하는 과제가,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남의 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용인하면 되겠나. 사회란 그렇게 굴러가서는 파멸할 뿐이다. 따라서 계엄 이후의 민주주의는 어쩌면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는 일로부터 쟁취될 수 있는 것 아닐까. 학창 시절에는 지겹게 듣던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표어가 여전히 유효한지 모르겠다. 분명 우리의 곁에는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비)존재들이 있다. 이들의 삶과 죽음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을 때, 계엄을 해제하며 소망하던 그런 민주주의가 비로소 당도하지 않겠는가 싶다. /허민 문학연구자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2-04

덜 떨어진 금성인

‘깻잎논쟁’이란 말이 있다. 남의 부인이 깻잎을 먹는데 잘 안 떨어지는 것을 본 남자가 깻잎을 떼주다가 자기 부인에게 된통 혼이 났다는 이야기다. 이게 방송을 타자마자 패널들 사이에서 논란거리가 된다. 별것 아닌 이야기가 이렇게 논쟁이 된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깻잎이 안 떨어져 곤란을 겪고 있으면 좀 도와주는 것이 뭐 어떤가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많이 당황하게 된다. 사실 주위에 물어보니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이 벌어졌고, 남자들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 채 당한 적이 많다는 것이다. 생선 가시를 발라주다가도 낭패 보고 술자리에서 한 잔 따라주다가도 잔소리 들은 적이 많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부부가 함께하는 모임을 자제하게 된다. 내 물건에 누가 손대는 것을 싫어하는 소유욕 혹은 독점욕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물어보았지만,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나름 고상한 체면 때문인지 대답을 잘하지를 않는다. 단지 그러한 행동을 좋아하는 여자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에둘러서 말한다. 그냥 애착과 소유욕으로 인해 그런 친절한 서비스는 나만 받을 자격이 있고 나 이외에 그 어떤 여자가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을 보는 순간 눈에 불이 튄다는 말은 애써 자제한다. 요즘 유행하는 ‘천박한’ 언어이기에 사용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대놓고 “내가 뭘 잘못했느냐?”라고 물었다간 일이 커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에 그냥 늘 하던 식으로 내가 또 뭘 잘못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는다. 남자 인생이 뭐 별거가 있나. 이런 것을 서로 말이 안 통할 수밖에 없는 화성인 금성인으로 구분한다든지, 혈액형으로 성격을 분류해서 왜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MBTI에 가져다 붙여,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성격상 차이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 같아 보인다. 그래서 한동안 논란에 휩싸인 라캉의 한 책에서 그 정답을 찾곤 했다.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언어 체계로 수렴되지 않고, 부부가 ‘서로 통하는 사랑’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으나, 실제로는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논리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이다. 아마 이런 상황이 한국 남자만 겪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모임에서 여행을 갔다가 여자분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별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 정도의 부탁은 당연히 들어줄 수 있다는 나의 이성적 판단으로 몇 가지 포즈를 더 요청하면서까지 성의를 베풀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벌어졌다. 집사람이 말을 안 한다. 분명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한 것이 분명하다. 깻잎을 떼어준 적도 없고 생선 살을 발라준 적도 없기에 집에 올 때까지 안절부절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서 남은 여행 일정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없다. 사진 찍어준 것도 죄가 되나? 나이가 들어도 이런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한참이나 이어질 것 같고 이해할 수 없는 여자의 마음 때문에 누구라도 붙잡고 이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하고 싶다. “AI, 너는 아느냐? 저 여자가 왜 저렇게 삐졌는지를?” /노병철 수필가

2025-12-04

고객정보 유출, 책임은 어디에?

쿠팡이 사고를 쳤다. 소비자 고객들의 소중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 계좌내역, 심지어 자택입구 비밀번호까지 시중에 떠돌게 되었다. 정보유출이 퇴직자의 소행이었다지만, 책임의 소재를 단순히 개인에게만 떠넘길 수는 없다. 회사는 고객정보를 관리하고 보호할 책임을 지닌 주체로서, 이 같은 사고로 초래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이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쿠팡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규제환경을 인지하고 있었을 터이다. 상응하는 소비자 보호체계를 갖추어 높은 수준의 정보보호시스템을 보유했어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한 행정실책이 아니라 기업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건으로 여겨져야 한다. 막대한 금액의 피해 보상은 물론 주주와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고경영진이 직접 사태수습에 나서야 한다. 회사의 신뢰가 흔들리면 주가급락과 투자자 손실이라는 직접적 피해가 뒤따르기 때문에, 미국 기업이라면 기업의 사활을 걸고 대응했을 사건임에 틀림없다. 쿠팡의 대응은 전반적으로 미흡하다. 한국 사업장에서만 활동하는 기업이라는 이유로, 미국 본사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 정보가 유출되어 발생할 수 있는 사기, 금전적 피해, 심리적 불안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기업이 법적, 도덕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단순한 관리소홀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문화와 경영철학의 문제다. 한국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업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하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존재하지만, 현실적 강제력과 피해보상 체계는 턱없이 부족하다. 데이터 유출 시에 금융적, 평판적 피해가 단기간에 직접적으로 가시화되어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므로 책임있는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쿠팡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등록기업으로서 한국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글로벌수준의 개인정보 관리와 책임 있는 대응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퇴직자의 실수’라 치부하며 면죄부를 줄 수 없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결국 소비자 대중이 짊어지게 된다. 제도적인 보완과 철저한 규제확보가 뒤따라야 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한국소비자들이 기업에게 정당하게 요구해야 할 책임과 투명성, 그리고 대응수준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쿠팡은 고객정보 유출로 발생한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기업의 신뢰와 사회적 책임은 법적 의무를 넘어, 공공의 신뢰형성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 기업이 소비자를 가벼이 여기는 풍토를 일소해야 하며, 정부가 국민을 대신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소비자 국민을 존중하고 개인정보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이끌어야 한다. 경제환경이 예전과 비교할 때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소비자 환경이 나아지지 않고는 선진국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국민이 신뢰하고 소비하는 기업이 되어야 하며, 소비자 국민은 늘 깨어있어 경계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2-03

왜 운동과 치료를 해도 괜찮다가 다시 나빠질까

통증이 생기면 사람들은 운동을 하거나 약을 먹고 병원·한의원 치료를 받아 일단은 편해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똑같은 통증이 올라오고 좋아졌다가 나빠졌다를 반복한다. 마치 몸 안에 보이지 않는 스위치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움직인다. 이것이 단순한 근육의 문제라면 반복될 이유가 없지만 몸의 더 깊은 층위에는 늘 같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한다. 그 힘의 정체가 바로 자율신경의 긴장 패턴과 무너진 체형 구조다. 스트레스, 과로, 수면 부족이 반복되면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몸은 싸우거나 도망가야 하는 모드에 들어간다. 이 상태에서는 어깨와 목, 뒷목, 허리 근막이 미세하게 수축한 채로 유지된다. 이 긴장은 겉으로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계속 근육과 근막을 조이고 커다란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겨놓은 것처럼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침 치료나 마사지, 스트레칭, 운동을 하면 일시적으로 개선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고무줄이 잠깐 느슨해졌다가도 이내 다시 원래의 팽팽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문제는 통증이 오래될수록 체형과 움직임도 함께 변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아프면 아픈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보상 자세를 만든다. 허리가 아프면 골반을 틀고 목이 아프면 턱을 당기고 어깨가 아프면 팔을 덜 쓰는 식이다. 이런 보상 패턴은 통증을 일시적으로 줄여주지만 결국 또 다른 부위에 부담을 주고 그 부담이 다시 통증을 만들며 악순환을 완성한다. 결과적으로 단순한 운동이나 한 부위만 푸는 치료로는 이 보상 구조를 되돌릴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몸이 이미 이렇게 긴장된 상태가 정상이라고 기억해버렸다는 것이다. 자율신경은 몸의 전체적인 톤을 조절하는 시스템인데 이 시스템이 긴장 상태로 세팅되어 있으면 잠깐 이완시켜도 다시 긴장 쪽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래서 운동을 잘해도 치료를 아무리 받아도 몸은 다시 원래의 불편한 패턴을 반복한다. 결국 재발의 핵심은 통증 자체가 아니라 통증을 만들어내는 배경 패턴이 유지되고 있어서이다. 이 패턴을 바꾸는 과정은 단순히 아픈 부위를 손보는 것과 다르다. 자율신경의 과흥분을 낮추고 근막의 전체적인 긴장도를 줄이며 잘못 굳어진 구조와 움직임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성상신경절이나 익구개신경절을 다루는 치료는 높아진 자율신경의 신경 흥분을 끌어내리고 몸의 톤을 이완 방향으로 다시 설정한다. 초음파 가이딩 약침은 긴장된 근육·근막을 정밀하게 풀어주며 매선은 약해진 구조를 장기적으로 안정시키고 다시 긴장으로 돌아가는 속도를 늦춘다. 한약은 늘 경계 상태에 머물러 있던 몸의 회복력을 끌어올려 부교감신경을 활성화 시켜 이 패턴 전환을 더 빠르게 만든다. 결국 잠깐 좋아지고 다시 나빠지는 몸은 아픈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몸 전체가 긴장을 기본값으로 저장한 채 그 방향으로 되돌아가려는 성질 때문이다. 자율신경, 근막, 구조, 호흡, 움직임이 함께 조율될 때만 비로소 몸은 새로운 패턴을 학습한다. 치료 효과가 길게 유지되고 재발이 줄어드는 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2-03

'쌍벽가' 감상하기

내방가사가 2022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아태목록에 등재되자 대구와 경북의 관심 있는 여성들은 내방가사 공부에 더 큰 열망을 가졌다. 물론 오래전부터 안동내방가사보존회에서 내방가사 공부방을 열어 안동과 주변 지역의 뜻있는 여성들 대상으로 지속적인 교육이 있긴 했다. 대구에서도 동호회나 연구모임 같은 자생단체가 있어 공부한다는 정보도 들어 알고 있었다. 나는 퇴직 후 여러 사회단체에서 특강 형식의 강의를 하긴 했으나 단발성이어서 아쉬움이 컸다. 강단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던 것을 사회적 교육으로 지속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긴 했으나 용렬한 탓에 뜻을 비쳐 내지도 못한 터였다. 그러던 차에 몇 달 전부터 대구에서 뜻을 같이하는 몇 분과 같이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비록 카페에서 만나서 한 달에 두어 번, 한두 시간 공부하는 거지만 나로서는 제대로 수업하고 싶다는 생각에 강의 준비를 나름 열심히 했다. 내방가사 이론을 제대로 알고 창작까지도 할 수 있는 수준을 목표로 잡았다. 강의계획서를 만들어 나누고, 내방가사의 역사를 짚고, 이론을 정리하여 수업 준비를 했다. 내방가사에 대한 이론을 단단히 잡은 후에야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훌륭한 작품 감상에 특히 공을 들였다. 내방가사 창작을 꾸준히 하는 분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론적 바탕만 있으면 좀 더 나은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변 소회 정도의 시적 소재와 내용을 4.4조의 운문 형식에 맞춘 듯한 작품이 많아 안타까움이 컸다. 공부하는 분들의 열정이 크고 넘쳐 나기에 강의 준비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무엇보다 국문학 사상 손꼽히는 훌륭한 가사를 먼저 읽어 이해하고, 문체와 구성을 익히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했다. 정극인의 ‘상춘곡’, 송순의 ‘면앙정가’, 송강 정철의 ‘속미인곡’과 같은 명작 가사를 세심하게 읽고 문체와 표현과 구조 분석을 하면서 내용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나로서도 새삼 다시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기에 나름 귀한 시간이었다. 며칠 후 잡힌 시간에는 ‘쌍벽가’를 감상해 볼까 준비하고 있다. 현전 대부분의 내방가사가 작자와 연대가 미상인 데 비하여, 이 작품은 작자와 연대가 잘 알려진 작품이며 연대가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강의 주해만 있을 뿐 제대로 된 해석본은 없어 감상하기 어려웠다. 한자어 많음에도 한글로 쓰여진 것도 원인이었다. ‘쌍벽가’는 1794년(정조 18) 안동 하회의 연안이씨(延安李氏)가 지은 내방가사인데,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었던지 경북 여러 집안에서 발견된 이본도 상당히 많다. 작자는 예조판서의 딸로 한양에서 하회로 시집와 신고를 겪은 뒤 58세 되던 해, 맏아들과 조카가 한 해에 과거에 급제하는 경사를 맞는다. 당시 임금 정조가 제문을 지어 내리자 이를 경축하는 내용의 가사이다. 제목에 쓰인 ‘쌍벽’은 과거 급제한 두 형제의 준수하고 출중함이 서로 백중함을 칭찬한 것이다. 구성의 일관성, 뛰어난 표현과 유려한 문장이 초기 내방가사임에도 수작으로 꼽힌다. ‘쌍벽가’를 필두로 다양하고 훌륭한 내방가사를 감상해 볼 계획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2-03

입추(立秋), 그 너머-오도 바다* 고운 모래알과 몽돌

입추(立秋), 그 너머 -오도 바다* 고운 모래알과 몽돌 생각해 보니 실패가 성공이었다 그러나 과정은 무너지지 않는다 겨울이 와도 어떨까, 과연 우리에게 어떤 빙하기가 있었는가 물기가 없으면 얼지 않는다 하여 암각화가 될 수도 있고 물욕이 없으면 망할 일도 없을 것 업적이 초라해도 그것으로의 역사가 되고 벼락박 똥칠도 무늬가 된다며, 깨달음은 없다고(悟道) 가르치는 오도 가을 바다, 마른 눈길 늘 울음을 참는, 그래서 나의 가을 풍향계처럼 그 바다를 탐지하며 결국엔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만 하소연 없는 태연하고 불량한 바다 그래서 행복하고 불행했지만 그래, 밑천 뻔한 한 끗 차이, 마치 마을에 가닿지 못하는 저 파도 소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의 작은 바다 마을 …. 시간에는 절대 상처가 나지 않는다. 방치와 외면으로 흘러 지나가는 무서운 존재, 파괴가 없는 절대적인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무책임에 분연히 항거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 머물러 지금에 와서 상처를 입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무기가 되고 훈장이 되어야지 굴레는 아니다. 경험의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된다는 클리세는 그만두어야 한다. 상처는 새 살을 돋게 한다. 박테리아 혹은 세균도 사람을 돕는다. 거부에 집착하다 보면 외딴 섬이 된다. 진정한 섬은 고립이 아니다. 가능성의 신호, 혹은 미지의 공간에 대한 개활지이다. 존재가 작다고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2-03

대만 관광객 매혹한 돼지국밥

2025년 상반기 부산을 찾은 대만 관광객이 대략 24만90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부산을 여행한 외국인 5~6명 중 1명이 대만 사람이라는 이야기. 숫자로도 비율로도 가파른 상승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만 여행자들은 부산에 와서 뭘 먹었을까? 알다시피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싱싱한 해산물과 밀면, 돼지국밥 등을 꼽는다. 대만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도 돼지고기는 물론 돼지의 내장까지 요리해 즐겨 먹는다. 이는 한국인과 유사한 섭식 형태다. 이 사실을 증명하듯 대만 관광객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맛있다~”를 연발하는 음식은 부산 도처에서 판매되는 돼지국밥이라고. 유명세를 얻은 돼지국밥 식당 앞에서는 몰려든 대만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최근 대만 관광객 1만579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돼지국밥은 66.9%라는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부산을 찾는다면 꼭 먹어봐야 할 한국 음식’으로 대만인들 사이에서 자리 잡았다. 그 뒤를 어묵(37.4%), 씨앗호떡(22.4%), 장어구이(19.4%)가 이었다. 그렇다면 돼지국밥의 인기 요인은 뭘까. 대만과 달리 뽀얀 국물에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고, 여기에 양념을 더해 얼큰함까지 느낄 수 있는 매력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잡내가 나지 않기에 부모를 따라온 대만 아이들도 좋아한다고. 항공기를 이용한 여행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서 국가의 경계는 물론, 즐기는 음식의 경계 또한 무너지고 있다. 대만과 같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 사람들의 입맛을 매혹할 한국 요리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이는 관광산업 발전을 가져올 키워드가 될 수도 있으니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03

가득찬 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실내의 공기를 묘하게 흔들고 있다. 허윤희 화가의 개인전 ‘가득찬 빔’. ‘가득 차다’와 ‘비다’라는 두 의미가 한 문장 안에 놓인 제목이 막상 미술관에서 햇빛을 마주하니 더 깊게 와닿는다. 빛이 채워지는 순간 비워지고 비어 있는 자리에 다시 들어오는 반복을 보며, 화가가 펼쳐 보이는 작품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전시회에 오기 전, 화가의 책 <나뭇잎 일기>를 먼저 읽었다. 실존적 사유와 생태적 감각을 결합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의 시리즈 작품들 중 하나를 엮은 책이다. 그는 13년 동안 산책길에서 매일 나뭇잎을 채집해 실물 크기로 그리고 단상을 기록했다. 자연과 교감하며 예술과 생활을 분리하지 않고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며 수행자적 삶을 살았다. 작가의 시선은 사라지는 것에 머물렀다. 나뭇잎은 사계를 통해 빛을 품었다가색을 잃고, 낙엽으로 뒹굴다가 결국 땅으로 돌아간다. 나는 책장을 넘기며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소멸은어쩌면 슬픈 일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젠가는 소멸될 나뭇잎이 그림으로 그려져 영원히 남겨진 흔적을 보며, 내가 죽은 뒤에도 누군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기억해 준다면 죽어도 살아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오늘 전시회 문턱을 넘으니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목탄 벽화 드로잉의 크기에 놀라고, 멸종위기식물을 그린 그림 앞에서는 환경의 회복을 작가와 같은 마음으로 염원한다. 그 중에서 단연 최고는 현장에서 예약해 15분간 ‘관집’을 혼자 체험하는 것이다. 작가가 독일 유학 시절에집짓기 프로젝트를 하며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작품이라고 한다. “매일 새로운 날을 상상하며 관집을 짓는다. 그 안에서 나는 매일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난다.” 관집을 만들게 된 배경을 떠올리며 직원의 안내에 따라 관집에 들어간다. 지치고 힘이 들 때 고향을 생각하며 동쪽으로 누웠다는 작가를 따라 나도 관집 안에 눕는다. 죽은 이의 전유물인 관 속에, 산 자인 내가 들어가 있다니.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보다는 사랑하는 이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먼저 떠오른다. 죽기 전에 나와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리라. 내가 다짐하는 그 순간, 온몸 가득 죽음이 아닌 살아갈 이유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이 작은 관집은 죽음을 위한 방이 아니라 삶을 다시 살아내기 위한 장소 같다.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내 마음에 응어리져 있는 묵은 불안과 억울하게 남겨둔 말들, 정리되지 못한 관념이 바닥으로 찬찬히 내려앉는다. 관집에서 나오자전시실의 빛은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집안의 어둠에서 빠져나온 탓인지빛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전시실에서 ‘해돋이 그림’을 마주한다. 관집에서 발산되던 정적과는 반대로 생성 에너지가 내 몸을 스친다. 제주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해. 세상 모든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돋을볕을 반복해서 그린 작품을 보며 나는 포항 바다의 일출을 떠올린다. 늦가을 새벽, 집 근처 바닷가에 앉아 있으면 바람은 차갑고 어둠이 짙어 해가 뜨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한 순간 수평선이 붉게 열리기 시작한다. 아침노을은 늘 비슷하지만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허윤희 작가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해가 떠오르기 전의 깊은 어둠과 붉은 선이 그림마다 똑같지 않고 변주되어 있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시간대에 해돋이를 그린 화폭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숨결 같은 것이 스며있는 듯하다. 미술관을 나오는 길에 산책로에 잠시 머무른다. 단풍잎으로 풍성한 나무가 이제 곧 찬바람이 불어오면 앙상하게 비워질 것이다. 그러나 비워진 공간에서 겨울 풍경으로 채워질 나무를 떠올리니 그리 애석하지만은 않다. 나는 이제 ‘가득찬 빔’이라는 말이 제대로 이해가 된다. 비워진다는 것은 다시 채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정미영 수필가

2025-12-03

‘철의 도시’ 포항, ‘글로벌 AI 심장’으로 도약해야

“포항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국제적 AI 기업과 삼성그룹, NeoAI Cloud(옛 텐서웨이브코리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글로벌 AI 데이터센터’가 얼마 후 포항에 들어선다는 소식을 50만 시민과 함께 뜨겁게 환영한다. 이는 포항이 ‘철강보국’의 영광을 넘어, ‘AI 혁신 허브’로 웅비할 역사적인 전환점이다. 조만간 구체적인 최종 부지가 발표되고 연내 착공이 예정된 이 사업은 1단계 투입 예산만 약 2조 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프로젝트다. 이는 단순한 기업 유치를 넘어, 포항 경제의 향후 50년, 100년의 방향을 결정짓는 역사적인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특히, 포항이 가진 잠재력과 지속 가능한 성장 가능성을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대한민국 동남권의 심장, 포항을 왜 선택했을까. 답은 명확하다. 포항은 AI 데이터센터 건립과 운영에 필요한 ‘최적의 3박자’를 모두 갖춘 유일한 도시다. 첫째,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와 인재다. 포스텍과 한동대를 비롯한 우수한 이공계 인재 풀, 방사광가속기와 로봇융합연구원 등 세계적 수준의 첨단 R&D 기반은 타 도시가 흉내 낼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며, AI 연구개발의 산실 역할을 할 것이다. 둘째,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막대한 전력을 24시간 끊임없이 필요로 한다. 울진 원전과 연계된 동해안의 풍부하고 안정적인 전력망은 데이터센터 운영의 필수 요건인 최고 수준의 안정성과 전력 이중화를 제공해 포항만의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셋째, 살아있는 산업 데이터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포항 제철 산업의 방대한 데이터는 AI와 결합해 기존 제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스마트 혁신을 이끌 것이다. 여기에다 배터리, 수소, 바이오 등 포항이 주도하는 미래 신산업 현장에서 쏟아지는 고급 데이터는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연구개발에 핵심 연료가 돼 신소재와 신약 개발 등 고부가가치 신성장 동력을 창출할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센터 유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포항시는 정부 및 삼성, 글로벌 AI 기업 등 파트너사들과 긴밀히 협력해 인허가 절차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패스트트랙 전담 T/F팀’을 즉각 가동해야 한다. 행정은 기업의 속도에 맞춰 가장 빠르고 안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포항은 이제 ‘철의 도시’라는 영광스러운 유산을 딛고, 데이터와 AI가 흐르는 ‘디지털 혁신 도시’로 도약해야 한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는 그 구심점이 돼 지역 기업들이 클라우드와 AI 연산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손쉽게 확보하고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는 기회의 창이 될 것이다. 산업·경제·사회를 아우르는 전주기 AI 혁신 생태계와 국가 혁신을 선도하는 ‘AI 고속도로 모델’을 구축하는 것은 이제 우리 포항이 가야 할 길이 됐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포항의 위대한 도약을 위해 나 또한 힘을 보탤 것이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2-02

폭풍 속으로 들어간 ‘국민의힘 내분’

국민의힘 내분 양상이 파국으로 가는 분위기다. 조만간 당 지도부가 중심이 된 주류세력과 비주류 세력(소장파의원, 친한동훈계) 간에 전면전이 벌어질 태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초·재선 의원 30여 명은 지난주 ‘장동혁 지도부’가 응답하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김재섭 의원은 “지도부에서 사과와 성찰의 메시지가 있으면 좋겠고, 그게 안 된다면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김용태 의원도 “사과할 것은 사과하는 것이 정치 도리다. 당 지도부는 보수 재건의 중차대한 순간에 억지 논리로 도망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직격했다. 두 의원은 당 지도부가 ‘계엄 사과’에 미온적일 경우, 초재선 의원들이 별도의 사과 성명을 발표하거나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 등 광역단체장들도 계엄 사과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제기했다. 당 지도부는 여전히 냉랭한 반응이다. 섣불리 사과했다가는 오히려 민주당의 ‘내란 정당’ 역공세에 말려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장동혁 대표는 최근에도 “우리가 고개를 숙이면 고개를 부러뜨리고 허리를 숙이면 허리를 부러뜨릴 것”이라고 했다. 당 내분은 계파 갈등의 뇌관으로 꼽히는 ‘당원 게시판’ 조사로 심화되고 있다. 이 논란은 국민의힘 당원게시판에서 작성자 검색 기능을 통해 한동훈 전 대표와 그의 가족 이름을 넣고 검색했더니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비난하는 글들이 다수 있었다는 의혹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는 지난달 28일, 이 논란에 대해 조사절차에 들어간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감사위 이호선 위원장은 장 대표가 지난 9월 임명한 인물이다. ‘계엄 사과’를 요구하는 정치인 중에는 친한(한동훈)계가 다수 포함돼 있어, 당 주류 측이 이에 대한 대응으로 게시판 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말도 나온다. 당무감사위가 김종혁 전 최고위원을 조사해야겠다고 통보한 게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감사위는 김 전 최고위원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신천지 등 특정 종교를 사이비로 규정해 차별적 표현을 했다는 점 등을 문제 삼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 내분은 지방선거 경선 룰(규칙)을 ‘당원 50%, 국민 50%’에서 ‘당원 70%, 국민 30%’로 바꾸는 과정에서도 증폭되고 있다. 당 주류측은 지방선거 후보 경선 때 당원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고, 비주류측은 ‘당심’을 우선한 경선 규칙으로 후보를 뽑으면 본선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입장이다. 현재 국민의힘 비주류 측에서는 당 지도부의 현 기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외연확장은 어렵다는 비판적 기류가 강하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20%대에 머물자 한 보수원로는 “국민의힘은 이대로는 계속 갈 수 없다. ‘제정신파’와 ‘제정신 아닌 파’로 나뉘어야 살길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데 엉켜 있으면 공멸뿐이라는 주장이다. 독주하는 여권을 견제해야 할 야당이 이처럼 자중지란을 거듭하고 있으니 국가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2-02

물가와 대통령 지지율

11월 27일은 미국의 가장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이다. 미국인 사이에서는 추수감사절을 크리스마스보다 더 큰 명절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오랜만에 부모님 계시는 곳을 찾아 전통의 요리인 칠면조 구이를 먹으며 가족 간 유대를 강화하는 날이다. 미국의 경제 싱크탱크인 한 단체는 올해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 비용을 조사 발표하면서 작년보다 약 10% 올랐다고 했다. 세부 품목별로 양파 56%, 스파이럴 햄은 49% 폭등했고, 크랜베리 소스와 크림 콘은 22%와 21% 각각 올랐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7%가 추수감사절 물가에 대해 “스트레스 받는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가족모임 규모를 줄이겠다는 대답도 25%나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율의 관세정책을 펴면서 “관세는 외국기업이 낸다. 미국인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은 고율의 관세가 미국 물가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를 경제전문가들은 관세의 부메랑이라 부른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집권 2기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 여론조사기관은 미국 성인 13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긍정 평가를 내린 사람이 36%로 나타났다고 했다. 10월보다 5%포인트가 떨어졌고 트럼프 2기 들어 가장 낮은 수치다. 부정 평가는 60%로 6% 포인트가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 하락 원인으로 설문 응답자들은 경제와 높은 물가부담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물가는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지표다. 과거부터 어느 나라든 물가와 대통령 지지율은 역비례했다. 새겨둘 내용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02

건강지능과 일

사람의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전성은 삶의 행복을 결정짓는 기본 베이스다. 건강을 잃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건강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사람은 많은 연구와 다양한 것을 개발하며 인류의 생활문화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건강관리의 속성을 알고, 예방관리와 일과 생활 수준을 높이는 생각을 못한 것 같다. 건강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능력을 토대로 과학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내 건강과 조직 건강은 운영 능력에 달려있다. 자신의 신체, 정신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과 일에서 최적의 건강 상태를 유지, 조절, 관리하는 능력을 건강지능이라 한다. 단순히 건강을 아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건강을 판단하고 행동으로 실천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능적 역량이다. 핵심 4가지 구성요소는 첫째, 자기 인식이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정확히 분석하여 알고, 느끼고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다. 둘째, 판단이다. 올바른 인식이 되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셋째, 실행이다. 휴식, 식습관, 운동, 감정조절 등을 실제 실행하는 것이다. 넷째, 지속관리다. 단기 아닌 습관으로 이어지게 하고, 유지 개선하는 것이다. 건강지능은 건강을 아는 것, 판단하는 것, 실행하고 유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건강 지능은 먼저 신체적 조건을 갖춰야한다. 수면, 영양, 운동의 균형 유지, 피로, 통증, 이상 징후를 빠르게 감지하는 것, 과로를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 등이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 자각 및 해소 방법 보유, 감정 폭발이 아닌 감정조절, 속도 조절 가능한 정신 감정적 조건을 갖춰야 한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일상화 하고, 과음, 과식, 야근 등 유해 패턴을 경계하고, 필요 시 진단을 요청할 줄 아는 태도 등 행동적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건강지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는 능력이다. 건강지능과 일을 연계해서 보면, 건강지능이 낮을 때는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고, 과로로 결근이 증가한다. 감정 폭발로 갈등 발생이 생기며, 집중력이 저하되고 품질이 내려간다. 건강지능이 높을 때는 스트레스 조정이 가능하여 실수가 줄고, 체력관리가 가능하여 지속적 근무가 가능하다. 또한, 감정관리가 잘 되고, 인내력이 커지고 관계성이 높아져 협업이 잘 된다. 건강지능은 일의 지속성과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 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에서 건강지능이 높으면, 사고, 결근률이 감소하여 비용이 줄어든다. 팀 갈등이 줄고 의사 소통이 개선되며, 업무 지속력과 집중력이 향상된다. 개인 측면에서 보면, 삶과 일의 균형을 유지하게 되고, 컨디션과 체력을 갖춤으로써 성과 지속을 이룰 수 있다. 건강지능을 높이려면, 출근 후 골든타임을 파악하여 집중되는 시간을 정하고 핵심 업무를 배치한다. 몸의 리듬을 이용해 30분 집중, 5분 스트레칭하고, 90분 집중 3분 심호흡 하는 등 하루 시간 집중력을 유지시키는 것이 건강지능을 활용하여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2-02

정년퇴직에 즈음하여

벌써 한 해의 끝자락으로 접어드는 12월이다. 뒤늦은 가을이 오는가 싶었는데 금세 스산함이 일고 기온이 떨어져 곧장 겨울로 치닫는 듯했다. 잎새들은 화들짝 놀라 단풍조차 들지 못한 채 푸르댕댕하게 나무에서 그대로 시들거나 청엽(靑葉)으로 떨어져 거리 곳곳에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다. 조락(凋落)의 푸르스름한 빛깔로 대지에 내려앉는 낙엽이, 어쩌면 아직은 일할 기력이 남아돌고 일터에서 좀 더 역할을 할 수 있는데 벌써 정년(停年)을 맞이해야만 하는 여느 퇴직자의 뒷모습으로 비침은 왜일까? 하지만 어쩌랴, 만사분이정(萬事分已定)이거늘-. 모든 일에는 시와 때가 있듯이 분수와 시기가 정해져 있다. 때맞춰 오는 비가 만물을 생장시키듯이, 제 시간에 오는 기차를 타야만 인생항로의 여행을 즐길 수가 있을 것이다. 기차가 연착되거나 놓치게 되면 왠지 조바심이 타고 불안해지며 뒤에 이어질 여정(旅程)에 차질을 빚을 수가 있다. 이처럼 직장이나 사회 전반에는 촘촘한 ‘약속의 시간망’으로 세상이 굴러가며 계절의 변화와 순환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리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 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이형기 시 ‘낙화’ 중에서- 길고 오랜 시간 직장에 몸담았다가 역할과 임무를 다하고 정년의 문턱에 서게 되면 실로 만감이 교차하게 될 것이다. 설레던 신입사원의 패기에 찬 발걸음과 각오, 의욕에 찬 도전과 고난의 시행착오, 경험의 그루터기와 인내의 손길로 빚은 노력의 성취, 그리고 미련 없는 비우기와 내려놓음의 안도로 말년의 여유를 누리며 떠날 채비를 하는 파란만장한 여정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게 될 것이다. 더욱이 평생직장으로 여기며 밤낮없이 드나들며 숱한 애환과 희비가 어린 일터를 떠난다는 것은 고향이나 둥지를 뒤로하는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세월은 오고 가며 사람은 만났다가 헤어지며 떠나고 보내기 마련이다. 뒤돌아보면 모두가 꿈결같고 한순간 같은데, 어느새 머리칼엔 서리가 내려앉고 주름진 이마엔 시간의 더께 같은 흔적이 역력하니 새삼 세월의 갈퀴질을 실감할 수 있다. 아스라한 삶에 여울에 직장도 어찌보면 잠시 머물렀다가 지나가는 기항지(寄港地)에 지나지 않을텐데, 오랜 시간 집보다 더한 애착으로 기여하고 헌신하며 열과 성을 다한 곳이라면 쉽사리 잊혀지거나 그냥 스치듯이 발걸음이 좀체 떼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숨결이 배고 자취가 올올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연말이 가까워지니 정년퇴임을 기리고 축하하며 위로하는 크고 작은 행사나 환송연이 도처에서 열리고 있다. 이왕 떠나고 떠나보내야 하는 자리라면 좀더 인정스럽게 떠나고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직장에서 얼기설기 좌충우돌로 부대끼고 얽매이다 보면 본의 아니게 감정이 상하거나 회한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모든 것 잊고 추스르며 인정을 남겨두면 훗날에 다시 웃으면서 만날 수 있으리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12-02

제1차 세계대전과 세르비아-유고슬라비즘의 태동

한 발의 총성으로 시작된 1차 세계대전은 세르비아는 사면초가에 몰렸고, 국왕 알렉산다르는 외국에 망명정부를 세워야 했다. 오스트리아 지배에 들어 있던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와 세르비아 간, 본격적인 대결구도가 형성된 것도 1차 세계대전부터다. 한편 대세르비아주의가 한창 열 올리고 있을 때 발칸반도 북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서 남슬라브, 즉 유고슬라비즘이 대세였다. 이 두 지지세력 간에 결정적인 차이가 종교다. 발칸 북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로마 가톨릭과 세르비아 동방정교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었고, 더구나 보스니아에는 이슬람으로 개종이 늘어 어떻게 봉합해야 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한편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이 우선인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인들은 세르비아가 제1차 발칸전쟁에서 터키제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 슬라브민족의 대통합 기운이 절정에 달했다. 반대로 세르비아 젊은이들은 세르비아만이 유고슬라비즘 통일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굳힌다. 1913년, 1차 발칸전쟁에서 승리한 세르비아는 터키 손아귀에서 완전하게 벗어남을 뜻했지만,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로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로부터 해방이 지상 과제였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저격 후 1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열렸다. 발칸반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독일로서도 결코 수수방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후발주자였던 도이칠란트로서는 발칸에 깃발을 꽂아야 제국이 완성된다는 생각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를 침략하면 러시아가 그냥 있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때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의중을 물었고, 독일은 흔쾌히 오스트리아 편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에 대항해 가장 먼저 러시아가 움직였다. 슬라브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발칸을 노리던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도와 맞섰다. 오스트리아는 물론 독일의 발칸 지배는 영국과 프랑스로서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세계 대전으로 확전된 것이다. 오스트리아 식민지였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자의든 타의든 러시아의 적이 되어 싸워야 했다. 러시아 역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독립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의 멍에를 뒤집어썼다. 어차피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쓸 거라면 크로아티아에게 아드리아 함대를 통째로 주며 자치권을 넘긴다. 권력의 맛에 길들어진 크로아티아 민족정치인들은 “황송하옵니다!” 하며 자치권에 만족하면서 감복한다. 거시적 안목보다 권력과 대를 이은 부를 위해 미시적 선택을 한 사람들은 서로가 결속해야 한다는 진리를 잊지 않았다. 이들은 결속을 과시했다. 1917년 5월 말, 유고슬라비아 대표 33인(우연히도 우리나라 3‧1독립운동 대표 33인과 같은 수이다)이 모여 신속하고도 거창하게 변죽까지 울려가면서 ‘유고슬라브 코커스’라는 정치단체를 결성한다. 오스트리아제국에 충성하는 인간들이 모여 충성맹세 식을 시끌벅적하게 벌였다. 가장 이완용다운 인물을 앞세워 선언문을 낭독했다. “합스부르크 왕가 지도하에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그리고 세르비아인이 살아가는 터전에 자치적인 체제가 이루어질 때까지 노력한다.” 그러자 유고위원회는 물론 세르비아 정부조차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은 유고슬라브 코커스에게 대항하기 만나 ‘코르푸선언’에 합의했다. 핵심 내용인 즉, “유고슬라비아인의 왕국은 하나의 영토와 하나의 시민권만이 인정되며, 자유롭고도 이상이 넘치는 왕국이 될 것이로다.” 비장미 넘치는 선언이었지만, 언감생심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내용이란 사실은 누구나 알았다. 더 나아가 이들 세 단체가 모여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세르비아 카라조르지예 왕조를 정점으로 뭉치고, 모든 민족이 동등하게 취급당하며, 종교 역시 이슬람 포함 자유롭게 믿어도 된다. 국경은 북으로는 슬로베니아로부터 남쪽과 서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아드리아해를 포함한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인의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한다. (중략)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일부로 간주된다.” 가만있던 몬테네그로만 얻어터지고 만다. 그런데도 세르비아 국민은 만족하지 못했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 합법적 정부가 들어서면 대세르비아주는 물 건너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일로 파시치 총리가 일선에서 물러난다. 사실 국민 뒤에는 그를 견제하려는 왕 알렉산다르가 있었다. 알렉산다르는 막강 블랙핸드를 자신의 손으로 숙청했던 주도면밀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에서 군총사령관을 맡아 전쟁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그런 만큼 군부 역시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대세르비아주의가 본격적인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절대군주의 야심이 발톱을 드러내고 있었다. 발칸반도에 본격적인 폭력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세르비아편 끝)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12-02

국수 한 가닥

국수가삶을 닮았다는말은 진부하지만 잔치국수를 앞에 두고 기다리는 순간만큼은 그 말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국수 한 그릇을 위해 문밖까지 이어진 긴 줄에 서 있었던 날,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다. 허기를 참는 고단함보다 오히려 그 기다림 자체가 하나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오래 끓여낸 멸치 국물처럼 사람 사이의 정 또한 금방 우러나는 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키는 시간이었다. 잔치국수는 언제나 누군가를 부른다. 화려한 식재료도 아니고 값비싼 음식도 아니지만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깊은 온도에서 비롯되는 듯했다. 웨이팅을 하며 줄 끝에서 바라본 국숫집 내부는 소란스러웠지만 그 소란은 피곤한 소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세한 온도였다. 그릇에 담긴 뜨거운 국물처럼 삶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소리였다. 잔치국수를 떠올리면 문득 힘겨웠던 시절이 떠오른다. 속이 뒤틀리던 날에도, 마음이 휘청이던 밤에도, 어쩐지 자극적이지 않은 그 한 그릇이 떠올랐다. 잔치국수는 늘 ‘부드럽게 삼킬 수 있는 위로’였다. 첨가물 없이 담백한 맛은 잠시나마 세상과 나의 거친 접촉을 완화해주는 한 줄의 여백 같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부턴가 잔치국수를 먹는다는 건 나를 다시 백색 소음으로 데려다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숫집에 들어서면 뷔페의 화려한 음식들 사이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잔치국수가 떠오른다. 늘 한쪽 구석에 조용히 놓여 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사람들이 국자를 들이대는 음식, 겉으로 화려하지 않고 향도 세지 않지만 누구나 찾게 되는 음식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도 오래 함께 할 사람은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과한 향기로 주위를 끌지도 않고 번쩍이는 장식으로 눈을 홀리지도 않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고 조용히 떠올려지는 존재같은 사람 말이다. 예전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이고 싶었다. 인생이 원색으로 칠해져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갈수록 나는 잔치국수처럼 서서히 우러나고 은근하게 스며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함께 할수록 깊이가 드러나는 사람, 한 번 가까이 하면 오래 남는 향처럼 누군가의 삶에 은은하게 배어드는 사람, 그리고 마침내 뷔페의 끝에서 국수를 퍼 담는 사람들의 손길처럼 문득 떠올리면 자연스레 마음이 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얼마 전 외국에 나가 있던 친구가 몇 년 만에 귀국했다.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묻자, 그는 잔치국수를 말했다. 멀리서 지내며 한국이 그리워질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른 음식이 잔치국수였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좀 시시하게 들렸지만 그리운 맛은 가장 소박한 곳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화려한 순간에만 떠오르는 존재가 아니라 삶이 고단해질 때 생각나는 그런 존재. 머나먼 곳에 있다가 돌아온 누군가가 가장 떠올리는 이름이 나의 이름이 될 수 있을까. 정결한 멸치 국물처럼 과하지 않고 깨끗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잔치국수처럼 담백한 위로가 되고 싶다. 인생의 맛이 깊어질수록 나는 더 이상 빠른 향을 지닌 요리를 닮고 싶지 않다. 대신 오래 우려내야만 드러내는 깊이, 누군가의 한 끼를 위해 묵묵히 시간을 들이는 그 과정, 남에게 과하지 않게 흘러 들어가는 잔치국수의 성품을 닮고 싶다. 사람의 마음도 결국 국물처럼 저마다의 시간이 필요하고 관계의 향도 결국 천천히 배어드는 법이니까. 오늘도 나는 잔치국수 한 그릇 앞에서 생각한다. 삶이 우리를 어디로 밀어내든 지치고 흔들리는 순간마다 떠오르는 누군가가 나이기를. 화려함보다는 오래됨으로, 강렬함보다는 은근함으로, 번쩍임보다는 따뜻함으로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랜만의 귀국 날 다시 먹고 싶어지는 잔치국수처럼 보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한 그릇의 국수가 단지 배를 채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면서 과한 말과 행동이 때때로 스스로를 소모시킨다는 사실을 배울수록 잔치국수의 단정함이 새삼 귀하게 느껴진다. 굳이 떠들지 않아도 곁에 두고 싶은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내 삶도 국수의 한 가닥의 길이만큼 길게, 온기만큼 넓게 은근히 퍼져가길 바란다. /김경아 작가

2025-12-02

쿠팡, 과징금 1조원 부과 받을까?

상품의 주문·결제와 은행 입금, 서류와 문서의 전달 등 상당수 공적·사적 업무가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시대다. 무엇보다 개인 정보의 보호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건 재론의 여지가 없다. 개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휴대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 등을 수집한 업체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 이를 안전하게 관리돼야 마땅하다. 유출된 개인 정보는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까지 있으니 더욱 그렇다. 국내 1위 이커머스 업체인 쿠팡은 지난 11월 29일 고객 계정 3370만여 개가 무단으로 노출됐다고 알렸다. 해당 정보엔 이름,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배송지 주소록, 주문 정보 등이 포함됐다고 한다. 철저하게 관리돼야 할 개개인의 중요 정보 다수가 한꺼번에 흘러 나가버린 것이다. 이번 ‘쿠팡 사태’로 유출된 개인 정보의 양은 역대 최고다. 2023년 개정된 개인정보 보호법은 이를 위반할 시 전체 매출액의 3%까지를 과징금으로 매길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의해 고객 2324만 명의 개인 정보를 유출한 SK텔레콤은 134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이번에 쿠팡에서 유출된 개인 정보의 양은 SK텔레콤의 사례보다 1000만여 건이 더 많다. 쿠팡의 지난해 연결 매출액은 38조2988억 원. 과징금의 산정은 이 매출액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 없는 사업 매출을 제외한 금액이 기준이 된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 쿠팡이 이번 유출 사건으로 1조원에 육박하는 과징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과징금보다 더 큰 문제는 유출된 정보의 악용이다. 보다 탄탄하게 강화된 개인 정보 보호정책이 절실해 보인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01

단재 선생의 ‘꿈의 하늘’

다시 나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꿈하늘’로 돌아온다. 제목이 참 멋스럽다. ‘꿈의 하늘’이라. 그는 꿈속을 사는 사람, 꿈을 꾼 이야기를 꿈 깨고 나서 말하는 사람 아니요, 꿈 그 자체를 살고 바로 그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꿈하늘’ 속을 헤매이다, 오래전에 여러 ‘단재론’이 겹쳐들 있는 곳에서 인상 깊게 읽고 잊지 못하던 문장을 찾는다. 독립기념관 데이터베이스에서 어렵사리 찾아진다. 아하, 이 글을 쓴 사람은 심훈이었다. 기미년 삼일운동 때 투옥되었다 나와 상해로 ‘탈출’한 젊은 심대섭, 곧 심훈이 단재를 만났다. 마침 그때 단재는 ‘天鼓(천고)’라는, ‘하늘의 북’이라는 뜻을 가진 잡지를 편집·간행하고 있었다. 심훈은 단재를 이렇게 그렸다. “그때 마침 ‘천고’라는 잡지를 주간하였다. 희미한 등불 밑에서 붓으로 붉은 정간을 친 원고지에다, 밤을 새워 글을 쓰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 창간사인 듯, ‘하늘북이여, 하늘북이여, 한 번 치매 무슨 소리가 나고, 두 번 두드리매 어디가 울리는가’하는 의미의 글귀였던 듯 어렴풋하게 기억되는데, 한 구절 쓰고는 소리 높이 읊고, 몇 줄 또 써 내려가다가는 붓을 멈추고 무릎을 치며 깊이 탄식하는 것이, 마치 글에 미쳐 현실을 잃어버린 사람같이 보였다. 붓끝을 놀리는 대로 때 묻은 솜저고리의 소매가 번쩍거리는데, 생각이 막히면 연방 잎담배에 침을 묻혀 말아서는 태워 물고 뻐끔뻐끔 빤다. 그러다가 불시에 두 눈에 이상한 광채가 스쳐지나는 동시에, 손수 만든 여송연을 아무 데나 내던지는 한편으로 붓에 먹을 찍는다. 나는 그 생담배 타는 연기에 몇 번이나 기침을 하였다. 어느 날은 황혼 때에 찾아가니까 그는 캉(坑) 위에 기대어 좀이 슨 옛날 책을 펴든 채 꾸벅꾸벅 앉아서 자고 있었다. 부처님 손가락처럼 벌린 왼손에는 예의 잎담배를 말어서 피우는 것이 끼워져 있었는데, 저 홀로 타들어 간 뽀얀 재가, 한 치 길이나 됨직 하였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미쳐야 미친다 했다던가? 심훈은 어쩌면 이렇게도 광인 단재 선생을 생생하게 잘도 묘사해 놓았는지, 그의 문장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옛날 역사에 미친 ‘미치광이’ 단재 선생을 실감나게 상상이라도 해볼 수 있었겠는지? 심훈의 글을 현대적인 어법으로 바꾸어 보면서, 나는 아직 덜 미쳐도 아주 덜 미쳤다고 생각해 보면서, 그런데도 어쩌면 단재는 그렇듯 꿈속을 살면서도 그 꿈속이 현실이 되고 또 반대로 현실이 꿈속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었는지, 옛사람의 매운 향기를 더듬어 맡으며 헤아려 본다. 생각한다. 그에게 학문과 실천은 둘이 아니고 하나였고, 실천과 예술도 둘 아니라 하나였으며, 심지어는 그의 학문은 가장 아름다운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학문이었다. 정신이 하나로 옹글게, 빈틈없이 알차고 단단하게 뭉쳐진 사람에게 ‘쪽모이’, 곧 조각조각 부분들을 모은 하나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빈틈이 없다. 그런 사람은 눈치 보고 되돌아보고 망설일 틈이 없다. 오로지 한길로 직진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다. 이 추운 때, 단재 선생의 ‘꿈의 하늘’이 더할 수 없이 새파랗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12-01

보이지 않는 힘들이 남긴 흔적

도시는 거대한 정원이다. 아침이면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표처럼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투와 걸음걸이, 눈빛과 손짓까지 일정하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마치 오래전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든 몸들이 일사불란하게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신기하다. 이 질서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누가 이런 거대한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것일까. 나의 정원은 세상이 나에게 준 것인가, 내가 만든 것인가. 정원의 이름은 대체 누가 지었을까. 생각해 보라. 우리의 하루를. 출근길의 걷는 속도, 회의에서의 말투, 아이를 대하는 태도, SNS에 올리는 사진을 고르는 취향까지. 어찌 이리도 서로를 닮았을까. 수많은 목소리와 시선이 심어놓은 작은 표지판들, ‘이렇게 행동하라!’ ‘이렇게 살아라!’ ‘이 정도는 이루어야지!’ 이러한 표지판의 글들은 누가 새겨 놓은 것일까. 표지석 문양은 화석이 되어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너무나 자연스럽다. 어떤 거부감도 없다. 세상이 우리를 부르기 오래전부터 세상은 이미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새 어떤 이름의 결을 따라 걷고, 어떤 무늬대로 웃고 울며, 어떤 방향의 바람을 따라 호흡한다. 마치 스스로 선택한 길처럼. 하지만 그 길은 오래전부터 누군가의 발자국이 먼저 닿아있었던 길. 학교의 규칙, 가족의 질서, 사회가 붙인 여러 이름들···. 이 모든 것들이 메아리가 되어 우리의 귓속을 통과한다. 세계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지나가는 거대한 수면이다. 인간의 몸 위로 지나가는 규율의 물결, 일상의 가장 가벼운 동작 속에서 켜지는 감시의 눈빛,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얇은 칼날의 윤곽들. 이것은 산맥처럼 웅대한 것이 아니라, 안개처럼 스며드는 것이다. 만질 수 없지만 습기처럼 피부 아래 들어와 몸의 방향까지 결정한다. 우리는 자신을 만들었다고 믿지만, 정작 우리를 만든 것은 알 수 없는 흐름, 규범의 물결, 습관의 온도, 오랫동안 축적된 시간의 회전들이다! 생각해 보라. 매일이 그렇지 않은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 사소한 표정, 걱정이 스며드는 방식까지. 모두 보이지 않는 힘들이 남긴 흔적들이다. 우리는 오래된 이름들의 질서 속 정원에서 태어나고, 그 정원으로 스며든 바람의 규율 속에서 자라났다. 보이지 않는 힘들이 나를 지나가고, 나는 그 힘들을 지나간다. 학교는 우리를 ‘학생’이라 부르고, 국가는 우리를 ‘국민’이라 부른다. 기업은 ‘근로자’를, 가족은 ‘가장의 역할’을 부른다. 이러한 부름에 대한 저항은 성경의 원죄처럼 여겨진다. 저항? 웃기고 있네. 기꺼이 응답한다. 새벽에 잠에서 깨는 순간 창문으로 스며드는 냄새, 벗어놓은 옷의 주름, 책상 위에 흩어진 빛의 조각- 무엇하나 내 의지로 온 것이 없다. 어디선가 왔다가 잠시 머물다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들. 바람은 여전히 분다. 나는 바람과 이름 사이 틈새에 빛나는 흔적일 뿐. ‘보이지 않는 힘의 흔적들’은 내가 지배하기 전에 내가 지배에 받도록 만든다. 우리를 훈육하고, 가치 규정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그으며, 나의 욕망까지 관리 한다. 우리는 자유로운 주체가 아니라, 자유롭다고 느끼도록 길들여진 존재이다. 기분 나빠 죽겠다. /공봉학 변호사

2025-12-01

어른 없는 사회를 어떻게 살아갈까

“관객과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 그의 마지막 무대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쉬는 시간에 이순재가 한 말씀이다. 제대로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제작사 대표의 만류에도 그는 한 시간 반에 걸친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배우로서 대한민국의 어른인 이순재는 지난 25일 새벽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가장 먼저 조문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SNS에서 “한 시대를 넘어 세대를 잇는 ‘모두의 배우’를 떠나보낸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며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연예계 후배들도 이순재와 추억을 되새기며 고인의 빈소를 지켰다. 고(故) 이순재는 우리나라 1등급 문화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윤여정, 이정재에 이어 세 번째로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40편이 넘는 작품을 통해 ‘연기에 대한 진정성’과 인간적인 모습으로 전 연령층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훈장 추서 배경을 설명했다. 모두가 한결같이 느끼는 마음은 우리나라의 큰 어른을 잃었다는 것이다. 성실하고 겸손하며 마지막까지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문화예술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그를 잃는 것은 연예계를 떠나 전 국민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기는 이유이다. 마지막까지도 연기가 어렵다며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고인의 추모 행렬이 이어질 때도 내 편이 아니면 죽이려고 달려드는 정치인들의 진흙탕 싸움장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정치판이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들의 언행을 보며 그래도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후배들을 향해 겸손과 열정과 성실성을 몸으로 보여준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누구의 말을 지팡이 삼아 이 세상을 살아갈지 막막하다. 내란을 일으키고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 자기 편이 아니면 끌어내리고 개혁의 대상으로 만들고, 말을 듣지 않는 기관장은 기관을 없애고, 한 사람을 위한 법을 만드는 사람들. 법의 잣대로 심판하는 검사와 판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을 심판하는 법을 만들거나 기관을 없앤다고 겁박한다. 인간을 편하게 하려는 법인지 어떤 집단의 수단과 목적을 위한 법인지 헷갈리는데 우리를 달래줄 어른을 잃었다. 미국의 환율 압박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세계 경제의 흐름도 우리에게 절대 유리하지 않다. 국민의 살림은 궁핍해져만 가는데 정치권은 말로만 국민을 내세울 뿐 국민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권력을 차지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사람들에게 떳떳하고 진솔한 어른이 왜 정치권에는 없는지. 일에 열정이 넘치던 어른도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는 건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그의 마음을 닮을 수는 없을까. 잠시 살기보다 모두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어른이 넘치는 사회가 될 수는 없을까. 이제 누가 따뜻한 말씀을 다시 해줄까. 정치인이 만든 천박하고 삭막한 사회를 누가 따뜻한 사회로 만들어줄 수 있을까. 어른 없는 사회를 어떻게 살아갈까. /김규인 수필가

2025-12-01

김장 시장을 보며

이제부터 본격적인 김장철이다. 마트에 가면 절인 배추 예약 받는다는 문구와 함께 부재료인 무, 갓, 젓갈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지인이 김장을 했다며 김치를 가져다주었다. 이미 십여 년 전부터 김장을 하지 않았기에 고마운 마음에 덥석 받았다. 부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시원하고 담백한 김치를 나는 좋아한다. 지인의 것을 꺼내 맛을 보았다. 젓갈 향이 강한 김치가 입안을 톡 쏜다. 문득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났다. 점심시간이면 자연스럽게 여러 명이 둘러앉아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함께 먹었다. 다른 친구가 싸 온 반찬도 맛볼 수 있고, 수다도 떨 수 있어서 참 소중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엄마의 음식에만 익숙해서 나는 다른 집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그 날도 싸 온 반찬만을 먹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집어갔다. 할 수 없이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김치를 집어 들었다. 김치가 입에 들어간 순간 확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에 당황한 나는 삼키지도 씹지도 못하고 굳어 있었다. 친구네 김치는 젓갈을 많이 넣은 것이었다. 강한 젓갈 냄새가 나를 자극한 것이다. 눈치를 보며 억지로 김치를 삼켰다. 그 이후 다른 친구의 반찬에는 손을 아예 대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맛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음식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도 있었을 일이 내게는 오래도록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얼마 전 아주 오랜 만에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뭘 먹고 싶은지를 이야기하다가 쉽게 결정을 못해 서로 싫은 음식을 제해보기로 했다. 바닷가에 사니 회를 먹자는 한 친구의 말에 선뜻 가자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조심스레 나는 기억 속에 있던 횟집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고등학교 방학 때 이모집을 방문하였다. 모처럼 놀러온 조카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며 데리고 간 곳은 횟집이었다. 잠깐 화장실을 갔다 오다가 본 광경에 말을 잊고 서 있었다. 벽에 못이 박혀 있었는데, 주인이 살아 있는 붕장어의 머리를 못에다 박은 후 산 채로 껍질을 벗기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속살을 드러낸 붕장어가 꿈틀거리는 모습과 주인의 거침없는 손을 보면서 나는 식욕을 잃었다. 접시에 올라온 붕장어회를 이모의 눈을 피하며 한 점도 먹지 않았다. 이후로 횟집에 가면 그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라 젓가락이 멈칫했다. 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대번에 트라우마구나 했다. 김치나 회에 대한 기억은 거부할 수도 사라지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머리에 각인된 그 풍경은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음식의 선택을 바꾸게 한 것일 수도 있다. 마음이 상처를 입고 회복하는 것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것을 트라우마라는 단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의미 확대가 아닌가 싶었다.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은 그 용어가 너무 폭넓게 강하게 쓰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대신에 ‘감정상처’’마음 부상’‘심리적 충격’ 등의 말을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두 사건을 생각하며 의외로 음식뿐만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이런 심리적 거부감이나 감정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상처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었을지. 익숙한 것은 쉽고 마음에 여유를 주기에 우리는 낯섦보다는 익숙함에 젖기를 즐긴다. 불편함이 덜하고 신경을 덜 써도 되기 때문이다. 반면, 낯섦은 긴장을 촉진시킨다. 낯설다는 것 속에는 두려움이란 감정이 감춰져 있다. 마음을 완화시키지 못하고 긴장으로 온 몸을 팽팽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득 공기가 찬 풍선이 매듭이 조금 풀리면 예측 못한 방향으로 날아올라가는 것처럼 그 마음이 방향을 잃으며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을 그 풍경을 그려본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만든 개인적인 경험에 감성적인 예민함이 덧대어져 편견이나 선입견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마음의 작은 부상들이 치유되어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음식이나 사람들을 대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북적이는 김장 시장이 새삼 정겨워 보인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11-30

내란의 시간

이틀 지나면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 1주년이다. 다수 국민은 세월 참 빠르네, 할 것이지만 나는 다르다. 내란은 현재 진행형이고, 그 중심지지 세력은 내가 살고 활동하는 대구-경북이기 때문이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어쩌다가 천하의 술주정뱅이 망나니에게 바짓가랑이를 붙잡혀 1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간 말종의 하수인으로 지내고 있단 말인가?! 소맥 폭탄주로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는 자는 “파렴치한 종북좌파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외쳤다. 겨울 초입에 다수 시민이 안온한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시각에 난데없는 칼잡이처럼 대갈일성(大喝一聲)으로 ‘파렴치한 종북좌파 세력!’ 타령. 누가 진정 ‘파렴치한’ 종자(種子)인지 이제야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안팎이 닮아도 너무도 쏙 빼닮은 탐욕의 ‘비계덩어리’가 암수한몸 되어 합작한 굴욕과 수치의 내란이 어느새 1년에 가깝다. 우리가 애면글면 기대하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이 지목되어 많은 국민이 기뻐하던 그 시각에 그자들은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사적인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파렴치한’ 내란을 획책하여 지구촌 전체를 경악시키는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다. 21세기 20년대 대한민국에 종북좌파 세력이 있다는 확신범이 일국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지난 세기 7~80년대, 군부독재의 화신 박정희-전두환의 철권통치 시기에 난무했던 종북좌파 책동을 4~50년이 지난 시점에 재활용하는 자의 정신과 뇌 상태가 심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런 자를 아직도 맹종하는 인간들의 심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터. 작년 12월 4일, 그러니까 내란의 밤 다음 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나는 청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강의 문학세계와 우리의 삶’을 주제로 2시간 강연했다. 강연 준비를 위해 전날 늦은 밤까지 자료를 만들다가 마주한 ‘파렴치한 종북좌파 타령’에 아연실색(啞然失色)하고 말았다. 아, 정녕 이것이 나의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란 말인가!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다가 한강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했다고 한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이 내린 결론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1980년 5월 참혹한 광주학살을 경험하고 교육받은 세대가 한마음 한뜻으로 잔인무도한 비상계엄을 막아냈으니 말이다.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파렴치하고’ 참람(僭濫)한 내란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내란 수괴를 비롯한 다수 잔당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두 눈을 희번덕거린다. 영장 전담 판사들은 이런저런 구실로 구속영장을 각하하는 몰염치하고 반역사적인 행태를 거듭하고 있다. 내란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르면서 국민의 가슴에 뜨거운 울화(鬱火)를 선사하며 염장을 지르고 있는 형편이다. 매우 보수적인 인간 공자는 논어에서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음이 잘못”이라고 말한다. 크나큰 과오(過誤)를 저질렀지만, 여전히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 탓을 해대는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지난 1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이 못내 궁금한 시점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1-30

중국과 대나무 비계

중국에 있어 대나무는 전통적 가치의 상징물이다. 수천 년 전부터 중국은 음식이나 교통수단, 주택, 책, 무기. 악기 등에는 대나무를 많이 사용했다. 서양이 파피루스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면 중국에서는 대나무에 글씨를 썼다. 대나무는 매화와 난초, 국화와 더불어 사군자(四君子)라 부른다. 품격 있는 식물로 인식한다. 한때 해외에 대해 배타적 정책을 쓴 중국을 가리켜 ‘죽의 장막’이라 부른 것도 대나무가 중국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홍콩 타이포 구역 초고층 주거단지에서 불이나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깝고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화재가 초기 진압되지 못하고 희생자가 크게 늘어났다. 그 원인으로 건물공사를 위해 설치한 대나무 비계가 지목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빌딩이 많은 홍콩을 여행하다 보면 공사 중인 빌딩 외벽에 대나무 비계를 설치한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비계는 높은 곳에서 작업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임시 가설물이다. 대개의 나라에선 비계 재료로 강관 파이프를 사용하고 있지만 홍콩은 전통방식인 대나무를 사용한다. 친환경적인 데다 비용이 적게 들고 설치도 용이해 홍콩의 빌딩에는 대나무 비계를 설치하고 공사를 하는 곳이 많다. 북송 시대 유명작품 ‘청명상하도’에도 그려져 있을 정도라 하니 이 방식이 천년은 넘었다. 그러나 이번 화재가 커진 이유로 대나무 비계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비판 여론에 대나무 비계 사용을 철폐하자는 여론도 강하게 나온다. 홍콩에서는 공사용 대나무 비계를 만들기 위해 매년 7m 길이의 대나무 막대 500만개를 생산한다고 한다. 이번 화재의 충격으로 대나무 비계가 사라질까 관심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