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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마을 뒤 높은 곳에 터잡은 거대하고 우람한 자태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에 따라서 인물의 태어남과 기질이 형성된다고 믿어 왔다. 그런 연유로 마을이나 산의 지형을 함부로 변형하거나 훼손하는 일을 싫어하고 못마땅했다. 10여 년 전인가 영덕 인량리 전통 민속문화 마을 노거수를 찾았다. 그때 알고 지내는 지인이 인량리 마을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사회적으로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는 곳이라 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마을 뒷산에 송전탑이 세워져 지나가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지기가 끊어지고 약해진다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 마을 출신 박약회 회장이며 인성교육 전문가로 변신한 한국 PC 아버지로 불리는 전 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을 찾았다. 마을의 지기가 끊어지고 약해져 큰 인물이 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이 사업을 중단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이 회장께서 하시는 말씀이 걸작이었다. ‘요사이 마을에 아이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무슨 인물이 태어난다고 합니까?’ 마을 주민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인량리 마을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을 등에 업고 넓은 평야를 안고 있다. 낙동정맥에서 발원한 송천을 사이에 두고 원구리 마을과 마주하고 있다. 풍수지리로 볼 때 배산임수형의 마을이 아닐까 싶다. 두 마을은 서로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옛날부터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해 왔다. ‘영해부지(寧海府誌)’에 의하면 “인량리는 팔성종실(八姓宗室)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예부터 순후하고 예의와 겸양이 있고 효행과 학문이 높은 선비가 많아 벼슬이 끊이지 않으니 영해부 내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라 했다.” 재령이씨 이애(李璦)가 건립한 충효당 종택을 비롯하여 민속문화재 유산이 무려 9점이나 있는 마을이다. 민속문화란 민간 생활과 결부된 풍속, 신앙, 전설 등 민간에 전하여 내려오는 문화를 말한다. 특히 민속문화는 마을 주민과 마을 나무라 일컬어지는 동신목 노거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량리 마을에는 마을 뒤 산자락 충효당 종택과 은행나무(459-1번지), 마을 서쪽 비보림의 팽나무(438번지), 마을 앞 남쪽 들판 서낭당 회화나무, 팽나무(250번지) 노거수가 있다. 한 마을에 이런 다양한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지령(地靈)은 높은 산의 신령이 아니라 바로 마을 숲과 노거수가 있는 마을과 그 나무들이 지령이 아닐까 싶다.충효당 종택 은행나무는 1982년 10월 29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나이 520살, 키 22m, 가슴둘레 5m가 넘는다. 앉은 자리 폭이 무려 24m로 면적은 130평이 넘었다. 암그루로 매년 많은 은행을 생산하고 있다. 거대하고 우람한 나무가 마을 뒤 높은 곳에 있어 멀리서도 그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다. 은행나무 노거수는 마을의 전통 고유 경관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마을의 랜드마크 기능과 마을 역사의 표징이 되고 있다. 또한 충효당이라는 건축물과 입향조 이애란이라는 인물과 관련된 역사의 산 공유물로서 그 증거 및 보완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을 서쪽 비보림은 2004년 4월 17일 새천년 기념 숲으로 지정되었다. 걸출한 품위와 멋있는 외모를 갖춘 팽나무 노거수는 2007년 2월 12일 보호수로 지정하였다. 나이는 350살이고 키는 14m이다. 가슴둘레는 3m가 훌쩍 넘고 앉은 자리 넓이는 90평이나 되었다. 비보림에는 마을 주민들이 느티나무, 주목을 심어 소나무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풍수지리적으로 비보림(裨補林)은 풍수상의 모자라고 허한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을 말한다. 엽승림(擫蕂林)은 풍수상의 불길한 기운이 마을에 미치지 못하도록 차단하기 위하여 조성한 숲을 말한다. 어쨌든 마을 숲은 방풍, 방수, 방온 등 미세 기후를 조절하고 지역 주민과 지역의 야생 생물들의 생활과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숲 생태계이다.팽나무 노거수 나무줄기 위에 어린 노간주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나무뿌리 부근에서 자란 여러 줄기가 자라면서 몸집을 불려 지금은 하나의 원줄기로 변환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화합의 상징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원추형 수형이 아름답다. 가로로 자란 큰 줄기에 세로로 자라는 어린줄기가 꼭 엄마 등에 업힌 어린아이 같다. 예전에는 당산목이었으나 지금은 마을 앞 서낭당으로 옮겨서 동신제를 지내고 있다. 거대한 팽나무 아래 함께 동거하고 있는 어린 회화나무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인다. 마을 앞 남쪽 들판 서낭당에 회화나무, 팽나무(250번지)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1996년 12월 6일 보호수 지정하여 기와로 얹은 돌담으로 경계를 지우고 남쪽으로는 철책을 둘러쳐서 당산목과 당우를 보호하고 있다. 태풍에 쓰러져 누워서 살아가고 있는 회화나무 나이는 500살이다. 가슴둘레는 약 3m, 키는 8m라 해야 옳은지 아니면 15m라 해야 맞을지 모르겠다. 상처가 나 곪아 있는 몸에 자라고 있는 줄기 모습이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 모습으로 겹쳐 보인다. 엄마의 몸을 빌려 살아가는 염량 거미를 생각나게 한다. 누운 회화나무를 떠받들고 있는 팽나무 모습이 거룩해 보인다. 이제 팽나무와 회화나무는 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다.마을 숲과 노거수는 우리의 삶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가치와 기능은 다양하다. 전통 민속문화로 자리매김한 마을 숲과 노거수를 땅의 효율성과 생활의 편리성만 따져서 함부로 훼손하거나 제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서낭당에 세워진 정자에 마을 노인들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외롭게 보였다. 옛날과 같이 손자 손녀와 함께 정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마을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어르신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미래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노거수는 어떤 가치와 기능을 가졌을까?전통 민속문화의 자연자산인 노거수는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아래 그걸 간략하게 요약해본다.△지구환경을 구성하는 환경재의 기능이다. 인류 공동의 자연자산 즉 공유자산으로서 금전적 가치가 아니라 존재하는 그 자체로서의 비사용가치, 즉 존재가치가 있다. △학술적 잠재 자연식생의 기능이다. 자연적 기원의 노거수는 그 지역의 잠재 자연식생 정보를 제공한다. △생물다양성과 생물서식공간의 기능이다. 노거수 한 그루에는 수많은 생물 종의 삶의 터전이다. 지역의 생물다양성 중심지로서 지역 고유의 생물종다양성과 유전자 다양성을 저장하는 종자은행(Seed Bank)이다. △환경조절의 공익 가치이다. 노거수는 수원함양, 대기정화, 토양정화, 토사유출 방지, 산소생산, 소음방지, 기상완화, 쓰레기 처리 등의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유지하고 증진한다. △미적 가치이다. 자연미를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가치이다. △지역의 이정표 기능이다. 노거수종을 따라서 지명을 붙인 사례가 많다. △생명·우주 기능이다. 노거수는 지역 주민과 어린이의 영속적 교육재료가 되며 수령과 수명을 고려한 생물체의 생명환을 이해하는 학습자료이다. △교육, 홍보 기능이다. 노거수는 생태환경과 웰빙에 대한 영상매체를 이용한 교육적 수단으로 유효하며 생태관광 자산이다.

2023-12-06

수백년 한결같이 서로 품으며 마을의 수호신 되다

영덕군 창수면 수리마을에서 사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며 전원생활을 한 지도 벌써 15년 훌쩍 넘었다. 영해에서 창수면 수리로 가는 농촌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뿌리줄기에 붙어있는 고구마처럼 길 따라 옹기종기 붙어있는 자연부락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정겹다.마을마다 작은 마을 숲에는 당우와 함께 당산목이라 불리는 노거수가 있다. 주민들은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동제를 지낸다. 특히 영해면 원구리 마을 숲 당산목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집으로 오가는 길목에 있는지라 오갈 때마다 들리곤 한다. 이제는 나의 중간 기착지 힐링 쉼터가 되었다. 숲속을 거닐면서 나무가 뿜어내는 산소를 마음껏 들어 마실 수 있다. 마을을 둘러보면서 아름다운 고택과 정원의 나무들을 감상할 수 있다. 덤으로 마을 앞에 펼쳐지는 넓은 들판은 여름에는 푸름으로 왕성한 기운을 느끼게 하고 가을에는 황금물결로 마음에 풍성함을 채워준다. 힐링하기에 원구리 마을은 안성맞춤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원구리 마을은 낮은 언덕 자락에 터전을 잡은 마을로 넓은 들을 소유하여 예로부터 비교적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왔다. 주민들은 넓은 들판과 고래불 해변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숲을 조성하고 자연을 가까이했다. 어린나무들은 세월에 힘입어 아름드리 큰 나무의 무성한 숲으로 성장하여 휴식처를 제공했다.또한 마을을 지켜주는 방패막이가 되고 아름다움과 품격을 높여주었다. 숲과 마을은 상생의 윈윈(win-win) 전략으로 자연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존의 이치를 터득했다. 그들은 서로를 품고 살아가는 나무와 주민들이다.숲속에는 많은 수종의 나무가 있지만, 주인공은 600살 되는 세 그루의 당산목 느티나무 노거수이다. 놀랍게도 당산목은 마을을 대표하는 영양 남씨, 무안 박씨, 대흥 백씨 삼 성씨의 단합과 경쟁의 시스템으로 묶어 놓았다. 삼 성씨는 당산목을 경배하면서 단합하고 때로는 선의의 경쟁을 했다. 그들은 힘을 모아 서원을 짓고 학문을 연마하고 정자를 지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예와 학문을 숭상했다.한 마을에 성씨별로 서원이 세 개나 지어지고 정자가 세워진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나라가 없으면 가문도 없다는 애국정신으로 남의록, 남경훈, 박세순, 백충언, 백사언 등 임란 공신 다섯 명이 모두 삼 성씨의 종손이면서 의병장으로 나라 지키는데 앞장섰다는 미담은 듣고 들어도 다시 듣고 싶다.마을은 아니지만, 문중 간 화합의 장을 열어가고 있는 삼 성씨, 아산 장씨(蔣), 밀성 박씨(朴), 옥산 전씨(全)의 모임인 강선계(講先契)는 1391년경부터 지금까지 630년간 아름다운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마을 숲에는 소나무, 왕버들, 팽나무, 회화나무 등 많은 노거수가 있지만, 제단 앞에 있는 당산목 느티나무 세 그루는 600살 됨직하고 크기도 비슷하다. 제단 왼쪽 느티나무는 지상 50㎝ 높이에서 다섯 가지가 뻗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키는 21m, 몸 둘레 8m, 앉은 자리는 26m가 넘는다.오른쪽 느티나무는 지상 1m 높이에서 네 가지를 뻗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가운데 느티나무는 조금 늦게 태어났는지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여 서쪽으로 45도 비스듬히 기울어 비켜나 자라고 있다. 양보와 경쟁의 질서를 조화롭게 지키면서 수백 년을 한결같이 평화롭게 숲의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또 한쪽에서는 왕버들과 소나무가 형제처럼 함께 부대끼며 묘한 동거를 하고 있다. 곧은 절개의 소나무가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터이고, 왕버들 역시 큰 덩치와 힘자랑을 멈추지 않을 터인데 앞으로도 계속 사이좋게 공존해 갈 것인지 궁금하다. 저녁 햇살이 몸을 낮춘다. 대지에 엎드린 지피식물이 어둠의 이불이 펼쳐지기 전 마음껏 만찬을 즐긴다.마을의 무안 박씨 경수당 종택에는 아름다운 향나무 노거수가 건재하게 살아가고 있다. 1570년에 건립한 99칸의 종택 대청에는 퇴계 이황이 쓴 ‘경수당’ 현판이 있다. 그보다 나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24호 향나무에 더 눈길이 끌렸다. 나이가 무려 700살이 훌쩍 넘었다. 키는 6m, 몸 둘레는 3m이지만, 앉은 자리 둘레는 4.7m나 되었다. 울릉도에 자라고 있는 약 300년생 향나무를 경수당 건립자인 박세순(朴世淳)이 이식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향나무는 무미건조한 고택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향나무 노거수 한 그루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는 용을 그리고 눈동자를 찍는 것과 같은 화룡점정이랄까 금상첨화란 생각이 든다. 전통은 만들기도 어렵고, 지키는 것, 또한 어렵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노력 없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합쳐질 때만 가능한 일이다. 아직도 세 문중이 집성촌을 이루고 오순도순 살아가면서 우리의 전통문화인 동신제를 매년 정월 대보름날 지내고 있다. 신의 경지까지 올려놓고 경배하면서 나무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민족은 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이다.나무 사랑, 나아가 자연 사랑으로 이어지는 전통 민속문화인 동신제가 차츰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원구리 마을의 ‘영양 남씨, 무안 박씨, 대흥 백씨’ 삼 성씨는 오늘날까지 동신제를 지내며 맥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의 단합과 결속의 중심인 된 마을 숲의 수목들이 주민들과 오래도록 장수하며 전통의 맥을 이어가길 기원해 본다.귀향한 남성근씨가 들려준 원구리 마을 동신제 이야기마을 숲속에 있는 당산목 주변을 깨끗이 청소한다, 마을 삼 성씨 어른들이 모여 앉아 왼쪽 세끼 줄을 꼬아 만든 금줄을 악귀와 부정을 막기 위해 제관들의 집에 두른다. 그리고 마당과 길에 황토를 뿌린다. 이때부터는 외부 사람들은 드나들 수 없다. 출입을 막는 것은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마을 삼 성씨에서 각각 한 명의 제관을 선출한다. 제관으로 선출된 세 명은 1년 동안 흉사 등에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였으나 지금은 한 달 보름 정도로 줄었다. 그동안 나쁜 생각도 하지 않고 몸과 마을을 정갈히 가다듬는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하루 전날에 목욕재계하여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다. 목욕은 용당 샘물을 이용하였으나 지금은 일반 목욕탕을 이용한다.영해 시장에 가서 동제에 사용할 제수를 마련한다, 먼저 생선가게에서 문어, 가오리 등을 산다. 그리고 과일 가게에서 사과 배 등을 산다. 마지막으로 떡을 준비한다. 제물은 크고 좋은 것을 골라 흥정하지 않고 달라는 대로 돈을 주고 산다. 소지를 준비하고 제기를 닦는 일은 제관만이 하는 일이다. 제수는 어물 위주로 하고 육고기는 닭고기만 사용한다. 제관과 마을 주민이 제당으로 가서 행사를 준비한다. 제물을 제단에 놓을 때는 바깥에서 안쪽의 순서로 놓는다. 이렇게 모든 준비는 끝이 난다.동신제를 올리는 순서는 먼저 제관과 참석자가 절을 하고 신을 맞이하는 참신을 한다. 그리고 초헌관이 땅에 있는 신이 세상으로 올라오라는 신호로 세 번 술을 따른다. 초헌관은 다시 절을 하고 참석자 모두 엎드린다. 그리고 축문을 읽는다. 아헌관이 두 번째 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종헌관이 마지막으로 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부복하고 산신제는 모든 참석자가 절을 하고 축문을 태운다. 신과 주민, 출향 인사 순으로 소원을 빌며 주민의 이름을 기재한 소지를 태워 하늘로 날려 보낸다. 모든 음식을 조금씩 잘라서 신을 위하여 주변 땅에 묻는다. 그리고 음복한다. 이렇게 동신제는 끝이 난다. 제관은 무릎도 풀고 옷도 벗을 수 있다. 오늘 있었던 동제 이야기를 나눈다.정월 대보름 아침에는 금줄을 벗기고 마을 사람 맞을 준비를 한다. 동신제 경비 등 결산보고를 한다. 주민들의 화합 시간을 갖는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3-11-29

“와송의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은 차라리 아름답다”

와송(臥松) 노거수는 우리 민족성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질을 민족성이라 말한다. 단일 민족인 우리 한민족은 절개와 지조가 있으면서 청초함을 갖추었다.척박한 토양 환경에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이 한 줄의 가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고난을 극복하고 세계사에 우뚝 선 나라로 국제사회에 미담의 주인공으로 회자 되고 있다. 송죽매란(松竹梅蘭)은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사군자로 우리 조선의 선비들이 즐겨 심고 노래한 것을 보더라도 그렇다.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늘 푸른 소나무는 화려하지 않으면서 깨끗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청초하기까지 하니 우리 민족성과 많이 닮았다. 젊음의 기개처럼 젊은 소나무는 부러져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절개와 지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거수가 되면 살아온 연륜만큼이나 지혜로움을 보여준다. 곧은 줄기의 불그스레한 모습은 엷은 미소를 띤 온화한 할아버지 얼굴 같다. 가지의 곡선은 세월의 연륜에서 빚어진 은은함과 부드러움, 공간 조화의 미덕을 보여준다.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함께 동고동락한 반려자로 민속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을 보아도 그렇다. 할머니는 마을 당산나무인 소나무에 누구보다 먼저 새벽에 들러 아들딸 낳아달라고 소원했다. 그리고 아들딸 낳으면 할아버지는 집 사립문에 금줄을 치고 솔가지를 걸고 그해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죽으면 소나무로 만든 관속에서 마을 뒤 선산의 솔밭에 묻혔다. 우리 조상은 소나무로 시작해 소나무로 끝나는 인생사라 해도 좋을 것 같다. 포항시 장기면 두원리 386번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소나무 노거수는 절개와 지조에 더하여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1992년 9월 14일 보호수로 지정하여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다. 나이는 340살이며 키는 15m, 가슴둘레는 3m 넘는다.뿌리 부근에 두 줄기의 형제가 나와 자랐는데 그중 한 줄기가 태풍에 밑둥치가 부러져 꺾이어 드러누운 채 살아가고 있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라 주민 누구도 가져가지 않고 자연 방치되었다. 소나무는 생명줄을 놓지 않고 죽을힘 다해 버티어 살아남았다. 아마 혼자 힘으로는 버티어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형제의 뿌리가 영양분과 물을 공급해 주었으리라. 한 형제가 넘어졌으니 일으켜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뿌리에서 도왔을 것이다. 형제의 도움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비록 누워서 살아가고 있지만, 건재한 모습이 오히려 어느 소나무보다 진한 감동을 주었다.부러져 꺾어진 부분에는 벌레나 균의 침입으로 인하여 부식되었다. 그러나 삶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보통의 소나무라면 벌써 숨통이 끊어졌을 터인데 그 강인한 생명줄을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기보다 아름답게 여겨졌다. 참으로 기이하다고 할까, 경이로운 모습도 모습이지만, 살려는 강인한 의지력에 놀랄 뿐이다.몸은 비록 장애일지라도 그의 꿈과 이상은 푸른 하늘을 향하고 있음을 그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세월이라는 시간만이 만들 수 있는 자연의 걸작품이다. 누워서 살아간다고 와송(臥松)이라 부르고 싶다. 끈질긴 생명의 힘을 보여주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와송 노거수는 우리에게 귀감이 아닐 수 없다.얼마 전 신문 기사에 산주가 아름다운 소나무 노거수를 팔아서 주민들이 반발하는 기사를 읽었다. 원상복구 문제까지 번진 일이다. 아름다운 소나무는 정원의 조경수로서 최고의 나무라면서 값을 따지지도 않고 사는 경우가 흔히 있는 것 같다. 조경업자는 산이든 들이든 어디에 있든지 상관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사려고 한다. 물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나무를 감상할 수 있는 공원이라면 그 또한 나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해서 개인의 정원에 함부로 사서 심는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라 생각이 아닐까. 여기 와송 노거수는 절대로 옮길 수 없다. 주민들이 허락하지 않겠지만, 어느 조경업자도 이식하여 살릴 재간은 없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손을 댄다면 와송 노거수는 지금까지 지켜온 절개와 지조를 죽음으로 증명해 보일런지도 모른다.소나무는 우리 민족성과 많이 닮았다. 오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동북아 작은 한반도에서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그 맥을 이어왔다. 이웃 나라의 끊임없는 간섭과 침략에도 굳건히 살아남았다.강대국의 말발굽에 짓밟혀 가면서도 아픔을 참고 살아남았다. 제국주의 아래 씨를 말리려는 민족 말살에도 굴하지 않고 고초를 참으면서 맥을 이었다. 한반도를 붉게 물들이려 하는 세력의 집단으로부터도 푸른 기운을 싹틔우며 자리를 지켰다. 무소불위의 일부 세력의 권력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온몸으로 저항했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자유와 민주, 산업화에도 늘 그 중심에 섰다. 금융위기도 빠르게 극복하고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도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슬기롭게 극복했다. 곧은 절개와 늘 푸른 소나무처럼 불멸의 민족으로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민족을 닮은 소나무한낮이 기울 때 가을 햇살로 인해 소나무 노거수의 온전한 전체 모습을 사진기에 담기에는 어려웠다. 겨울, 그 모두가 잎을 떨구고 나목으로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소나무는 그때야 자신의 푸름을 자랑한다. 특히 눈이 내린 날에 더욱더 푸름이 빛을 발한다.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겨울 소나무 노거수를 본다면 그 누구도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흰 눈과 푸른 소나무의 풍경은 우리 민족의 모습으로 겹쳐 보인다. 흰옷을 좋아하고 즐겨 입으며 푸른 기상을 닮으려는 우리 민족이 아니었던가. 주변 다른 나무를 적절히 제거하고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와송 노거수를 천연기념물로 격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3-11-22

고인돌 무덤 ‘호위무사’로 지켜온 200여 년 세월

아들이 없는 큰아버지 앞으로 입양이 되었다. 양부가 돌아가시자 졸지에 문중의 종갓집이 되고 아내는 덩달아 종갓집 며느리가 되었다. 일 년에 지내는 제사 만 4대 봉제사와 설 추석 명절 합쳐 매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조상을 정성껏 모셔야 화를 면하고 복을 받는다고 하는 어릴 적 부모님과 마을 어른들의 말씀을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어왔던 터여서 힘들었지만, 제사를 정성껏 모셨다. 나야 피를 받은 조상님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아내는 그런 힘든 일을 감내해야 할 이유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조상의 묘소 찾아 벌초하고 묘사를 지냈다.매년 하는 일이지만, 옛날과는 달리 묘소가 있는 산이 수림으로 우거져 묘소로 가는 길이 없어지고 묘에는 잡풀과 어린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벌초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신문 기사를 통하여 벌초하러 나섰다가 벌에 쏘이거나 뱀 등에 물리어 곤욕을 치렀다는 기사를 종종 보았다. 그러다 보니 벌초도 자손이 아니라 대행을 해주는 업자가 생기기까지 했다. 머지않아 산에 매장을 하고 벌초하며 묘사를 지내는 매장 문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든다.오늘날 장례문화도 많이 변하고 있다. 장례를 집에서 행하던 풍습이 장례예식장으로 장소가 변했다. 매장 문화도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납골당에 모시거나 수목장 등 다양한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유골함을 묻고 봉분 없이 묘비만 세우기도 한다. 유골을 산천에 뿌려 묘 없이 장례를 치르게도 더러 하는 것 같다.특히 외국의 경우를 보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끔찍하게 생각되는 것도 있다. 죽은 사람의 시신에 칼질하여 배를 갈라서 산 위에 갖다 놓으면 독수리가 달려들어 순식간에 살점 하나 없이 다 먹고 뼈만 남는다. 유족들은 기다렸다가 유골을 수습하여 갈아서 주먹밥을 만들어 던져주면 독수리는 그거마저 먹어버린다고 한다.어떤 지역은 사람이 죽으면 사찰 주변에 시신을 던져 놓으면 수십 마리 개들이 달려들어 시체를 먹어 치운다고 한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이렇게 장례문화가 다양한 것은 기후와 죽음에 대한 민속 신앙이 다르기 때문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청동기 시대 성행하여 철기시대까지 존속한 거석문화의 일종인 고인돌 무덤이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 151번지에 팽나무 노거수가 묘비석처럼 함께 있다. 문성리 마을은 대한민국 근대화를 이룩한 새마을 운동 발상지이기도 하다.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으로 농촌 근대화를 이룩한 선구적인 마을이다.고인돌은 지역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지석묘(支石墓),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유럽에서는 돌멘(Dolmen)이라 불렀다. 고인돌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 속에 보존 관리되고 있다. 이곳은 지석이 있는 기반식 고인돌로 인근에서는 보기 드문 거대한 고인돌 규모이다. 지석은 죽은 사람의 이름, 생몰, 연월일, 행적, 무덤의 좌향 등을 적어 무덤 앞에 묻는 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곳 지석의 크기는 가로 185cm, 세로 35cm, 높이 45cm이며 주변에 여러 기의 무덤이 함께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인돌 무덤도 보기 어렵지만, 팽나무 노거수와 함께 있는 것은 더더구나 보기 어렵다.고인돌 무덤을 팽나무 노거수가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있다. 팽나무는 소금기와 바닷바람에 강한 수종으로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에 해송과 함께 자생한다. 동남부 해안지방에는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당산나무는 흔히 팽나무인 경우가 많다. 뿌리가 잘 발달 되어 있고 바람과 공해에 강할 뿐만 아니라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만큼이나 장수목이다.예로부터 방풍림이나 녹음을 위해 마을 주변이나 정자목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자못 고인돌의 중압감 속에서도 팽나무 노거수의 친근감이 느껴져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팽나무 노거수는 키가 20m 되고 몸 둘레가 3m, 수관 폭은 17m가 넘었다. 1995년 11월 18일에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었다.푸른 담쟁이덩굴이 크고 묵중한 고인돌을 감싸고 푸른 이끼는 거대한 팽나무 노거수 몸을 감쌌다. 팽나무 노거수 열매는 가을이 되면 검붉게 익는데 까맣게 익은 것으로 보아 검팽나무인 것 같다. 인공인지 자생인지 모르지만, 팽나무 노거수 나이가 200살이 넘었다고 한다. 고인돌과 노거수에 금줄이 쳐져 있고 지석에는 술과 과일이 놓아져 있는 것으로 보아 팽나무 노거수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제사를 받는 신목(神木)이었다.포항 노거수회를 창립하여 노거수 보호에 앞장서 오신 이삼우 노거수회 명예회장(현 기청산식물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우리 민족은 노거수에는 신령이 깃들여 있다고 믿어 왔고, 울창한 삼림 속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인식해 왔다. 노거수라는 자연물을 통하여 보다 큰 영감과 안녕을 기원했다. 단군신화 속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나 신수(神樹),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박(朴)은 점을 치는 나무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는 수목에 대한 선조들의 심원적 사고를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에서 활력을 부활시키고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철학으로 자연과 친밀하여 위대한 감화력을 얻으려는 욕구의 발로이다.”고인돌 무덤만 덩그렇게 있는 것보다 팽나무 노거수와 함께 있는 고인돌 무덤이 더욱 친근감이 들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우리의 장례문화도 산림을 훼손하는 매장 문화에서 산림을 보호하는 납골당, 수목장 문화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 본다.동해안의 수목장 나무는 여타 나무보다 팽나무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도 모르지만, 이곳에 묻힌 조상님의 명복을 빌고 팽나무 노거수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고인돌 무덤에 묻힌 조상의 넋이 마을 수호신 팽나무로 화신한 것이 아닐까. 팽나무 노거수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해 본다. 맑고 파란 하늘의 가을 햇살이 푸른 잎을 곱게 물들이고 있다.정겨운 단어 ‘포구나무’팽나무는 흔히 포구나무, 달주나무, 마태나무, 폭나무, 펑나무이라고도 부른다. 콩알만 한 팽나무 열매를 작은 대나무 대롱의 아래위로 한 알씩 밀어 넣고 꼬챙이를 꽂아 탁하고 치면 공기 압축으로 아래쪽의 열매는 팽 소리를 내면서 날아간다. 이것을 팽총이라고 한다. 팽총의 총알인 ‘팽’이 열리는 나무란 뜻으로 팽나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포구나무라고 하는 말이 더 친근하다. 해안가 배가 들락거리는 갯마을의 포구에는 어김없이 포구나무 한두 그루 서 있다. 포구에 그림처럼 서 있는 나무를 연상할 수 있는 포구나무란 말이 더 정겹다.20여 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고인돌 주변이 깨끗이 단장되었는데 지금은 잡풀들로 우거져 더 이상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고인돌과 주변 수기의 묘지를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서 있는 팽나무 노거수는 아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문성리 마을은 근면, 자조, 협동 새마을정신으로 대한민국 농촌 근대화를 이룩한 선구적인 마을이다. 역사성과 희귀성, 문화유산을 지키는 보호수인 팽나무를 천연기념물의 반열로 품격을 올려주면 어떨까?/글·사진=장은재 작가

2023-11-15

바른 사회 만드는 효(孝)의 실천, 은행나무에게 배워볼까

어릴 적 초등학교 다닐 때이다. 교실은 부족하고 학생은 넘쳐나서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했다. 때로는 야외에서 하나, 둘 구령을 붙이며 선생님 따라다니며 학교 운동장 나무숲 그늘에서 공부했다. 책도 공책도 연필도 필요 없었다.선생님의 몸짓과 말씀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부모님과 어른들에 대한 예절을 하나둘 배웠다. 바람이 불어 운동장 흙먼지를 덮어쓰기도 했지만, 그런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이나 들로 돌아다니면서 흙과 나무와 노는 것이 일상생활로 자리 잡혔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친숙한 자연이 교과서이었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으로 마을 어른들에게 꼬리를 문 질문을 쏟아내면 아예 손을 내저으면서 그만 물어보라고 하시면서 학교 선생님에게 여쭈어보라고 했다. 궁금한 질문은 교실보다 야외에서 더 많았다.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학교는 없었다. 학문과 예절은 지방 서원에서 가르쳤다. 학문뿐만 아니라 덕망 있는 조상을 배향하기도 했다. 오늘 명품 노거수 탐방은 고즈넉한 숲속 운곡서원에 있는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78번지 은행나무 노거수를 찾았다. 서원과 은행나무는 그 옛날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운동장 나무숲 아래에서 글짓기 공부도 하고 숲과 나무를 대상으로 그림도 그렸다. 달리기할 때 목표물이 되거나 반환점이 되었다. 쉬는 시간에도 나무숲에서 놀았다. 숲과 나무는 교실이고 놀이터이며 교과서이고 친구였다.운곡서원은 조선 정조 1784년 세워져 안동 권씨 시조이자 고려 개국 공신인 권행 선생과 그의 후손 권산해, 권덕린 공을 배향하고 있었다. 오늘날 지방사립학교로 청소년을 교육했다. 서원 동쪽 계곡 용추대 위에 유연정(悠然亭)이 세워져 주위 자연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운곡서원과 유연정, 은행나무는 한 세트로 여겨졌다. 나무 아래 펼쳐진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 숲속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바람 소리, 파도처럼 물결치는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등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자연의 소리가 합쳐진 화음은 마음을 평온케 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고 천지의 소리에 몸을 맡겼다.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370년을 훌쩍 넘긴 은행나무의 장성한 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경이롭다. 3m나 쭉 뻗어 올린 하나의 힘찬 줄기가 다시 여러 가지로 나누어 하늘로 솟구쳤다. 거침없음과 거대함에 놀랍다. 키가 무려 30m, 몸의 둘레가 6m로 어른 네 사람이 팔을 벌려 안아야 할 정도이다. 앉은 자리의 폭 지름이 26m나 되니 덩치만으로도 주변 모두를 압도하고 있다.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노란 단풍잎은 또 어떠할까, 바닥을 수놓은 노란 융단은 얼마나 부드러울까. 아기 이불 같은 부드러운 융단을 살며시 밟으면서 걷는 느낌은 또 어떨까. 수나무라 노란 은행은 볼 수 없지만, 대신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 않아 좋다. 은행나무의 연륜과 거대함, 그리고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진작 중요한 것을 놓칠 뻔했다. 눈의 현혹에서 벗어나 행단에서 제자에게 효도를 가르치는 공자를 상상해 보았다. 공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 문명권에 깊은 영향을 끼친 세계 3대 성인 중 한 사람이다.많은 사람이 운곡서원의 은행나무 노거수를 찾는다. 은행나무의 웅장함과 단풍의 아름다움만 즐길 것이 아니라 공자의 효에 대한 가르침을 자녀들에게 한번 상기시켜 주면 어떨까. 요즘 효를 물질적으로만 하려는 자녀들도 있는 듯하다. 효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효는 진정한 효가 아니다. 실제로 공자는 효가 도덕의 완성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라고 보았고, 최대의 덕목인 인(仁)도 효를 통해서 얻어진다고 보았다.효는 부모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부모를 생명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효도의 목적은 부모와 자식을 모두 번영하게 하는 것이다. 공자는 가사(家事)를 돌보는 것, 그 자체로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라 말했다. 이것은 가정 윤리가 단지 개인의 일일 뿐만 아니라 가정을 통해, 그리고 가정에 의해 공동의 선이 실현된다는 것을 말한다. 무너져 가는 가정 윤리를 운곡서원 은행나무 노거수를 통해 공자의 효 사상을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화석식물이라 불리는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불교와 유교가 도입되면서 향교, 서원 등에 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무는 우리의 스승이라 했거늘 공손수(公孫樹)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은행나무를 보면서 효도와 자애를 가슴에 새겨본다.운곡서원 은행나무 노거수 천연기념물 지정됐으면…은행나무(Ginkgo biloba L.銀杏)는 중국이 원산지이다. 암수딴그루로 움직이는 정자(精子)가 있는 식물로 유명하다. 1문 1강 1목 1과 1속 1종만이 현존하는 식물로 화석식물이라고도 한다. 새, 다람쥐, 청설모 등 동물들은 은행 종자를 먹지 않는다. 운곡서원(雲谷書院)의 은행나무 노거수는 권종락이 단종 때 권산해의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서 서울을 왕래할 때 영주 순흥에 있는 큰 은행나무의 가지를 꺾어다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가까이에 도연명의 자연사상을 본받기 위하여 유연정이 세워져 있다. 운곡서원과 유연정 그리고 은행나무를 한 세트로 그중 은행나무 노거수를 도 기념물이나 천연기념물로 품격을 높여주면 어떨까 싶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3-11-08

늘 한자리서… 위안과 용기 주는 가르침의 산실

요즘 아침 산책하다 보면 심심찮게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시민들을 만난다. 다양한 종류의 강아지에서부터 어미 개까지 촐랑거리며 걷기도 하고 뛰면서 주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때로는 큰 덩치의 험상궂은 불도그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면서 주춤거리거나 멀찌감치 떨어져 걷게 된다.반려견 주인은 괜찮다고 하나 그것은 그들의 생각이고 지나는 나는 그렇지 못하다. 더하여 가끔 반려견들이 본 변이 산책길에 그대로 방치되어있는 것을 보면 그리 유쾌하지만 않다. 날이 갈수록 주변을 돌아보아도 그렇고 언론 보도에도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반려동물을 키우는데 드는 먹이, 치료 등 그에 따른 경제적 시장도 엄청나게 커져만 간다. 키우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유기되는 반려동물도 늘어나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현실이다. 반려(伴侶), 사전에서는 동무, 동반자로 표현한다. 사회가 다원화된 만큼 각자의 반려 또한 기호와 사정에 따라 다원화되는 추세다. 나의 반려는 노거수(老巨樹)다. 오래전부터 반려목 노거수를 키우고 있다. 아니 나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 더 맞겠다. 내가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위안과 용기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경주 토함산 자락 외동읍 괘릉리 328번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소나무이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경배의 대상인 노거수가 내 마음 안 깊숙이 자리한지도 오래 되었다. 마을 주민들에게도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경외하다. 언제 찾아가도 늘 한자리에 머물면서 곧은 절개와 푸름을 자랑한다. 그를 보면 허물어졌던 내 의지도 되살아나고 흔들리는 정의감도 바로 선다. 무언의 가르침, 스승이나 다름없다.20년 전에 처음 만났다. 지금은 한 개지만 그 당시에는 당집을 2개 가지고 있었다. 뿌리에서 뻗어 나온 힘찬 줄기도 4개나 되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웅장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푸른 솔가지의 아름다움에 반해 ‘노거수 생태와 문화’ 책 표지 사진으로 사용했다. 그간 이 반려목 소나무 노거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줄곧 용기를 얻었다.노거수는 몸통의 둘레가 무려 10m이다. 그의 키와 맞먹는다. 나뭇가지는 아래로 늘어 떨어져 땅과 맞닿을 정도이다. 푸른 하늘 공간에 배열한 마디마디 굽은 잔가지의 모습은 예술작품 같고 꽈리를 틀고 있는 뱀처럼 붉은빛을 띠고 푸른 솔잎을 입에 물고 내려다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 누구든지 한번 접하면 황홀함에 넋을 잃고 그의 품속으로 빨려들게 된다. 반려목 노거수에 기대어 두 팔로 감싸 안고 얼굴을 갖다 맞댔다. 가을 햇살에 따뜻한 온기가 내 얼굴에 전해 왔다. 숨을 깊게 들어 마시다 뱉곤 했다. 솔향이 혈액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잡념이 사라지니 마음이 편하다.생명의 역사 속에서 단일 생명체로 가장 몸집이 크고 오래 사는 생명체는 노거수가 아닐까 싶다.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중심 역할을 함은 물론이다. 주민들은 매년 공동 제사를 지낸다. 마을 수호신을 존중하는 예(禮)다. 동제를 통하여 마을 주민들은 화합과 결속의 동기를 다지는 등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곤 한다. 노거수 생태계가 동민들에게 철학적 사고를 담아내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노거수와 당집이 있는 공간은 신성함의 발로다. 출입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연 그 자체를 신격화하고, 간혹 가지가 부러지거나 자연 고사하더라도 가져가 사용하지 않는다. 방치함으로써 생태적으로 분해자, 생산자, 소비자라는 고리로 자연순환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자연보호 최상의 방법이다. 고서를 들춰보면 우리 조상의 나무 사랑은 그 어느 민족도 따라올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반려동물 키우듯이 반려목 노거수를 키워보면 어떨까. 헤르만 헤세는 ‘나무야말로 진리를 말하는 가장 훌륭한 설교자라고 고백하였다.’ 그렇다. 마음이 이끄는 곳, 나만의 노거수를 찾아서 그곳에 머물면서 자연과 동화되어 보자. 자연에 대한 경외감, 평온함, 충만감과 고립감에서 탈출하여 이웃에 대한 유대감, 삶에 대한 애착심 그리고 이 모든 것에 교감하면서 감사의 마음이 몸과 마음속에 스며들고 또 우러나올 것이다. 내 마음속에 안고 있는 고민의 문제도 가을 햇살에 영글어 가는 벼알처럼 알곡으로 변할 터이다.아프로디테 말고는 ‘이 세상에서 꽃만큼 사랑스러운 것도 식물만큼 소중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인류 삶의 진정한 모체는 이 대지를 뒤덮고 있는 녹색식물이다. 녹색식물이 없다면 우리는 숨 쉬지도 먹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나무가 존재함으로써 덩달아 존재하는 작은 생명체일 뿐이기에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나무의 존재를 절대시해야 한다’라고 했다. 나는 식물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 그것은 영적인 충만감에 젖어 있는 식물들의 심미적 진동, 에너지 파동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거수는 이제 나의 반려목이 되었다. 기독교를 창시한 예수의 말씀을 담은 성경에도 에덴동산에서 금단의 열매를 맺는 나무 이야기를 하였고,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역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공자 역시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우리 주변 명찰이나 서원에 은행나무와 회화나무가 있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에는 고택마다 노거수가 있다.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승이며 가르침의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요즘도 나홀로 명품 노거수를 탐방하는 길은 행복하다. 많은 가르침을 받고 또 즐기고 있다. 반려동물처럼 경제적으로 부담도 없고, 여행을 간다고 어디다 맡길 필요도 없다. 반려목 노거수는 자연이 연출하는 사계절의 아름다운 작품을 늘 품고 있어 무상으로 감상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쉽고 가치 있는 일은 없을 듯하다. 인간과 나무와 관련된 모든 것을 산림문화라 부른다. 시나 수필, 소설을 가미시켜 삶의 질을 높여 주는 표현 활동에 대해선 산림 문학이라 나름 정의해본다. 오늘도 나홀로 노거수 생태와 문화를 탐방하면서 거대함, 숭고함, 아름다움을 노래한다.나무사랑외동읍 괘릉리 328번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소나무는 나이가 320살쯤 된다. 마을 주민들의 극진한 보살핌과 정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고령의 이 노거수는 지금 상처가 덧나 안타까움을 더한다. 아예 한줄기는 태풍에 부러진 채 땅에 누워있다. 다른 한 줄기는 반쯤 부러져 다른 동료 줄기 가지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부러진 한 줄기는 생명이 간당간당하면서도 주민이 쥐어준 지팡이에 의존해 끈질긴 생명줄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세파 속에 다소 힘에 부쳤는지 줄기 모두 서쪽을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자라고 있다. 자연에 동화된 그 모습을 보니 경이롭기까지 하지만, 노거수는 부러진 몸 줄기 사이사이로 염증을 앓고 있다. 빗물이 스며든 것이 병을 유발한 원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호수나 천연기념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고통이 심할까하는 생각에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내 눈물샘을 자극한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3-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