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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상에서 가장 키 작은 남자의 노래

의학 역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인 탈리노마이드 기형아 출산 사건 피해자로 1959년 11월 독일에서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팔 없이 어깨에 손이 달려있습니다. 손가락은 왼손 4개, 오른손 3개뿐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키가 134cm 밖에 자라지 않습니다.심성이 유난히 고왔던 이 아이는 목소리 또한 빼어나게 아름다워 노래를 부르면 주위 사람들의 영혼이 맑아집니다. “토미, 너는 할 수 있어. 네가 원하는 음악을 계속하렴!”토마스 크바스토프는 음악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18세 되는 해 하노버 음대에 지원하지요. 손가락이 일곱 개 뿐이라 오디션을 볼 기회도 받지 못하고 입학을 거절당합니다. 굴하지 않고 독학으로 성악을 공부하지요. 법학을 전공해 하노버 대학에 들어간 후 학교 앞 재즈 바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수많은 스승들로부터 성악 기법들을 전수받습니다. 스승은 CD음반입니다. 졸업한 후에는 은행원으로 취직합니다.1988년. 토마스 크바스토프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지도 않은 채 열악한 신체 조건을 넘어 뮌헨 ARD국제콩쿠르에 도전한 겁니다.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입니다. 이 대회 성악 부문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하며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때 그의 나이 30세.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를 세상에서 가장 잘 부르는 최고의 성악가 디트리히트 피셔디스카우의 찬사를 받으며 혜성같이 무대에 데뷔하지요.토마스 크바스토프는 이후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쇼스타코비치 음악상, 에든버러 국제 음악 페스티벌 음악상, 파리 성악 음반 아카데미 최우수상 등 남들은 하나도 받기 힘든 최고 권위의 상들을 휩쓸며 바리톤 분야에서 최고의 반열에 오릅니다. 2012년 은퇴하기 전까지 20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전 세계에 감동의 무대를 선물합니다.어깨에 붙은 그의 손. 작은 키에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지닌 그가 무대에 올라 슈베르트의 데어 린덴바움(보리수)를 노래하면 청중들은 꿈길 속으로 빠져듭니다. “성문 앞 우물가 서 있는 보리수 한 그루. 나 보리수 그늘 아래 단 꿈을 보았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겨 놓고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아온 보리수나무 밑. (중략) 그곳을 떠나 오랫동안 이곳저곳 헤매도 아직도 들리는 가지의 속삭임. 여기로 와서 안식을 찾으라.”독학으로 성악을 마스터하고 세계를 울린 크바스토프, 그 작은 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보리수 가사 속에서 우리 꿈을 더듬거리며 찾아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04

무엇을 버릴 것인가?

2011년 일본 센다이. 유루이 마이 씨는 낡은 집에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들에 파묻혀 살고 있습니다. 회사 일이 바쁜 그녀 역시 자기 방조차 정리할 여유 없이 정신없이 사는 중입니다.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낡은 집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물건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며 가족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합니다. 무너져버린 집에서 손전등과 비상식량을 찾으려 해도 물건이 너무 많아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는 경험을 하지요. 집 밖으로 몸을 피해 빠져나오는데 그 순간 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립니다. 그녀는 결심하지요. “이런 집에서 두 번 다시 살고 싶지 않다.” 최소한의 필요한 물건만 엄선해 집에 두기로 합니다.“최종 목표는 트렁크 하나에 다 담을 수 있는 정도의 물건만 남기고 사는 것이에요.” 그녀는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대지진의 경험 이후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다’ 4단 만화 시리즈를 연재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남편과 어머니, 두 살배기 아들, 고양이 네 마리와 함께 지내는 마이 씨의 집은 책 제목처럼 거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실에는 테이블 하나 의자 네 개. 수납공간 밖으로는 일체 물건이 보이지 않는 주방, 밥솥과 전자레인지, 냄비 3개, 프라이팬 2개, 12개의 식기와 컵이 전부입니다. 욕실에는 비누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삶의 본질을 제대로 누리고 찾기 위해 물건을 버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뺄셈의 미학을 누리는 삶입니다. 덧셈만이 삶의 지름길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과잉 소비 조장 풍조에 속지 않고 불필요한 것들을 일절 소유하지 않기로 결단하는, 소박한 행복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음은 반가운 현상입니다.삶의 뺄셈에 있어 세계 챔피언은 세속의 삶을 모두 버리고 숲으로 들어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아닐까요?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가르치는 일에 잠시 종사하기도 했습니다만, 물욕과 탐심으로 치닫던 미국 초기 자본주의 모습에 염증을 느낀 그는 숲속에 오두막 한 채를 짓고 단순한 삶을 시작합니다. 1845년. 그가 숲으로 들어가면서 남긴 말입니다. “삶이란 너무도 소중한 것. 나는 삶을 깊게 살아보고 싶었고 삶의 정수를 끝까지 마시고 싶었고 삶이 아닌 것은 모두 없애 버리기 위해 강인하고도 엄격하게 살고 싶었습니다.”먹구름 너머 눈부신 삶을 만나기 위해서는 깃털처럼 가벼워야 힙니다. 아름다운 인생 소풍을 위해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03

나를 덮고 있는 진흙에 대해 (2)

조사결과 역사의 비극이 스며 있는 불상인 것으로 밝혀집니다. 당시로부터 200년 전인 1765년, 태국과 인접 국가인 미얀마와 사이에 큰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태국은 참패를 당합니다. 미얀마 군대가 수도 방콕을 함락하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지요. 당시 사찰에 황금 불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보물을 약탈당할 것은 뻔한 일입니다. 이때 한 수행자가 묘안을 제시합니다.“불상에 진흙을 덧씌웁시다!” 황금 불상은 진흙 불상으로 감쪽같이 둔갑했고 예상대로 이 무겁고 평범한 진흙 불상은 약탈을 면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 참여했던 이들이 모두 학살당해 200년 세월을 원래부터 진흙 불상인 것처럼 흘러내려왔던 것으로 밝혀집니다.고전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클래식(classic)은 라틴어 클라시쿠스가 어원입니다. 클라시쿠스에는 고전이라는 의미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라틴어 클라시쿠스는 함대를 의미하는 클라시스의 형용사 형입니다. 로마시대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국가에 함대(艦隊)를 기부할 수 있는 거대한 부자들을 의미하는 단어가 클라시쿠스입니다. 그저 돈만 많은 계급이 아니라 사회 전반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품격과 부를 동시에 갖춘 명문가를 클라시쿠스라고 일컫습니다.미국의 천재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아이들은 천재로 태어난다. 그러나 99.9%의 아이들은 부주의한 어른들 때문에 자신의 천재성을 순식간에 박탈당한다.”인생은 누구나 할 것 없이 5천500㎏의 황금으로 이뤄진 존재들입니다. 전쟁이나 비극, 부주의한 어른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흙으로 뒤덮인 채 원래부터 그런 존재인 양 가짜 나에 속아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클라시쿠스의 DNA를 갖고 태어난 위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를 덮고 있는 진흙들, 우리 시야를 막고 있는 검은 흙덩어리들을 떼어내야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진흙을 털어내는 도구 역시 클래식이라는 점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위대한 작품들,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일이 내 안의 위대한 거인 클라시쿠스를 깨우는 공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 울림이 수십 년 세월 동안 우리를 덮고 있던 진흙을 털어낼 수 있는 진동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5천500㎏ 황금의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며 하루를 살아도 제대로 살아가는 인생이지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클라시쿠스를 깨우는 고전과의 만남. 지금과는 다른 5년 후를 기약할 수 있는 새로운 변화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02

나를 덮고 있는 진흙에 대해 (1)

방콕 기차역인 후아 람퐁 주변은 개발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야오와랏 거리에는 가로 10m, 세로 10m쯤 되는 조그마한 사찰이 있습니다. 주지 승려는 근심이 가득합니다. 사찰을 관통하는 도로가 뚫린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이곳에는 거대한 진흙 불상이 있습니다. 높이가 3.5m, 무게가 5t이 넘는 커다랗고 우아한 예술품입니다. 석굴암 본존 불상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옮길 수가 없어서 기중기를 동원합니다. 거대한 불상에 손상이 없도록 천으로 감싸고 그 위에 두터운 비닐로 포장한 후 나일론 끈으로 결박합니다. 지붕을 뜯어내고 크레인에서 내려온 고리에 불상을 걸어 올립니다. 조그만 충격에도 진흙 불상은 손상을 입을 수 있기에 작업은 세심하게 이뤄집니다.오랜 노력 끝에 트럭에 불상을 싣고 옮기는 데 성공하지요. 새로 이전해 안치할 곳에 불상을 옮겨 놓고 신축 사찰 지붕 공사를 완성할 예정입니다. 포장을 뜯는 순간 비명 소리가 들립니다. “아악!”그토록 조심스레 운반했건만 불상 중심부에 거대한 틈이 발생했습니다. 머리부터 가슴 배꼽에 이르기까지 크랙이 쫘악, 회복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손상이 심합니다. 긴급 대책 회의가 열립니다. 문화재 전문가들이 달려와 검토합니다. 사다리를 설치하고 안면 쪽 손상 부위를 살피던 문화재 전문가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랜턴을 비추며 크랙 사이를 살펴볼수록 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갈라진 진흙 틈에서 무언가를 본 것입니다. “반짝!”신축 사찰은 폐쇄 명령이 떨어집니다. 불상은 거대한 암막으로 전체 모습을 가립니다. 아무도 이 작업을 볼 수 없도록 하라는 정부의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수일 동안의 작업을 거친 후에 암막을 걷어냅니다. 허가를 받은 작업 담당자와 주지 승려, 정부의 문화재 담당관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눈앞에는 거대한 황금 불상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1957년,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황금 불상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 순금 5천500㎏으로 판정합니다. 전 세계 황금 불상으로는 최대 크기, 지구에 존재하는 금덩어리로는 가장 큰 것으로 드러납니다. 약 1억9천6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2천200억 원의 가치를 지닌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진상 조사를 시작하지요. 어떻게 이런 진귀한 보물이 진흙 불상인 채로 수백 년 동안 내려오게 되었는가? 모두가 궁금해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01

먹구름 너머 눈부신 세상을 만나려면

그 해가 반쯤 지나갔을 때, 페스트에 휩싸인 그 도시에 여러 날 동안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오랑 시민들이 특히 두려워하는 것인데 그 이유인즉, 이 도시가 세워진 곳이 고원 위인지라 바람은 아무런 자연적 장애도 만나지 않아 더할 나위 없이 거칠게 거리로 불어치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3부’.알제리 북부 항구 도시 오랑에 페스트가 출몰합니다. 쥐들이 피를 토하며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합니다. 도시는 페스트의 창궐로 폐쇄됩니다. 도시 안에 갇혀버린 사람들. 카뮈는 이들이 페스트를 겪으며 무기력해지는 참상을 그립니다. 고원 위로 불어와 도시를 관통하는 칼바람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듭니다. 페스트균이 바람을 타고 도심 한복판까지 파고들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지요. 날씨는 삶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맑고 햇볕 따스한 날은 왠지 넉넉하고 기분 좋고 습한 날씨에는 괜히 짜증 납니다.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날씨에 바람이 거칠게 몰아치면 오랑시 사람들은 죽음이 내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사회적 날씨(social weather)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물리적 날씨와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좁게는 가정으로부터 직장, 학교, 지역사회, 넓게는 국가, 민족, 인류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내가 속한 사회의 분위기가 끼치는 영향을 날씨에 빗댄 표현입니다. 폭우가 몰아쳐도 번개가 번쩍여도 비행기는 이륙을 강행합니다. 안전하게 이륙만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먹구름을 뚫고 올라갈 수 있으면 그 위에 눈부신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먹구름 아래는 천둥이 요란하고 비가 쏟아진다 해도 구름 위에는 찬란한 태양, 짙푸른 하늘, 내려다보면 아름다운 뭉게구름이 끝없이 펼쳐지기 때문이지요.사회적 날씨에 휘둘리지 않는 주도적인 삶의 비결은 먹구름 위로 뚫고 올라갈 수 있는 내면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 내면의 힘을 엘리베이션 파워(Elevation Power)라고 합니다. Elevation에는 ‘위로 올라가다’라는 뜻 이외에도 ‘고결한’이란 뜻도 있습니다. 부단히 내면의 정원을 가꾸는 정성이 이런 고결한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날씨는 변화무쌍하게 계속될 것입니다. 날씨에 영향을 받는 반사적 삶이 아닌, 내면의 가치에 이끌려 살아가는 주도적 삶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먹구름 위 눈부신 삶은 내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는 목적지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30

졸업식 날 비가 안 오는 이유

1979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페어(PEAR)연구소에서는 사람의 의식이 물질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하는 주제에 대해 흥미로운 연구를 시작합니다. 연구는 프린스턴 대학의 로저 넬슨(Roger Nelson) 박사의 호기심에서 비롯합니다.로저 넬슨 박사는 대학 졸업식날만 되면 흐렸던 날씨도 이상하게 갑자기 맑아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이런 현상에 호기심을 품고 넬슨 박사는 최근 30년 동안 프린스턴 대학교의 졸업식 당일과 전날, 졸업식 다음 날의 날씨 통계치를 조사합니다.30년 동안 프린스턴 대학의 졸업식 당일에 대학과 인접한 6개 타 도시의 강우 확률은 33%였습니다. 하지만 지역의 중심에 있는 프린스턴 대학 교정에 비가 내린 경우는 28%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더 이상한 것은 졸업식 전날에는 비가 왔더라도 졸업식 당일에는 돌연 비가 그친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한 예로 1962년에는 졸업식을 마치자 마자 그 순간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졸업식이 끝날 때까지 참고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지요. 연구소가 내린 결론은 수천 명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날씨가 좋기를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소망을 품으면 실제로 그것이 현실로 나타날 확률이 높아집니다. 우리가 행하고 표현하는 감사나 긍정의 언어들은 실제로 파동(wave)이고 에너지(energy)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프린스턴 대학 PEAR연구소의 해석입니다.80세가 넘은 한 소설가는 닭에게 실험을 했습니다. 이유는 어느 날부터 닭들이 알을 잘 낳지 않기 때문이었지요. 금순이라고 이름 붙인 닭에게 매일 “감사해요. 금순씨” 이렇게 말합니다. 진심을 담아 미소를 머금은 채 말입니다. 그러자 금세 변화가 찾아옵니다. 하루 건너 알을 낳던 금순씨가 매일 알을 낳기 시작한 겁니다. 오순이라 이름 붙인 닭은 3일에 하나 낳던 것이 점점 주기가 짧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소설가는 말합니다. “예쁜 이름을 붙인 닭들이 더 큰 알을 낳아요!”2100년 전, 로마의 키케로는 프린스턴 대학교 실험을 예견이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모든 미덕 중 최고이며 다른 모든 미덕의 뿌리이다.”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이롭습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감사. 내 마음이 스치는 곳마다 감사. 손길이 닿는 곳마다 따스한 감사. 오늘 하루는 감사라는 에너지로 충만한 멋진 날로 만들면 어떨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27

인간 관계의 지혜

아기의 해맑은 미소를 떠올려 보세요.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는 즐거운 감정을 느낄까요? 상대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기가 자라서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빛나게 할까 라는 기대감은 속으로 누구가 갖고 있겠지만, 당장에 이 아기가 어떤 행동으로 나를 만족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서로 행복한 거지요. 아기도 방긋 웃고 나도 웃으며 화답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욕심이 끼어들지요.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수많은 비교와 기대가 매일 마음을 파고듭니다. 해맑은 미소와 행복감 대신 좌절과 비교를 맛보기 시작하지요.직장 생활에서도 정작 어려운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과 벌어지는 관계가 대부분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관계’는 어려운 것일까요? ‘기대감’ 때문입니다. 관계가 어려울 때는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주위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관계는 ‘상대가 내 기대를 충족시켜 줄 것이라는 심리적 계약’을 맺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기대가 충족이 되지 못할 때 관계 가운데 실망감이 스며들기 시작하고 더 이상 신선함도, 발전도 찾기 어렵습니다. 능력에 벗어나는 일을 장담하거나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함부로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을 때 애매모호한 태도로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행동은 지혜롭지 못합니다.나 또한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관계가 악화되는 이유는 상대가 나에게 실망하거나 내가 상대에게 실망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원인은 각자의 기대치에 서로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대에게 내가 무언가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가장 위험합니다. 그런 마음을 갖는 순간 상대방 행동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게 마련이고 이는 곧 실망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만 낮추면 어떨까요?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긍정적인 느낌을 받게 되고 좋은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득도의 경지에 이른 분들은 인간 관계에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겠지요. 우리도 이런 태도로 담담하게 살 수 있다면 작은 손길과 눈빛 하나에도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오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지혜는 아낌없이 베풀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깨끗한 마음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26

만약 ‘감사’를 잊고 살았다면 (2)

고장률이 0.44%였던 기계가 실험 이후 0.29%로 낮아집니다. 부공장장의 호기심이 회사 전체를 움직입니다. 전사적으로 실험을 확대하지요. 기계에 감사 스티커를 붙입니다. “고장나지 않아 고마워”라는 식의 감사 메시지를 전합니다. 한 직원은 말합니다. “기계가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지요. 고장률이 낮아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거짓말처럼 고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2010년 0.23%였던 고장률이 실험 1년 만에 0.17%로 뚝 떨어진 것입니다. 2012년에는 다시 0.12%로 줄어듭니다. 2년 동안 52%가 감소한 수치입니다. 야간 돌발 호출 건수도 2010년 899건에서 2012년 320건으로 줄었습니다. 과연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요? 자체 조사결과 비결은 따로 있었던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설비를 관리하는 직원들이 이 운동을 시작한 이후에 전보다 기계에 더 관심을 보인 것이지요. 기름칠도 신경 써서 하고 설비 체크도 예전과는 다른 태도로 임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반도체 부품을 제조하는 N사에는 스퍼터(sputter)라는 50억원짜리 장비가 있습니다. 365일 24시간 풀 가동해야 하는 이 기계가 에러로 멈추면 손실이 큽니다. 월 평균 10건 정도가 에러가 발생합니다. 손실액은 약 1억7천만원입니다. 직원들은 스퍼터에 이렇게 써 붙입니다. ‘고장 ZERO 감사합니다.’ ‘가동 100% 감사합니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요? 이 운동을 시작한 이후 스퍼터의 고장 횟수가 90% 감소합니다. 월 평균 10회의 고장이 단 1회로 줄어든 것이지요.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 18억원을 절감한 셈입니다.산업체에 감사 운동이 퍼지면서 여러 부작용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이익과 효율에 관심이 많은 탐욕적인 사장이 설비 고장율이 낮아지고, 이익이 증가한다는 것에 착안해 직원들의 내적 동기유발 없이 강제적으로 감사를 시킨다고 해서 과연 성과가 나올 수 있을까요? 오히려 반발심과 부정적인 마음이 더욱 커져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 뻔한 이치입니다. 감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비슷합니다. 강요된 감사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다름없지요. 중요한 것은 거위의 충만한 상태입니다.강요가 아닌, 표정과 눈빛으로부터 마음 가득 담은 진정 어린 감사가 내 안에서 우러나올 수 있다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조금씩 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감사한 새벽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25

만약 ‘감사’를 잊고 살았다면 (1)

한 기업체에서 실제 일어난 실화입니다. 전 직원을 모아 놓고 강사를 초빙해 ‘감사가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특강을 듣습니다. 강사는 다양한 사례를 들며 감사가 왜 중요한지, 어떻게 우리 삶에 긍정의 에너지를 불러오는 원리를 알려줍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부공장장은 직접 테스트해 보기로 하지요. 수퍼마켓에 가서 양파 2알을 사옵니다. 컵에 물을 가득 담고 양파를 올려 놓습니다. 컴퓨터로 출력한 스티커를 각각 붙입니다. ‘A컵. 감사합니다’ ‘B컵. 짜증나!’부공장장의 재밌는 실험에 흥미가 발동한 동료 파트장들과 직원들도 양파 주위를 지나면서 장난삼아 “감사합니다“ 또는 ”짜증나!“를 한마디씩 던지면서 실험을 거들었지요. 며칠 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감사합니다를 붙인 A컵의 양파에서는 싹이 나고 뿌리가 건강하고 길게 자라는 반면, 짜증나 스티커를 붙이고 부정적인 말을 반복해 듣고 자란 B컵의 양파 쪽은 썩은 냄새가 나며 물이 뿌옇게 변하고 시커멓게 변해 버립니다. 부공장장은 의심합니다. 양파가 원래부터 한 쪽은 건강하고 한 쪽은 썩었던 것이 아닐까? 의심합니다. 건강한 양파를 구입해 면밀하게 체크하고 실험을 재개합니다. 첫 실험과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살짝 마음이 움직이지요. ‘이거 뭔가 있는데?’부공장장은 이번에는 실험 재료를 바꾸어 봅니다. 양파 대신 밥(rice)으로 실험을 해 본 것이지요. 결과는 양파 실험과 거의 비슷합니다. 감사의 스티커를 붙이고 긍정의 말을 들은 밥은 부패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지만, 부정의 말을 붙여 놓은 밥은 금방 상하고 곰팡이가 핍니다.각 파트장과 직원들이 이 결과를 함께 지켜보면서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한 직원이 말합니다. “부공장장님. 이 실험을 기계에 한 번 해 보면 어떨까요?” 놀라운 발상이었습니다. 양파나 밥 등은 세포가 있는 유기물이었기 때문에 이런 실험이 어느 정도 효과가 보이는 것은 일리가 있다 해도, 생명이라고는 없는 차가운 기계가 과연 이 실험에 반응을 보일까? 직원들은 갑론 을박 합니다.“까짓거, 돈 한 푼 들지 않는 일이니 뭐가 문제가 될까요? 한 번 실험해 봅시다.”평소 고장률이 높은 기계 한 대를 실험 대상으로 정합니다.그리고 기계에 이렇게 써 붙여 놓습니다.“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 주어 감사합니다.”직원들이 이 기계 앞을 지날 때마다, 감사의 말을 건네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미소 지으며 기계에 인사까지 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24

기대치 위반 효과

미네소타 대학의 심리학자 애론슨과 린다는 재미있는 실험을 합니다. 실험대상 여학생을 뽑아 자신에 대한 지인들의 뒷담화를 몰래 듣게 합니다. 이후 이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호감도를 평가합니다. 지인들은 모두 네 사람입니다.A 항상 칭찬만 계속하는 사람. B 처음부터 끝까지 비난만 하는 사람. C 처음에는 비난하다가 나중에 칭찬으로 끝내는 사람. D 처음에는 칭찬하다가 나중에 비난으로 매듭짓는 사람.피실험자는 과연 어떤 사람에게 가장 호감을 느꼈을까요? 애론슨과 린다는 이 실험을 80회 새롭게 리셋하고 거듭 반복합니다. 각각 다른 여학생을 뽑아 동일한 상황을 설정하고 실험을 꾸준히 진행해 본 겁니다. 실험 결과 의미 있는 패턴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결과를 예측하셨나요? 교수들은 가정하기를, 계속 칭찬만 했던 A가 가장 호감도가 높고 비난을 계속하며 멈추지 않은 B가 가장 호감도가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을 뒤엎었습니다. 호감도가 가장 높은 사람은 C였습니다. 처음에는 비난하다가 나중에 칭찬으로 바뀐 경우입니다. 반대로 호감도가 가장 낮은 사람은 D였습니다. 처음에는 칭찬하다가 나중에 비난으로 끝냈던 경우지요.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기대치 위반 효과(Expectancy violations theory)라고 합니다. 상대방이 내가 가지고 있는 기대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그에 대한 평가가 일반적인 상황에 비해 매우 달라지는 현상을 의미하지요. 상대방의 행동이 내 기대치를 초과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면 호감, 감동, 긍정적인 평가가 이뤄지지만 상대방의 행동이 기대치에 미흡하거나 기대치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면 반감, 실망,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평소 싹싹하고 말 잘 듣고 효도하던 큰 며느리가 어느 날 한 번 섭섭한 행동 한 번 했을 때 역정을 내고, 평소 쌀쌀하고 까칠하던 둘째 며느리가 어쩌다 한 번 효도하면 살살 마음이 녹는 시부모들의 심리가 바로 기대치 위반 효과 때문이랍니다. 대단한 웅변술과 뛰어난 외모로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초반에 큰 인기를 얻었던 엘 고어는 결국 막판에 조지 부시에게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부시는 어눌한 언변에 뛰어나지 못한 외모였지만, 기대치 위반 효과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지요. 심리학에서 배우는 관계의 지혜입니다. 상대에게 지나친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23

책만 보는 바보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펑펑 운 적이 있습니다. 이덕무 이야기를 담은 ‘책만 보는 바보’였습니다. 이 책의 문장들이 눈물을 쏟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등을 보이며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를 향해 눈길을 돌리는 것만 같다. 책 속에 담긴 누군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 오래된 책들에 스며 있는 은은한 묵향은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준다.”이덕무는 먹을 거리가 없어 그토록 좋아하는 책을 내다 팔아야 하는 슬픔을 견딥니다. 먹는 것보다 굶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상. 서얼 신분 때문에 관직으로 진출할 수도,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할 수도 없어 가난을 대대손손 물려줄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가난은 겨울에 더 비참한 법이다. 불을 때지 못해 온 식구가 추위에 시달리고 병들기 일쑤다. 한 번 발작이 시작되면 목과 가슴이 쓰리도록 아프고 온몸은 격렬하게 흔들려 나중에 뱃가죽까지 아파오는 것이 기침병이다. 애써 소리 내어 책을 읽고 또 읽는다. 책 읽기의 이로움을 나는 이렇게 써 두었다.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 글귀가 잘 들어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는 든든한 벗들이 있어 괴로움과 서글픔을 견딥니다. 박제가, 홍대용, 박지원, 유득공, 이서구, 백동수. 이들이 스승과 친구되어 곁을 지킵니다. 그들은 백탑 아래 모여 서로의 배고픔을 달래 주고 책을 교환했으며 밤 깊도록 함께 노래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고단하지만 품격있는 삶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정조는 그를 발탁해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용하지요. 반딧불이 몇 십 마리 모아 명주 주머니에 넣고 밤에도 책을 사랑한 차윤. 추운 겨울 한 글자 더 알고 싶어 눈밭에 책을 비춰가며 한줄 한줄 읽어내려간 손강. 콜록이며 기침이 멎지 않아도 살을 에는 추위가 온 몸을 파고들어도 책을 읽으며 꿋꿋하게 버틴 이덕무는 한결같은 배움의 열정으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습니다.이번 여름 휴가에는 무슨 책을 고를까, 설레는 고민을 지금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20

임금의 초대를 받은 남자

밤중에 누군가 대문을 두드립니다. “임금의 명령을 전하러 온 사람이오. 임금께서는 당신을 데려오라 하셨소.” 남자는 무슨 일로 임금이 자기를 부르는 지 알 길이 없습니다. 혼자서 궁궐로 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섭니다.남자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를 설득해 궁궐에 같이 들어가자고 요청합니다. 친구는 안색이 변하며 거절하지요. “미안하네. 약속이 있어서 갈 수가 없네.” 두 번째 친구를 찾아갑니다. “자네 말 대로 함께 가기는 하겠지만, 궁궐 안까지는 어렵겠네.” 실망한 남자는 마지막으로 친구 집을 찾아 문을 두드립니다. “걱정 말게. 자네같이 착한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임금이 벌을 내리시겠는가? 내가 함께 가서 혹시라도 자네가 무슨 오해를 받는 일이 있으면 내가 잘 말씀드리도록 하겠네. 서둘러 궁에 가 보세. 12시까지 도착하려면 빨리 가야 할 것 같네.” 남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친구와 함께 대궐로 향합니다.탈무드에서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대문을 두드린 자는 죽음의 사신이지요. 모든 사람은 어느 순간 죽음의 초대를 받는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첫째 친구는 재물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구나 재물이 가장 진실된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재물은 살아 있는 동안 필요한 것이지 죽을 때는 동행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친구는 인맥 또는 가족, 친척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과 친척, 지인이라도 죽었을 때 장례식까지만 함께 하지 무덤 속까지 따라올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친구는 무엇일까요? 탈무드는 선행이라 말합니다. 착한 행실은 그가 살아있을 때는 별로 보답도 해 주지 않고 빛나게 해 주지 못하지만 죽은 뒤에는 영원히 그와 함께 계속 동행한다는 것이지요.초등학교 다닐 때 일일일선(一日一善) 즉 하루에 착한 일 한 가지를 하기 숙제가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제 삶에 강력한 인상을 남긴 숙제였음이 분명합니다. 매일 한 가지 선행을 하기 위해 이리 저리 고심했으니까요. 약한 자들, 결핍 가운데 신음하는 이들, 굶주리고 있는 자들, 소망을 잃고 하루 하루 허무하게 지내는 이들에게 베푸는 우리의 작은 손길과 관심 한 조각이 우리를 살리고 그들을 살립니다. 톨스토이는 말합니다. “선행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 행해진다면, 그것은 이미 선행이 아니다. 목적이 없을 때 비로소 참된 선행이 되는 것이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9

코리안 마마

마더 테레사는 살아 생전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주린 배를 움켜 쥐고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어머니처럼 보살핍니다. 그녀가 50년 넘도록 말과 행동으로 전한 사랑의 메시지는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에 빠져드는 20세기말 인류의 양심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걸어온 길은 단순합니다. 믿음을 갖고 자신을 완전히 내어 주는 것입니다.”피부가 문드러져 썩어가는 나병 환자의 손에 입을 맞추고 악취나는 몸을 씻어주고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를 끌어안는, 자신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나눠주는 희생과 사랑. 마더 테레사는 평소 ‘당신이 크리스천이 된다면 우리는 당신을 도울 거에요!’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적 사랑이 그녀의 목표였습니다.LA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한국인이 있습니다. 미국명으로 글로리아 김(김연응)입니다. LA타임즈는 지면 2개를 빌어 그녀를 조명한 적이 있지요. 글로리아 김은 20년 동안 새벽 2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거리 노숙자들에게 나눠 줄 음식을 준비합니다 새벽 4시면 낡은 승합차에 온갖 음식을 싣고 다리 밑, 공원 구석, 거리 모퉁이를 천천히 돌면서 노숙자들을 발견하면 음식을 나눕니다. 차에는 바나나 2박스, 물 25ℓ, 빵 400개, 200명 분의 스프, 포도와 양말, 옷가지 등이 실려 있습니다. 그녀의 별명은 ‘코리안 마마’. 으슥한 새벽, 그녀 승합차가 거리의 노숙자들에게 나타나면 그들은 “마마” “마마”를 외치며 반깁니다. 둘러서서 따스한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김연응씨의 봉사가 남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노숙자들을 위해 먹을 거리를 제공하는 봉사는 많이 있습니다. 국내도 역 광장 등에서 무료 급식하는 장면들을 봅니다. 종교 단체에서는 급식 행사를 하면서 단체를 홍보하거나 특정 종교를 내세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노숙자들이 숨어 있는 곳을 찾아 다니며 손 내미는 봉사여서 글로리아의 봉사가 남다릅니다.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 희생과 나눔이지요. 글로리아 본인도 70세를 넘은 고령에 관절염과 백내장으로 하루가 힘겹지만, 매일 새벽 200명 이상의 노숙자들을 찾아 다니며 음식을 공급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아무런 조건없이 아무런 이름도 내걸지 않고 순수하게 손 내미는 참된 선행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늘어나는 아름다운 사회를 꿈꾸어 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8

한 소년이 불행에 대처하는 방법

2015년 6월 23일. 필리핀의 의대생인 조이스 토르프랭가(Joyce Torrefranca)는 세부섬 만다우에의 길거리에서 한 소년을 발견합니다. 소년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조이스는 멀리서 소년을 촬영해 페이스북에 올리며 한 문장을 씁니다. “한 아이를 통해 영감을 받았다.”사진 속 소년은 맥도날드 가게 앞 거리에 자그마한 간이 책상을 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맥도날드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고 학교 숙제를 하고 있었던 거지요. 소년의 이름은 다니엘 카브레라(Daniel Cabrera). 5년 전 화재로 집이 불타 없어졌습니다. 3년 전에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지요. 거리로 내몰린 엄마와 카브레라. 엄마는 편의점에서 일거리를 얻고 매장 주인의 가정부로 근무하며 하루 80페소를 법니다. 우리 돈으로 하면 일당 2천원.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엄마는 길거리에서 담배와 사탕수수를 팔며 카브레라를 키워옵니다. 카브레라의 어머니 크리스티나 에스피노사는 말합니다.“아들은 항상 제게 말했어요. 엄마, 저는 이렇게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열심히 공부해서 내 꿈을 이루고 싶어요.”카브레라는 밤에는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소년은 누가 버린 작은 책상 하나와 전 재산인 연필 한 자루를 들고 스스로 맥도날드 매장 옆에 자리를 잡고 공부를 시작합니다. 혹시라도 한 자루 남은 연필을 잃어버릴까봐 연필 끝에 끈을 달아 손에 묶고 공부합니다.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지요.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조이스 토르프랭가의 핸드폰에 찰칵, 그 장면이 찍힌 겁니다. 조이스의 페이스북은 폭발적 반응을 일으킵니다. 9800개의 공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진은 필리핀 전역에 큰 이슈가 됩니다. 나아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지요. 여기 저기서 온정의 손길이 쏟아집니다.맥도날드는 카브레라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합니다. 필리핀 정부도 학용품비로 125만원을 지원합니다. 카브레라는 경찰이 되는 꿈을 꾸고 있지요. 로망 롤랭은 말합니다.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불행은 없다. 가만히 견디고 참든지 용기로 내쫓아 버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소년은 경찰이 되고 싶은 꿈을 이루고 싶은 열망에 용기를 냈습니다. 그 용기가 행운을 불러오고 마침내 자신의 불행을 내쫓아 버립니다. 소년의 눈빛은 세상 어느 반딧불이 보다 찬란하게 빛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7

반딧불이

반딧불이를 직접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온 저는 40대 중반까지 반딧불이를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몇 년 전 미국 출장 길에 뉴욕 브루더호프 커뮤니티에 잠시 체류한 적이 있습니다. 저를 호스팅해 준 가족들과 어느 날 저녁 마을 인근을 함께 산책합니다. 5월 말로 기억합니다. 어스름 해가 질 무렵 들판 곳곳에서 갑자기 반딧불이가 하나씩 둘씩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산책로와 인근 들판, 숲을 가득 메우는 장관이 펼쳐졌지요. 이 공동체에 도착하기 전에 들렀던 맨해튼 마천루 불빛들과 차원이 다른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옵니다.7세기 펴낸 중국 진서(晉書)에 반딧불이가 등장합니다. 동진 때 사람인 차윤(330~400)은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대단한 노력파였습니다. 집안이 가난한지라 밤에 등불을 켤 기름을 살 돈이 없었지요. 자윤은 낮에 흠뻑 빠져 읽던 책을 밤의 어두움에 막혀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상황이 속상했습니다. 돈 있는 집 자제들은 등불을 켜고 밤에도 마음껏 책을 읽습니다.차윤은 밤에도 책을 읽을 궁리를 하다가 반딧불이의 아름다운 야간 비행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지요. 명주 주머니를 벌레 통처럼 만들어 반디를 수십 마리 잡아넣고 거기서 나오는 빛으로 책을 읽습니다.반딧불이 축제로 유명한 무주에서는 1998년 재밌는 실험을 합니다. 형설지공 체험 현장 이벤트를 벌이고 무풍면 계곡에서 잡은 반딧불이 80마리를 1ℓ짜리 페트 병에 모았습니다. 이 불빛으로 1페이지 20자 정도가 들어가는 천자문 책을 너끈히 읽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페이지 당 한자(漢子) 200글자를 배열한 책도 훤히 읽을 수 있었지요.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차윤은 이부상서에 오르고 나중에는 상서랑까지 승진해 유능한 관리로 성장합니다. 진서에는 차윤과 손강의 이야기를 묶어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유명한 사자성어를 만들어냅니다. 여름에는 반딧불이 흐린 불빛으로 밤에 책을 읽고 겨울에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눈에 비친 달빛으로 공부하는 선비들의 치열한 배움의 열정을 빗댄 말로 후대에 큰 영감을 줍니다.열정은 절박함으로부터 나옵니다. 그 절박함을 채워주는 도구가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들은 밤의 어둠과 추위와 궁핍을 책으로 이겨냅니다. 한결같은 배움의 열정이 우리를 흔들어 깨웁니다. 반딧불이의 작은 불빛은 거대한 LED 조명의 화려한 벽 같은 세상 앞에 쪼그라들며 나약해지는 생각을 죽비로 내리치는 참된 스승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6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2)

에이미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지요. “내 키가 굳이 167㎝일 이유가 무엇일까? 마음대로 키를 얼마든지 키울 수도 있어. 작은 사람과 데이트를 하게 된다면 줄일 수도 있지? 스노 보드를 탈 수 있다면 발이 하나도 시리지 않을 거야.”의족으로 사는 장점을 수없이 발견합니다. 마침내 그 질문을 다시 떠올리지요. “내 삶이 한 권의 책이고 내가 그 책의 작가라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담을까?”에이미는 상상합니다. 우아하게 걷는 모습, 세계를 활보하며 여행하는 모습, 스노 보드를 타는 자신을 실제보다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지요. 설원을 가로 지를 때 느끼는 세찬 바람, 흩날리는 머리카락, 미칠 것 같은 속도감을 심장이 쿵쿵거리며 반응할 때까지 치열하게 상상합니다. 그 연습이 에이미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4개월 후, 에이미는 다시 스노 보드를 탈 수 있었으니까요.일을 시작하고 대학공부를 시작합니다. 2005년에는 비영리단체 ‘어댑티브 액션 스포츠(AAS)’를 설립해 장애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이 스포츠 활동으로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2015년에는 ABC방송의 ‘댄싱 위드 더 스타’에도 출연합니다. 정상인들과 춤을 겨뤄 결승까지 진출하지요. 놀라운 에이미의 춤 솜씨에 미국이 열광합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에이미의 트위터에 응원의 글을 남깁니다. 2018년 2월 평창의 장애인 올림픽에서는 스노 보드 여자 크로스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냅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도 출연하지요.책에 사용할 스토리를 개발할 때 작가로서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주인공을 절망의 상황으로 빠뜨리지요. 예를 들면 경청에서는 이토벤이, 쿠션에서는 한바로가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인생의 장벽을 만나도록 설정합니다. 해결책을 미리 생각하고 글을 쓰지 않습니다. 절망 그 자체로 주인공을 몰아갑니다. 작가로서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함께 고민합니다. 실제로 작품의 캐릭터들과 대화도 수없이 주고받습니다. 에이미가 그랬던 것처럼 생생하게 주인공의 눈빛, 표정, 동작, 옷의 감촉까지 느끼면서 상상으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내려 몸부림 칩니다. 하나의 질문이 에이미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 질문을 모두에게 던져봅니다.“당신의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그리고 당신이 그 책의 작가라면 당신은 그 책에 어떤 스토리를 담고 싶으신가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3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1)

라스베이거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녀가 있습니다. 꿈 많은 십대에 소녀는 삶을 뒤 흔드는 질문을 만납니다. “만약 인생이 한 권의 책이고 당신이 그 책의 작가라면 당신은 그 책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은가요?”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라는 책에 눈(snow)이 들어가는 설정을 꿈꿉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보지 못한 삶이 싫었습니다. 자유를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하고 진기한 경험 가득한 스토리를 쓰고 싶어하지요.스무 살이 된 에이미 퍼디는 꿈에 한 발짝 다가섭니다. 눈 많은 솔트레이크로 이사를 간 겁니다. 마사지 치료사가 되지요. 두 손과 마사지용 간이 침대만 있으면 어디서든 돈을 벌 수 있었고 스노 보드를 맘껏 탈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인생에서 주인이 된 기분을 느낍니다. 자신감으로 충만했고 자유로웠습니다.감기 기운이 있어서 조금 일찍 퇴근한 어느 날 오후. 에이미는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산소 호흡기를 달고 생명 유지장치를 매단 채 중환자실에 누워있습니다. 의사들이 원인을 찾기 위해 숨가쁘게 움직입니다. 위급한 알람이 생명 유지장치의 모니터에 울려 댑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생존 확률은 2%. 사투 끝에 원인을 찾아내는데 성공합니다. “박테리아성 뇌수막염.”이제는 치료를 위한 전투를 시작합니다. 에이미는 싸움에서 승리했고 목숨을 지켜내지요. 두 달 반의 투쟁 결과는 참담합니다. 비장과 신장을 잃었고 한쪽 청력이 사라집니다. 무릎 아래를 절단합니다. 퇴원하는 날 휠체어에 앉아있는 그녀는 조각조각 이어 붙인 누더기 인형과 다르지 않았습니다.며칠 후 에이미는 사투를 벌일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금속 덩어리 차디찬 종아리. 볼트로 죈 파이프 발목. 노란 고무 발. 두툼한 의족을 신고 일어서 본 에이미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에 사로잡히지요. 고통스럽고 부자유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생각합니다. “이 못생긴 의족을 신고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모험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한 삶을 이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스노 보드와는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걸까?”삶의 이유와 소망을 잃어버린 에이미는 무기력에 빠집니다. 침대만 파고 듭니다. 자고 먹고 또 자고. 고통을 잊기 위해 잠에 빠져듭니다. 의족을 침대 곁에 세워 둔 채로. 괴물같은 저 의족을 신고 세상을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내일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2

문화를 바꾸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막의 개혁자라는 별명이 붙은 텔레마쿠스는 아무도 찾지 않는 이집트 외딴 사막에 은둔하며 하루 빵 한 조각과 약간의 물 그리고 노동과 기도로 수행하며 살아갑니다. 어느 날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로마로 가라. 그곳에 네 일터다. 로마가 너를 부른다.”즉시 로마로 떠납니다. 주말이면 원형극장에서 포로로 잡혀온 검투사들이 서로 칼싸움을 합니다. 한 쪽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잔혹한 경기입니다. 텔레마쿠스가 도착했을 때 경기장에는 8만명 넘는 관중들이 칼 싸움에 흠뻑 빠져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며 광분하고 있었지요.“이것을 막으라고 신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도다.” 텔레마쿠스는 경기장 안으로 뛰어내립니다. 경기가 중단됩니다. 텔레마쿠스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신께서 명령하신다. 이 싸움을 즉시 멈춰라!” 관중들은 이벤트인 줄 알고 폭소를 터뜨리며 함성을 더 크게 지릅니다. 심판은 텔레마쿠스에게 나가라고 지시하고 다시 경기를 재개합니다. 텔레마쿠스는 굽히지 않고 외칩니다. 오랜 실랑이 끝에 심판관은 검투사 한 명에게 텔레마쿠스를 처치하라는 손짓을 내리지요. 번뜩이는 칼날로 텔레마쿠스 배를 찌릅니다. 힘없이 나동그라진 텔레마쿠스는 분수처럼 피를 뿜으면서도 외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신께서 명령하신다. 이 싸움을 즉시 멈춰라!”침묵이 흐릅니다. 숙연한 기운이 관중들의 광기 어린 함성을 순식간에 잠재웁니다. 누군가가 퇴장합니다. 로마 황제 호노리우스입니다. 원로들이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갑니다. 뒤를 따라 관중들이 하나 둘 모두 자리를 떠나고 검투사들도 고개를 푹 숙인채 퇴장하지요. AD 391년 로마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로마에서는 검투사 경기 문화가 사라집니다.텔레마쿠스가 사막으로 나가 은둔자가 된 것은 기다림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먼저 나 자신을 바꾸려는 사막의 구도자들. 그들의 우선 순위는 놀랍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강론 ‘숨은 조화’에 나오는 한 토막입니다. “모든 불행은 그대가 상궤를 벗어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즉시 돌아오라. 그대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본질과 내면적인 존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그대는 더욱더 행복해진다. 본질의 소리를 잘 듣도록 하라. 로고스에 귀를 기울여라.”그대의 귀 기울임과 용기를 통해 왜곡된 문화들이 조금씩 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1

빨리 빨리 vs 뽈레 뽈레

피라미드를 연구하던 영국 고고학자들은 3천년 전에 미라를 발굴합니다. 미라는 손에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는데 밀폐된 상태에 있던 꽃에 공기가 닿는 순간 산산조각 나지요. 주위에 떨어진 몇 알의 꽃씨를 보관해 영국으로 건너옵니다. 3천년 묵은 씨앗이었을테지요. 실험 삼아 씨앗을 땅에 심어 보았습니다. 싹이 트고 건강하게 자라 꽃을 피웁니다. 당시 유럽에는 이런 수종이 없었기 때문에 꽃 재배에 관여했던 스웨덴의 식물학자 ‘다알’의 이름을 따 ‘다알리아’라는 예쁜 이름을 붙입니다.감사, 우아함, 화려함의 꽃 말을 지닌 다알리아는 3천년의 오랜 기다림 끝에 꽃망울을 틔웁니다. 끝도 없는 기다림 끝에 피어난 화려하고 우아한, 감사의 꽃입니다. 생명이란 이렇게 끈질긴 것입니다. 1천년 묵은 연꽃 종자를 출토해 심었는데 건강하게 자란 일이 보고된 적도 있습니다. 헤롯의 궁전에서 발굴된 2천년 전의 야자수 씨앗도 싹을 틔워 열매를 맺은 사건으로 유명하지요. 흔한 가로수 플라타나스 씨앗은 땅에 떨어지면 곧장 발아하지 않습니다. 껍질이 얼마나 단단한지, 땅에서 몇 년을 걸쳐 짓밟히며 껍질이 손상되어야 비로소 발아합니다. 씨앗을 심고 싹 트기를 기다리는 일, 열매를 맺는 일은 허둥지둥 서두른다고 되지 않습니다.농장의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요.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는 일은 벼락치기가 가능할지 모릅니다. 현대 사회는 마감에 쫓겨 몇 날 며칠 밤을 지새며 무언가를 이뤄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농장은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기다림과 성실함을 요구합니다.빨리 빨리! 대한민국을 지금까지 성장시킨 우리 민족의 위대한 DNA이자 온갖 사고를 야기하는 양 날의 검이지요. 우리는 느린 것을 참지 못합니다. 인터넷이 속도가 느린 것을 못 참는 특징이 있기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합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성과 위주의 물질문명이 고유한 멋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원래 우리는 선비 정신을 지닌 느긋하고 품격 있는 문화를 갖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뽈레 뽈레! 아프리카 말인데 빨리 빨리와 비슷한 발음이지만 뜻은 정반대입니다. ‘느긋하게 느긋하게!’내면의 농장을 생각합니다. 잡초와 엉겅퀴를 제거하고 씨앗 뿌리고 몇 달 혹은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설령 3천년이 흐른다 해도 생명이 내 안에 존재하는 한 꽃은 기어코 피어나는 법이니까요. 그대 삶의 농장에 주렁 주렁 열매 가득한 미래가 보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10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 (2)

찰스 블론딘은 폭포의 거대한 굉음을 뚫고 등에 업힌 남자에게 외칩니다. “힘을 빼요! 당신은 이제 찰스 블론딘이오. 내 한 부분입니다. 내가 흔들리면 당신도 흔들려야 해요. 당신이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당신이 노력하면 우리는 둘 다 죽습니다. 나를 완전히 믿고 힘을 빼고 내 일부가 되세요.”두 사람은 목적지까지 건너는데 성공합니다. 숨죽여 보던 관중들은 두 사람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마치 스스로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넌 것처럼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며 열광하고 기뻐합니다. 블론딘은 훗날 남자의 정체에 대해 밝히지요. 자신의 매니저 해리 콜코드(Harry Colcord)였습니다. 만약 그대가 찰스 블론딘의 매니저였다면 과연 그대는 콜코드처럼 행동하실 수 있었을까요? 콜코드의 동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경영학에서는 이 일화를 동기부여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합니다.혹자는 콜코드의 동기를 ‘두려움’이라고 해석합니다. 만약 거절한다면 블론딘은 자신의 매니저조차 신뢰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고 두 사람의 사업은 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서 지원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두번째 해석은 ‘이익’ 때문이라는 겁니다. 두뇌 회전이 빠른 콜코드는 이 사건을 커다란 비즈니스의 기회로 보았던 거지요.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외줄을 타는데 성공한다면 블론딘의 상품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며 폭등할 것을 계산한 겁니다.마지막 세번째 해석이 있습니다. 사랑과 신뢰 때문이라는 겁니다. 콜코드는 이미 찰스 블론딘의 묘기와 그의 능력, 성품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었고, 실력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업힐 수 있었던 겁니다. 마치 엄마가 자기 자식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에도 뛰어드는 것처럼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가 콜코드와 찰스 블론딘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지요. 어떤 해석이 가장 합리적인 추정일까요? 사실 콜코드의 동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워낙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었고 당사자들이 이에 대해 언급한 바가 없기 때문이지요.그대가 이끄는 조직이 국가이건, 도시이건, 혹은 회사이건, 교실 또는 가정이건. 두 사람 이상 모인 곳에서 우리는 언제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더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대가 발걸음 옮기고 딛는 곳마다, 구성원들 사이에 사랑과 신뢰가 차오르고 아름다운 헌신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멋진 일들이 오늘도 가득한 날이시기를 기도합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