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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 (1)

많은 관중들이 침을 꼴깍 삼키면서 한 사나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합니다. 배낭에서 프라이팬을 꺼내 계란을 톡 깨뜨려 오믈릿을 만들어 먹습니다.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저 남자는 길이 338m의 쇠 밧줄 위에 서 있거든요. 48m 아래로는 어마어마한 물 기둥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내는 나이아가라 폭포 위 48m 지점에 설치한 강철 밧줄 위에서 오믈릿을 먹는 중입니다.식사를 마친 이 남자. 입맛을 다시면서 눈을 가립니다. 밧줄 위를 걸어 반대편 목적지에 닿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하지만 이벤트는 이게 다가 아닙니다. 이 남자는 다시 원래 출발지점으로 물구나무서기로 밧줄 위를 걷습니다. 걷다가 도중에 밧줄 위에 누워서 잠깐 쉬기도 하고, 자전거 타고 건너기, 뒤로 걸어 건너기 등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으로 외줄 타기의 신공을 보여줍니다. 중심을 잡아주는 쇠 막대기는 폭포 아래로 오래 전에 던져버렸습니다. 구름 떼처럼 모인 관람객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벤트를 바라봅니다. 160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찰스 블론딘(Charles Blondin, 1829~1897)은 별다른 볼거리가 없던 미국 사회에서 당대 최고의 엔터테이너였습니다. 곡예사은 요즘으로 치면 프로야구 선수나 영화 배우, 연예인을 능가하는 고소득을 올리던 최고의 스타였던 셈이지요.이벤트가 끝나갈 무렵 모여 있는 그는 관중들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은 내가 사람을 등에 업고 이 폭포를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 관중들은 한 목소리로 합창합니다. “네! 우리는 믿어요!” 블론딘은 다시 묻습니다. “내 등에 업혀 이 폭포를 건너갈 사람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 지원해 주실 분 있으십니까?” 열광적으로 성원을 보내던 관중들의 눈길이 바닥으로 향합니다. 누구도 선뜻 나서는 자가 없습니다.찰스 블론딘은 관중석 맨 앞 줄에 있는 한 남자를 지목합니다. “당신은 날 믿습니까?” 남자는 일초도 망설임없이 대답하지요. 벌떡 일어나 찰스 블론딘 앞으로 나옵니다. “난 당신을 믿습니다. 기꺼이 당신 등에 업혀 폭포를 건너보겠습니다.”남자를 들쳐 업은 찰스 블론딘은 심각한 표정으로 38피트짜리 보조 쇠 막대기까지 챙겨 최대한 안전하게 로프를 건너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람들은 감탄하지요. 블론딘의 배짱과 등에 업힌 남자의 용기에 대해 박수를 보냅니다. 몇 십m 전진해 나갈 때 등에 업힌 남자가 움찔합니다. (다음 회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06

가장 뜨거운 것을 담는 가장 차가운 그릇

인위적으로 낮출 수 있는 극저온이 몇 도인지 아시나요? 뜨겁게 가열하는 것은 한계가 없습니다만 낮추는 것은 영하 273도까지가 한계입니다. 절대온도 0도인 영하 273도에서 모든 분자 활동은 정지합니다. 움직임이 없어지는 절대 고요의 세계가 되는 거지요.1911년 네덜란드의 카멜링(Kamerlingh-Onnes, 1853~1926)은 극저온으로 내려가면 전기 저항이 제로가 되는 현상을 찾아냅니다. 초전도체의 발견이지요. 둥근 통을 만들고 그 안에 초전도체 구리선을 돌돌 말아 넣습니다. 통 안에 사람을 넣으면 저항이 제로인 자기장에 사람 몸의 물 분자 저항을 포착해 단층으로 촬영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MRI가 초전도 현상의 응용입니다.핵융합은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단 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바닷물을 한 바가지 퍼서 핵융합 장치에 부어넣고 돌리면 도시 하나가 몇 달 쓸 에너지가 나올 수도 있는 겁니다. 이때 초전도체가 필요하지요. 핵융합 현상 때 나타나는 화염인 플라즈마를 가두어 에너지로 변환시킬 거대한 도넛 모양의 원통을 초전도체로 감싸게 되지요. 1억도 넘는 온도를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물질로 감싸는 방식입니다.유발 하라리가 떠올랐습니다. 혜성같이 나타나 전 인류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며 40대 중반에 세계를 뒤흔든 이 학자는 얼마나 바쁠까요? 유발 하라리는 새벽 한 시간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홀로 명상하며 사색하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밤에도 한 시간 모든 활동을 차단하고 조용히 명상에 잠기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루 두 시간, 분자 활동이 정지하는 극저온의 세계와 같은 고요함이 플라즈마처럼 뜨거운 그의 지성과 학문적 성취, 영향력을 지켜주는 비밀이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1년에 최소 45일 최대 60일까지 세상과 단절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심지어는 책조차 읽지 않습니다. 오롯이 육체로 세상을 느끼고 호흡하는 단절의 시간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모든 성취는 그 고요한 시간에 잉태한 것이라 말합니다. 가장 뜨거운 삶을 살아 내기 위해서는 가장 차가운 단절의 상태, 즉 세상과 완전히 분리해 자신을 돌아보는 절대 고요의 시간이 필요한 것임을 생각하게 합니다.점점 날씨가 뜨거워집니다. 2019년이 정점을 향해 무르익어가지요. 이 여름을 불태울 우리의 열정 또한 플라즈마처럼 활활 타오릅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새벽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04

네 단어 짧은 문장으로 60명을 살린 남자 (2)

공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따스한 감정이 심장에서 혈관을 타고 그의 뇌까지 전달됩니다. 래리는 입술을 열어 그에게 묻습니다. “제가 도와 드릴 수 있을까요? (CAN I HELP YOU?)”네 단어로 이뤄진 질문을 던집니다. 시선을 교환하던 사내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방아쇠에서 뺍니다. 오랜 침묵이 흐르지요. 서서히 두려움에서 평온함으로 실내의 공기가 바뀝니다. 사내가 말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겠소?”래리는 조용히 괴한을 껴안고 등을 토닥입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사내를 위해 래리는 속삭이듯 기도합니다. 맨 앞 좌석에 앉힌 다음 새해 맞이 모임을 계속 진행하지요. 밤 11시 50분. 10분만 지나면 새해입니다.이라크 파병 군인 출신인 남자는 전역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던 중입니다. 부인이 불치 병에 걸려 경제적으로도 극심한 곤경에 빠져 있었던 것이지요. 세상에 대한 분노, 치료되지 않은 정신적 상처들이 궁핍과 맞물려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겁니다. 그 싸늘하고 강퍅한 마음이 한 마디 질문에 녹아내렸습니다. “CAN I HELP YOU?”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배가 고픈데 밥을 먹을 때마다 요리사에게 음식을 만들어 달라 요청하고 줄 서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고 팍팍한 세상일까요? 집 밥이라는 게 있어서 다행이에요. 요리사가 해 주는 식사보다 균형도 덜하고 맛도 부족할 수 있지만 우리는 집 밥을 먹고 든든한 일상을 살아가는 거지요.”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습니다. 팍팍하고 힘겨운 세상에서 영혼이 힘들고 어려울 때, 굳이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 받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영혼에 치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집 밥을 따스하게 끓여주는 것처럼 너와 내가 서로에게 상처를 감싸 주고 다독여 줄 수 있는 법입니다. 서툴고 미흡하지만 든든한 집 밥처럼 마음을 따스하게 만져줄 힘이 우리에겐 있습니다.주위를 살펴보면 언제나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돌출 행동이 크고 강할 수록 내면에는 감추어진 아픔과 상처, 고통과 슬픔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요. 래리 라이트가 긴박한 상황에서 던졌던 네 단어 질문이 그래서 위대한 것 아닐까요? 요즘 무언가 거리감이 느껴지거나, 돌출 행동을 하거나 거슬리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다가가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도와 드릴 수 있을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03

네 단어 짧은 문장으로 60명을 살린 남자 (1)

2015년 12월 31일. 새해를 맞기 위해 사람들 마음이 들떠 있는 밤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 페이옛빌시. 래리 라이트는 가족처럼 지내는 60명의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진행 중입니다. 한 해를 잘 마무리했다는 뿌듯함과 감사와 소망으로 설레는 눈빛입니다. 곧 새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갈 차례가 되지요.그때였습니다. 뒤쪽 문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찬 바람이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실내에 스며듭니다. 현관 문이 바람에 쿵, 쿵 소리를 내며 흔들립니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지요. 모두 가슴이 쿵, 내려 앉습니다. 누군가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릅니다. 의자 밑으로 숨는 사람, 벽에 바짝 붙어 출입문 쪽으로 슬금슬금 뒷걸음 치는 사람. 하얗게 질린 채 상황을 얼어붙은 사람.한 남자가 차가운 바람을 등에 업고 걸음을 단상 쪽으로 뚜벅뚜벅 옮깁니다. 눈동자는 풀려 있고,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오른 손에는 반 자동 소총이 왼손에는 수백 발의 탄약을 장전한 탄창이 있습니다. 괴한은 총구를 위로 향한 채 흔들리는 눈빛으로 단상으로 접근합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단상에서 지켜보던 래리 라이트는 침을 꿀꺽 삼킵니다. 체구가 작은 이 남자를 기회를 타서 덮칠 수는 없을까, 한 사람도 피해를 입으면 안되는데…. 수만 가지 생각이 스칩니다. 일촉즉발. 건드리면 폭발할 것만 같은 팽팽한 긴장으로 실내는 가득합니다. 몇몇 사람은 흐느껴 울기 시작하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도망칠 생각도 못한 채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사내가 단상으로 가까이 올수록 래리의 심장은 타 들어가는 듯합니다. 잘못 대처하면 이 공간은 몇 초 이내로 끔찍한 살육의 현장으로 바뀔 것입니다. 다행히 사내는 왜소한 체구입니다. 육군 중사 출신 래리는 사내를 덮칠 순간을 노립니다. 래리는 심호흡을 하며 침착하고 대범하게 행동하고자 애를 씁니다. 5m, 4m….조명에 비친 총구가 번쩍입니다. 잠금 장치는 풀려 있고 사내가 손가락만 하나 까딱하면 순식간에 불바다를 만들 수 있습니다. 3m.. 2m.. 괴한이 단상 앞에 섭니다. 래리 라이트는 그 순간 괴한과 눈이 마주칩니다. 사내의 눈빛을 보자 래리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낍니다.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내면을 휘어잡습니다. 공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따스한 감정이 심장에서 혈관을 타고 그의 뇌까지 전달됩니다. 래리는 입술을 열어 그에게 묻습니다. (내일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02

매미의 울음소리를 기다리며

어느 새 오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2019년을 시작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다섯 번째 달을 마무리하고 한 여름 6월을 맞이합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온 천지가 매미의 울음으로 뒤덮이는 본격적인 한 여름의 태양 속을 거닐겠지요? 매미의 삶은 독특합니다. 애벌레로 땅 속에서 보내는 기간이 무척 깁니다. 짧은 매미 종은 5년, 미국의 어느 매미 종족은 무려 17년의 기간을 애벌레로 지하에서 숨어 지낸다고 합니다. 성충이 되어 매미 형상을 제대로 입은 채 보내는 시기, 즉 우리가 보고 듣게 되는 한 여름의 매미는 불과 한 달 가량을 지상에서 눈물짓다 사라집니다. 그토록 울어 대는 매미는 수컷이랍니다. 죽기 전에 짝을 지어 후손을 퍼뜨리려고 암컷을 유혹하는 울음인 것이랍니다. 17년 기나 긴 기다림 끝에 지상에서의 마지막 절규를, 후손을 남겨 종족을 보존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겠지요.매미의 신비로운 점은 또 있습니다. 생명주기가 5년, 7년, 13년, 17년으로 모두 소수(素數)라는 점입니다. 자연수 중에서 1과 자신 만으로 나누어지는 수입니다. 생명 주기가 소수인 이유를 ‘천적으로부터 종족 보존을 위해서’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새, 다람쥐, 거미, 거북이 등의 천적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수명주기를 천적의 수명주기와 달리해야 하는 법이랍니다.시인 안도현은 ‘사랑’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 우는 것이 아니라 / 매미가 울어서 /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 매미는 아는 것이다 / 사랑이란 이렇게 / 한사코 너의 옆에 / 뜨겁게 우는 것임을 /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 매미는 우는 것이다.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어떤 신념을 갖는 다는 것은, 목적과 소명을 품에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통곡, 즉 비통함(anguish)을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임을 시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관심을 갖는 정도로는 세상의 아픈 곳들을 치유할 힘이 없다는 것을 호소하지요.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오감으로 감각하는 세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 주위에서 들려오는 지극히 당연한 소리에도 혹시나 어떤 아픔이 깃들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조심스러운 마음을 품습니다. 매미의 생명력 넘치는 아리아가 세상에 울려 퍼질 때. 그대와 나 그들 17년 침묵에 대해 한 번쯤 생각이 머무는 날들이기를, 마침내 사랑으로 귀 기울이는 여름이기를.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30

그녀가 빗자루 들고 사막으로 간 까닭

페루 광활한 사막에 한 여인이 빗자루를 들고 나타납니다. 30대 후반 독일 초등학교 교사 출신. 쓸모없이 버려진 황량한 땅, 연 평균 강수량이 5밀리미터가 채 되지 않아 식물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저주받은 땅에서 이 여인은 빗자루 하나 들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1930년대 중반 페루 남부 지방에 비행기 노선이 처음 열리자 조정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사막에 거대한 그림들을 조종사가 발견한 거지요. 거미, 독수리, 벌새, 원숭이, 고래, 펠리컨 등. 뚜렷한 여러 생물체의 모양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놀라운 발견에 대해 먹고 살기 바쁜 후진국 페루 정부는 아무도 이 사실에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나스카 라인을 만난 이후 마리아는 단 한 번도 사막을 떠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연구를 지원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굶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나스카 라인을 연구하는데 생을 불태웁니다. 서울의 두 배가 넘는 면적을 자동차도 없이 맨발로 홀로 오가며 라인이 조금이라도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빗자루질 합니다. 줄자를 들고 다니며 정밀 측량을 시작하지요. 보통은 100미터를 넘는 크기가 대부분이고 지금까지 발견된 그림만 대략 1천 점 가까이에 이릅니다. 측정 결과 약 2500년 전인 BC 500년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합니다.고독하게 연구를 이어간지 어언 17년. 마리아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페루 정부가 아마존 강에서 물을 끌어와 지역 전체를 수몰할 예정이라는 겁니다. 그녀는 온몸으로 저항합니다. 페루 정부의 관계자들을 찾아가 나스카 라인이 얼마나 소중한 인류의 보물인지, 페루의 보물인지를 설득해 냅니다. 마침내 페루 정부는 자신들의 계획을 철회하지요. 1998년 9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그녀. 나스카 사막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연구를 위한 줄자를 손에서 놓지 않은 마리아 라이헤.마녀, 도굴꾼, 정신병자라는 비난을 평생 숙명으로 짊어진 채 마리아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50년 동안 생계조차 위협받는 극빈의 고통을 견뎌내며 인류 전체의 보물을 건져낸 멋진 여인. ‘빗자루를 들고 사막을 쓸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았노라. 1903-1998’ 묘비에 적힌 글입니다.인문학을 넘어 리버럴아츠(Liberal Arts)나 고고학, 인류학 등 당장 돈이 되지 않는 분야로 문화의 관심사가 옮겨가야 선진 사회입니다. 보이지 않는 지혜를 추구하는 고급문화로 우리가 한 뼘 더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9

가장 멋진 춤은 ‘멈춤’입니다.

신화 연구가로 유명한 조지프 캠벨은 다트머스 대학에서 생물학과 수학을 전공했으나 이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중세 영문학으로 학사, 석사를 받습니다. 1927년 컬럼비아 대학의 장학금으로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대학과 뮌헨대학에서 공부합니다만 1929년 큰 좌절을 겪습니다. 유럽에서 돌아온 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과정에 진학하려 했지만, 석사 때와 전공과 다르다는 이유로 거절당합니다. 게다가 미국에 대공황이 불어닥치면서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는 처지에 이릅니다. 캠벨은 주먹을 불끈 쥐며 한 마디를 뱉습니다. “학위, 까짓 거 개나 줘버리라고 해!”캠벨은 이 상황에서 중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학위만 아니라 생존 본능을 자체를 멈춥니다. 우드스톡이라는 작은 숲속 마을로 들어가 오두막을 하나 얻어 자신을 고립시킨 가운데 5년 동안 홀로 시간을 갖습니다. 1달러 지폐 하나를 벽에 걸어 두고 그 돈이 없어지지 않는 한 자신은 돈이 다 떨어진 빈털터리는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해 가면서 버팁니다.오두막에서 세 가지를 결심합니다. 첫째. 다음 날 무엇을 먹을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둘째.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실용성을 묻지 않는다. 셋째.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조이스와 토마스 만과 슈펭글러를 읽었다. 슈펭글러는 니체를 언급했다. 나도 니체를 읽었다. 니체를 읽으려면 쇼펜하우어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쇼펜하우어도 읽었다. 그러다가 쇼펜하우어를 읽으려면 칸트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식으로 해서 칸트도 읽었다. 일단 거기까지 가도 되긴 했지만, 칸트를 출발점으로 삼으려 하니 힘들었다. 그래서 괴테로 거슬러 올라갔다.”캠벨은 이 시기의 독서에 대해 말합니다.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겁기 시작합니다.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5년 동안의 위대한 멈춤의 시기를 통해 캠벨은 문화인류학, 생물학, 철학, 예술, 역사, 종교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과 지혜를 가득 채웁니다. 말 그대로 황금의 시기를 연 셈이지요. 자신을 흠뻑 채운 다음 사라로렌스대학 교수로 초빙을 받습니다.인생에서의 멈춤은 우리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합니다. 멈춤을 어떻게 해석하고 승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 자신의 몫이겠지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8

조슈아 벨의 쓸쓸한 연주

2007년 1월 12일 워싱턴 DC 랑팡 지하철 역. 한 남자가 야구 모자를 눌러쓴 채 구석에 자리를 잡습니다. 거리의 악사이지요. 아름다운 선율이 흐릅니다. 바흐의 샤콘느. 아무도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3분이 지나자 한 중년 남자가 몇 초 정도 걸음을 늦추는 것이 첫 반응이었습니다. 4분이 흐른 뒤 한 여성이 총총 걸음으로 다가와 1달러 지폐를 넣고 개찰구 안으로 사라집니다.거리의 악사는 이후로 45분 동안 바흐의 작품 6곡을 내리 연주합니다. 그동안 지나간 사람은 모두 1천97명. 그 중에서 단 7명만이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입니다. 돈을 기부한 사람은 총 27명. 32달러 17센트가 모였습니다. 연주를 마치고 떠날 때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으며 누구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지요.거리의 악사 연주회는 ‘워싱턴 포스트’가 진행한 실험이었습니다.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획자는 연주회를 관찰합니다. 연주자는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었지요. 전설의 악기 스트라디바리로 연주했습니다. 조슈아 벨은 불과 이틀 전 보스톤에서 동일한 레파토리로 독주회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바흐의 샤콘느와 대표 곡들이었지요. 이날 연주회의 평균 입장료는 100달러가 넘었고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 홀은 전석 매진이었습니다.실험을 기획할 때 진 바인가르테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조슈아 벨이 공연을 하면 아마도 지하철 여기 아수라장이 되어 지하철 역 자체가 마비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기자는 말합니다. “행인들의 발걸음은 무관심과 타성, 복잡한 현대 사회에 맞추어 추는 어두컴컴한 죽음의 무도처럼 보였습니다. 그 장소에 진실로 존재한 것은 조슈아 벨 한 사람뿐이었어요. 유령은 행인들입니다.”멈추어 설 때 비로소 들리고 보일 수 있는데, 멈추지를 못합니다. 가만히 멈추고 서서 귀를 기울이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여유를 우리가 만들 수 있다면 일상에서 위대함을 발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클래식북스 서가에는 최고의 지성들이 평생을 통해 쏟아낸 보물들, 고전으로 가득합니다만 아쉽게도 조슈아 벨 연주처럼 이 보물에 관심을 갖는 이는 흔치 않습니다. 2만원짜리 고전 한 권을 내 삶으로 녹여 20억원, 200억원의 가치를 만드는 투자. 이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고 가슴 뛰는 일 아닐까요? 극심한 변화의 시대를 대비하는 지혜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7

한바탕 울기 좋은 곳

한 선비가 있습니다. 서재를 짓고 이름을 ‘통곡헌(慟哭軒)’이라 짓습니다. 모두가 비웃습니다.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서실의 이름을 통곡(慟哭)의 집(軒)이라 이름을 짓는다는 말인가! 수군거리고 손가락질합니다. 어떤 이는 서찰을 보내 정식으로 유감의 뜻을 전합니다.선비는 붓을 들어 답합니다. “나는 세상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로 하는 사람이오. 세상 유행이 기쁨을 즐기므로 나는 슬픔을 좋아 하오. 세상 사람들이 즐거움을 누리므로 나는 또한 근심을 즐거워 하오. 세상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얻으면 기뻐하지만 나는 내 몸을 더럽히는 것처럼 여겨 내팽개치오. 가난하고 천박하며 궁색한 삶을 본받아 몸을 거처할 뿐이오. 나는 세상의 모든 일과 반대로 하려 하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선택하자면 통곡보다 더한 것은 없기에, 내 서실의 이름을 통곡헌이라 지었소.”선비의 이름은 허친(許親). 조선 중기 문인입니다. 그의 소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구한 말들이 많자 삼촌이 나서 조카를 변호하는 글을 씁니다. 통곡헌기(慟哭軒記)라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홍길동전을 쓴 조선의 반항아, 허균이 바로 허친의 삼촌입니다.“나는 비웃는 자들을 책망하며 말하였다. ‘무릇 곡에도 도가 있는 법이다. 대체로 사람의 칠정은 움직이기 쉽지만 감동이 일어나는 것으로는 슬픔만 한 것이 없다. 슬픔이 지극하면 반드시 곡을 하게 되는데 슬픔이 오는 방식 또한 여러 가지다. (중략) 국사는 날로 더 그릇되어가고 선비들의 행실은 날로 구차스럽고 경박하다. 벗과의 사귐은 배신으로 치달아 갈림길의 나뉨보다 더욱 심하여 현명한 선비들의 곤란함은 길이 막다른 처지에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들 세상 밖으로 숨을 궁리들만 한다. 만약 여러 군자들로 하여금 이 시절을 보게 한다면 어떤 생각을 품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장차 통곡할 겨를도 없이 모두들 팽함이나 굴원처럼 돌덩이를 품에 안고 물속으로 뛰어들고자 하겠지. 허친이 곡으로써 편액을 삼은 것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여러분들은 그 곡을 비웃지 않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비웃던 자들이 물러났기로, 기록을 하여 이로써 무리들이 의심하는 것을 풀었다.”연암 박지원은 요동 벌판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울음터로다. 한 바탕 울어 볼 만하구나!” 겉 보기에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공허와 무의미로 병들어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통곡할 수 있는 그대 뜨거운 가슴이 필요한 때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6

둥둥 떠다니는 행운을 붙잡는 법

LA다저스 류현진은 왼손 투수입니다만 공격할 때는 오른쪽에 타석에 서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류현진은 원래 오른손잡이입니다. 럭비 선수였던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 류현진에게 글러브를 선물합니다. 이때 왼손 투수용 글러브를 사다 주었답니다. 실수였을 수도 있고 심오한 의도를 갖고 모른 척 던져 주었다 해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만 공은 왼손으로 던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류현진은 이때부터 온 몸으로 받아들입니다.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의도하지 않은 발견, 뜻밖에 발견한 행운 등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과학분야의 연구에서 실험 도중 실패해서 얻는 결과에서 중대한 발견, 또는 발명을 한 경우를 일컫기도 합니다. 글러브를 착각해 선물한 것이 류현진을 왼손 투수로 길러낸 사연도 대표적인 세렌디피티입니다.한 남자가 사냥감을 찾아 풀 숲을 헤치고 다니다가 집에 와 보니 바지에 온통 씨앗들이 달라 붙어있습니다. 발명가였던 남자는 반짝이는 영감을 얻습니다. 씨앗은 갈고리 모양의 작은 가시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바지에는 걸쇠가 될 그물조직이 있어 씨앗이 달라붙을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우연한 경험을 통해 흔히 찍찍이로 알고 있는 접착 도구가 세상에 등장합니다. 벨크로 테이프는 스위스의 전기 기술자 메스트랄이 세렌디피티적 행운으로 발명해 돈방석에 앉게 한 녀석입니다.페이스북은 짖궂은 남학생들이 하버드 여학생들 사진을 두 장씩 비교해 보면서 인기 투표하는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곧 하버드생들이 서로 프로필을 보면서 안전하게 사귈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쪽으로 발전합니다. 결과는 어마어마한 트래픽 발생. 주커버그는 이 세렌디피티를 사업으로 승화시킨 거지요.공기처럼 가득한 행운을 삶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필요합니다. 세렌디피티는 우연히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른손잡이 열 살 꼬마에게 왼손잡이 글러브를 선물한다고 다 메이저리그를 평정하지 않지요. 평소에 얼마나 자기 분야에 몰입하고 사색하고 연습하느냐가 행운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줍니다. 물이 99도까지 끓지 않다가 1도 차이로 기체로 변하는 것처럼, 세렌디피티의 임계점을 넘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행운이 우리 삶으로 흘러듭니다.헤르만 헤세는 말합니다. “우연이란 원래 없는 것이다. 간절히 소망했던 사람이 그것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그 사람의 소망과 염원이 우연처럼 보이는 것을 그것을 가져온 것이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3

3억분의 1 확률 대신 3억번 도전하기

인도의 가난한 농사꾼 집에서 태어난 만지히는 어릴적부터 사랑을 키워오던 데비와 결혼합니다. 밖에서 밭을 갈며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데비는 도시락을 싸 밭으로 오던 중 넘어져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가까운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산을 돌아 88㎞를 아내를 업고 뛰어야 했습니다. 데비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 숨을 거두지요. 아내를 잃은 만지히는 스물 여섯인 1960년에 아내를 앗아간 마을 앞의 거대한 산을 뚫어 길을 만들기로 결단합니다. 길을 만들 수만 있다면 80㎞ 넘는 길을 돌아서 가지 않고 단 1㎞ 거리에 병원이 있고 학교도 3㎞만 걸어가면 나옵니다. 문명의 물꼬가 트이는 셈이었지요.만지히에게는 도와줄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는 혼자의 힘으로 손수 망치와 정 단 두가지 도구만으로 산을 뚫기 시작합니다. 쿵, 쿵, 쿵. 거대한 해머로 바위를 깨부숩니다. 톡, 톡, 톡. 작은 망치와 정으로 바위를 잘게 부숴 나눕니다. 삽으로 흙을 퍼서 등짝의 지게에 옮겨 담습니다. 눈물 흘리며 먼 길을 걸어 흙을 버리고 다시 돌아옵니다. 이 일을 하루, 이틀, 열흘, 한 달. 그리고 1년을 반복합니다.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가 추운 겨울이 할퀴고 지나갑니다. 다쉬라트 만지히는 아내를 잃고 미쳤다는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바위를 깨고 흙을 퍼 나르지요.10년을 멈추지 않고 일을 계속하지요. 산이 많이 깎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심 놀라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11년, 12년... 만지히가 마흔 여덟 살이 되는 22년째. 세상 모든 사람들은 우공이산의 기적을 목격합니다. 산 허리가 잘리고 산 너머 도시까지 길이 뚫린 겁니다. 1982년의 일입니다. 무모한 도전이 22년만에 결실을 맺습니다.세상이 팍팍합니다. 앞길을 가로 막는 산들이 하나 둘이 아니지요. 힘겨운 삶. 높은 장벽. 이런 것들 때문에 지친 사람들은 복권 한 장을 사들고 3억 분의 1의 확률에 잠시나마 달콤한 꿈에 젖어 현실의 고단함을 잊기도 합니다. 3억 분의 1 확률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곡괭이질 해머질 3억 번을 반복할 각오를 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돈키호테 같은 사람들이 있어 살맛이 납니다. 자본과 권력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는 이 시대에 맨주먹으로 세상을 바꿔 놓는 만지히나 우공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도 꿈을 꿀 수 있는 것 아닐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2

행복을 만드는 연결

1962년 1월. 탄자니아 카샤샤에 사는 야미는 열두 살 사춘기 소녀입니다. 수업을 시작했는데도 웃음을 멈추지 않는 행동을 합니다. 선생님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야미는 더 크게 웃기 시작하지요. 친구들이 따라서 웃기 시작합니다.다음 날 학생들은 얼굴을 마주치자 마자 웃기 시작합니다. 웃음은 이제 옆 교실로 전염되지요. 또 옆 교실로. 학교 전체가 삽시간에 웃음 바다가 되어버립니다. 복통을 호소하듯 배를 움켜 쥐고 웃는 아이들도 있고 연신 싱글벙글 미소를 짓는 아이들, 소리를 내며 깔깔깔 웃는 아이들…. 그 누구도 이 아이들의 웃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카샤샤의 한 미션 스쿨에서 발생한 이 웃음은 7주 동안이나 지속됐고 학교는 두 달 만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특정 감정 상태가 마치 전염병처럼 퍼지는 사례는 수백 년 전부터 흔히 있는 일입니다. 중세 시대 14세기에는 독일의 아헨에서 갑자기 지역 주민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지요.웃음이나 춤이 일으키는 격렬한 감정은 사람의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하버드 대학의 니콜라스 크리스태키스 박사는 감정이 어떻게 전이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가에 대해 전문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1971년부터 2003년까지 총 1만2천67명을 추적, 연구해 발표한 결과입니다.내 친구(1단계)가 행복할 때, 내가 행복할 확률은 15%가 상승한다. 친구의 친구(2단계)가 행복할 때, 그 행복이 친구를 거쳐 나에게 전달될 확률은 10% 상승. 친구의 친구의 친구(3단계)가 행복할 때, 그 행복으로 내가 행복해질 확률은 평소보다 6% 올라간다.행복을 만드는 비결은 주위에 행복한 사람을 두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나를 놓아 두는 일입니다. 훌륭한 삶을 위해 분투하고 격려가 넘치는 곳에 머물러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불행해지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우울한 사람, 불평 불만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으면 그만입니다. 사회적 연결망은 이렇게 강렬한 힘으로 공기처럼 소리없이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지요. “지금 네가 읽고 있는 책, 네가 자주 가는 곳, 네 곁에 있는 사람이 네가 누구인지 말해준다.”내가 행복하면 내 옆에 사람들이 행복해질 확률이 15% 상승합니다. 나 한사람의 행복이 내 친구의 친구를 10% 더 행복하게 만듭니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는 6%를 행복하게 하는 거죠. 내가 곧 등불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1

입맞춤보다 강렬한 눈맞춤

반대 성격을 가진 부부가 있습니다. 남편은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잘못을 늘 지적하며 잔소리합니다. 남편은 결혼 이후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이들이 우연한 기회에 행복한 부부생활 세미나에 참석합니다. 수업을 마칠 때마다 독특한 실습을 합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부부가 3분 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만 보는 겁니다. 마지막 날 수업을 마칠 무렵,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눈망울이 촉촉해지더니 아내의 눈을 바라보던 남편이 갑자기 눈물을 쏟기 시작한 겁니다. “미안해. 그동안 내가 미안했어. 정말 미안해.” 그 많은 잔소리에 꼼짝하지 않던 남자가 3분 눈 맞춤 실습 몇 번에 무너져 내리고 만 것입니다.눈 맞춤의 위력은 심리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보스톤 대학 심리학센터 연구는 남녀 한 쌍씩 짝을 지어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한 그룹에게는 아무 지시를 하지 않고 대화를 2분간 나누도록 하고 다른 한 그룹은 상대방이 대화 도중 눈을 몇 번이나 깜빡 하는지 세어 보라는 지시를 내렸지요. 눈 깜박임을 헤아리기 위해 자연스레 눈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던 그룹의 남녀가 그냥 대화만을 요청받은 그룹에 비해 압도적으로 호감도와 존경심이 상승했습니다.대화할 때 평균 4초 정도 눈 맞춤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그 이후는 시선을 자꾸 딴 데로 돌리지요. 그래서 눈 맞춤 연습을 하고 싶으면 4초 후에 더 집중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2초는 상대의 눈을 응시하고 나머지 2초는 미간을 보면 좋습니다. 이렇게 평소 누구나 할 수 있는 4초의 눈 맞춤으로 시작해 조금씩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시간을 늘려갑니다. 8.2초의 법칙이 있습니다. 상대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눈 맞춤을 유지하는 평균 시간이 8.2초입니다. 조금씩 눈 맞춤 시간을 늘려 9초~10초 정도 눈 맞춤을 지속할 수 있다면 서로에 대한 우호적인 마음을 제법 향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가장 중요한 눈 맞춤은 자신과의 눈 맞춤입니다. 하루 3분 정도 시간을 내어 거울 앞에 서 보는 겁니다. 거기 존재하는 얼굴. 두 개의 눈동자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아 주세요. 모든 허물을 용서하는 눈 빛으로, 그동안 살아오며 받은 모든 상처를 품어주는 눈 빛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들 용기와 힘을 내라고 든든히 지지하는 눈 빛으로 거울 속의 그대에게 눈을 맞추어 주세요. 촉촉하게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20

누가 진정한 강자(强者)일까?

3천년 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쉐펠라에서 일전을 겨루게 되지요. 먼저 공격에 나서면 불리하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지고 한참 시간이 흐릅니다.팔레스타인은 최고의 전사로 일대일 결투로 승부를 가리자고 제안합니다. 그들이 내보낸 전사는 키가 2m70㎝에 이르는 골리앗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번쩍이는 청동 갑옷으로 무장하고 양 손에 칼과 창을 들고 있습니다. 겁에 질린 이스라엘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못하지요. 어린 양치기 소년 한 명이 자원하고 나섭니다. 분노한 골리앗은 외칩니다. “내게 오라. 너의 살점을 하늘의 새와 들의 짐승에게 던져 줄 테니.”소년은 주머니에서 조약돌 하나를 꺼내 물매에 끼워 빙빙 돌리다가 정확하게 거인의 두 눈 사이 급소를 향해 돌을 날립니다. 정통으로 맞은 거인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양치기는 달려가 거인의 칼을 꺼내 거인의 목을 베어버리죠. 다윗과 골리앗입니다.고대 근동지역 군대는 기병·보병·궁수병 외에 물매병이 있었습니다. 물매는 비장의 무기입니다. 1초에 약 6∼7번 회전한 후 발사하면 초속 35m쯤 되는데, 웬만한 투수가 던지는 강속구보다 더 빠른 속도입니다. 물매는 대단히 정교해서 200m 이상 떨어진 목표도 오차없이 맞출 수 있다 합니다. 다윗은 골리앗 방식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은 말단비대증을 앓고 있는 환자여서 시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은 일대일 대결의 상식인 접근전을 기대했겠지만 다윗은 휘말리지 않았지요. 자기 강점으로 게임의 방식을 바꿉니다. 판을 뒤집어 보니 골리앗은 허점투성이의 거인일 뿐이었고 다윗은 권총만큼 강력한 무기를 지닌 셈입니다. 겉보기에 강자는 진짜 강자가 아니고 표면적 약자는 진짜 약자가 아닌 것입니다.말콤 글래드웰은 ‘다윗과 골리앗’에서 말합니다. “피할 수 없는 시련을 겪는 사람들은 그 어려움으로 인해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는 확신을 주고 싶었습니다. 큰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 어려움에 함몰되지 않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약자의 약점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위대함이 분명히 있는 법이니까요. 반면 강자의 강점에는 반드시 숨겨진 나약함과 한계가 있습니다. 영민하게 자신의 약점을 승화시켜 시대를 앞서가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약점, 그 속에 감춰진 아름다움이 어쩌면 내 인생을 가장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지고의 강점으로 변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19

위대한 세바스찬

바닷가재가 불멸이라는 것을 아셨나요? 모든 생명체는 염색체 가닥의 양쪽 끝에 붙어 있는 텔로미어가 닳아 없어지면 죽음을 맞이합니다. 바닷가재는 ‘텔로미어’를 스스로 복구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밝혔지요. 비록 생물학적 불멸의 존재입니다만 먹이사슬에서 낮은 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포식자들의 먹이감으로 불멸의 바닷가재는 하나 둘 사라집니다. 상당수가 전 세계 레스토랑의 테이블에 올려지겠지요?바닷가재는 성장을 위해 익숙한 껍데기를 박차고 나옵니다. 아기 바닷가재는 손가락사이즈 껍데기에 아기의 속살을 갖고 태어납니다. 껍데기에 갇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고통을 느낍니다. 바위 아래 틈새 속으로 기어 들어가 껍데기를 옷 벗듯이 벗고 빠져나옵니다. 고통과 극한의 아픔이 있지만 큰 껍데기가 몸에 돋아날 때까지 포식자의 습격이라는 공포를 견디며 인내합니다. 탈피와 성장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몸을 조금씩 키워가지요. 어린 개체는 일 년에 10회, 나이가 들면서 횟수가 줄어듭니다. 어른 바닷가재는 몇 년에 한 번 새 껍데기로 갈아입습니다. 이들은 성장의 한계를 느끼면 스트레스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안주하지 않고 과감하게 자신의 익숙한 껍데기를 박차고 벗어 버립니다. 부드러운 속살, 그 무방비 상태로 묵묵히 다음 단계의 보호막이 자라기를 기다리지요. 작은 고통과 스트레스에도 움츠러들고 적당한 성취에 만족하고 안주하려는 저의 속성과 정반대의 바닷가재를 보며 숙연해집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에 나오는 바닷가재 세바스찬을 기억하십니까? 갇힌 껍데기 안에 안주하며 고통과 번민 속에서도 결단하지 못하고 늘 쪼그라드는 자신과 타협하는 저에게 위대한 세바시찬은 구본형의 시 한 구절을 속삭이며 응원합니다.“다시 젊음으로 되돌아간다면, 겨우 시키는 일을 하며 늙지는 않을 것이니.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천둥처럼 내 자신에게 놀라워하리라. 길이 보이거든 사자의 입 속으로 머리를 처넣듯 용감하게 그 길로 돌진하여 의심을 깨뜨리고, 길이 안 보이거든 조용히 주어진 일을 할 뿐 신이 나를 어디로 데려 놓든 그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 위대함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무엇을 하든 그것에 사랑을 쏟는 것이니, 내 길을 찾기 전에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천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한 번의 용기로 맞서리니.”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중)/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16

인디언 성인식의 지혜

조지 캐틀린은 1832년 하버드를 졸업하고 미주리 강 상류 인디언 부락을 찾습니다. 추장들의 초상화를 그려 큰 사랑을 받지요. 그의 그림은 정면에서 보면 시선도 똑바로 나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옮기면 초상화 시선도 보는 이의 눈을 따라 움직입니다. 반대쪽도 마찬가지죠. 마치 살아있는 듯한 그림을 그린 덕에 인디언들은 조지 캐틀린을 마법사로 여기고 존중하며 예우합니다. 덕분에 캐틀린은 누구도 볼 수 없었던 인디언 비밀 의식(ritual)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긴 조지 캐틀린은 훗날 이 의식에서 받은 충격을 그림으로 남깁니다. 전사로 거듭나는 젊은 남자 아이들의 성인식 장면입니다.성인식이 열리기 5일 전부터 모든 음식을 끊습니다. 성인식의 출발입니다. 온 몸의 기력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이번에는 길이 40∼50㎝ 막대기를 아이들의 몸에 밀어 넣습니다. 등, 어깨, 가슴, 허리, 허벅지, 종아리 등 몸의 구석 구석에 막대기를 찔러 넣고, 공중으로 끌어올려 대롱대롱 매달아 놓습니다. 물소 해골을 하체에 꽂힌 나무 막대기에 걸쳐서 하중이 더 실리도록 만들지요.아이들이 공중에 매달려 막대기로 얻어 맞고 빙글 빙글 몸이 돌아가면 결국 정신을 잃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정신을 잃게 되면 그때 비로소 땅으로 내려지고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정신이 돌아오는 즉시, 두 명의 거구의 사내들이 한 아이를 양쪽에서 붙잡고 주위를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돕니다. 아이들의 몸에서 막대기가 다 빠져나올 때까지 몸을 흔드는 거죠. 이런 과정은 아이들을 완전히 파김치로 만들어 버립니다.조지 캐틀린은 말합니다. “인디언이 아이에서 전사로 거듭 태어나는 과정은 죽음을 경험하는 과정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완전한 비움을 경험함으로써 세상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배웁니다.”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질문은 이것이지요.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모든 인문학적 성찰의 시작은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육체의 생명을 끝내는 죽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생각, 탐욕, 아집, 포기하지 않고 살아 꿈틀거리는 내 의견, 내 정당성, 자기 변명 등에 대한 철저한 죽음을 한 번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온전한 포기, 완전한 무장해제를 내 삶에서 경험해 보는 순간, 우리는 인생에 대해 진정한 ‘성찰’을 시작할 자격을 얻게 될테니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15

10년 후는 반드시 온다

청년 시절, 소속 단체에서 몇 년간의 격무에 대한 보너스로 7주 미국 연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시카고 인근의 휘튼대학에서 여름학기 과목들을 수강하며 세계 각국의 한인 리더들이 모이는 컨벤션 행사 스태프로 봉사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 행사 기간 중 명사들의 특강이 여럿 있었는데, 25년이 흐른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강연이 있습니다. 당시 한남대 총장이었던 이원설 박사 강연이었지요.“시간의 흐름에 대한 역사 학자들의 관점이 바뀌고 있다. 멀리 과거가 있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재가 지금 우리 앞에 주어졌으며 미래는 미지의 것,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게 오는 저 뒤 편의 무엇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 과거가 아니라, 선명한 미래에 대한 통찰이며, 그 통찰이 현재로 흘러 들어오고, 과거는 역사 뒤편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오래 전 기억이라 확실치 않지만 그런 요지였습니다. 내 삶으로 흘러 들어오는 그 무엇으로 생각했던 미래가, 현재의 내가 어떤 꿈과 설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강연 이후 “10년 후는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로큰롤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는 위대한 가수로 등극하기 10년 전, 초라한 트럭 운전수에 불과했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작가의 길을 걷기 10년 전 ‘배우려고 하는 의욕도 없고, 또 배울 능력도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마스 제퍼슨은 조지 와이드라는 걸출한 멘토를 만나기 전 농부의 아들에 불과했습니다. 제대로 된 멘토링을 받은 후 10년 만에 그는 미국 정치계에 혜성같이 떠오르는 빛나는 지성으로 탈바꿈하지요.앨빈 토플러는 “21세기 문맹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하고 또 계속 학습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고 상상하는 것이다. 미래를 지배하는 힘은 읽고, 생각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으로 좌우된다”라고 말합니다.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를 마비시키고 21세기 문맹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대한 힘에 치여 순식간에 나 다움을 잃어버릴 수 있는 시대입니다. 지금 읽는 책 한 줄이, 끙끙거리며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는 한 줄의 노트가 오늘로 편입한 10년 후의 미래입니다. 10년 후 빛나는 날개 달고 푸른 창공 훨훨 비상하시는 그대 모습을 봅니다. 그날까지 서로 격려하는 법 잊지 않기를!/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14

내 마음의 중심에 있는 것

순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마리 개를 자식 삼아 살고 있는 가난한 노부부가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끔 산에서 나무를 해 장작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걸로 겨우 먹고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백내장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였지요. 개를 키우기 시작한 지 3년이 되는 날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십니다.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 주었지요.장례 다음 날부터 개가 자기 밥그릇을 입에 물고 이웃 집에 들어섭니다. 밥그릇을 마당 한 가운데 놓더니 멀찌감치 뒤로 떨어져 엎드려서 가만히 밥그릇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주인을 잃은 뒤 밥을 제 때 못 얻어먹어 그런가 보다 하며 불쌍히 여겨 밥을 퍼주었지요. 개는 밥그릇을 물고 집을 나섭니다. 아주머니는 시장 가는 길에 맹인 할머니가 걱정돼 담 너머로 집안을 바라봅니다. 할머니가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데 손도 대지 않은 밥그릇을 마루에 올려놓고 개가 할머니 소맷자락을 물고 밥 먹으라고 계속 재촉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한참 후에 상황을 알아차리지요. 밥을 절반 먹고 개에게 밥그릇을 밀어줍니다. 개는 그때서야 자기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소문이 마을 전체에 퍼집니다. 다른 집으로 개가 밥을 얻으러 옵니다. 한 번 들린 집은 또 들르지 않고 한동안 새로운 집을 찾아 다닙니다. 사람들은 소문을 들었던지라 깨끗한 새 그릇을 준비해 밥과 반찬을 고루 넣어 줍니다. 개는 그것을 물고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에게 밥을 먹이고 남은 것으로 자기 몫을 먹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사람보다 나은 개’라며 군청에 효자 상을 주어야 한다며 건의를 했습니만 공무원들은 사람이 아닌 개에게 효자 상을 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지요.흔히 충견(忠犬)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충성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한자의 충(忠)은 가운데 중(中) 아래에 마음 심(心)이 놓여 있습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 우리는 그것에 충성을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그 중심에 놓인 것이 돈이면 우리는 돈의 충실한 노예입니다. 그 중심에 놓인 것이 명성이면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몸값과 명성을 높이기 위해 충성을 다 합니다. 그 중심에 놓인 것이 권력이라면, 우리는 파워를 획득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겠지요. 결국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은 내가 무엇에 중심을 두고 충성을 바쳐왔는가의 최종적인 결과물입니다. 10년 후의 내 모습은 어떨까요? 내 중심에는 어떤 주인이 지금 자리잡고 있는지 돌아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13

방법(how)보다 왜(why)가 중요한 이유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항공모함 제조 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입니다. 항공모함에 전투기를 싣고 멀리 일본에서부터 거대한 함대를 몰고옵니다. 진주만 인근에서 전투기를 출격해 미군 기지들을 기습하지요. 비록 그들이 선제 공격에는 성공하지만 곧 전세는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미드웨이 해전의 영웅 니미츠 제독의 탁월한 리더십 때문입니다.일본 해군은 막강한 전력을 갖추었지만, 상명 하달의 명령 체계를 철저히 신봉하는 특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카미카제 특공대입니다. 위에서 명령하면 전투기 자체를 폭탄 삼아 목표지점에 자신을 내 던집니다. 지금도 일본의 주입식 교육은 이런 인재를 우수한 인재로 생각합니다. 반면 니미츠 제독은 “오직 상대의 항공모함을 공격하라!” 이 한 가지 핵심 전략을 세우고 부하들에게 계속 그 이유(why)를 설명해 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지엽적인 전투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이 모든 전황의 뿌리가 되는 핵심 교두보였던 일본의 항공모함을 궤멸하는 전략입니다. 왜 항공모함 공격에만 집중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설득하고 병사들로 하여금 내가 왜 지금 이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합니다. 결국 미드웨이 해전은 왜(why)?라는 질문에 분명한 답을 알고 움직인 미군과 그저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이유도 모른 채 목숨까지 내 놓았던 격렬한 방법(how)만을 따랐던 일본군의 차이, 그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숨겨진 이유에서 승패가 갈라집니다.진주만 실패의 교훈을 뼈저리게 성찰한 일본 기업이 있습니다. 자동차 제조사 도요타입니다. 도요타에는 전통적으로 사원들에게 질문하기를 장려합니다. 상사에게 왜냐고 묻는 것을 주저하지 않도록 가르칩니다.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팀원들이 이해할 때까지 질문을 거듭하지요. 도요타에서는 어떤 명제를 두고 다섯 번을 깊이 캐묻고 들어가는 문화가 있습니다.왜(why)라는 질문이 빈약한 채 방법(how)만을 추구하는 삶은 기초가 허약한 건물을 무리하게 지어 올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위태롭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유와 근거를 분명히 답할 수 있는 깨어 있는 삶이 지혜롭습니다. 도요타가 끊임없이 캐묻는 방식으로 자신들 만의 방법을 찾아냈듯, 소크라테스가 목숨까지 내 놓으면서 캐묻는 삶의 가치를 설파했듯, 끈질기게 묻고 또 물으며 삶의 정수를 찾아 누리는 그대 멋진 모습에 박수를 드립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12

인류는 하이디라오를 막을 수 없다(2)

중국 요식업계 말단 직원들은 “새보다 일찍 일어나 개보다 늦게 자고, 소보다 혹사당하면 돼지만큼 못 먹는다”라고 할 정도의 열악한 환경에서 최저 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로 집단 숙소생활을 합니다.하이디라오는 이런 관행을 깨부수고 넓고 쾌적한 아파트를 제공할 뿐 아니라 식사, 청소, 빨래 및 위생을 책임지는 관리원을 별도로 고용합니다. 요식업계 평균 연봉이 약 600만원이었는데, 하이디라오는 월등하게 높은 1000만원 연봉을 지급하지요. 우수 직원에게는 부모에게 직접 보조금을 송금합니다. 효도 여행도 제공하고 일정액은 부모 노후 보험에 가입해 혜택을 듬뿍 제공합니다. 자녀가 있는 직원들은 학자금을 100% 지원하지요. 기업, 직원, 직원 가족으로 구성된 황금 삼각지대 경영모델을 창조했고 이 정책으로 직원 이직률이 크게 감소합니다. 지난 8년 동안 점장급 핵심 직원 이직률은 제로입니다. 이들은 억지로 시켜서, 혹은 인사 고과 평가 때문에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너무도 행복해고 감사해서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한다는 말은 그들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이디라오의 진정한 힘은 말단 홀 서비스 직원까지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업체들이 이 부분을 감히 따라하지 못합니다. 대량구매 책임자는 5천만원까지 결재 재량권이 있습니다. 점장은 500만원까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집행할 수 있는 결재권을 갖습니다. 서빙 직원에게는 이런 권한이 있습니다. “메뉴 하나를 무료로 추가해 주기, 음식을 고객 옷에 쏟았을 때 세탁소에 맡겨 다시 내 주기, 고객이 맛있게 먹는 음식을 유심히 관찰한 후 한 접시 포장해서 선물로 제공하기, 문제가 있을 경우 한 테이블의 음식 값을 몽땅 무료로 제공해 주기 등.” 서빙 직원들은 고객을 직접 만나는 접점이고 다양한 요구와 기호는 현장에서 바로 해결해야 하므로 하이디라오의 이런 과감한 정책은 큰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창업자 장융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선량함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뢰를 저버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테이블 네 개로 시작한 장융의 식당. 사람이 중심이 되어 사람을 사람답게 인정하고 대접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떤 열매로 드러나는지를 잘 보여준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인류는 이미 하이디라오를 막을 수 없다.” 곱씹어 보는 새벽입니다.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등대같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