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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류는 하이디라오를 막을 수 없다(1)

홍콩 증시에 한 업체가 1조원 기업공개에 성공합니다. 2018년 신규 상장 기업 중 5위에 해당하는 규모지요. 전문가들이 발표한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120억 달러. 어떤 회사기에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일까요? IT기업? 4차 산업관련? 인공지능? 모두 아닙니다. 식당입니다. 중국서 흔하디 흔한 훠궈, 즉 중국식 샤브샤브 체인입니다. 훠궈는 육수에 고기나 채소를 담가 익혀 먹는게 전부입니다. 중국의 국민 음식이라 할 수 있지요. ‘인류는 이미 하이디라오를 막을 수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농담입니다. 이 훠궈 체인점의 이름이 하이디라오입니다. 무엇을 막을 수 없다는 말일까요? 직원들입니다. 이 식당 직원들의 서비스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손님이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음료, 과일, 스낵 등을 제공합니다. 포커, 장기, 바둑 등 오락거리를 제공해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재밌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구두가 더러운 손님에게는 신발을 벗으라고 하고 슬리퍼를 줍니다. 구두를 닦아주는 거죠. 여성들이 좋아하는 네일 케어 서비스를 기다리는 동안 받습니다. 종이 학 30 마리를 접거나 루빅 큐브를 맞추면 18위안 (약 3천원)어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김이 모락모락 나는 훠궈의 특성상 안경 낀 손님들이 불편합니다. 직원들은 테이블을 돌며 안경닦이를 제공하지요. 따뜻한 물수건은 15분마다 제공합니다. 5성 호텔급 서비스입니다. 머리가 긴 여성들에게는 머리 끈을 갖다 주고 휴대폰이 국물이 튀어 젖지 않도록 휴대폰을 전용 비닐케이스에 넣어 줍니다. 직원들은 항상 활짝 웃고 있습니다. 눈만 마주치면 냉큼 다가와 필요한 것이 없느냐 묻습니다. 아기가 있으면 부모가 식사하는 동안 진심으로 아기를 돌보아 주기도 하지요. 하이디라오의 서비스는 끝이 날 줄을 모릅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경쟁업체가 스파이를 몰래 취직시켜 서비스 비밀을 캐내려 애쓰기도 합니다만 어떤 식당도 하이디라오의 방식을 복제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은 서비스는 흉내를 잠깐 낼 수 있었지만 이내 예전의 태도로 되돌아가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고 합니다.‘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람은 손님이 아니다. 직원이다.’경영학자 황티에잉의 말입니다. 하이디라오의 서비스를 다른 식당이 흉내낼 수 없었던 것은 창업자의 철학과 신념 그리고 직원을 사람으로 대하는 그의 진심을 따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일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08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삶을 구걸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인줄 알아라.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하게 죽으라. 사형선고 받은 것이 억울해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본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너는 대한을 위해 깨끗하고 떳떳하게 죽어야 한다. 아마도 이 편지는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망치 아니하니 내세에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조마리아 여사가 아들 안중근에게 전한 편지입니다. 가슴 찢는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써 내려간 글입니다. 여사의 장남 안중근은 독립운동 역사에 가장 큰 획을 그은 인물이었습니다. 둘째 정근은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 기초를 닦은 인물이고 셋째 공근은 백범 김구의 오른팔로 활동한 위대한 독립 운동가였습니다. 막내 딸 성녀는 탄압을 견디다 못해 중국에서 독립군 군복 만드는 일을 합니다. 조마리아는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와 함께 상해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는 대한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사형에 이르기까지 불과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을 아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촌음을 바칩니다. ‘동양평화론’이라는 필생의 작품을 죽음 직전까지 집필하지요. 사형 직전 죄수에게 마지막 소원을 묻는 관례가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렇게 대답하지요.“5분 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대한민국 어머니들의 자녀 사랑은 온 세계가 알아주는 뜨거운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빛나는 별이 되어 세상을 밝히고 아름답고 따스한 곳으로 만드는 일에 온전히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그 과정에서 안중근 의사처럼 목숨을 내놓는 일이 있다 해도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을 위대한 어머니들이 이 땅 곳곳에 숨쉬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죽기 직전까지도 책을 쓰고 5분만 더 책을 읽고 싶은 열망으로 심장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운 아이들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엄마들의 손길로 자라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을 위해, 대의를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내 놓을 수 있는 멋진 의인으로 성장해 수 십년 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날 기다립니다. 마야 엔젤루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어머니는 허리케인이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힘이다.”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07

그녀가 맨발로 연주하는 이유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던 스코틀랜드 소녀가 있습니다. 볼거리 후유증이 나타나 여덟 살때부터 조금씩 청력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열 두 살이 되자 완벽한 귀머거리가 되지요. 피아노 연주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이 소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친구가 오케스트라에서 나무로 만든 타악기 마림바를 연주하는 모습에 푹 빠져 초등학교 음악부에 들어갑니다. “선생님이 팀파니를 치는 동안 저는 연습실 벽에 손을 대고 음의 높낮이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어떤 음은 손가락을 약간 울리는데, 어떤 음은 온 몸 전체로 퍼져 나가더라고요. 제 몸이 공명하는 방처럼 울린다는 것을 그때 확실히 느꼈습니다. 몸 전체가 거대한 귀로 변하기 시작한 순간이었죠.”몸으로 듣는 방법을 익힌 소녀. 원하는 대로 소리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귀로만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낙담뿐이었어요. 보청기 같은 기구에 의존해 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소리가 왜곡되거나 고통스럽게 들릴 뿐이었죠. 보청기를 벗어 던지니 자유가 찾아온거에요.”소녀 이름은 에벌린 글레니(Everlyn Glennie). 에벌린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맨발로 섭니다. 온몸으로 소리의 떨림을 느끼고 몸 자체로 음악과 교류하기 위해서지요. 그녀의 별명은 맨발의 연주자입니다. 포기를 모르는 열정의 소녀. 아침 7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연습에 매달립니다.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에 가서도 악보만 생각하지요. 삶 전체가 음악이요, 몸 전체가 귀입니다. 에벌린은 1982년 런던 왕립 음악원에 입학을 시도합니다. 당연히 거절당합니다. ‘런던 왕립 음악원은 청각 장애인에게 입학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거절 사유가 분명합니다. 그녀는 이 거절을 거부합니다. 학교 측에 자신을 청각 장애인이라는 잣대로 볼 것이 아니라 음악가로서 봐 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해 입학 심사를 받습니다. 교수들의 반대에 불구하고 세계적인 마림비스트 게이코 교수가 제자로 받아들입니다. 꿈을 묻는 기자들에게 눈을 반짝이며 말합니다. “듣는 것을 가르치는 센터를 세우고 싶습니다. 제대로 듣는 일은 절대로 대충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귀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역설이지요. 귀로 다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집중하지 못합니다. 다른 잡념이 들어오고 이해하려는 동기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말하기 위해 듣습니다. 눈부신 오월에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저와 그대 삶이기를.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5-06

사막에서의 20년, 위대한 멈춤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상과 단절한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작정 저 높은 고지를 향해 “돌격 앞으로!”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멈춤의 시간이 생의 한복판에 존재합니다. 텅 빈 공간에서 마음껏 사유하고 진짜 나를 만나 앞으로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시간들을 충만하게 누립니다. 신영복 선생은 20년의 옥고를 치르면서 달라졌습니다. 글 좀 쓰고 강연하고 살아가는 삶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를 우리에게 선물로 남겼습니다. 깊은 고독과 절망, 답답함이 그를 고전으로 이끌었습니다. 감옥은 새로운 학교였습니다.교부들 가운데 사막으로 나간 구도자들이 많습니다. 세상과 단절하고 오직 하나님과 자신을 만나기 위해 가장 열악한 환경인 사막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교부 안토니우스는 사막에 들어가 20년을 씨름합니다. 고독하고 팍팍한 사막 한 가운데서 홀로 서기를 시도합니다. 20년 동안 사막에서 오로지 자신과 신을 대면한 안토니우스는 지혜와 능력, 인격과 사랑을 갖춘 현자로 손길이 닿는 곳마다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살지 않습니다. 안토니우스에게 많은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끝없이 사막으로 몰려옵니다. 더 깊은 사막으로 피해야만 했지요.해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제자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는 1년에 한 번 스승을 만나는 기회라 잠시도 스승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묻고 대화하고 무어라도 하나 더 배워 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유독 한 제자는 말이 없습니다. 첫 해, 둘째 해도 그랬습니다. 해마다 그 제자는 말이 없이 조용히 방문했다가 아무 말없이 다시 돌아가지요. 이렇게 몇 년을 거듭한 후 한 번은 안토니우스가 제자에게 묻습니다. “형제님은 해마다 저를 찾으시지만, 한 번도 제게 묻지 않으시는군요. 혹시 어떤 이유라도 있으신지?” 제자는 대답합니다. “스승님을 뵙는 것으로 족합니다. 스승님의 얼굴을 보고 하루 종일 함께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1년 동안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훌륭한 스승들은 삶으로 일깨우지요. 수사와 현란한 말씀이 아니라, 눈빛과 표정 삶의 궤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해마다 찾아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은 제자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1년을 살 수 있는 힘을 주는 스승과 제자. 이런 아름다운 만남이 우리 시대에도 가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5-02

단지 써 보는 것 만으로

교교한 달빛. 영롱한 별들의 움직임. 어김없이 다시 떠오르는 태양. 새로운 하루. 흐르는 강물처럼 하루 24시간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우리 삶을 태운 채 흘러갑니다. 그대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피터 드러커는 말합니다. “지식노동자들의 경우, 과업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육체노동자와 달리 머리로 일해야 하는 지식노동자는 목표를 스스로 결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목표 달성을 위해 효과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일입니다. 시간이야 말로 지식노동자가 결과를 얻기 위해 투입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지요.어느 기업의 회장은 자신이 시간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사용한다고 확신하고 있었죠. 3분의 1은 회사 간부들과, 3분의 1은 중요한 고객을 만나는 데, 나머지 3분의 1은 지역사회 활동을 위해 사용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시간 관리 컨설팅을 위해 막상 6주 동안 실제 사용 시간을 기록하게 한 뒤 비교해 보았습니다. 앞에서 본인이 확신에 차 말했던 세 가지 활동에는 시간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회장은 대부분의 시간을 부하 직원을 독촉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피터 드러커는 조언합니다.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당신이 쓰고 있는 시간을 철저히 기록해 보는 일로 시작하세요.”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은 1440분입니다. 초로 환산하면 8만6천400초. 최선을 다해 내게 주어진 시간을 진정한 삶으로 이루어가는 예술.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눈부신 5월에는 작은 노트 하나를 준비해 내가 매일 의식하지 못한 채 사용하는 시간들의 통계를 한 번 작성해 보면 어떨까요? 단지 사용 시간을 기록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시간 관리 습관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하니까요.류비셰프는 나이 스물 여섯에 시간통계 노트를 쓰기 시작한 후 급한 일과 해결해야 할 바쁜 일들로 해방되어 하루 10시간 푹 자기. 운동하고 충분한 휴식 취하기. 주 1회 이상 공연, 전시회 관람. 주변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을 내어 대화하고 소통하기. 170권의 책 쓰기로 여유로움과 탁월한 성과.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습니다. 바쁜 일상 가운데 시간을 다스림으로 얻는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그대의 5월이시길 손모아 응원드립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5-01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

러시아 곤충학자 알렉산드로 류비셰프는 매일 10시간의 넉넉한 수면을 취했을 뿐 아니라 운동과 산책도 한가롭게 즐깁니다. 연 평균 60여 차례의 공연관람, 전시장 방문 등 문화 생활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1972년 작고할 때까지 서신 왕래를 통해 세계 각국의 학자들, 벗들과 왕성한 소통을 했습니다. 피로감을 느낄 때는 언제든 일을 중단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죠.넉넉하고 여유롭게 살았던 류비셰프가 자신의 분야에서 낸 성과는 놀랍습니다. 평생 학술서적 70권을 저술했습니다. 30대 이후 1년에 평균 책 1∼2권을 50년 동안 줄기차게 쓴 거죠. 이게 다가 아닙니다. 책 이외 그가 쓴 연구 논문은 무려 1만2천500 페이지에 이릅니다. 단행본으로 출판하면 대략 100권 분량의 논문들이지요. 여기에 수천 권 소책자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곤충분류학 뿐 아니라 물리학, 생물학, 철학, 역사, 문학, 윤리학을 두루 섭렵하고 글을 썼습니다.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인문학자였던 신비로운 사나이. 비결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의 독특한 시간관리 방식에 비밀이 있습니다.26세가 되는 어느 날 결심합니다. 매일 사용하는 시간을 꼼꼼이 기록하기로! 노트를 준비해 사용한 시간을 꼼꼼하게 기록합니다. 시간 통계노트라고 불렀습니다. 회계장부를 기록하듯 매일 자신이 사용한 시간을 계산하고 기록합니다. 연구 도중 서재에 들어온 딸과 대화하는 시간도 기록에 남깁니다. 버스·기차 타는 시간, 회의 시간, 줄 서있는 시간조차도 셈합니다. 출장이 있으면 책 목록을 정한 뒤 출장지에 미리 부쳐 놓을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쌓은 시간기록을 매달 말 합산했으며 연말에는 이를 다시 결산했습니다. 5년 주기로 자신이 사용한 시간의 통계를 내고 분석했으니, 류비셰프는 실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치열하게 관리했던 달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간관리의 세계 챔피언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1분 1초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시간을 사랑하고 아꼈으며 시간 앞에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82년 인생을 25억8천5백95만2천초로 미분(微分)했습니다.메마른 삶이 아니라, 시간을 완전히 장악하고 정복해 내편으로 만들어버린 예술의 경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충분한 휴식, 여유로운 문화 예술 생활, 방대한 독서, 어머어마한 저술. 사람들과 충분한 소통. 어쩌면 그는 인생 자체를 가장 아름답고 충만하게 즐기다 간 지고의 로맨티스트입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30

그가 방에 들어오면

어제 편지에서 말씀드린 피그말리온 효과, 로젠탈 이펙트는 군인, 기술자, 사관생도 등 다양한 집단에 골고루 동일한 효과가 입증된 이론입니다. 교육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긍정의 기대 신호를 보낼 때 상대방은 분명한 성장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정 반대의 경우로 스티그마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호주 원주민들은 마법사의 저주를 받으면 시름 시름 앓다가 며칠 후 실제로 숨을 거둡니다. 1942년 미국 생리학자 월터 캐넌은 이런 현상을 ‘부두 죽음(voodoo death)’라고 명명하지요. 아이티의 원시 종교인 부두교의 주술사로부터 저주를 받고 죽은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집니다.2009년 5월 영국의 뉴사이언티스트 커버스토리에 따르면 부두 죽음과 같은 유사한 사례가 선진국에도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밝혀 충격을 주었습니다. 마법사의 긴 주문이 ‘의사의 짧은 몇 마디’로 바뀌었을 따름이라는 겁니다. 예컨대 의사로부터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들은 환자가 절망에 빠져 삶의 의지를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거지요.일상에서도 이런 부정적인 편견이 얼마나 사람에게 위험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가 있습니다. 일명 스티그마 효과입니다. 스티그마는 낙인을 뜻합니다. 빨갛게 달군 인두를 가축에게 찍어 소유권 표시를 하는 게 바로 스티그마지요. 타인에게 부정적인 낙인을 찍힌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되거나 더 나쁜 상황으로 빠지게 되는 경우를 스티그마 효과라고 합니다. 탈옥수 신창원은 어릴 적 어머니와 사별하고 가난하게 살았는데, 학교에서 ‘돈 없으면 학교 다닐 필요 없으니 꺼져버려’라는 말을 듣고 마음 속에 범죄의 악마가 자라났다고 고백해 충격을 주었습니다.긍정 혹은 부정의 기운들이 전파처럼 세상에 감돌고 있습니다. 나에게 부정적인 기운을 끼치는 주변 인물이나 환경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고 어떻게 이를 차단할 수 있는지를 막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힘은 약하지만, 우리가 서로 연대하고 서로 격려할 수 있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긍정의 안테가가 될 수 있습니다. 부정의 파장을 차단하고 긍정의 물결을 일으키는 강력한 안테나의 삶이 필요합니다.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를 만든 드와이트 월레스의 이야기를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잡지사의 모든 직원들은 드와이트 월레스를 진심으로 좋아했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드와이트가 방에 들어오면 언제나 그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거든요.”/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29

미세먼지보다 더 위험한 것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키프로스 섬에 한 조각가가 있습니다. 작품의 주요 테마는 여자의 상(像)이었지요. 불후의 명작을 만듭니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너무 아름다워 이 조각상과 사랑에 빠져들고 말지요. 여러분 잘 아시는 조각가 피그말리온 이야기입니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수많은 심리학자, 철학자, 작가, 화가 등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있으니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지요. “긍정적인 기대를 심은 대로 상대방이 긍정적인 행동을 한다.”피그말리온 효과의 가장 극적인 사례는 하버드대학 교육 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의 실험입니다. 로젠탈은 20년 이상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레노어 제이콥슨(Lenore Jacobson)과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아이큐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이 학생들 가운데 테스트 결과와 아무 상관없이 무작위로 20%이 학생을 추려냅니다. 이 학생들의 명단을 각 반의 담임 교사에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지적인 능력이나 학업 성취의 향상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입니다.”8개월 후 20% 무작위로 뽑아준 학생들의 지능이 전보다 높게 나왔을 뿐만 아니라 학업 성취도 역시 크게 향상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교사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습게 봤던 학생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으려 태도가 바뀌고 한결 부드럽고 기대에 넘치는 것으로 교사의 행동이 바뀝니다. 아이들은 교사의 눈빛과 표정을 1초만에 해석해 낸다고 하지요. 긍정 신호는 고스란히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되어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끌어 올립니다.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기 중에는 수많은 종류의 전파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가 사는 공간을 떠 다니고 있습니다. 세상 역시 긍정 혹은 부정의 기운들이 전파처럼 감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정의 파장을 쏘면 그 파장을 받는 이는 피를 흘리고 -보이지 않는- 마음 속에 구멍이 뻥뻥 뚫립니다. 반대로 긍정의 파장을 보내면 그 긍정의 물결이 상대를 살리고 빛나게 하고 삶의 활력을 가져줍니다.미세 먼지보다 백 배 천 배 더 위험한 것이 우리로 하여금 낙담케 만들고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존재들입니다. 부정의 파장을 차단하고 긍정의 물결을 일으키는 강력한 안테나의 삶. 그대의 눈빛과 표정, 말투, 언어와 몸짓으로 그대 주위의 사람들에게 긍정의 파장을 날려보내는 멋진 날 만드시기를!/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28

하루에 한 번씩, 한 번에 한 걸음 전진하기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쓰기를 위해 저녁 삶을 포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저녁에는 일체 약속을 잡지 않습니다.사회 생활을 하는 유명인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만 이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하루키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해 부차적인 활동들에 뺄셈을 제대로 했던 것이지요.매일 새벽 4시 전으로 일어나 오전까지 정한 분량의 글을 쓰고, 점심 식사 후에는 달리기를 통해 기분전환 겸 체력 단련을 합니다. 오후에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죠. 그리고 일찍 저녁을 먹고 프로야구를 보다가 9시 무렵에 잡니다. 하루키는 매일 4천자 분량 글을 씁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4천자를 쓴다고 하지요. 그는 자신의 글쓰기 습관을 하루에 한 번씩 즉, One day at a time이라고 말합니다. 하루에 한 번씩 한 번에 한 걸음씩 멈추지 않고 나가는 거지요. 초보 작가들은 컨디션이 좋거나 영감이 마구 쏟아질 때 1만자도 쓰고 슬럼프에 허덕일 때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일들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대 작가 하루키씨는 글이 잘 써질 때든 막힐 때든 한결 같이 매일 4천자 쓰기를 고수합니다. 잘 풀릴 때는 절제하고, 글이 풀리지 않을 때는 힘을 냅니다. 무려 30년 동안 꾸준히 멈추지 않고 말이지요.출간을 위한 집필로서 하루 4천자는 만만치 않은 분량입니다. 소설 한 권을 쓰려면 대략 200자 원고지 1200매(24만자)를 써야 하는데 4천자씩 매일 쓰면 60일이면 24만자를 채울 수 있습니다. 두 달에 책 한 권을 써 내려가는 집필 속도입니다. 물론 초고 쓰기 이후 퇴고의 과정이 느리고 고통스럽습니다만.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용기란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해 두번째로 중요한 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곱씹을수록 의미가 깊어지는 말입니다. 저도 새벽 편지로 독자님들을 꾸준히 만나려 용기를 내고 있는 중입니다. 가장 중요한 글쓰기를 위해 저녁의 잡다한 일들을 모두 포기하고 늦어도 8시에는 잠자리에 들려 매일 투쟁합니다. 한때 아침형 인간 열풍이 불었고 최근에도 미라클 모닝, 새벽 5시의 기적 등 바람직하고 건강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좋습니다만 뺄셈이 아닌 덧셈이 되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포기할 것을 내려놓지 않고 좋은 것들을 계속 더하기만 하면 삶에 무리가 발생합니다. 함께 건강하게 새벽을 깨워 책 읽고 글 쓰는 동지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25

시인과 화가의 우정

가난한 천재 화가 이중섭에게는 절친한 벗 구상준이 있었습니다. 구상 시인으로 알려진 유명한 분이지요. 한국 전쟁이 막 끝난 1954년. 부산에서 홀로 작품을 그리고 있던 무명의 이중섭을 자신의 식객으로 대구로 모시고 올라와 지극한 정성을 다 합니다. 구상은 당시 영남일보 주필로 활동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힘을 다해 이중섭이 오로지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친구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서울과 대구의 전시회를 진두 지휘하면서 무리한 탓이었을까요? 구상은 이중섭의 대구 전시회가 끝나자 쓰러집니다. 폐결핵 판정을 받고 폐 절단 수술을 받습니다. ‘누구누구는 꼭 문병을 올 거야. 중섭이야 제일 먼저 달려오겠지.’그런데 이상합니다. 다녀갈 만한 사람들은 모두 문병을 왔는데 가장 친한 벗인 중섭은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구상 시인은 마음이 상하기 시작합니다. ‘중섭이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회복 중이라 불편한 몸에 낙심한 마음이 겹쳐 구상은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습니다.며칠 후 마침내 중섭이 병실 문을 열고 나타납니다. “자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나는 다른 그 누구보다 자네가 제일 먼저 달려올 줄 알았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네만은…” 친구의 원망에 이중섭은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머리만 긁적입니다. 부시럭 거리며 무언가를 꺼내 구상에게 내밉니다. “이게 뭔가?” “실은 이것 때문에 이렇게 늦었네. 내 정성일세.” 천도 복숭아 그림이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이 천도 복숭아를 먹으면 무병 장수한다고 하지 않나? 그러니 자네도 이걸 먹고 일어나게.” 과일 하나 사 올 수 없었던 가난한 이중섭이 과일 대신 그림을 그려 온 겁니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마주 잡습니다.구상 시인은 2004년 5월 11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도 복숭아를 서재에 걸어 두고 평생을 함께 합니다. 시인과 화가의 우정을 생각하니 함석헌의 시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탔던 배 꺼지는 순간 /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 ‘너만은 살아다오’ 할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불의의 사형장에서 /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려줄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내가 바로 누군가에게 중섭이 되는 날을 꿈꾸어 봅니다. 나는 과연 그 한 사람을 가졌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누군가의 그 한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는 삶이기를 생각하는 그대의 멋진 모습에 반합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24

누가 진정한 친구인가?

유명 야구 선수가 은퇴 후 방송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인상적입니다. “돈 좀 꿔 달라고 할 때 왜 돈이 필요한지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보내면 되겠는가를 묻는다면 진정한 친구다.”만종, 이삭 줍는 여인 등을 남긴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무명 시절 끼니를 잘 잇지 못할 정도로 궁핍했습니다. 물감을 사는 일이나 화구를 구입하는 일은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힘겨웠지요. 마지막 남은 장작을 난로에 넣으며 한숨을 내 쉽니다. ‘이제는 추워도 불을 피울 수 없구나.’ 한껏 움츠러든 마음이 우울과 슬픔으로 물듭니다.이때 밀레의 절친한 벗 테오도르 루소가 방문합니다. “밀레. 좋은 소식이 있네! 자네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네.” 밀레는 깜짝 놀라지요. 자기 그림이 팔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수집상이 자네 그림이 좋다며 한 작품 골라 달라고 선금을 주고 갔네.” 봉투 안에는 300프랑이라는 큰 돈이 들어 있습니다.밀레는 친구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립니다. “고맙네. 루소. 자네 덕분에 이 겨울을 걱정없이 날 수 있겠어. 자 어서 그림을 골라보게. 뭐가 좋겠나?” 밀레는 그 돈으로 식량과 물감을 샀고 용기를 내 더욱 매진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밀레는 화단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마침내 비싼 값에 그림이 팔리기 시작합니다.세월이 흐릅니다. 밀레는 오랜 만에 친구 테오도르 루소의 집을 방문하게 되지요. 루소의 집 벽에는 낯익은 그림 하나가 걸려 있습니다. “아니? 저 그림은. 몇 년 전 자네가 수집상에게 전해준다며 사 간 그림이 아닌가?” 루소가 말하지요. “그 수집상이 바로 나였네. 어려운 자네를 돕고 싶은데 그냥 돈을 건네면 자네 자존심이 상할까봐 그랬어.”많은 화가들이 바르비종으로 이주해 퐁텐블로 숲의 경치를 그립니다. 하지만 그곳에 끝까지 남아 바르비종 파를 지켰던 화가는 테오도르 루소와 밀레 두 사람 뿐입니다. 둘의 우정은 깊디 깊어 루소는 밀레 자녀들의 대부가 되어 주었고 밀레는 1875년 먼저 세상을 떠난 테오도르 루소의 옆에 나란히 묻힙니다. 퐁텐블로 숲에는 두 사람을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두 거장의 기운이 아스라히 퍼지는 숲이지요.폰을 열면 친구가 넘쳐납니다. 아무런 사심없이 내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그립습니다. 세상에서 누가 나를 그런 친구로 기억해 줄까, 고민 깊어가는 새벽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23

삶의 가지치기를 위한 지혜를 얻으려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바쁘고 분주한 삶에 서서히 지쳐가는 봄날입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돌보아야 할 사람도 많습니다. 참여해야 할 모임도 많고 내 봉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단체도 많습니다. 읽어야 할 책들은 산더미 같고 써야할 글들은 끝도 없습니다. 누구나 이런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 삶의 현 주소가 아닐까요?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 이후 삶이 너무도 바빠졌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에겐 매일 한 시간씩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바빠져서 요즘은 세 시간씩 기도해도 부족하다.” E.M 바운즈의 책에서 이 글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잘못 읽은 줄 알고 눈을 잠시 깜빡인 후 다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세 시간 기도하다가 바빠서 한 시간 기도한다는 것을 잘못 쓰거나 번역한 것으로 착각했던 거죠.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우리 삶이 바쁜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진다는 뜻이고, 나의 개입과 판단, 에너지를 써야 일이 이뤄지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이겠지요. 한 번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지금 당장 죽으면 세상도 바로 멈추는 걸까요? 물론 아닙니다. 세상은 내가 사라져도 아주 잘 굴러갈 겁니다. 삶이 바쁜 이유는 우리 착각 때문입니다. “나 없이는 안돼.” 라는 의도적 착각에 스스로가 빠져 있는 거라 할 수 있겠지요. 내 존재의 중요성을 입증하고 거기서 안정감과 인정을 얻으려는 욕구를 해소하려는 본능입니다.마르틴 루터는 생의 본질과 속성을 꿰뚫어 보는 힘이 있었습니다. 기도 시간을 세 배 늘림으로써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과업 중 무엇이 중요한 지,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걸러내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겁니다. 진정 중요한 일에만 삶의 우선 순위를 둘 수 있는 분별력 함양에 시간을 쏟은 거지요.삶이 바쁠수록 더 깊은 자발적 고독으로 나를 분리시켜야 합니다. 그곳에서 자신과의 내밀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삶의 핵심 가치를 세우고 그 가치에 따른 절제된 행동으로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나보다 훨씬 강한 에너지와 전략으로 나의 시간을 뺏으려 달려드는 온갖 힘에 저항할 능력을 잃게 마련입니다.저와 그대 앞에 놓인 남은 2019년, 그리고 머지않아 다가올 2020년.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삶의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걷는 시간이시기를, 그리하여 생애 최고의 시간들을 보내실 그대에게 박수를 드립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22

미친 듯 글을 써서 세상을 뒤집은 이 남자의 삶

“넘쳐 흐를 듯하고 터질 듯한 생명, 한 민족 전체의 무게와 야성이 있다. 목소리를 높일 때는 언어 안에 있는 오르간 전체가 울린다. 모든 말이 투박하게 소금을 쳐 노릇노릇 갓 구워낸 농가의 빵처럼 맛있다. 불을 토해내는 말은 마치 강력한 뇌우처럼 거칠고 난폭하게 독일 땅에 휘몰아친다.” 16세기 초 독일을 뒤흔들고 전 세계를 글로 뒤집은 마르틴 루터 이야기입니다.1515년, 교황청은 성 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면죄부 판매라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권력을 얻으려 사채업자에게 거액의 빚을 진 할버슈타트에게 대주교 자리를 내어 주고 8년 동안 면죄부 영업권을 선물로 하사합니다.“교황청이 낡아 성 베드로의 유골이 노숙할 지경에 이르렀다. 조상들이 연옥의 불길에서 고통받으니 후손들이 면죄부를 사서 조상들을 고통에서 건져주지 않으면 대대로 고난을 받을 것이다. 면죄부의 효력은 성모 마리아를 겁탈해도 깨끗이 용서받을 수 있을 정도로 효력이 있다. 돈 궤에 쨍그렁 면죄부 대금이 입금되는 순간,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은 천국으로 간다.” 이런 강렬한 홍보 문구는 민중들에게 먹혀듭니다.마르틴 루터는 이런 현실에 분노하지요. 상황의 부당함에 대해 글로 전투를 벌입니다. 모두 비웃음을 사고 말지요. 교황청은 루터를 이단으로 몰고 갑니다. 심지어 루터를 살해해도 아무런 죄를 묻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교시를 하달합니다.루터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은밀히 잠적한 상태로 엄청난 양의 글을 쓰며 저항합니다. 1523년 한 해 동안 독일 전체에서 발간된 출판물 총 900여편 중 346편이 루터가 쓴 글입니다. 한 국가에서 발행한 출판물 1/3이 넘는 분량을 혼자 써낸겁니다. 살아있는 동안 루터 한 사람이 발표한 글은 독일 모든 가톨릭 저자들이 발표한 글을 다 합친 것보다 다섯 배가 많은 분량이라고 하지요. 독일 공영TV인 ZDF가 2003년 11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독일인 100명을 선정합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10위, 구텐베르크 8위, 괴테 7위, 바흐 6위, 칼 마르크스 3위. 마르틴 루터가 2위를 차지하지요.썩어지고 부패한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린 마르틴 루터의 정신이 그리운 새벽입니다. 오늘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부지런히 사색하며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기르고 있을 그대를 응원합니다. 그대 시원한 글 한 줄이 험한 세상에 누군가의 마음 속 씨앗으로 심겨지는 내일을 위해 기도합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21

인생의 사각 링에서 벌어지는 일들

고구치 마사유키(28)씨는 취미로 권투를 배우고 있습니다. 링에 오르면 오를 수록 권투가 신나고 재밌어 집니다. 체육관에서 깜짝 제안이 옵니다. “이봐 고구치씨, 혹시 진짜 시합에 한 번 나가보지 않겠어요?”챔피언 은퇴 경기의 오프닝 게임이랍니다. TV 중계까지 잡혀있다지요. 결전의 날이 밝습니다. 야심차게 링에 오른 고구치 마사유키. 상대방을 거세게 몰아 부칩니다. 가볍게 풋웍을 하며 링을 빙글빙글 돕니다. 원투 스트레이트. 잽, 잽…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땡 땡 땡…” 시합 중지를 알리는 공이 계속 울립니다. 심판은 경기를 중단합니다. 고구치 마사유키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습니다. 상대방의 라이트 훅 한방에 고구치 머리에서 가발이 링 위에 떨어진 겁니다. 세상에나!멀쩡한 선수가 갑자기 대머리가 되는 해프닝에 관중들과 시청자들 모두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심판은 반칙패를 선언합니다. 복싱 규정에 이런 게 있거든요. “선수는 슈즈와 트렁크, 낭심 보호대 외에는 어떤 물건도 착용해서는 안된다.”두 세 사람이 잡아당겨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한 가발이었기에 설마 시합에서 이런 불상사가 벌어 지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정작 큰 문제는 다음 날 일어납니다. 부업을 엄격하게 금지해 온 회사에서 고구치의 복싱을 부업으로 판단, 즉시 해고합니다. TV 중계로 온 세상에 창피를 당하고 직장까지 날려먹은 꼴입니다.그런데 말입니다. 이 사건이 일본 전역에 퍼져 나가자 눈을 동그랗게 뜬 회사들이 있습니다. 가발 회사, 발모제 회사, 두피관리 업체 광고 담당자들이지요. 그들이 동시에 고구치에게 전화를 걸어옵니다. 광고 모델이 되어 달라는 겁니다. 인생 역전. 막대한 광고 수입을 올리면서 평소 하고 싶었던 복싱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던 거죠. 이후 고구치는 벌이는 시합마다 연전 연승합니다.우리 삶은 때로 치욕적인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고 결핍으로 자존감이 바닥으로 처박히는 순간이 종종 있습니다. 넘사벽처럼 보이는 한계가 우리를 낙담케 한다 할지라도 거기에 굴복하면 안됩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이 말을 기억하시지요. “이봐 채금자(책임자). (해 보기는) 해 봤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집념과 열정으로 지금 바로 내 앞에 주어진 이 순간의 일에만 전념하고 나머지는 잊어버리는 태도로 하루 하루 충실히 살아가면 내일 우리 앞에 어떤 선물이 주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18

삶이 고단하고 슬픔이 밀려올 때

스탠다드 오일 중역 컨더넬스는 직원들과 고전을 연구하던 중 “갈대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수가 갈대 사이에 두고(출 2:1-3)”라는 대목을 만납니다. 한 직원이 질문하지요. “역청(pitch)이라는 것은 원유를 증류하고 남은 찌꺼기 아닌가요?” 컨더넬스는 전율합니다. 인근에 틀림없이 유전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즉각 지질학자를 이집트로 급파합니다. 예상은 적중하지요. 거대한 유전을 발견합니다.갈대는 모진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풀입니다. 강변이나 호수변에 많이 자라지요. 척박한 땅에서 자라나는 대표적인 식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갈대숲은 단연 순천만입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불과 15만평이었던 순천만 갈대숲은 현재 70만평으로 번식해 장관을 이룹니다.갈대는 예로부터 풍요로움을 안겨주었습니다. 뿌리가 항암작용을 한다고 해서 캐가는 사람도 있고, 골다공증을 치료하는 약품의 주요 성분이 갈대입니다. 추출물로 골대사 질환에 혁신적인 의약품을 만듭니다.순천만 갈대 숲이 번성하자 생태계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민물도요새가 떼를 지어 비행을 하고, 천연기념물 228호인 흑두루미 가족들이 개펄에 앉아 쉽니다. 천연기념물 199호인 황새도 나타나 생태학자들을 흥분시킵니다. 고니는 여덟 마리나 서식하고 저어새는 네 마리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철새와 텃새 400종 중 절반을 만날 수 있는 새들의 안식처입니다.신경림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 갈대는 /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제 평생 더러운 물을 빨아들여 생명력 넘치는 맑은 물로 토해내는 일을 반복하는 삶. 뿌리까지 고스란히 항암제로 쓰임 받는 삶. 온갖 생명들의 품이 되어주는 넉넉하고 아름다운 숲. 인간들의 뼈까지 속속들이 챙겨주는 골다공증 치료제로 짓이겨져 녹아지는 갈대의 운명. 갈대는 알고 있는 거지요. 자신의 삶과 존재 그 자체가 눈물로 채워지지 않으면 주변을 맑게 할 수도, 누군가를 치료할 수도, 생명을 품는 숲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 삶이 고단하고 조용한 울음으로 흔들리는 것은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겁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17

열 두 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을 때

왜 학교는 변하지 않는가? 교실은 수십년째 같은 모양, 같은 방식을 왜 고수하고 있는가? 의문을 가진 부호가 있었습니다.1930년 보스톤 북부에 있는 150년 전통의 유명 사립 고등학교를 찾아가 루이스 페리 교장에게 제안하지요. “틀에 박힌 주입식 교육 방법을 바꿀 수 있는 완전히 혁신적인 교육 시스템을 제시할 수 있다면 거액을 기부하겠소.”석유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에드워드 하크니스(Edward Harkness)는 현재 가치로 약 800억원의 금액을 이 학교의 교육 실험에 선뜻 투자하기로 제안합니다.교장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교사들과 고심 끝에 상담교사의 충원이나 노벨상 수상자를 초빙, 영감을 불어넣는 강연을 확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하크니스는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뜻입니다. 학교 시스템 자체를 완전히 뒤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안을 다시 내놓으라 요구하지요. 교장과 교사들은 다시 6개월 밤샘 작업을 합니다. 비로소 하크니스의 입가에 웃음이 번져 나지요.정원을 12명 단위 모든 수업은 토론으로 진행한다. 1년을 3학기로 나누고, 1학기에 10주 수업을 한다. 역사나 문학 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 음악, 미술까지 교과서를 없애고 책을 읽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수업한다. 학생들은 원탁에 둘러 앉아 서로를 마주보고 질문하고 응답하며 서로를 가르친다. 교사는 이 토론을 진행하되 가르치지 않는다.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Phillips Exter Academy). 미국 최고의 사립고등학교입니다. 학생들은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토론할 내용을 철저하게 공부해 옵니다. 졸업생들은 대부분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지요. 하버드, 예일, 브라운, 콜럼비아 등. 하크니스의 기부 이래 80년 동안 최고의 인재를 키워내는 탄탄한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학생들은 경쟁하지 않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서로에게 배웁니다. 타원형 책상에 하크니스 테이블(Harkness Table)이라는 이름을 붙이지요. 신입생들이 읽는 학교 규칙이 바로 ‘Facebook’입니다. 졸업생 중 한 아이가 세운 회사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마크 주커버그의 페이스북입니다.자그마한 방 한 칸, 빼곡하게 고전으로 가득한 책장이 둘러 있고 큼직한 타원형 테이블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이 새로운 방식의 교육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교육이 들불처럼 퍼져 나갈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16

태양을 만져라(Touch the Sun)

“너무 높이 날지 말거라. 태양의 열기 때문에 날개 밀랍이 녹는다.”고대 그리스의 장인 다이달로스와 아들 이카루스는 마치 아이언맨이 수트를 입고 날아다니는 것처럼 에게해 상공을 훨훨 날아 크레타 섬을 탈출하는데 성공합니다. 비행에 심취한 이카루스는 충고를 잊어버립니다. 자신의 한계를 잊어버린 채 더 높은 곳으로 비행하며 환희와 절정을 맛봅니다. 결국 이카루스의 날개는 녹아내리고 바다를 향해 추락하고 말지요.21세기 인류는 태양을 향해 비행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섭니다. 터치 더 선(Touch the Sun) “태양을 만져라” 프로젝트입니다. 2018년 8월 12일 새벽 3시 31분. 인류 최초의 태양 탐사선 파커 솔라 프로브가 태양의 신비를 풀기 위한 임무를 받고 발사에 성공했지요.태양은 도대체 얼마나 뜨거울까요? 포스코 용광로의 쇳물이 약 1천500℃를 넘는다고 합니다. 금속 중 가장 녹는 점이 높은 물질이 텅스텐은 3천410℃가 돼야 녹는다죠. 태양 표면의 온도는 무려 6천℃입니다. 코로나 온도는 무려 150만℃.현대판 이카루스인 파커는 섭씨 150만℃의 태양 코로나를 뚫고 태양 표면에 도달하는 게 임무입니다. 나사(NASA)는 두께 11㎝의 탄소복합체 열보호 시스템(TPS)을 외부에 둘렀습니다. 놀라운 신물질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태양의 코로나를 뚫고 들어가는데도, 내부 온도는 섭씨 27℃를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태양의 중력에 빨려들지 않으려면 탐사선의 속도는 초속 190㎞ 이상을 유지해야 합니다. 1초만에 포항에서 대구를 거쳐 대전 근처까지 날아가는 속도입니다.파커는 지금 태양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중입니다. 2025년까지 7년 동안 24차례 태양에 근접 비행하면서 태양 궤도를 돌고 마지막으로 코로나 속으로 급강하해 최후의 임무를 다 한 뒤 태양 속으로 빨려 들어가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고 하네요.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염원은 비행기를 만들어 냈고, 다이달로스의 후손들은 우주선을 뚝딱 뚝딱 지었으며 결국 태양을 향해 녹지 않을 탄소복합섬유로 몸을 감싼 작품을 날려보내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꿈을 향해 날개 짓하는 우리의 인생. 추락할 수도 있고 크게 다칠 수도 있으며 불행하게도 목숨을 잃는 수도 있겠지만 도전하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견적 나오는 플랜을 적당히 세우며 안주하는 삶이 아니라 소명을 따라 한계를 계속 돌파하며 현실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삶을 꿈꾸는 그대를 응원합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15

어떤 필기도구를 쓰고 계신가요?

“이 빌어먹을 만년필!” 헝가리의 기자 라즐로가 고함을 칩니다. 열심히 작성한 기사에 만년필에서 흐른 잉크가 번진 거지요. 펜에 잉크를 찍는 것에 비하면 만년필의 발명이 대단한 진보였습니다만, 주머니 속에 보관한 만년필에서 잉크가 흘러 옷을 버리게 된다든지, 가방 속 노트를 망치는 일이 종종 있었지요. 라즐로는 신문사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를 듣다가 홀린 듯 영감을 얻습니다. “신문 인쇄용 잉크는 금방 마르잖아!” 만년필에 윤전기 잉크를 넣어보려는 발상을 합니다. 하지만 신문용 잉크는 너무 끈적거려서 만년필의 펜촉이 금새 막혀버립니다.“게오르그. 좋은 해결책이 없을까?“ 라즐로의 동생 게오르그는 연구에 골몰합니다. 온갖 실험 끝에 펜촉 끝에 작은 금속 공(Ball)을 끼워 넣고 그 공이 종이와 마찰하면서 회전할 때 잉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분사 시스템을 완성합니다. 만년필의 시대가 저물고 바야흐로 볼펜(Ball point Pen)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입니다. 유럽에서 2차 대전이 격렬해지자 유대인이던 이들 형제는 나치의 핍박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볼펜 사업을 시작합니다. 볼펜은 전쟁 덕분에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를 맞습니다. 영국 공군 때문이지요.높은 고도에서는 잉크가 솟구치거나 만년필이 터지는 등 무용지물인 까닭에 영국 곡군은 라즐로 볼펜을 도입했고 연필보다는 빠르고 선명하게 지도에 표기할 수 있어서 전투에 유리했습니다. 영국 공군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이유가 볼펜 때문이라고 말하는 전쟁학자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한 토론 모임에서 사회자가 물었습니다. “여러분, 무인도에 한 권의 책을 들고 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책을 갖고 가시겠습니까?” 논어, 성경, 기타 자신의 인생 책을 말합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저는 제 방식대로 대답하기로 맘 먹었지요. “저는 볼펜 한 자루와 두꺼운 노트를 갖고 가겠어요.” 무인도에 어차피 혼자서, 무척이나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남의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내 안의 생각들을 길어내고 그 생각들을 정리해 보는 글을 쓰는 게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볼펜 한 자루의 수명은 600m입니다. 20시간 정도 연속 쓸 수 있습니다. 새벽 편지를 쓰기 전 항상 노트 두 페이지를 볼펜으로 쓰면서 워밍업을 하는데 예상보다 빨리 닳아 없어지는데 놀랐습니다. 다음에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볼펜 100자루와 두꺼운 노트 한 권.”/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14

한 계단 아래 서 볼 것

1980년대 중반의 일입니다. 한 유명한 교수가 뉴욕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객실 안을 마구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만납니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은 채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무례한 사람입니다. 참다못한 교수는 말을 건넵니다. “여보시오, 아이들을 좀 어떻게 해 보시는 게 좋지 않겠소?” 그제서야 남자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합니다. “당신 말이 맞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남자의 눈에 눈물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 시간 전에 아이들 엄마가 수술실에서 사망했거든요. 그래서…”그 말을 듣고 난 교수와 지하철 객실 주위 사람들은 이 아버지와 그 아이들을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방금까지 이 남자는 무례하기 짝이 없고 교양없는 쓰레기였지만 이제 아내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슬픔에 가득 잠긴 로맨티스트로 보이고, 돼먹지 못한 아이들은 엄마를 잃은 불쌍한 천사처럼 보이게 된 것이지요. 이 사건을 겪은 유명한 대학교수는 스티븐 코비 박사입니다.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자신을 포함해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편견’에 사로잡힌 채 인지하고 있는가를 깨닫습니다.식량이 다 떨어져 일행과 함께 며칠을 굶으며 여행하던 중 공자는 제자 안회가 어렵게 쌀을 구해와 밥을 짓다 몰래 밥을 한줌 입에 넣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제자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지요. 하지만 실상은 천장에서 흙이 떨어져 스승께 드리지 못할 부분을 버리자니 아까워 삼킨 것이었습니다. 공자는 잠시나마 의심한 것을 후회하며 말합니다.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너희들은 알아 두어라.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이해는 영어로 Understand입니다. Under + Stand가 결합된 단어지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아니고, 동일한 칸에서 수평적으로 눈을 맞추는 것도 아닙니다. 타인 보다 한 칸 또는 여러 칸을 아래에 서야 비로소 진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안회처럼 억울한 사람은 없는가? 지하철의 아빠처럼 슬픈 사람은 없는가? 오늘은 계단에서 한 칸만 물러서서 상대를 텅 빈 마음으로 온전히 바라보아 주는 예쁜 하루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11

유연한 사고방식을 키우려면

“2030년까지 20억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토마스 프레이의 경고입니다. 구글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이지요. 70억 인류 가운데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요? 절반을 잡아도 35억명입니다. 20억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앞으로 11년 동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천지개벽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한국고용정보원은 최근의 보고서에서 2025년까지 국내 일자리의 60%가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6년 후 이야기입니다. 늦기 전에 대비해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교육도, 직업도, 우리의 일상도. 이제 그 무엇도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저 멀리 쓰나미가 100m 높이의 파도로 시시각각 다가오는 중입니다.일자리는 사라질 수 있지만 일거리는 지속적으로 생겨납니다. 토마스 프레이는 미래 일거리를 만들어 내는 ‘촉매 기술’에 주목하라고 힌트를 줍니다. 한 예를 들어 볼까요? 인공지능과 로봇이 앞으로 우리 사회 대부분의 노동을 감당한다면 무엇이 과도기적으로 필요할까요?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어마 어마한 양의 코딩(coding)이 필요합니다.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 그걸 코드로 변환하는 사람. 앞으로 미국에서만 100만개의 프로그래머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예측합니다.미국의 어느 프로그래머 양성 아카데미는 코딩을 전혀 모르는 초보자를 놓고 가르칩니다. 4개월이 지나면 능숙하게 코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프로그래머로 거듭나게 해 줍니다. 4개월 학비는 1천200만원. 그러나 졸업 즉시 연봉 7만~10만달러(8천만~1억 2천만원) 계약으로 즉시 일자리를 얻습니다. 기존 직장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 유명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 못하는 구직자들이 이 프로그래머 아카데미에 입학하려고 줄을 서고 있습니다.유연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느냐 굳어버린 사고방식을 고집하느냐가 생과 사를 가르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유연한 사고방식은 헬스장에서 근육을 단련하듯 매일 일정한 방식으로 훈련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책과 물음표 그리고 노트와 연필 한 자루가 필요합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거대한 쓰나미를 보고 발만 동동 구를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유연한 사고 방식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변화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굳어버린 내 사고방식을 깨부수려 애써야 합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