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임말 열풍이 뜨겁다. 2000년 중반에 시작된 줄임말은 초등학생을 `초딩`, 선생님을 `쌤`으로 줄여 부르는 식으로 누구나 발음만 들으면 대충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ㄱㅅㄱㅅ(굽신굽신)`, `ㅎㄷㄷ(후덜덜)`처럼 간단한 파자로 쓰이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특정집단이 아니면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기괴한 형태로 바뀌고 있다.`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이뭐병(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같은 단어가 온라인상에서 재미삼아 쓰이다가 요즘 10대들은 거의 모든 문장에 줄임말을 섞어 쓴다.`버카충(버스카드 충전)`, `안습(안구에 습기)`, `맥날(맥도날드)`, `낄끼빠빠(낄데 끼고 빠질데 빠져)`, `빼박켄트(빼도박도 못한다)`, `생선(생일선물)`, `비담(비주얼 담당)` 등이 두루 쓰이는 줄임말 단어다.단어의 첫 음절만을 따서 줄여쓰던 것이 더 짧게 더 압축적으로 줄인 신조어도 많다. `ㅎㄹ`(`헐`의 줄임말), `#G(시아버지를 빨리 읽는 발음으로 쓴 말)` 같은 경우다.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인 정치권에서는 `어후문`, `어후안`이란 줄임말이 유행이다. `어차피 후보는 문재인`, `어차피 후보는 안철수`란 뜻이란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후보가 호남에 이어 충청 경선에서도 1위를 달성하면서부터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이 확정적이란 뜻에서 `어후문`이란 줄임말이 돌았다. 안 후보도 호남·제주와 PK(부산·경남)에서 3연속 1위를 기록하면서 사실상 본선 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해서 `어후안`이란다. 아무리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도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망칠 수 있는 게 선거다. 실제 우리 정치사에서 말 한 마디 잘못했다 망친 선거가 적지않다.`어후문`과 `어후안`의 `어`는 `어차피`또는 `어떻게 하더라도`란 뜻이다. 해당후보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빨리 승리를 확정짓고 싶은 마음이니 반가운 말일게다. 하지만 지켜보는 국민들 입장에선 입맛이 쓰다. `내가 뭐라해도 어차피`라는 정치적 냉소주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2017-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