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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암호명 29`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지만 요즘 정당들을 보면 여당은 분열 중이고 야당은 공조(共助)가 어렵다. 여당의 비박 7명이 탈당했고 유력 대권주자였던 김무성 전 대표는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 선언하고, 대통령 탄핵 대열에 합류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많이 애를 썼던 그는 대통령의 뜻에 맞서며 `치고 빠지기`로 각을 세우다가 결국 `갈 길`을 갔다.야당들은 “탄핵이 먼저다” “총리 인선이 먼저다” 의견 대립을 보이다가 국민의당이 `탄핵 우선`쪽으로 돌아섰다.그러나 이 공조는 그리 견고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당은 `문재인 비판`을 그치지 않는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지금 대통령은 문재인”이라 비꼬면서 “그는 김대중 정부 말기의 이회창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한다. 당시 `이회창 대통령 당선`은 거의 대세였지만 자녀 병역특혜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 폭로` 한 방에 훅 가버렸다.민주당도 반격에 나선다. 금태섭 대변인은 “새누리당에서 나오는 근거 없는 이야기까지 동원해서 우리당을 흠집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기 바란다” 따지고 “이런 일은 야권 공조를 흔드는 심각한 분열 행위”라고 비난했다.국민의당은 “탄핵하더라도 황교안 총리를 그대로 둔다면 결국 박근혜 정권의 연속이기 때문에 총리를 먼저 선임하자” 주장하다가 입장을 바꿨다.그러나 두 야당이 각각 대선 주자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정국으로 들어서면 곧 바로 `멱살잡이`를 할 것이다.탄핵은 양날의 칼이다. 200명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야당의원 171명에 여당의 29명을 보태야 가결이 될텐데, 실패하면 과거 `노무현 탄핵 실패` 꼴이 되어서 야당이 망한다. 이 트라우마 때문에 야당들이 탄핵을 주저했었는데 대통령 지지율이 5%에 계속 머물러 있고 촛불 민심에 고무되어서 자신감을 얻은 모양이다. 그러나 박근혜가 밉다 해서 야당이 곱게 보인다는 것은 아니다.`암호명 29`는 야당으로서는 도박이다. 탄핵이 가결된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라는 고비가 또 있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25

중국의 문화보복

중국은 `인류의 스승`을 엄청 많이 가진 나라다. 듬직한 덩치를 보면 의젓한 `세계의 맏형`노릇을 할만 한데 지금 허우대 값도 못하는`뚱보 미성년자`로, 아이들 골목대장 놀이에 끼어서 힘자랑이나 한다. 모택동의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의 후유증인데 그 후예들이 모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아 공산독재체제의 단맛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중국이 최근 한한령(韓限令)을 내렸다. “한류에 한계를 두라”는 명령이다. 광전(廣電)총국 고위관리가 지방정부 수장들과 방송국 관리자들을 불러 놓고 구두지시를 내렸다. “한국 연예인들을 광고 모델로 쓰지 말고, 한국 아이돌들의 콘서트도 그만두라” 지시했다는 것. 그래서 10월부터 송중기의 중국 휴대폰 광고가 사라졌고, 콘서트 초청을 받은 그룹이 하나도 없다. 중국에는 `민간`이란 것이 사실상 없고 관영 아니면 관변 뿐이니 관리의 말 한 마디가 바로 법이다.물어 보나 마나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보복이다. 중국은 그동안 한국에 통큰 문화투자를 했다. 그렇게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잔뜩 높여 놓고 나서 그것을 무기로 한국을 멋대로 조종하는 것이다. `허우대값도 못 하는 중국`이란 욕을 먹는 이유다. 우리가 방어무기를 배치하든 말든 그것은 우리의 주권행사인데 자기들의 국방에 해가 될까 싶어 하라 하지 말라 간섭을 한다. 모택동이 집권하자 마자 티베트를 침공해서 집어 삼키고,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는 나라에는 꼭 보복을 하는 그런 `속 좁은 대국`이다.그러나 남중국해 주변의 작은 나라들이 단결하고 있다. 베트남 라오스 태국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또 독립을 원하는 홍콩과 대만 등이 중국에 맞선다. 중국이 한국에 보내는 관광객 수를 줄이자, 이들 약소국들이 한국에 보내는 관광객을 30%에서 50%까지 늘렸다.기죽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도 중국에 보복할 수단이 얼마든지 있다. 농산물 수입을 줄이고, 중국이 벌에 쏘인듯이 펄쩍 뛰는`달라이 라마 초청`을 시도하는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24

염량세태(炎凉世態)

사마천의 사기(史記) 열전 중 `맹상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맹상군이 세도를 누릴때는 찾는 사람이 문전에 가득하더니, 낙마하자 문앞에 찬바람이 불었다. 식객들도 모두가 떠났지만 `풍환` 한 사람만은 남아서 맹상군의 말벗이 돼주었다. 그러다가 그가 다시 권세를 잡자 사람이 모여들었다. 맹상군이 이들을 내쫓으려 하자 풍환이 말렸다.“저잣거리에 나가보십시오. 아침에는 사람이 북적이다가 저녁이 되면 한적해집니다. 사람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아침에는 살 물건이 많고 저녁에는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금방 덥다가 금방 추워지는 변덕스러운 세태란, 사람의 심사가 본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막지 마십시오”수당 이남규 선생은 아들 손자까지 3대가 독립운동에 나섰고, 가솔과 노비까지 죽임을 당했다. 선생은 염량세태를 이렇게 읊었다. “세상 온갖 군상들을 바라보니/흙먼지 길에 자욱하구나/저렇게 애쓰는 자들이 어려서부터 늙을때까지/젖은 곳 버리고 마른 곳 찾는구나/고기냄새에 모여드는 개미떼처럼/마름풀을 쪼는 물오리처럼.” 사람뿐 아니라 온갖 미물들도 이익을 찾아 먼지 자욱하게 뛰고 몸부림치는 것은 다 타고난 습성이란 탄식이다.새누리당 비박계를 중심으로 탈당 움직임이 일어나고 심지어 `박근혜 탈당`을 외치고 “친박은 책임 지고 당을 떠나라. 지도부 사퇴하라” 한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줄줄이 탈당할 생각이라 분당 조짐이 뚜렷이 보인다. `새누리당의 풍환`인 이정현 대표는 “대통령이 사리사욕 있는 분은 아니라는 신뢰를 가지고 있다”면서 “3선 이상 의원 가운데 박 대통령께 정치적으로 신세 지지 않은 사람은 없는데, 필요할 때는 업어달라 애원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자 등을 발로 차는 사람들이 많다”고 탄식했다.야당들은 마치 정복자처럼 기세등등하지만 공감은 크지 않다. “지금은 최순실이 한 사람이지만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여러 명의 최순실이 있을 것”이란 우려 섞인 비아냥도 들린다. 염량세태에 부평초같이 떠도는 인심을 어쩌랴./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23

가짜 기사(記事)

지난 14일자 페이스북에 `아메리칸뉴스`란 이름으로 기사 하나가 올라왔다. `유명 배우 덴젤 워싱턴(62)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을 찬양하다`란 제목으로 “트럼프는 사람을 많이 고용하고 일자리를 많이 창출했다. 그의 확고한 신념이 진보 성향의 할리우드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고 썼다. 이 기사는 페이스북에서 이틀간 2만2천번 이상 공유됐는데 사실 `아메리칸뉴스`란 언론사도 없고 가짜 기자가 쓴 허위낭설이었다. 미국 대선 3일 전인 5일에는 `덴버 가디언`이란 이름의 언론사가 “클린턴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을 수사한 FBI 요원이 살해됐다”란 기사를 페이스북에 유포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 입장을 밝혔다”는 가짜 기사도 등장했다.가짜란 것이 금방 드러나는 기사지만 긴가민가한 기사가 더 많다. 대선 당일인 8일 구글 검색엔진에서는 “트럼프가 총득표수에서 클린턴을 앞질렀다”는 뉴스가 최상위 순번으로 검색됐다. 이 기사는 “트럼프가 총득표수에서도 앞섰고 선거인단 수에서는 306대 232로 크게 승리했다”라 썼지만 실제 총 득표수에서는 클린턴이 앞섰고 선거인단 수에서 트럼프가 이겼다.가짜 기사를 전문으로 쓰는 기자가 익명 뒤에 숨지 않고 당당히 얼굴을 내밀고 큰소리 치는 곳이 미국이다. 폴 호너(38)는 가짜 기사로 유명한 사람인데“트럼프는 내 덕에 당선됐다”며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까지 했다. 트럼프 운동원들이 열심히 자기의 가짜 기사를 퍼 나르는데 접속자 수가 많으면 광고가 붙게 마련이고 그 광고료 수입이 월 1만 달러 이상이니 가짜 기자도 하나의 `직업`이다. 호너는 대선 기간 중 “반(反)트럼프 시위대가 3천500달러를 받고 시위를 벌였다”란 가짜 기사를 썼는데도 그는 고발당하지 않았다. 이를 처벌할 법규가 마땅히 없다.오바마 대통령도 큰 걱정을 한다. “우리는 매우 잘 포장된 거짓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이를 규제할 법 제정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했다. 이런 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22

딸 덕(德)·딸 화(禍)

미 대통령 당선자 트럼프는 “딸 덕을 크게 본 행운아”였다. 선거운동 당시 신문 방송 편집자들은 그의 `험한 얼굴 사진`을 주로 내보냈다. `야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이 험한 인상을 중화시키는 작용을 한 사람이 바로 그의 딸 이방카였다. 그녀는 항상 아버지 옆에 바싹 붙어 다니면서 `미녀와 야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트럼프의 첫 부인은 모델 출신의 이바나였고, 딸도 어머니를 닮아 뛰어난 미모를 갖췄으니, 아버지의 야수 이미지를 잘 희석시켰다. 아버지가 여성 비하·인종차별적 발언을 하자, 딸은 “아버지 회사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있다”는 찬조연설로 완화시켰다.이방카의 남편 쿠슈너도 일등공신이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혈맹인데 트럼프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에서 중립을 지키겠다”하자 유대계들이 화를 냈다. 이를 무마시킨 사람이 바로 사위 쿠슈너였다. 그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유대인의 손자였다. 그는 유대계 지도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해명했다. 또 그는 연설문을 작성했고, 온라인 선거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그래서 당선인은 사위를 백악관에 데리고 들어갈 작정이다.이렇게 딸·사위의 덕을 크게 본 사람도 있지만 딸 때문에 패가망신 인생을 망친 사람도 있다. 바로 최순실이다. 딸 사랑이 지나쳤던 것이 화근이다. 재벌이나 하는 `승마`를 가르친 것부터 잘못이었고, 그것도 올림픽 출전 선수로 키우려 한 것이 과욕이었다. 천문학적 액수의 돈이 들어가는 일인데 그 돈을 변통하려면 권력을 이용해서 기업들의 돈을 뜯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곤경은 그녀를 말리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최태민·최순실 멘토`에 대한 보상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다.고교 졸업도 취소되고, 대학 졸업장도 사라지고, 후원금도 끊어지고, `최순실법`이 만들어져서 재산까지 몰수되면,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다. 그러나 `과욕은 재앙`이라는 교훈은 남겼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21

역사교육의 정상화

역사교과서 편찬을 국가가 주관해야 한다는 논의는 MB정부에서 시작됐다. 민간 출판사들이 여러 종의 교과서를 만드니 상당수가 좌편향되거나 왜곡됐다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던 중`교학사 교과서 사건`이 발생했다. 좌파적 시각에서 벗어난 교과서라는 이유로 집중공격의 표적이 됐다. 이 책을 채택한 학교들을 향한 협박이 빗발쳤다. 그것은 매우 집요했고, 마침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는 학교가 없어졌다. 역사교과서는 좌파들의 독점물이 돼버렸다. “이게 북한 교과서인가, 남한 교과서인가”란 비판이 일어났다.“역사교과서에는 국민의 혼과 자긍심이 담겨야 한다. 이념적으로 분단된 국가에서, 교과서의 다양성이란 명목의 검인정은 좌파에 역사를 넘겨주는 일이다. 역사교육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해서 박근혜정부는 국정화(國定化)를 결정했다. 그것은 매우 용기 있는 결정이었지만, 힘겨운 도전이었다. 좌파 중심의 재야 역사학계의 반발은 거의 사생결단이었다. 박근혜정부는 이로써 또 하나의 적을 만들었다. 무릇 `개혁`과 `정상화` 과정에는 늘 `적`이 만들어진다.`최순실 사태`가 터지자`최순실 교과서`란 말이 좌파쪽에서 나왔다.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의 인척을 두고 그런 억측을 한 것인데, 무슨 일이든지 최순실만 갖다 붙이면 다 `악`이 되는 분위기를 탔다. 그러나 김 전 교문수석은 “북핵은 약소국이 추구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일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오히려 “좌파가 심어놓은 트로이 목마가 아닌가” 라는 의심까지 샀다.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 하지만, 박근혜정부가 최악의 궁지에 몰려 있는 정국에서 그 국정화는 실로 풍전등화의 운명이다. 이달 28일 경에 내용이 공개되면 좌파의 공세는 더 극렬하고 전투적일 것이기 때문이다.역사교과서는 국민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깨어지고 금이 간 그릇은 소용이 없다. 남남 갈등을 부추기거나 조국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긴다면 그것은`적화통일용 교과서`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18

나쁜 선지자들

명성황후 민비는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가방끈도 짧았다. 얌전한 규수로 자라 현모양처나 될 그녀를 `남정식``진령군`같은 점바치들이 버려놓았다. 민중전은 평소 남정식을 곁에 두고 고종의 건강이나 등용할 신하의 운세 등을 물었다. 1882년 임오년에 군란이 터졌다. 군인들에게 줄 곡식에 물을 타 무게를 늘이고 모래를 섞어 부피를 불렸던 것이다. 당시 실세였던 민비 친정붙이들이 공격 대상이 됐다. 민비는 충청도 충주로 피난을 갔고 거기서 무당 `진령군`을 만난다. 진령군은 끊임 없이 민비를 부추겨`정치가`로 만들어간다.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은 치열했다. 미국 러시아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이 밀려오고, 대원군은 “우리가 지금 개방하면, 한 방에 훅 간다”면서 쇄국을 했고 민비는 정치 일선에 나가 개방을 주도한다.`얌전한 내조자`가 `국제정치의 핵심`이 돼 시아버지 대원군과 맞선다. 진령군이 `비선실세`였다. 이 무당은 수시로 궁궐을 드나들었고 민비는 그를 완전히 신뢰하고 의존했다. 민비는 심지어 이 무당의 말을 듣고 친정 부친의 묘소를 5번이나 이장했다. 그러나 민중전은 5번째 이장한 이듬해 일본 낭인들의 칼날에 목숨을 잃고 시신이 `입에 못 담을 능욕`을 당한다.고려 공민왕은 승려 신돈을 개혁정치에 이용하고 버린다. 무릇 개혁이란` 기득권 세력 척결`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래서 신돈은 갖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는 개혁 6년만에 참살을 당하고 `요승 신돈`이란 이름이 역사책에 기록된다. 심지어 “공민왕의 아들이냐, 신돈의 아들이냐”란 의혹까지 제기한다. 당시 주자학을 배운 신진 사대부들이 불교를 공격해 궁지로 몰아넣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 신돈이었다. 결국 불교 국가 고려는 유교 국가 조선으로 역성혁명을 하게 된다.최태민·최순실 일가는 불교의 연기설에 의하면, 신돈이나 진령군의 환생이라 할 수 있겠다. 박근혜정부의 `비정상의 정상화`란 개혁정치는 많은 적(敵)을 만들었다. 역사가 지금의 이 사태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17

막판 뒤집기

미국 영화 `더록`은 `후버 파일`을 둘러싼 이야기다. 후버는 무려 48년간이나 FBI 국장을 했다. 1972년 심장마비로 숨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 것은 역대 대통령들의 약점을 다 쥐고 있었기 때문. 어느 대통령도 그를 해임하지 못했고 심지어 케네디가 의문의 암살을 당한 후 자리를 승계한 존슨 대통령은 70세인 그를 `종신 FBI국장`에 임명했다.`더록`의 마지막 대사가 “누가 케네디를 죽였는지 알어?”였다. `후버 파일`에는 당시 유명 인사들의 치명적 약점들이 다 들어 있다는 소문이 났었고 모든 정보기관들이 그 필름을 찾으려고 혈안이 됐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고 영화의 소재나 될 뿐이다. 다만 “약점 없는 대통령은 없다”는 것만 밝혀졌다.현 FBI 제임스 코미 국장은 미 대선을 11일 남겨둔 시점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주고받은 새 개인 이메일을 발견, 재수사할 방침”이라는 서한을 의회에 보냈다. 그것은 클린턴 후보에게는 치명상이었다. 그녀는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국가 기밀이 담긴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는 혐의를 받았는데 FBI는 지난 7월 불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그것을 다시 꺼내어서 “새 개인 이메일 발견, 재수사 방침”이라 했다가 선거 2일 전에`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클린턴을 두 번 죽이는 악재 중의 악재였다.당시 클린턴 후보는 3번의 TV토론에서 승기를 잡았고 음담패설 동영상까지 나와 패색이 짙은 트럼프 후보는 거의 포기상태, 측근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클린턴 당선`이 눈앞에 온듯했다. 이 시점에서 `막판 뒤집기`를 FBI가 시도했고 그것은 제대로 먹혀들었다.`재수사 방침`이 나오자 클린턴 인기는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이메일 스캔들`과 `클린턴재단의 비리`는 한 묶음이 되어서 “클린턴 가문은 부패한 집단”이란 연상작용을 일으켰다.선거전이란 폭로전이고 막판뒤집기는 항상 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선거의 맹점`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지만 악취 풍기는 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16

말 잘하는 기술

조선조 정조대왕의 문체반정(文體反正)때문에 연암 박지원 등이 시도했던`문장혁명`이 좌절됐다. “고문체로 된 글 몇 편을 써오면, 벼슬을 내리겠다” 정조가 연암에게 한 이 말이 문체반정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서얼 출신들 중심의 글꾼 모임인 `백탑파`는 종래의 `고문체`에 신물이 났다. 운율을 맞춰야 하고 고상한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그런 글로는 사물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때 중국에서 소설(小說)이 들어왔다. 백탑파들은 쾌재를 올렸다. “바로 이런 문장이다!” `운문`에서 `산문`으로의 문체혁명이 그렇게 태동했지만 정조는 “품격 없는 글이 인성을 해친다” 했다. 트럼프 후보의 당선은 지식인·오피니언 리더들이 전혀 예상 못한 결과였다. 그의 말은 품위도 없고, 고상하지도 않고, 멋대가리도 없었다. 막말 비속어가 난무했다. “중국이 더 이상 미국을 강간하지 못하게 하겠다” “힐러리의 눈에 피가 흐를 것입니다. 이 여자가 피 흘리는 곳이 눈 뿐일까요” 이런 시정잡배 같은 말투를 보고 지식인들은 일찍 “저 사람 틀렸다” 했고, 언론사들은 일제히 등을 돌렸다. 그러나 직업 없는 서민 대중들은 “속이 시원하다”면서 몰표를 주었다.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뉴욕시립대 폴 크루그먼 교수는 `우리가 모르는 국가`란 제목의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자기 나라 미국을 `알지 못하는 나라`라 지칭한 것이다. “확실히 자격 미달이고, 기질이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데다 황당하기까지 한 후보를 우리 미국인이 선택할 리 없다고 우리는 믿었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제 눈에는 미국이 실패한 나라로 보인다. 충분히…”지식인들의 생각과 대중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 선거제도를 가진 국가들은 바로 이 `서민대중의 표`에 의해 다스려진다.말에는 `귀에 바로 들어오는` 말이 있고 `머리속에 잠시 굴려야 이해되는 `말이 있다. 트럼프는 `맞보기 언어`로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린이도 알아 들을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말 잘하는 기술`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15

여성성 논쟁

인류가 최초로 만든 조각상이 `비너스상`이다. 출산과 양육이라는 `생산의 대지`요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여신의 존재감을 한결 드높였다. 제우스신이 최고신이지만 아내 헤라에게 꼼짝 못하는 공처가 신으로 그려진다. 신전 대부분은 여신에게 바쳐졌다. 인도에도 수많은 신들이 있는데 그 대부분이 여신이고, 가장 인기 높은 신도 여신이다. 이렇게 평화시대에는 여신들이 존중됐으나, 전쟁시대를 지나면서 남신이 우위에 오른다. 야훼, 제우스, 토르, 인드라, 마르두크 등이 신계(神界)를 지배하는데 젊은 태양신 마르두크가 늙은 여신 티아마트를 굴복시킨 이야기가 상징적이다. 모계사회에서 바야흐로 부계사회로 이행된 것이다.이슬람 사회는 물론이고,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아르헨티나 등도 여성이 학대받는 나라들이다. 남자들이 이유 없이 여자를 살해한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최근 “여성 살해를 멈춰라!” 외치면서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한 떼전 몰려나와 시위를 벌였다. 17일 간 19명의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죽임을 당한 후인데, 이 나라에서는 30시간 마다 1명씩의 여성이 살해된다. 최근에는 `16세 소녀 루시아 사건`이 터졌다. 남자 3명이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성폭행하고, 고문을 가해 심장마비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녀의 사진이 공개되자, 그 처참한 모습에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한국사회에서도 여성혐오증이 나타난다. 최순실게이트 이후의 현상이다. 여자들이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여성들이 펄쩍 뛴다. “남자들은 갖은 부정부패 다 저지르고, 영토를 북에 헌납하고, 천문학적 액수의 조공을 갖다 바치는데도, 남자 후보 찍지 말자 소리가 안 나오는데, 어쩌다 여자가 한 번 국정에 간여했다 해서, 여자 후보 찍지 말자 한다” 조선시대적 여성 차별의 악습이라 한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은 최순실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 “강남의 무속 여인”이라 했지만, 누가 뭐래도 `모성 본능`은 위대하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14

종교와 사교(邪敎)

지난 5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구국 천제 기도회`가 열렸다. 주최자는 안소정 하늘빛명상연구원장이었고 `고유문` 낭독자는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지명자였다. 박 내정자는 일찍 안소정 원장의 `빛명상` 강의를 듣고 감동받아 제자가 됐고 명상록 `사랑은 위함이다`에서 자신의 영적 체험을 소개했다.“필자는 이 지구에 47회나 여러 다른 모습으로 왔었다. 바닷속에서 태어난 적도 있다”란 내용도 있고 “명상을 하는데 흰옷 입은 옛 노인이 나타나 정조의 일기장 일성록(日省錄)을 건넸다. 노인은 전봉준 장군이었다”란 글도 있다.지금은 `무당` 혹은 `무속인`으로 바뀌었지만 옛 신정(神政)시절에는 천제(天祭)를 주관하는 제사장, 곧 왕이었다. 무당에는 각각 전공분야가 있는데 병을 잘 고치는 약사무, 미래를 미리 아는 선지자, 사자의 혼을 불러내는 공진이 등이다. 공진이는 사자와 생자 사이를 연결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서양에도 이런 무당이 있는데 그를 영매(靈媒)라 부른다. 갑작스럽게 사망한 사자들은 가족들에게 할 말을 제대로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영매`를 통해 `사후 유언`을 한다. 부모를 졸지에 잃은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이라는 영매를 만났다.“네가 앞으로 아시아의 지도자가 될 것인데 이를 위해 엄마가 먼저 간 것이다. 길을 비켜준 것인데 왜 우매하게 울고만 있느냐”. 육 여사가 최태민을 통해 이런 말을 전했다는 것이다.박근혜 영애는 그때부터 최씨 일가와 뗄 수 없는 친분을 맺는다. 대통령이 될 때까지 최씨 일가는 충실한 선지자 역할을 했다.“박근혜가 사교에 빠졌다”는 소리가 파다했고 권력기관들이 나서서 최를 조사했지만 다 흐지부지 덮어졌다.종교가 권력에 의지해서 돈을 밝히면 사교(邪敎)가 돼버린다. 고려의 국교(國敎)였던 불교가 성리학자들에 의해 배척된 것도 권력을 업고 축재를 한 탓이다. `최태민교`가 금·권에 초연했다면 `종교`가 됐을 지 모른다. 그러나 금도를 넘어서면서 사교로 전락했고 대통령까지 궁지로 몰아 넣었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11

최순실법

권력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을 추징, 국고에 환수하는 특별법이 `전두환법`이다. 대통령 재직 중 기업들로부터 엄청난 재물을 거둬 측근·친인척들에게 나눠줬고, 법원의 추징명령을 받고도 “내 재산은 29만원뿐”이라며 버티다가 급기야 박근혜정부는 `공무원의 부정축재를 추적·추징할 법`을 만들었다. 부정으로 모은 재산은 흔히 남의 이름으로 숨기는 일이 많으므로 법원은`보전명령`을 내려 재산 처분을 못 하게 막았고 재산이 어디로 흘러갔다는 `개연성`만 있어도 이를 불법재산으로 간주했다.이 법으로 인해 자식·처남에게 준 재산도 몰수됐는데 부동산은 물론 미술품까지 압류딱지를 붙여 차떼기로 실어갔고 아들 처남도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서 눈물로 사죄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연이어 `세월호 침몰`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터졌다. 정경유착이 사고의 원인이었고 `관피아`란 신조어가 생겼으며 해양경찰이 해체되고 `국민안전처`가 신설되었다. 그리고 유족 보상과 세월호 인양을 위한 비용은 `유병언법`을 만들어 충당하기로 했지만 `유병언 유고`란 변수가 생기면서 특별법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러나 유병언법은 사후에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통과`됐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법이지만 국민감정을 감안해서 또 차후에라도 쓰일데가 있을까 싶어 `준비해놓은 칼`이었다.지금 `최순실법`이 추진되고 있다.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 더민주당 민병두 의원 등이 법안을 준비 중이고 새누리당 비박계 심재철 국회 부의장은 이미 최순실법을 발의했다. 대통령도 조사할 수 있고 해외에 빼돌린 비리재산도 환수할 수 있는 조항이 들어 있다. 전두환법은 `공무원 대상의 법`이라 민간인 최순실 일가에 적용할 수 없어서 `민간인`이 권력을 등에 업고 국정에 개입해 형성한 `비리 재산`을 몰수할 법이 따로 필요했다.이런 특별법은 `소급입법 금지원칙`에 위배되지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권력형 불법·비리를 줄이는데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효과가 크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10

흥망이 유수하니

요즘의 새누리당을 생각하면 절로 떠오르는 옛시조들이 있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붙였으니/석양을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원천석은 한때 이방원의 스승이었으나 그가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는 것을 보고는 원주 치악산 깊숙이 숨어버렸다. 태종은 왕사(王師) 자리를 비워놓고 치악산까지 스승을 모시러 왔으나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훗날 개성 만월대를 돌아보며 `권력의 허망함`을 시조에 담았다.“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정몽주와 정도전의 스승이었던 이색은 두 제자가 친원파·친명파로 갈라져서 목숨 걸고 싸우는 꼴을 보고 “내가 이러려고 저들의 선생이 되었나, 괴롭고 참담한 마음 가눌 길 없다”며 고향 영해로 돌아와 은거했다. 선생도 훗날 만월대를 돌아보며 그 감회를 이렇게 읊었다. 일제 강점기 영천 출신의 왕평이 “황성 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만 고요해/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했던 그 심정은 옛사람과 다르지 않았다.지난 총선에서 패배한 새누리당이 설상가상으로 `최순실 게이트`까지 맞아 서리 맞은 뱀처럼 비실거리면서 황성옛터가 돼버렸다. 비박들은 “당을 이 꼴로 만든 친박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대표직 등 모든 당직을 사임, 당을 새롭게 꾸려가자”하고 친박의 좌장 이정현 대표는“물러나고 싶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누군가는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해야 하지 않겠는가” 했다. 그러나 대선주자 5명이 `당 지도부 사퇴`를 요구했고 정진석 원내대표까지 사퇴 촉구 대열에 끼었으며 강석호 최고위원은 처음으로 사퇴를 결행했다.하태경 의원은 `독한 말`까지 했다.“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대표가 계속 버티면 4·19때의 이승만 대통령, 이기붕 부통령 일가처럼 될 것”이라 했다. 이승만은 하와이로 쫓겨갔고, 이기붕 일가는 권총으로 집단 자살을 했다. `만월대의 회포`보다 훨씬 참담한 `권력의 종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09

기묘한 정치인연

조선조 성종대왕 시절, 한 내시가 고향에 다니러 갔다. 왕의 최측근이라 그가 지나는 길목 고을 원들의 대접이 융숭했다. 그러나 고향 마을 사또는 “환관과 사사로이 친교를 맺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의례적 문안인사만 하자 내시가 앙심을 품었다. 그는 왕에게 “고향 수령이 크게 대접했습니다” 거짓을 아뢰었다. 왕은 이를 괘씸히 여겨 그 지방관의 승진을 막아버렸다. 어느날 경연자리에서 왕이 내시 고향 수령의 이야기를 했는데 대신(大臣)이 듣고 사실을 조사해 본 결과 내시가 거꾸로 말했음을 알고 이를 왕에게 고했다. `왕을 기만한 죄`로 그 내시는 처형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무현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2006년 청와대가 그를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내정했을 때 당시 한나라당은 극렬히 반대했고, 그는 13일만에 자진 사퇴했다. 그때 이정현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교육까지 거덜낼 작정이냐. 장담컨데 불행의 씨앗이 될 것”이라 했고, 인사청문회 때는 그의 두 딸의 입학·전학에 문제 있다고 했고, 논문 표절의혹까지 제기했다. 노 정부가 부총리 임명을 강행하자 한나라당은 그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김 후보자가 사퇴하자 노 정부는 그를 청와대 정책실장에 앉혔다. 그는 행정수도 이전, 공공기관 지방 이전, 종합부동산세 등을 이끌며 한나라당과 사사건건 부딪혔다. 하지만 정치인연은 참 묘하다. 새누리당이 그를 총리로 지명하자 이번에는 야당이 반대한다. 대야(大野)가 반대하면 국회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다. “야당의 사전 결재를 받지 않았다”가 이유. 야당이 정권을 사실상 이양받은 모양새를 취한다. 한나라당 시절에 죽기살기로 반대했던 새누리당은 이제 입장이 전혀 달라져서 `김병준 옹호`를 해야 할 형편이다.매우 난감해진 곳이 국민의당이다. 김 교수를 당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다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 정치세계에는 친구와 적이 수시로 바뀐다. 한심하고도 재미 있는 정치권의 인연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08

길고 어두운 터널

`심리 조작의 비밀`이란 책이 나왔다. 일본의 사회심리학자 오카다 다카시의 저서. 남을 조종하는 세뇌와 암시와 최면에 관한 기록이다. 살인집단인 옴 진리교에 엘리트 지식인들이 맥 없이 넘어간 이유를 밝히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일단 의존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믿게 된다.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지 못하며 의존하는 사람에게 맡겨버린다. 난처한 일이 발생하면 바로 그 사람에게 묻고 그가 시키는대로 한다” 내용의 일부다.박정희 대통령시절 차지철, 중앙정보부, 검찰이 최태민을 조사했다. 보고서는 한결같이 “조심해야 할 위험 인물”이었고, 아버지는 딸을 심히 나무랐다. 그러나 `윗불`은 껐지만 `속불`은 타고 있었다. 전두환정권도 최태민을 조사했다. 노태우정권 때는 두 동생이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보냈다. “언니를 최태민의 마수에서 구해주십시오”란 내용이었다. 당시 민정수석실이 나섰으나 곧 유야무야됐다. 박근혜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내가 누구에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최태민에 대한 소문은 반대세력의 악선전”이라 했다.후에도 검찰은 최태민과 그 주변의 비리를 샅샅이 조사했다. 최씨는 자신의 비리를 부인하면서 모든 책임을 `영애 박근혜`에게 돌렸다고 한다. “영애가 다친다” 해서인지 최씨를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공식 수사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사이비 종교를 연구하는 탁명환씨의 글을 통해서 혹은 당시 수사관들의 입을 통해 단편적 비화들이 흘러나왔다.노태우정부시절 민정수석실이 작성한 보고서는 남아 있다. 최씨는 영애에게 “신의 계시로 몇 년만 기다리면 여왕이 될 것이다. 친인척 등 외부인을 만나면 부정 타니 접촉을 피하라”했으며 “최면을 걸어 육영수 여사의 환상이 나타나게 했다는 말이 나돈다”고 썼다. 박 대통령은 2차 사과에서 “최씨 일가와의 사적인 인연을 끊겠다”했다. 40년의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온 순간이다. 껍질을 깨는 아픔을 겪고 나서야…./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07

문고리 권력

대통령도 사람이라 특별히 애정을 쏟는 `가족같은` 인물이 없을 수 없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도 벨러리 재럿이 있다. 8년간 백악관 수석 고문으로 있다. 재럿은 1990년대 시카고 시장실에 있을 때 당시 오바마의 약혼녀 미셀 오바마를 채용한 것이 인연이 돼 세 사람은 끈끈한 인연의 끈을 맺었다. 흑인 여성 변호사인 재럿은 오바마가 시카고 정계에 진출하도록 다리를 놓았고,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이 될 때까지 킹메이커 역할을 해주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자 당장 재럿을 불러 `문고리 권력`의 자리에 앉혔다. 대통령은 나이가 몇 살 많은 재럿에게 깍듯이 `누님`이라 부르며, 국정 전반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 연설문 손질은 기본이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는 20년 지기 최측근이 있다. 후마 애버딘은 1996년 조지워싱턴대 학생시절 백악관 인턴을 하면서 클린턴과 인연을 맺었고 올해 대선후보가 될 때까지 줄곧 곁을 지켰다.2010년 애버딘의 결혼식에서 힐러리는 “후마는 나의 둘째 딸 같은 존재”라 말한 후 언론들은 그녀를 `클린턴의 수양딸`이라 불렀다. 힐러리는 뭣 필요한 것이 있을 때 후마를 쳐다보며 손가락 마디를 뚝뚝 꺾는 습관이 있는데, 후마는 눈빛만 보고도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알아 정확히 대령했다.정가에서는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후마로 통한다”고 한다. 심지어 힐러리의 남편 빌 클린턴조차도 아내에게 볼 일이 있을 때는 후마부터 찾았다고 한다.그런데 이 두 사람은 지금까지 주군(主君)을 곤란하게 만드는 스캔들을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비선 실세`가 아니고 `공식 직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둠의 권력`이 될 수 없었고 `공직자 재산 공개` 대상이 되기 때문에 권력형 비리를 저지를 여지도 없었다.그 점이 한국의 최씨 일가가 권력의 비호 밑에 엄청난 재물을 긁어모은 것과 다른 점이다.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배신감 때문이다. “박근혜만은 반듯하리라”는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는 배신에 국민들은 치를 떨며 허탈해 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04

권력형 비리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시대 홍국영은 호위대장 주제에 정승판서를 호령했다. 왕의 등극을 도왔기 때문. 23대 순조때는 왕비의 친정 아버지 김조순이 득세, 안동김씨의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24대 현종 때는 풍양조씨 조만영이 세도를 부렸다.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했고, 현종이 일찍 승하하면서 풍양조씨의 세도정치는 겨우 5년이었다. 철종이 강화도에 숨어 농부로 살아가다가 `왕실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임금이 되지만 일자무식인 그는 애당초 허수아비였고 안동김씨 일문이 재집권하면서 그 세도정치는 무려 60년이나 계속되다가 흥선대원군에 와서 마감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어서 당시 삼정(三政·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은 망국의 원인이 됐다.권력형 비리는 현대사회에 오면서도 변함 없이 이어졌다. 1960년 부통령 이기붕 일가는 맏아들 이강석의 권총에 의해 몰살되는 비운을 맞았다. “박마리아의 안사람 이기붕”이라 할 정도로 부인의 위세는 외교에까지 미쳤다. 전두환시절의 `장영자-이철희`금융사기사건은 장영자의 `젊은시절 30여 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했다. 이 사건때문에 `금융실명제`가 논의됐으나 기득권층과 정치권의 반대로 계속 미뤄지다가 YS가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노태우 정권 때는 박철언, YS때는 차남 김현철, 김대중 때는 아들 3형제가 모두 처벌받았고, 노무현때는 형 노건평의 뇌물사건, 이명박때는 처사촌 김옥희·김재홍이 권력형 비리의 중심이었다.YS는 공헌도 많았지만 IMF의 원인을 제공한 탓으로 “나라 망친 대통령”이란 말이 따라다녔다. 그 후 19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최순실 세도정치`때문에 관료사회의 사기(士氣)는 형편 없이 떨어지고 언론은 등을 돌리고, 야당은 사사건건 반대만 했으니 경제인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없다. 정치권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했다. 곪아터져서 박근혜 정권이 자멸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적은 언제나 내부에 있고, 권력형 비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03

거국내각(擧國內閣)

거국내각제란 대통령을 뒷방 늙은이로 만드는 제도다. 대통령의 각료 임명권을 뺏아 국회에 주는데 여야가 합의로 국무총리와 장관들을 임명한다. `최순실사태` 초기에 야당은 서둘러 “대통령은 국정에 손떼라”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은 당적을 버리고 국회와 협의하여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라”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도 “여야가 합의한 새 총리가 국정을 수습해가야 한다”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 전 대표, 전 국회의장들, 야권 원로들 모두 한 목소리로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라고 외쳤다.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대통령을 배제시키는 일이 달가울 리 없지만 국가를 위해 이를 박 대통령에게 강력히 촉구키로 했고 청와대도 긍정적이었다. 여당이 거국내각제를 덥썩 받아 물자 야당들은 바로 말을 뒤집었다. 그동안 열심히 부르짖어놓고 “지금은 그런 걸 거론할 때가 아니다”했다. 여당과는 결코 발을 맞출 수 없다는 태도고, “어차피 무너져가는 정권에 우리가 왜 한 발을 담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1년 여 남은 대선에서 필승이 훤히 보이고 `독식`이 가능한데, 왜 정권을 `끝장 난` 새누리당과 나눌 것인가? 그런 뜻이다.국정 마비를 막고, 대한민국호를 암초지대에서 빠져나가도록 운전하는 것이 국가적·국민적 목표인데, 야당들은 그 목표보다 당리당략을 먼저 생각한다. 내각제를 받아들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야권이 내각제를 돌연 반대하는 것은 “식물대통령이 배를 몰다가 아주 뒤집어 엎어버려라”란 뜻인가. 돼가는 사태가 점점 더 야권에 유리하게 돌아가니, 표정관리나 하면서 때를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사실상 거국중립내각제란 한국적 상황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여야가 한 집안에서 `동거` 해봐야 배가 순항(順航)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 헌정사상 이 제도를 채택한 일이 없다. 국가보다 정권을 먼저 생각하는 저질 정치를 고칠 약이 없다. 그것이 한국정치의 비극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02

말(馬)과 정권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말이 `적토마`. 말이 사람의 절개·신의까지 버리게 했다. 한나라 무제는 아라비아의 말이 천하제일이란 말을 듣고 사러 갔다가 모욕만 당했다. 국가가 보호하는 종마였던 것.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 해서 천리마요, 붉은빛 땀을 흘린다 해서 한혈마(汗血馬)였다. BC101년 한 무제는 전쟁을 일으켰다. 페르가나를 침공해서 한혈마 3천필을 노획해서 돌아왔다. 그 천마(天馬) 중에서도 `역사적인 말`이 적토마였다. 당초 동탁의 소유인데 여포에게 선물로 주자 그는 바로 주군(主君)을 버리고 동탁 밑으로 들어왔다. 조조가 여포를 죽이고 적토마를 빼앗아 관우에게 선물하자 그 또한 조조에게 왔다. 관우 전사 후 손권이 적토마를 취해 마충에게 주었다. 마충이 관우를 죽였기 때문. 관우가 죽자 적토마는 식음을 전폐하고 굶어죽었다. 그때가 적토마 나이 40세였다. 말의 수명은 25년에서 30년인데, 40세에 자결했다는 것은 너무나 `소설적`이다.“말깨나 타고, 승마대회깨나 나가는 사람”이라면 그는`재벌`이란 뜻이다. 2014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와 함께 인천아시안게임 승마대회에 나가 단체전에서 금메달,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딴 김동선 선수는 한화 김승연 회장의 3남이고,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국내 대회 6개에 출전해 9번이나 우승했다.승마는 워낙 돈이 많이 드는 도락이어서 재벌가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낸다. 유치원 경영이 고작인 최순실씨가 딸을 승마선수로 키운 것은 아무래도 `참새가 황새 따라가는 격`이었고, 그 과욕이 오늘날의 `동티`를 불러왔다. 무남독녀에 대한 자애가 너무 지나쳐서 `권력을 이용한 재벌행세`를 자행했고, 그것이 한 정권을 뒤흔든 원죄였다.말 한 필의 가격이 1억원에서 30억원이고, 관리비가 월 150만~200만원, 레슨비가 100만~150만원, 말을 이동할 때 트럭을 쓰면 마리 당 150만원, 항공기에 태우면 1천500만원이 든다. 재벌이 아니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다. 분수를 넘는 과욕이 항상 문제를 만든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1-01

정치와 사교(邪敎)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최근 `2007년 한국 대선 때의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당시는 이명박-박근혜 간 후보경선이 치열하던 때였다. 주한 미 대사관은 그 해 7월 16일 “MB세력들은 최태민씨를 한국의 라스푸틴이라 부른다. 카리스마가 있는 고 최태민씨는 인격 형성기에 있던 박근혜 후보의 심신을 완전히 지배했다. 최의 자녀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라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최의 사위 정윤회 등 최씨 일가가 직권을 남용할 수 있다는 말을 MB측에서 흘린다”란 구절도 있다.`라스푸틴`은 20세기 초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시절 떠돌이 `최면술사`였다. 그때 황태자 알렉세이가 혈우병에 걸려 죽을 지경이 됐는데 라스푸틴이 이 병을 고친 것이 계기가 되어서 황제 내외의 지극한 신뢰를 받으며 국정 전반을 농단한다. 심지어 현몽(現夢)을 내세워“꿈에 황제의 군대가 대승하는 것으로 보이니 진군하시라”라는 작전지시까지 내려 참패한다. 장관의 목을 마음대로 뗐다 붙였다 했고 세금을 대폭 올려 받는 증세정책을 조언해서 민중이 폭동을 일으켰다. 1916년 우국지사들이 그를 죽여버렸지만 나라는 이미 기울어 2개월 후 로마노프 왕조는 무너지고 말았다.최태민은 일제 때 순사였다. 난세를 살아가는 처세술과 남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면술에 능한 사람이었다. 불교·기독교·천도교를 합친 종교라며 영세계(靈世界)를 주장하고 죽은 자와 산 자는 꿈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했다. “꿈에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가 영부인이 될 것”이라 했다는 말이나 “간절히 원하면 우주의 에너지가 지원한다”는 말은 다 이같은 `교리`에서 나온 것이다. 맏딸이 이 사교에 빠지자 아버지는 호되게 질책했고 두 동생들이 심각하게 걱정했지만 박근혜는 끝내 그 최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고 최태민의 자녀들과 `사사건건 국정을 상의하는` 관계를 맺어왔다.주한 미 대사관의 예측은 맞았다. 사교가 나라를 절벽으로 몰아왔다. 국민들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때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