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통해 영웅으로 등극한 인물.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71·네덜란드)는 우리 국민의 우상이었다. 외국인이라지만 그 사람 만큼 우리 국민의 열광을 온몸으로 받은 인물은 없었다. 온 나라가 히딩크 신드롬이었다. 그의 멋들어진 어퍼컷과 카리스마, 지도력 등은 늘 우리의 화두였다. 이런 경우 히딩크는 어떻게 했을까, 모든 문제의 해답은 히딩크로 귀결되던 시절이다. `히딩크` 이름을 달고 출판된 서적들이 홍수를 이뤘다. `히딩크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이 최고의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니 당시 히딩크 신드롬의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붉은 악마의 옷을 입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한민국`을 크게 외쳤던 젊은이들도 이젠 중년의 나이쯤 됐을 지금이다. 히딩크 신드롬이 15년 만에 되살아났다.한국 축구 대표팀이 천신만고 끝에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출전권을 땄지만, 최악의 경기력에 실망을 느낀 팬들이 히딩크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히딩크 감독 복귀설이 솔솔 흘러나오자 인터넷 등에는 히딩크 등장과 관련한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지난 14일 히딩크 전 감독이 네덜란드에서 유럽주재 한국기자들을 만나 “한국축구를 위해 어떤 형태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후 히딩크 이름이 인터넷을 이틀 동안 도배를 한 것. 4강 신화를 만든 그에 대한 추억이 강력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축구 4강 신화 재연과는 별개의 문제이면서 말이다.히딩크 신드롬의 본질은 한국 축구도 4강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데 있다. 그가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몸으로 던진 그의 멋진 리더십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를 통해 우리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이것이 신드롬의 주된 배경이다.폴란드전을 앞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영웅에는 관심이 없다.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지금 한국의 팬들은 성공신화를 이룩한 히딩크를 통해 또 한번 한국인의 가능성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18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를 판단할 때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기준으로 삼아라”는 말이 있다. 신언서판이 사람을 평가할 기준은 되나 꼭 맞는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을 쓴다는 게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사람의 일이 곧 모든 일이라는 뜻이다.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써야 한다는 것이다. 신언서판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관리등용의 기준으로 사용되었다. 풍채와 언변과 문장력, 판단력 등으로 선비가 지녀야 할 네 가지 덕목을 인재 선택의 기준으로 본 것이다.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은 신입사원을 뽑을 때 면접장에 우리나라 최고의 관상쟁이를 데려다 두고 심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으나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해 그만큼 정성을 쏟았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성공한 기업들 속에는 반드시 훌륭한 인재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좋은 인재를 선택한 경영주의 눈과 인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경영주의 마음이 기업을 성공하게 만든다. 지속 가능한 경영도 좋은 인재 영입에서 출발한다. 요즘 경영의 흐름이다.공직에서 사람을 쓰는 것은 민간 기업에서 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 국민에 대한 신뢰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이 인사를 잘못해 국정을 그르친 일은 비일비재하다. 인사가 만사인데 인사가 망사(亡事)돼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경우는 많다. 2005년 장관에 대한 인사 청문회가 도입된 후 이명박 정부는 45일, 박근혜 정부는 83일 만에 장관 인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대로 된 고위 관리를 등용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 정부도 마찬가지다.요즘 새삼스럽게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정치권에 화자 되고 있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후 문재인 정권의 인사 난맥상을 꼬집는 말이다. 연속되는 인사 난맥으로 문대통령도 인사 시스템 개선을 주문했다는 소식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15
지난 11일 부산과 통영 등 경남 지역에 내린 사상최대 폭우는 기상이변의 하나였다. 1904년에 부산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후 9월 하루 강수량으로 최다인 264mm를 기록했다. 부산 영도구에서는 한 시간에만 110mm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비가 내렸다. 최근 중남미와 미국에서는 `하비`에 이은 `어마` 등 괴물급 허리케인이 잇따라 덮쳐 난리다. 특히`어마`는 바람이 시속 300km에 달해 위성관측이 시작된 이후 40년래 역대 최강급이란 평가여서 기상이변으로 꼽힌다. 지난 2010년 1월 서울에 내린 25.8㎝의 기록적인 폭설이나 영국 런던의 25㎝ 폭설, 스코틀랜드에 닥친 50년 만의 한파도 기상이변의 한 예로 소개된다. 당시에 벨기에와 이탈리아, 그리고 폴란드의 폭설과 추위로 동사자가 발생했으며, 알프스 산지에서는 눈사태로 큰 인명 피해를 입었다. 미국 대평원 지역과 중동부 지역에는 한파와 강풍이 몰아치고 폭설이 내렸고, 겨울에도 늘 따뜻하였던 플로리다에서도 동사자가 생겼다. 여름으로 치닫고 있던 남반구에서도 2009년 말 아르헨티나의 팜파스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초원 지역에서는 큰 가뭄으로 들불이 나고 가축들이 죽었으며, 반대로 브라질에서는 큰 홍수가 발생했다.기상학자들은 2010년 1월을 전후해 점점 잦아지고 있는 세계 기상이변의 원인을 제트기류의 약화와 엘니뇨 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제트기류는 북극 한파를 가둬 두는 `둑`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 둑의 곳곳이 터지면서 북극의 찬 공기가 유럽, 동아시아, 북아메리카 등지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해수면 기온이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 역시 당시 폭설의 주범이다. 엘니뇨 현상으로 인도양 등지에서 공급된 수증기가 북쪽의 한파와 만나 눈덩이를 키우는 작용을 했다. 남반구에서 홍수 피해를 유발하는 것도 엘니뇨 현상이라는 게 정설이다. 문제는 제트기류의 약화나 엘니뇨현상 역시 지구온난화에 큰 영향을 받고있다는 점이다.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지구온난화`는 인류에 치명적인 재앙을 불러올 것이 확실하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전 인류적 차원의 대응이 조속히 필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9-14
백로(白露)는 24절기 중 열다섯 번째 해당하는 절기다. `흰 이슬`이란 뜻이다. 이때쯤 기온이 이슬점 아래로 내려가 풀잎 등에서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 양력으로 9월 9일 전후이며 올해는 이달 7일이 백로였다. 우리 선조들은 백로가 지나면 벼를 수확하기 시작한다. 다음 절기인 중추에는 서리가 내리기 때문이다. 이 무렵 일반 가정에서는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伐草)를 하는 풍속이 있다. 그 근원은 잘 알 수 없으나 유교의 관혼상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벌초는 조상 묘의 풀을 베어 정리하는 풍속이다. 금초(禁草)라고도 하는데 `불을 조심하고 풀을 베어 무덤을 잘 보살핀다`는 뜻의 금화벌초(禁火伐草)에서 따온 말이다. 보통 벌초는 처서가 지나 하는데, 풀이 다 자란 상태라 겨울동안 조상 묘를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예로부터 벌초를 효의 기준으로 삼았다. “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남이 모르지만 벌초를 안 하면 금방 남의 눈에 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벌초를 하지 않는 것을 큰 불효로 여겼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죽은 조상을 잘 섬기는 민족도 드물다. 마치 살아계신 부모처럼 예를 갖춰 섬긴다. 유교적 영향이 크다. 조상을 잘 섬기는 것을 부모에 대한 효행과 동일시하는 관념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민족의 중요한 덕목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벌초 때마다 말벌에 쏘여 고생하는 사람들이 매번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고 벌초를 그만 두는 후손들은 없다. 과거와 달리 벌초 대행업소에 일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졌으나 조상숭배의 예는 여전하다.벌초는 조상에 대한 효의 개념이지만 조상 은덕에 대한 감사의 정성으로 보는 것이 좋다. 오늘날 이처럼 무탈하게 살아온 것도 조상이 보살펴 준 은덕(恩德) 덕분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처삼촌 벌초”라는 표현이 있다. 대충 대충 일을 무성의하게 할 때 이르는 말이다.벌초의 계절이다. 조상 묘소를 찾아 조상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을 정성껏 표시해 보는 것도 뜻 있는 일이 될 수 있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13
중국정부가 사드 한국배치를 기화로 한국 단체관광을 금지하는 금한령(禁韓令)을 지난 3월15일 내린 후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유통기업이었다. 이마트는 연내 중국시장에서 완전철수한다는 목표로 점포 매각작업중이며, 롯데마트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이마트는 중국매장 6곳 중 5곳을 태국 최대 재벌인 CP그룹에 매각하고 나머지 1개 점포 매각도 서두를 예정이다. 롯데마트는 中 정부의 사드보복이 본격화한 지난 3월중순 이후 5천억원 넘게 피해를 봤다. 총 112개 점포 중 74곳이 영업정지상태다. 정지이유는 소방법위반 등인데 언제 풀릴지 기약이 없다. 사드보복 분위기에 편승한 중국인들의 불매운동까지 겹쳐 그나마 영업중인 점포매출도 급감했다. 연말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피해액은 1조원에 달할 전망이라고 한다. 화장품업계도 고전하고 있다. 이 업종의 中의존도가 70%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中 단체관광객(요우커) 의존도가 높은 명동지역 화장품 숍들도 매출이 반토막났다.서울시내 면세점도 직격탄을 맞았다. 요우커 위주로 영업해온 서울시내 면세점 9개가 한순간에 매출이 90% 가까이 급감했다. 급기야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지던 면세점 문을 닫겠다는 곳까지 나왔다. 한화갤러리아는 지난달 31일 제주국제공항내 면세점 임대차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한국공항공사측에 통보했다. 현재 연말까지 기한을 연장했지만 임대료 조정 등 부담을 크게 줄였다. 롯데면세점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운영을 접어야 할지 고심중이다.중국내 진출기업에 대한 중국정부의 겉다르고 속다른 모습은 뒤늦게 얘기할 거리도 못된다. 문제는 기업차원을 넘어 국가적 이슈로 부상한 금한령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가 더 큰 문제다. 외교부는 “북핵 문제가 해소되면 될 일”이라고 하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약속이 전부다. 우리 정부도 한중FTA협정에 명시된 보호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나서야할 때다. 외교문제는 외교문제대로, 통상문제는 통상문제대로 대처해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지혜가 아쉽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9-12
한국에서의 사드 배치 완료 소식이 알려지면서 중국이 또다시 한국기업을 상대로 한 치졸한 보복에 나서고 있다. 한류문화 및 관광분야 제재로 한국을 압박하던 중국이 이번에는 중국 언론을 앞세워 현대차 흔들기에 나섰다는 보도다.“현대차와의 합작을 끝낼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관영언론이 떠든다. 20년 현지에서 영업했던 이마트가 철수를 결정했다. 중국 현지 롯데마트는 누적적자가 5천억원에 달하자 현지 매장 절반을 처분하기로 했다. 사드보복에 따른 우리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지금까지 8조5천억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니 사드를 둘러싼 중국의 대응이 옹색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다.성주 사드 배치 완료에 대한 중국 언론의 보도는 더 가관이다. 중국의 최대 국제뉴스 전문지인 환구시보는 한국의 사드 배치를 두고 `악성종양`이란 말로 맹비난했다. “한국 보수주의자는 김치만 먹어서 멍청하다”, “한국인은 수많은 사찰과 교회에서 평안을 위한 기도나 하라”는 둥 저질스럽고 품격을 잃은 막말의 논평을 냈다.북한이 6차에 걸친 핵실험에도 일언반구 없던 그들이 최소한의 방위 수단인 한국 측의 사드 배치에는 온갖 막말이니 `사돈 남 말` 꼴 아닌가 싶다. 한국에 대고 “강대국 사이 개구리 밥 신세가 될 것”이란 말은 또 뭔 말인가. 국가 간에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나라다.환구시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다. 정부 당국의 입장을 담아왔던 그동안의 보도태도로 보아 한국에 대한 중국 고위층의 생각과 수준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과연 중국이 스스로 대국이라 말할 수 있는 자격은 있는지 의문이다. 땅덩어리만 컸지 하는 짓은 졸장부나 다름없다.사드는 공격용 무기가 아니다. 중국 정부도 잘 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의 사드 배치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그 이유가 궁금하다. 아직도 그들은 `중국은 대국, 한국은 속국`으로 생각하는 걸까. 북핵보다는 북한 정권의 유지에 더 신경을 쓰는 그들의 태도에서 이런 의심도 가져본다. 사드 보복에 우리가 더 당당해져야 할 이유가 이런 데 있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11
요즘은 초(超)핵가족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가족 단위가 더 세분화되는 사회현상을 이른다.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인구는 2.41명이다. 한집에 부부가 산다고 가정하면 1명의 자녀도 채 두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2000년 이후 나타난 만혼 현상과 이혼의 증가, 노령사회 등이 가구당 인구수를 줄이는 요인들이다. 이제는 1인 가구 수가 전체가구 수의 27%까지 늘어났다. 4집 중 한 집이 1인 가구인 셈이다. 산업화로 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불가피하게 우리사회는 핵가족화로 진행되었다. 반면에 농경사회에서 만들어졌던 대가족제는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대가족 중심의 가정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졌다. 뉴욕대학교의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솔로 이코노미(Solo Economy)`라 불렀다. 이들 집단의 경제적 영향력을 의미하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사회는 핵가족화가 보편화 되면서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사회 전반에 큰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여중생 폭행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겼다. 또래 여중생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참혹하게 두들겨 패놓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지금의 교육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소년법 폐지를 원하는 청원이 수십만 건 청와대 홈피에 올랐다고 한다. 이것이 법 개정으로 고쳐질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법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 또한 능사는 아닐 것이다.이번 사건을 보며 우리의 대가족제가 가져왔던 교육 효과를 추억해 본다. 대가족제는 한 가족의 구성원이 삼대 이상이 되며 결혼한 자녀들이 분가하지 않고 함께 사는 가족 형태다. 대체로 가족 구성원 수가 많고 엄격한 가부장적 권위가 특징이다. 핵가족화의 흐름을 거스를 생각은 전혀 없다.그러나 인간적이고 위계를 배우는 대가족제의 분위기가 자식세대에게도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것이 가정교육의 근본 아니겠는가./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08
미국의 신용카드 결제시스템 회사인 그래비티의 CEO 댄 프라이스는 2015년 4월 파격적인 연봉정책을 발표했다. 경비원, 전화상담원 등을 포함한 120명 전직원의 최저연봉을 7만달러(약 7천900만원)으로 올린 것이다. 대신 110만달러였던 자신의 연봉은 7만달러로 삭감했다. `사회주의 냄새가 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함께 회사를 창업한 형이 “회사를 잠재적 위험에 빠뜨렸다”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댄 프라이스는 “나는 자선사업 하는 게 아니다. 임금인상도 투자며, 회사발전을 위한 것”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 2년 5개월이 지난 현재 이 회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마이클 휠러교수는 “그래비티는 연매출이 연봉을 올리기 이전보다 75% 증가했고, 직원숫자도 40%가 늘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지난해 8월 밝힌 성과지표에서도 직원들의 행복도가 올라갔고, 이직은 크게 감소했으며, 입사지원자는 크게 늘었고, 직원들의 출산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이 짧아지고, 저축은 늘었다. 신규고객이 크게 늘었고, 매출도 2014년보다 35%나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지난 7월에는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댄 프라이스에게 감사의 뜻으로 테슬라자동차를 선물하는 장면이 해외토픽에 보도되기도 했다. 댄 프라이스는 “우리가 탐욕으로 만들어지는 성공모델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면 다른 이들도 우리를 따를 것”이라며 강조했다. 이 회사의 정책에 감명을 받은 바이오분야 리크루트회사인 파머로직스도 2016년 1월 전 직원 46명 가운데 연봉이 낮은 28명의 연봉을 33% 인상했다. 이후 1년 회사는 눈에 띄게 성장해 연매출이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직원수도 72명으로 느는 성과를 거뒀다. 국가가 기업에게 최저임금을 올리도록 강제하는 최저임금 정책이 적지않은 기업의 반발을 사고 있는 상황에서 댄 프라이스의 최저연봉정책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회사가 성공하려면 직원들부터 대접해야 한다는 건 새로운 경영철학일 수 있다. 이런 경영철학이 설득력을 얻는 경제환경을 조성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최저임금 정책이 아닐까./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9-07
경제학자 한양대 전영수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고령화 사회를 괴물`이라 했다. 괴물인 이유는 이렇다. 고령화 사회는 우리 인류가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설지 상상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젊은층이 많고 노인층이 적은 전통적 피라미드형 연령 분포가 바뀌는 사회구조다. 그래서 전대미문의 사회현상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얼마큼의 위력으로 세상을 흔들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우리의 삶의 방식과 유형은 물론이요 경제,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모든 시스템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 전망했다.특히 그는 노령화 사회의 근본 문제를 청년문제와 결부해 주목을 받았다. 노령화 사회가 오면 노인보다 청년이 훨씬 열악하고 피폐해질 확률이 높다는 것.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과거에는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사회현상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한국도 8월말 행안부 발표로 공식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14%를 넘었다. UN은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7%를 초과하면 노령화 사회, 14%를 초과하면 노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정의했다. 이 기준에 따라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지 불과 17년 만에 고령사회에 도달했다. 통계청 예측보다 1년이 빨랐다. 고령화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한 시간이 프랑스 115년, 미국 73년, 독일 40년, 노령화가 빠르다는 일본도 24년이 걸렸는데 비해 우리의 고령사회 진입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교수는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일본과 닮고 있다며 일본의 실패를 배워 한국의 고령사회에 대비하자는 주장을 편다. 인구는 많아도 고민, 적어도 고민이다. 우리는 저출산 등 인구 문제가 이미 심각단계에 있다. 올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725만7천명이다. 당분간 더 늘어난다. 고령사회 시작을 가리키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미래가 밝아지는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06
게임체인저란 말은 `어떤 일에서 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뒤바꿔 놓을 만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나 사건`을 가리킨다.경영에서는 기존의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가할 정도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나 제품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즉, 특출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나아가 업계와 사회 전반에 큰 지각변동을 일으킨 인물이나 제품을 뜻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애플 창업자 스티븐 잡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등이 이에 속한다. 제품으로는 최근 삼성전자가 차기 전략 스마트폰으로 내놓은 `갤럭시노트8`이나, 올 하반기에 출시될 것으로 알려진 애플의 `아이폰8` 역시 게임체인저 후보에 속할 수 있다.정치에서는 최근 북한의 행동양식을 놓고 `게임체인저`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게임체인저가 기존 판도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게임 규칙을 만드는 중요한 행위자를 가리키는 만큼 기존 동북아 안보지형의 규칙을 흔들고 있는 북한의 위상을 묘사하고 있는 셈이다. 즉, 북한의 ICBM과 핵탄두 개발 움직임은 `게임체인저`로 부상하려는 북한의 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문제는 북한이 ICBM과 핵탄두 개발을 통해 게임체인저로 인정 받을 경우 한반도 정세가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 본토를 겨냥해 핵탄두를 장착한 ICBM 능력은 한미가 상정한 북한의 `레드라인`이다. 만약 이 레드라인이 확보될 경우 북한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고 종국적으로 한미동맹을 흔들어 핵 우산을 제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 동부까지 타격하는 능력을 보여줄 경우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미국은 개입 여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있다. 또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주변에서는 `핵 도미노`현상이 우려된다. 현재는 중국이 유일한 동북아 핵 보유국이지만 우리나라도 `공포의 균형` 차원에서 전술 핵 재배치 요구가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일본도 이를 빌미로 핵 무장에 나설 경우 동북아 안보 불안은 더욱 가속화 할 가능성이 크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9-05
미국이 우울하다. 허리케인 `하비`로 텍사스주 일대가 최악의 재난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5일 텍사스주 남부 연안도시 코퍼스 크리스티 부근에 상륙한 허리케인 하비는 순식간에 텍사스주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5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하고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이다.텍사스 주지사는 2005년 최악이라 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지출했던 1천200억 달러(135조 원)보다 더 많은 복구비가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4만 채의 주택이 파손돼 텍사스는 앞으로 수년간 심각한 주택난을 겪을 것이란 언론 보도도 나왔다. 미국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전례 없는 보험청구도 예상된다고도 했다. 텍사스주 휴스턴시에는 콜레라, 장티푸스 발생 비상경보가 떨어졌다. 설상가상이다.텍사스주 소재 정유사들이 하비의 피해를 입고 설비 가동을 멈췄다. 이곳 정제설비 규모는 미국 전체의 26%, 전 세계의 4.9%다. 얼김에 한국의 정유업계가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비가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도 변화를 안겨주었다.허리케인(Hurricane)은 열대성 저기압이다. 열대성 저기압이 필리핀 근해에서 발생하면 태풍이고 북대서양, 카리브해, 멕시코만, 북태평양 동부에서 발생하면 허리케인이다. 인도양과 아라비아해 등에서 생기면 사이클론이라 부른다.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은 자연현상이다. 허리케인은 카리브 연안 사람들에게는 `폭풍의 신`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름만큼 강력하고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최대 시속 250㎞에 달한다. 그가 지나는 곳에는 나무가 쓰러지고 건물이 날아가고 물바다를 이룬다. 어디서 이런 강력한 힘이 발생하는지 현재 과학도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되풀이 되는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의 무력함을 보는 것 같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피해 복구비로 100만 달러(약 11억 원)을 기부했다.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도 줄줄이 기부 행렬에 가담했다. 배우 산드라 블록이 100만 달러, 디카프리오도 100만 달러를 내놓았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이다./우정구(객원 논설위원)
2017-09-04
관중(管仲)은 춘추시대 정치가며 중국 역사상 재상의 본보기로 삼는 인물이다. 그는 국가의 근본을 예의염치(禮義廉恥)로 보았다. 이 중 한 가지만 없으면 나라가 기울고, 두 가지가 없으면 나라가 위험에 빠지고, 세 가지가 없으면 나라 근간이 뒤집히고, 모두가 없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쳤다. 예와 의는 나라를 다스리는 틀이고 염과 치는 자신의 인간 됨됨이를 갖추는 일이라 했다. 서양의 도덕적 가치를 말할 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뺄 수 없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의 2천년 역사를 지탱한 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 했다. 영국 최고의 사학명문 이튼대학 내 교회 건물에는 전사한 졸업생 이름이 새겨져 있다. 1차 세계대전 1천157명, 2차 세계대전 748명이다. 미국이 6·25전쟁 때 미국참전 용사 중 142명이 미군 장성의 아들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처럼 서구 사회의 핵심적 도덕가치다. 우리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의 생가 임청각을 소개하면서 `노블레스 노블리주`의 상징이라 말한다. 9명의 독립 운동가를 배출했고 임청각을 처분한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댄 그의 시대정신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양반은 양반답게 처신해야 한다”는 말로 번역한 게 있다.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규범을 갖춰야 양반 자격이 있다는 의미를 살린 번역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관중이 지적한 `예의염치`란 말로 풀어도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관중은 염치가 없는 사람이 공직에 있으면 시민과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고 했다. 시대를 떠나 공직자는 오로지 공공의 신뢰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생활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정부가 공개한 고위 공직자 재산등록 현황을 보면서 염치없는 사람들이 고위 공직에 많이 앉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민에게는 “사는 집 말고 다 팔라”하면서 해당부처 장관을 포함 현 정부 장관의 60%가 두 집 이상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자로 밝혀졌으니 말이다. 염치가 없어 보인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01
절대다수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을 믿을 때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도는 것”이라며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1473~1543). 코페르니쿠스는 행성이 천체에서 역행하는 모습에 의문을 가졌고, 이 의문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라는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냈다. 지동설이 공식 인정받아 보편의 상식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44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위대한 탐험가`로 불리는 제임스 쿡(1728~1779)은 해도(海圖)가 없던 시절 뉴질랜드와 호주를 탐험했다. 북극에 이르러 여왕에게 “이 바다를 통해서는 영국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온통 얼음 뿐입니다”라고 보낸 편지는 유명하다. 그는 태평양 수많은 섬의 위치를 기록했고 이름을 지었다. 신념과 용기로 해도를 만들어낸 것이다.최근 시인이자 고전문학가인 이규배씨의 주장이 학계에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무도하가`의 새로운 해석 때문이다.“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임은 결국 물을 건너네/물에 빠져 죽으니/임을 어이 할꼬(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將奈公何)”라 전하는 이 시가의 `백수광부`는 무당, 또는 가난한 사내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이씨는 이 해석을 부정하며 “백수광부는 제후나 왕족 등의 고위직이고, 뱃사공으로 해석된 곽리자고는 거문고의 명인”이라 주장한다. `어문연구` 2017년 여름호를 통해서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공(公)이란 임금이나 제후 등을 지시하는 단어”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공무도하가`를 전하는 중국 자료를 제시했다.그의 주장이 얼마만한 설득력을 가진 것이냐를 떠나 이런 학술적 논쟁은 필요성이 분명하다. 코페르니쿠스와 제임스 쿡은 모두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던 거짓을 바로잡는 것과 아무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뛰어넘는 일에 생애를 걸었다. 그것이 `지동설`과 `태평양 해도`를 만들었다.기존의 사고방식과 견해를 전복시키는 걸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한다. 이규배씨가 논문을 통해 보여준 용기있는 문제 제기 역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아닐까./홍성식(문화특집부장)
2017-08-31
모든 마케팅이 소비자를 왕으로 가르친다. 고객만족에 이어 고객감동, 고객행복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기업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 말하고 있다.소비자를 왕으로 받드는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귀가 따갑도록 배웠다. 그러나 실제로 시장에서 소비자가 왕이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요즘 우리나라 시장을 보면 소비자를 왕으로 부르기에는 너무나 터무니없다. 왕이 아니라 차라리 봉이라 부르는 게 맞다.살충제 계란으로 시작된 파동은 끝 간 데를 모른다. 정부 당국이 보증한다는 친환경 계란에서조차 살충제가 검출되고, 심지어 살충제 성분이 함유된 닭까지 확인되면서 도대체 누굴 믿고 음식을 먹어야 할지 소비자는 불안하다. 이번에는 유럽발 간염 소시지가 문제가 됐다. 한국에 유통되는 독일과 네덜란드 산 돼지고기로 만든 베이컨의 판매가 중단됐다. 이뿐이 아니다. 이보다 앞서는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은 소비자가 출혈성 장염 증세로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푸드 포비아(food phobia)란 말이 돌기 시작했다. 음식 공포증이다.소비자들 밥상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말이 실감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한 조류 인플루엔자(AI)는 온 나라를 요동치게 했다. 2천만 마리의 닭과 오리 등이 살처분 당했다. 피해도 컸지만 이 때문에 계란 값이 한판에 1만원까지 치솟았다.정부 당국만 쳐다보던 소비자는 온통 바가지만 덮어썼다. 올여름 더위와 가뭄으로 채소류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배추 한포기 7천원이란다. “무서워서 못 사먹겠다”는 소비자들이 이젠 “비싸서 못 사먹겠다”고 아우성이다.이래저래 소비자가 왕이 아님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얼마 전 여성 생리대에서 발암 물질이 의심된다는 소비자단체의 항의가 일어나면서 생리대 제조회사가 환불접수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인명을 빼앗아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생리대 부작용 논란이 다시 벌어졌다. 과연 소비자가 의지해야 할 데는 있는 것일까. 무대책한 당국만 바라보는 소비자는 불안할 뿐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30
세금은 국가를 위해선 꼭 필요하지만, 막상 내가 내려고 하면 아까운 생각이 든다. 서민에게 세금만큼이나 민감한 것도 드물다. 역사적으로도 세금 때문에 빚어진 불상사는 비일비재하다. 민중봉기도 가혹한 세금에서 발단된 예가 많다. 그래서 공자는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말했다.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 백성의 재물을 빼앗는다는 가렴주구(苛斂誅求)란 고사성어도 공자의 말에서 나왔다.우리가 일반적으로 조세정의를 말할 때는 공평과세가 기준가치다. 그러나 공평과세는 내가 느끼기에 따라 공평할 수도 있고 불공평할 수도 있다. 사람의 심리란 자신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저울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부자증세를 내세우나 이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우리 사회의 경제 양극화를 고치기 위해 조세정의를 실현해야 하나 방법론에서 만만치가 않다.이종구 바른정당 의원이 연간 2천만원 이상 소득이 있으면 누구라도 월 1만원(연 12만원)씩의 세금은 내도록 하자는 법안(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당국민법`이라 명칭을 달았다. 국회 내에서는 정부 여당의 부자증세에 반대하는 여론을 담기 위한 법이란 해석도 있다. 그러나 복지혜택을 넓히려면 수혜자의 비용부담도 늘려야 한다는 국민 개세(皆稅) 주의에 입각한 제안이란 평가다.우리나라는 근로소득자의 46.8%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부자증세 문제가 제기되자 조세정의가 가진 자만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복지 혜택은 받으면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조세정의가 아니라는 것이다.특히 우리는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근로소득자의 비율이 너무 높다. 일본 16%, 독일 20%, 호주 25%, 미국 35%다. 월 1만원의 세금이라도 내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자는 게 이 법의 취지다. 러시아 표트르 황제 때 수염세를 만들었다. 무위도식하는 귀족계급에 대한 통치방법이었다고 한다. 세금은 목적의 정당성만큼이나 납세자의 동의도 중요하다. 당당국민법에 대한 국민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29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말했다. “법이란 가진 자들에겐 모든 걸 막아주는 방패이지만 가난한 자들에겐 심장에 겨눠진 창끝이다.” 이 진술에 배치되는 판결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법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가진 자`로 첫손에 꼽히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방패가 돼주지 못한 것이다.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김진동 판사는 `뇌물공여` `범죄수익 은닉`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력을 기대하고 뇌물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내려진 이번 판결을 두고 환호와 비난이 엇갈리는 형국이다. “지은 죄만큼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반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돈을 강탈당한 것이니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법은 만인 앞에 공평해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이 짤막하고도 당연한 문장이 권력과 금력 앞에서는 힘을 잃는 경우가 흔했다.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통치자는 가장 먼저 입법기관의 무력화를 획책한다. 중동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과 하피즈 알 아사드의 경우가 그랬다. 그들은 법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법 위에 군림했다. 한국의 경우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외견상으론 분리돼 성장했고, 많은 돈을 가진 자가 정치권력과 결탁해 초법적 지위에 오르려 했다. 이게 현 정부가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적폐 중 하나인 `정경유착`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재용 부회장 판결에 대한 법리적 논란은 유보하자. 다만 한 가지 긍정적 측면은 인정하지 않기 힘들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법이 더 이상 가진 자의 방패가 될 수 없다는 걸 선언한 듯하다. 이는 과거와의 절연이라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1988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탈옥사건이 발생한다. 도주 끝에 자살을 택한 탈옥범 한 명이 세상을 향해 소리쳤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범죄자조차도 부자에겐 방패가 되고 빈자에겐 창끝이 되곤 했던 당시의 한국 법을 조롱한 것이다. 그런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홍성식(문화특집부장)
2017-08-28
우리나라는 원래 온대성 기후이다. 사계절이 뚜렷이 구분되고 사철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천혜적 기후를 가진 나라다. 그러나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온난화로 세계 온도는 평균 0.7℃가 올랐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는 2배 수준인 1.5℃가 올랐다. 올여름 대구의 더위는 시민들을 짜증나게 했다. 대프리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폭염과 가뭄, 소나기로 반복되는 변덕스런 날씨가 이어지면서 대구의 기후변화는 이젠 현실로 다가왔다. 1970년대와 비교하면 대구의 기상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폭염 일수의 경우다. 1970년대는 23일이던 것이 2010년 이후는 31일로 늘어났다. 열대야 일수도 1970년대 10.3일이던 것이 2010년 이후에는 19일로 나타났다. 여름철(6월-8월) 평균기온도 1970년대에는 24.7℃였으나 2010년 이후는 25.8℃로 올라간 것이다.아열대 기후는 열대와 온대의 중간 정도 기온을 말한다. 기상학에서는 월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인 달이 8개월 지속되면 아열대 지역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이미 남해안 일대를 포함 상당수 지역이 아열대 지역에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구도 마찬가지다. 기상청은 2070년이면 한반도 대부분이 아열대 가후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제주도에는 이미 60종이 넘는 아열대성 생물이 출현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부터 보이기 시작한 아열대성 어종 가운데 일부는 제주 연안에 정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황놀래기, 청줄돔, 가시복어 등이다. 과일의 지도도 바뀌고 있다. 대구사과는 옛말이다. 고온과 가뭄으로 품질이 급격히 떨어졌다. 크기도 작아져 상품성을 잃었다. 제주도에서만 재배되던 감귤과 한라봉이 완도 등 전남지역과 경남 거제까지 확대 재배되고 있다. 아열대 과일인 망고와 패션프루트 등이 충청도 내륙지방에 재배되는 기현상이 이젠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 우리가 반길 일은 아닐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25
축산재난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축산전염병 스캔들의 원형은 영국발 광우병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84년 영국 서식스 지역의 한 농장에서 시작된 광우병으로 소 133마리가 간질환자처럼 쓰러져 죽었다. 영국 정부가 파견한 역학조사반은 133마리의 소 뇌에서 종양을 발견했고, 동물 사체로 만든 `동물성 사료`를 소가 먹기 때문에 광우병이 발병한다고 분석했다. 영국 정부는 1996년 8월부터 광우병에 걸린 30개월 이상 소 440만마리를 단계적으로 도축, 살처분했다. 한국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건 2000년부터다. 그해 3월24일 경기도 지역에서 처음 발생했다. 구제역은 소·돼지·염소 등 발굽이 2개인 동물이 걸리는 병으로, 치사율이 5~55%에 달한다. 당시만 해도 23일간 15건이 발생, 살처분도 2천여 마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10년 후인 2010년 충남 천안시에서 발병한 구제역은 6천691농가를 덮쳤다. 살처분으로 땅에 묻은 수가 무려 353만여 마리였다.AI는 구제역보다 뒤에 등장했다. AI는 닭, 오리 같은 조류에서 H5N6라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감염으로 발생하는 급성전염병이다. 첫 AI는 2003년 12월 10일 충북 음성에서 발생했다. 당시 528만5천마리의 닭 등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이후 AI가 한 번 발생하면 100일 정도 지속되며, 매년 수백만 마리 이상의 가금류를 파묻는 일이 일상이 됐다. 특히 2014년부터는 여름철까지 AI가 지속됐다. 2016~2017년에 살처분된 가금류 수만 해도 3천807만6천마리에 달했다.올해는 살충제 계란문제까지 터졌다. 지난 14일 농축산부는 국내산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검출됐다며 산란계 3천마리 이상을 키우는 농장의 계란 출하를 금지시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451만여개의 계란을 폐기해야 된다고 밝혔고, 이 중 418만3469개가 수거돼 폐기됐다. 허술한 축산방역망의 철저한 재정비와 `동물복지형 농장`등 깨끗한 축산환경 조성이 축산재난의 악순환을 막을 방책이다. 정부의 발빠른 대응책 마련을 촉구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8-24
동물에 복지란 말을 붙이니 어쩐지 어색하게 들린다. 그러나 동물도 조물주가 내려준 생명체인 만큼 동물 나름의 복지는 있어야겠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면서 `동물복지` 개념이 주목을 끌고 있다. 동물복지는 동물에게 주어진 현재의 환경조건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얼마나 편안한가를 의미하는 말이다. 동물의 멸종을 막기 위한 동물보호운동과는 차이가 있으나 동물학대와는 상통하는 의미가 있다.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닭의 사육방식이 비판을 받게 됐다. 자본주의적 생리가 일으킨 참혹한 참사라고 한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생산해야 하는 자본주의적 속성이 밀집사육 닭장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A4 용지 크기보다 작은 케이지에서 키우는 닭은 사료를 먹고 계란을 낳는 일만 한다. 마치 기계식 계란공장이나 다름없다.이런 상황에선 진드기 생성은 필연적이다. 닭은 원래 모래에 몸을 비비는 방법으로 몸에 붙은 진드기나 벌레를 떼어낸다. 자연적 생리방법이다. 그러나 밀실 사육장 안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사육농민의 살충제 사용도 예견된 일이다. OECD는 지난 6월 한국의 밀집사육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AI, 구제역, 브루셀라, 소결핵 등의 주요 원인이라고 경고 한바 있다.우리나라 축산이 살충제 계란과 같은 파문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동물복지에 충실해야 한다는 견해가 주목받는 이유다. 프랑스에서는 닭 사육 방식을 제품에 표시한다고 한다. 케이지에서 키웠는지 넓은 사육장에서 키웠는지를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동물복지를 고려한 윤리축산이 새롭게 뜨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친환경 관점에서 새로이 출발해야 한다.1987년 세계 환경개발위원회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말로 환경의 중요성을 처음 언급했다. 경제개발과 동시에 환경보존도 이뤄 미래세대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자연을 파괴했다고 한다. 살충제 계란 역시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싶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동물복지는 우리가 풀어 갈 숙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8-23
문재인 정부가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론`을 경제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내놨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요체는 `임금인상이 총수요를 늘려서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신고전파 경제이론에 따라 기업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수출과 국가재정투자를 늘림으로써 경제성장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펴왔다. 그래서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조차 시장은 되도록 건드리지 않고 재분배를 통해 복지를 늘리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한국의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거의 일직선으로 나빠져왔다. 시장의 분배 자체가 문제였다. 더구나 한국의 수출은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가계는 140%에 달하는 부채비율 때문에 더 이상 빚으로 소비를 늘릴 수 없다. 수출주도-부채주도 성장의 시대가 막을 내린 셈이다.이런 상황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는 신고전학파와 대척점에 있는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의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에 뿌리를 두고 있다. 포스트 케인스 학파는 우선 신고전학파의 `보이지 않는 손`을 부정한다. 국가 개입이 없는 자본주의는 불안정성과 경기변동을 유발한다는 관점으로 경제를 바라본다.특히 포스트 케인스 학파는 국가의 개입으로 유효수요를 유지 또는 증대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국가가 주도해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소득을 늘려줌으로써 국가경제의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이나 어린이 수당 그리고 기초연금 인상 등은 이 같은 포스트 케인스 학파의 소득주도 성장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어떤 경제이론이 우리 실정에 최적의 해법이 될 수 있을지 누가 알랴. 실행해보기 전에 결과를 알 수 없다. 그리고 특정 이론이 경제현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해법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다만 사회적 대타협으로 소득주도 성장론이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현재 한국이 나아가야할 `분배를 통한 성장`이나 `균형성장`의 길을 뚫어줄 수 있는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