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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치인과 카리스마

지도자란 비전을 달성시키는 힘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대중을 이끄는 지도자의 힘을 `카리스마`라고 표현한다. 카리스마는 우리사회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진다. 카리스마가 없는 사회나 조직은 역동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한국은 과거에 누려볼 수 없었던 세계 4강 신화를 달성했다. 유럽 강호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승승장구할 때마다 한국인은 히딩크 감독의 카리스마에 열광했다. 카리스마가 곧 리더십이었다.카리스마는 그리스어 Kharisma에서 유래된 것으로 `신의 특별한 은총`이란 뜻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특별한 능력을 말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는 인과 덕으로 무장된 외유내강한 카리스마로 국가를 이끈다. 카리스마는 개인에 따라 외부에 비쳐지는 모습도 다양하다. 권력을 가졌다고 모두 카리스마가 있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같이 강력한 권력을 가졌어도 그 힘이 올바르게 사용되지 못하면 그 카리스마는 오래가지 못한다.그러나 카리스마는 선천적이지 않고 후천적으로 양성이 가능하다. 상대방이 스스로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은 학습으로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요즘 대구·경북 지역 국회의원들을 보고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많이 한다. 정권이 교체된 이후 우리지역 정치인의 무력감은 지역사회의 비전을 잃게 하고 있다. 20명에 달하는 정치인이 있으면서 정치무대에서 그들의 존재감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역동성을 전례 없이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치인은 그 지역이 뽑아준 지도자다. 지도자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지도자로서 수명을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인의 뼈아픈 각성이 필요하다.최근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들의 습관 7가지가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한번쯤 음미해 볼만하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성공한 것만으로 카리스마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다. 겸허하게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 습관이라 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13

커피 단상(斷想)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대단하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소개된 것이 100년을 넘었다 하나 대중화된 분위기는 다방이 본격 보급된 1960년대 이후부터다. 더구나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마시는 원두커피의 보급은 1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한국인의 커피사랑은 폭발적이라 할 만큼 한국사회를 점령해 가고 있다. 어떤 이는 이런 현상을 두고 한국인의 기질과 닮았다고 비교한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한국의 승부기질이 커피 애호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냄비 근성처럼 반짝했다가 언제 갑자기 시들해질지는 알 수가 없다.커피는 기호품이다. 맛이나 영양식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다. 커피 향을 즐기고, 맛 또는 자극을 즐기며, 멋스러움을 즐기는 기호품이다. 커피의 시장 점유율을 보면 매년 1조원씩 증가하고 있다. 2016년 경우 커피 시장규모를 6조4천억원 정도로 추계한다. 국제커피기구(ICO)에 의하면 한국의 커피 소비량은 세계 15위다. 미국이 1위며 브라질이 2위다.우리나라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연간 400잔으로 하루 한잔 더 마시는 꼴로 조사돼 있다.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최초로 마신 사람은 조선의 왕 고종으로 기록하고 있다.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관으로 피난 간 고종에게 러시아공사인 베베르가 고종에게 커피를 소개한 것이 우리나라 커피 역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어째 보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나라 운명 속에서 커피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1년간 러시아 공사관 생활을 끝낸 고종은 궁으로 돌아와서도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고종 실록에는 신하들에게 커피를 하사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커피는 원래 상류층 문화로 시작한 음료다.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 거리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우리를 상념의 세계로 끌고 간다. 커피와 낙엽과 독서는 잘 어울리는 콘텐츠다. 커피가 기왕 우리의 기호품으로 자리를 잡을 바에야 국민의 정서안정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일정량의 커피는 건강 증진에도 좋다니 말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10

레고 재테크

취미활동이 재테크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요즘 화제가 되는 `레고 재테크`가 그렇다. 레고 재테크는 일부 레고 마니아가 희귀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되는 레고 브릭 상품을 2~3개 더 구매해 소장하다 되파는 식으로 판매차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미국 이베이에서 거래되는 레고 상품 중 최고가 제품 가격을 보면 놀랍다. 레고 피규어 53개가 담긴 48㎝ 크기의 제품 가격이 무려 11만6천174달러(1억2960만원)에 이른다. 데스스타부터 엑스윙스타파이터까지 레고 스타워즈 브릭 24개를 합한 상품은 3만1948달러(3564만원)에 팔리고, 해리포터 미니피규어 55개 풀세트는 1만달러(1115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들 상품은 판매자가 제품 출시 당시 어렵게 구했거나 하나하나 제품을 모아 컬렉션으로 완성시킨 것이어서 노력에 따른 가치가 매우 높게 책정된 셈이다. 지난 2008년 미국서 300달러(33만원)에 판매되던 타지마할은 648만원에, 2007년 199달러(22만원)에 해외 출시된 `에펠탑`은 486만원에 거래된다.희귀 취미 상품의 가격 상승은 레고 만의 현상은 아니다. 레고가 각광 받기 훨씬 이전부터 피규어나 프라모델 등 모형 상품과 한정판 게임 소프트웨어, 만화책 등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일으킨다. 한정판 희귀 상품은 일정 시간이 흐르면 중고라 할지라도 상태만 좋다면 새 상품 이상의 가치를 부여 받을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이 맞물리는 시장 원리에 의해 희귀 상품은 더 이상 신규 공급이 없는 만큼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다만 레고 재테크에서 모든 레고 상품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주로 시장에 출시된 성인대상 레고 상품에 한정된다. 이는 성인대상 레고상품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단종되기 때문에 경매 사이트나 레고 커뮤니티 등지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취미로 모으는 레고를 사재기 해가면서 재테크에 열을 올리는 것은 볼썽 사납다. 그래서 레고가 목돈을 만드는 재테크라고 보기는 어려워 용돈벌이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게 좋다는 게 장난감업계 관계자들의 충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1-09

겨울철 간식 `고구마`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한 덕이다. 1950년대까지 만해도 보릿고개를 걱정했던 우리가 이젠 음식을 적게 먹는 다이어트식 문제로 고민하는 세상이 됐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우리의 경제성장에 감사할 뿐이지만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끼니를 걱정했던 그 시절이 너무 쉽게 잊혀질까 두렵다. 젊은이야 춘궁기(春窮期)가 뭔 말인지 조차 실감치 못하겠지만 또다시 보릿고개가 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살기 어려웠던 시절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은 오늘의 나를 더 튼튼하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는 사실은 명심해 볼만하다. 우리의 조상들은 묵은 곡식이 다 떨어지고 햇곡식은 아직 익질 않아 식량이 궁핍했던 5~6월을 보릿고개란 이름으로 세월을 보냈다. 보릿고개를 걱정했던 것이 불과 반세기 전 일이다.가뭄이나 장마 등 기후의 영향을 적게 받고 비교적 척박한 땅에서도 잘 가꿀 수 있고 흉년과 같이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할 수 있는 작물을 우리는 구황(救荒)작물이라 한다. 조, 기장, 메밀,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이 여기에 속한다. 구황작물이 요즘은 다이어트식으로 오히려 더 각광 받는다. 특히 고구마의 인기는 최고다.고구마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와 본격적으로 재배된 것은 1700년대 후반 일이다. 이름도 고귀위마(高貴爲痲)라는 일본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고구마는 인과 칼륨, 비타민 A, 비타민 C가 풍부하다. 섬유소도 많아 대장운동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혈압조절이나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낮출 수 있어 다이어트식으로 많은 호평을 받는다.여론조사 기관이 최근 우리나라 국민이 좋아하는 겨울 간식을 조사했다. 군밤과 군고구마가 25%로 1위를 차지했다. 붕어빵, 어묵, 라면, 호떡, 호빵 순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고구마가 간식에서도 국민 애호식품으로 등장했으니 고구마의 진가가 제대로 인정받은 셈이다. 고구마는 먹거리가 부족했던 초근목피 시절, 백성을 살리는 최고의 구민(救民) 작물이었다. 연명의 식품인 고구마가 오늘날 최고의 인기식품에 올랐으니 세상 일은 알 수가 없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08

문재인 케어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세웠던 대표적인 공약이 일명 `문재인 케어`라고 불리는 건강보험 개편안이다. 바로 국민들의 높은 의료비 부담률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63.5%로, OECD 34개국의 평균 약 80%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구체적으로는 난임치료, 초음파, 자기공명영상, 치매치료 등 3천80여 개 비급여 항목(성형·미용 제외)을 건강보험으로 지원해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2022년까지 30조6천억원을 들여 건강보험 보장률을 7% 포인트 끌어 올리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를 `재원 대책없는, 세금 먹는 하마`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가 추산한 것보다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 실패할 수 밖에 없고, 결국 적립금만 축내는 퍼주기 정책으로 끝날 것이란 주장이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보건복지부 국감 질의에서 “비급여를 급여화할 경우 이에 대한 의료행태 변화 시뮬레이션 등 추계가 전무하다”며 “의료비용 폭증 및 과다의료로 인해 건보재정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지난 3월에 밝힌 `2016~2025년 사회보험 중기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2018년부터 적자 전환되고, 건보 적립금도 2023년 바닥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폭이 커지면서 노인 의료비가 폭증해 2025년에는 20조원 적자로 돌아선다는 추계까지 나왔다. 기재부는 이와 관련해 노인 1인당 급여비가 2016년 96만원에서 2025년 180만원으로 급등한다고 추산했다.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에서도 비급여 진료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대폭 전환하는 데 대해 건강보험 재정이 부실해져 결국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란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비급여 진료항목에서 올리는 수익으로 급여진료 항목에서의 적자를 메꿔온 의료업계의 현실을 반영한 주장으로 보인다.국민 모두가 과도한 의료비 부담없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부가 건보재정을 어떻게든 마련해 `문재인 케어`를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로 안착시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1-07

사랑의 연탄

에너지 사업을 주력사업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대성그룹 전신은 대성연탄이다. 1947년 대구시 칠성동에서 출발한 이 기업은 연탄 제조를 시작으로 오늘날 에너지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당시 연탄의 발명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획기적 사건이었다. 석탄가루를 버무려 만든 원통형 고체연료인 연탄은 나무보다 부피가 적으면서 화력은 월등히 좋았다. 불길이 오래가는데다 경제성도 좋아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던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 변화였다.불이 잘 타게 하려고 위아래로 통하는 구멍을 뚫었다 하여 구멍탄이라 불리기도 했다. 1950년대 이후 연탄은 그 편의성과 이점이 알려지면서 가정의 난방용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다. 쌀과 더불어 서민생활에 가장 필요한 생필품으로 인식된 것이다. 서민들에게 꼭 필요한 생필품으로 손꼽힌 연탄은 이후 서민들의 삶과 함께 많은 애환을 겪는다.본격적인 추위를 앞두고 월동용 연탄을 비축하는 일은 서민들에겐 매우 중요한 가정사이다. 집으로 연탄이 배달되는 날이면 올겨울 추위 걱정은 끝이란 생각으로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겨울철 연탄가스 사고도 다반사였다. 일가족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한꺼번에 사망하는 사고가 종종 뉴스를 탔다. 가난한 서민들이 온돌방에 모여 잠을 자다 틈새에서 나온 가스로 봉변을 당한 것이다.올림픽이 열리던 88년 만해도 우리나라 가구의 80% 정도가 연탄을 주 연료로 사용했다. 이후 석유와 가스 사용으로 대체되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2%까지 떨어진다. 연탄의 사용으로 나무 땔감이 필요 없어 벌거숭이 우리 산림녹화에 기여한 공도 많다. 연탄의 역사는 서민의 역사다.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제법 쌀쌀해지고 있다. 연탄은행이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연탄사용 에너지 빈곤층을 돕기 위한 `연탄사랑나눔운동`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석유나 가스로 난방을 하지만 아직도 도시빈민지역과 고지대 달동네, 농어촌 산간지역에는 연탄으로 겨울을 보내야 하는 이들이 있다. 따뜻한 겨울은 그들의 애절한 소망이다. 사랑의 연탄 보내기 운동에 박수를 보낸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06

중국의 보이콧 외교와 반면교사

중국의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갈등이 해소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중단됐던 한국단체관광 여행상품이 7개월 만에 등장하면서 업계는 한·중 관계의 의미심장한 변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유통, 관광 등 국내 산업계는 조금씩 보이고 있는 해빙 조짐들을 한·중 관계 복원의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갈등의 골이 컸던 만큼 이번 한중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도 그만큼 커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특히 중국의 경제보복에 일방적으로 당했던 한국기업의 입장에서는 만감이 교차할 법도 한 일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대 중국 무역흑자 규모는 375억 달러로 집계된다.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했던 2013년 628억 달러에 비하면 40%가 줄어든 셈이다. 중국의 금한령(禁韓令) 조치 후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손실액이 8조원에 달한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중국의 외교 정책에 어이가 없음을 느꼈다. 우리기업이 양국의 관계가 복원된다는 것에 반색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런데 있다. 그러나 한·중 관계가 복원된다고 해도 이제는 우리도 생각을 달리하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사드보복을 통해 중국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부정적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것인데 두 번 다시 시행착오는 안 되겠다는 의미다.중국과의 관계는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있는 한 언제든 다시 갈등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중국은 과거부터 변덕이 심한 보이콧 외교를 적절하게 구사해온 나라다. 2010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중국의 반체제 인사인 류사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었다가 자국산 연어의 중국 수출길이 막혀 애를 먹은 적이 있다. 그 수출 규모가 무려 1조원을 넘었다고 하니 노르웨이 입장에서는 난감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일본도 센카쿠 열도 국유화 조치로 중국의 경제 보복을 받았다. 반면교사는 중국과의 해빙무드가 있는 지금 우리가 되씹을 교훈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03

포퓰리즘 논쟁

예산철만 되면 떠오르는 게 바로 정부예산에 대한 포퓰리즘(populism) 논쟁이다. 포퓰리즘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대중의 견해와 바람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 사상 및 활동을 가리킨다. 어원을 따지면 인민이나 대중 또는 민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한다. 포퓰리즘의 기원은 19세기 후반에 러시아에서 농민 계몽을 통해 사회 변혁을 꾀한 `나로드니키(Narodniki) 운동`과 미국에서 인민당(People`s Party)을 중심으로 전개된 농민운동에서 비롯됐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나로드니키운동의 주장 및 방침을 지칭하는 `나로드니키주의`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 포퓰리즘이며, 인민당을 파퓰리스트당(Populist Party)이라고도 칭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포퓰리즘운동은 농민(대중)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농촌 민주주의를 복원하려는 대중 중심의 사회운동으로 볼 수 있다.포퓰리즘은 대중에게 호소해서 다수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다수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그 자체에 명암이 함께 드리워져 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추진한 기아 퇴치 및 실용주의 노선은 대표적인 포퓰리즘 성공 사례다. 룰라 대통령은 월 소득액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에 정부가 현금을 지원하는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정책을 시행, 국가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임기 동안 빈곤율을 10% 이상 떨어뜨리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성과를 거뒀다. 반대로 포퓰리즘은 대중의 인기만을 좇는 대중영합주의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자층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이 대표적 사례다. 페론은 노조의 과도한 임금 인상을 수용하는 등 무분별한 선심성 복지정책을 폈다가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정부가 내년 예산안으로 내놓은 429조원 국가예산이 `포퓰리즘`의 어두운 망령에 시달리지 않고 국민을 살찌우는 데 쓰여지길 바랄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1-02

아빠 육아

복지국가란 국민이 모두 골고루 잘사는 행복한 나라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대체로 복지가 잘 발달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국가를 `국민의 집`이란 개념으로 나라를 경영한다고 한다. 집안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뜻이다. 자본주의적 개념으로 말하면 완전고용, 최저임금 보장, 사회보장제도 발달 등의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로 보면 될 것 같다.우리나라도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각종 복지제도가 전 분야로 확대되고 복지 개념의 혜택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복지 분야에 투입되는 국가 예산도 내년에는 전체 예산 대비 34%에 달한다. 처음으로 3분 1을 넘어섰다.그러나 선진복지 국가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적지 않다. 국민이 몸으로 느끼는 복지국가가 되기까지는 국민적 의식의 선진화도 중요할 것 같다.최근 우리나라도 남성 육아휴직이 급격히 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현상이 우리 사회에 번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육아휴직의 12.4%가 남성 육아휴직으로 집계되고 있다. 육아 휴직자 10명 중 1명이 남성이다. 그 증가 속도도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남성들의 육아 휴직 증가는 `여성은 육아` `남성은 일터로`라는 우리사회의 고정된 관념이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녀 성 평등 개념의 발전적 변화 양상이다.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스웨덴은 아빠와 엄마의 차이는 모유가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농담이 있다고 한다. 아빠 육아가 사회 통념으로 일반화 돼 있다. 남자가 육아 휴직을 신청한다고 해서 직장에서 이상스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 보수적 직장 분위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봐야하는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아빠의 육아휴직이 성 평등 해소나 저출산 극복을 위한 과정이 아니고 복지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사회의 성숙한 인식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01

자영업자의 한숨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근로시간 단축을 강행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영세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은 업계의 고충을 전혀 모르는 탁상공론식 정책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영세 자영업체 중 외식업계는 내년부터 최저임금이 7천530원으로 현재 6천470원보다 16.4% 인상하면 경영이 어려운 상황인데,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까지 더해지면 더 이상 경영은 힘들 것이라고 자포자기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현재 정부는 법정근로시간을 현행 주 68시간에서 주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을 대비해 시범운영에 들어가는 등 준비에 나섰지만 문제는 대응능력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체들이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도 문제지만 근로시간 단축이 만성적인 구인난 탓에 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체 대표인 A씨는 주야간 12시간 2교대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8시간 3교대로 생산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현재 추가 고용해야 할 인원이 30명에 달하지만 인건비는 차치하고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편의점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그동안 본인이 8시간 가량 근무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활용해 운영해 350만원 가량 수익을 올려왔는데,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근로시간까지 단축되면 본인이 12시간 이상 근무하면서 200만원도 안되는 수익구조로 바뀌게 돼 폐업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취지는 저소득 근로자들의 수익을 올려주거나 장시간 근로를 강행하는 노동환경을 개선해주려는 것일게다. 하지만 경제현장에서 들려오는 영세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들의 한숨어린 탄식은 왜 못들은 척 하는 걸까./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0-31

흡연과의 전쟁

오래전 군 생활을 한 사람들에겐 화랑담배는 추억거리로 충분하다. 담배 잎을 썰어 담배종이에 포장한 볼품없었던 담배였지만 한때는 군인들의 애용품으로 인기가 좋았다. 필터도 없다. 지금과 비교하면 담배 맛이랄 것도 없다. 쓰고 거칠고 독한 맛이다. 1949년 군용으로 첫 보급된 화랑담배는 이후 30여 년간 군인들의 사랑을 받고 사라졌다. 담배 유해론이 확산된 탓인지 알 수 없으나 군수품으로 적절치 못한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6·25전쟁 와중에도 많은 군인의 사랑을 받았던 화랑담배는 노랫말처럼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져 버렸다. 과거에는 담배를 못 피웠던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서 담배를 배워 오곤 했다. 성인이 되는 과정처럼 그들이 군에서 배운 담배는 어른들도 관례처럼 용인했다. 당시 군대서 제공되는 화랑담배는 공짜였다. 1인당 보급량이 많지는 않으나 무상으로 보급되는 것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훈련 중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지면 “담배 일발 장전”이란 구호가 자연스레 나오고 화랑담배 한입을 문 장병들은 쌓였던 피로를 연기 속에 날려 버렸다.금연 클리닉이 운영되는 요즘 군대와 비교하면 세상이 완전 바뀌었다. 화랑담배도 없어졌지만 부대 내 금연 클리닉까지 운영되고 있다니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다. 얼마 전 모 공군부대에 걸 그룹이 등장해 군인들로부터 금연 서약서를 받았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군인들의 호응도 좋아 100명이 넘는 장병들이 한꺼번에 담배를 끊겠다고 서약했다고 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금연 클리닉에 성공하면 휴가가 포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3개월 금연이 확인되면 포상 휴가 하루, 6개월까지 금연을 유지하면 추가로 하루를 더 준다고 한다. 현대화된 군 풍속도다.세계보건기구(WHO) 보고에 따르면 해마다 600만명의 사람들이 흡연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성인 남성 흡연율이 OECD 국가 중 1위다. 매년 5만4천명의 사람들이 흡연관련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장병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흡연과의 전쟁에서 필승은 당연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0-30

유리천장

한국의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국인들은 “결혼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는 인식이 많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미혼 여성 가운데는 46.7%가 그렇게 생각하고 미혼 남성도 38.9%가 같은 생각이다. 여성이 남성보다는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을 덜 가진 것으로 해석된다. 2015년 기준 전체 1인가구의 절반이 여성으로 조사됐다. 혼자 사는 여성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 평등 지수는 꾸준히 개선되고는 있다. 그렇지만 2015년 기준 70.1이다. 아직은 남녀 간 차별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고용률은 2015년 최초로 절반을 넘어섰다. 하지만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4.1%에 머물고 있다. 각종 지수에서 보면 아직 여성이 남성보다 불리한 여건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유리천장이란 말은 1979년 미국 경제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이 여성 승진의 어려움을 다룬 기사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여성이나 소수민족 출신자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란 뜻으로 통용화 됐다. 미국도 한때 여성들에 대한 성차별 해소를 위해 유리천장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지난달 한국을 방문했던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은 마치 집단적 자살 사회와 같다”는 말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꼬집어 눈길을 끌었다. 한국방문을 통해 느낀 소감을 이렇게 표현한 그녀의 본 뜻은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유리천장에 갇힌 존재와 같다는 말이다.한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직장의 중단이요, 경력의 단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젊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이것이 한국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라 진단했다. IMF 사상 첫 여성총재이자 프랑스 변호사 출신이며 G7 국가 중 처음으로 재무부 장관을 지낸 그녀의 지적이라서 더욱 따갑다.“한국은 재정 여력을 저출산 문제에 투입해 여성들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라”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0-27

블랙리스트 VS 화이트리스트

블랙리스트(Black List)는 일반적으로 노동계에서 `요주의 인물명부`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노동계의 은어로 사용해 왔다. 사용자(회사)는 노동조합의 조직활동에 대항해 조합 조직책의 인물명부 작성을 흥신소 등에 의뢰하고, 그 명부를 이용해 조직화에 대응하곤 했는데, 그 인물명부가 블랙리스트다.IT업계의 용어로는 상업적인 스팸을 보내는 인터넷 정보 제공자(ISP)의 주소 목록을 가리킨다. 스팸 메일, 악성 코드를 유포하는 IP 주소, 피싱을 조장하는 허위 사이트 등을 포함한다.이에 반대되는 개념인 화이트리스트(White List)는 유명하고 안전한 IP 주소를 따로 분류, 이 주소에서 보내는 메일은 모두 안정성 있는 내용으로 취급해 수용하도록 하는 목록을 말한다. 불법 사이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블랙리스트를 새롭게 업데이트하는 것이 한계에 이르면서 등장했다. 화이트리스트에 있는 메일만 받아볼 수 있게 설정하면 역으로 악성 메일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정치판에 등장한 블랙리스트는 정권을 뒤흔드는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선`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서 터져나온`문화계 블랙리스트`만 해도 박근혜 전 정부에 통렬한 도덕적 타격을 입혔다. 반면에 정치판의 화이트리스트는 IT업계에서 쓰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뉘앙스로 등장했다.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사건은 박근혜 정부 시절 `관제시위`에 나선 보수단체를 금전적으로 지원하라고 대기업을 압박한 단체나 개인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검찰이 `화이트리스트 의혹`사건 조사를 위해 전 국정원 간부와 전 청와대 비서관, 재향경우회 등 관변단체 인사들을 줄줄이 소환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이 이어지던 시절, 친정부 시위에 열을 내는 관변단체나 특정 보수단체들의 활동재원에 대한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추측이거나 소설에 가까운 주장, 막연히 이랬으리라고 짐작했던 사실들이 `화이트리스트`사건을 계기로 벌거벗은 몸을 백일하에 드러낼 모양이다.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둘 다 반드시 척결해야 할 권력형 범죄의 흔적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0-26

현대판 음서제

고려시대 음서제는 문벌 귀족들에게 주어진 특권 제도다. 5품 이상 관리의 자식은 과거시험 없이 관리가 될 수 있게끔 특채의 기회를 제공해 준 공인된 제도다. 고려시대는 통일신라가 무너지고 호족세력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된다. 호족세력의 등장은 귀족중심의 문벌체제가 강화되는 전기가 된다. 부모의 음덕으로 자식이 득을 보는 음서제는 대표적인 귀족 우대정책이다. 당시 나라는 이들 문벌귀족들에게 공음전(功陰田)이라는 토지를 하사했다. 이것 또한 자식들에게 세속을 허용한다. 부와 권력의 세습은 불공정 사회를 만들고 민심을 떠나게 한다. 백성을 섬기는 목민의 정치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신분제로서 악명이 높다. 타고날 때 자신의 신분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운명을 결정한다. 사회신분의 세습이다. 지금은 폐지되었으나 인도는 신분제 악습의 영향으로 아직까지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 제도의 선진화가 이래서 중요하다고 한다.최근 국감에서 드러난 강원랜드의 채용 비리는 이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후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부끄러운 사건이라 할 수 있다. 500명이 넘는 신입직원들이 지속적으로 부정청탁의 방법으로 채용돼 왔는데도 우리 사회의 감시가 없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현대판 음서제란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 강원랜드는 1998년 폐광지역 경제 회생과 관광산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정부가 설립한 회사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포함, 호텔, 스키장, 리조트 등을 운영하는 산자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작년기준으로 매출 규모가 1조6천900억원 정도이며, 영업이익이 6천억원을 넘는다.특히 내국인을 상대로 카지노를 운영하면서 돈 잘 버는 공기업으로 소문나 있다. 직원들의 복지도 우수해 젊은 사람들의 로망이 되는 직장이다. 강원랜드의 직원채용 비리는 취업절벽에 허덕이는 우리 사회 젊은이들에게 큰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일벌백계의 수사가 필요하다. 일반기업도 아닌 공기업에서 일어난 일이란 게 믿기지 않는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0-25

블라인드 채용

블라인드(Blind) 채용은 입사지원서에 신체 조건이나 학력 등을 기재하지 않는 등 선입견이나 차별적 요소를 배제하고 채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통상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신규사원을 채용할 때 입사지원서나 면접 등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출신 지역이나 신체 조건, 가족관계, 학력 등 인적사항을 신청서에 기재하도록 했다. 그랬던 것이 요즘에는 개인에 대해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신상정보를 요구하지 않고 대신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등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채용 방식이 인기를 끌고있다. 가장 앞장선 것은 바로 정부다. 정부는 지난 7월 5일 `평등한 기회·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7월부터 322개 공공기관 전체가 블라인드 채용 전면 시행에 들어간 데 이어 8월부터는 149개 지방 공기업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이 실시됐다. 7월 12일에는 663개 지방 출자·출연기관을 포함한 지방 공공기관 전체에 9월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 시행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이 발표됐다. 정부는 이미 지난 2015년부터 공공기관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바탕을 둔 채용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력서 등에 출신지와 출신 대학, 신체적 특징 등 차별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정보를 전형 과정에서 배제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 방침이 발표되자 대학생들과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학연, 지연, 혈연 등이 중시되는 비합리적인 사회 환경이 변화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스펙 경쟁에서 벗어난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이 많이 등용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반면 블라인드 채용 도입을 반대하는 측은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인 학력·학점을 표기하지 않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의견이다. 여기에는 원칙이 필요하다. 노력과 관계없는 학연·지연·혈연은 배제하는 게 옳다. 그러나 노력의 소산인 학력·학점 등은 반영하는 게 맞다. 열심히 노력한 삶의 징표를 깡그리 무시하고, 인재를 뽑으라는 것은 취직시험 자체의 공신력만으로 `맹인 코끼리 더듬기`식 인재선발을 강행하라는 억지정책이 될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0-24

푸대접 받는 지방의 문화권리

2013년 제정된 문화기본법에는 국민의 문화권을 광범위하게 개념하고 있다. 이 법에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문화의 가치와 위상을 높여갈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 방법으로 정부는 5년 단위로 국가차원의 문화진흥 계획을 수립하고 문화융성 비전을 제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도서구입비와 공연관람비를 연 100만원까지 추가 공제해 주는 세법 개정안을 지난 8월 발표했다. 관련업계는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크게 환영했다. 정부도 국민의 문화향유 확대를 위한 조치라며 그 의미를 부여했다.문화는 한 나라가 가진 정신적 보루며 동일 집단의 특정한 생활방식을 규정한다는 데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문화를 콕 집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가치로써 인간에게 주는 중요성은 인정된다. 특히 우리의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문화적 기대감은 커진다. 국민 모두가 골고루 문화적 권리를 누려야 하는 이유가 이런데 있다고 보면 된다최근 국감자료에서 밝혀진 문화 예술 활성화를 위해 지원되는 정부 지원금이 중앙에 과대 편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문화재재단의 최근 5년간 지역별 예산지원 현황에 따르면 총 지원예산 1천356억 원의 62%가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됐다. 공공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 인프라도 수도권에 집중돼 지방은 상대적으로 문화 향유 기회가 박탈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에 영화관이 없는 시군구가 66곳에 달했고 경북지방에도 13개 시군이 영화관이 없는 곳으로 밝혀졌다. 이곳 주민들은 영화를 보러 인근 대도시로 나가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고 한다. 국립오페라단 등 5대 국립예술단의 올해 공연 횟수 317회 중 310건이 서울에서만 열렸다.국민의 기본권으로서 문화적 권리가 지방은 사실상 소외당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가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지방분권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자는 데 있다. 중앙 권력의 독점적 지위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선진국이라 말할 수 없다. 지방에 대한 푸대접은 언제쯤 개선될까./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0-23

노숙인과 도시 불명예

노숙인 문제는 도시가 안고 있는 고민거리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많은 도시가 노숙인 문제로 이런저런 고민을 한다. 이른바 지상낙원이라 일컬어지는 하와이도 증가하는 노숙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외신이 보인다. 프랑스 파리를 다녀온 한국의 여행객 가운데는 샹젤리제 거리나 에펠탑으로 연상되는 파리에 대한 낭만적 생각이 그곳 지하철에서 만난 부랑자들 모습 때문에 기분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도 1997년 IMF 이후 대량 실직사태가 벌어지면서 노숙인 문제가 공식 제기됐다. 그 이전에도 역이나 지하도 주변 등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노숙인으로 분류되기는 이때부터다. IMF 직후인 1999년 우리의 노숙인 숫자는 공식적으로 6천 명을 넘어섰던 것으로 조사됐다. 노숙의 원인은 다양하다. 도시의 경제적 사정이나 허술한 사회 안전망 등을 이유로 꼽는다. 개인적으로는 실업과 사업의 실패에 따른 경제적 문제가 원인일 때가 많다고 한다. 총체적으로는 그 도시의 불량한 경제적 환경이 원인이기도 하나 꼭 그것을 당연한 이유로 꼽기에는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 국감자료에서 밝혀진 `2016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현황`에서 대구는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노숙인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구 1만 명당 노숙인 수는 4.39명으로 서울(3.61), 경기도(1.2명)를 앞질러 충북(4.65명)과 세종시(4.61명) 다음으로 많았다. 단순 노숙인 수도 서울(3천591명), 경기도(1천522명) 다음 많은 1천92명으로 집계됐다.대구는 왜 타도시보다 노숙인이 많을까 하는데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노숙인이 많음이 드러나면서 대구의 이미지에 좋을 것이 없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을 한다. 대구시민이면 그런 외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가뜩이나 GRDP(지역 내 총생산) 전국 꼴찌의 불명예가 부담스러운 판에 노숙인 최다 도시가 웬 말일까 싶다. 대구의 도시 이미지 개선에 좀 더 노력해봐야 할 것 같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0-20

DTI와 DSR

정부가 부동산 이상과열로 인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한 대책으로 신(新)DTI(Debt to Income: 총부채 상환비율)와 DSR(debt service ratio: 총부채원리금 상환비율)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DTI는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채무자의 소득으로 대출 상환 능력을 점검하는 제도이고, DSR은 모든 금융권 대출의 원리금을 모두 더해 매년 갚아야 할 빚의 정도를 평가하는 제도다. 내년부터 장래소득 증가·감소 가능성 등을 반영하는 신 DTI가 적용되고, DSR은 2019년부터 전면 도입할 예정이라는 게 최근 국회에 출석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설명이다. 신 DTI는 대출 심사 시 해당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원리금뿐 아니라 기존 주담대의 원리금 상환액까지 반영한다. 또 소득의 지속성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을 경우 일부분만 소득으로 인정하고, 장기대출의 경우 연령대를 감안해 장래 소득을 산출하는 방식도 적용된다. 신 DTI보다 한층 더 강력한 대출 규제인 DSR은 주택담보대출 외에도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등 제도권 내 모든 빚이 총부채로 잡히기 때문에 대출자의 대출 한도가 큰 폭으로 줄어든다. 금융위원회가 조만간 가계부채 종합대책으로 내놓을 신 DTI와 DSR은 모두 대출자(차주)의 상환능력을 중심으로 대출한도를 새로이 산정한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억제를 위해 나선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현금자산이 부족한 30~40대 직장인들이나 생애최초 주택구입자들이다. 신 DTI나 DSR의 도입은 이들에게 주택담보대출 문턱을 높여 내집을 마련하기 더 어렵게 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금융권의 자율판단능력과 상관없이 주택담보대출을 옥죄는 것은 산업연관효과가 큰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함께 국민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나라 경제를 좌우하는 정책을 쓰는 데는 신중한 행보가 필요하다. 하나를 잡으면 또 다른 하나가 문제되는 풍선효과가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0-19

한국축구의 수모

지난 15일 유럽 원정 평가전을 마치고 귀국하던 한국축구 대표단 일행은 뿔난 팬들의 항의성 시위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축사국) 회원들은 이날 인천공항에서 귀국하는 신태용 감독 등을 기다리며 “한국 축구 사망했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대한축구협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신태용 감독 일행은 팬들의 항의를 피해 당초 계획한 인터뷰도 취소하고 다른 출국장을 통해 빠져나왔다고 하니 한국축구가 톡톡히 망신을 당한 셈이다.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국제축구연맹(FIFA)의 랭킹 발표가 있어 한국축구는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FIFA는 10월중 한국축구의 랭킹을 62위로 발표했다. 9월보다 11단계나 떨어졌으며 러시아행에 실패한 중국(57위)보다 뒤쳐져 국내 팬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특히 중국보다 랭킹순위가 뒤쳐진 것은 1993년 FIFA가 랭킹을 도입한 이래 처음이라 팬들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했다. 아시아지역에서도 이란(34위), 호주(43위), 일본(44위), 중국(57위)에 이어 다섯 번째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진출이 확정된 23개국 가운데 개최국 러시아(65위), 사우디아라비아(63위)와 함께 꼴찌에 머물러 있다.1906년 서울에서 열린 대한체육구락부와 황성기독청년회간 시합이 한국축구의 첫 경기란 기록으로 보아 한국축구도 벌써 100년 역사를 가진다. 국제적 규칙으로 본격화 된 것은 1920년대며 제1회 전 조선인축구대회가 1921년에 열렸다. 당시 축구는 일제식민지 아래에서 쌓인 울분을 풀어줄 유일한 스포츠로 젊은이에게 청량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해방 후 1956년과 1960년 아시안 컵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을 하면서 한국 축구는 아시아권 챔프에 올랐다. 이후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에서 세계 최강의 국가대표팀을 누르고 당당히 4위에 올라선 한국축구는 명실공히 국민 스포츠로서 자랑거리였다.최근 한국 축구가 보여준 실망스런 결과에 대한 팬들의 노여움은 이 같은 한국 축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해가 간다. 자존심 상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0-18

치믈리에(chimmelier)

`치믈리에`는 닭에 밀가루를 입히고 튀겨 만든 요리인 치킨(chicken)과 서양 음식점에서 손님이 주문한 요리와 어울리는 와인을 손님에게 추천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소믈리에(sommelier)란 단어가 합쳐진 신조어다. `치킨 감별사` 또는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치킨의 맛과 향, 식감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치킨 전문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우선 치킨이 `국민 먹거리`이자 `국민 자영업`이 되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성장과 함께 양계업이 발전하면서 유통되는 닭 값이 싸졌고, 1971년 해표에서 식용유를 출시하자 닭을 기름에 튀겨먹기 시작했다. 식용유가 팔팔 끓는 가마솥에 닭을 통째로 넣고 튀긴 일명 `가마솥 통닭`에 맥주를 곁들여 파는 가게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1970년대 말부터 이런 가게가 프랜차이즈로 진화하면서 기름에 튀긴 치킨, 즉 프라이드 치킨을 그냥`치킨`이라고 불렀다. 양념 치킨은 1980년대 초 등장했다. 이후 한국의 치킨은 이 두 가지 치킨을 중심으로 발전했다.치킨은 맥주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아예 대중문화의 단골 소재로 떠올랐다. 2014년 방송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 천송이(전지현)가 “눈 오는 날엔 `치맥(치킨+맥주)`”이라고 말한 대사가 아시아를 강타한 것이다. 드라마가 중국과 동남아 등에서 인기를 끌며 이제 `치맥`은 한국에 왔을 때 꼭 즐겨야 하는 대표 음식이 됐다. 대구에선 2014년부터 매년 `치맥 페스티벌`을 열어 관광상품화 하고 있다.이쯤되자 지난 7월 국내 1위 배달앱으로 알려진 `배달의민족`이 국내 최초의 치킨 능력평가 대회인 `제1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을 열어 화제를 모았다. 이날 시험 합격자에게는 배달의민족에서 인증하고 발급하는 `치믈리에 자격증`을 수여했다. 전문적인 자격증이라기 보다는 치킨 애호가들끼리 재미로 치른 시험이었지만 `치믈리에`란 신조어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그러나 세태의 변화가 어떻게 흘러갈 지 누가 알랴. 재미삼아 따둔 치믈리에 자격증이 귀한 자격증으로 각광받는 날이 오지말란 법도 없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