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화기(火氣)로 한담(寒痰)을 공격하니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히 없어졌고, 연기의 진액이 폐장을 윤택하게 하여 밤잠을 안온하게 잘 수 있었다.”담배는 조선 중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조선 22대 왕 정조의 ‘담배 사랑’은 대단했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위와 폐를 편안하게 해 불면증을 없애주는 게 담배라고 믿었다.당시 담배는 ‘남령초’라 불렸다. 담배의 유래와 활용법이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됐고, 흡연에는 반상(班常)의 구분도, 남녀노소도 없었다.그로부터 수백 년이 흘렀다. 오늘날 담배는 ‘공공의 적’ 수준으로 그 지위가 추락했다. 흡연자가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진다.게다가 거의 ‘공포스럽다’ 할 수준의 흉물스런 사진이 담뱃갑마다 새겨졌다. ‘이런 끔찍한 꼴이 될 텐데, 그래도 피울래?’라며 끽연자를 겁박한다.만약 사무실이나 버스, 식당 안에서 담배를 꺼내 문다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가 예닐곱 살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에서 담배를 피운다면? 애들 부모에게 몰매 맞을 일이다.남한에선 불가능한 흡연 형태가 북한에서 벌어진 모양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수재민 아이들의 수업을 참관했는데, 그 자리에 담배와 재떨이가 있었다고. 그는 열 살 안팎으로 추정되는 딸 곁에서도 담배를 피운다고 알려졌다.지난 2020년 북한은 금연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큰 권력을 가진 자들은 중세의 왕들처럼 법 위에 군림하려는 행태를 보인다. 법은 힘없는 자들이나 지키는 것인가? 김정은 위원장은 전제국가(專制國家)의 통치자 정조 흉내를 내는 걸까?/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26
우정구 논설위원 냉동난자는 난임에 대비해 난자를 보관하는 시술을 말한다. 과거에는 불치병이나 항암 치료를 앞둔 암환자들이 난소 기능 상실에 대비해 난자를 보관하던 수단으로 주로 이용했다.그러나 요즘은 2030 젊은여성을 중심으로 냉동난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활용률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국 의료기관에 보관 중인 냉동난자는 2020년 약 4만개 정도였지만 지난해는 10만개로 늘었다. 불과 4년 사이 2.5배가 증가한 셈이다.취업과 결혼이 늦어지면서 난임가정이 늘자 난자를 미리 보관하려는 젊은 여성들이 많아진 것이 이유라고 한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더라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의 건강한 난자를 미리 보관해 놓음으로써 난임에 대비할 수 있고, 건강한 2세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이 늘어난 것이다.전 세계적으로도 미혼여성이 만혼에 대비해 난자를 보관하려는 현상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세계보건기구가 기준으로 삼는 노산(老産)의 연령은 35세. 여성이 35세에 이르면 자궁과 난소의 노화가 시작되고 이로 인해 기능이 저하하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20세 이전 결혼한 여성의 불임률은 5% 미만인데 35세 이상부터는 30%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남성들의 늦둥이 출산이 화제가 된 적은 자주 있었다. 영화배우 안소니 퀸은 84에, 피카소는 90세에 아이를 낳았다. 공자의 아버지는 16살 부인을 통해 70세에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냉동난자 시술은 늦둥이와 달리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다는 면에서 다소 충격적이다. 건강한 2세를 위한 의술의 발달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까 두렵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25
우정구 논설위원 영화는 과학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과학의 산물로 탄생한 영화는 이후 예술영역의 주요 분야로 자리를 잡고 산업으로도 영역을 키우고 있다. 또 많은 사람이 힐링을 위해 즐겨 찾는 문화 콘텐츠로서도 입지를 잘 굳혀가고 있다.영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매체의 하나가 됐다. 지금 이 시간도 전 지구적으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영화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미디어 산업의 발달로 이제는 영화관에서만 상영되는 것이 아니고 TV나 스마트폰, 인터넷, DVD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일반인의 문화생활 도구로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정신 건강을 돕는 수단으로서 영화는 우리와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영화배우 최민식이 TV에 출연해 영화 티켓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말을 한 후 영화 관람료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극장가 관람료가 최고 50%가량 인상된 게 촉발 배경이다. 구경하기가 부담스럽다는 반응들이 많이 나온다. 일각에선 코로나 때 죽었다 살아났으니 심정적으로 이해가 된다는 반응도 있으나 관람료 인상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여기에 티켓가격 인상과는 별개로 볼 것이 별로 없다는 한국영화 콘텐츠에 대한 비판까지 가세되면서 논쟁은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문제는 영화관람 대신 넷플릭스와 같은 OTT를 찾는 사람의 수가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TV 화면보다 영화관 대형 화면에서 보는 재미가 분명 있을 텐데 관객이 줄어드는 것은 한국영화의 위기로 볼 수 있다. 가격일까, 콘텐츠 부족의 문제일까 한국영화산업이 고민할 문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22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현지인들은 ‘퍼(Phở)’ 또는 ‘포’라고 불렀다. 한국 사람들은 ‘쌀국수’라고 한다. 베트남 북부 하노이, 중부 후에, 남부 호치민 모두엔 조리법과 국물의 농도, 면의 굵기를 달리하는 쌀국수가 있다.바로 이 ‘베트남 퍼’가 국가문화유산이 됐다.최근 베트남 정부는 “하노이 쌀국수와 북부 남딘성의 쌀국수, 중부 꽝남성 비빔국수 등 3종류의 퍼를 국가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쇠고기나 닭고기로 육수를 낸 베트남 퍼는 숙주나물 등 여러 채소를 함께 식탁에 올린다. 독특한 향신료 냄새 탓에 꺼리는 이들도 있지만, 몇 번 먹다보면 중독성 강한 매력적인 음식이란 걸 알게 된다.이래저래 베트남을 4번쯤 여행했다. 그때마다 값싸고 편리하게 뚝딱 한 끼를 해결하는데 쌀국수만한 게 없었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쌀국수 맛을 비교해보는 재미까지 있었다.베트남 쌀국수에 얽힌 ‘잊을 수 없는 추억’도 생겼다. 2011년. 베트남에 이상 한파(寒波)가 닥쳤다. 늦봄엔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하노이의 기온이 15도 이하로 떨어진 것.얇은 민소매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하노이역에 도착한 건 새벽 5시였다. 여벌의 두꺼운 옷을 준비하지 못했기에 어깨는 움츠러들고 턱이 덜덜 떨렸다. 한국의 12월 같았다.아직 해도 뜨지 않은 캄캄한 시간. 역 광장에서 양동이에 육수를 담고 바구니에 면을 담아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가 말아준 500원짜리 따끈한 쌀국수 한 그릇이 얼마나 맛있었던지. 허겁지겁 젓가락질 하는 낯선 여행자에게 한 국자 가득 국물을 덤으로 퍼주던 아주머니의 미소가 지금도 선연하다. 오늘 점심 메뉴는 ‘베트남 퍼’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21
우정구 논설위원 칠레는 영토 전체가 환태평양 지진대에 해당된다. 크고 작은 지진과 화산 폭발이 자주 일어나고 금세기 역사에 기록될 만큼 어마어마하고 거대한 지진만 세 번이나 발생한 나라다.1960년 5월 22일 칠레 발디비아에서 일어난 지진은 지진관측 사상 가장 큰 규모인 9.5를 기록했다. 아직도 이 기록을 깬 지진은 없다. 이 지진으로 칠레에서는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태평양 건너인 하와이, 일본, 필리핀, 미국 서해안까지도 지진의 영향이 미쳤다고 하니 칠레 지진의 위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환태평양 조산대는 지구상에서 가장 활발하게 지진과 화산이 발생하는 곳이다. 남미 서안에서 북미 서안을 거쳐 러시아 동부, 일본을 지나 뉴질랜드까지 이어지는 지역이다. 태평양 해안선을 따라 말발굽 모양의 띠를 형성하고 있어 불의 고리라 부른다.불의 고리로 지목된 이곳을 중심으로 최근 잇따라 지진이 발생하면서 대지진 전조가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난카이 해곡 대지진 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9일과 10일 도쿄 서쪽 가나가와현과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 북동쪽 해역에서 잇따라 지진이 발생했다. 또 19일에는 이바라키현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등 최근 잇따른 지진으로 일본 전역에 지진 공포감이 커지는 분위기라 한다. 지난 16일에는 대만 화렌현에서, 18일에는 러시아 캄차카반도 앞바다에서도 지진이 발생했다. 이른바 불의 고리를 중심으로 잦아지는 지진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는 대지진 전조란 분석도 내놓는다.우리나라는 정말 지진의 안전지대일까. 날로 괴팍해지는 지구촌 자연현상 앞에 인간의 무력함이 느껴지는 요즘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20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20세기 중반. ‘지구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로 불렸던 프랑스 영화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알랭 들롱. 1935년생이니 향년 89세.지금은 70~80대 할머니가 된 한국 여성 다수가 영사막에 비춰지는 알랭 들롱의 우수어린 눈빛과 회색빛 트렌치코트에 매료됐다.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는 열광이었다.‘태양을 가득히’를 필두로 ‘한밤의 암살자’ ‘고독한 추적’ 등의 영화에서 보여준 알랭 들롱의 반항적 이미지와 강렬한 눈빛은 동시대 미국 미남배우인 제임스 딘(1931~1955)과 비교되며 ‘프렌치 느와르(암흑가 남성들의 파멸을 다룬 영화)’라는 조어(造語)까지 생겨나게 했다.“인물값 한다”는 옛말처럼 알랭 들롱은 무수한 스캔들 또한 만들어냈다. 독일 출신 열아홉 살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와의 시끌벅적했던 연애를 시작으로 나탈리 들롱, 미레유 다르크 등 사망 때까지 공식적으로만 5명의 여성과 결혼 혹은, 동거를 이어갔던 것.‘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알랭 들롱이 아기였던 시절 동네 산책을 나갈 때면 그의 엄마가 유모차에 이런 팻말을 붙였다. ‘제발 내 아기를 만지지 마세요.’ 너나없이 천사처럼 귀여운 알랭의 볼을 쓰다듬으려 했기 때문이다.뿐인가. 10대 땐 식당 앞에 서있으면 식당 주인이 스테이크를 공짜로 주고, 옷 가게 앞을 서성거리면 의상실 주인이 돈 안 받고 외투를 줬다는 이야기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돌았다.알랭 들롱에게 ‘미남으로 평생을 사는 게 어땠는가?’ 묻고 실은 남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해졌다. 이제 그는 ‘지구의 미남’이 아닌 ‘천국의 미남’으로 닉네임을 바꿨기에. 멀리서 명복을 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19
우정구 논설위원 매년 한증막 더위로 전국의 이목을 끌었던 대구의 한여름 무더위가 올해는 대프리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지나가고 있다는 평가다.오히려 서울은 27일째 열대야가 이어져 118년만에 신기록이 세워졌고 부산도 23일째 열대야가 이어지는 폭염으로 전국의 주목을 받았다. 강릉과 속초에서는 밤사이 최저 기온이 30도를 넘는 초열대야 현상이 나타나 많은 시민이 밤잠을 설쳤다는 소식도 들린다.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대구는 지난 50년간 폭염 일수가 1261일로 같은기간 광주(668일), 서울(393일)보다 2배 내지 3배가 많았다.대구는 팔공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도시다. 안에서 생성된 뜨거운 공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여름철이면 뜨거운 공기가 계속 머물면서 도시를 한증막처럼 대우고 있는 것이다.2010년 이후 대구 더위를 빗대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고 대구 도심에는 더위를 상징하는 조형물도 등장했다. 여름철만 되면 한증막처럼 무더운 대구의 날씨는 늘 전국 뉴스의 한토막을 장식했다.최근 기상청이 10년간 5∼9월 사이 사람이 느끼는 체감온도를 조사해 보았더니 광주가 29∼32도로 가장 높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주와 대전이 그 뒤를 이었고, 대구는 전국 11번째로 나타났다고 한다.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열섬효과를 완화하기 위해 가로수와 도시숲 조성사업을 지속 펼쳐온 것이 효과를 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변에 나무가 있으면 없는 곳보다 3도 정도 기온을 낮출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 대구의 상징처럼 쓰였던 대프리카 간판을 이제는 내려야 할 때가 된 걸까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18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나라다. 국제 인권단체인 엠네스티는 법적으로 사형제도가 존속하면서 10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은 한국을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한다.따라서 무기징역형은 우리나라에선 사실상 최고형에 해당한다. 무기징역형은 글자 그대로 교도소에서 기한없이 영구히 노역에 종사하는 형벌이다.1979년 스페인의 가브리엘 그라나도스라는 우체국 배달부는 38만4912년의 징역형을 구형받았다. 4만여 건에 달하는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고 일부 우편물은 열어 귀중품도 챙긴 혐의다. 우편물 1개당 9년씩 형량을 매겨 나온 형량이나 정작 법원은 그에게 징역 14년 2월을 선고했다.사기 혐의로 최고 형량을 선고받고 기네스북에 등재된 인물은 태국의 차모이 티피아소라는 여성 사업가다.1989년 다단계 사업을 통해 1만6000여 명에게 사기를 쳐 2300억원을 빼돌린 혐의다. 선고 형량은 14만1708년이었으나 실제로는 8년가량 복역하고 출소했다고 한다.우리나라 사기범죄는 연간 30만건 이상 발생한다. 전체 범죄의 21%를 차지해 사기공화국이라 불리기도 한다. 문제는 사기범죄 대상이 경제취약층에 표적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를 당한 사람은 경제적 회복이 어려워 일부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대법원이 사기죄의 양형기준을 13년만에 대폭 상향한다는 소식이다. 보이스피싱이나 전세 사기 같은 조직적 사기에 대해서는 피해액이 300억원이 넘을 경우 최대 무기징역형에 처하도록 했다고 한다.만시지탄의 느낌이 있으나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15
우정구 논설위원 스포츠나 연예계 등에서 나이가 어린대도 당차게 차고 나오거나 엄청난 기대를 할 만큼의 유망주가 등장하면 ‘앙팡 테러블(무서운 아이)’이라 한다. 직역하면 무서운 아이들이란 뜻이다.논어에 나오는 사자성어 가운데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도 있다. 후배들이 선배들보다 젊고 기력이 좋아 학문을 닦음에 있어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가히 두렵다는 뜻이다. 공자의 이 말 본뜻은 젊은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로 보통 해석한다.파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예상을 뒤엎고 역대 최상급 성적을 올려 화제다. 당초 5개로 예상했던 금메달을 13개나 땄다.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과 맞먹는 성적을 올려 1978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가장 작은 규모 선수가 출전해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대회로 기록됐다.파리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2000년대생들의 겁없고 거침없는 활약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10∼20대 선수들이 한계에 도전하는 열정과 용기만으로 보는 이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것이다.이번 대회 메달리스트 44명 가운데 24명이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선수들이다.사격에서 금메달을 딴 반효진은 현재 고교에 재학 중인 16살 선수. 양궁 3관왕 위업을 달성한 임시헌은 21살, 배드민턴의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은 22살. 등등이다.무서운 아이들의 반란이 있을 때마다 국민의 눈과 귀는 즐거웠다. 승패보다 올림픽 무대를 즐기는 듯한 긍정적 태도에서 기성세대와는 다른 신선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짜증나게 하는 우리 정치판에도 앙팡 테러블이 등장했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13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른다. 이유가 있다. 면밀하게 작성된 시나리오와 현란한 연출 없이도 드라마나 영화 이상의 감동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기 때문.이번 프랑스 파리올림픽에서도 드라마틱하고 눈물겨운 장면들이 여러 번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보여졌다. 그중 한 장면은 오랜 시간 우리 기억 속에 남을 듯하다.지난 2일 프랑스 생드니에서 펼쳐진 여자 육상 100m 예선 경기. 한국만큼이나 뜨거운 날씨였음에도 팔다리를 가리는 새까만 히잡(이슬람 여성의 복식) 형식의 운동복을 입은 선수 한 명이 등장한다. 망명 중인 스물여덟 아프가니스탄 여성 키미아 유소피였다.국제적 수준과는 거리가 먼 기록 13초42. 꼴찌였다. 하지만, 키미아 유소피는 다른 어떤 선수보다 크게 주목받았다. 경기를 마친 뒤 ‘교육은 우리의 권리입니다’라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관중들 사이를 달린 것.현재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교조주의자’로 불리는 탈레반이 집권하고 있다. 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교문 앞에서 쫓겨나는 아프가니스탄 어린 여학생들의 모습이 이미 수차례 전파를 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긴다.‘달리는’ 인간의 행위에는 여러 가지 함의(含意)가 담겼다. ‘부당함에 온힘을 다해 저항한다’는 것도 분명 그 함의 중 하나일 터.유소피는 그날 100m를 전력으로 질주함으로써 ‘나를 포함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부정당한 우리의 권리를 되찾으려 싸우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던졌다. 그날, 그녀가 보여준 용기는 꽃다발 1만 개를 받기에 충분했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12
우정구 논설위원 수많은 자연재해 중 인간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재난을 꼽으라면 지진이 으뜸이다. 태풍은 특정 시기에 찾아오고 방향이라도 가늠할 수 있으나 지진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마치 발밑에 시한폭탄을 묻어 놓은 것처럼 불안하기 그지없다.전 세계적으로 지구 내부에선 하루 1000∼5000번 정도의 지진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런 지진이 세계에 골고루 발생하지 않고 일정한 지역에 집중 발생하는데, 이를 지진대라 부른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지진대는 태평양 연안으로 환태평양 지진대다.아메리카 대륙의 서해안과 캄차카 반도, 일본, 필리핀, 동인도제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9.1 규모 대지진. 일본 국내 관측사상 최고규모를 기록했다. 초대형 쓰나미가 몰려오고 후쿠오카 원전에서 방사성이 누출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수 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일본 사회를 가장 큰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다.지난 8일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일본 기상청이 난카이 해곡 대지진 발생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일본열도가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난카이 대지진은 수도권 서쪽인 시즈오카현 앞바다에서 시코쿠 남부, 규슈동부해역까지 이어지는 곳으로 100∼150년 간격으로 지진이 발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도 30년 내 난카이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70∼80%로 보고 있다.동일본대지진과 맞먹는 대규모 지진이 일어난다면 일본은 또 한번 최악의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일본인에게 지진은 숙명과 같은 존재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8-11
우정구 논설위원 관광산업을 “굴뚝없는 공장”에 비유한다. 생산하는 공장이 없어도 고용창출 효과를 낼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이다. 또 관광은 보이지 않는 무역이라 하여 외화획득의 첨병으로 인식된다. 국제친선과 문화교류, 국위선양의 효과도 관광의 장점이다.태국은 관광산업 비중이 GDP의 21.9%다. 그리스도 비슷해 유네스코 문화유산 덕에 관광산업으로 국민이 먹고산다 해도 무방하다 할 정도다.그러나 관광산업이 이렇게 꼭 장점만 있는 것일까. 많은 도시들이 관광산업 진작을 위해 자국의 문화유산과 천연자원을 홍보하고 외국인 관광객 모시기에 열중이나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최근 유럽의 유명 관광도시에서 관광객 방문을 거부하는 시민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선 이곳을 찾은 관광객에게 물총을 쏘며 도시를 떠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관광객을 위한 도시보다 지역민을 위한 도시를 원한다는 게 이유라 한다.한해 수 천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바로셀로나에선 관광객 수용을 위해 주거용 주택이 숙박시설로 바뀌면서 집값 상승 등의 부작용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이탈리아 베네치아는 관광객이 넘쳐나면서 물가가 올라 어느날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 한때 13만명에 달했던 도시인구가 5만명으로 줄었다. 정부가 관광객에게 도시 입장세를 물리기로 했으나 도시를 떠난 주민들을 돌아오게 하기에는 뒤늦은 조치다.오버투어리즘은 외국인 관광객의 과잉 유입으로 지역주민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유럽의 유명관광지에서 빚어지는 오버투어리즘을 어떻게 볼 것인가. 관광산업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반면교사할 점은 없을까./우정구(논설위원)
2024-08-08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국민 OOO‘. 이런 표현은 식상해서 잘 쓰지 않지만 이번은 예외다.바나나, 납작 복숭아, 주먹밥, 에너지젤…. 이젠 누가 뭐래도 ‘국민 귀염둥이’로 등극한 탁구선수 신유빈이 이번 프랑스 파리올림픽 경기 도중과 전후에 먹은 것들이다.수많은 카메라가 참가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내는 국제 스포츠 대회. 관중들이 보건 말건 귀여운 표정으로 갖가지 것들을 맛있게 먹는 신유빈을 지켜본 나이 지긋한 중년들은 ‘다이어트’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자신들 딸을 떠올리며 “내 딸도 저렇게 잘 먹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어디서나 흔하게 보는 바나나와 복숭아는 특정 업체가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신 선수가 머리에 얼음 팩을 올리고 먹은 에너지젤은 제조사가 있는 공산품. 그 제품을 만든 회사는 갑작스레 늘어난 주문량에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는 후문까지 들려온다. 스포츠 스타가 가진 영향력을 증명하는 사례 중 하나다.빼어난 탁구 실력과 함께 갓 스무 살답지 않은 성숙하고 깨끗한 매너까지 보여준 신유빈에게 한국인은 물론, 파리를 찾은 다른 나라 선수와 외국인들까지 호감을 표시했다고 한다.나이가 나이인 만큼 4년 후 미국에서 열릴 LA올림픽과 그 다음에 개최될 8년 후 올림픽에서까지 ‘성장하는 신유빈’을 박수 치며 지켜볼 탁구 팬들은 벌써 행복감에 설렌다.폭염 속에서도 파리올림픽 중계방송을 지켜보며 뜨거운 응원을 보낸 국민들에게 귀여움과 즐거움을 선물한 ‘신유빈의 먹방’.그 먹방은 과도한 다이어트로 인해 여러 부작용에 시달리는 20대 여성들의 스트레스도 일정 부분 풀어주지 않았을까?/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07
우정구 논설위원 오늘이 바로 입추(立秋)다. 입추는 24절기 중 13번째 절기며 대서와 처서 사이에 있다. 양력으로 8월 7일 내지 8일이 입추가 되는 날이다.중국 화북지방의 날씨를 기준으로 24절기가 만들어져 우리나라와는 약간의 기후 차이가 있다. 입추가 가을의 시작을 알린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시기는 처서 때다.14번째 절기인 처서는 8월 22일과 23일에 든다. 올여름은 14일 말복을 지나 22일이 처서다.우리 조상들은 처서를 “땅에서는 귀뚜라미 업고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말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옴을 빗댄 표현이다. 입추와 처서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이제 폭염도 기세가 한풀 꺾일 것으로 보는 기대감이 있다.요즘 날씨를 보면 기세가 꺾일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기상청도 “지금의 무더위가 이달 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입추인 7일의 대구경북의 기온은 최고 31∼36℃로 예상된다. 작년 입추 날의 기온은 37.8℃로 역대 입추 날 날씨로는 신기록을 세웠다.“봄이 와도 봄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오랑캐인 흉노족 왕에게 시집간 중국 절세미인 왕소군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며 부른 시의 한 구절이다.경우는 다르지만 입추와 처서가 와도 더위가 떠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지금의 날씨가 “가을이 와도 가을 같지 않다”는 말로 표현하면 틀리지 않다.지속되는 찜통더위로 전국에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면서 최근 사흘사이 6명이 숨지는 일도 벌어졌다.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가 바로 지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06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1981년 3월 30일 오후 2시 26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이 총에 맞는다. 워싱턴 힐튼호텔 앞에서 전용차에 오르던 레이건을 향해 존 힝클리가 권총을 쏜 것. 불과 3m 앞이었다. 총탄은 심장을 12cm 비껴갔다.피격 후 레이건은 생사가 오가는 수술을 받는다. 그 와중에도 메스를 잡은 의사에게 “당신 공화당원 맞지? 민주당 지지자 아니지?”라는 농담을 했다고.회복 직후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레이건. 무대에 오른 그의 뒤편에서 풍선이 터진다. 총성으로 오해할 수 있는 큰 소리였다. 그럼에도 레이건은 어깨도 움찔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농담에 긴장한 참석자 모두가 폭소했다. “이번엔 날 맞히지 못했네.”2024년 7월 13일 오후 6시 15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78)가 피격 당한다. 펜실베이니아 유세 도중 먼 거리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았다. 오른쪽 귀에서 피가 흘렀다. 총탄이 5cm만 왼쪽을 향했다면 사망했을 수도 있었을 터.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손을 치켜 올리고 청중을 선동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마친 트럼프는 총격 사건 후 며칠도 지나지 않아 웃는 얼굴로 다시금 유세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세장은 다중에 밀집하는 공간. 또 다른 테러의 위험성이 상존하는 곳임에도.레이건과 트럼프는 평가가 엇갈리는 사람이다. 열성적 지지자 이상으로 둘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항상 크고 작은 위험 속에서 살았거나, 살아간다.어쨌건 트라우마(Trauma·정신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는 충격)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든 둘의 배짱 하나는 ‘삼국지’의 맹장 장비(張飛)를 넘어서는 것 같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05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 달은 역대 가장 무더운 7월로 기록됐다. 지난 달 전국의 열대야 평균 일수는 8.8일로 평년 2.8일의 3배나 된다. 1973년 기상 관측이래 7월 기준으로 최대 일수다.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일 최저기온이 25℃를 넘으면 열대야라 부른다. 열대야보다 기온이 더 올라가 밤사이 최저기온이 30℃를 넘게 되면 초열대야라고 한다.여름이 되면 열대야는 흔히 겪는 일이지만 초열대야는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8월 강릉에서 밤사이 최저기온이 30.9℃를 기록해 기상관측 사상 처음으로 초열대야 현상이 발생했다.이후 2018년 8월 서울서도 초열대야 현상이 발생했으나 초특급 더위로 일컬어지는 초열대야가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것은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다.올해 강릉에서는 초열대야가 5일째 이어져 밤잠을 못 이룬 주민들이 한밤중 바닷가 등을 찾아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강릉에서 이처럼 지독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바람이 산을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기온이 오르는 푄현상 때문이라고 풀이를 하는데, 전문가들은 초열대야가 앞으로 강릉만의 일은 아닐 것이라는 경고를 한다.“올여름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무더운 해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예측이다. 지난 주는 울산에서 열리기로 했던 프로야구 경기가 폭염으로 중단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초열대야 현상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낮에는 숨이 콱콱 막히듯 덥고 밤에는 한낮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아 잠 못 이루는 사람이 늘고 있다. 무더위도 태풍과 다를 바 없는 재난이다. 날로 지독해지는 무더위에 대응할 지혜가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04
우정구 논설위원 산과 내를 잘 관리하고 돌봐서 가뭄이나 홍수 등의 재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을 치산치수라는 말로 표현한다.오로지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햇빛, 기온 등 기후에 의존해 농사를 짓던 옛날에는 치산치수를 잘하는 왕이 바로 성군 대접을 받았다.고대 중국에서는 황제의 가장 큰 덕목의 하나가 치산치수 능력이다. 황하강처럼 큰강이 많은 중국은 홍수로 범람이 잦아 완벽한 치수가 곧 민심을 얻는 일이었다.고대 중국에서 치산치수를 잘한 임금으로 소문난 왕은 우(禹)임금이다. 우임금은 순(舜)임금 밑에서 치수를 잘해 순임금으로부터 임금의 자리를 물러 받았다. 우임금은 13년동안 치수를 하면서 한번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천수답 위주로 농사를 짓던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왕이 기우제를 올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똑같다. 가뭄이 계속되고 농작물이 말라 죽어가고 굶어죽는 사람까지 생겨나니 기우제를 지내지 않을 왕이 없다.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데 이를 인디언식 기우제라고 한다.우리나라 산지와 하천은 가파르고 짧아 상류지역에서 물이나 토석의 유출이 하류지역의 물 이용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특히 국토의 63%가 산지여서 적극적인 산지 관리가 필요한 지형이다.환경부가 전국에 14개의 기후대응댐을 조성하기로 했다. 지구촌의 이상기후로 발생하는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자는 것이 조성 취지다. 치산치수 측면에서 바람직하나 자연환경 파손을 최소화하는 것이 숙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01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88년 전 오늘인 1936년 8월 1일. 베를린 올림픽이 열린다. 그때 독일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 맹위를 떨치던 시기.나치 당수 아돌프 히틀러는 “향후 모든 올림픽은 오로지 독일 제3제국에서만 열리게 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히틀러와 제3제국은 9년 후 세계 역사에서 사라진다. 오만 욕을 다 들으며.어쨌건, 그 올림픽에 마라톤 선수 손기정이 참가한다. 일본이 한국을 병탄해 강점하던 시기였기에 우리식 이름이 아닌 ‘손 기테이(そん きてい)’라는 성명을 사용해야 했다. 한국이 아닌 일본의 국가대표.그는 2시간 29분 19초라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지만, 그건 자신의 나라가 아닌 일본의 영광으로 기록됐다. 시상대에 오른 손기정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 식민지였던 한국에선 손기정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웠다는 이유로 특정 신문과 그 신문 관계자들이 혹독한 수난을 겪었다. 나라 뺏긴 설움은 스포츠에서도 다를 게 없었다.그로부터 흐른 긴 세월. 일본 군국주의의 그림자는 이제 이 땅에서 싹 걷혔다. 일본을 카피하는 수준에 그쳤던 한국의 대중문화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거듭해 ‘한류’라는 이름으로 일본은 물론 서양 젊은이들까지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누구도 가소롭게 볼 수 없는 나라가 됐다. 스포츠 분야도 마찬가지.손기정으로부터 88년. 열여섯 한국 고등학생이 선명한 태극 마크를 달고 ‘10m 거리에서 가장 정확하게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는 지구 위 최고 여성 총잡이’ 지위에 올랐다. 대구체고 2학년 반효진. 손기정 할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장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었을 게 분명하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31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 올림픽은 인간승리의 축제장이라 할만하다.파리 올림픽의 첫 번째 인간승리의 주인공은 캐나다 출신의 팝스타 셀린 디옹이다. 온몸이 뻣뻣해지고 발작을 일으키는 희귀병을 앓던 그녀가 에펠탑 특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 파리 시민은 환호했고 세계는 감동했다.외신들은 파리 올림픽 개회식의 “압도적 최고 무대”라고 극찬했다. 기록을 깨고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투혼처럼 난치병을 딛고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준 그녀의 모습에서 인간승리를 볼 수 있었다.‘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들’은 아테네 올림픽 핸드볼 여자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국 영화. 전국에서 여자핸드볼 선수라고 해봐야 고작 100명 남짓한 숫자에서 뽑은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기적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인간승리가 딴 세상에 있는 일이 아님을 보여준 사례다.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무명의 컬링 여자선수들이 시종일관 파이팅 넘치는 경기로 은메달을 딴 것도 기억에 남는 감동이다.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남자 펜싱 오상욱 선수는 칠전팔기 끝에 일어났다. 개인적으로는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했으니 인간승리의 멋진 투혼이라 할만하다.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단 한 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고 10연패 위업을 달성한 우리나라 양궁 여자단체팀의 승리는 국가 명예만큼 값지다. 16살의 반효진양이 사격에서 뜻밖의 금메달을 따내는 등 한국 선수들의 낭보가 더위에 지친 국민을 위로한다. 인간승리를 바라보는 재미가 또한 쏠쏠하지 않은가./우정구(논설위원)
2024-07-30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한국인의 과도한 ‘명품 사랑’이 유럽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린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프랑스나 이탈리아 명품 판매점 앞엔 한국인 구매자를 대신해 줄을 서주는 아르바이트까지 있다고 한다. 한국 백화점 역시 새로운 명품의 출시가 예고되면 전날 밤부터 백화점 앞이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갈수록 심각해지는 ‘명품 사랑의 바람’이 아이들에게까지 불어 닥친 모양이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를 짤막하게 인용해보자.‘경기도 동탄에 거주하는 김OO씨는 4살 딸을 위해 티파니에서 78만원대 은목걸이를 구입했다. 18개월 된 딸을 위해선 38만원대 골든구스 구두를 샀다. 몽클레어 패딩과 셔츠, 버버리 드레스와 바지, 펜디 가운과 신발 등 다른 명품도 다수 구매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결혼식, 생일 파티, 콘서트에 갈 때 초라해 보이지 않길 바란다며…’비단 영국 신문이 만난 동탄의 김씨만은 아닐 것이다. 몇 해 전엔 100만원이 훌쩍 넘는 패딩을 중학교 한 학급의 절반 이상이 입고 다닌다는 기사와 그로 인한 신조어 ‘등골 브레이커(부모의 경제력을 넘어서는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까지 등장한 게 한국이니.중학생 딸을 둔 후배와의 술자리. “친구들은 다 입고 다니는데, 왜 나는 안 사주냐고 우는데…. 부모 노릇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후배의 우울한 얼굴을 마주 보기가 딱했다. ‘몽클레어 패딩’과 ‘부모 노릇’이 그런 방식으로 연결될 줄은 몰랐다.‘차려입은 옷과 손목에 찬 시계, 타고 다니는 자동차로 인간을 판단해선 안 된다. 사람에게 중요한 건 도야된 인품과 고상한 내면’이란 말이 헛소리가 돼버린 2024년 오늘이 서글프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