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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마철 낙뢰

우정구 논설위원 낙뢰(落雷)를 우리말로 하면 번개다. 번개는 대기와 지표면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꽃 방전현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번개란 보통 적란운과 함께 나타나는데, 대기 불안정이 주 원인이다. 적란운은 강력한 상승 기류에 옮겨진 수증기에 의해 수직으로 높게 형성된 구름이다. 소나기, 우박, 번개, 토네이도와 같은 강력한 악천후를 동반하는 대표적인 구름이다.기상청은 벼락에 관한 기록을 담은 낙뢰 연보를 매년 발행하고 있다. 재해 경감을 목적으로 기록하는 낙뢰 연보에는 한 해 동안 발생한 낙뢰 현황과 지역별 발생 횟수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연보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7만3341회의 낙뢰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돼 있다.계절별로는 여름철인 6∼8월 사이에 75%가 발생했다. 가장 많은 달은 7월로 전체의 35%다. 또 지역별로는 전국 광역시 가운데 경북이 1만2982회로 가장 많았다.사람이 벼락을 맞을 확률은 2만5000분의 1정도로 매우 낮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청천벽력은 확률적으로 매우 낮다는 뜻을 지닌 속담이다. 그렇다고 낙뢰를 방심해서도 안 된다.지난해 6월 강원도 양양해수욕장에서는 낙뢰가 떨어져 6명이 다치는 희귀한 사고가 발생했다. 그 중 1명은 다음날 숨지는 불행한 일까지 벌어졌으니 드문 일로 방기해선 안 된다. 바닷물에는 전류가 흐를 가능성이 높아 벼락이 칠 때는 물놀이를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지구촌의 기상이변으로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잦고 이로 인해 낙뢰 발생도 많아지는 추세다. 본격적인 장마철이다. 낙뢰에 의한 감전사고 예방에도 모두가 신경을 써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07

대구간송미술관

우정구 논설위원 간송(澗松)은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1906∼1962)의 아호다. 일제 강점기 시절, 전형필은 조상 대대로 한양의 종로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우리나라 최고 부잣집 아들이었다.당시 전형필 집안의 재산은 논 4만 마지기 정도됐다는데, 지금으로 계산하면 약 800만평 규모 논이다. 여기서 나오는 순수익만 연간 15만원 정도. 당시 서울의 큰 기와집 1채 가격이 10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의 재산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그는 기와집 한 채가 1000원하던 시절 5000원으로 그림 한 장을 사고, 2만원으로 도자기 한병을 샀다. 모두가 집안 살림을 축내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으나 오로지 문화보국 정신 하나로 고물품들을 사 모았다. 1938년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이자 지금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을 설립한다.간송미술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신윤복의 미인도 등 국보 12점과 보물 32점이 보관돼 있다. 비록 사립미술관이지만 소장 중인 유물의 내용과 가치는 어느 박물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잠재적으로 지정 가치를 지닌 일반 문화유산도 많은 것으로 전해져 있다.대구간송미술관이 9월 개장한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지역 최초 분관이라는 점에서 시민의 관심이 크다. 9월 초 개관기념 전시회를 시작으로 앞으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문화유산 등이 상설 전시될 예정인데 대구시의 새로운 명소로도 부상할 전망이다.특히 대구시민에게는 간송 재단 보유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는 문화혜택의 기회가 생긴다는 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04

미국 대선 ‘노인들의 전쟁’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미국의 60번째 대통령 선거가 곧 열린다.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막강한 군사 시스템을 갖춘 부정할 수 없는 지구 위 최강대국의 새로운 수반이 결정되기까지 4개월 남았다.이번 미국 대선에 후보로 나선 사람은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 그런데, “이들의 나이가 대통령 업무 수행에 지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바이든의 나이는 여든둘, 트럼프는 일흔여덟. 미국에서건 한국에서건 적은 나이는 분명 아니다. 그래서일까? 이들을 조롱하는 일부 옐로우 저널은 미국 대선을 ‘노인들의 전쟁’이라 비꼬기도 했다.그렇다면 세칭 ‘주요 선진국’으로 불리는 다른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들은 몇 살일까?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쉰셋,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마흔일곱이다. 둘 모두 조 바이든의 쉰네 살 차남 헌터 바이든보다 젊다. 트럼프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1977년생으로 마크롱과 동갑.바이든이건 트럼프건 대통령이 돼 정상회담에 나선다면 아들뻘과 일정을 함께하게 될 터다.세계엔 젊은 대통령과 총리가 적지 않다. 몇 가지 스캔들로 인해 명예롭게 물러나진 않았지만 전임 핀란드 총리인 산나 미렐라 마린은 겨우 서른넷에 국가 원수 역할을 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바이든이나 트럼프의 손녀뻘.노령이라고 모두 무기력하고, 청년이라고 전부 에너지 넘치는 건 아니다. 시인 고은은 “뒷방에 눌러 앉아 제 할 일을 찾지 못한다면 스무 살도 노인과 다를 바 없다”고 일갈한 바 있다.단풍 물들 가을. 미국인들이 ‘에너지 가득한 청년 같은 노인’을 선택할 수 있을지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이 부지기수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03

공룡의 도시 대구

우정구 논설위원 1억만년 전 대구에 공룡이 살았다면 상상이 될까.대구에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1994년 한 시민이 신천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을 발견해 신고한 것을 비롯, 수성구 욱수골, 남구 고산골, 동구 지묘동, 북구 노곡동 등 여러 곳에서 공룡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다.최근에는 동구 혁신도시 인근의 초계산 일대에서도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돼 시민의 관심을 모았다. 1억만년 전 백악기 시대 초식공룡의 흔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공룡은 지금으로부터 2억5000만년 전인 중생대 후기 들어 처음 등장하여 6600만년 전에 조류를 제외한 계통 전체가 멸종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육상을 걷는 동물 중 가장 거대한 동물로 공룡보다 거대한 동물은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트리케라톱스는 육상에서 제일 큰 포유류인 아프리카 코끼리보다 훨씬 거대하고 무거웠다.보통 500㎏에서 5t에 이르나 큰 것은 크기가 40m에 달한다.우리나라에서는 1973년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 부근에서 공룡의 뼈 화석이 발견되면서 공룡화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이후 경남 하동, 고성 등에서도 발견되고 함안, 통영, 울산 등지서도 수천개의 공룡화석이 발견됐다.대구처럼 대도시 도심에서 공룡화석이 발견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라 한다.공룡의 흔적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와 희소성, 접근성 등을 감안하면 잘 보존하는 것이 좋겠다.1억만년 전 대구는 거대한 호수였다. 그 옆을 거대한 공룡이 떼지어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대구가 새롭게 보일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02

축구가 맞아가면서까지 할 일인가?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영국에서 활동 중인 유명 축구선수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씨가 운영하는 ‘SON 축구아카데미’ 지도자들이 어린 선수에게 체벌을 가하고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놀라고 있다.비단 축구만이 아니다. 야구와 육상, 배구와 유도 등 종목 가릴 것 없이 한국에서 운동을 배우는 학생들이 지도자와 선배의 체벌·욕설에 고통 받고 있다는 소식은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낡은 레퍼토리다.욕을 먹고 두드려 맞는다고 열등한 선수의 실력이 갑자기 좋아질 수 있을까? 이 질문 자체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폭력은 인간을 짧은 시간에 굴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30년 전 오늘인 1994년 7월 2일엔 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콜롬비아 축구대표팀 수비수였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총에 맞아 숨졌다. 살해당한 이유가 황당무계하다.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어 콜롬비아팀의 16강 진출을 좌절시켰다는 것.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겨우 축구에 졌다고 사람을 죽이다니. 사망 당시 에스코바르의 나이는 27세. 앞길이 창창한 청년이었다.물리적인 힘으로 상대를 핍박하고 제압해 이룬 성과가 영원히 자랑스러울 수 있을까? 그게 축구건 다른 무엇이건. 목표를 위해 강압과 고통을 견디며 1등이 된 선수가 운동 자체를 좋아하며 즐겼기에 꼴찌가 된 선수보다 행복할까?2018년 월드컵. 사우디아라비아는 러시아에게 5-0으로 패했다. 사우디 골키퍼가 말했다. “우리가 졌다. 그렇다고 나라가 망한 건 아니다” 축구? 맞아가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잖은가./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01

코로나19 유행 조짐?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 CNN방송은 지난 28일 여름철을 맞아 미국에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늘어날 조짐을 보인다는 보도를 했다.이 방송은 미국내 최소 38개 주에서 최근 코로나19 감염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종료된 이후 더 이상 감염 사례를 집계하지 않고 있으나 병원 응급실 기록에서 감염 증가세가 포착된다는 설명이다.“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우리 속담처럼 미국의 코로나19 감염이 는다는 외신에 괜스레 걱정이 가슴을 억누른다. 자라는 몸 길이 30㎝로 거북과 비슷하게 생긴 동물. 육식성으로 이빨이 날카롭고 강해 사람의 손가락을 물면 절대로 놓지 않으며 잘라 버릴 수도 있다. 자라 등처럼 생긴 솥뚜껑을 보고 놀란 가슴이 된다는 말은 어떤 것에 한번 혼이 나면 비슷한 것만 봐도 지레 겁을 먹는다는 뜻이다.코로나19는 2019년 중국의 우한시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번진 바이러스성 유행병이다. 발견된 지 두달만에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적 보건비상사태를 선포했고, 3월에는 팬데믹(범유행 전염병)으로 선포하기에 이른다.코로나19 사태는 공식적으로 종식이 선언되기 전까지 전세계 인구의 10%가 넘는 7억9000만명이 감염됐다.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는 부지기수다. 21세기 이후 전 지구촌을 집어 삼킨 최악의 전염병이라 할 수 있다.미국에서 벌어지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환자 증가세가 국제사회가 걱정할 정도의 위험한 수준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가볍게 보아서도 안 될 일이다. 코로나19가 남긴 상처의 트라우마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30

식인상어의 동해안 출현

우정구 논설위원 영화 ‘죠스’로 잘 알려진 식인상어가 동해안에 자주 출몰할 것이란 예측이 나와 눈길이 간다.여름철 해수욕장 개장을 앞둔 가운데 국립수산과학원이 밝힌 동해안 상어 출현 소식은 다소 충격적이다. 공격성이 강한 상어의 출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으나 해수욕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찝찝한 소식이다.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한반도 주변 바다 수면온도가 상승하면서 상어의 주 먹이인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 방어 등이 동해로 유입되고 이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상어들도 동해로 찾아들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작년 6월 28일 경북 울진군 망양정해수욕장 인근 해상에서 2m 크기의 청상아리가 자망그물에 산채로 잡혀 화제가 됐다. 지난해 동해안에서는 발견되거나 잡힌 상어가 모두 25건에 이른다. 직전 해인 2022년 1건과 비교하면 폭증한 수준이다.상어 중 백상아리는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다. 세계에서 가장 큰 포식성 물고기로 보통 크기가 4.6∼5m에 이른다. 몸무게도 900∼1300kg이다. 암컷 중 가장 큰 상아리는 6.1m에 몸무게가 2t이나 나가는 것도 있다고 한다.국내서는 그동안 많지는 않았지만 상어로 인한 인명피해는 주로 서해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동해에서의 상어 출현이 예고되면서 인명피해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개인이 해수욕을 하다 상어를 만나면 상어를 자극하지 않고 침착하게 조용히 밖으로 나오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동해안 상어 출현에 대비한 관계당국의 대응책도 있어야겠지만 개인도 상어 공격에 대응할 예방책 정도는 익혀두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27

위기에 빠진 해병정신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국민에겐 봉사하는 양이 되고, 적과 맞설 때는 사나운 사자가 돼라.” 해병대 초대 사령관 신현준의 말이다. 이게 바로 세칭 ‘해병정신’의 골자.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서 해병대가 보여준 용맹과 견인불발(堅忍不拔)은 여타 군(軍)을 압도했다. 오죽하면 미군 정보장교가 “한국 해병대는 귀신도 잡아낼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을까.전투에서 보여준 ‘사나운 사자’와 같은 해병정신은 창설 직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발군(拔群)이었다. 이에 이견을 낼 이들은 많지 않다.지난해 물난리로 수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을 때 갓 스물을 넘긴 어린 해병 한 명이 75년 전 자신이 몸담은 부대를 만든 최고 지휘관의 슬로건 중 또 다른 하나를 실천하다 숨졌다.2023년 7월 19일. 수해가 난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찾던 해병1사단 소속 채수근 일병이 급작스레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고통 받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양’이 되고자 했던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전쟁 때는 사나운 사자로, 수난을 겪는 국민을 위해선 봉사하는 양으로 위국헌신을 몸과 마음에 새겼던 해병대원들. ‘해병정신’을 실천하다 숨진 이들 모두는 귀하디귀한 우리 아들들이다. 전투 중에 산화했건, 대민봉사 현장에서 생명을 잃었건.그런데 이상하다. 군대는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 그럼에도 숨진 채수근 해병을 ‘국민에게 봉사하는 양이 되라’고 명령한 사람이 불분명하다.임성근 해병1사단장은 “지휘가 아닌 지도를 했다”하고, 그 아래 여단장은 “임 사단장이 지시했다”고 말한다. 유치한 말장난 같다. 묻고 싶다. 어린 해병의 죽음 앞에 고위급 장교가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해병정신 중 하나인가?/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26

기억해야 할 다부동 전투

우정구 논설위원 다부동 전투는 1950년 8월 3일부터 29일까지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국군과 북한군과 사이에 벌어진 전투다.6·25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로 손꼽히며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격렬하게 싸웠던 베르됭 전투와 비교된다 하여 동양의 베르됭 전투라고도 부른다.6월 25일 전쟁을 일으킨 북한군은 무기와 훈련이 부족했던 국군을 연이어 물리치고 전쟁 발발 사흘만인 28일 서울을 함락한다. 7월 20일 대전을, 7월말 목포와 진주를, 8월초 김천과 포항까지 함락시킨다. 북한군은 그 기세를 몰아 8월 15일까지 부산 점령을 목표로 낙동강 방어선에 가용 병력의 절반을 배치했다.그러나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국군 1사단 병력과 미군 2개 여단의 강력한 저항으로 북한군 일방의 전투가 낙동강 전선에서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밤사이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로 다부동 골짜기는 능선마다 고지마다 시체가 쌓이고 핏물이 마르지 않았다.다부동 전투에서 희생된 우리쪽 병사만 1만명이 넘는다.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 학도병과 군복도 없이 포탄과 부상병을 지게로 날랐던 칠곡군 주민의 희생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이들의 희생으로 백척간두에 처했던 나라의 운명을 건질 수 있었으니 다부동 전투의 기억을 누가 잊을 수 잊겠는가.어제는 6·25전쟁 발발 74주년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상존한 가운데 국제정세마저도 날로 험악해지고 있는 분위기다. 우리 고장에서 벌어진 구국의 전투, 다부동 전투의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25

태국의 한국 여행 보이콧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피부색, 인종, 종교, 국적을 이유로 개인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건 명백한 범죄행위인 동시에 인간의 평등과 존엄에 대한 도전이다. 용서받기 어려운 일.한국을 여행했거나 여행하고자 하는 태국인들이 “전자여행허가(K-ETA)를 받았음에도 입국 거부 사례가 많다”며 한국 법무부가 태국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를 했다. 이런 분위기가 ‘한국 여행 보이콧’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태국여행사협회(TTAA)에서 흘러나온다.보이콧(Boycott)이란 특정 국가나 단체에 보복을 가하며 공동으로 배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론 소비자가 기업에 항의하는 불매운동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한국인들은 비자 없이 태국 여행을 즐기는데, 태국 사람들은 전자여행허가를 받고도 입국이 거부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니, 이는 불공정하며 양국의 우호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게 태국여행사협회의 주장일 터.실제로도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한국을 찾은 태국 여행객은 11만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1%가 줄어들었다. 동일한 시기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의 여행자가 대폭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을 찾은 태국인 중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SNS에 ‘한국 여행 금지’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수만 명이 그것에 동조하는 최근 상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한국 법무부가 곤혹스러움에 빠졌다. 불법 체류자를 꼼꼼하게 찾아내는 본연의 임무가 ‘한국 여행업계를 죽이고 있다’는 비난으로 돌아온 탓.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태국인 불법체류자는 16만 명에 육박한다. 적지 않은 숫자다. 딜레마에 빠진 법무부가 뾰족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24

항공모함 보유국의 꿈

우정구 논설위원 항공모함의 등장은 해군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된다. 항공기를 탑재하고 이착륙시키는 항공모함은 이동성과 확장성 면에서 과거 해군의 전투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하기 때문이다.세계 어느 곳이든 투입이 가능하고 항공기, 헬기 등 다양한 군사적 자원을 탑재할 수 있어 항모 보유 수만으로 그 나라 군사력은 높게 평가받는다. 떠다니는 군사기지라 부르는 이유다.세계는 8개국이 22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 절반인 11척은 미국 소유다. 2022년 중국이 세 번째 항공모함을 취역함으로써 세계에서 두 번째 많은 항공모함 보유국이 됐다. 중국은 2035년까지 6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할 계획이라 한다.항공모함의 건조 비용은 대략 7조원 정도 든다. 국가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항공모함 보유는 사실상 힘들다.1986년 만들어진 미국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가 22일 부산항에 입항했다. 이달 말 열릴 예정인 한국, 미국, 일본의 첫 다영역 군사훈련인 프리덤 에지에 참여할 목적이라 한다.10만t급 핵추진 잠수함인 루스벨트호는 축구장 3배 크기의 비행갑판을 갖추고 있다. 미 해군 전투기 FA-18 슈퍼호넷, 공중 조기경보기, 헬기 등 총 80여 대의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다. 승조원 수만 6000명에 달하니 웬만한 나라의 공군력과 맞먹는 규모다.최근 북한은 핵위협과 함께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북러간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다. 군사 합동훈련으로 한미일간의 결속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세계 6위의 한국군사력을 보강할 항공모함이 없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23

대구의 퐁네프

우정구 논설위원 1991년 제작된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은 파리의 센강을 가로지르는 퐁네프 다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두 남녀의 치열한 사랑 이야기가 주제다. 세계적 흥행을 이끌며 이듬해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우리나라서도 뜨거운 흥행을 기록하며 프랑스 영화의 붐을 일으킨다.파리의 남쪽에서 북쪽을 연결하는 퐁네프 다리가 세계적 유명 명소로 알려진 것은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덕분이다. 퐁(Pont)은 프랑스어로 다리고 네프(Neuf)는 새롭다는 뜻이다.1570년 프랑스 앙리 3세 때 다리를 짓기 시작해 1607년 앙리 4세 때 완성된 다리다.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이름과는 달리 프랑스 센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다리는 흰색 돌을 주로 사용해 만들었고 아치 형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다리 중간에는 말을 타고 있는 앙리 4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영화 속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이 세계인들의 뇌리에 박히면서 파리에서는 젊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최고의 데이터 코스로 등장했다. 또 다리 중간 중간에 설치된 둥근 석조 테라스에 앉아 바라보는 석양의 아름다움 때문에 이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로도 유명해졌다.대구시가 작년부터 신천을 고품격 수변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상당한 고심 속 투자를 하고 있다. 특히 홍준표 대구시장은 파리 센강의 퐁네프 다리처럼 젊은이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프러포즈 명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프러포즈 명소의 대략적인 디자인도 나왔다.대외적으로 내세울 게 크게 없는 대구에 퐁네프같은 명소가 생긴다면 대구시민의 자부심 고취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구의 명소 퐁네프 탄생을 기대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20

대통령과 술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유대인들의 지혜를 담은 책 ‘탈무드’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술을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땐 양같이 온순하지만,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납게 되고, 거기서 더 마시며 원숭이처럼 춤을 추고, 폭주하면 토하고 뒹구는 돼지가 된다.”술에 관한 비유 중 이처럼 적절한 걸 찾아보기 쉽지 않다. 선현들은 술을 마실 때도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오죽하면 주도(酒道)란 말까지 있을까. 과하면 도리를 벗어나게 만드는 게 술이다.한국인의 ‘술 사랑’은 유명하다. 필부필부부터 대통령까지 신분에 상관없이 많은 양이건 적은 양이건 술을 즐겨왔다. 김영삼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비교적 나이가 많아 집권했으니, 술을 크게 즐기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반면 40대에 대통령이 된 박정희와 전두환은 주량이 상당했다고 한다. 박정희의 경우 촌로들과 막걸리를 즐겨 마셨고, 동시에 청와대 인근 안가에선 위스키 시바스 리갈을 즐겼다.보스 기질 다분했던 전두환은 부하 장교들과 호방한 술판을 벌이는 게 여러 영화에서 묘사된 바 있다. 1980년대 청와대에서 가족 행사를 끝낸 전두환이 취한 모습으로 동생의 부축을 받는 영상도 남아있다.현직 윤석열 대통령 또한 애주가의 면모를 드러내는 경우가 흔했다. 막걸리병 뚜껑을 여는 방법을 알려주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보여졌고, 전통시장을 찾았을 땐 해산물을 가리키며 “이런 안주엔 소주 한잔이…”라며 웃기도 했다.다 좋다. 대통령이건 회사원이건 기호품으로서의 술을 즐기는 걸 누가 탓하랴. 다만 ‘유주무량 불급난’(唯酒無量 不及亂·마시는 양에 한정을 두지 않되 정신이 혼미해져서는 안 된다)이란 ‘논어’ 구절을 먼저 새겨야 할 터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19

경북 총각이 결혼하기 불리한 이유

우정구 논설위원 인구학에서 사람의 성비(性比)는 여성 100당 남성 수로 계산한다. 성비가 높다는 것은 남성의 수가 여성의 수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자연적인 출생 성비는 보통 105대 100 정도로 본다. 출생시만 보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더 많이 태어난다. 하지만 남자의 사망률이 높고 여자보다 평균 수명이 짧아 고령에 이르면 여초 현상이 생긴다.세계적으로 보아도 남성의 성비가 높다. 대륙별로는 아시아는 남성의 성비가 높으나 유럽과 중남미는 여성의 성비가 높은 편이다.남녀 성비 구성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사건으로는 전쟁을 들 수 있다. 전쟁에서 희생된 남성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성비의 불균형도 세대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100대 100으로 맞춰진다.동물의 암수 성비가 1:1에 근접하고 있는 것을 진화생물학에서는 피셔의 원리라 부른다. 성 생식을 통해 자손을 번식하는 인간의 성비도 자연의 법칙과 다르지 않다.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우리나라 남녀 성비에 관한 연구결과가 흥미롭다. 결혼 연령층에 든 미혼남자와 미혼여성의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전국적으로 미혼남자가 미혼여자보다 19.6%가 더 많다고 한다. 이는 남아선호 사상이 존재한 시대적 배경과 남녀 성별 구분이 가능한 의료기술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분석이 된다.더 큰 문제는 지역별 차이가 훨씬 크다는 사실이다. 서울은 미혼남녀의 성비 차이가 2.5%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북(34.95), 경남(33.2%), 충북(31.7%) 등 지방도시는 30%가 넘는다.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하나 둘이 아님이 또 한번 드러난 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18

배현진과 고민정의 ‘경거망동’ 설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역사학자 호암 문일평(188 8~1939)은 “그 사람이 궁금하거든 그가 먹는 음식을 보라”고 했다. 이 말은 사람의 음식 취향이 성격이나 인품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열쇳말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일 터.비단 음식뿐일까? 인간의 됨됨이와 품격을 은연중에 알아차릴 수 있게 해주는 것 중 또 다른 하나가 바로 그가 사용하는 ‘언어(말)’가 아닐지.세칭 ‘쌍시옷’을 입에 달고 사는 성직자를 상상하기 어렵고, 장자(莊子)를 인용하는 조직폭력배를 만나 보기 어려운 것처럼.전직 대통령 아내의 ‘인도 방문’을 두고 갖가지 구설이 떠돌고 있다. 그것과 연관된 논란 또한 이어지는 상황. 이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인 여당과 야당의 여성 국회의원 이름이 신문과 방송에 자주 오르내렸다. 국민의힘 배현진과 더불어민주당 고민정이다.문재인 전 대통령 아내의 인도 방문에 얽힌 의혹 제기 선봉에 선 배현진 의원을 향해 고민정 의원이 “제시한 자료 검증의 부실함을 인정하고, 더 이상의 경거망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고 의원은 인도 방문 동행자 중 한 명이다.배 의원이 발끈했다. “동료의원으로서 예우해줄 때 입을 곱게, 경거망동을 자제하길 바란다. (관련된)문서 이해가 잘 안 되면 밑줄이라도 치며 읽어라”고 치받은 것.두 사람이 공히 사용한 경거망동(輕擧妄動)이란 사자성어는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걸 의미한다. 아이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을 향해 ‘생각이 없다’니…. 보기에 따라선 대단히 모욕적인 언사다.의견이 다를 땐 논쟁할 수 있다. 그러나, 가시 돋친 맹목적 힐난과 배려가 담긴 점잖은 충고는 분명 다른 효과를 나타내지 않을까?/홍성식 (기획특집부장)

2024-06-17

기후 위기가 현실로

우정구 논설위원 기후 인플레이션이란 용어를 자주 접하는 시대다. 기후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이 용어는 기상 이변과 지속되는 지구온난화가 빚어낸 인플레이션을 의미한다. 즉 기상이변으로 농산물 가격 등이 폭등하면서 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의 인플레이션이다.먹거리 물가를 위협하는 기후 인플레이션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 과일로 불리는 사과와 수박 등의 수확량이 줄면서 신선식품의 물가지수가 소비자물가 인상을 크게 자극하고 있다.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는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탄소배출로 2050년쯤에 가서는 전세계 소득율이 19% 감소할 것이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소득감소 규모가 무려 38조달러에 이른다고 한다.지금 지구촌은 기상이변이 빚은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여름은 엄청난 무더위가 전 세계를 덮을 것이란 전망 속에 일부지역에서는 벌써부터 이른 폭염으로 일상이 혼란에 빠지고 있다.중국 북서부 신장지역은 지표면 온도가 70도로 치솟아 맨발로 걸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라 한다. 그리스, 튀르키예 등지에는 40도가 넘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스페인에서는 폭염으로 주요 관광지가 폐쇄되는 일도 벌어졌다.우리나라도 6월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봄 기온이 역대 두 번째로 높았고 바다는 10년 새 가장 뜨거웠다고 한다. 지난 10일 대구에서는 첫 불볕더위주의보가 내려졌는데 예년보다 일주일이 빨리 찾아온 것이다.화석연료 기반의 산업혁명은 전례 없는 산업발전을 이룩했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인류에게 기후위기라는 무서운 재앙을 가져다준 꼴이다. 올여름 닥칠 역대급 폭염 소식이 기후 위기를 절실히 느끼게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6-16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나라에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것은 1988년으로 올해로써 36년째를 맞는다.최저임금은 저소득 근로자의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하고 유지시켜 주기 위한 제도다. 정부가 노사간 임금 결정에 개입해 최저임금을 정하고 사용자가 그 이상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임금의 기준점이 된다.그러나 임금을 더 받으려 하는 근로자와 임금 부담을 줄이려는 사용자간의 합의가 쉽지 않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늘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36년동안 합의로 결정된 경우는 단 7차례뿐이다.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달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제 논의의 핵심 포인트 중 하나는 시급 1만원 돌파 여부다.그러나 시급 1만원 돌파는 현재 시급이 9860원으로 1만원 턱밑까지 와 있어 1.4%만 인상돼도 시급 1만원을 넘게 된다. 지금까지의 시급 인상폭을 감안하면 1만원 돌파는 무난할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최저임금 시급 1만원은 그동안 사업주에겐 심리적 저항선으로 인식돼 왔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1만원이 돌파된다면 심리적 충격이 클 것으로 짐작이 된다. 최근 지속되고 있는 불경기를 고려한다면 최저임금 결정 정도에 따라 사회적 파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최근 소상공인연합회는 소상공인의 98.5%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내리거나 동결을 바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 생산성에 비해 최저임금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설명도 덧붙였다.올 8월 법정기한까지 노사가 상생의 적정선을 찾을지 지켜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13

윌리엄 예이츠의 무서운 예언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반골과 다혈질로 유럽에서 유명한 아일랜드 사람들. 그런 성정과는 무관하게 그 나라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예술가가 많다.‘더블린 사람들’로 데뷔한 제임스 조이스, ‘부조리극의 황제’로 불리는 사무엘 베케트, ‘빅토리아 시대 최고 예술가’라는 왕관을 쓴 오스카 와일드, 비단 문학 분야만이 아니다. 대중가수인 U2의 보노와 시네이드 오코너는 수천만 장의 앨범을 판매한 스타 중 스타.언급된 유명인들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아일랜드 시인이 또 한 명 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 159년 전 오늘은 예이츠가 태어난 날이다.19세기 영국·아일랜드 문학사(文學史)의 기린아로 기록된 그는 유년기부터 신화와 기괴한 전설 등 초현실적 주제에 집착했다. 이런 성향은 예이츠의 문학 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탐미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변모한 그의 시는 1923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았고.“뛰어난 감각과 통찰력을 지닌 시인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까지 가졌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세간을 떠돌았다. 1920년. 예이츠는 마치 예언 같은 시를 쓴다.‘모든 것이 파괴되고 중심은 무너졌다/혼돈만이 지상에 만연하다/세상엔 핏빛 물결이 번지고…’예이츠는 이미 104년 전에 오늘의 지구를 바라본 듯하다.끝날 기미가 없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하루에도 수십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이상 기후로 인한 폭염과 폭우 피해, 오직 돈만을 좇으며 청맹과니처럼 돌진하는 무뢰한들….‘모든 것이 파괴되고 중심이 무너진 2024년 지구’를 경계했던 예이츠의 예언이 틀렸기를 바랄 뿐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12

염치없는 세상

우정구 논설위원 염치(廉恥)란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사람으로서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마음의 자세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상대에게 정중히 부탁을 할 때 염치불고(廉恥不顧)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염치를 돌아보지 않고 부탁을 드린다는 뜻이다.염치가 없는 상태를 몰염치(沒廉恥) 또는 파렴치(破廉恥)라 부른다. 후안무치(厚顔無恥)는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염치 있는 척하다’의 축약된 말은 얌체다.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인 관중(管仲)은 나라를 버티게 하는 네 가지 덕목으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들었다. 그는 예의염치 중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고, 셋이 없으면 뒤집어 진다고 했다. 또 모두가 없으면 나라는 파멸하게 된다고 말했다.춘추전국시대 순자는 염치없는 자는 엄히 다스려야 하며 “염치 모르는 사람은 음식만 축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대부터 염치는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기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우리는 흔히 부끄러워서 대할 낯이 없을 때 ‘얼굴과 눈이 없다’는 뜻의 “면목 없다”는 말을 쓴다. 염치와 같이 사람이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됐을 때는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기본이라는 뜻이다.우리 정치에서 염치가 사라지고 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인데 정작 국민에 대한 염치는 없고 정치인 스스로를 위한 목소리만 요란하다.우리 사회가 염치없는 세상으로 바뀌어가는 게 하나 둘이 아니다. 정치의 영향이 크다. 의사들의 집단 휴진 선언 또한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염치없는 행태의 다름 아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6-11

밀양 여중생 성폭행… ‘죄와 벌’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았지만, 사건 당시의 놀라움과 대중의 분노는 크고 높았다.2004년. 밀양 지역 남자 고교생들이 여중생 한 명을 성폭행했다. 후안무치한 범죄에 가담한 학생들이 자그마치 44명이라는 사실은 더 큰 충격이었다.18세였던 성폭행 가해자들은 밀양의 여러 고교에 재학 중이었다. 범죄의 잔인성 탓에 밀양이라는 도시 자체가 여론의 돌팔매를 맞았다.14세에 불과한 어린 여학생을 유인해 돌아가며 성폭력을 저지른 건 물론, 때리고 협박했으며, 돈까지 뺏은 고교생들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은 당연지사 엄한 벌로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죄를 저지른 고교생 중 10명만이 기소됐고, 20명은 소년부 송치로 마무리됐다. 13명은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결론이 났다. 수사 결과를 접한 이들은 “참을 수 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분노했다.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사건은 잊혀져갔다. 가해자들은 18세 고교생에서 38세 성인이 됐다.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았다. 그들이 최근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한 유튜버가 “밀양 성폭행 가해자 44명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이미 몇 명의 신상이 알려졌고, 얼굴과 직업이 공개된 가해자가 다니던 인기 좋은 식당은 문을 닫았고, 직장도 이들의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공적 처벌이 아닌 사적인 단죄 방식은 옳지 않다’는 견해가 있으나, ‘그때 제대로 받지 않은 벌을 지금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라스콜리니코프가 주인공인 소설 ‘죄와 벌’그리고, “하늘에 죄를 지으면 숨을 곳이 없다”는 공자의 말이 떠오르는 오늘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