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구 논설위원 지난해 복권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가 복권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응답자의 74%가 “복권이 있어서 좋다”는 대답을 했다. 당첨 여부를 떠나 복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대체로 긍정적이다.복권 구매 이유로는 기대와 희망, 행복과 기쁨 등이 가장 많았다. 복권 당첨자가 발표될 때까지 인생역전을 노리는 희망과 기대감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가 된다.지난해 우리나라 복권 판매액은 6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중 로또복권이 83%로 5조6000억원을 차지했다. 로또복권의 경우는 10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경기 불황과 복권 판매는 비례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빠듯해진 살림살이를 복권 한방으로 해결해 보자는 대중의 심리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속되고 있는 국내 경기 불황에도 복권 판매가 역대 최대치를 갱신한 것만으로 불경기가 복권 판매를 부추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복권 구매자의 연령층에서 20대보다 60대가 2배가량 많다. 저소득 서민층일수록 복권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반증이다.한국의 로또복권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다. 3억분의 1인 미국의 로또 파워볼과 메가밀리언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행운이 없이는 당첨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2022년 11월 미국 파워볼에서 나온 당첨금은 20억4000만 달러(약 2조8000억원)다. 길을 가다가 번개를 맞고 살아날 확률이라는 소리가 그럴 듯하다.북권 당첨 금액을 올리자는 일부 여론에 정부는 검토한 적이 없다고 했다. 팍팍한 삶 속에서 소소한 위로를 받고자 하는 복권을 무턱대고 당첨금을 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30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조선의 농부들은 24개의 절기(節氣)로 계절을 구분하며 살았다. 국가 경제의 중심이자 핵심축이던 농사 준비도 그에 따랐다.풍부하고 넉넉한 햇살 아래 세상 만물이 무럭무럭 자란다는 소만(小滿·음력 4월)은 이미 지났고, 벼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당한 시기라는 의미를 가진 망종(芒種·음력 5월)이 바로 눈앞으로 닥쳤다.동서양 불문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지구 위에 없다. 지난 수천 년간이 그랬고, 앞으로의 수천 년 또한 그럴 터.소만과 망종이 있는 양력 5월 말과 6월 초 사이는 갖가지 나물 맛있고 나들이하기 더없이 좋은 봄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황경 75도에 다다른 뜨거운 태양 아래 푸른 바다가 청춘들을 유혹하는 여름의 들머리다. 춥지도 않고 크게 덥지도 않기에 옛사람들은 이 시기를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곤 했다.헌데 세상사는 ‘여왕’이라 불러도 좋은 이 시절과는 무관한 모양이다. 2024년 망종 직전의 이 나라 정치·경제·사회적 풍경은 여왕이 아닌 ‘여비(女婢)’라 불러야 할 지경이다.온갖 특검법을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로 정치권이 악머구리처럼 시끄럽고, 월급쟁이와 소상공인 모두가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서로를 철천지원수인양 헐뜯는 세태도 지난 정권과 크게 다를 바 없고.망종 다음의 절기는 하지(夏至)다. 지구의 가장 북쪽에서 내려쬐는 햇볕이 세상을 환하고 뜨겁게 밝히는 시절이 목전인 것. 한국의 모든 갈등과 반목이 그 햇볕에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녹아 화해와 화합으로 양질전화(量質轉化)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29
우정구 논설위원 5월 31일은 세계 금연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가 1987년 흡연의 해로움과 흡연으로 인한 사망 및 질병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는 담배가 으뜸으로 꼽힌다. 담배에는 4000여 가지의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그 중 70가지 이상은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로 형성돼 있다고 한다. 담배로 매년 800만명 이상의 사람이 죽는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나쁘고 담배 연기만 맡아도 고혈압, 당뇨병 같은 질병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담배는 처음 고대 마야인들이 종교의식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유럽 등지로 전파된 것은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부터다. 당시 원주민들 사이 사용되던 담배는 유럽을 통해 전세계로 빠르게 전파됐다.우리나라는 임진왜란 이후 왜군들에 의해 넘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남령초(南靈草)란 이름으로 불렸다. 남쪽 국가에서 온 신령스런 풀이라는 뜻이다. 이후 남초에서 연초로 바뀌었다고 한다.재미있는 것은 양반은 담배대가 긴 장죽을 물고, 돈 없는 양민과 노비는 담배대가 짧은 곰방대를 물어 담배대를 쥔 모습만 보아도 신분을 구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것이 벌써 500년 가깝다. 돌이켜보면 영문도 모르고 기호품으로 즐겼던 시절부터 멋과 낭만으로 담배를 피우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담배가 인류 건강의 적으로 통하는 시대가 됐다.작심삼일에 그치지 말고 이번 금연의 날에는 담배를 끊어보는 것도 해봄직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28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 사이에/피눈물을 흘리는/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우리들의 아들은/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후략)’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시민군이 계엄군에 의해 진압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비극적으로 끝났다. 그날 광주 전체엔 숨죽인 울음이 가득했다.당시 32세의 전남고등학교 교사 김준태 시인 역시 평생 안고 갈 트라우마가 생겼다. 동료의 아내가 만삭인 상태에서 계엄군에 의해 죽었고, 며칠 전엔 도청 앞에서 10여 명의 사람이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쓰러지는 걸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김 시인은 팔척장신에 형형한 눈빛이 범을 닮은 강골이다. 하지만, 인간 보편이 느끼는 공포가 그라고 왜 없었을까? 1980년 한국을 지배하던 신군부 앞에서 ‘5월 광주’에 관해 잘못 말했다간 체포와 투옥, 고문을 각오해야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나, 김준태는 ‘양심을 가진 지식인으로서의 시인’이 되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광주 거리 곳곳에 피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신문에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109행의 시가 실릴 수 있었다.모든 것을 걸고 하는 인간의 행위는 숭엄하다. 앞서 언급된 시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 걸고 쓴 것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을 보태랴. 이젠 일흔여섯의 할아버지가 된 김준태 시인이 편찮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목숨 걸고’ 시를 쓸 수 있는 몹시 드문 시인인 그가 5월 광주정신과 함께 앞으로도 오래 건재하길 빈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27
우정구 논설위원 판다는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동물이다. 멸종 위기에 놓여있는 만큼 국가서도 국보급 대접을 한다. 최근 청두시를 방문한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고급 빌라에서 먹고 자는 판다의 모습을 보고 “사람 팔자보다 더 낫다”고 한 말은 판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예우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중국은 과거부터 다른 나라와 우호관계를 표시할 때 판다를 선물로 했다.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를 이용한다고 해 판다외교라 부른다. 당 태종 때는 판다 2마리를 일본에 기증했다는 설도 있다.2000년 전 한 문제 무덤에서는 순장한 것으로 보이는 대왕판다의 뼈가 출토돼 고대부터 중국은 판다를 특별한 동물로 여겨왔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중국 쓰촨성과 산시성, 허난성에 걸쳐 있는 진령산맥은 판다의 주 서식처다. 고대에는 중국 남부지역과 베트남 등지에도 자생했으나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로 지금은 개체가 크게 줄었다.판다의 수명은 야생에서는 약 14∼20년 정도이나 동물원에서는 30년 정도 산다고 한다. 지능은 약 60∼70 정도로 다른 동물에 비해 우수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람을 부릴 줄 안다.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으면 구르거나 나무들을 파헤치는 등 떼를 부린다.다만 사육비가 한해 수십억원이 들고 중국 정부가 허용해야 데려올 수 있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문제다.판다가 대구에 올 수 있을지 많은 시민이 궁금해한다. 청두시를 다녀온 홍 시장이 “중국 정부와 협의해 대구에 판다를 데려오도록 하겠다”고 말한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달 말 홍 시장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대구청사에서 만난다. 판다 관련해 어떤 얘기가 오갈지 관심이 쏠린다. 과연 판다는 대구와 연을 맺을까?/우정구(논설위원)
2024-05-26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는 오래전부터 분지형 도시로 소문나 있는 곳이다. 분지란 산지로 둘러싸인 평평한 지형을 두고 하는 말인데 대구는 분지형 도시의 대표적 도시로 손꼽힌다.그러면서 분지형 도시에 덧붙여 대구를 폐쇄성이 강한 도시라고 얘기하는 이가 많다. 분지형 지형과 도시 폐쇄성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들을 수 없다.지리학자들은 70%가 산지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도시가 형성된 상당수 지역이 분지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대표적 도시로 서울을 꼽는다. 도시의 폐쇄성과 분지라는 지형과는 이론적으로 상관관계가 없다는 뜻이다.그런데도 여전히 대구를 정치성향 등과 비교해 폐쇄성이 강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도시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좀 더 개방적 도시로 바뀌어야 대구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대구시가 내년부터 신규 공무원 임용시험 시 적용하던 거주 조건을 폐지했다. 지금까지 대구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려면 응시자가 시험일 현재 대구시에 거주하거나 과거에 3년 이상 대구에 거주해야 하는 조건이 붙었다. 전국 광역시도가 공통으로 적용하던 거주 조건인데 대구시가 가장 먼저 이를 폐지한 것이다.이에 대해 대구시는 지역의 폐쇄성 극복과 공직사회의 개방성 강화를 위한 조치라 설명했다. 이번 조치로 전국 각지에서 인재가 유입되고 공직사회의 다양성과 경쟁력이 확보되는 계기가 될 거라고도 했다.홍준표 대구시장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대구굴기(大邱5D1B起)다. “대구가 다시 힘차게 우뚝 일어난다”는 뜻이다. 전국 3대 도시 명성을 되찾는 굴기에는 개방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조치는 그런 점에서 잘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23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키스(Kiss)란 상대의 신체 일부에 입을 맞춤으로써 사랑, 존경, 우애를 표현하는 행위다.가톨릭 최고 성직자 교황은 자신이 거주하는 바티칸 시국을 떠나 외국을 방문할 때면 비행기에서 내려 땅에 입을 맞추기도 한다. 이는 방문국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성스러운 입맞춤으로 이해된다.유명한 키스는 또 있다. 2차대전이 끝난 1945년 여름. 미국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남성 해군과 여성 간호사가 키스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은 전쟁의 공포에서 해방된 인간의 희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20세기 사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일 터.비단 교황의 키스와 종전(終戰)의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키스만이 아름다운 건 아니다. 엄마와 아기의 뽀뽀, 막 연애를 시작한 젊은 커플의 정열적 키스, 존경의 뜻을 담아 스승의 손등에 하는 입맞춤 모두 나름의 숭고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게 분명하다.5월 23일은 일본의 키스 데이다. 유래가 재밌다. 1946년 5월 23일. 영화 한 편이 개봉된다. 제목은 ‘20살의 청춘(はたちの9752春)’. 거기 일본 영화 최초의 키스신이 촬영돼 담긴다. 당시는 일본인들이 적극적 애정 표현에 서툴던 시대. 그렇기에 영화 속 키스 장면을 보며 가슴 설렌 관객이 적지 않았고, 그날을 기념까지 하게 된 것이라고.1년 중 특정한 하루를 지정해 ‘무슨무슨 데이’라고 칭하는 게 익숙한 시대다. 키스 데이 역시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한국에는 키스 데이가 없냐고? 물론 있다. 오는 6월 14일이다. 그러나, 그날을 기다려 키스를 아낄 필요가 있을까. 애정 표현은 자주, 그리고 많이 할수록 좋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22
우정구 논설위원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는 대통령이나 수상 등 국가 최고 실권자의 아내를 호칭하는 말이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영부인이다. 대통령의 아내가 유고 시에는 대통령의 딸이나 누이 등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맡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부인과 결혼생활을 끝냈을 때 그의 딸이 영부인 역할을 맡았다. 우리나라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내 육영수 여사가 총상으로 사망하자 딸인 박근혜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다.영부인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아내를 높여 호칭하는 말이다. 남의 자식을 높여 부를 때 우리는 영식, 영애라고도 부른다.대통령 부인에게는 특별히 주어진 권한은 없다. 그러나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과 나란히 하는 존재로 인식되기에 국민의 관심이 항상 뒤따라 다닌다. 과거 영부인들을 살펴보면 역할도 제각각이다.박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는 내조형이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항상 앞장서면서 대통령에게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희호 김대중 전 대통령 영부인은 전략적 내조형으로 통한다. 2002년 유엔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해 기조연설도 했다.영부인에게는 권한은 없으나 그들의 역할에 따라 평가는 다양하게 나온다. 그들의 행동이 대통령의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을 두고 외교냐 관광이냐를 두고 뒤늦게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 사실 여부를 떠나 대통령 영부인의 처신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과거 경험으로 보아 영부인의 내조는 몸을 낮추고 대통령이 미처 못하는 그늘진 곳을 찾는 봉사활동이 국민의 호응을 가장 많이 받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21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오렌지색 이어폰을 귀에 꽂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낯익은 중년 사내 하나가 카메라에 잡혔다. 어린아이건 나이를 먹은 사람이건 독서는 비판받거나 힐난 받을 행위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칭찬의 대상이 될 일이지.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서울의 한 도서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편안한 복장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의 제목이 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지를 보도하는 기사는 나쁠 것 없었다.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궜다. 한 전 위원장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이 마구잡이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 입에 담기 낯 뜨거운 욕설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직장 잃고 집에서 쫓겨난 노숙자의 폼 잡기 같다”란 반응엔 할 말을 잃게 된다. 책읽기는 실직하고 아내에게 구박받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인가?2차대전 시기 연합군의 최고위급 장교이자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는 이런 말을 남겼다.“책을 태우는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말라. 오류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은폐함으로써 오류 자체를 은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도서관에서 모든 책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 짤막한 문장엔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세계와 인간의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한 가장 유효한 방법은 ‘책읽기’란 뜻이 담겼다.‘책은 사람이 만들지만, 그 사람을 만든 건 책’이라는 이야기에 고개 끄덕일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왜냐? 이미 인류의 역사를 통해 증명됐으니까. 그러므로 한동훈의 책읽기에는 죄가 없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은 사람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라도 마찬가지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20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백화점이 창업 80년을 기념해 특별사진전을 열고 있다. 대백프라자에서 오는 25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는 대구백화점 80년과 대구 중구 100년의 기록 사진들이 전시된다.지역 유일의 향토백화점으로 80년을 이어가고 있는 대구백화점의 과거 모습들과 대구 100년의 모습을 실감나게 볼 수 있는 사진전이다.1944년 대구 중구 삼덕동에서 잡화류를 주로 파는 대구상회로 출발한 대구백화점은 대구경제 성장사를 이야기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대구역사의 증인으로 등장한다. 현대, 신세계, 롯데 등 대기업 백화점들의 대구지역 공략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 향토 백화점으로 대구를 상징하는 백화점으로 소개된다.대구백화점을 두고 한 대학교수는 “대구백화점은 생존 그 자체만으로 칭찬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자본력으로 밀고 들어온 대기업의 지역시장 진출에도 향토 백화점으로서 존재감을 유지한 데 대한 칭찬의 말이다.지금은 폐쇄됐으나 동성로 소재 대구백화점 본점은 동성로를 대구 중심 상권으로 이끈 주인공이다. 1969년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백화점 건물을 짓고 대구 최초 정찰제 판매를 시작한 대구백화점은 동성로를 젊음과 패션의 거리로 전국적 명소로 만드는 데 기여한 공로가 크다.대기업의 지역 진출에도 대구백화점이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지역민의 관심과 사랑이다. 전국에서 향토 백화점이 유지되는 곳은 대구가 유일하다. 향토 백화점이란 이름으로 유지되던 모든 곳의 지방백화점은 대기업의 진출로 모두 사라진 게 현실이다.창업 80년 맞는 대구백화점의 저력이 지역의 100년 장수기업으로 이어지길 바란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19
우정구 논설위원 명심보감에 “하늘은 사람에게 저마다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나게 한다”(天不生 無祿之人)는 말이 있다. 지금보다 먹을 것이 훨씬 부족했던 시절에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산아제한 개념이 전혀 없던 시절이라 태어난 자식을 소중히 잘 키워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하면 좋을 듯 하다.유교 문화가 널리 퍼졌던 동양권의 나라에서는 부귀다남(富貴多男)이 최고의 행복 가치다. 잘먹고 잘살며 자식이 많아야 하며, 특히 아들이 많으면 다복하다고 생각했다. 대가족 중심사회의 핵심인 혈연중심 사고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보인다.우리나라는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1960년대부터 산아제한 정책을 시작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구호가 등장했던 시절이다. 1970년대 들어서는 “자녀 둘만 낳자”고 했으며 1980년대는 한 자녀 정책으로 바뀌었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란 구호가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저출산국으로 전락한 지금의 우리 처지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은 자식이 없어 오히려 걱정이 없어 편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는 말과 맥이 통하는 말이다. 자식이 많으면 걱정으로 편한 날이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딩크족이란 부부가 맞벌이하며 자식을 의도적으로 가지지 않는 가정을 말하는데 1980년 후반 미국에서 등장한 가족 형태다. 우리나라에도 번져 저출산국으로 전락하는데 일조하는 형태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25∼39세 맞벌이 부부의 무려 36%가 무자녀란 통계가 나왔다. 무자식 상팔자 시대가 온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16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이건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또는 “난 여자라서 이런 건 못해”라는 말이 우스워진 시대가 됐다. 남성 혹은, 여성만의 고유한 영역이란 이제 한국사회에 거의 없다. 금녀의 벽은 이미 무너졌다.육해공군 사관학교의 수석 입학자와 1등 졸업자 중에도 여성이 있고, 육중한 공격용 헬리콥터를 조종하는 여성 장교도 생겨났다. 더불어 섬세한 감각과 미적 완성도를 요구하는 고급 요리 시장에서 주목받는 남성 요리사도 흔전만전인 세상이다.하지만, 49년 전엔 그렇지 않았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가파른 절벽에 매달리는 일, 여성이 목숨을 걸고 지구 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른다는 건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바로 49년 전 오늘인 1975년 5월 16일. 일본의 36세 주부 다베이 준코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산에 올랐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조그만 체구와 약한 체력이 콤플렉스였던 여자. 그러나, ‘어떤 산이라도 천천히,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디면 못 오를 정상이란 없다’는 다베이 준코의 신념은 “여자의 힘으론 난공불락”이라던 8848m의 세계 최고봉보다 높았다.그녀의 도전은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1981년엔 몽블랑과 킬리만자로, 이후엔 알래스카의 매킨리와 남극 빈슨 매시프에도 오른 다베이 준코는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완등(完登)한 최초의 여성’으로 역사에 기록됐다.힘겨움과 고통을 이기고 끝끝내 목적한 바를 이루는 열정과 에너지를 남자만 가졌을 리가 없고, 여자만이 독점할 까닭도 없다.다베이 준코를 떠올리며 ‘양성평등의 길’을 함께 걸어갈 젊은이들의 미래에 박수를 보내고픈 날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15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광역시장이나 도지사는 ‘도백(道伯)’으로 불린다. 대구광역시의 인구는 대략 237만 명. 홍준표는 그 도시의 도백이다. 또 다른 명칭으로 부르자면 ‘오십만호장(4명을 1개 가구로 환산한 수치·50만 가구를 통치하는 수장)’쯤. 칙령(勅令)이 아닌 시민의 선택으로 오른 자리이니 역할은 더 크고, 책임은 보다 무겁다.임현택은 이 나라 의사협회장. 수십 억 자산을 가진 강남의 부모들을 포함한 한국 아버지·엄마 다수가 제 자식을 그 자리에 앉히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의사들의 상징적 우두머리다. 자신의 말이 가지는 무게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최근 이 둘이 인터넷상에서 주고받은 설전을 본다. “한 나라의 흥망은 그 나라 언어의 흥망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그리스 철학자의 말을 가져다놓을 것도 없다. 둘 모두 정제되지 못한 거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한다.임 회장이 “돼지 발정제로 성범죄에 가담한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고 시장을 하는 것도 기가 찰 노릇… 그러니 정치를 수십 년 하고도 주변에 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 하니, 홍 시장은 “더 이상 의사 못하게 그냥 팍 고소해서 집어넣어 버릴까보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니 별 X이 다 나와서 설친다”고 받았다.국가의 수준은 그 국가를 이끄는 자들의 어법과 무관치 않다. 여론을 선도한다는 세칭 ‘오피니언 리더들’은 ‘국격(國格)’을 입버릇처럼 말한다.묻고 싶다. 위에 인용한 막말이 국격을 높이고 있나? 자신들의 인격을 의심하게 하는 언사는 아닌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독일 사람 마르틴 하이데거가 쓴 문장이다. 대구시장과 의사협회장, 두 사람에게 던지는 질책 같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13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 달성에서 3선을 한 추경호 의원이 집권 여당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새로 선출됐다. 그는 선출 소감으로 “사즉생 각오로 독배의 잔을 들었다”고 말했다. 22대 국회가 마치 전쟁터 같음을 예상한 발언이다.또 그는 영남당이란 이유로 “TK출신이 맡아선 안 된다”는 당내 비판에도 출마함으로써 당내에서의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 원내대표로서 역할을 잘하지 않으면 영남권에 부담이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가 사즉생을 꺼낸 것도 당내외의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사즉생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저술된 것으로 전해지는 ‘오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원전에는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로 돼 있다. “반드시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라는 뜻이다.우리한테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랑대전을 앞두고 병사들에게 일갈한 내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자병법’에 기록된 이 말이 수천년 전해져오면서 시대를 넘어 널리 사용된 것은 말의 무게감이 그만큼 큰 탓이다. 조선시대 무사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였다고 전해지니 장수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적합했던 모양이다.영화 명랑대전에서 이순신은 비장한 각오로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살고자 하는 자가 있다니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웠다. 더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22대 국회가 열리기도 전 천막농성을 벌이는 등 거대 야당의 독주가 예사롭지 않다. 추 대표의 사즉생은 더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전쟁터의 장수와 심정이 같다는 뜻이다. 추 대표의 비장함을 느끼게 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12
우정구 논설위원 남천이 흐르는 경주의 월정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얽힌 설화 속의 장소다.원효대사가 파계를 각오하고 요석공주와 연을 맺으러 일부러 강물에 뛰어든 곳이 바로 남천(당시는 문천)이다. 요석공주의 아버지 태종무열왕은 원효의 기이한 행동을 알아채고 두 사람을 연결시켜 주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인물이 신라 문자인 이두를 고안하고 신라 10현의 하나로 꼽히는 설총이다.월정교는 1984년부터 복원을 위한 자료수집과 고증작업을 벌였으나 2018년에야 복원사업이 완료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35대 경덕왕 18년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신라 왕궁이 있는 월성과 건너편 남산을 연결하는 다리다. 조선시대 들어와 유실된 것을 고증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했다.길이 66m, 폭 13m, 높이 6m로 양끝에 문루(門樓) 두개 동이 세워져 있다. 워낙 오래된 다리인 데다 고증자료만으로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기가 쉽지 않아 현재의 모습이 당시와 얼마나 닮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다만 신라 천년의 도시 경주시의 역사성을 재현하고 관광상품을 늘린다는 취지가 복원의 학술적 목적보다 앞섰다는 평가다.경주에는 역사성을 배경으로 야경 명소로 꼽히는 곳이 여럿 있다. 동궁과 월지, 금장대, 첨성대, 월성 등이 있으며 월정교도 그 중 하나다. 고풍스럽고 예쁘게 단장한 월정교에서 바라본 경주의 모습에서 신라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멋진 일이다.경주시가 2025 APEC 정상회의 국빈공식 만찬장으로 월정교를 추천했다고 한다. 월정교의 역사성과 아름다움, 스토리 등으로 볼 때 손색이 없는 장소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09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아침’과 ‘이슬’이란 2개의 보통명사로 ‘아침이슬’이란 고유명사를 만든 사람이 있다.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로 요약되는 197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이름 김민기(73).작곡가이자 가수, 공연연출가이자 시인에 필적하는 수준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인 김민기의 아우라(aura)는 반세기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빛난다.“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으로 시작해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로 끝을 맺는 ‘아침이슬’. 삶의 무게가 힘겨워 울고 있는 젊은이들에겐 성가(聖歌)와 같은 숭엄함으로 위로를 전했고, 자신과 더불어 공동체를 아끼며 살고자 결의했던 이들에겐 총알보다 더 강위력한 변혁의 무기가 돼주었던 노래다.‘아침이슬’의 작사·작곡자인 김민기가 아픈 모양이다. ‘위암 투병 중’이라는 기사가 경향 각처의 신문에 오르내린 게 올해 이른 봄. 미디어와의 접촉을 꺼리는 김민기의 성향 탓에 병세가 어떠한지는 소수의 사람들만 안다고. 최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엔 김민기와의 추억담을 털어놓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마치 곧 이별할 사람과의 기억을 반추하듯.2018년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TV 화면에 등장해 아나운서 손석희와 인터뷰를 한 김민기는 이런 말을 했다. “노래의 주인은 그걸 부르는 사람들이지요.” 1987년 6월. 항쟁의 거리에서 ‘아침이슬’을 합창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단다. 과연 김민기다웠다.그가 병마를 이겨 훌훌 털고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면식은 없지만 이 나라 중년 모두는 청춘의 어느 한 부분을 김민기에게 빚지고 있으므로./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08
우정구 논설위원 어린이날을 맞아 각 교육기관 등이 어린이와 관련한 설문을 조사해 보면 그 내용에 공통점이 있다. ‘가족과 사랑’이 공통의 단어로 등장한다는 점이다.예컨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대해 질문했을 때 어린이들은 ‘가족과 함께 있을 때’를 가장 많이 대답한다.또 ‘어린이날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질문에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 가기’. 부모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랑’이란 단어가 제일 많다.어린이들은 각종 설문조사에서 행복의 조건을 손꼽으라 하면 ‘화목한 가정’을 가장 먼저 말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했다. 천진난만하고 깨끗한 동심에서 어른들은 배울 게 많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어른을 닮아가니 어른들이 솔선해 모범적 생활을 하라는 의미로도 풀이한다.최근 교직원노동조합이 어린이날을 맞아 초등학생 2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초등생 10명 중 6명이 거의 놀지 않거나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논다고 대답했다. 그 외 시간은 학원과 학습지, 온라인 학습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우리나라는 사교육비 지출은 GDP 대비 압도적 세계 1위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78.3%다. 주당 사교육 참여시간은 7.2시간, 특히 초등생의 경우 사교육 참여율은 85.2%로 10명 중 약 9명이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OECD 국가 중 우리 어린이의 행복지수가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는 수치다. 1년 365일을 어린이날처럼 보낼 수 있는 우리사회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07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최근 할리우드발 흥미로운 가십 하나가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신부들의 전쟁’ 등의 작품에서 호연을 펼쳐 한국 영화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앤 해서웨이(42)가 5년째 금주 중이고, 여덟 살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술잔 들 일이 없을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뉴욕타임스와 ABC 등 미국 유수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미 고백한 바 있다. 과거 앤 해서웨이는 술 탓에 일상생활이 지장을 받을 정도의 주당(酒黨)이었다. 대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신 술. 배우 생활을 하면서 주량은 더 늘어났고, 그 음주 습관은 전도유망한 여배우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그랬던 앤 해서웨이가 “아직은 아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나이다. 아들이 대학에 가면 다시 술을 마시겠다”고 했다니 모정이 술을 이긴 것이다.‘모정’이란 단어가 나왔으니 떠오르는 또 다른 한 장면. 케이트 윈슬렛(49)은 영화 ‘타이타닉’을 통해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오른 영국 여배우. 수십 만 파운드짜리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시상식장을 드나들던 그녀가 아들을 등에 업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찍혔다. 화장도 하지 않은 맨얼굴에 낡고 헐렁한 면바지를 입었음에도 등에 업힌 아들 조 알피를 돌아보며 세상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의 행복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같은 무게의 황금을 준다 해도 아들을 금과 바꿀 어머니는 없다”. 중국 속담이다. 가정의 달로 불리는 5월. 가정의 일상이 행복하게 유지되는데 모정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새삼 거론하는 건 바보짓이다. 부엌에서 아침 짓는 어머니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면 좋을 날이 내일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06
우정구 논설위원 동양에 복마전(伏魔殿)이라는 고사가 있다면 서양에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전설의 이야기가 있다. 출처는 다르지만 악(惡)을 담아놓은 전각이나 상자의 문을 열면서 인류의 비극이 시작됐다는 내용은 비슷하다.수호지에 등장하는 복마전은 마귀가 숨어 있는 전각이다. 열지 말아야 할 전각의 문을 열면서 마귀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세상에는 불길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는 악의 근거지라는 뜻으로 부정부패, 비리의 온상을 부를 때 보통 복마전이라 한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는 인류의 모든 악과 재앙을 담은 상자다. 그 상징성 때문에 비리나 부정, 음모가 있는 곳을 가리킬 때 보통 판도라 상자라고 부른다. 복마전과 비슷하게 부정부패가 상징되는 곳에 사용되는 말이다.중앙선관위와 전국선관위의 채용비리를 보면서 많은 국민이 공분을 하고 있다. 10년 동안 1200건이나 되는 채용비리가 저질러졌음에도 단 한차례 문제도 삼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특히 선관위 고위직 자녀를 세자로 호칭하는 등 특혜채용 사실이 내부적으로 공공연한 비밀이었을텐데도 묵과돼온 사실은 이해할 수가 없다.전문가들은 부정부패 원인을 몇 가지 차원에서 접근한다. 도덕적 접근법, 사회적 관습의 결과, 또는 제도적 결함 등으로 분석한다. 여기서 선관위의 채용비리는 도덕적 규범의 붕괴에 가깝다. 공무원이 국민의 봉사자라는 사실을 잊고 권한이 자신의 것인양 착각하고 남용하는 윤리적 가치관의 몰락을 뜻한다. 부정부패의 분위기가 조직 내에 스며들면서 끝내는 본인 스스로도 물들어 가는 과정이다. 복마전의 선관위 비리에는 일벌백계가 답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02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치조직 하마스의 이스라엘 영토 습격으로 촉발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의 비극이 지속되고 있다. 휴전과 개전(開戰)의 지루한 반복은 전쟁의 직접 당사자인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아닌 어린이와 여성 등 무고한 희생자를 낳고 있는 형국. 미국 등이 종전을 위한 협상을 종용하고 있으나, 이미 100년 가까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다퉈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화해가 쉽사리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인을 자신들의 영토를 강제 점령해 냉혹한 감시와 폭력을 휘두르는 상종하지 못할 이민족으로 인식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감정도 최악이다. 농장을 침탈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인 하마스를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마’로 보고 있는 것.‘신을 위해 헌신을 다하는 군대’로 해석될 수 있는 하마스는 1987년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압제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며 태동한 무장단체. 설립자인 아흐마드 야신(1936~2004)은 이스라엘로부터는 “군인과 민간인 가리지 않고 테러를 지시한 악마의 우두머리”로 비난받지만, 팔레스타인은 그를 “우리 민족의 해방을 주도한 지도자”로 추켜세운다. 안중근이 한국인들에겐 의사(義士)지만, 일본 군국주의자에겐 테러리스트로 인식되는 것과 마찬가지.그렇다면 대체 누가 하마스가 되는 걸까? 7개월의 전쟁에서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에 사망했다. 목이 부러져 죽은 일곱 살 여동생의 시체 앞에서 열두 살 오빠가 절규한다. “빨리 커서 이스라엘과 싸우는 하마스가 될 겁니다.” 이 아이를 ‘악마’라고 함부로 부를 수 있나? 종교와 인종이 야기한 반목이 서글프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