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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갈잎 먹은 송충이

신라 35대 경덕왕은 어느날 충담사라는 시인 스님을 만나 `나라 잘 다스릴 방책`을 물었고, 충담은 “임금은 임금 답게, 신하는 신하 답게, 백성은 백성 답게” 저 마다 분수를 잘 지키면 나라가 편안하리라는 `안민가(安民歌)를 지어올렸다. 왕이 감동해서 “스님을 스승으로 삼고자 합니다”했으나 충담은 “중에게는 중이 갈 길이 있습니다” 굳이 사양, 분수를 지켰다. 그 무렵 월명사라는 음악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피리의 명인이었다. 밤중에 그가 피리를 불면 가던 달도 걸음을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렸다. 그가 피리를 불며 마을 앞 길을 걸을 때는 사람들이 그 소리에 취해서 함께 걸었고, 그 길은 `월명의 길`이 불리었으며 사람들이 자꾸 이 마을로 이사를 왔다.경주 문화예술인들은 충담과 월명을 기리는 축제를 매년 거행한다.오늘날에도 피리의 명인이 있다. 중앙대 총장을 거쳐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까지 지낸 박범훈씨가 바로 피리 명인이다. 그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박헌봉 국악상을 받았으며 `추임새``소리연``한국불교음악사 연구``작곡 편곡을 위한 국악기 이해``피리산조 연구`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리고 그는 중앙대 예술대학장 시절 `국악과 양악의 어울림`이라는 큰 업적을 남겼다.많은 음악가들이 국악·양악의 교류는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이 일을 훌륭히 성취해냈으며, 지금도 TV 음악무대에 `국·양악 협연`은 “소리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그러나 그는 욕심이 많았다. 재벌과 손을 잡았고, 권력의 단맛에 끌려갔다.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하는 과정에 개입했고, 총장에 오른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MB정권시절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권력의 핵심에 들어갔다.칼을 쥐면 휘두르고 싶기 마련. `10년을 가기 어려운 권력`임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치욕`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검찰의 칼이 그의 목을 겨눈다. 충담과 월명을 알았더라면 송충이는 솔잎만 먹었을 것인데 그의 음악적 재능이 아깝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13

덕종어보(德宗御寶)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세조는 두 아들을 두었으나 다 골골하다가 일찍 갔다. 맏아들 의경세자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나날이 말라갔는데, 그는 왕위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20세에 별세했고, 둘째 아들이 왕위를 이어 예종이 되지만 그 또한 등극한지 14개월만에 숨을 거둔다. 예종이 죽던 날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초상날 차기 왕이 결정됐는데, 그것도 상식을 크게 벗어난 결정이었다.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윤씨가 한명회 신숙주 등과 결탁해서 의경세자의 차남 자을산군을 왕위에 올린 것이다. 의경세자에게는 월산대군이라는 반듯한 맏아들이 있고, 예종에게도 아들 제안군이 있었는데, 그 적격자들을 모두 제치고 13세 된 차남 자을산군을 세운 것은 `그가 한명회의 사위이고, 대비 윤씨가 수렴청정으로 정치에 개입할 수 있으며, 세조의 측근들이 변함없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윤씨와 실세들은 어린 임금 성종을 `얼굴마담`으로 앞세워 의경세자 왕위추존을 서둘렀다. 존호를 덕종(德宗)이라 짓고, 세자빈을 소혜왕후로 했다. 왕과 왕비가 세워지면 그 권위를 상징하는 인장(印章)을 새기기 마련. 국새(國璽)는 공식적인 국가사무 처결에 사용하고, 어보는 개인적으로 쓰는 도장인데, 왕, 왕비, 세자, 세자빈 등이 만들어 썼다. 덕종어보(德宗御寶)는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덕종비의 어보도 새겨졌을 것이다.나라가 망하면 국새고 어보고 다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 그러나 일제는 조선시대의 어보들을 “우리 문화재”라며 종묘에 잘 보관하다가, 전쟁에 패하자 거기에 손 대지 않고 물러갔다. 그러다가 6·25가 터지자 미군 병사들이 종묘에 들어와 구경하다가 `거북이 않아 있는 커다란 금도장`을 기념품 삼아 들고갔는데, 그게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가져간 덕종어보가 이번에 돌아왔다. `사망후 새긴 도장`이니, 한번도 찍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머리를 힘 있게 치켜든`거북의 기세를 보면, 도장주인의 한이 풀릴듯도 하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10

배꽃의 계절

고려 말엽, 경상도 성주군 월항면에 성주이(李)씨 `이장경`이라는 선비가 살았다. 그는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오래 살라는 뜻으로 맏아들은 백년, 둘째는 천년, 세째는 만년, 네째는 억년, 다섯째는 조년(兆年)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가 타계하자 묘소를 마을 석산사 왼쪽에 있는 야산에 썼는데, 지관이 “용이 알을 품은 천하명당”이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해서 명문세가로 이름을 날렸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이장경의 묘소는 다른 곳에 옮겨지고, 그 명당은 세종대왕과 후손들의 태실이 되었다. 이장경의 다섯 아들 중에서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는 이는 5째 이조년(李兆年)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의 시조 `연가(戀歌)` 한 수 때문이다. `문학의 힘`이란 이렇게 위대하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은하수)은 삼경(三更)인제/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 이뤄 하노라” 그는 고려 말 친명파와 친원파가 갈려서 정권다툼을 벌이는 혼란기에 정치에 환멸을 느끼면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 성주로 내려와 백화헌(百花軒)이란 당호를 써붙이고 꽃을 벗삼아 노후를 보냈다. 이 시조도 그 무렵에 지어진 작품이라 여겨진다.개성에 황진이가 있었고 전북 부안에 이매창이 있었다. 둘 다 시문(詩文)과 음악에 뛰어난 자질을 가진 매화기생이었다. 오늘날 문학인들은 그녀들의 이름에서 `기생`이란 말을 떼내고 `여류시인`이란 존칭을 붙여준다. 매창을 흠모했던 명사들로는 허균, 이귀가 있었고, 유희경도 있다. 유희경은 천민신분으로 태어났으나,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 불렀으며, 임진왜란때 의병으로 참전해 공을 세우면서 천민신분을 벗어났다. 매창은 특히 유희경에게 온 마음을 다 바쳤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여라”배꽃이 한창 피어나는 계절이다. 두 연가를 읊조리기 알맞은 시절. 따뜻한 마음을 되살려보기 좋은 철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09

마늘·쑥·어둠

옛날에 환인(桓因·창조주 제석천 하느님)이 아들 환웅(桓雄)을 태백산(太佰山) 신단수(박달나무) 아래에 내려보내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이 무렵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한 동굴 속에 살면서 늘 환웅천왕에게 “사람이 되게 해지이다”빌었더니 어느날 환웅 신이 신령스러운 효험이 있는 마늘 스무 개와 쑥 한 묶음을 주며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성질이 불 같은 범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곰은 꿋꿋이 견뎌냈는데, 100일을 다 채우지 않고 불과 21일만에 여자(웅녀)가 되었다. 웅녀는 신단수 아래에 와서 또 빌었다. “혼인하여 자식을 낳고 싶은데, 천지강산에 남자가 없습니다” 환웅천왕은 그 사정 또한 딱하다 여겨 스스로 남자로 변신하여 웅녀와 동침, 곧 임신해 아들을 낳는데, 그 이름이 단군왕검이다.왕검은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은 조선(朝鮮)이라 지었고, 얼마 후 백악산 아사달로 천도해 1천5백년 간 나라를 다스리다가 1908세 때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다.`단군고기`에 실린 내용을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쓸 때 인용했지만, 태백산이나 백악산에 대해서는 일연 스님도 그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없어서 묘향산, 백두산, 태백산 등으로 비정했고, 단군조선의 첫 도읍지가 평양성이란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북한이 `한반도의 주인`임을 내세우는 근거가 여기에 있고, 종북 좌파들도 이를 추종한다.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취임 50일 째 되는 날 “단군신화에 곰이 100일 간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으로 변했는데, 앞으로 50일간 더 마늘과 쑥을 먹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했다. `21일간 먹은 일`은 있지만, 100일이나 먹었다는 기록은 없다. 그리고 단순히 마늘과 쑥만 먹은 것이 아니라 `햇빛은 보지 않고` 동굴속에서 수행했던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 `어둠 속에서 매운 음식을 먹는 고행`을 치러야 수권정당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인데…./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08

인(人)의 장막

태종 이방원은 세 아들을 두었다. 장남 양녕은 `왕이 돼야 할 운명`에 항거했다. 미친짓이나 하고, 남의 여자 임신이나 시키고, 스승 앞에서 개짓는 소리나 내니, 태종도 결국 그를 버렸다. 둘째 효령은 불교에 심취했으니 `조선의 이념`과 맞지 않았고, 결국 3남 충령이 세종이 돼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뤘다.이승만 건국대통령은 양녕대군의 16대손이다.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59세때 프란체스카 여사와 결혼하지만, 슬하에 자녀가 없었고, 양녕대군의 17대손 이인수씨를 양자로 들였다. 그는 고려대 상대를 나와 공군 통역장교로 복무했으므로, 대통령과 영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당시 이 대통령은 한국어보다 영어가 쉬웠고, 주로 영자신문을 봤다. 그런만큼 국내정세에 어두운 면도 많았는데 대부분의 국내 소식을 측근의 `입`에 의존해 들었다.대통령은 4·19가 `혁명`인 줄 모르고, 측근들이 “학생들이 벌인 잠깐의 소요”라 하자 그대로 믿었다가, 총소리가 요란하자 비로소 사태가 심각함을 알았다. 대통령은 비로소 여러 소식통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죽고 다쳤다”는 사실을 들었고, “자유당정권을 해체하고 대통령 하야하라”는 것이 국민의 소리임을 파악하게 됐으며, 자유당정권이 주도한 정·부통령 선거가 역사상 유래 없는 부정선거였다는 것도 알게 됐다.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하와이로 망명길을 떠났다.양자 이인수씨도 4·19때 시위에 참여했지만, 하와이에서 부자(父子)인연으로 만났다. 이승만 박사는 양자를 만나자 제일 먼저 국내정세를 물었다. 아들이 “젊은이들이 열심히 하고 있으니 잘 돼 갈 겁니다”라고 대답하자, 대통령은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잘 돼간다는 말 믿지 마라. 그런 말 믿었다가 내가 이렇게 결딴났다” 인(人)의 장막이 `정치의 적`이란 것을 설파한 `회한이 담긴 말`이었다.통치자는 `중심`을 잘 잡아야 하지만, 쓴소리도 잘 듣고, 듣는 귀도 넓어야 한다는 뜻이겠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07

청명·한식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란 속담이 있다. 하루 차이거나 6년에 한번씩 겹치니, 별 차이 없다는 뜻이다. 코미디프로 `도진 개진`도 같은 의미다. 윷놀이에서 가장 잘 나오는 것이 `도 아니면 개`여서 “그게 그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한식(寒食)은 조선시대 설·추석·단오와 함께 4대명절에 속할만큼 중요한 날이었다. 청명(淸明)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구름을 다 날려 보내므로 하늘이 가장 맑은 날이란 뜻이고, 그 날 모든 백성들은`묵은 불씨`를 끄고 `새 불씨`를 기다린다. 청명날 나라에서는 `버드나무 판자에 느릅나무 막대기를 비벼` 새 불씨를 얻는다. 재질이 무른 버드나무는 여성을 상징하고, 강한 성질의 느릅나무는 남성을 상징하는데, 음양의 교합을 통해 불씨를 얻으면 `성스러운 불`이 되고, 이 불씨를 온 백성이 함께 나눠가져서 `국민통합·국태민안·태평성대`를 이루자 함이다.임금은 새 불씨를 대신들에게 나누고, 대신들은 고을 수령들에게 전하고, 수령들은 파발마를 총동원해 전국 방방곡곡 집집 마다 전달한다. 그것은 현대의 성화봉송보다 더 성대한 `새불씨 봉송`이다. 스포츠행사는 화합과 통합이 그 목적이듯이 `불씨전달`도 의미가 같다. 백성들은 묵은 불을 끄고 찬음식을 먹으며 `나랏님이 내린 새 불씨`를 기다렸다가 예를 표하고 화로의 잿불로 소중히 보관한다. 이 불씨는 연중 내내 끄트리지 말아야 하는데, 이사 갈 때도 불씨를 화로의 재속에 담아 갈 정도였다.한식날은 조상 묘소를 성묘하는 날이다. 관리들도 이 날은 `성묘휴가`를 얻는다. 겨우내 묘소가 얼어 허물어진 곳은 없는지, 산짐승이 헤치지는 않았는지, 잔디가 얼어죽지는 않았는지, 두루 살펴서 보수하고 잔디를 새로 심는 `개사초`를 한다. “정성이 있으면 한식날에 세배 간다”는 속담도 있지만 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날에 세배라니 말이 안 되지만 `한식날은 조상을 생각하는 날`이란 뜻이다. 청명·한식의 의미를 오늘날에 되새겨 분열과 대립을 화합과 단결로 승화시켰으면 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06

소나무를 그만 심자

신라 49대 헌강왕 대에 들어서면서 나라가 망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지방까지 집과 담이 이어졌고, 초가는 하나도 없었으며, 아침 저녁으로 굴뚝에 연기가 오르지 않았다. 숯으로 밥을 지었기 때문이다. 또 풍악과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삼국유사`에 실린 내용이다. 이렇게 사치 방탕하니, 남산신과 북악신과 지신이 나타나 춤을 추어 경고메시지를 보냈으나, 사람들이 그 의미를 모르고 `좋은 조짐`이라며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더욱 빠져들었다.“산이 헐벗으면 나라가 망하고, 살림이 무성하면 나라도 흥한다”하는 것은 세계사가 증명한다. 신라 말기에 숯으로 음식을 조리하고 난방할 정도였다면, 백성들은 참나무와 소나무로 숯을 구워 나라에 바치기 바빴을 것이고, 산은 민둥산이 돼갔고, 국가는 멸망의 길을 걸었을 터. 그러나 당시에도 `국가가 관리하는 숲`을 지정해 보호했고, 후대에는 그린벨트로 묶었으며, 전국 곳곳에 산림애호(山林愛護) 구호를 써붙이고, 산도감이란 직책을 두어 감시를 했다. 그후 연탄이 보급되면서 `연료혁명`이 시작됐고 산을 푸른 옷을 입어갔다.그런데 소나무를 너무 심은 것이 탈이었다. 솔잎혹파리가 창궐해서 소나무가 붉은 빛으로 죽어가더니, 급기야 소나무재선충이 극성을 부려 소나무가 말라죽는다. 유독 소나무에 피해가 집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4철 푸른 산이 보기 좋다고 소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은 탓이다. 산이란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섞여 있어야 서로 단점을 보완하며 건강하게 유지되는데, 소나무 일색이니 `도와줄 다른 나무`가 없다. 또 소나무에는 진이 많아 산불에 엄청 취약하다. 소나무 머리에 불이 붙으면 그것이 불꾸러미가 되어서 바람에 날아가 근처에 옮겨 붙는다.산불에 강한 나무가 참나무와 은행나무다. 꿀밤은 산짐승의 먹이가 되고 도토리묵이 된다. 은행나무는 그 잎이 혈액순환제로 쓰이고 약차로 마신다. `소나무 망국론`을 이야기하는 산림전문가들도 있는데, `푸른산`은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경제수종을 많이 심을 일이다./서동훈(컬럼니스트)

2015-04-03

사실(Fact)과 진실(Truth)

`방법론적 회의`란 말을 처음 쓴 철학자가 데카르트(Descartes).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이라 해서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해서 다 진리가 아니며 연극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그림자는 실제가 아니다. 역사는 `사실`이지만 다`진실`은 아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많이 고민한 사학자가 사마천이다.한신은 한(漢)나라 개국공신이다. 어느날 한신이 유방에게 말했다. “황제께선 10만 병사를 거느릴 장수입니다” 황제가 한신에게 물었다.“경은?” 한신이 대답했다. “소신이야 다다익선이지요” 내가 당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뜻이니, 이때부터 한신은 `반역의 기운이 농후한 자`로 찍혔고, 결국 토사구팽. 역모죄를 쓰고 3족이 죽었다. “한신이 역모를 했다”하는 기록은 `사실`이지만“과연 역모를 했는가”파헤친 것은 `진실`이다.사마천은 `드러난 사실`만을 기록하지 않고 `숨어 있는 진실`을 파고 들었다. `이릉`장군이 적에 투항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부하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무모한 전쟁을 피하고 투항을 선택한 것은 `진실`이다. 사마천은 이 진실을 말했다가 황제의 분노를 사 사형보다 더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당했다. 후에 진실이 밝혀져 사마천은 환관이 됐고, 사가(史家) 집안의 후예 답게 `중국 3천년의 역사`를 담은`사기`를 썼다.사마천은 “한신이 실제 역모를 꽤했느냐?”를 알아내기 위해 그의 고향 장쑤성을 찾아가 탐문을 했다. 진실을 알았지만 “한신은 황제를 겁먹게 할 정도로 뛰어난 장수였기 때문에 역모죄에 엮였다”라고 쓰지는 못했다. 그랬다면 분서갱유를 당했을 것이다. 다만 사마천은 비유적으로, 엇비슷하게, 한신의 위대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그에게 `역사상의 신원`을 해주었다.이번 달 열릴 국회에서 `김영란법`과 `어린이집 CCTV법`이 바로 잡혀질 것인가. 협박·로비 같은 `감춰진 진실`이 따로 있어서 사학자들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도록 사실과 진실이 부합되기를 바란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02

정의의 칼 세례?

이슬람 강경파 IS가 말썽이다. 사람을 납치해다가 처형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돈을 갈취하는 국제깡패가 요즘 치도곤을 맞는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그것을 `멋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본거지를 찾아가는데 우리나라 김모 군도 합류했다. 테러분자들은 늘`정의`를 앞세우는데, 이들은 과거의 십자군전쟁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슬람은 `참혹성`을 무기로 사용했다. 포로를 최대한 참혹한 모습으로 만든 후 적진에 돌려보내는 수법인데 그 처참한 몰골을 보고 질려서 손을 들게 만든다.IS도 칼이나 총으로 공개처형하고 심지어 기름을 뿌려 화형하는 장면까지 공개했다. 그런데 처형당하는 피해자들이 의외로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몸부림치거나 애원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는데 “실제로 처형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사진 찍기 위한 것”이라고 피해자를 안심시켰다고. 그런데 그 처형에 소년까지 내세워 권총 방아쇠를 당기게 했다. `테러 2세대`를 키우는 짓이다.한국에는 미국 대사를 칼로 찌른 테러범이 있다. 과거 주한 일본 대사에게 벽돌을 던졌던 김기종이다. 그는 김일성의 `갓끈전술`신봉자다. “남조선은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갓끈에 의지하는 갓과 같다. 그 갓끈만 없애버리면 갓은 날아간다”는 것. 그래서 한·미관계와 한·일관계를 단절시키면 한국은 그냥 망한다는 것인데, `이간질`에 국제관계가 쉬 좌우되는 것이 아니어서 갓끈론은 공허한 `이론`일 뿐이다.김기종은 평소 “남한에는 김일성 만한 훌륭한 지도자가 없다” “남한은 미국의 半식민지이고, 북한은 자주적 정권이다” 라고 했는데 그 좋은 북한에 가서 살지 않고 굳이 남한에 사는 이유는`남조선 혁명과 적화통일을 위하여`라고 공언하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국가보안법에 걸리니 그냥 `행동`만 할 뿐이다. 특히 북한은 핵무기를 가졌으니 남조선 적화통일은 시간문제라 여긴다. 북한과 김기종은 손발이 잘 맞는다. 북한 조평통은 그를 안중근 의사에 비유했다.“정의의 칼 세례”라며. 저들은 언제 백일몽에서 깨어날까./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01

사랑의 인사

사소한 행복감은 언제 밀려오는가? 온 겨우내 뒷베란다에 방치했던 노랗고 빨간 미니 화분을 자동차 뒷좌석에 싣고 꽃집을 향할 때. 그 빈 화분에다 팬지나 데이지를 심고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공기 중에 떠도는 봄 향기를 맡을 때. 그 화분이 실은 지난가을 모 카페에서 친구가 건넨 황국과 홍국의 쌍 화분이었다는 걸 기억해 낼 때. 그때 카페 창가에 비친 친구의 옆얼굴이 내가 좋아하는 데이지를 닮았다고 믿고 싶을 때. 기침 돋는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 엄마의 안부를 물을 때. 안부를 묻는 내 최선의 목소리보다 더 빠르고 깊이 전해지는 늙은 엄마의 노심초사를 알 때. 한껏 게으르고 늘어져 소파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뒹굴 때. 그때 몹시 아끼는 폴란드 산 십자꽃 무늬 잔에 커피를 내려 건네는 순정한 아들의 눈빛을 마주할 때.오직 혼자 그 큰 영화관에서 조조 영화를 보게 될 때의 황홀한 두려움. 십분 간격으로 객석을 드나들며 어둠 속 관객의 안위를 살피던 영화관 직원의 숨결. 영화 속 왕페이가 입었던 티셔츠에 꽂혀 당장 홈쇼핑에서 충동구매 했을 때의 만족감. 그 소박한 셔츠가 외출할 때마다 뭘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준다는 안온함.소설에서는 개연성 때문에라도 있음직한 일만을 다루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숱한 변수 때문에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통찰을 얻을 때의 짜릿함. 단순한 행복감을 넘어 저릿한 생각거리에 이를 때까지, 그 매일의 두 시간을 모아 내 식의 팔면경을 만들어 나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내 사랑의 인사였다. 이제 그 인사를 마감할 때가 되었다. 너무 오래 썼고 스스로 지쳤다. 떠나야만 하는 명백한 이유이다. 칠백여 편의 단상이 한 장 한 장 스냅사진이 되어 파노라마로 넘어간다. 중언부언한 그 많은 말들 속에 그래도 못다 한 사랑의 말들은 내면의 꽃밭에 심어 소설로 꽃피우겠다. 그간 응원하고 격려해준 독자님들과 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봄꽃이 다퉈 피고 있다.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꽃 피는 찰나의 봄을 만끽하겠다./김살로메(소설가)

2015-03-31

예절은 서로가

아버지 살아계실 제 비유적으로 말하기를 즐겼다. 그것이 속담인지 당신만의 어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를테면 `손 큰 어미 장 퍼 나르듯 한다`, `꽃도 한철 문장도 한철` 이런 말을 흔히 썼다. 각각 살림살이와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인사에 선후 없다, 라는 말도 아버지에게서 자주 들었다. 인사에는 어른 아이 순서가 정해진 게 아니니 서로 예의를 지키는 게 좋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두 젊은 연예인이 야외 녹화를 하다가 다툼이 붙었다. 세 살 어린 쪽이 반말 뉘앙스를 풍기며 대꾸를 해서 언니 쪽이 폭발해 욕설을 했단다. 마주친 손바닥이 소리 나듯 잘잘못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네티즌들의 갑론을박 속에서 `예의` 부분을 받아들이는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다. 나이 어린 쪽이 싸가지 없이 반말을 했으니 언니 쪽에서는 흥분할 만하다는 거다. 화가 난 이유는 분명히 복합적인데 왜 당사자는 상대의 반말 부분에서 자제하지 못했고, 그것을 자신의 실수 이유로 꼽았을까. 이런 사건들을 볼 때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예의를 다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통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아무리 연예계라도 세 살 차이 나는 정도에서 절친 관계가 아니라면 서로가 존대를 하는 게 맞지 않나. 어느 한 쪽은 상대가 맘에 들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쏟아낼 수 있고, 다른 한쪽은 나이가 조금 적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제 언행을 억눌러야 한다면 이건 잘못된 소통 방식 아닌가.`도덕교육의 파시즘`에서 김상봉 교수가 말했다. “한국의 도덕교육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절은 가르쳐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절은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윗사람으로서 무례하고 폭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둘 다 잘못한 사안에 대해 어느 한 쪽이 예의를 지키지 않은 점만 부각해 분하다고 한다면 그곳은 여전히 경직된 사회이다. 예의는 서로가 지키는 것이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행하는 일방적 헌사나 참음은 아니다./김살로메(소설가)

2015-03-30

너무나 인간적인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언행을 기록으로 남겼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등을 비롯한 그의 이야기 안에는 소크라테스를 둘러싼 당대 철학가·정치인들의 행적이 실감나게 묘사된다. 그 중 `향연`은 그들의 에로스 찬미가에 해당된다. 비극작가 아가톤이 비극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 축하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예닐곱 명이 모였는데 곧 에로스에 대한 격렬한 토론장이 된다. 그때 마지막으로 향연장에 등장하는 인물이 군인이자 정치가인 알키비아데스였다. 담쟁이덩굴과 제비꽃으로 된 화관을 미남자 우승자인 아가톤에게 씌워주고 싶어서였다. 알키비아데스에게도 에로스 찬양을 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는 실은 에로스에 빗대 소크라테스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더 말하고 싶었다. 술을 빙자해 복잡한 속내를 털어놓았다.못생기고 괴팍한 신들의 이름에 비유해 스승의 외모를 비하하면서도 그의 존재감에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자책하는 내용이었다. 그가 보기에 스승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눈을 가졌고, 보통 사람들이 대단하게 여기는 육체나 부 등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무지를 가장하고서 진짜 무지한 사람들을 깨우쳤으며, 한 번 사색에 빠지면 결론을 얻을 때까지 꼼짝하지 않을 정도로 참을성이 강했다.“실제 독사보다도 더 아프게 무는 독사에게 물렸습니다. 심장을, 아니 마음을 물렸어요. 지혜를 사랑하는 그의 말에 물린 겁니다.” 스승을 향한 질투와 시기, 그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그는 울부짖듯 고백한다. 먼 훗날, 모차르트 곁의 살리에리가 이 장면을 읽었다면 깊이 공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완전체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이 철부지 제자에게 이렇게 설교한다. 육체의 아름다움보다 정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라고. `자네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 때 그때서야 자네 마음눈이 밝아진다. 그러니 자네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알키비아데스를 설득하는 소크라테스가 얄미워 보이는 건 약점 많은 보통 사람 정서를 두고 인간적이다, 라고 변호하고 싶은 그 맘 때문은 아닌지./김살로메(소설가)

2015-03-27

리콴유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서거했다. 그에 관한 평가는 다양하다. 경제를 일으키고 국민성을 개조한 측면에서는 `아시아의 거인`으로 칭송 받는다. 반면 지나친 독단으로 자신의 생각을 주변과 국민에게 주입한 면에서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폄하되기도 한다. 그 둘 다 제 삼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옳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지도자는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 어떤 것을 우선에 둘 경우 그 반대쪽의 일에는 아무래도 소홀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그 이면에는 그것에 버금가는 나쁜 일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고통받는 존재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리더란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극하는 자리이지, 자신의 복잡한 생각들을 공유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1965년 신생국의 초대총리에 올라 25년간 재임하는 동안 싱가포르를 전 세계에 우뚝 서게 만든 그의 원동력은 강직함이었다. 오늘날 싱가포르의 일인당 국민총생산은 거의 6만 달러로 세계 8위이자 아시아 1위이다. 강력한 리더십이 낳은 빛나고 빠른 성과였다.그가 강조한 `클린 앤 그린` 정책은 일류선진국을 향한 주춧돌 같은 것이었다. 쓰레기 무단 투기, 침이나 껌 뱉기, 흡연 등 자잘한 공공질서 위반부터 다스리는 것이 깨끗하고 청렴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공직자 처우를 최상으로 올리는 만큼 부정부패에는 철저하게 무관용의 원칙을 고수했다. 이 모든 원동력을 바탕으로 일류국가 만들기 프로젝트에 전생을 바쳤으니 국부로 추앙받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하지만, 합리적 서구 민주주의 시각에서 보면 그는 독선적인 지도자였다. 그 스스로 공공연하게 서구식 민주주의를 흉내 내는 것보다 아시아적 가치에 맞는 민주주의를 택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기야 떡도 쥐고 북도 칠 수는 없는 것. 강력한 지도력이 국가발전과 국민 경제 부흥을 약속하는 것만큼, 억압된 개인권이나 제한된 자유를 감수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 그 선 안에서라면 그는 분명히 훌륭한 지도자였다./김살로메(소설가)

2015-03-26

사랑하기가 더 쉬워

사랑하면 왜 작은 것에도 웃게 되고, 사랑받으면 왜 충만감에 휩싸이게 될까. 그건 사랑이 그만큼 단순하고 담백한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미워하기보다 사랑하는 게 더 쉽다. 누군가를 미워해야만 할 때 사람들이 취하는 방식은 사랑할 때의 그것에 비해 훨씬 복잡해진다. 사랑할 때는 변명이 필요치 않지만, 미워할 때는 변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워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변호해줄 핑곗거리를 만들어내 위안을 삼으려 하기 때문이다.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덫에 걸렸다. 야옹야옹 애처롭게 내지르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다. 다람쥐도 독수리도 사람도 심지어 동료인 고양이마저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니, 들으려 하지 않았다. 딱 한 명, 세상 모든 것에 연민의 귀를 열어 놓기를 즐기던 여우에게 그 소리가 들렸다. 착한 여우는 자신의 먹이를 날마다 고양이에게 나눠주었다. 숲 속 왕 사자가 그 소식을 듣고 달려와 덫에서 고양이를 구해주었다. 고양이가 가엾기도 했지만, 여우의 마음씨에 더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사자는 여우에게 평생 사냥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식권을 상으로 내렸다.한편, 무리 속으로 돌아간 덫 고양이를 다른 고양이들이 괴롭히기 시작했다. 왜 여우에게만 들리는 울음소리를 냈느냐고. 확실하게 고양이 소리를 냈으면 자신들이 듣고 달려갔을 터인데, 왜 그 공이 여우에게 가도록 했느냐고 다그쳤다. 겁에 질린 고양이는 좁쌀만 한 소리로 말했다. 분명히 고양이 울음소리를 냈지만, 힘이 없어 목소리가 작았을 뿐이야. 너희들은 못 들은 거고 여우는 들은 거지.덫 고양이는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었으나 속으로 삼켰다. 곧이곧대로 말했다가는 동료 고양이들이 그를 다시 덫으로 던져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희들은 내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어. 내가 사라졌는지 관심조차 없었지. 하지만, 세상의 아픈 목소리에 귀를 연 여우에게는 내 울음소리가 쉽게 들린 거지. 내가 더 크게 울었다 해도 여우의 결과가 있지 않은 한, 너희들은 내 목소리를 결코 듣지 못했을 거야.`/김살로메(소설가)

2015-03-25

칼 비테의 교육론

한 걸음 물러나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이론서의 도움을 받고, 아무리 현명한 이웃의 조언을 듣는다 해도 내 아이를 직접 키우는 동안에는 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더 이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 없을 시기가 오면, 그제야 숨어 있던 자녀교육에 관한 여러 객관적인 생각이 모아지곤 한다. 사람의 일이란 게 언제나 지나고 난 뒤에야 후회하는 것. 키우는 동안 제대로 된 자녀교육법을 실천할 걸, 하는 아쉬움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한들 당시 행한 육아법에서 더 진일보한다는 보장은 없다. 자녀교육에 대해 아는 것과 자녀교육을 하는 것은 이상과 현실만큼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 교육은 부모의 제일 큰 관심거리이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녀 교육 관련 책에 나오는 모든 이론과 방법들은 조금씩 다른데다 그 방법들을 자신의 자녀에게 적용한다고 다 궁합이 맞는 것도 아니다. 독서모임에서 읽은 칼 비테의 자녀 교육 관련 책들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교육법에 완전히 공감 가는 것은 아니어서 살짝 아쉬웠다.조기 교육의 필요성이나 자녀에 대한 인격적 존중 등에 관해 예화를 들어 설득할 때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자녀의 잘못이 곧 부모의 잘못이라는 논지를 펼치는 장면에서는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책임에 대해 어느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환경적 요인과 자녀의 기질적 성향도 무시할 수 없다. 여러 요인이 있을 터인데 유독 부모 역할만이 자녀 교육의 전부인양 강조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자책하게 된다. 칼 비테 자신의 교육법이 그의 아들에게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다고 해서 다른 부모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그렇다고 칼 비테 교육의 위대함이 깎이는 건 아니다. 시종일관 강조한 조기교육과 가정교육의 중요성은 이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5-03-24

숨결 사이

노트북 자판이 말썽이다. 서너 개의 글자판이 아예 먹통이다. 어르고 달래도 고장 난 부분의 글자는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대부분의 자판이 온전하니 안 되는 곳만 건너뛰어도 독해는 되겠지 싶어 써나가는데, 웬 걸 무슨 외계어 향연장 같다. 고작 몇 개의 글자판이 막혔을 뿐인데도 무슨 말을 쓴 건지 쓴 나도 읽어 내릴 수가 없다. 당황스럽다. 휴일이라 AS센터에 달려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글은 써야겠고. 이 응급사태를 어찌할까 싶다. 다행히 남편 왈 노트북에다 일반 자판기를 연결하면 되니 걱정 안 해도 된단다. 먼지 쌓인 자판기를 꺼내 연결 실행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자판이 술술 먹힌다. 아주 작은 곳 하나만 막히고 끊겨도 온전한 교감에 이르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여기까지만 접수했다면 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부 자판기가 연결되었기 때문에 이제 화면과 나 사이는 노트북에 딸린 자판을 쓸 때보다는 멀어졌다. 노트북 화면에 붙어 있는 일체형 자판기만큼의 공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멀어진 화면만큼의 그 거리가 나쁘지 않다. 글씨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데다 그만큼 어깨도 덜 굽혀진다. 살짝 노안이 온지라 사물을 너무 가까이 보는 것보다 조금 떨어져서 보는 게 더 편하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한 숨결이 곧 삶이란 얘기가 있다. 범우주적으로 보면 날숨과 들숨의 그 짧은 호흡 사이가 한 생애이다. 그 찰나 같은 생의 마당에 숱한 가지를 뻗어나가는 게 사람의 한살이이고 그 경계 안에서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자기 확립에 이른다.이런 생각에 이르니 산다는 게 신비하기만 하다. 화면과 내 눈 사이 그곳에 흐르는 시공간의 부피와 질량만큼이 곧 스스로 관장할 수 있는 제 삶의 범위이다. 작거나 큰 그 시공간 안에서 누구나 제 나름의 한 숨결을 가꿔나간다. 그 한 숨결이 곧 우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진다. 허물어진 담벼락처럼 사라져 버린 글자판 덕에 이 봄날 구름 같은 상념 속을 홀로 첨벙거린다./김살로메(소설가)

2015-03-23

희망 토끼

어찌 천재작가들은 요절할까. 볼프강 보르헤르트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스물여섯에 죽은 그는 요절 치고도 너무 이른 나이라 안타깝기만 하다.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렀다. 죽기 전 남긴 단편들과 대표 시를 모아 발간된 책이 `이별 없는 세대`이다. 실린 단편들은 보르헤르트의 짧은 생애만큼이나 아주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이라고 말하기보다 손바닥소설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정도로.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는 열다섯 편의 손바닥소설 중 가장 여운을 남긴다. 아직 젊었기에 순수했던 작가정신이 주인공 위르겐과 꼭 닮았다. 아홉 살 위르겐은 폭격으로 폐허가 된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매일 폐허 앞을 지킨다. 허물어진 잔해 속에 네 살짜리 동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동생이 죽었다 해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말했다. 쥐들은 죽은 시체를 먹는다고. 그러니 쥐들에게서 동생을 구하려면 매일 폐허를 지킬 수밖에 없다. 동생을 두고 집에 갈 수는 없다.우연히 그곳에서 `토끼 키우는 사내`를 만난다. 위르겐의 사연을 들은 토끼사내가 말한다.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라고. 그곳을 떠나면서 사내는 약속한다. 날이 어두워지면 토끼 한 마리를 데려오겠다고. 위르겐에게는 기다림이란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사내가 가져올 토끼를 위해 울타리를 만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짧은 얘기와 어울리게 문체 또한 단문인지라 작가의 의도가 꼬이지 않고 담백하게 잘 와닿았다. 야행 동물인 쥐가 밤에 곤히 잠들 리 없다. 어쩌면 위르겐이 희망토끼 사내를 만나기도 전에 이미 쥐들은 동생을 해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픔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간직한 영혼을 위해서라면 작가는 하얀 거짓말 정도는 진술할 수 있어야 한다.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토끼 사내는 필연으로 등장해야만 한다. 절망의 구렁텅이일수록 토끼 같은 희망의 은유가 배달되기를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니까./김살로메(소설가)

2015-03-20

언덕과 산

“원고를 세 번이나 네 번쯤 고치고 난 후에야 진짜 작품의 가닥이 잡힙니다. 시도 마찬가지죠. 단지 시는 40번이나 50번 정도까지 수정한다는 게 다르지요. 도널드 홀은 한 편의 시에 100여 개의 수정본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상상이 가나요?”`작가란 무엇인가`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인터뷰 중 한 구절이다. 그러니까 그의 소설이 윤곽이 그려지는 시기는 초고 때가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적어도 서너 번은 고치고 난 뒤 그제야 작품이 시작된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때서야 작품의 가닥이 잡힌다고 보니 그 뒤 완성에 이르기까지 퇴고 과정은 또 얼마나 많은 횟수가 필요할 것인가. 그와 반대로 일반적인 경우는 초고만 쓰고도 한 작품 완성한 것처럼 방치하게 되고, 두세 번의 퇴고를 거치기라도 했다면 이는 영원한 완성품으로 간주해 더 이상 쳐다보고 싶지 않게도 된다. 자기 작품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 아니라, 미흡한 줄은 알지만 거기까지 오는 것만도 지칠 대로 지쳐 제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쉽게 산에 오를 수는 없다. 레이먼드 카버의, 산 정상에 오른 자의 저 위엄서린 고백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이는 재능의 문제이기보다 적극적 의지의 문제이다. 한 여행가가 네팔로 산행을 갔더란다. 산행을 해야 하는 깊은 성찰이 없었으므로 불평불만이 많았다. 왜 이 산에 오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댔다. 그때 현지 가이드가 말했다. 여긴 산이 아니라 그냥 언덕이라고. 매일 높은 산을 오르는 그들에게 초록색이 보이는 한 여전히 그것은 언덕으로 간주될 뿐이었다. 그들에게 산이란 적어도 하얀 설산 정도는 되어야 했던 것.적극적 자기 긍정의 의지가 있어야 설산에 닿을 수 있다. 오르려고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시간 낭비이고, 오르면서도 지친 나머지 중턱에도 오르지 않은 채 산이라고 여기고 싶은 맘은 시간을 성급히 당겨 쓴 것이다. 백 개의 수정본이 있는 시를 짓는 마음으로 정진하고 매진했을 때라야 산에 오를 수 있다. 푸른 언덕이 아닌 흰 눈 풍경이 펼쳐지는 산./김살로메(소설가)

2015-03-19

마음병 예방법

난처한 병 중의 하나가 마음병이다. 마음병은 뚜렷한 신체적 변화가 있어서 아픈 곳을 딱 집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아픈 증세를 명확하게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픈 당사자만이 실체 없는 그 고통 앞에서 괴로워해야 한다. 심고(深痼)라는 말이 있다. 주로 고치기 어려운 깊고 중한 병을 말하는데 주로 마음의 병을 일컫는데 쓰인다. 그만큼 마음의 병이 고치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실 깊고 중한 병이라면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암이나 기타 위중한 병명이 마음병보다 더 앞자리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마음병이 중한 병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그 고통의 크기가 다른 어떤 질병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마음병은 우리나라에서는 화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쌓인 화를 삭이지 못해 생긴 몸과 마음의 여러 징후들이 모여 화병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만 있는 정신과적 질병이라는데 왜 억울한 일이나 한스러운 일을 우리나라 사람만 자주 겪는 걸까. 암묵적으로 이데올로기화된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우리 특유의 문화가 이런 현상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다.화병이 깊어지면 우울증이 되고 이것은 사회공포증이나 대인기피증을 유발할 수 있다. 사람 없는 치유, 관계없는 자기 성장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화병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사람과 사회의 관계망이 어긋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렇다고 그 관계망을 완전히 벗어나서 살아갈 수는 없다. 사람끼리 상처를 주는 것도 맞지만 사람이 사람을 긍정하게 하는 요소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관계망이 긍정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마음병이 오기 전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적이 없다는 것은 다른 말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을 맞추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기시미 이치로의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에 나오는 말이다. 마음병을 덜 오게 하려면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를 포기하면 된다는 현명한 가르침이랄까./김살로메(소설가)

2015-03-18

은유보다 환유

“깊은 슬픔을 밑에 깔고 어머니가 누리는 잔잔한 평화 속에서 죽은 삼촌과 내가 뒤섞이는 이 인접성, 나는 그것을 어머니의 환유라고 부른다. 어머니는 어느 날 아버지 대신 나를 부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순수하고 완벽해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환유는 결여된 은유다.” 황현산 선생의 `잘 표현된 불행`에서 `어머니의 환유` 일부분을 인용했다. 환유를 일컬어 결여된 은유라고 표현한 저 독창적 말씀에 매료되어 내 식의 해설을 쓰고 싶어졌다. 자세하게 분류하자면 여러 가지로 뻗겠지만 일반적으로 환유라 하면 표현하는 대상을 그것과 가까운 다른 말로 바꿔 말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앞치마가 환유가 되면 주부를 뜻하고, 월스트리트가 환유로 읽히면 영향력 있는 금융세력이 되는 것과 같다.그러니까 선생의 저 말을 나는 은유로 소진되고 남은 것들이 모여 환유가 된다, 라고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은유는 낭만이나 환희나 쾌락 같은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 라는 식의 낭만적 은유가 지나고 난 뒤의 파편 같은 현실이 환유가 된다. 저 인용문에서 결여된 은유는 어머니의 환유가 되는데 그것은 곧 자식인 작가 자신이다. 물론 그 원천은 작가의 아버지가 된다. 일반적 희생의 이미지인 모성에게 지아비의 결여는 세상의 결여이고 그것은 곧 당신의 결여가 된다. 그 결여의 기도는 자식을 향한다. 즉 어머니의 환유는 결국 아버지 모습을 한 자식에 대한 기대치라 할 수 있다. 그런 어머니가 자식 입장에서는 정신적인 우주가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제 결여를 다독이기 위한 텃밭으로 기능한다.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슨에 의하면 은유는 유사성에 의존하고, 환유는 인접성에 의존한다고 했다. 유사성을 표현하는 언어는 어쩐지 낭만적이고, 인접성을 표현하는 언어는 왠지 사실적이다. 낭만적 자족이 은유라면 결핍의 우주야말로 환유가 된다. 그러니까 환유의 발자국은 몽상의 구름에 가닿는 게 아니라 사실의 들판에 맞닿아 있다. 환유가 살아있는 실체적 진실이 되는 순간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5-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