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가곡 `마왕`을 여러 버전으로 보며 듣는다. 애니메이션이 따르는 몇몇 성악가 버전부터 흑백 화면으로 된 피터 디스카우를 지나, 바리톤 최현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을 접한다. 평소 좋아하던 가곡이긴 하지만 새삼 이 짧은 가곡 하나에 온몸과 마음을 빼앗긴다. 괴테의 시에 열여덟의 소년이었던 슈베르트가 곡을 붙였다. 셋잇단음표로 휘몰아치는 피아노 전주에 맞춰 노래가 이어지는데 성악가는 내레이터, 아버지, 아이, 마왕 등의 목소리를 차례로 연주한다. 폭풍우 휘몰아치는 밤 아픈 아들을 감싸 안고 집을 향해 말을 달리는 아버지. 꽃과 놀이와 소녀들이 있다며 아이에게 죽음의 세계로 유혹하는 마왕. 두려움에 떨며 마왕의 속삭임을 아버지에게 전하는 아들. 그것은 엷게 퍼진 안개 무리이며, 마른 나뭇잎들의 바스락거림이며, 오래된 버드나무의 음울한 흔들림일 뿐이라며 아이를 안심시키는 아버지. 하지만 안마당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 품에서 아들은 죽어있었다.`마왕`을 들으며 신해철을 생각했다. 아니 그 때문에 다시 슈베르트의 마왕을 클릭했다는 게 맞는 말이다. `마왕` 별호는 그와 무척 잘 어울린다. 강렬한 울림의 그 이미지는 노래에만 머물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했고, 정당한 이유 없이 개별자를 구속하는 것들에 반기를 들었다. 부패한 정치권이 도덕에 파격적인 유행가 가수들보다 더한 유해매체라고 일갈했으며, 부와 명성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바랐다. 세상을 바꿀 힘은 없어도 세상의 일부인 자신을 바꿀 힘은 있지 않겠느냐는 멋진 말도 남겼다.음악인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아티스트였지만, 논객일 때의 그도 더할 나위 없는 멋진 사나이였다.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음악적 열정과 사회적 패기의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발휘했던 마왕. 그 영역 안으로 유혹할 어린 양들이 이리도 많은데 정작 그 자신이 먼저 먼 길을 떠나버렸다. 안개 무리이며,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이며, 버드나무의 흔들림인 모든 것들의 진실을 노래하고 품었던 그를 애도하는 아침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