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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억의 고통

솥뚜껑을 보고 놀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자라를 보고 놀랐던 사람은 자라등과 비슷하게 생긴 솥뚜껑을 보고 놀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이 이런 경우다. 트라우마(Trauma)는 의학용어로 외상(外傷)이지만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을 일컫는다. 사람은 누구나 정신적 상처를 경험하며 산다. 정신적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피부에 생긴 가벼운 상처는 약을 바르면 쉽게 흔적 없이 치유된다. 우리 몸의 자생력 때문이다. 그러나 수술을 받은 큰 상처는 자국을 남기게 된다. 정신적 상처도 똑같은 과정을 가진다. 이를 우리는 트라우마라고 부른다.어릴 때 먹고 한번 체했던 음식을 평생 못 먹게 되는 경우도 일종의 트라우마다. 살면서 이런 경우는 많다. 교통사고 크게 한 번 낸 사람이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같은 증상이다. 가벼운 `기억의 고통`이라면 그냥 참고 넘길 수 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심리적 상흔으로 혼자만 치부해도 된다.그러나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의 충격으로 받은 스트레스는 `나쁜 기억의 고통`이다. 오랫동안 남을 수 있다. 이것이 집단의 트라우마라면 사회적 문제까지 유발할 수 있다. 포항에는 1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두고 대피소 생활을 한다. 심리적 불안을 다른 모습으로 재현한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건물의 붕괴와 같은 재산상 손실은 예산으로 재건이 될 수 있으나 정신적 피해는 회복이 쉽지 않다.우리사회의 관심이 지진이후 후유증에도 집중돼야 할 이유다. 심리치료 등이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으나 소홀함이 있으면 안 된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사물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 등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공포감으로 발전한다. 포항지역 시민들 사이에는 아이를 데리고 대구 등 친적집으로 떠나는 사례도 있다. 두려움에 대한 행동방식이다.미국의 9·11 테러 후 맨해튼 주민의 9.7%가 우울증 증세를 경험했다고 한다.`기억의 고통`에서 벗어날 우리사회의 관심은 지금부터 출발해야 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20

“교장 선생님은 출장 중”

도의회 교육위원회의 행정사무 감사의 단골 메뉴 중 하나가 `학교장의 출장` 문제다. 전국 시도단위 교육위원회가 모두 비슷한 문제로 한 번씩 논란을 벌인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문제이면서 특별한 대안은 없다.의원들도 학교장의 출장 과다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도 있으나 반대로 일부는 학교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다녀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지난 13일 열린 경북도의회 교육위원회의 행정사무 감사에서 김희수 경북 도의원(포항)이 교장 선생님들의 출장 빈도를 문제 삼았다. 지난해 경북도내 870여 교장 선생님들의 평균 출장 일수는 89.5일로 밝혀졌다. 방학을 제외하면 3분의 1이 출장일이었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비슷한 양상이다.김천의 모학교 교장은 지난해 239일이 출장일이었다. 김 의원은 “출장 여비는 여비대로 받고 학교는 비워두고 있다”며 교육공백을 우려했다.학교장들의 출장 횟수만을 가지고 학교경영에 도움이 되는지 그렇지 않는지 따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 발전을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일선 학교 상황에 따라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평가는 더욱 곤란하다. 특히 학교에서의 교육은 학교장과 선생님의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교육의 자율성을 지킨다고 보면 학교 쪽 판단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학교장의 출장 목적이나 내용을 살펴보는 배려도 이젠 가질 필요가 있다. 단순히 출장 횟수만 가지고 부정적 판단을 하는 것은 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측면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학교장의 출장이 지나쳐 문제가 된 사례도 있다. 일부에서는 감사에 적발돼 출장비가 회수된 경우도 있었다. 다만 이런 문제점이 반복 거론되는데 대한 학교당국의 투명성은 있어야 한다. 일선학교 교육현장에서 학교장의 역할만을 두고 판단하라면 지나친 출장은 학내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은 높다고 보아야 한다. 학교장의 잦은 출장으로 “교장 선생님을 만나 보기가 어렵다”는 말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17

빚내기 어려운 시대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 강화로 빚내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은 부동산대출 문턱을 높이고 서민금융정책 지원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신 총부채상환비율(DTI)` 도입이다. DTI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연간소득에서 1년간 갚는 원리금(원금+이자)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대출한도를 정하는 기준이다. 현재 DTI는 기존에 받은 주담대(주택담보대출) 이자와 새로 받을 주담대 원리금만 계산해 반영하지만 신 DTI는 기존 주담대 이자는 물론 원리금까지 따져 계산하는 게 차이점이다. 당연히 신 DTI가 적용되면 빚내기 어려워지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내년 1월부터 수도권·부산·세종 등 청약조정지역에 신 DTI를 도입할 경우 다주택자가 새로 집을 구입하는 게 어려워진다. 특히 두번째로 받는 주담대 만기를 최대 15년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만기를 20년 이상으로 늘리면 매년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줄어 DTI를 낮출 수 있는데, 이같은 꼼수를 원천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내년 하반기 중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도입되면 `빚내기 어려운 시대`가 본격 도래하게 된다. DSR은 기존 주담대 외에도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카드론 등 비주담대 전부의 원리금을 연소득으로 나눠 계산한다. 즉, 주담대 외의 방법으로 돈을 빌려도 대출규모가 크면 새로 대출받기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다만 정부는 DSR 기준을 금융회사가 자체적으로 정하도록 했고, 신 DTI도 전국이 아닌 투기지역·투기과열지역·청약조정대상지역에만 시행할 예정이다. 일단 집값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전문가들은 강력한 부동산 대출규제 강화(신 DTI·DSR)가 경제수요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민 전체 자산의 70%가 부동산자산인데, 이 자산가치가 줄면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미시적으로 가계부채를 줄이는 효과를 보겠지만 거시적으론 다른 산업분야에서 생길 부작용도 만만찮다는 얘기다. 세상사 얽히고 설켜 무엇하나 쉬운 일이 없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1-16

“아니면 말고” 사회

기독교가 절대적 신앙이었던 중세 유럽에서는 다른 종교를 믿으면 마녀라는 이름으로 붙잡혀 가 화형을 당했다. 16~17세기 종교 개혁기에 유럽에서 벌어진 학살로 죽은 자가 4만명에 달한다는 기록이 있다. 광신도적 현상으로 우리나라에선 이런 현상을 `마녀사냥`이라 부른다.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집단의 광기어린 행동이 빚은 불행이다.인터넷 등 소통 수단의 발달 때문인지 우리 사회도 이젠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지만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지 못하는 혼탁한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기도 한다. 사실과 주장이 구별되지 않는 비이성적 상황도 자주 전개된다.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인터넷상의 댓글들이 더 설득력 있게 유포되기도 한다.개인 간의 소통 능력이 활발해 지면서 신문, 방송 등 종래의 정보채널에 대한 의존도도 확 떨어졌다. 이러다보니 비정상이 정상을 압도하는 음모론적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럴듯하게 소문이 나면서 그 이야기를 믿는 대중이 많으면 될 뿐이라는 분위기다.`김광석 타살 의혹 사건`이 이런 경우다. 경찰조사에 의해 부인에 대한 혐의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당사자가 받은 심리적 충격은 되돌릴 수 없다. 이미 당사자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인자처럼 남아 버렸기 때문이다.음모론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듣기 힘든 격동기나 혼란스러울 경우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느 쪽인지 꼬집어낼 수는 없지만 종편방송과 인터넷 등 정보 홍수나 정보의 상업화가 원인일 수도 있다.중요한 것은 음모론을 앞세워 마녀사냥처럼 소문을 퍼뜨리고 책임을 지지 않는 우리 사회 풍토다.`아니면 말고`식이다. 이젠 이런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개인이든 단체든 사회가 엄격하게 철퇴를 내려야 한다. 고 김광석 부인의 반격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15

광군제 열풍

일명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광군제(光棍節)가 유통시장에 핫이슈가 되고 있다. 사드 해빙 분위기 속 광군제(11월 11일) 특수를 맞은 유통가가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지은 것. 지난해 사드보복 이전 광군제보다 매출이 더 크게 상승했다. 일선 면세점들의 중국인 매출은 10~30%씩 올랐고, G마켓과 글로벌 H몰 등 중국인을 겨냥한 국내 쇼핑몰들도 지난해보다 매출이 두 배 이상 뛰었다. 중국어로 광군이라고 하면 싱글이나 솔로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광군제는 중국에서 매년 11월 11일을 뜻한다. 1990년대 난징시에 있는 학생들이 11월 11일이 독신을 상징하는 숫자 1이 4개나 들어가는 날이어서 `독신자의 날`을 뜻하는 광군제라고 명명한 데서 유래가 됐다. 11일이 두번 들어간다고 해서 `쌍십일` 혹은 `솽스이(雙十一·11월 11일)`라고 부른다. 광군절이 중국의 연중 최대 할인쇼핑데이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지난 2009년 중국의 온라인 유통업체인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중국의 최대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가 솔로들을 위한 상품세일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미국에 블랙프라이데이가 있어서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사재기하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듯이 이때부터 중국은 광군제만 되면 상품 구매건수가 터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다만 광군제는 온라인에서만 진행되는 쇼핑축제라는 게 블랙프라이데이와 다른 점이다. 올해의 경우 중국과의 사드갈등으로 지난 해보다 광군제 마케팅이 현저히 시들했으나 최근 한·중 양국이 교류정상화에 합의하면서 화장품업계와 온라인몰을 중심으로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 현지의 일선 유통업체들도 광군제로 매출이 크게 늘었다. 현대백화점 역직구 전문사이트 글로벌H몰은 지난 1~10일 매출이 전년동기에 비해 96% 늘었다. G마켓 글로벌샵도 광군제 프로모션 기간(1~9일) 전년 대비 매출증가율이 106%에 달했다. 이랜드그룹의 중국 법인 이랜드차이나는 광군제 당일 하루 동안 중국 온라인쇼핑몰 티몰에서 767억원(4억5천600만 위안)어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날보다 39% 증가한 수치다. 인구가 많은 중국의 구매력이 광군제 열풍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1-14

정치인과 카리스마

지도자란 비전을 달성시키는 힘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대중을 이끄는 지도자의 힘을 `카리스마`라고 표현한다. 카리스마는 우리사회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진다. 카리스마가 없는 사회나 조직은 역동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한국은 과거에 누려볼 수 없었던 세계 4강 신화를 달성했다. 유럽 강호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승승장구할 때마다 한국인은 히딩크 감독의 카리스마에 열광했다. 카리스마가 곧 리더십이었다.카리스마는 그리스어 Kharisma에서 유래된 것으로 `신의 특별한 은총`이란 뜻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특별한 능력을 말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는 인과 덕으로 무장된 외유내강한 카리스마로 국가를 이끈다. 카리스마는 개인에 따라 외부에 비쳐지는 모습도 다양하다. 권력을 가졌다고 모두 카리스마가 있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같이 강력한 권력을 가졌어도 그 힘이 올바르게 사용되지 못하면 그 카리스마는 오래가지 못한다.그러나 카리스마는 선천적이지 않고 후천적으로 양성이 가능하다. 상대방이 스스로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은 학습으로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요즘 대구·경북 지역 국회의원들을 보고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많이 한다. 정권이 교체된 이후 우리지역 정치인의 무력감은 지역사회의 비전을 잃게 하고 있다. 20명에 달하는 정치인이 있으면서 정치무대에서 그들의 존재감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역동성을 전례 없이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치인은 그 지역이 뽑아준 지도자다. 지도자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지도자로서 수명을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인의 뼈아픈 각성이 필요하다.최근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들의 습관 7가지가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한번쯤 음미해 볼만하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성공한 것만으로 카리스마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다. 겸허하게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 습관이라 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13

커피 단상(斷想)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대단하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소개된 것이 100년을 넘었다 하나 대중화된 분위기는 다방이 본격 보급된 1960년대 이후부터다. 더구나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마시는 원두커피의 보급은 1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한국인의 커피사랑은 폭발적이라 할 만큼 한국사회를 점령해 가고 있다. 어떤 이는 이런 현상을 두고 한국인의 기질과 닮았다고 비교한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한국의 승부기질이 커피 애호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냄비 근성처럼 반짝했다가 언제 갑자기 시들해질지는 알 수가 없다.커피는 기호품이다. 맛이나 영양식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다. 커피 향을 즐기고, 맛 또는 자극을 즐기며, 멋스러움을 즐기는 기호품이다. 커피의 시장 점유율을 보면 매년 1조원씩 증가하고 있다. 2016년 경우 커피 시장규모를 6조4천억원 정도로 추계한다. 국제커피기구(ICO)에 의하면 한국의 커피 소비량은 세계 15위다. 미국이 1위며 브라질이 2위다.우리나라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연간 400잔으로 하루 한잔 더 마시는 꼴로 조사돼 있다.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최초로 마신 사람은 조선의 왕 고종으로 기록하고 있다.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관으로 피난 간 고종에게 러시아공사인 베베르가 고종에게 커피를 소개한 것이 우리나라 커피 역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어째 보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나라 운명 속에서 커피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1년간 러시아 공사관 생활을 끝낸 고종은 궁으로 돌아와서도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고종 실록에는 신하들에게 커피를 하사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커피는 원래 상류층 문화로 시작한 음료다.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 거리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우리를 상념의 세계로 끌고 간다. 커피와 낙엽과 독서는 잘 어울리는 콘텐츠다. 커피가 기왕 우리의 기호품으로 자리를 잡을 바에야 국민의 정서안정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일정량의 커피는 건강 증진에도 좋다니 말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10

레고 재테크

취미활동이 재테크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요즘 화제가 되는 `레고 재테크`가 그렇다. 레고 재테크는 일부 레고 마니아가 희귀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되는 레고 브릭 상품을 2~3개 더 구매해 소장하다 되파는 식으로 판매차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미국 이베이에서 거래되는 레고 상품 중 최고가 제품 가격을 보면 놀랍다. 레고 피규어 53개가 담긴 48㎝ 크기의 제품 가격이 무려 11만6천174달러(1억2960만원)에 이른다. 데스스타부터 엑스윙스타파이터까지 레고 스타워즈 브릭 24개를 합한 상품은 3만1948달러(3564만원)에 팔리고, 해리포터 미니피규어 55개 풀세트는 1만달러(1115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들 상품은 판매자가 제품 출시 당시 어렵게 구했거나 하나하나 제품을 모아 컬렉션으로 완성시킨 것이어서 노력에 따른 가치가 매우 높게 책정된 셈이다. 지난 2008년 미국서 300달러(33만원)에 판매되던 타지마할은 648만원에, 2007년 199달러(22만원)에 해외 출시된 `에펠탑`은 486만원에 거래된다.희귀 취미 상품의 가격 상승은 레고 만의 현상은 아니다. 레고가 각광 받기 훨씬 이전부터 피규어나 프라모델 등 모형 상품과 한정판 게임 소프트웨어, 만화책 등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일으킨다. 한정판 희귀 상품은 일정 시간이 흐르면 중고라 할지라도 상태만 좋다면 새 상품 이상의 가치를 부여 받을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이 맞물리는 시장 원리에 의해 희귀 상품은 더 이상 신규 공급이 없는 만큼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다만 레고 재테크에서 모든 레고 상품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주로 시장에 출시된 성인대상 레고 상품에 한정된다. 이는 성인대상 레고상품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단종되기 때문에 경매 사이트나 레고 커뮤니티 등지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취미로 모으는 레고를 사재기 해가면서 재테크에 열을 올리는 것은 볼썽 사납다. 그래서 레고가 목돈을 만드는 재테크라고 보기는 어려워 용돈벌이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게 좋다는 게 장난감업계 관계자들의 충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1-09

겨울철 간식 `고구마`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한 덕이다. 1950년대까지 만해도 보릿고개를 걱정했던 우리가 이젠 음식을 적게 먹는 다이어트식 문제로 고민하는 세상이 됐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우리의 경제성장에 감사할 뿐이지만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끼니를 걱정했던 그 시절이 너무 쉽게 잊혀질까 두렵다. 젊은이야 춘궁기(春窮期)가 뭔 말인지 조차 실감치 못하겠지만 또다시 보릿고개가 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살기 어려웠던 시절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은 오늘의 나를 더 튼튼하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는 사실은 명심해 볼만하다. 우리의 조상들은 묵은 곡식이 다 떨어지고 햇곡식은 아직 익질 않아 식량이 궁핍했던 5~6월을 보릿고개란 이름으로 세월을 보냈다. 보릿고개를 걱정했던 것이 불과 반세기 전 일이다.가뭄이나 장마 등 기후의 영향을 적게 받고 비교적 척박한 땅에서도 잘 가꿀 수 있고 흉년과 같이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할 수 있는 작물을 우리는 구황(救荒)작물이라 한다. 조, 기장, 메밀,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이 여기에 속한다. 구황작물이 요즘은 다이어트식으로 오히려 더 각광 받는다. 특히 고구마의 인기는 최고다.고구마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와 본격적으로 재배된 것은 1700년대 후반 일이다. 이름도 고귀위마(高貴爲痲)라는 일본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고구마는 인과 칼륨, 비타민 A, 비타민 C가 풍부하다. 섬유소도 많아 대장운동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혈압조절이나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낮출 수 있어 다이어트식으로 많은 호평을 받는다.여론조사 기관이 최근 우리나라 국민이 좋아하는 겨울 간식을 조사했다. 군밤과 군고구마가 25%로 1위를 차지했다. 붕어빵, 어묵, 라면, 호떡, 호빵 순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고구마가 간식에서도 국민 애호식품으로 등장했으니 고구마의 진가가 제대로 인정받은 셈이다. 고구마는 먹거리가 부족했던 초근목피 시절, 백성을 살리는 최고의 구민(救民) 작물이었다. 연명의 식품인 고구마가 오늘날 최고의 인기식품에 올랐으니 세상 일은 알 수가 없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08

문재인 케어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세웠던 대표적인 공약이 일명 `문재인 케어`라고 불리는 건강보험 개편안이다. 바로 국민들의 높은 의료비 부담률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63.5%로, OECD 34개국의 평균 약 80%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구체적으로는 난임치료, 초음파, 자기공명영상, 치매치료 등 3천80여 개 비급여 항목(성형·미용 제외)을 건강보험으로 지원해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2022년까지 30조6천억원을 들여 건강보험 보장률을 7% 포인트 끌어 올리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를 `재원 대책없는, 세금 먹는 하마`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가 추산한 것보다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 실패할 수 밖에 없고, 결국 적립금만 축내는 퍼주기 정책으로 끝날 것이란 주장이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보건복지부 국감 질의에서 “비급여를 급여화할 경우 이에 대한 의료행태 변화 시뮬레이션 등 추계가 전무하다”며 “의료비용 폭증 및 과다의료로 인해 건보재정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지난 3월에 밝힌 `2016~2025년 사회보험 중기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2018년부터 적자 전환되고, 건보 적립금도 2023년 바닥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폭이 커지면서 노인 의료비가 폭증해 2025년에는 20조원 적자로 돌아선다는 추계까지 나왔다. 기재부는 이와 관련해 노인 1인당 급여비가 2016년 96만원에서 2025년 180만원으로 급등한다고 추산했다.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에서도 비급여 진료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대폭 전환하는 데 대해 건강보험 재정이 부실해져 결국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란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비급여 진료항목에서 올리는 수익으로 급여진료 항목에서의 적자를 메꿔온 의료업계의 현실을 반영한 주장으로 보인다.국민 모두가 과도한 의료비 부담없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부가 건보재정을 어떻게든 마련해 `문재인 케어`를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로 안착시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1-07

사랑의 연탄

에너지 사업을 주력사업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대성그룹 전신은 대성연탄이다. 1947년 대구시 칠성동에서 출발한 이 기업은 연탄 제조를 시작으로 오늘날 에너지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당시 연탄의 발명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획기적 사건이었다. 석탄가루를 버무려 만든 원통형 고체연료인 연탄은 나무보다 부피가 적으면서 화력은 월등히 좋았다. 불길이 오래가는데다 경제성도 좋아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던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 변화였다.불이 잘 타게 하려고 위아래로 통하는 구멍을 뚫었다 하여 구멍탄이라 불리기도 했다. 1950년대 이후 연탄은 그 편의성과 이점이 알려지면서 가정의 난방용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다. 쌀과 더불어 서민생활에 가장 필요한 생필품으로 인식된 것이다. 서민들에게 꼭 필요한 생필품으로 손꼽힌 연탄은 이후 서민들의 삶과 함께 많은 애환을 겪는다.본격적인 추위를 앞두고 월동용 연탄을 비축하는 일은 서민들에겐 매우 중요한 가정사이다. 집으로 연탄이 배달되는 날이면 올겨울 추위 걱정은 끝이란 생각으로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겨울철 연탄가스 사고도 다반사였다. 일가족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한꺼번에 사망하는 사고가 종종 뉴스를 탔다. 가난한 서민들이 온돌방에 모여 잠을 자다 틈새에서 나온 가스로 봉변을 당한 것이다.올림픽이 열리던 88년 만해도 우리나라 가구의 80% 정도가 연탄을 주 연료로 사용했다. 이후 석유와 가스 사용으로 대체되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2%까지 떨어진다. 연탄의 사용으로 나무 땔감이 필요 없어 벌거숭이 우리 산림녹화에 기여한 공도 많다. 연탄의 역사는 서민의 역사다.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제법 쌀쌀해지고 있다. 연탄은행이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연탄사용 에너지 빈곤층을 돕기 위한 `연탄사랑나눔운동`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석유나 가스로 난방을 하지만 아직도 도시빈민지역과 고지대 달동네, 농어촌 산간지역에는 연탄으로 겨울을 보내야 하는 이들이 있다. 따뜻한 겨울은 그들의 애절한 소망이다. 사랑의 연탄 보내기 운동에 박수를 보낸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06

중국의 보이콧 외교와 반면교사

중국의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갈등이 해소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중단됐던 한국단체관광 여행상품이 7개월 만에 등장하면서 업계는 한·중 관계의 의미심장한 변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유통, 관광 등 국내 산업계는 조금씩 보이고 있는 해빙 조짐들을 한·중 관계 복원의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갈등의 골이 컸던 만큼 이번 한중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도 그만큼 커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특히 중국의 경제보복에 일방적으로 당했던 한국기업의 입장에서는 만감이 교차할 법도 한 일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대 중국 무역흑자 규모는 375억 달러로 집계된다.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했던 2013년 628억 달러에 비하면 40%가 줄어든 셈이다. 중국의 금한령(禁韓令) 조치 후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손실액이 8조원에 달한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중국의 외교 정책에 어이가 없음을 느꼈다. 우리기업이 양국의 관계가 복원된다는 것에 반색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런데 있다. 그러나 한·중 관계가 복원된다고 해도 이제는 우리도 생각을 달리하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사드보복을 통해 중국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부정적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것인데 두 번 다시 시행착오는 안 되겠다는 의미다.중국과의 관계는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있는 한 언제든 다시 갈등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중국은 과거부터 변덕이 심한 보이콧 외교를 적절하게 구사해온 나라다. 2010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중국의 반체제 인사인 류사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었다가 자국산 연어의 중국 수출길이 막혀 애를 먹은 적이 있다. 그 수출 규모가 무려 1조원을 넘었다고 하니 노르웨이 입장에서는 난감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일본도 센카쿠 열도 국유화 조치로 중국의 경제 보복을 받았다. 반면교사는 중국과의 해빙무드가 있는 지금 우리가 되씹을 교훈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03

포퓰리즘 논쟁

예산철만 되면 떠오르는 게 바로 정부예산에 대한 포퓰리즘(populism) 논쟁이다. 포퓰리즘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대중의 견해와 바람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 사상 및 활동을 가리킨다. 어원을 따지면 인민이나 대중 또는 민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한다. 포퓰리즘의 기원은 19세기 후반에 러시아에서 농민 계몽을 통해 사회 변혁을 꾀한 `나로드니키(Narodniki) 운동`과 미국에서 인민당(People`s Party)을 중심으로 전개된 농민운동에서 비롯됐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나로드니키운동의 주장 및 방침을 지칭하는 `나로드니키주의`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 포퓰리즘이며, 인민당을 파퓰리스트당(Populist Party)이라고도 칭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포퓰리즘운동은 농민(대중)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농촌 민주주의를 복원하려는 대중 중심의 사회운동으로 볼 수 있다.포퓰리즘은 대중에게 호소해서 다수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다수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그 자체에 명암이 함께 드리워져 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추진한 기아 퇴치 및 실용주의 노선은 대표적인 포퓰리즘 성공 사례다. 룰라 대통령은 월 소득액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에 정부가 현금을 지원하는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정책을 시행, 국가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임기 동안 빈곤율을 10% 이상 떨어뜨리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성과를 거뒀다. 반대로 포퓰리즘은 대중의 인기만을 좇는 대중영합주의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자층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이 대표적 사례다. 페론은 노조의 과도한 임금 인상을 수용하는 등 무분별한 선심성 복지정책을 폈다가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정부가 내년 예산안으로 내놓은 429조원 국가예산이 `포퓰리즘`의 어두운 망령에 시달리지 않고 국민을 살찌우는 데 쓰여지길 바랄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1-02

아빠 육아

복지국가란 국민이 모두 골고루 잘사는 행복한 나라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대체로 복지가 잘 발달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국가를 `국민의 집`이란 개념으로 나라를 경영한다고 한다. 집안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뜻이다. 자본주의적 개념으로 말하면 완전고용, 최저임금 보장, 사회보장제도 발달 등의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로 보면 될 것 같다.우리나라도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각종 복지제도가 전 분야로 확대되고 복지 개념의 혜택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복지 분야에 투입되는 국가 예산도 내년에는 전체 예산 대비 34%에 달한다. 처음으로 3분 1을 넘어섰다.그러나 선진복지 국가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적지 않다. 국민이 몸으로 느끼는 복지국가가 되기까지는 국민적 의식의 선진화도 중요할 것 같다.최근 우리나라도 남성 육아휴직이 급격히 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현상이 우리 사회에 번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육아휴직의 12.4%가 남성 육아휴직으로 집계되고 있다. 육아 휴직자 10명 중 1명이 남성이다. 그 증가 속도도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남성들의 육아 휴직 증가는 `여성은 육아` `남성은 일터로`라는 우리사회의 고정된 관념이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녀 성 평등 개념의 발전적 변화 양상이다.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스웨덴은 아빠와 엄마의 차이는 모유가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농담이 있다고 한다. 아빠 육아가 사회 통념으로 일반화 돼 있다. 남자가 육아 휴직을 신청한다고 해서 직장에서 이상스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 보수적 직장 분위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봐야하는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아빠의 육아휴직이 성 평등 해소나 저출산 극복을 위한 과정이 아니고 복지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사회의 성숙한 인식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01

자영업자의 한숨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근로시간 단축을 강행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영세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은 업계의 고충을 전혀 모르는 탁상공론식 정책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영세 자영업체 중 외식업계는 내년부터 최저임금이 7천530원으로 현재 6천470원보다 16.4% 인상하면 경영이 어려운 상황인데,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까지 더해지면 더 이상 경영은 힘들 것이라고 자포자기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현재 정부는 법정근로시간을 현행 주 68시간에서 주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을 대비해 시범운영에 들어가는 등 준비에 나섰지만 문제는 대응능력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체들이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도 문제지만 근로시간 단축이 만성적인 구인난 탓에 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체 대표인 A씨는 주야간 12시간 2교대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8시간 3교대로 생산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현재 추가 고용해야 할 인원이 30명에 달하지만 인건비는 차치하고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편의점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그동안 본인이 8시간 가량 근무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활용해 운영해 350만원 가량 수익을 올려왔는데,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근로시간까지 단축되면 본인이 12시간 이상 근무하면서 200만원도 안되는 수익구조로 바뀌게 돼 폐업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취지는 저소득 근로자들의 수익을 올려주거나 장시간 근로를 강행하는 노동환경을 개선해주려는 것일게다. 하지만 경제현장에서 들려오는 영세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들의 한숨어린 탄식은 왜 못들은 척 하는 걸까./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0-31

흡연과의 전쟁

오래전 군 생활을 한 사람들에겐 화랑담배는 추억거리로 충분하다. 담배 잎을 썰어 담배종이에 포장한 볼품없었던 담배였지만 한때는 군인들의 애용품으로 인기가 좋았다. 필터도 없다. 지금과 비교하면 담배 맛이랄 것도 없다. 쓰고 거칠고 독한 맛이다. 1949년 군용으로 첫 보급된 화랑담배는 이후 30여 년간 군인들의 사랑을 받고 사라졌다. 담배 유해론이 확산된 탓인지 알 수 없으나 군수품으로 적절치 못한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6·25전쟁 와중에도 많은 군인의 사랑을 받았던 화랑담배는 노랫말처럼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져 버렸다. 과거에는 담배를 못 피웠던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서 담배를 배워 오곤 했다. 성인이 되는 과정처럼 그들이 군에서 배운 담배는 어른들도 관례처럼 용인했다. 당시 군대서 제공되는 화랑담배는 공짜였다. 1인당 보급량이 많지는 않으나 무상으로 보급되는 것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훈련 중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지면 “담배 일발 장전”이란 구호가 자연스레 나오고 화랑담배 한입을 문 장병들은 쌓였던 피로를 연기 속에 날려 버렸다.금연 클리닉이 운영되는 요즘 군대와 비교하면 세상이 완전 바뀌었다. 화랑담배도 없어졌지만 부대 내 금연 클리닉까지 운영되고 있다니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다. 얼마 전 모 공군부대에 걸 그룹이 등장해 군인들로부터 금연 서약서를 받았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군인들의 호응도 좋아 100명이 넘는 장병들이 한꺼번에 담배를 끊겠다고 서약했다고 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금연 클리닉에 성공하면 휴가가 포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3개월 금연이 확인되면 포상 휴가 하루, 6개월까지 금연을 유지하면 추가로 하루를 더 준다고 한다. 현대화된 군 풍속도다.세계보건기구(WHO) 보고에 따르면 해마다 600만명의 사람들이 흡연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성인 남성 흡연율이 OECD 국가 중 1위다. 매년 5만4천명의 사람들이 흡연관련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장병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흡연과의 전쟁에서 필승은 당연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0-30

유리천장

한국의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국인들은 “결혼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는 인식이 많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미혼 여성 가운데는 46.7%가 그렇게 생각하고 미혼 남성도 38.9%가 같은 생각이다. 여성이 남성보다는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을 덜 가진 것으로 해석된다. 2015년 기준 전체 1인가구의 절반이 여성으로 조사됐다. 혼자 사는 여성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 평등 지수는 꾸준히 개선되고는 있다. 그렇지만 2015년 기준 70.1이다. 아직은 남녀 간 차별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고용률은 2015년 최초로 절반을 넘어섰다. 하지만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4.1%에 머물고 있다. 각종 지수에서 보면 아직 여성이 남성보다 불리한 여건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유리천장이란 말은 1979년 미국 경제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이 여성 승진의 어려움을 다룬 기사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여성이나 소수민족 출신자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란 뜻으로 통용화 됐다. 미국도 한때 여성들에 대한 성차별 해소를 위해 유리천장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지난달 한국을 방문했던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은 마치 집단적 자살 사회와 같다”는 말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꼬집어 눈길을 끌었다. 한국방문을 통해 느낀 소감을 이렇게 표현한 그녀의 본 뜻은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유리천장에 갇힌 존재와 같다는 말이다.한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직장의 중단이요, 경력의 단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젊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이것이 한국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라 진단했다. IMF 사상 첫 여성총재이자 프랑스 변호사 출신이며 G7 국가 중 처음으로 재무부 장관을 지낸 그녀의 지적이라서 더욱 따갑다.“한국은 재정 여력을 저출산 문제에 투입해 여성들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라”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0-27

블랙리스트 VS 화이트리스트

블랙리스트(Black List)는 일반적으로 노동계에서 `요주의 인물명부`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노동계의 은어로 사용해 왔다. 사용자(회사)는 노동조합의 조직활동에 대항해 조합 조직책의 인물명부 작성을 흥신소 등에 의뢰하고, 그 명부를 이용해 조직화에 대응하곤 했는데, 그 인물명부가 블랙리스트다.IT업계의 용어로는 상업적인 스팸을 보내는 인터넷 정보 제공자(ISP)의 주소 목록을 가리킨다. 스팸 메일, 악성 코드를 유포하는 IP 주소, 피싱을 조장하는 허위 사이트 등을 포함한다.이에 반대되는 개념인 화이트리스트(White List)는 유명하고 안전한 IP 주소를 따로 분류, 이 주소에서 보내는 메일은 모두 안정성 있는 내용으로 취급해 수용하도록 하는 목록을 말한다. 불법 사이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블랙리스트를 새롭게 업데이트하는 것이 한계에 이르면서 등장했다. 화이트리스트에 있는 메일만 받아볼 수 있게 설정하면 역으로 악성 메일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정치판에 등장한 블랙리스트는 정권을 뒤흔드는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선`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서 터져나온`문화계 블랙리스트`만 해도 박근혜 전 정부에 통렬한 도덕적 타격을 입혔다. 반면에 정치판의 화이트리스트는 IT업계에서 쓰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뉘앙스로 등장했다.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사건은 박근혜 정부 시절 `관제시위`에 나선 보수단체를 금전적으로 지원하라고 대기업을 압박한 단체나 개인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검찰이 `화이트리스트 의혹`사건 조사를 위해 전 국정원 간부와 전 청와대 비서관, 재향경우회 등 관변단체 인사들을 줄줄이 소환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이 이어지던 시절, 친정부 시위에 열을 내는 관변단체나 특정 보수단체들의 활동재원에 대한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추측이거나 소설에 가까운 주장, 막연히 이랬으리라고 짐작했던 사실들이 `화이트리스트`사건을 계기로 벌거벗은 몸을 백일하에 드러낼 모양이다.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둘 다 반드시 척결해야 할 권력형 범죄의 흔적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0-26

현대판 음서제

고려시대 음서제는 문벌 귀족들에게 주어진 특권 제도다. 5품 이상 관리의 자식은 과거시험 없이 관리가 될 수 있게끔 특채의 기회를 제공해 준 공인된 제도다. 고려시대는 통일신라가 무너지고 호족세력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된다. 호족세력의 등장은 귀족중심의 문벌체제가 강화되는 전기가 된다. 부모의 음덕으로 자식이 득을 보는 음서제는 대표적인 귀족 우대정책이다. 당시 나라는 이들 문벌귀족들에게 공음전(功陰田)이라는 토지를 하사했다. 이것 또한 자식들에게 세속을 허용한다. 부와 권력의 세습은 불공정 사회를 만들고 민심을 떠나게 한다. 백성을 섬기는 목민의 정치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신분제로서 악명이 높다. 타고날 때 자신의 신분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운명을 결정한다. 사회신분의 세습이다. 지금은 폐지되었으나 인도는 신분제 악습의 영향으로 아직까지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 제도의 선진화가 이래서 중요하다고 한다.최근 국감에서 드러난 강원랜드의 채용 비리는 이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후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부끄러운 사건이라 할 수 있다. 500명이 넘는 신입직원들이 지속적으로 부정청탁의 방법으로 채용돼 왔는데도 우리 사회의 감시가 없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현대판 음서제란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 강원랜드는 1998년 폐광지역 경제 회생과 관광산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정부가 설립한 회사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포함, 호텔, 스키장, 리조트 등을 운영하는 산자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작년기준으로 매출 규모가 1조6천900억원 정도이며, 영업이익이 6천억원을 넘는다.특히 내국인을 상대로 카지노를 운영하면서 돈 잘 버는 공기업으로 소문나 있다. 직원들의 복지도 우수해 젊은 사람들의 로망이 되는 직장이다. 강원랜드의 직원채용 비리는 취업절벽에 허덕이는 우리 사회 젊은이들에게 큰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일벌백계의 수사가 필요하다. 일반기업도 아닌 공기업에서 일어난 일이란 게 믿기지 않는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0-25

블라인드 채용

블라인드(Blind) 채용은 입사지원서에 신체 조건이나 학력 등을 기재하지 않는 등 선입견이나 차별적 요소를 배제하고 채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통상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신규사원을 채용할 때 입사지원서나 면접 등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출신 지역이나 신체 조건, 가족관계, 학력 등 인적사항을 신청서에 기재하도록 했다. 그랬던 것이 요즘에는 개인에 대해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신상정보를 요구하지 않고 대신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등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채용 방식이 인기를 끌고있다. 가장 앞장선 것은 바로 정부다. 정부는 지난 7월 5일 `평등한 기회·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7월부터 322개 공공기관 전체가 블라인드 채용 전면 시행에 들어간 데 이어 8월부터는 149개 지방 공기업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이 실시됐다. 7월 12일에는 663개 지방 출자·출연기관을 포함한 지방 공공기관 전체에 9월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 시행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이 발표됐다. 정부는 이미 지난 2015년부터 공공기관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바탕을 둔 채용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력서 등에 출신지와 출신 대학, 신체적 특징 등 차별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정보를 전형 과정에서 배제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 방침이 발표되자 대학생들과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학연, 지연, 혈연 등이 중시되는 비합리적인 사회 환경이 변화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스펙 경쟁에서 벗어난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이 많이 등용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반면 블라인드 채용 도입을 반대하는 측은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인 학력·학점을 표기하지 않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의견이다. 여기에는 원칙이 필요하다. 노력과 관계없는 학연·지연·혈연은 배제하는 게 옳다. 그러나 노력의 소산인 학력·학점 등은 반영하는 게 맞다. 열심히 노력한 삶의 징표를 깡그리 무시하고, 인재를 뽑으라는 것은 취직시험 자체의 공신력만으로 `맹인 코끼리 더듬기`식 인재선발을 강행하라는 억지정책이 될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