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생각할 때다

중국 군사전문가들 사이에 한반도에서의 전쟁 대비론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 인민군 부사령관 출신의 왕홍광 예비역 중장은 베이징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토론회에서 “당장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시기”라며 “중국 동북지역에 전쟁 동원령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어느 교수도 워싱턴 포스트 기고를 통해 “미국정부 안보팀은 한국에서의 전쟁은 불가피한 결과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정작 한국에 사는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전쟁이 딴 나라 얘기로 듣고 있는 건 아닌지 이상할 정도다. 올 들어 벌써 미국 하와이 주와 일본 후쿠오카 시에서는 북한 탄도 미사일 발사에 대비한 대피 훈련을 몇 차례 실시했다.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한국거주 자국민을 쓰시마로 옮기는 계획을 짜고 있다고 한다. 믿어야 할지 난감하다. 북한에서 7천km 떨어진 하와이에서조차 대피훈련을 벌인다는데 휴전선을 두고 북과 대치한 우리는 너무 한가한 것 같아 어리둥절할 뿐이다.북한과 전쟁 가능성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은 어떨까. 많은 사람이 “설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이 같은 민족인 한국에 대해 공격을 쉽게는 못할 것”이라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또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록 가만있지 않을 것이란 안이한 해석도 전쟁발발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일 것이다.이 달은 김정은 북한노동당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권력을 이어 받은 지 6년이 되는 달이다. 김정은은 그동안 4차례 핵실험, 41차례 탄도 미사일 발사로 권력을 장악해 왔다. 내년도 그가 내놓을 신년 메시지에 국제사회가 벌써부터 긴장하고 있다.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 한다. 북한이 망하면 자유민주국가인 한국과 미국이 코앞에 군사를 배치할테니 중국으로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그러면 한국은 이런 상황에 어쩌면 좋을까. 문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우리가 할 일은 유비무환뿐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20

욜테크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소비스타일로 떠오르고 있는 욜로(YOLO)족의 소비성향이 변하고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욜로족은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며 소비하는 태도로 유명하다. 내 집 마련, 노후 준비보다 지금 당장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취미생활, 자기계발 등에 돈을 아낌없이 쓴다. 이같은 욜로족의 소비성향이 소비는 최소화하고 저축에 올인하는 짠테크족의 소비 성향과 접합되면서 즐길 건 즐기면서도 아낄건 아끼자는 주의로 바뀌고 있다. 바로 `욜로족`과 `짠테크`가 합쳐진 `욜테크`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평소 불필요한 지출은 최대한 줄이고 즐길 때는 보다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한다. 욜테크 트렌드가 가장 활발하게 나타나는 분야는 여행, 명품, 뷰티케어다. 여행 욜테크의 경우 항공, 숙박, 교통 등 여행 준비과정에서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탐색해 최대한 합리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평소 카드 사용으로 최대한 항공 마일리지를 모아 여행시 활용하고 항공·숙박 등을 예약할 때는 여러 사이트를 비교해 최저가를 찾는 것은 기본이다. 또 무조건 저렴한 숙소를 찾기보다는 프리미엄급의 숙소를 고르되, 각종 프로모션의 혜택이나 할인코드 등을 꼼꼼히 챙겨 `합리적인 프리미엄`을 추구한다.명품 소비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명품을 살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명품을 구입할 때 해외직구나 중고매매를 이용하는 비중이 높고, 해외직구 시에는 관련 혜택이 있는 신용카드를 이용하거나 환율을 체크하는 등 최대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구입 대신 명품 렌털 전문점을 활용하는 빈도도 높다. 뷰티케어 분야에서는 고가의 화장품 대신 저렴한 제품을 구입하고 아낀 비용으로 피부관리, 네일케어 등 개인 맞춤형 서비스에 투자해 높은 만족도를 추구하는 이들이 많다. 욜테크는 신세대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반영하면서도 전통적인 실속을 노리는 일석이조의 소비패턴이다. 이런 삶의 패턴이 새로운 소비문화의 대세로 자리잡아 간다는 게 다행스럽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2-19

공시(公試) 열풍의 그늘

`신의 직장`보다 더 좋아 `신의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 있다. 공무원이다. 공무원 증원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열풍`이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서울도 지방도 어딜 가나 `공시열풍`이다. 심지어 대학 진학을 포기한 고교생들이 공시학원에 몰리는 바람에 대입학원이 망해 버렸다는 말까지 나온다.젊은이들이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호하는 이유는 먼저 안정성이다. 1997년 IMF 이후 직장의 안정성에 대한 선호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모험보다는 직업의 안정성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적 경향이라 하겠다. 수입성면에서도 대기업 못지않다. 정년 보장이 잘되고 늦은 퇴직이 장점이다. 연금과 복지도 최고 수준이다. 잘하면 퇴직 후 `공피아`로 새 직장을 얻을 수도 있다.부모조차도 “공무원이 최고”라 하니 자라나는 아이들이 공무원을 꿈꾸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나 우리 사회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시대적, 경제적 배경에도 물론 원인이 있다. 젊은이들이 모험과 도전을 통해 나라 발전을 견인토록 하는 환경을 만들지 못한 기성세대의 책임이다.그러나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고 공시족을 양산하는 것은 국가 장래로 봐선 결코 바람직 한 일이 아니다.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무원 증원을 늘리는 것은 국민의 부담을 늘릴 뿐 아니라 미래 지향적 선택도 아니다. 세계적 투자 귀재인 짐 로저스(75)는 한국을 방문해 “중국, 러시아 등 세계 어디를 가도 10대들의 꿈이 공무원인 나라는 없다”고 한국의 사정을 혹평했다. “5년 안에 한국 경제는 활력을 잃고 몰락의 길로 갈 것”이라며 “한국은 투자처로서 매력이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정부는 앞으로 5년간 17만여 명의 공무원을 추가로 더 뽑겠다고 한다. 공시족 열풍도 덩달아 당분간 더 지속할 전망이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수정되지 않는 한 공시 열풍은 바로 잡을 수 없다.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돕는 정책, 민간주도의 일자리 창출에 정책의 무게가 옮겨져야 한다. 청년취업 한파가 내년이 더 걱정이라 하니 난감한 일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18

한파(寒波) 즐기기

올겨울 첫 한파가 찾아왔다. 예년보다 빠르게 그리고 기온도 많이 떨어지면서 겨울 추위의 매서움을 제대로 느끼게 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 내려진 한파주의보로 만물이 움츠러든 모습이다. 서울의 아침기온이 영하 12℃로 떨어졌고 경북 북부지방도 영하 17℃를 기록했다. 한파는 한랭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특정지역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는 현상이다. 이때는 기상청이 한파주의보 등을 통해 한파로 예상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토록 알려주고 있다.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한파는 한반도 상공에 머물고 있는 영하 25℃ 이하의 찬 공기 때문이라고 한다.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1년 중 가장 추운 날이 양력 1월 15일 무렵이다. 24절기 가운데 가장 추운 때를 대한(大寒)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중국의 기준이고 우리의 경우는 소한(小寒)때가 더 춥다고 한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는 속담은 대한 추위가 소한보다 덜 춥다는 조상들의 경험담이다.옛날부터 농가에는 소한부터 날이 풀리는 입춘까지 약 한달 간 바깥출입을 삼가며 겨울나기에 들어갔다. 땔감과 먹거리를 충분히 준비하고 해동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겨울에 모든 동물이 월동에 들어가는 것처럼 사람도 추위를 피해 일손을 놓는다. 요즘이야 난방이 잘되고 따뜻한 방한복들이 많이 나와 생활패턴이 옛날 같지는 않다.학창시절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을 중강진으로 배웠다. 압록강 상류의 남안에 위치한 곳으로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19.5℃라 한다. 1933년 1월 2일 영하 43.6℃를 기록,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아파트 등 도심 속 생활로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느끼기가 예전 같지가 않다.옛 말에 겨울철 추위가 제대로 추워야 다음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맹추위가 해충을 없애기 때문이다. 겨울이 추운 것은 겨울답기 때문이다. 모처럼 찾아온 한파를 즐기는 것도 추위를 극복하는 방법이 아닐까./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15

혼잣말 효과

혼잣말이 운동효과를 높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흥미로운 심리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다. 미국 일리노이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혼잣말이 동기부여와 자제력 향상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학생 135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2주 동안 “운동을 좀 더 자주하자”는 내용의 격려의 말을 적도록 했다. 단, 이때 자기 자신을 `나(I)`라고 지칭하는 1인칭 그룹과 `너(You)`라고 지칭하는 2인칭 그룹으로 나눴다. 그 결과 1인칭 그룹보다 2인층 그룹이 미리 세운 운동 계획을 더 잘 실천했으며, 운동 효과도 더욱 크게 나타났다. 이를테면 “나는 날씬해질거야”라고 말하기보다 “○○야 너는 날씬해질 거야”라고 누군가가 말해주듯 혼잣말을 하는게 더 좋은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산다 돌코스 박사는 “혼잣말이 자기 행동에 대한 높은 수준의 제어를 보였다”면서 “어린시절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격려를 받았던 긍정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해 더욱 동기부여가 된다”고 설명했다. 다이어트 중 음식 앞에서 자꾸 무너질 때도 “넌 할 수 있어”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혼잣말`이 다이어트를 지속해 나가는 동기를 부여하는 데 효과적이라니 잘 활용하면 좋을 듯 하다. 혼잣말의 효과는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미시간주립대가 자기공명장치를 통해 확인한 결과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크게 혼잣말을 할 때 스트레스 수치가 내려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연구팀 제이슨 모저 박사는 “혼잣말은 자신의 경험과 거리를 두는 방법으로, 감정을 제어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혼잣말의 이같은 효과는 선생님의 기대심리와 학생의 부응심리가 만나서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로젠탈 효과`나 타인의 기대와 관심으로 인해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피그말리온 효과`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어쨌든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칭찬하는 것만으로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혼잣말 효과가 또 하나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2-14

`젠트리피케이션` 논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우리나라에 나타난 것은 오래된 일은 아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영국의 사회학자가 이 문제를 거론한 것이 1964년도다. 이후 미국 맨해튼 등 세계적 도시들이 도시개발과 함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겪게 된다. 최근 중국은 경제성장과 함께 나타난 도심인구 증가로 이 문제가 보다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작년 세계 150개 도시의 집값 상승률을 조사해 보니 중국이 상위 10개 도시 중 8개를 싹쓸이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도 베이징의 경우 1년간 집값 상승률이 30%다. 서울의 1년간 집값 상승률 3.1%와 비교하면 베이징의 집값 상승률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이 간다. 국가가 경제를 통제한다는 사회주의 국가지만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국가적 해법은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북경 교민과 주재원 등이 집중 몰려 살던 왕징지역도 집값 상승으로 변두리지역으로 이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도심공간이 재개발되면서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고 그곳에 살던 원래의 주민이나 임차인이 바깥으로 내몰리는 현상이다. 자유경제 체제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사회 문제화가 된다면 국가가 관리 통제할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 약자의 내몰림이란 측면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부정적 느낌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낙후된 도심공간의 개발이란 활성화 측면에서 보면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한국감정원이 서울 홍대 앞과 신사동 가로수길, 대구 방천시장 등 전국 12군데를 `젠트리피케이션` 이슈지역으로 선정한 바 있다. 사회 문제가 될지 관찰하겠다는 뜻이다.대구 중구청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 제정에 나섰다고 한다. 2년 전에도 같은 조례 제정에 나섰던 중구청은 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는 의회를 어떻게 설득할지 관심이다. 시장경제에 맞지 않아 반대했던 구의회는 이 문제에 어떤 대응을 할지도 궁금하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묘법의 지혜가 필요하다./우정구(객원 논설위원)

2017-12-13

“미망인이라 부르면 실례”

최근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는 말 가운데 일부 단어의 의미와 용법 등을 수정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국립국어원은 분기별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상의 언어들 가운데 논란 소지가 있거나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내용을 수정 보완해 오고 있다. 이번에도 40건의 여러 표현을 수정 발표했다. 그중 미망인(未亡人)에 대한 의미를 수정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미망인은 일부 여성 단체들이 표현상 문제를 제기하는 등 그동안 논란을 불러온 단어다. 현재 국어 대사전에는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이르는 말”로 표기돼 있다.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의미의 미망인은 다분히 성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다. 시대착오적이고 가부장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립국어원은 미망인의 뜻을 `남편을 여읜 여자`로 수정 표현했다. 그리고 주석을 달아 “다른 사람이 당사자를 미망인으로 부르는 것은 실례가 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본인 스스로가 겸손의 뜻으로 미망인으로 부르면 몰라도 타인이 부르는 호칭으로는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양성평등시대에 맞는 의미의 변화다. 특히 우리나라는 6·25전쟁을 통해 30만 가까운 전쟁 미망인이 생겨난 시대적 아픔이 있어 이 같은 단어의 수정만으로 당사자들이 느낄 심적 위안은 클 것으로 짐작된다.언어는 시대에 따라 생성도 되지만 없어져 버리는 것도 많다. 평소 우리 말에 대한 올바른 습관과 교육이 그래서 중요하다. 감기는 옛날에 고뿔이라 불렀다. 코에서 불이 난다는 뜻이다. 코에서 나는 콧물을 열심히 풀어대니 코에 열이 난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그러나 요즘은 고뿔보다 감기(感氣)라는 한자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고뿔이란 말이 이젠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랑하다`도 `생각하다`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사람을 생각한다고 해서 생각 사(思) 헤아릴 량(量)인 사량(思量)에서 바뀐 말이라 한다.앞으로도 언어의 변화는 무쌍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이 바뀐 미망인에 대한 의미를 익혀두는 것은 결례를 않는 방법이 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11

과학수사의 힘

1991년 3월 대구에서 발생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은 많은 아쉬움 속에 미제의 사건으로 남았다. 지금이었다면 미제사건으로까지 갔을까 하는 의문은 가져볼 만하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워낙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이었던 탓에 최선을 다한 수사라고 보아야 한다. 다섯 명의 초등학교 어린이가 대낮에 한꺼번에 사라진 사건에서 단 한가지의 단초도 찾지 못한 사실 앞에서 경찰은 별로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은 수많은 경찰력이 투입됐으나 결과는 맹탕으로 끝났다. 사건발생 11년 6개월만인 2002년 9월 같은 동네에 있는 학교 신축현장 뒷산에서 아이들의 유골을 발견했으나 공소시효 만료를 맞을 때까지 여전히 미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이 사건을 미스터리로 바라본다. 그러는 동안 우리 경찰의 수사력은 세월만큼이나 향상됐는지도 궁금해 한다.최근 미국 드라마 `CSI`나 한국 드라마 `아이리스` 등을 보면서 과학수사의 위력에 시청자들은 많이 놀란다. 물론 TV에 방영되는 과학 수사물이 흥미를 위해 다소 과대 포장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수사는 철저한 과학적 근거에 의해 실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과학수사란 이름으로 수사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과학수사란 현대사회 범죄가 날로 신속화, 광역화, 흉포화 해 가는데 대한 첨단적 대응 방법이다. 사건의 진실을 캐기 위한 현대적 장비와 기자재, 과학적 지식, 기술 등을 활용하는 것으로 탐문 수사의 한계를 극복하는 좋은 수단이다. 자칫 묻힐 뻔한 13년 전 살인 사건의 범인이 과학수사의 힘으로 검거된 일이 대구에서 발생했다. 대구중부경찰서 형사팀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별건의 사건을 수사하다 우연히 발견한 담배꽁초에서 13년 전 사건의 용의자의 것과 일치하는 유전자 정보를 얻게 된 것이다.오랜 세월이 지나도 경찰의 망을 피할 수 없는 DNA 등 과학적 증거 능력이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범인도 경찰이 내놓은 과학적 증거 앞에 꼼짝없이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담이다. 과학수사의 힘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08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에 장신(莊辛)이라는 대신은 양왕(襄王)에게 사치하고 음탕하여 국고를 낭비하는 신하들을 멀리하고, 왕 또한 사치한 생활을 그만두고 국사에 전념할 것을 충언했다. 그러나 왕은 오히려 욕설을 퍼붓고 장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장신은 결국 조(趙)나라로 갔는데, 5개월 뒤 진나라가 초나라를 침공해 양왕은 다른 나라로 망명하는 처지에 놓이게됐다. 양왕은 그제서야 비로소 장신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조나라에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들였다. 양왕이 이제 어찌해야 하는지를 묻자 장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고 했습니다. 옛날 탕왕과 무왕은 백 리 땅에서 나라를 일으켰고, 걸왕과 주왕은 천하가 너무 넓어 끝내 멸망했습니다. 이제 초나라가 비록 작지만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기우면 수천 리나 되니, 탕왕과 무왕의 백 리 땅과 견줄 바가 아닙니다.”여기서 망양보뢰(亡羊補牢)는`이미 양을 잃은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쓰였다. 다시 말해 실패를 해도 빨리 뉘우치고 수습하면 늦지 않다는 말이다. 부정적인 뜻보다는 긍정적인 뜻이 강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속담은 일을 그르친 뒤에는 뉘우쳐도 이미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한국에서도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뜻의 망우보뢰(亡牛補牢)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사후청심환(死後淸心丸)·만시지탄(晩時之歎) 등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아까운 목숨이 스러진 낚싯배 사고를 보며 느끼는 국민들의 소회 역시 바로 망우보뢰(亡牛補牢)로 표현되는`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낚싯배 안전에 대한 우려로 용역결과까지 나와있었는 데도 대책 마련에 우물쭈물 하다 터진 사고였다니 더욱 개탄스럽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가권력의 무능함에 대한 비난이 탄핵으로 이어졌는 데도 또 다시 이런 비극이 반복된 것은 무엇때문인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국가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2-07

“지방이 사라진다”

모 일간지에 실린 내용이다. “학교 운동장 빼고는 군(郡) 전체에 어린이 놀이터는 한군데도 없다. 경로당은 161군데나 있는데…”해외 토픽감이 아닌가 했다.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웃인 경북 영양군의 사정이다. 영양군에서 작년에 태어난 아기는 모두 74명. 울릉군(38명)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적었다. 2007년 신생아 수가 100명 이하로 떨어진 이후 10년째 이 수준이다. 지방소멸의 위기감을 다룬 일간지의 내용이다.2014년 일본에서는 일본의 지방소멸을 예고한 이른바 `마스다 보고서`가 발표되고 충격에 빠졌다. 일본의 총리대신을 역임한 마스다 히로야가 쓴 보고서는 “일본의 인구는 도쿄를 극점으로 빨려들면서 주변 지방도시 인구가 서서히 감소하면서 결국은 소멸의 길로 간다”는 내용이다. 대도시로의 인구집중 현상이 빚은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우리나라도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 오히려 더 심각하다. 금년 초 행자부는 업무보고에서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와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이 이어질 경우 30년 안에 전국의 1천383개 읍면동이 사라지는 지방소멸 현상을 예고했다. 일간지에 소개된 영양군이 바로 지방소멸 현상의 대표적 현장이다.“아기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늘고 있다”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통계청에 의하면 전국 81개 군 가운데 작년에 아기가 300명도 태어나지 않은 군이 52군데다. 농촌지역 64%가 존폐위기에 서 있는 것이다.“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가 지방과 중앙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지방이 소멸하면 중앙만 남는 것이 아니고 중앙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분권론자인 경북대 김형기 교수는 “우리나라 지방소멸 원인이 중앙집권적 체제에 기인한다”고 지적하고 “제대로 된 지방분권형 개헌으로 지방소멸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부쳐질 분권형 개헌안 마련 시한이 촉박하다. 분권형 개헌을 통해 지방소멸의 문제에 대응할 국민적 운동이 필요한 때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06

돌아오는 중국 관광객

유커(遊客·중국인 단체관광객)가 돌아왔다.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 3월 한국 단체관광 여행상품 판매를 금지했다. 그로부터 9개월이 가까워오는 지난 2일 중국인 여행객 32명이 베이징발 아시아나 항공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다. 이는 중국 국가여유국이 지난달 28일 베이징과 산둥성 지역에 한정해 한국 단체관광을 허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맞이한 국내 여행사 관계자들은 꽃다발과 박수로 이들을 환영하며 한·중 화해의 분위기가 관광 활성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다고 한다.사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닌 존재다.유커들은 `화끈하게` 돈을 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해외관광객의 1인당 평균 지출액은 1천625달러. 중국인 관광객의 경우엔 2천60달러로 다른 나라 여행자에 비해 지출액이 월등하게 많았다.유커가 한국에서 사용하는 돈이 면세점과 숙박업소, 관광지 식당과 주점 등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중국인 관광객의 감소로 국내 관광업과 숙박업 등의 매출이 7조4천500억 원 가량 감소했다는 국회예산정책처의 발표는 이를 증명한다.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올해 중국인 관광객은 329만4천 명이 줄었다. 한국 관광업계로선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중국 정부의 한국 단체관광 금지 조치가 하루라도 빨리 풀리기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재개의 조짐을 보이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한국 방문이 가져올 `그림자`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 여행자들이 지난 몇 년간 서울과 제주도 등지에서 보인 무질서와 비매너, 공공장소에서의 소란과 막무가내식 태도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한국인의 해외여행은 늘고,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은 줄면서 올 9월까지의 여행수지 적자가 122억5천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닌 유커를 쌍수 들어 환영할 수도, 마냥 홀대할 수만도 없는 우리의 입장이 딱하다./홍성식(문화특집부장)

2017-12-05

낙태죄와 현실 사이

`검은 시위`는 지난해 폴란드에서 처음 시작했다. 폴란드 정부가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자 이에 반발한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 `검은 시위`란 이름이 붙였다. 당시 여성들은 생식권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검은 옷을 입었다고 한다. 폴란드 정부는 결국 낙태 전면금지 법안을 폐기하고 말았다.우리나라도 작년 9월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료법 개정안을 예고를 했다가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의 반발에 부딪혀 물러서고 말았다. 이후 낙태죄 폐지에 대한 청와대 청원이 봇물처럼 이뤄졌다. 최근에는 그 수가 청와대가 의무적으로 답변해야 하는 기준 20만 명을 넘어섰다. 청와대는 “현행 법 체제는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빠져 있다”며 낙태죄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낙태죄는 OECD(경제협력개발국가) 35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 이스라엘 등 9개국을 제외하고는 임산부의 요청에 따른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3년 낙태죄 관련법을 제정했으나 지금까지 이로 인해 구속된 사례는 단 1건 뿐이다. 법은 있으나 사실상 사문화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음성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이 이뤄지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낳기도 했다.이번 청와대의 발표는 현행 법 체제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재고의 뜻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당장 폐지 등의 조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방안도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다.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는 11개 여성단체의 공동 모임에서 `2017 검은 시위`가 있었다. 청와대의 발표에도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위였다. 낙태죄는 태아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만을 두고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더 많은 사회경제적 요소들이 엉켜 있는 문제다. 사형제가 있으나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것과 같이 법과 현실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이런 것이다. 정부의 정책 결정이 궁금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04

중국인의 `꽌시`

중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관계를 중시한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과의 일이든 기관과 기관과의 일이든 관계에 많은 의미를 두는 전통이 있다. 관계(關係)를 중국말로 하면 `꽌시`라 부른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도원결의(桃園結義)는 중국인의 대표적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사건이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는다는데서 유래한 이 말은 남자들의 의리와 굳은 약속을 말하는 대명사로 쓰인다. 이 속에는 중국인의 전통적 `꽌시` 개념이 내포돼 있다.중국 전문가는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려면 `꽌시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중국인들은 `꽌시`에 목숨을 걸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오랫동안 중국인의 발목을 잡았던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를 없애려 했으나 `꽌시`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의 분위기만은 바꾸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익(利益)에 밝다”는 말을 했다. 중국에서는 군자란 학문과 덕망이 높으며 높은 벼슬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사회적 리더가 되는 이들에게는 의(義)가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라 가르치고 있다.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씩이나 찾아가 그를 감동시켰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도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다. 선량한 유비의 의리 있는 모습에 제갈량이 감동을 받는 것은 인간 관계의 다른 표현이다. 군자의 모범적 자세라 보는 것이다. 서구 사회의 합리성과 실용적 사고에 비해 중국은 매우 감성적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금지됐던 한국행 여행이 최근 베이징과 산둥성 지역에 한해 부분적인 해제가 됐다는 소식이다. 그러면서 한국행 관광객에게는 여전히 롯데호텔 및 롯데 면세점과 위락시설은 사용 못하도록 단서를 달았다. 크루즈 여행이나 한국여행 상품의 온라인 판매도 금지를 유지했다.한국을 길들이겠다는 그들의 생각에 옹졸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대국을 자청하는 그들의 `꽌시`가 이 정도인가 싶다. 공자가 말한 의(義)를 중시하는 중국인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중국 당국의 과감한 관계 개선의 의지가 필요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2-01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

흡입력 높은 문장과 간명하면서도 세련된 문체로 일본을 넘어 세계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죽음이란 삶의 대극(對極)이 아닌 일부”라고 말한다. 죽음과 삶이 반대의 개념이 아닌 병존하는 것이란 하루키의 인식은 평화롭고 안정적인 삶, 고통과 불화 없는 안락한 죽음을 꿈꾸는 사람들을 불안으로 내몬다. 기실 완벽히 안정적인 삶과 고통이 부재한 죽음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가 있을 뿐이다.최근 죽음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인식에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합법적 존엄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연명의료 결정 시범사업`이 시행된 지 이제 한 달이 넘어섰다. 이 기간 중 치료가 아닌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의료서비스는 받지 않겠다며 죽음을 맞은 사람이 7명이다.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는 연명의료(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를 거부한다”는 뜻이 담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놓은 사람들도 이미 2천 명이 넘어섰다고 한다.`존엄사`란 의학적 치료로 회복이 불가능한 사람이 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비록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존엄사라는 죽음의 방식이 옳다 그르다를 놓고는 아직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죽음이라는 심각한 문제 앞에서 명확한 태도를 취하기란 쉽지 않다.`존엄`이란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엄숙함`을 뜻한다고 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 모두는 존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은 당위에 그치고 있다.존엄해야 할 인간의 삶은 자연 재앙과 전쟁, 시기와 모함 속에서 휘둘릴 때가 적지 않다. `높고 엄숙한 죽음` 역시 로맨스 소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환상이다. 우리가 존엄한 삶과 존엄한 죽음이란 미망에 매달리는 이유는 현실이 이러하기 때문이 아닐까./홍성식(문화특집부장)

2017-11-30

카톡 예산

SNS는 Social Network Service의 줄임 말이다. 온라인 상에서 특정한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 사이에 관계망을 구축해 주는 온라인 서비스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요즘은 SNS가 대세다. 대표적 사례로 `카카오톡`이 있으며 `트위터` `페이스 북`과 같은 것들도 있다. SNS는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편리성 때문에 기업도 마케팅 수단으로 많이 활용한다. 편지나 문서로 하던 일이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빠르고 정확하게 본인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지금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 막바지 심의로 한창 바쁘다. 정부에서 넘겨온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심사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매년 11월 이때쯤이면 국회는 에산안 심의로 눈코뜰새 없다. 그러면서 이맘때쯤 등장하는 나쁜 관행 중 하나가 `쪽지예산` 문제다.쪽지예산은 정부 예산을 최종적으로 증액 삭감하는 권한을 가진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날아온 동료의원의 쪽지를 말한다. 자신의 지역구 예산에 대한 증액요구가 대부분이다. 예산 증액을 청탁한 셈이다. 올해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의원들 간 쪽지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는 소식도 들린다.국회의원의 오랜 관행인 쪽지예산은 법률적으로는 불법이다. 헌법 제57조에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지출한 예산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국회의원의 권한으로는 삭감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계수조정소위에서 증액되는 예산의 30% 정도가 쪽지라는 예기가 있다. 쪽지라도 제대로 사용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다수의 예산이 선심성으로 꾸며져 혈세를 낭비할 우려가 있어 쪽지의 문제가 있다. 또 청탁을 금지한 김영란법 위반 소지도 있다. 온 나라가 적폐 청산으로 시끄러울 때 국회의원의 쪽지예산 논란은 부끄러운 일이다. 나쁜 관행을 던져버리는 과감한 용기가 필요하다.요즘은 국회가 쪽지 대신 카톡이나 SNS를 많이 이용한다고 해서 `카톡 예산` `SNS 예산`이라고도 부른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29

딜레마

가난한 어머니에겐 아들이 둘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서 애지중지 키운 두 아들은 성실하고 효심이 깊었다. 큰아들은 노점에서 소금을 팔아 집안을 이끌었고, 작은아들은 비 내리는 거리를 뛰어다니는 우산장수가 됐다.하지만, 모든 인간의 삶이 그렇듯 어머니에게도 고민은 없지 않았다.갑작스레 소나기라도 쏟아지면 어머니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했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소금이 녹을까봐 노심초사하는 큰아들을 보면 한숨이 나왔고, 작은아들의 우산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걸 보면 미소가 그려졌다. 하지만, 두 아들의 각기 다른 입장을 생각하면 내놓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그런 곤혹스러움은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오래 이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딜레마(Dilemma)`는 바로 이런 어머니의 심정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철학용어인 딜레마는 `양도(兩刀)논법`과 동일한 의미. 보통의 경우엔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말을 대신해 사용된다. 대립관계에 있는 두 개의 가치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힘든 상태가 바로 딜레마다.`11·15 지진`으로 재산 피해를 입고 적지 않은 이재민이 발생한 포항은 현재 딜레마에 빠져 있다. 특히 지진이 초래한 상황을 국민들에게 객관적으로 알려야 할 기자들의 입장이 그렇다.정부 차원의 효율적인 지원과 재해대책 수립을 촉구하려면 지진으로 기울어진 건물과 고통 받는 피해자에 대해 보도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TV와 신문을 통해 전달되는 포항의 상황이 `혼란스러움`으로 오해돼 지역경제 활성화의 버팀목인 관광객의 발길을 끊어버리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도 동시에 해야 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것이다.천만다행으로 포항의 대표적 관광지인 죽도시장과 구룡포 대게·과메기상가는 지진 피해가 거의 없다는 것이 알려지고 `피해 지역을 찾는 것이 피해 입은 사람들을 돕는 것`이란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돼 사람들이 다시 포항을 찾고 있다고 한다. 어떤 재앙 속에서도 삶은 계속돼야 한다. 이것은 딜레마를 넘어서는 대전제다./홍성식(문화특집부장)

2017-11-28

과메기와 도시브랜드

과메기는 포항의 겨울철 대표 특산품이다. 과메기하면 모두가 포항을 상상한다. 매년 이맘 때 쯤이면 포항의 과메기는 일반식당의 반찬으로 또는 술안주로 인기가 높다. 포항의 구룡포는 과메기가 생산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고 있다. 겨울철의 온도가 과메기 맛을 내기 좋은 영하 4도에서 영상 10도를 유지한다. 백두대간의 차가운 북서풍은 이곳 호미곶으로 찾아와 적당한 해풍으로 바뀌어 과메기를 건조시키는데 매우 유용하다.도시브랜드가 대세다. 도시가 가진 역사, 사회, 문화의 특징을 브랜드로 표현하는 도시브랜드가 도시의 경쟁력으로 나타난다. 뉴욕시가 내건 `아이 러브 뉴욕(I love new york)`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도시브랜드 캠페인으로 손꼽힌다. 최초의 도시브랜드이면서 국가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뉴욕을 찾는 세계 수많은 관광객에게 뉴욕을 각인 시키는 효과가 있다.프랑스의 여행가방 전문 브랜드로 출발한 루이뷔통은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유일하게 내용물이 물에 젖지 않고 물 위에 떠 있었던 가방으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루이뷔통이란 브랜드 가치가 알려진 배경에는 이 같은 스토리가 입혀져 있었다.브랜드에 대한 일반적 개념은 도시브랜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문화 콘텐츠 가운데 한복과 한글, 비빔밥, 김치 등은 이젠 세계 어디에 가도 한국의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문화적 특성과 차별성이 있기 때문이다.포항의 브랜드가 꼭 과메기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항 브랜드 중 하나로 잘 키웠으면 한다. 부가창출을 포함한 경제효과가 3천700억원에 달하니 경제 가치로서도 훌륭하다. 포항은 지금 지진 피해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외지 관광객의 발걸음도 뜸해져 지역경제가 타격을 입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방문하고 김부겸 행자부장관도 현장을 찾아 “과메기 먹는 것이 포항을 돕는 일”이라며 과메기 홍보에 열을 올렸다. 과메기가 지역경제 회복의 전화위복 계기가 되면 좋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27

유포리아(Euphoria)

주식시장에서 주식이 계속 상승할 것이란 착각을 뜻하는 유포리아(Euphoria)란 말이 사용된다. 투자자에게는 주식 가격의 최저점과 최고점이 어디인지가 가장 뜨거운 관심사일 수 밖에 없으며, 또한 가장 예상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증시가 뜨거운 상승장이 될 때마다,`고점 논란`이 나오고, 고점의 징후를 설명하는 용어로 유포리아(Euphoria)가 쓰인다. `유포리아`는 원래 의학용어로 `신체적 및 정서적으로 행복한 상태`, 즉 다행감과 도취감을 뜻한다. 좁은 뜻으로는 주위 여건이나 본인의 객관적 상황에 걸맞지 않게 상쾌한 기분을 보이며, 주변의 시선과 관계없는 본인은 느긋하게 현실에 안주하는 상태를 말한다.이 용어를 증시와 경제에서는 상황이 좋을 때 투자자들이 상황이 계속 좋아질 것으로 가정하고 시장심리가 과도한 안도감과 희열감에 빠지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특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1994년 자신의 저서 `금융 도취의 짧은 역사(A short history of Financial Euphoria)`에서 `유포리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저서에서 투기적 도취감이란 `진리에 대한 차분한 통찰이 배제된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한 마디로 주식이 계속 상승의 상태로 유지될 것이라는 환각적 현상에 빠지는 도취감을 나타냈다. 또 다른 예로 물가 안정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이유가 없으며, 현재의 호경기 국면이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란 환상(economic euphoria)에 빠지게 된다. 이것도 자산에 대한 과도한 투자로 이어지게 되는 `유포리아`의 일종이다.이런 유포리아 현상이 우리의 정치판에서도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 노동정책, 일자리정책, 복지정책 등이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저런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지만 생산적인 논쟁과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대립과 반목으로 얼룩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지율이 70%를 오르내리는 데서 오는 정치적 유포리아의 환상에서 깨어나 협치의 좁은 길로 돌아오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1-23

벼룩도 낯짝이 있다

승리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학문을 후흑학(厚黑學)이라 한다. 청나라 말기 중국에서 파생한 이론이나 학문이라기보다는 생존방법을 제시하는 처세술에 가깝다. 그러나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는데는 후흑학 만큼은 필수라는 얘기도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중국의 역사 속 승리자인 영웅호걸은 대체로 명분과 자존심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남보다 두꺼운 얼굴과 검은 마음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나라 고조 유비는 비굴하였지만 천하를 얻었다. 간계하기로 유명한 조조는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점잖고 명분에 죽고 사는 사람이 반드시 영웅호걸의 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후안흑심(厚顔黑心)이라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 “얼굴은 두꺼울수록 좋고 마음은 안 보일수록 좋다”는 의미다. 여기서 후안은 방패요, 흑심은 창이다. 세상 온갖 사람이 비난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후안과 아무리 하고 싶은 말도 꾹 참는 흑심을 처세의 본질로 보는 철학이다.우리나라 속담에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 말이 있다. 아주 작은 벼룩도 얼굴이 있다는 말로 사람이 뻔뻔스러울 때 비유해 쓴다. 보통 얼굴이 두껍다는 것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으로 여긴다.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후안무치(厚顔無恥)가 그 말이다. 같은 후안(厚顔)이란 말이 붙었지만 후안흑심과 후안무치는 의미에서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영웅호걸의 길이다. 후자는 그야말로 부끄러움의 극치를 이를 때 표현하는 말이다.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후안무치하다는 비난을 또다시 받고 있다. 지난 17일 국회운영위가 국회의원 보조관 1명을 더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본회의 통과가 되면 국회의원 보좌관은 현재 7명에서 8명으로 늘어난다. 매년 67억원의 예산이 더 들어간다. 정치인들의 낯이 두껍다는 것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선거 때마다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설명하던 그들의 모습은 어디갔는지 없다. 머리 터지게 싸우던 여야가 자신들 이익에는 손발이 척척 맞으니 후안이 따로 없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22

포항지진이 시사하는 것

2017년 11월 15일 대한민국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남송리에서 발생한 지진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본진은 오후 2시 29분 31초에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이었다. 지난해 9월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에 이어 국내 지진 관측 사상 두 번째 규모였다. 이번 지진은 깊이가 9㎞로 경주 지진(15㎞)보다 얕아 체감진동이 더 컸다고 한다. 실제로 경북과 경남, 울산 등은 물론 진앙에서 300㎞ 이상 떨어진 서울에서도 건물의 흔들림이 감지될 정도로 전국 곳곳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경주 지진 이후 1년 2개월여 만에 발생한 역대 두 번째 규모의 지진으로 한반도가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5.0 이상의 강진은 10차례였다. 특히 이 중 가장 최근에 일어난 경주 지진과 포항 지진은 활성단층인 양산 단층대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었다. 양산단층대는 경북 영덕군에서 경남 양산시를 거쳐 부산광역시에 이르는 영남 지방 최대 단층대이다. 이 단층은 너비 1㎞, 길이 약 170㎞의 규모인 대단층이다. 양산 단층대가 주목받은 것은 여기에 고리, 월성 등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 양산단층 지역은 옛 조선시대에도 큰 지진이 발생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643년 인조 때, 울산에서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구쳐 나왔으며 지진해일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681년 숙종 때에도 큰 지진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는데, 이 당시의 지진 규모는 6.5 이상의 강진으로 추정되고 있다.양산단층이 지진의 원인이 되는 활성단층이냐의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최근 있었던 활성단층연구에서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으로 추정된다는 연구가 있었으나, 공개되지 않은 채 묻혔다는 얘기도 있다. 원전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양산단층과 울산단층 등에 대한 정밀조사가 신속히 진행돼야 한다. 아울러 원전의 내진설계도 더욱 보강돼야 한다. 더 이상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사태를 겪어선 안 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