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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천민 출신 대통령

인도는 아직도 세습제 신분격인 카스트 제도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다. 인도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등 인종차별적 사건의 상당 부분은 신분제와 연관 있는 일이라 보면 된다. 2014년 인도 내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일 4명 이상의 `달라트`라는 신분의 여성이 성폭행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달라트는 인도사회 신분제인 카스트의 4단계 신분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최하위 천민계층을 일컫는다. 우리나라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접촉만 해도 오염되거나 더럽다고 여겨지는 천민이라는 뜻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인도에서 이런 달라트 계층은 인구의 약 15%에 달한다고 한다. 인도에서 신분은 숙명적이다. 결혼, 직업,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신분에 따른 사회적 제약을 받는다. 다른 카스트와는 음식조차 나눠먹지 못하도록 사회 관습이 가로막고 있다.불가촉천민 출신의 임베드 카르(1891~1956)는 인도의 간디만큼이나 존경받았던 인물이다. 미국의 흑인 해방가였던 루터 킹에 버금가는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불가촉천민 출신이면서 불굴의 노력으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 영국에서 변호사와 박사학위를 얻어 네루 내각의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무엇보다 불가촉천민들의 해방을 위해 엄청난 인생 역정들을 펼쳐낸다. 그의 노력 등으로 1950년 인도에서는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이 완전 철폐된다. 네루는 임베드 카르 박사를 두고 “힌두사회의 모든 억압에 항거한 혁명의 상징 인물”이라고 평했다.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은 없어졌다지만 사회적 관습에 의한 차별적 행위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 인도의 현실이다.인도는 최근 달라트 출신의 대통령을 새로 선출했다. `람 나트 코빈드` 새 대통령의 당선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하층민의 지지로 주지사까지 지냈던 그가 정작 달라트 등 카스트 하위계층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는 평가 때문이다. 그의 당선이 인도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다. 인도에서 천민들의 숙명적 시련이 아직도 미완성의 일로 남을 것인지 좀 더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7-24

탕평정치에서 배우자

조선시대 영조 왕은 붕당(朋黨)정치의 결과로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붕당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알기에 왕위에 오른 영조로서는 탕평책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도 당쟁의 폐해를 막고자 탕평책을 쓴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는다. 정조는 국왕에 즉위한 1776년 9월 `탕평윤음`이라 불리는 자신의 정치이념을 발표한다. “탕평이란 곧 편당(偏黨)을 버리고 상대와 나를 잊는 이름인데 위에서 본다면 균등한 한 집단의 사람들이고 다 같은 동포이다. 지금 이후로 무릇 나를 섬기는 조정 신하는 노론이나 소론 할 것 없이 모두 대도(大道)에 나오도록 하라. 오직 그 사람을 보아 어진이는 등용하고 몹쓸 사람은 버릴 것이다”라고 했다.탕평(蕩平)이란 서경에 나오는 왕도탕탕(王道蕩蕩) 왕도평평(王道平平)에서 따온 말이다. 임금이 지켜야 할 법도를 이른다. 임금은 치우침이 없이 공정 무사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감싸서도 안 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서 물리쳐서도 안 된다. 그것이 임금님의 도리다.역사 속에서 우리는 붕당정치로 인한 갈등과 분열의 시대상을 많이 보았다. 사색당파라 불렀다. 노론 집안은 노론 집안끼리만 혼사를 맺었다. 노론과 소론 집안 아낙네들은 치마 둘러 입는 방법도 서로 달리했다. 머리 묶는 법도만 보아도 분파가 서로 다름을 알았다 하니 붕당정치가 낳은 폐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간다.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을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부른다.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익힌다는 것으로 과거의 역사를 교훈삼아 올바른 지식을 행한다는 뜻이다. 역사는 우리의 거울과 같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듯이 역사가 주는 교훈은 언제나 위대하다. 역사에서 보았듯이 영원한 것이란 없다.새 정부가 출범한지 두 달여가 흘렀다. 초심은 있는지, 협치의 정신은 살아 있는지 궁금하다. 나 홀로 과속 질주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역사 속 탕평의 철학이 지금의 대통합 정신과 다름이 없는게 아닌가 싶어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7-21

디터우족(低頭族)

중국에서 고개를 숙이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이른바 `디터우족(低頭族)`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 목숨까지 잃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전 스마트폰을 하다 육교를 내려오던 여성이 발을 헛디뎌 숨진 사고가 있었다. 한 여성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육교를 내려오다가 아래로 굴러떨어지면서 계단에 머리를 부딪친 뒤 육교 밑까지 떨어졌다. 이 여성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또 다른 10대 청소년은 스마트폰을 보며 공원을 산책하다가 호수가 있는지도 모르고 물에 빠졌다. 인적이 드문 밤 시간대여서 주변의 도움도 받지못해 갓 중학교를 졸업한 이 남학생은 결국 물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보행자는 물론 운전자까지 스마트폰을 보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잦다. 차량이 도로로 진입하는데 왼쪽에서 직진하던 오토바이가 그대로 부딪치는 사고를 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몇 미터를 날아가 떨어졌지만 가까스로 생명은 건졌다. 경찰 조사결과 오토바이 운전자는 운전 중에 고개를 숙인채 연신 휴대전화를 쳐다보다가 사고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당국은 이처럼 운전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디터우족이 보행 중 스마트 폰을 보는 것을 하지 말라고 막을 방법은 없어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디터우족들은 길을 건너면서 메시지를 보내고, 게임을 하고, 심지어 인터넷 쇼핑까지 처리한다. 그만큼 중국인들도 스마트기기에 대한 의존율이 높고, 휴대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2015년 상반기 중국의 휴대폰 중 스마트폰 사용비율이 이미 62%에 도달했으며, 이는 유럽의 평균 수준인 55%를 이미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다.우리나라도 중국 못지않게 높은 스마트폰 사용비율을 자랑한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 2015년 공개한 `무선통신 가입자 통계`에 따르면 국내 이동통신사 가입자는 약 5천800만 명을 넘어섰고, 이 중 스마트폰 가입자는 4천230만 명에 달했다. 디터우족이 결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7-20

왜 지방정부라 할까

요즘 지역언론에서 지방정부란 말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아니고 지방정부여서 그 의미가 사뭇 중요하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와 대칭되는 개념이다. 중앙과 지방이 동등한 입장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가발전을 이끌고 갈 축으로서 동등하다는 것으로 앞으로 지방의 역할이 커짐을 예고한다. 문재인 정부의 큰 화두 중 하나가 지방분권이다. 대통령도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 분권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방분권을 간절히 희망했던 지방으로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가울 뿐이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지방분권형 제도가 확실히 뿌리를 내리길 기대하고 있다. 지방정부란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 있다.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방정부의 개칭이야 말로 지방분권 개헌의 첫 걸음”이라 했다. 지방이 하나의 정부로서 인정을 받는 것인 만큼 개칭의 의미가 크다는 말이다. 지방자치 정치를 하는 나라 가운데 지방자치단체라는 호칭을 쓰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선진국은 주정부라든지 지방정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자치를 한다고는 하나 아직 권력의 분권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권력이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다. 이른바 중앙집권적 체제가 유효한 나라이다.1995년 지방자치제가 부활됐으나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은 없었다. 여전히 수도권으로 모든 분야가 쏠리고 있다. 국토 면적의 11.8%인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몰렸다. 수도권은 만원이 된 지 오래다. 경제와 교육, 문화, 대기업의 본사 등 어느 하나 수도권에 쏠리지 않은 것이 없다. 그 결과 지방은 인구이탈로 인한 소멸 예상지역이 늘고 있다. 젊은층의 도시탈출로 급격한 노령화에도 허덕이고 있다. 이런 불균형을 해소키 위한 국가적 결단이 곧 분권형 개헌이다. 권한의 지방 분산이 필수적이다. 지방정부가 이래서 필요하다. 요즘 등장하는 지방정부란 표현 속에는 지역의 간절한 희망이 녹아져 있는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7-19

최저임금제의 양면성

문재인 정부가 시간당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까지 올리겠다는 대통령공약에 맞춰 최저임금을 올리고 있다. 2016년 시간당 6천30원에서 2017년은 7.3% 상승한 6천470원이었고, 2018년 최저임금은 16.4% 인상한 7천530원으로 결정됐다.최저임금제도는 국가가 근로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수준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1인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최저임금은 노사공익대표 각 9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매년 인상안을 의결해 정부에 제출하면 고용노동부장관이 8월5일까지 결정해 고시한다. 사용자는 근로자들에게 최저임금 금액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하며, 최저임금액을 이유로 종전의 임금수준을 낮춰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액에 미달하는 임금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한해 무효가 되고, 최저임금액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간주한다. 만약 근로자가 받는 임금이 최저임금액 이하일 경우 사업장 관할 지방노동관서 근로감독과에 신고해 권리구제를 요청할 수 있다.그러나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은 일자리 정부를 외치는 문재인 정부 정책의도와 달리 일자리를 줄이는 극약처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살펴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들의 임금상승 압박이 커지면 경영악화로 인한 도산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비근한 예로 알바생보다 수입이 적은 편의점 사장도 생길 수 있다. 경기는 2% 상승하는데 최저임금을 16.4%나 올렸으니 시장전반에 미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정부가 재정을 통한 직접적인 지원이나 금융·세제, 카드 수수료 인하를 포함한 간접지원 방안,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영업 여건 강화 등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직접지원은 형평성때문에 한계가 있고, 간접지원은 발이 늦을 수 있다.근로자들에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 최저임금제도의 양면성을 정부가 잘 극복해주길 바랄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7-18

“나이롱 세상”

얼마 전 금융감독원은 상습적으로 허위·과다입원을 하는 수법으로 보험금을 편취한 보험 사기혐의자 189명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그들이 편취한 보험 사기금액이 무려 457억원에 달했다. 이들은 일가족, 또는 같은 마을주민 수십 명이 보험 여러 개를 가입하고 허위로 입원해 보험금을 타내는 방법을 동원했다고 한다. 전직 보험설계사, 병원 사무장, 의사, 환자 등이 함께 짠 사기극이다. 이런 사건에 관여된 환자를 우리는 `나이롱 환자`라 부른다. 가짜거나 엉터리 환자라는 뜻이다. 왜 `나이롱`이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천연섬유가 아닌 합성섬유 나일론에서 따온 말인 듯하다. 천연섬유에 비해 나일론은 그야말로 가짜인 셈이다. 그렇지만, 나일론은 20세기 최고 발명품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 것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푸대접을 받는 꼴이다.미국의 한 화학자에 의해 발명된 나일론이 첫 제품화 된 것은 칫솔이다. 그러나 나일론의 명성을 올려준 상품은 여성용 스타킹이다. 1945년 나일론 스타킹이 시판되자 백화점 앞에는 상품을 구입하려는 여성들로 장사진을 이뤘다.하루 수십만 개가 동나고 어쩌다 스타킹을 구입한 여성들은 기뻐서 즉석에서 치마를 끌어올려 신어보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천연섬유보다 튼튼하고 탄력이 있으며 색깔이 고운 나일론은 이후 낙하산, 텐트, 밧줄 등 군사용 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상품화된다. 나일론 스타킹은 얇고 투명한 특징 때문에 여성들의 애호를 받았다. 여성들이 다리의 털을 밀고한 것도 나일론 스타킹이 나오면서부터라고 한다.환자가 아니면서 환자인 척하는 사람을 우리는 `나이롱 환자`라고 익살스럽게 표현해 부른다. 세상이 자꾸 `나이롱`화 돼 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가짜가 판친다는 말이다.가짜 환자, 가짜 돈, 가짜 명품, 가짜 뉴스까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세상을 바로 쳐다볼 수 있는 맑은 지혜가 필요한 요즘이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해도 진실은 변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나이롱 환자`들은 알고나 있을까./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7-17

팥과 삼복더위

그저께가 초복이었다. 본격적인 여름 더위가 시작된다는 날이다. 삼복(三伏)날은 초복으로 시작해 중복, 말복으로 이어지는데 10일 간격으로 복날이 들어 모두 20일이 걸린다. 1년 중 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날이다. 복날에는 예로부터 몸보신을 위해 개장국이나 삼계탕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더위에 지친 몸을 보양하는 음식으로 지금도 개장국과 삼계탕은 복날 즐겨먹는 음식이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이 복날 몸보신을 위해 즐겨 먹었던 음식 중에 팥죽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팥의 원산지는 동양이다. 오랫동안 재배된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만 재배되는 특이한 작물이다. 우리 선조들은 팥의 효능을 잘 알아 잡곡으로 밥에 섞어 먹거나 죽 또는 떡의 고물, 속 재료로도 많이 사용했다. 특이한 것은 팥을 질병이나 귀신을 쫓는 식품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 것도 팥을 통해 질병이나 귀신을 내쫓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팥을 문짝 등에 뿌려 액운을 쫓는 풍습도 같은 이유로 전래됐다. 이런 팥에 생물학적으로 몸에 이로운 다양한 성분들이 함유돼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팥은 탄수화물, 단백질, 미네랄, 비타민 등 영양가가 풍부한 식재료다. 19세기 이전 아시아에서 주로 발생한 각기병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인들이 잘 걸리는 병이다. 쌀을 도정하는 과정에서 비타민 B1이 제거됐기 때문인데, 팥이 이 병의 예방에는 최고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팥의 효능을 열거하면 이렇다. 피로회복, 혈관질환 예방, 당뇨개선, 탈모개선, 부종완화, 변비개선, 다이어트 등이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되풀이되는 행사가 있다. 초복을 사흘 앞둔 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개고기 식용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캠페인이 열렸다. 동물보호단체들의 개고기 반대 캠페인이다. 반려동물이 늘어나면서 참여시민들도 늘고 있다. 팥은 삼복날 우리 조상들이 즐겨먹던 보양식 중에 가장 오래된 음식이다. 팥의 효능을 믿고 여름철 보양식으로 팥을 재료로 한 새로운 보양식을 개발해 보면 어떨까./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7-14

열대야

물폭탄처럼 퍼붓던 비가 그치자 폭염이 계속된다. 밤에도 열대야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 열대야는 밤에도 온도가 내려가지 않고 25℃ 이상일 때를 말한다. 평균적으로 건강한 성인은 7~8시간,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9~10시간 정도 잠자는 게 좋다. 수면부족은 낮에 깨어 있어야 할 순간에 자주 졸게 만든다. 이런 주간졸음증은 작업의 능률을 떨어뜨리고, 학습에도 영향을 미친다. 운전자의 경우 교통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열대야는 몇가지 생활수칙을 지키면 쉽게 이길 수 있다. 가장 먼저 생체시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더위에 지쳐 밤을 지새웠더라도 아침엔 일정한 시간에 깨어 활동해야 한다. 밤에 늦게 잤다고 늦잠을 자면 안 된다. 다음날 잠자는 시간도 일정하게 유지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잠자기 1~2시간 전에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면 좋다. 사람은 잠들 때 체온이 떨어지면서 잠드는 데, 밤에도 대기온도가 25℃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에는 체온이 떨어지지 않아 잠들기 어렵다. 따라서 잠자기 1~2시간 전 미지근한 물로 목욕이나 샤워를 해 몸을 식히고 피로를 풀어주면 수면에 도움이 된다. 다만 잠자기 직전 목욕을 하거나 너무 차가운 물에 샤워를 하면 잠드는 데 방해가 된다.침대 위에서는 스마트폰을 자제해야 한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LED 디스플레이어에는 380~500nm의 파장인 청색광(블루라이트)이 많이 방출돼 깊은 잠에 들기 어려워 수면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카페인이 들어있는 커피, 홍차, 초콜릿, 콜라, 담배는 각성효과가 있어 수면을 방해한다. 과식도 피해야 한다. 더워서 잠들기 힘들다고 에어컨을 장시간 강하게 틀어놓고 환기를 시키지 않으면 `냉방병`이 생길 수 있다. 냉방병을 예방하려면 실내온도를 너무 낮추지 말고 에어컨을 약하게 여러 시간 틀어놓는 편이 낫다. 낮에 적당한 운동을 하면 밤에 잠을 잘 자는데 도움이 된다. 야간 운동은 저녁 식사 후 산책 정도의 가벼운 운동이 좋다. 천하를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7-13

여름철 복병 `졸음운전`

졸음운전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서울방면 양재나들목 인근에서 발생한 광역버스의 다중 충돌사고도 졸음운전이 원인이라고 한다. 1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이 사고는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사고 장면이 공개되면서 또 한번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추돌사고를 당한 승용차가 차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들었기 때문이다.지난해 7월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발생한 관광버스의 승용차 추돌사고도 졸음운전으로 인한 참사였다. 앞서 가던 승용차에 타고 있던 20대 여성 4명이 숨지고 버스승객 등 38명이 다쳤다.졸음운전은 음주운전보다 사고의 위험도가 더 높다고 한다. 음주운전은 경찰의 단속이나 대리운전과 같은 제어 할 방법이라도 있다. 그러나 졸음운전은 운전자의 의지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하기 때문에 예측이 되지 않는데다 사고가 났다하면 대형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할 경우, 뇌에서는 그 순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블랙아웃`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블랙아웃` 현상은 술을 마시는 사람이 중간에 필름이 끊겨 기억을 못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의식이 없는 무방비 상태의 운전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상황에서 3초 동안 졸음운전을 했다고 가정하면 차는 83m를 이동하게 된다. 졸음운전의 위험성을 짐작케 하는 가정이다.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최근 5년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졸음운전 교통사고는 2천241건이고 사망자는 414명이었다. 치사율이 18.5%다. 과속사고 치사율 7.8%의 2.4배 수준이다. 졸음운전이 무서운 이유가 이런 수치에서도 알 수 있다.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았다. 가족과 함께 모처럼 맞은 휴가로 고속도로 운전 기회도 그만큼 늘어난다. 그러나 무더위와 열대야로 밤잠을 설쳐야 하는 등 운전자의 체력 소모가 많아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운전자들 스스로가 과중한 운전을 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잠이 오면 가까운 휴게소에 내려 잠시 쉬는 게 최상이다. 여름철 복병 `졸음운전` 퇴치에 우리 모두 앞장서 보면 어떨까./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7-12

장마

예부터 `오뉴월 장마`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태양태음력(太陽太陰曆), 즉 음력에 의하여 유래된 말이기 때문에 양력으로 말하면 6·7월을 가리킨다. 장마의 어원과 관련한 옛말에 `장마가 짧으면 북한의 관북지방 갑산(甲山) 색시들은 삼(麻)대를 흔들며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장마가 짧으면 삼이 덜 자라고, 흉마(凶麻)가 되면 삼베 몇 필에 오랑캐에게 몸이 팔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장마가 생기는 원인은 기상학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즉, 서로 성질이 다른 두 공기 덩어리 사이에는 전선(前線)이 형성되는 데 성질 차이가 크면 클수록 전선은 강화되면서 비나 폭풍우, 뇌우, 강풍을 동반하는 기상현상이 발생한다. 우리나라 여름철에 독특한 기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장마다. 여름철에 영향을 주는 장마는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과 북쪽의 차고 습한 오호츠크해 고기압이나 대륙성고기압 사이에 형성된 전선이 우리나라 부근에 위치하면서 시작된다. 남쪽과 북쪽의 강한 두 공기덩어리의 힘이 엇비슷해지는 6월말부터 7월 중순까지 어느 한쪽도 상대방을 제압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간에 만들어진 전선은 정체한다. 이 전선을 장마전선이라고 부르는데, 동서로 길게 형성된 것을 장마전선대라 부른다. 장마 전선대를 따라서 기압골이 이동하면서 흐리고 비오는 날씨를 약 한달 동안 반복하게 된다. 장마전선은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 한반도를 거쳐 북상하여 소멸된다. 장마전선이 완전히 상륙하게 되면 북태평양고기압으로부터 고온다습한 열대기류가 전선상에 흘러 들어오기 때문에 지역적으로 집중호우가 내린다.전국이 장마로 인한 물폭탄으로 난리북새통이다. 이런 날은 침수가 예상되는 곳의 지하에 주차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특정 지역에 시간당 20~30㎜ 안팎의 비가 쏟아지는 게릴라성 호우가 잦기 때문이다.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여름날씨가 된다. 또 장마철에는 습도가 높아서 불쾌지수도 높아진다. 실내에선 적당한 냉방으로 습도 조절이 필요하다. 비가 안와도 걱정, 비가 너무 많이 와도 걱정이다. 인생사 고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7-11

“힘내라 영양군”

경북 영양군이 인구회복을 위한 비상작전에 돌입했다는 소식이다. 16억원의 예산을 들여 `인구 지킴이 민간공동체 대응센터`를 건립하고 지역공동체 커뮤니티를 통해 육아문제 완전 해결을 선언했다. 대응센터에는 `키즈카페`를 비롯한 지역 맞춤형 보육 인프라를 구축해 자녀양육에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영양군은 이보다 앞서 신생아 육아양육비 지원 조례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만들기도 했다.영양군 인구는 전국 243개 기초자치단체 중 울릉도를 제외하고는 가장 적다. 작년 말 기준으로 1만7천713명이다. 1973년 전체 인구가 7만명을 상회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7월11일은 세계인구의 날이다. 1987년 7월11일 전 세계 인구가 50억명을 돌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89년에 유엔개발계획(UNDP)이 제정한 날이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헤리 텐트는 `인구절벽`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사람이다. 생산 가능인구(15~64세)의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인구절벽이 발생하면 생산과 소비가 줄면서 경제활동이 위축돼 심각한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15년 `세계지식포럼`에서 한국이 2018년 인구절벽에 직면, 경제 불황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한 바 있다.세계적인 인구 증가에도 불구, 우리나라는 인구감소로 인한 소멸위기 지역이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80군데가 소멸위기 지역으로 조사됐다. 소멸위기 지수 계산은 20~39세 여성인구수를 65세 이상 노인인구수로 나눈 값이다. 0.5 이하면 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영양군은 당연히 소멸위기 지역에 포함된다. 올해 1월 태어난 아기가 10명 미만인 전국 시·군·구를 조사해 보니 영양군이 상위 10위 안에 있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1.17명, OECD 국가 중 최하위다.도시로의 이주가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면적의 90%인 농어촌 지역의 인구가 19%에 그치고 있다. 영양군이 2025년까지 인구 2만명 회복을 선언했다. 영양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양군의 파이팅은 우리 모두의 파이팅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7-10

대구 `달서맥주` 아세요

우리나라에 맥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76년 무렵이라 한다. 개항으로 일본인들의 거주가 많아지면서 맥주가 한국에 상륙하게 된 것이다. 처음 들어온 맥주는 삿뽀로맥주라 한다. 그 이후 일본 기린맥주가 서울에 총판회사를 설립하였고, 1933년에는 조선맥주 주식회사를 일본인 자본으로 우리나라에 설립하게 된다. 해방 후 맥주는 미 군정청의 관리를 받다가 1952년 민간으로 넘어가 오늘에 이르게 된다.요즘 수제맥주(크래프드 맥주)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2014년 주세법의 완화로 대기업이 아닌 개인이나 소규모 양조장이 자체 개발한 맥주들이 연이어 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일 향이 나고 홉의 쓴 맛이 짙게 배어 나오는 등 각기 개성만큼이나 독특한 맛을 자랑하고 있다. 수제맥주 축제도 열린다. 이런 추세라면 수제맥주는 10년 후쯤에는 시장 점유율이 10%까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맥주 양조기술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그리스, 로마로 그 기술이 전수되고 다시 독일과 벨기에 등을 거쳐 영국으로까지 건너갔다고 한다. 독일이 맥주의 본고장처럼 알려진 것은 맥주 제조 과정에 최초로 홉을 넣어 쓴맛과 방향이 강한 맥주를 개발했기 때문이다.대구 달서구 지명을 딴 수제맥주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편의점 CU는 지난 4월 수제맥주 `달서맥주`를 출시했다. 지역특화 마케팅을 내세워 출시한 이 맥주는 이름의 본고향인 달서지역에서 제법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달서맥주` 병 포장에는 이 지역 명소인 두류공원과 83타워, 대구수목원 등이 그려져 있다. 두류공원은 매년 대구 치맥페스티벌이 열려 맥주의 상징성이 있는 곳이다. 달서구에서는 `달서맥주` 판매량이 대구 전체 `달서맥주` 판매량의 32%에 이른다고 한다. 달서구민들의 애정이 돋보인다. 주세법 완화로 `달서맥주`처럼 강서지역의 이름을 딴 강서맥주, 해운대 등의 제품도 생겨났다. 앞으로 더 다양한 맥주의 등장이 예상된다. 우리사회가 개성과 다양성을 뽐내면서 세상은 자꾸 바뀌어 가고 있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7-07

햄버거병

햄버거병을 아십니까. `햄버거병`은 의학용어로 `용혈성 요독증후군`으로 불리는 병으로, 급성신부전 등을 야기하는 질환이다. 1982년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은 후 집단으로 발생돼 처음 알려졌다. 이후에도 미국에서는 계속 환자가 발생했고, 유럽 여러국가에서도 집단발생되고 있다. 이 질환은 주로 대장균이 감염된 소에서 생산된 우유 또는 그 소고기를 제대로 익혀 먹지 않을 경우, 그 균에 감염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섭취한 대장균에서 독성물질인 쉬가톡신(Shiga toxin)이 분비되고, 인간 신장세포에 결합해 세포속으로 침투한다. 이후 세포가 필요로 하는 단백질 합성을 억제함으로써 세포를 죽여 신장을 파괴한다. 그래서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급성신부전을 야기하는, 매우 무서운 병이다. 주로 어린이들에게 자주 발생한다. 이처럼 무서운 병이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맥도날드 햄버거를 사먹은 아이에게 발생해 충격을 주고있다. 맥도널드 한국지사는 햄버거 속 덜 익은 고기패티로 인해 HUS(용혈성 요독 증후군)에 걸리게 했다는 혐의(식품안전법 위반 등)로 5일 고소당했다.고소인 측 법률대리인 황다연 변호사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햄버거를 먹기 전까지 건강했던 A양(4)이 덜 익힌 패티가 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햄버거병`이라고 불리는 HUS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고소인 측에 따르면 작년 9월 A양은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고 2~3시간 뒤 복통을 느꼈다. 증세가 심해지고 설사에 피가 섞여 나오자 3일 뒤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HUS 진단을 받았다. A양은 2달 뒤 퇴원했지만, 신장이 90% 가까이 손상돼 배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하루 10시간씩 복막 투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맥도날드 측은 기계로 조리하기 때문에 덜 익힌 패티가 나올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그릴의 설정이 잘못되거나 잘못 가열하는 경우 제대로 조리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고소인측의 주장이다. 우리 아이들이 즐겨 먹는 햄버거, 자제하라고 권고해야 할 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7-06

포니 대령과 인연의 끈

흥남부두 철수작전은 알아도 그 당시 미10군단 참모부장 겸 탑재참모였던 애드워드 포니 대령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10만 피난민의 목숨을 건진 전쟁영웅이자 지금의 포항 해병사단을 있게 한 미국 장교가 포니 대령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포항 해병대 1사단은 2010년 포니 대령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서문에서 본부앞 네거리까지의 중심도로를 포니로(路)로 명명했다. 포니 대령과 포항해병대 1사단과의 깊은 인연을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다. 1950년 12월, 흥남부두 철수작전은 역사적으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세계전쟁사상 가장 인도주의적 작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10만 명의 피난민을 싣기 위해 35만 t의 전쟁 물자를 내려두고 떠났던 당시 군 지휘관의 인도적 결심을 두고 한 말이다.이 작전에 마지막으로 투입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정원 60명의 화물선. 선원 47명이 이미 타고 있어 사람이 탈 자리라고는 13자리 밖에 없다. 그러나 전쟁물자를 내리고 10만명의 피난민을 이 배에 태운다. 정원의 무려 230배가 넘는다. 역사는 단일 선박으로 가장 큰 규모의 구조작전을 성공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한다. 이날 흥남부두를 떠나는 장면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그 상황들이 묘사됐다.에드워드 포니 대령은 당시 미 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을 설득해 10만명의 피난민을 수송선에 태울 수 있도록 한 인물이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그는 한국에 돌아와 해병대 사령부 수석고문으로 더 일한다. 경기도 금촌에 창설된 해병대 1사단을 포항에 이전하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 최근 미국 방문 길에 올랐던 문재인 대통령이 맨 먼저 들린 장진호 기념비는 흥남부두 철수작전을 성공케 한 전투로 유명하다. 중공군 12만 명에게 포위당한 미군 1만7천명이 17일간 치열한 싸움을 벌인 전투였다. 포니대령의 후손이 해병대 초청으로 포항을 방문했다. 외손녀 엘리스 크루그(60)와 증손자 벤 포니(31)다. 포니대령이 만든 인연의 끈이다. 포항과의 기분 좋은 만남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7-05

졸혼(卒婚)

`결혼을 졸업한다`라는 뜻으로, 혼인관계는 유지하지만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념이다. 나이 든 부부가 이혼하지 않으면서도 각자 자신의 여생을 자유롭게 살며 즐기기 위해 등장한 신풍속이다. 이는 결혼의 의무에서는 벗어나지만, 부부 관계는 유지한다는 점에서 이혼, 별거와는 차이가 있다. 졸혼이라는 개념은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杉山由美子)가 `졸혼을 권함(卒婚のススメ)`이란 책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졸혼을 결정한 부부들은 서로 간섭하지 않고 그동안 자녀 양육과 경제 활동 등으로 누리지 못했던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는 한 집에 함께 살면서도 서로 간섭만 하지 않거나 별거해 따로 살며 가끔 만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졸혼이 화제가 된 것은 최근 모 방송프로에 나온 중견탤런트인 백일섭씨가 졸혼을 선언하고 홀로서기를 하는 모습이 방영되면서부터다. 실제로 백일섭은 KBS2 `살림하는 남자들2`에서 결혼 40여년 만에 감행한 졸혼이라는 낯선 경험을 고백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 방송에서 백일섭은 제작진에게 졸혼한 사실을 전하며 “아내와 만난 지 오래됐다. 1년 됐다. 집을 나온 지 16개월 됐다”고 고백했다. 백일섭은 40년 결혼 생활을 접고 졸혼을 선택한 이유로 “같이 살아도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정답게 살면 같이 사는게 좋은데, 그런데 난 성격상으로 처음부터 그렇게 맺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돌이킬 수가 없었다. 늘 아들한테 `네 엄마한테 잘해라`라고 이야기 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이 영향을 받은 것일까. 급기야 최근 인기를 끌고있는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연출 이재상·극본 이정선)에서도 졸혼을 선언하는 남편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드라마에서 차규택(강석우 분)이 오복녀(송옥숙 분)에게 졸혼선언을 하고, 충격을 받은 아내가 자궁근종이란 병으로 수술을 받게되는 장면이 그려졌다. 100세 시대가 다가오면서 황혼이혼이 늘어난다는 뉴스에 이어 졸혼이 새로운 풍속도로 등장하고 있다니 입맛이 씁쓸할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7-04

울릉도 수토사(搜討使)

울릉도에는 조선시대 관리들이 이곳을 찾아와 현장을 답사하고 이주민들의 생활과 치안을 관장한 내용의 각석문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2001년 울릉도 도동항 축항공사 때 발견된 도동리 각석문과 수토사(搜討使)들의 활약이 담긴 태하리 각석문 등이 그런 것들이다. 각석문에 실린 내용만 보아도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나라 땅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최근에 월송만호 박수빈이 1803년(순조 3년) 수토관으로 울릉도에 들어갔다가 자신과 수행원의 이름을 새겨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각석문이 발견됐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처음이 아니라 사료적 가치는 높지 않더라도 울릉도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가 수호해 왔던 땅이라는 사실이 또 한번 입증된 셈이다. 조선시대는 일본 왜구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한 수토정책을 오랫동안 써왔다. 수토정책의 선봉장은 동해안의 방위를 책임진 삼척포 진영이 맡았다. 삼척 영장과 월송포 만호는 교대로 수토관으로 임명되어 울릉도를 왕래하며 관리를 했다. 울릉도로 가는 뱃길은 울진이 최적지였다.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는 당시 수토사들이 머물렀던 대풍헌(待風軒)이란 건물이 아직 남아있다. 대풍헌은 바람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관리들이 이 곳에서 순풍이 불 때를 기다렸다가 울릉도로 떠났던 것으로 짐작된다. 취약했던 당시 뱃길로 미뤄보아 수토사들의 고생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대풍헌은 독도 영유권 문제가 국제 이슈화 되면서 당국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165호로 지정돼 있다.경북도와 울진군은 2011년부터 울진 구산항 일원에서 울진 수토사 뱃길 체험행사를 벌이고 있다. 올해로 6번째다. 2015년부터는 수군복장을 한 수토사들의 가장행렬도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울진군은 수토사 기념관 건립도 준비 중이라 한다. 조선시대 수토사들의 역할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역임을 확실히 알리겠다는 의도다. 조선시대 수토사들이 남긴 발차취를 더듬어보며 다시한번 우리 선조들이 힘들여 지켜온 우리의 땅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다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7-03

슬로시티 청송

슬로시티 운동은 2002년 7월 이탈리아 어느 작은도시에서 시작됐다. 자연과 전통의 가치를 존중하는 세상을 꿈꾸는 도시운동이다. 슬로시티의 철학은 삶의 성장보다는 성숙에 두고 있다. 삶의 양보다는 질에 치중하고, 속도에서 깊이와 품위를 존중하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 패스트 푸드(즉석식)에 반대되는 개념의 슬로우 푸드(여유식)를 즐긴다. 이탈리아 작은 도시에서 출발한 이 운동은 이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7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전남 4개 지역(담양군 창평면, 장흥군 유치면,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이 슬로우 시티로 지정됐다. 경북 청송군은 2011년 국내서 9번째 슬로시티 지정을 받았다. 주왕산 권역 일대를 포함한 국내 최초의 산촌형 슬로시티다. 2017년 3월 청송군 전역이 슬로시티로 확대된다.슬로시티 가입조건은 인구 5만 가구 미만이어야 한다. 도시와 주변 환경을 고려한 환경정책이 있어야 한다. 유기농 식품의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고 전통음식과 문화보존 등의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청송군은 경북의 오지다. 전체 군 면적의 80% 이상이 산이다. 중국 진나라 주왕이 피신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의 주왕산도 있다. 태백산맥의 남단에 위치한 주왕산은 암벽으로 둘러싸인 산들이 병풍처럼 이어져 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한다. 바위 산이 펼쳐내는 빼어난 경관 때문에 이곳은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청송에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한다는 주산지도 있다. 200년 전에 만들어진 저수지다.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인 저수지 위에 펼쳐진 왕버들의 모습은 천하일품이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다. 사계절의 변화를 잘 포착한 이 영화로 이 일대는 2013년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제105호로 지정된다. 지난 5월 유네스코 지정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청송은 서울 등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슬로시티의 진가가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기계적 삶과 공해를 떠나 찾아온 그들에게 슬로시티 청송은 청량제와 같은 곳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6-30

트럼프 악수

세계 각 지역의 인사법은 매우 다양하다. 유럽에서는 포옹과 볼 키스를 하며, 인도와 태국에서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는 합장을 한다. 마오리족은 서로 코를 비비고, 에스키모는 가볍게 서로의 뺨을 치는 것이 인사다. 티베트에서는 귀를 잡아당기며 혓바닥을 내미는 것이 반갑다는 표시라고 한다.하지만 국경과 문화를 초월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인 인사법이 악수다. 인류학자들은 악수를 손에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음을 상대방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도 아프리카 부족 중에는 모르는 사람을 우연히 만날 경우 손바닥을 활짝 펴서 인사를 나눈다. 안전을 확인하는 행위가 차츰 반가움과 대등한 존중을 표시하는 인사법이 돼 전 세계에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악수에도 각 지역마다 다른 예법이 있다. 일본에서는 악수할 때 상대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면 안 되고, 중동 지역에서는 힘을 세게 하여 악수하면 결례다. 반면 미국에서는 힘없이 가볍게 하는 악수를 오히려 좋지 않게 여긴다. 따라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힘있게 악수하는 것은 미국의 관습대로라면 결례라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트럼프의 악수는 유별나다. 트럼프는 악수할 때 있는 힘껏 손을 쥔 채 상대방을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기는, 공격적인 악수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악수법은 상대방에 대한 기선 제압과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트럼프는 지난 2월 아베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때 아베의 손을 으스러지도록 움켜쥔 채 약 18초간이나 흔들어 아베를 당황하게 했다. 반면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만났을 때는 악수를 청하는 메르켈의 말에 한마디 대답도 없이 딴청을 피우며 악수를 거부했다. 이는 평소 트럼프 정책에 반대하는 메르켈에게 보내는 무언의 경고라는 해석이 나왔다.이쯤되면 트럼프는 악수를 외교적 힘겨루기를 위한 무기로 활용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트럼프가 어떤 악수를 청해올지 궁금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6-29

갑질 사회

우리나라에서 갑질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세인의 주목을 끌었던 갑질논란 사건은 우리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게 일어났다. 이른바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도 그 중 하나다. 2014년 12월 5일 일어난 이 사건은 국내외 언론에 보도되면서 재벌가의 갑질논란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대한항공 회장의 장녀이자 부사장이 승무원의 땅콩 서비스를 문제 삼아 난동을 부린 것이 급기야 이륙준비 중인 비행기를 되돌리게 하는 상황까지 몰고 간 것이다. 당사자가 법정에 서야 했던 불운한 사건이었다. 최근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회장의 여직원 성추행 사건이 또 한번 갑질논란을 일으켰다. 당사자 간 합의로 수습국면에 들어갔으나 뒷맛은 개운찮다.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피자업체 회장이 갑질논란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자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한다. 회장 친인척이 관여하는 업체를 유통과정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가맹점에게 비싸게 치즈를 공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탈퇴한 가맹점주 가게 근처에 직영점을 열어 이른바 보복영업까지 했다고 한다.이 업체 회장은 본래 밑바닥부터 사업을 벌여 누구보다 을의 입장을 잘 아는 인물이었다는데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소비자는 갑”이라는 평소 소신을 까먹은 것 같다.한 정신과 의사는 그가 쓴 책에서 우리사회의 갑질 현상은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적 관습에서 온다고 보았다. 불평등과 차별을 타파하려는 본질적 노력이 없으면 우리사회는 `빈익빈 부익부`의 구조가 깨지기 어렵다고 진단했다.일본에는 `파와하라`라는 말이 있다. 힘(Power)과 괴롭힘(Harassment)의 일본식 합성어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힘 희롱`이다. 상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인데, 보수적 일본의 직장문화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갑질논란이 자주 빚어지는 것은 아직은 불평등 문화가 우리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불평등과 차별을 개선하려는 사회 인식적 합의가 빨리 확대되었으면 좋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6-28

`이등병의 엄마법`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26일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 전원을 순직자로 인정하고, 의무복무 중 순직한 군인의 아들과 형제의 군복무를 면제해주는 일명 `이등병의 엄마법`(군인사법 일부개정법률안 및 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화제다. 이번 법률개정안은 군대 내 사망 사고와 그에 따른 유가족들의 투쟁을 다룬 연극 `이등병의 엄마` 등에서 나온 군 사망자 유가족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는 지난 5월 19·20일 예술공간 오르다에서 공연한 고상만 작·박장렬 연출의 연극작품이다. 실제 최초 사건의 발단은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경비중대 소대장이던 김훈 중위의 사망사건에서 비롯됐다. 김훈 중위는 근무 중이던 전방 241GP에서 싸늘한 권총 사망 시신으로 발견됐다. 현장에 수사관도 도착하기 전에 이 사건은 언론에 자살로 전파된 채 묻힐 것을 강요당했다. 김훈 중위의 부친인 1군 사령관 김 척 장군은 9개월 동안 군부대가 감추고자 하는 아들 김 훈 중위 타살의 배경과 현장에서 발견된 결정적 타살 정황 증거들, 증인들을 찾아내 군 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으나 부실한 초동 수사를 거쳐 억지로 자살로 꿰맞춘 당시의 군 헌병대와 형식적 재수사를 담당한 육군 고등 검찰 부는 이런 내용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 한번 하지 않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살`이라는 결론을 되풀이했다고 한다.이번 법률개정안은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을 전원 순직으로 인정하고 △의무복무 중 전사 또는 순직한 군인(2016년 73명 사망)의 형제와 자식에게는 군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의무복무 중 상이등급 6급 이상으로 다친 군인의 형제와 자식은 6개월 보충역을 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그동안 자해사망 군인 일부가 순직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전공사상자처리훈령의 기준이 모호해 의무복무 중 자해사망으로 사망한 군인 다수가 일반사망으로 처리돼왔던 것을 생각하면 때늦었지만 다행스런 조치다. 보훈의 달, 나라를 위해 순직한 장병과 가족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 아까우랴./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