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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 혼자 살 수도

유영희 작가 한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지났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확실히 명절 풍속이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한다. 이제 민족 대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명절이라고 해서 며느리가 꼭 시댁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늘고 있다. 각자의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며칠 전, ‘가족×멜로’라는 특이한 제목의 드라마가 종영했다. 여기서 가족은 아빠 변무진, 엄마 금애연, 딸 미래, 아들 현재, 이렇게 네 명인데, 변무진이 잦은 사업 실패로 아내와 이혼한 후 죽은 줄 알았다가 엄청난 부자가 되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마침 종영한 날이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일요일이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금애연은 11년만에 나타난 변무진을 생각보다 빨리 수용하지만, 딸 미래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발자전거를 탈 무렵 아버지의 대화를 우연히 듣고 자기 때문에 아빠가 야구 선수를 포기했다고 오해한 상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딸이 우여곡절 끝에 변무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도 흥미 있었지만, 변무진과 금애연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재결합하지 않는 결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마트 시식 코너에서 일하던 엄마 금애연은 홈쇼핑 모델이 되어 수입이 늘자 가족에게 상의하지 않고 자동차를 장만한다. 50 넘은 여자가 누구의 도움 없이 자동차를 산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설정이다. 보통 자동차는 남성성을 의미하는데, 금애연처럼 소극적으로 살던 여자가 자동차를 자신의 힘으로 장만했다는 것은 그만큼 남성 같은 힘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앤소니 브라운의 그림책 ‘돼지책’에도 남편과 두 아들 뒷바라지하다 지친 엄마가 가출했다 돌아와서 한 일이 자동차를 손보는 것이었다. 딸 미래는 자신이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독립 가구가 된다. 비혼주의를 고수하지만 오래도록 연애하기로 한 남자친구는 있다. 네 명의 가족 아닌 가족은 따로 또 같이 살아가면서 한 달에 한 번 식사하는 것으로 가족의 멜로를 완성한다. 두 주인공이 다시 결혼으로 묶이지 않는 것은 각자 경제력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금애연은 그동안 자신의 삶이 너무 의존적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혼자 사는 삶을 선택했고, 변무진은 그런 금애연의 선택을 충분히 존중했기 때문이다. ‘가족×멜로’ 드라마의 변무진과 금애연의 선택은 새로운 가족 형태를 예고한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마주 앉아 밥 먹는 부부 이상으로 사랑하고 신뢰도 회복했으니 재결합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 부부가 되지 않고 따로 사니 말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과 성격, 지향에 따라 어떤 가족 형태를 선택할 것이고, 그래서 가족의 형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해질 것이다. 영화감독 팀 버튼도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와 결혼 당시 가까운 거리에서 따로 살았고, 배우 오나라도 한 사람과 24년째 연애 중이라고 한다. 사회 제도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드라마를 통해 사회 변화를 체감한다.

2024-09-22

일제강점기 국적 논란을 끝내는 법

유영희 작가 내 책상 한쪽에는 ‘손바닥 헌법책’이 놓여있다. 딱 손바닥 크기인데, 손바닥보다는 얇다. 몇 년 전, 20권을 사서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던 책이다. 너무 작아 책꽂이에 꽂으면 파묻혀서 책상 위에 놓아두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자주 들춰본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최근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국적 논란을 보면서 다시 펼치게 되었다. 맨 앞에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나오고, 뒤를 이어 1948년에 공포한 대한민국 제헌 헌법 전문과 1987년 개정한 대한민국 헌법이 차례로 나온다. 모두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한 달이 넘게 뉴스를 달구고 있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국적 논란은 지난 8월 6일 새로 임명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독립기념관장 면접에서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답했는데, 10명의 후보자 가운데 최고점을 받았다. 그 때문에 각계 각층에서 김형석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당시 면접관도 비판하는 상태이다. 김형석의 뒤를 이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4일 KBS 라디오 ‘전격 시사’에 출연하여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국적은 일본이라는 평소 입장을 고수하는 발언을 하면서 지금은 건국절 논쟁으로까지 치닫는 상황이다. 건국절은 나라를 세운 날이라는 의미인데, 이때 나라는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을 의미한다. 이런 논란을 끝내기 위해서는 국적의 의미를 합의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국적이란 개인이 국가와 맺는 법적인 관계를 말한다. 개인이 특정 국가의 국적을 갖게 되면 그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보장받고 의무를 지게 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일본 국적법을 조선에 적용하지 않았다. 만약 일본 헌법을 조선에도 적용하게 되면, 조선인에게 투표권도 주어야 하고 일본 국민으로서 보호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에게 주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본 헌법을 적용받아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 국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제국에 의해 강제로 주권을 침탈된 상태를 일본 국적이라고 할 수 없다.‘21세기 정치학대사전’에 의하면, 1871년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프랑크푸르트 조약에서부터 국적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국적자유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에 의하면, 국적은 강제로 부여할 수 없다. 주권이 없다는 것과 일본 국적이라는 말은 동의어가 아니다. 일본은 일본 국적법이 아니라 조선 총독부가 만든 제령으로 조선을 지배했다. ‘제령’은 일본 천황의 재가를 받는 명령이기는 하지만, 헌법은 아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의하면, 제령 중 대표적인 것은 1912년에 제정한 ‘조선민사령’과 ‘조선형사령’이다. 일상에서 한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법령들이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용어를 분명하게 쓰는 것이다. 지도층일수록 사회적으로 합의된 언어를 써야 한다. 그것은 건국절도 예외가 아니다. 1948년 이전에도 우리에게는 나라가 있었다.

2024-09-08

미래세대 환경권을 위한 첫걸음

유영희 작가 22년 쓴 작은 에어컨이 올해 이상이 왔다. 작년까지는 한여름 며칠 잠깐씩 틀었지만, 올여름은 너무 덥고 습해서 2주 이상 매일 켰더니 과부하가 왔나 보다. 에어컨 실외기 열기가 기온을 더 올릴 것이라는 걱정도 지구 역사상 최고라는 올해 무더위에는 너무도 무기력했다. 기후변화 앞에서 개인의 힘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고 자책하던 중 한 신문 기사를 읽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여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는데, 그런 판결을 이끄는데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이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자는 국제 선언으로 탄소제로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도 탄소중립을 실천하기 위한 법을 제정했으나, 우리의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는 2030년까지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감축해야 한다고만 되어 있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에 관해서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청소년 19명이 이 조항에 대해 2020년에 헌법소원을 냈고, 2021년에는 시민기후소송, 2022년에는 ‘아기기후소송’, 그리고 2023년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 등 4년에 걸쳐 다양한 연령의 시민과 어린이가 헌법소원을 냈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판결 기사에 처음 눈길이 간 것은 ‘동생 사진 손에 쥐고 눈물 쏟은 초등생’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읽어 보니, 2년 전 아기기후소송을 냈던 서울 흑석초 6학년 한제아 어린이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기자가 한제아 어린이에게 2년 전과 지금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질문하자, 어릴 때는 키가 작아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더 더웠는데, 그때보다 키가 많이 큰 지금도 여전히 덥다고 대답한다. 두 살짜리 사촌 동생은 키가 엄청 작아서 자기보다 더 더울 것이라며 마음 아팠다는 대답도 있다. 이날의 판결에 정말 적절한 대답이었다. 이 대답은 어린이다운 감수성을 보여주어서 인상 깊기도 했는데, 실제로 8월 14일 한 일간 신문에 실린 서울 보라매공원 특별 관측 결과를 보면, 아이 발밑은 ‘성인 키’ 기온보다 덥다고 한다. 특히 햇볕에 노출된 아스팔트 도로의 지면 온도는 지상 1.5m보다 11.2도나 높다니, 키가 작으면 확실히 더위를 더 느낄 것이다. 게다가 지면 가까이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도 많으니, 도시에 사는 어린이의 고통은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에도 물어보니, 몸이 작으면 체적에 비해 체표면적이 더 크고 근육도 적어서 기온에 민감하다고 한다. 미래세대에 이런 걱정을 끼치니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린이의 야무진 활동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다만, 어른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 운동이고,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게 되면서 우울증에 걸렸었다니, 한제아 어린이에게 밝고 즐겁게 활동하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전하고 싶다.

2024-09-01

선물이란 무엇인가

유영희 작가 몇 년 전 오래 알고 지낸 동료와 선물 문제로 멀어졌다. 동년배 세 여자가 가끔 만났는데,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그 일을 핑계로 밥을 여러 번 샀다. 그렇게 내가 밥을 산 날이면 디저트는 그 둘이 샀다. 그런데 내가 책을 출간했을 때 A가 책을 선물로 달라고 한다. 밥을 사면서 등가교환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서운한 마음에 끝내 책을 주지 않았다.그렇게 그 일은 넘어갔지만 얼마 안 있어 A가 취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연락하니 A는 취직 사실을 감추었다. 지나치게 주고받기를 의식하는 사람도 부담스럽지만, 그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그 이후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이 사는 줄 알았던 내 몫의 디저트는 언제나 B가 냈다고 한다.이 일을 겪으면서 아무리 자발적으로 준 것이라 해도 결국 모든 선물은 기브앤테이크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친구 간에 대가 없는 선물이라도 그 안에는 돈독한 사회관계 형성이라는 기대가 들어 있고, 등가는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주고받기가 이루어지리는 기대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심지어 부모자식 사이에도 그렇다. 유산을 줄 때는 암묵적인 봉양의 의무가 전제되어 있고, 대놓고 요구하기도 한다. 봉양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회수하기도 한다.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고대 사회의 선물에는 세 가지 의무가 있다고 한다. ‘주는 의무’, ‘받는 의무’, ‘갚는 의무’가 그것인데, 이렇게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부의 재분배도 일어난다고 한다. 현대 사회의 선물이나 증여는, 고대 사회처럼 강한 의무가 동반되지는 않지만,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선물을 주기만 하는 관계는 없다. 누구라도 어떤 선물을 받으면 경조사 부조금처럼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 할 빚으로 느낀다.그런데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추석 명절 청탁금지법 바로 알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내용이 이상하다. 누구든지 친구, 친지 등 공직자가 아닌 사람에게 주는 명절 선물은 금액 제한 없이 얼마든지 줄 수 있고, 직무와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는 100만 원까지 선물해도 된다는 말이 처음에 나온다. 홍보물 순서를 보면 마치 선물을 장려하는 캠페인처럼 보인다. 뒤를 이어 직무와 관련된 사람에게는 5만 원까지, 농수산물이라면 15만 원까지 허용되는데, 명절 전후 30일 동안은 30만 원까지 허용한다는 내용이 나온다.아무래도 공직자가 하는 선물은 아니고, 민간인이 공직자에게 선물하는 경우에 해당할 텐데, 왜 친구나 친지에게 주는 선물 이야기를 맨 처음에 하는지 의아하다. 직무 관련 여부를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직무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 주는 100만 원어치 선물에는 대가성이 없다는 장담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민은 커피 한 잔, 국밥 한 그릇을 얻어먹어도 갚을 궁리를 하는데, 공직자들은 그런 선물을 받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이 사는 세상이 궁금해진다.

2024-08-25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토오 히로부미

유영희 작가 생협 활동을 열심히 하던 시절, 일본 생협 활동가들이 한국에 왔을 때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토오 히로부미를 영웅으로 배웠는데 한국에 오니 그들이 한국 사람에게 천하의 원수라는 사실을 알고 문화 충격을 받았다면서 우리에게 사과했던 일이 있다. 올해는 부쩍 그때 일이 생각난다.79주년을 맞은 올해 광복절은, 이렇게 논란이 많은 광복절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이슈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만 50회 외쳤을 뿐 일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을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다. 8월 6일,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후손이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한 인물들이 주로 맡았던 독립기념관장에 전혀 결이 다른 김형석 고신대 교수를 속전속결로 임명했다.김형석 신임 관장은 평소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통성을 부정하여 뉴라이트 친일 인사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임용 면접 때는 일제 강점기 때 조선 사람들 국적은 일본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취임 후 기자들 질문에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 회복에 앞장서겠다”고 답변하여 논란을 가중시켰다. 그는 대북지원금 5억을 통장 조작으로 횡령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사실도 있다.그런가 하면, 작년 12월에 나온 국방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는 독도를 영토분쟁지역으로 표시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달 초에 나온 수정본에서는 독도 표기 문제는 해결했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교재에 있었던 독립운동가 김좌진 홍범도 김구의 이름이 사라졌다. 국방부에서는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등을 실어 광복군과 독립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정신적 토대임을 명확하게 기록했다고 해명했지만 군색하다. 지난 16일에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전시회도 보훈부의 압박으로 취소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라고 한다.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광복절에 맞추어 발간된 낙성대연구소 정안기의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테러리즘’을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저항이라고 정의하고 김구의 9건의 테러 중 테러리즘 있는 테러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 1건일 뿐, 나머지는 테러리즘 없는 테러라고 하면서 김구가 개인적 재물 탐심과 보복,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테러를 이용했다고 비판한다.그런데 암만 봐도 이 주장에는 일관성이 부족하다. 제목의 테러리스트는 테러리즘 없는 테러리스트라는 의미일 텐데, 저자가 말하는 테러리스트의 원뜻은 테러리즘 있는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테러리즘은 크게 109개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그중 폭력과 정치적 목적을 가진다는 특성은 대부분의 테러리즘 정의의 공통적 요소라고 한다. 그렇다면 폭력과 정치적 목적으로 김구를 비판하는 저자의 테러리즘 정의는 상당히 주관적이기도 하다.같은 행위라도 내 편이냐 남의 편이냐에 따라 평가는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너는 누구 편이냐고 윽박지르며 묻는 79주년 광복절이 너무나 씁쓸하다.

2024-08-18

새 세대가 온다

유영희 작가 8월 11일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규모는 144명으로 지난 도쿄 올림픽 232명에 비해 90명 정도가 줄었다. 이런 100명대 선수단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8월 10일 당시 활, 총, 칼을 필두로 금메달 13개 등 29개 메달을 따서 7위에 이름을 올려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성적뿐 아니라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태도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사격의 김예지가 공기소총 1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고 나서 자신의 주종목 25m 경기를 앞두고 금메달을 자신했지만 예선에서 0점을 받아 출전하지 못하게 된 후 보여준 태도는 정말 참신했다. 그는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0점 한 번 받았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사격을 그만두는 것도 아니라면서 다음을 기약한다고 차분하게 말한 것이다.탁구의 신유빈은 임종훈과 함께 뛴 혼합 복식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중국의 천멍과의 단식 경기에서 0:3으로 졌다. 그럼에도 낙담하지 않고 상대가 너무 잘했다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하더니, 하야타와의 단식 경기에서 패하고도 승자를 안아주는 등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그런 실력과 정신력과 체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잘 알기 때문에 더 배우겠다는 신유빈의 인터뷰는 새로운 올림픽 문화를 알리는 신호로 느껴진다. 이런 낙천적인 성격 탓인지 10일 열린 여자단체전에서 다시 동메달을 땄다.방향은 다르지만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역시 기존에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 스포츠 역사의 새 페이지를 쓰고 있다. 그는 금메달 획득 후 인터뷰에서 협회가 선수 보호에 소홀했다고 작심발언을 한 것이다. 그는 아마도 오랜 고민 끝에 가장 파급력이 큰 금메달 인터뷰 때 발언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자기 나름의 판단과 전략으로 그 순간을 선택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을 둘러싸고 두 가지 쟁점이 있는데, 하나는 안세영의 발언이 ‘사실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방법이 ‘적절한가’이다. 두 번째와 관련해서는 안세영도 다른 선수들에게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여기서 발언 타이밍 등 표현 방식의 적절성을 따지기보다는 사실 여부를 중심으로 진상 조사가 이루어져야 배드민턴이 발전할 것이다.태권도 경기에서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태권도의 서건우가 16강전에서 오판으로 패하게 되자 오혜리 코치(36세)가 강력하게 항의하여 8강에 진출한 것이다. 결국 오 코치는 코트에 뛰어든 일로 세계태권도연맹(WT)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지만, 오 코치는 그대로 끝나면 뭘 해도 뒤집을 수 없었다는 판단으로 한 행동이라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한 세대가 저물고 새 세대가 온다는 것을 절감한다. 아무리 큰 무대에 국가대표로 출전했어도 유머와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고 할 말은 하는 세대가 오고 있다. 기성세대는 두 팔 벌려 새 세대를 환영할 일이다.

2024-08-11

주택조합 앞에 멈춰 선 민주주의를 보며

유영희 작가 집에 대한 욕구는 식욕에 버금가는 인간의 생존 욕구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내 집 마련에 인생을 건다. 거주가구수에 비해 주택재고가 충분한지 판단하는 주택보급률로 보면, 서울 2022년 전국 기준으로 102.1%라고 하니, 전국적으로는 집이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지표인 1000명당 주택수로 판단하면 그렇지 않다. 1000명당 주택수는 2022년 전국 기준으로 430.2호이다. 2020년의 418.2호에 비해서는 늘었지만, 2020년 OECD의 평균 주택 재고 462호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이런 실정이니 지역주택이니 소규모재건축이니 가로주택이니 하는 여러 주택조합이 설립되고 있다.나 또한 60이 넘어 생애 처음 산 집으로 주택조합에 가입하여 새 집이 지어질 날을 3년째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올여름 임원 선출을 위한 총회 진행 과정에서 이상한 일을 목도하고 있다. 창립 때 선임된 임원들이 자기 이외의 다른 이사 유임을 찬성하는지 투표하여 전원 유임 결의를 한 후 후보자를 확정한 것이다. 총회에서 찬반 투표를 한다고는 하지만, 부결되면 총회를 다시 해야 하니 조합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찬성해야 하는 상황이라 통과 가능성은 거의 100%이다.기존 임원이 이렇게 진행하는 법적 근거는 2009년 대법원 판례인데, 이 판례는 추진위원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애당초 추진위원회의 운영 규정은 조합의 정관과 달라서, 위원장만 주민총회 의결 사항이고 다른 임원은 추진위원회 단위에서 유임 결정을 할 수 있다. 주택조합 전문 변호사 김조영은 이런 규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추진위원회 존속 기간이 짧아 이런 판례가 나온 것 같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 판례를 받아들인다 해도 이것을 이미 창립된 조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조합 정관에는 임원 선임이 총회 의결 사항이고, 연임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조항은 임기 만료된 임원이 재입후보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 이사회가 연임 후보를 확정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관할 시의 표준선거관리규정 제3조에서는 연임도 선거라고 규정하고 있고, 선거 60일 전에 선관위를 구성하여 기존 임원도 모두 후보자 등록하게 되어 있다. 법무법인강산에서는 이 규정에 의거하여 기존 임원도 입후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임제를 채택하는 미국 대통령 선거만 봐도 이 해석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선뜻 문제 제기하기가 어렵다. 조합원들이 절차의 적법성보다는 사업 진행의 효율성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사실 절차의 합법성보다는 결과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일이 주택조합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면 조직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소리 내지 못하고 소리 내지 못하게 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조금이라도 인기 있는 사람이 위법을 저질렀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는 사회가 발전하지 못한다. 공정한 법질서가 자리잡게 하려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관심 가져야 할 것이다.

2024-08-04

의도인가 팩트인가

유영희 작가 지난 7월 25일, 대통령의 두 번째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온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애당초 가결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고는 하나, 지난 7월 11일 조사한 여론 조사 결과 특검을 찬성하는 비율이 69%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회의원들의 대표성을 의심하게 되는 결과였다. 그동안 여당은 줄곧 특검 후보 추천권을 야당이 독점하는 것은 권력 분립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반대해왔고 이것은 실제로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을 거부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채상병 특검법’이라고 하는 법안의 정식 명칭은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인데, 이 안의 제3조 2항에는 ‘대통령은 제1항에 따른 요청서를 받은 날부터 3일 이내에 1명의 특별검사를 임명하기 위한 후보자 추천을 ‘국회법’ 제33조에 따른 교섭단체 중 더불어민주당과 비교섭단체에 서면으로 의뢰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3항과 4항도 이 연장선에 있다.이 외에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는 몇 가지 더 있는데, 이에 대해 JTBC에서는 지난 12일 방송에서 여당의 거부하는 이유로 제시한 것이 사실인지 8개 항목으로 나누어 팩트체크한 적이 있다. 지금 한동훈 대표가 제3자가 특검 추천하자는 주장과 관계 깊은 항목을 보면, 특검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JTBC에서 팩트체크한 바에 의하면, 특별검사를 추천했던 주체는, 대한변호사협회가 특검을 추천한 사례 5회, 대법원장이 특검을 추천한 사례 4회, 정당이 특검을 추천한 사례 4회였다. 여기서 정당이란 민주당이 아니라 야당을 말한다. 드루킹 특검 추천은 자유한국당이 야당일 때 한 것이다. JTBC는 이런 사례를 근거로, 이번 채상병 특검법에서 민주당이 특검 추천권을 갖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고 검증했다.여기서 특검 주체가 왜 달라지나 추론해보니, 주로 정치적 사안에 대해 정당이 특검을 추천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사안에 여당을 배제하고 야당이 특검을 추천할 때는 여당이나 대통령이 관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서원이 야당에 자신의 국정농단 특검 때 야당에 추천권을 준 것은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때 헌법재판소는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그 이유로 대통령이 포함될 수도 있다는 사정을 들고 있다.물론 과거 야당이 특검을 추천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이번에도 민주당이 특검 추천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럼에도 이번 채상병 순직 사건의 책임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표결 과정에서 한동훈 대표가 제3자 추천안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뉴스를 보니, 한동훈 대표가 정말 특검을 추진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한동훈 대표는 특검을 찬성한다고 했으면, 야당이 탄핵을 전제로 특검법을 추진한다고 반대하기보다, 팩트에 입각한 진상규명에 진정성 있게 나서 주기 바란다.

2024-07-28

미래세대는 실험 대상이 아니다

유영희 작가 지난주 12주간 진행한 글쓰기 강의를 마치며 학습자들의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들었다. 편집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삽화도 넣고 싶어져서 간단한 이미지는 무료 일러스트나 이미지를 구해 쉽게 넣었다. 그런데 제목이 ‘코’라는 두 소설의 독후감에 넣을 이미지가 영 마땅치 않았다. 일본 작가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단편 ‘코’의 주인공 젠치 스님의 코는 턱까지 늘어져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식사하기도 불편할 정도인데, 이렇게 코가 긴 얼굴 이미지를 찾기가 어려웠다. 고골의 ‘코’에 나오는 코 없는 남자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만드는 문집이 아무리 비매품이지만, 이미 출판되어 나온 이미지를 그냥 갖다 쓸 수 없어서 고심 끝에 인공지능의 힘을 빌렸다.나처럼 인공지능 활용도가 떨어지는 사람조차 이렇게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작은 그림이라도 그리는 상황이 되었다. 노래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유명 가수 두 명이 짧게 한 소절 부른 노래가 인기를 끌자 그들이 부르지 않은 파트를 인공지능으로 생성해서 마치 그들이 곡 전체를 다 부른 것 같은 영상이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그들의 완곡을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었다. 얼마 전에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이 챗지피티를 이용해서 일상생활에 도움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웃에 사는 경계선 지능 학생의 부모에게 알려주었더니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받았다. 실제로 어느 경계선 지능인은 챗지피티가 자신의 제2의 뇌라고 고백한다. 이렇게 인공지능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그러나 모든 일에는 빛과 그늘이 있는 것처럼 인공지능의 발달에도 빛과 그늘이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직업을 잃게 될 사람도 많고, 기술이 악용될 여지도 많다. 내가 인공지능으로 그린 이미지를 보고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는 ‘선생님마저 이렇게 인공지능을 이용할 줄 몰랐다’며 불안해했다. 아차, 싶었다. 이렇게 사소한 상황에서도 불안을 느끼는 그이의 마음에 바로 감정이 이입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대회에서 대상을 받을 만큼 정교해지고 있다. 결국 무료로 쓸 수 있는 간단한 코 일러스트를 골라서 대체했다. 목소리 역시 전화에 ‘여보세요’ 같은 한두 마디만 해도 인공지능 기술로 목소리를 생성해서 보이스피싱에 악용될 수 있다고 한다.이렇게 인공지능 같은 과학기술에는 양면이 있으니 어느 한 편을 들어 옹호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편리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 도입은 신중하게 서서히 적용해야 한다. 몇 주 전, 내년부터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사용한다는 정책에 우려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될 것 같다. 지난 17일 뉴스에 나온 ‘AIDT 프로토타입’이라는 ‘AI 디지털교과서’의 교사 연수용 버전 상태가 심상치 않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은 붙었지만 엉성하기 짝이 없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더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2024-07-21

최저임금은 정말 최저임금이다

유영희 작가 60세가 넘은 지인이 남편 퇴직 후 생활비가 부족하다며 작년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노인 한 분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것으로는 조금 부족하던 차에 맞벌이 부부의 유치원생 자녀 한 명을 아침, 저녁 두 시간씩 등·하원시켜주게 되어 다행히 월 200만 원 정도 수입이 되었다고 한다. 노인과 유치원생의 시급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대략 시간당 1만3000원이니, 2024년도 최저임금 9860원보다 높다. 일이 특성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높게 책정된 것이다.그런데 지난 2월 서울시 국민의힘 소속 윤기섭 등 38명의 시의원이 노인들의 구직이 어렵다면서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도 노인 채용이 가능하도록 하자며 ‘최저임금법 적용 제의의 인가 기준 및 범위를 노인층에게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달라’고 정부 측에 발의했다. 3월에는 서울시 오세훈 시장이 필리핀 등 외국인 돌봄 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그 말이 있기 하루 전,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주최한 노동시장 세미나에서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 방안’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되,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사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 요구는 올해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1986년 최저임금제를 도입할 때 최저임금법 제4조1항에서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그동안 경영계는 업종별 차등 임금을 계속 요구해왔다. 이들의 요구는 특정 업종은 최저임금보다 더 낮게 정하자는 것이다. 이런 경영계의 집요한 요구가 있지만, 지난 7월 2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차등안을 부결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어느 기사를 보니, 작년 148개의 2차 업종 중 상반기 시급 공고가 500건 이상 등록된 업종 93개 중 ‘베이비시터·가사도우미’ 업종의 공고 평균 시급이 2만9천 원 정도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일이 그만큼 힘들고 그래서 인력난도 심하다는 뜻이다. 요양보호사는 국가 공인 파출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고강도 노동에 저임금을 호소하고 있다.그런데 이런 간병과 육아와 같은 돌봄 노동에 외국인이라고 해서 최저임금보다 더 적게 주자는 것은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제111호(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관한 협약)에 나오는 출신국에 근거한 차별 금지 조항을 어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도 한국에서 한국의 물가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노인에 대해 최저임금을 낮게 적용하자는 주장 역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서 나이를 이유로 하는 고용차별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법하다. 최저임금은 생활임금이 아니라, 말 그대로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은 저소득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게 하는 최소한의 임금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인건비로 인한 소상공인의 경영난 해법은 다른 방식으로 찾아야 한다.

2024-07-14

‘우천 시’보다 중요한 것

유영희 작가 오랜만에 중국 고전 중 하나인 ‘대학’을 강의하게 되었다. 그런데 강의할 기관에 이력서를 보내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동안 쓴 경학 연구 논문 제목들이 모두 한글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하니, 한글로 써도 충분히 알아볼 만한 내용이므로 그냥 보냈다. 나는 유교 사상을 전공했지만, 한자를 노출시켜 쓰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한자 없이 한자어만 쓰면 일상에서 혼란을 주는 경우가 많다.지난주에 여러 매체에서 인용된 학부모들의 문해력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에도 한자어가 있다. 어느 어린이집 교사가 우천 시, 금하다, 섭취·급여·일괄 같은 단어를 가정통신문에 쓰면 학부모들이 이해를 못 하고 엉뚱한 질문을 한다는 글을 SNS에 올리자, 댓글에 금일을 금요일로 아는 사람도 있고, 중식을 중국 음식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는 경험담이 이어졌다고 한다. 여러 주요 언론에서도 이 글을 인용하면서 그 어린이집 교사의 문해력 한탄에 동조하였다.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 어린이집 교사가 경력 9년 차라고 하니, 마흔 살이 안 되었을 텐데 그런 단어를 능숙하게 통신문에 쓰는 것은, 공공기관의 언어 습관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공문에 ‘비가 오면’, ‘하지 마세요’, ‘오늘’, ‘점심 식사 제공’이라고 쓰면 격식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언어’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다. 조선 시대의 어휘나 표현법은 소멸했고, 21세기에는 새로운 어휘가 탄생한다. ‘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의 줄임말로서 2018년도에 만들어진 신조어인데, 공중파에서 퀴즈 문제로까지 등장했다. 아무리 기성세대가 언어 순화 운동을 벌인다고 해도 이런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기는 어렵다. 관공서에서나 쓰는 단어를 고집하는 것보다 실정에 맞게 소통하기 좋은 한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문해력 향상을 위한 정책은 필요하다. 문제는, 교육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문해력 향상을 위한 꿀팁 5가지가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소리 내어 읽어라, 모르는 어휘는 검색해라, 긴 호흡으로 읽는 독서를 많이 해서 글과 글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라, 다양한 관점으로 질문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라, ‘한글 또박또박’이라는 맞춤형 웹 기반 학습프로그램을 활용하라고 한다.그러나 ‘한글 또박또박’은 한글을 모르는 초등 저학년 대상 프로그램이라 사회적 문해력 저하 해결책은 아니다. 또 글과 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없어서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이니, 긴 호흡의 책을 권장하는 것도 넌센스다. 질문 자체를 못 하는데 다양한 관점으로 질문할 수 없다. 이렇게 체계 없는 정책으로는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문해력 향상을 위한다고 독후감 경시대회를 열지만, 평소 지도는 해주지 않으니 사교육으로 해결해야 한다.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구호 말고 글쓰기 교육처럼 실질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2024-07-07

디지털 교과서로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유영희 작가 헬렌 켈러의 스승 앤 설리번은 진정한 교사의 표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학습이 문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못 보고 못 듣고 말하지 못하는 헬렌 켈러를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습할 수 있게 도왔다. 물론 현대 사회의 대중 교육 상황에서 개인 교사 설리번의 교육을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지만, 진짜 학습은 교수자와 학습자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그런데 내년부터 종이 교과서 대신 AI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한다고 한다. 시행 첫해에는 수학, 영어, 정보, 국어(특수교육) 교과부터 시작하여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국어, 사회, 과학, 기술가정 등의 과목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작년 8월에 나온 AI 디지털 교과서 가이드라인을 보니, ‘500만 명의 학생에게 500만 개의 교과서’를 제공한다는 구호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500만 개의 교과서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질적인 학습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상당히 회의적이다.코로나 팬데믹 때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가 낮아졌다는 보고가 많지만, AI 디지털 교과서는 온라인 수업과는 성격이 달라서 섣불리 비교할 수는 없다. 온라인 수업은 종이 교과서를 사용하면서 소통 채널만 온라인으로 한 것인데 비해, AI 디지털 교과서는 개인별 맞춤 교과서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습자의 수준을 분석하고 그에 맞게 제공해주는 교과서 자체는 모두 디지털 기기를 통해 공급된다. 그러니 개인별 맞춤 수업이라고 해도 일방적인 학습 도구만으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이다.게다가 장시간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눈도 나빠진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하루 평균 약 3시간 18분이라고 한다. 잠자는 시간, 학교에 있는 시간을 빼면 활동 시간 10시간 중 1/3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셈이다. 디지털 기기에 집중하면 눈 깜빡임 횟수가 줄어서 눈 건강이 나빠진다고 하니, 디지털 교과서로 수업하면 청소년 눈 건강이 악화될 것은 뻔하다. 게다가 작년에 스웨덴은 디지털 도구가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저해한다는 유명 의과대학의 연구 결과 발표에 힘입어 디지털 교과서에서 종이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뉴스를 보니,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더 염려스럽다.사정이 이러니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우려하는 국민청원이 있었다. 지난 6월 28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서는 ‘교육부의 2025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이 30일 만에 5만6505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자는 전면적인 디지털 교과서 사용이 서면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보다 객관적, 과학적으로 더 효과적인 교육 방식이 맞는지 검증하자고 요구헸다. 국민동의청원은 30일 동안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부디 국회 교육위원회는 청원자의 바람대로 디지털 교과서가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지 엄밀하게 검증해주기 바란다.

2024-06-30

늘봄교실 확대가 저출생 대책이어서는 안 된다

유영희 작가 2024년 한국의 출생률이 0.68을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3대가 지나면 인구가 소멸할 것이라고도 한다. 어느 보고서를 보니, 2023년 남한의 0-4세 아이 비율이 북한의 절반이라고 한다. 북한의 0-4세는 1천763만 명이고 남한의 0-4세는 1천611만 명이라 숫자는 비슷하지만, 남한 인구가 북한의 두 배이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지난 6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재하는 자리에서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하고, 이미 신설하기로 한 ‘저출생대응기획부’의 이름을 ‘인구전략기획부’로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출산 장려 정책으로 쪼이기 댄스 장려나 정관 복원 수술비 지원들이 비웃음을 샀고, 여자의 발달이 빠르니 결혼 적령기에 남녀가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여학생을 1년 일찍 입학시키는 방법을 언급한 재정포럼 5월호의 연구 논문 역시 조롱을 받은 상황이라 이번에는 효과적인 정책이 나올까 기대했지만, 19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전혀 기대에 못 미친다.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 기피와 저출생의 가장 큰 이유는 주거 불안과 경력 단절 걱정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만이 답이라는 연구도 많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정부 정책을 보면,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소득 보장이 안 된 상태에서 대출을 확대하는 것은 신혼부부를 빚더미에 올려놓거나 그림의 떡인 발상일 뿐이고, 주택을 보유한 남녀가 결혼하면 세금 깎아주는 기간을 늘린다는 정책은 청년 대다수가 무주택자라는 현실을 간과하고 빈부 격차만 심화시킬 수 있는 대책이다. 학·석·박사 과정 통합하여 일찍 사회에 나가게 한다는 방안도 어처구니 없지만, 늘봄교실 보육시간을 오후 8시까지로 늘린다는 정책은 무자비하기까지 하다.지금까지 초등생이 이용하는 돌봄교실은 오후 5시까지만 운영하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가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서 앞으로는 오후 8시까지 맡아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늘봄 정책이 나왔을 때도 부모와 자식이 ‘늘못봄’이 되는 정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는데, 한술 더 떠서 초등 1, 2학년생을, 점차 6학년까지 오후 8시까지 교실에서 지내게 한다는 정책이 어떻게 나왔는지 의문이다. 저녁 늦게까지 교실에서만 지내면 그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각을 가질 수 있게 될지 눈앞이 캄캄해진다. 늘봄교실에 오후 8시까지 맡기면서 마음 편할 부모도 없을 것이다. 이번 저출생 대책 어디에도 부모가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교실에 보관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아이는 부모가 늘 대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다. 부모 역시 그런 시간이 확보되어야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아무리 한국의 인구밀도가 높아서 저출생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도 지금의 출생률 저하 속도는 한국 사회의 위기다. 부모가 자녀를 제대로 보호하면서 키울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 제안이 시급하다.

2024-06-23

최강의 노년을 위해

유영희 작가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건강하게 나이들기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나 역시 조만간 고령자가 될 처지라 인지 건강과 신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하고 있다. 그런와중에 운 좋게도 며칠 전 내가 사는 지역의 아파트 단지 주민을 위해 ‘치매 예방을 위한 행복 글쓰기’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다. 참석자 중에 7, 80대도 있다고 하니, 그동안 강의와는 완전히 다르게 준비해야 했다. 행복한 경험을 회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진을 찾아 붙이고 사진 옆에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종이 앨범을 준비했다.처음에는 동요 ‘과수원길’을 부르고 가사 중 마음에 와닿는 단어를 골라 앨범에 써보라고 했다. 단어를 쓴 소감을 물으니, 아는 가사인데도 글로 쓰니 새롭고 설렌다고 한다. 아카시아꽃이나 과수원에 얽힌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어느 참석자가 부모님이 과수원 농장을 크게 했는데 큰오빠가 과수원을 날려서 자기가 어쩔 수 없이 어린 나이에 시집 가야 했다며 깔깔 웃는다. 아픈 시간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으니, 그것도 행복한 글이 되었다.다음으로 자유 연상 글쓰기를 했다. 기차 사진을 보고 바로 떠오르는 단어 5개를 쓴 후 그 단어를 활용하여 문장을 만들었다. 그러자 어느 참석자가 엄마와 기차 타고 여행 갔던 생각이 난다면서 어머니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감싼다. 그렇게 묻어두었던 감정을 드러내니 이웃들이 따듯한 시선을 보낸다. 강의실 공기가 달라지는 듯했다.임영웅의 노래 ‘바램’은 노년이 되어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바람을 노래한 것이다. 이 노래를 선택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의 ‘바람’은 무엇인지 써보자고 하니, 어느 참석자가 죽는 날까지 두 다리로 걷다가 편안히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다가 끝내 울먹인다.자신의 정서와 깊이 만나는 경험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 아무래도 삶의 굴곡을 겪은 연배이기도 하고 공감하는 이웃이 있어서 글쓰기 수업에 정서적으로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두 동대표에게 한마디 하기를 청하니, 동대표는 오랫동안 참석자들과 이웃으로 살아왔지만 이렇게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기 이야기를 나누어준 분들에게 감동했다고 깊이 감사 인사를 했다.건강하게 살다가 죽고 싶은 바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재일 한국인 정치학자 강상중은 2009년 발간한 ‘고민하는 힘’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다양하게 고민하고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면서 ‘늙어서 최강이 되라’고 한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노년의 힘은 ‘교란하기’에 있으니, 해보지 못한 일에 도전해보자고 한다. 나는 여기에 글쓰기를 추천한다.글쓰기가 스트레스를 완화해주고 마음의 힘을 키워준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나 역시 이번 행복 글쓰기 강의를 통해 최강의 노년을 위한 글쓰기가 더 확산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이웃과 함께 하는 글쓰기라면 금상첨화다.

2024-06-16

상식과 절차를 지키는 정부를 원한다

유영희 작가 지난 2월, 지자체에서 공모한 독서동아리 활동비 지원 사업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올해 뇌과학책 독서동아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도서관에서 30만 원을 받아 뇌과학 박사를 초청해서 특강을 들었다. 전문가 역량에 비해 강사료를 너무 적게 드려서 민망하던 차에 올해는 지자체에서 5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기에 신청한 것이다.두 달이 지난 4월 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채택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도서관에서 집행하는 30만 원은 사서가 처리해주었는데, 지자체 보조금 사업은 동아리 대표가 보탬e이라는 사이트에 사업 내용을 다 등록하고 영수증 처리 내용도 올리고 세금까지 직접 세무서에 납부해야 한다고 한다.올해부터 등록 방식이 더 복잡해졌다며 담당 공무원이 친절하게 알려주었지만, 너무 어려워서 결국 노트북을 들고 두 번이나 공무원을 찾아가서 해결했다. 집행 방식은 더 복잡해서 결국 담당자가 동아리 대표들을 소집하여 교육을 해주었다. 예산 변경은 반드시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여러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너무 번거로워서 내년에는 지원 안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는 행정 기관에 믿음이 갔다.그런데 정부에서 엄청난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은 이렇게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 세금 최소 5000억 원이 드는 시추 사업 분석 업체 선정에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경북 포항 영일만 심해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액트지오와의 계약이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액트지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평가 전문기업이라고 한다. 문제는 액트지오는 2017년에 설립한 후 2019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법인 자격 박탈 상태였으며, 대표의 거주지를 회사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영세한 기업이라는 것이다. 더 문제는 이 업체를 선정하는 절차이다. 50만 원 지원금 사업에도 집행하기 석 달 전에 공고하고 서류 내고 두 달 동안 심사를 거쳐서 합격자를 발표했다. 관공서에서 시설 공사를 계약해도 4억 원이 넘으면 경쟁 입찰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엄청난 세금이 드는 시추 사업 분석에 경쟁 입찰은 했는지, 누가 입찰에 참여했는지 깜깜이다.액트지오가 매장 가능성을 언급한 지역은, 이미 세계적인 석유개발 회사 우드사이드가 15여 년간 조사하고 시추까지 하고서도 미래가치 가능성이 없다고 작년 3월에 철수한 곳이다. 그런데 우드사이드 철수와 거의 동시에 액트지오를 경쟁 입찰 과정을 거쳐 선정했다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에 가깝다. 우드사이드 철수 후 나왔다는 한국석유공사의 추가 자료라는 것은 무엇인지도 밝혀야 한다.정부는 액트지오와 주고받은 공문서가 모두 기밀이라면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의대 증원 근거가 확실하다고 주장했지만 회의록도 없었던 것이 엊그제 일이다. 정부는 경쟁 입찰 과정과 액트지오 전문성이 세계 최고라는 근거를 밝혀야 한다. 이것이 세금 쓰는 상식적 절차다.

2024-06-09

친족상도례를 보완하자

유영희 작가 가정의 달, 5월이 지났다. 가정의 달은 UN에서 정한 ‘세계 가정의 날’에 영향을 받아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의 달에 어린이날을 비롯하여 어버이날, 부부의 날까지 가족 관련 기념일이 많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가정의 달로 지정하면서까지 기념하고 의미를 되새긴다는 것은 가족 간에 화목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일 것이다. 실제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심리적 상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자녀들도 많다. 5월이 되면 여지없이 부모의 착취와 학대로 고통받는 자녀들 이야기가 기사에 오른다. 올해 기사에도 딸을 여러 번 신용불량자를 만든 부모가 사위에게도 재산 피해를 주려 하자 인연을 끊고 싶다는 사연이 있었다. 나 역시 모 대학에서 어느 수강생이 부모가 자기 이름으로 대출하여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면서 자주 결석하다가 끝내 학기를 마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자식들이 이런 피해를 당해도 친족상도례 때문에 부모를 처벌할 수 없고, 어렵게 절연을 결심하고 집을 나와도 가족에게는 주소지와 연락처가 공유되어 피해가 계속되어도 속수무책이다. 친족상도례 때문이다.친족상도례는 고대 로마에서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관습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문화가 동양의 유교 문화에도 있었다. ‘논어’에서 공자는 아버지가 양을 훔쳤어도 아들이 고발하면 안 된다고 했고, 맹자는 순임금이라면 아버지가 사람을 죽여도 숨겨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실제로 형법 제151조 2항에는 친족이나 동거의 가족이 죄를 지었을 때 숨겨주는 것은 형을 면한다. 다만, 이런 경우는 ‘친족간 처벌 특례 규정’이다.형법 제328조(친족간의 범행과 고소) ①항에 의하면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제323조의 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친족상도례이다. 그렇다고 모든 범죄에 대하여 친족상도례를 적용하는 것은 아니고, 재산죄에 적용된다. 형제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친고죄로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직계존비속 관계는 동거하지 않아도 재산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받는다. 그래서 방송인 박수홍의 아버지가 형이 한 횡령을 자기가 한 일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친족상도례의 부작용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2022년 방송에서는 정치인들이 친족상도례를 수정해야 한다는 인터뷰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개정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정신의학과 의사 이호선은 ‘가족이라는 착각’에서, 자식은 ‘내 것’이 아니고, 부부는 ‘하나’가 아니며, 부모는 ‘어른’이 아니라면서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고, 가족 간에도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처방한다. 그러나 단순히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족에게 자신의 재산권을 완전히 위임하지도 말고, 친족상도례도 시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내년 가정의 달에는 친족상도례로 고통받는 자녀들 기사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2024-06-02

문제는 바로 팩트야

유영희 작가 한 달 전,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시민팩트체커 활동을 권유하는 메일이었다. 알아보니, 한국팩트체커커뮤니티(Korean Factcheckers’ Commu nity·K.F.C.)라는 단체가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미 2015년 미국에서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nternational Fact Checking Network, IFCN)가 창설되어 국제적으로 많은 팩트체커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IFCN은 매년 글로벌 팩트(Global Fact)를 여는데, 작년에는 서울대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가 공동주관하여 한국에서 열렸다고 한다. 2014년 50명에서 시작했던 글로벌 팩트가 작년에는 대면 506명, 온라인 1,032명이 참여했다고 하니, 그만큼 팩트체크의 필요성이 절실해진다는 증거일 것이다.K.F.C.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최다선 의원이 국회의장이 된다는 관례에 대해서도 팩트체크되어 있었다.역대 국회의장의 국회의원 당선 횟수를 보면, 6선 의원이 11번으로 가장 많았고, 초선 의원이 맡은 적도 4번 있다. 다수당 최다선 의원이 국회의장을 역임한 사례는 의회 역사를 통틀어서 6번이었다. 이런 검증 결과, 관례적으로 최다선 의원이 국회의장을 맡았다는 진술은 사실이 아니었다.이 사례를 보면서 나도 국회의장이 권력 서열 2위라는 우상호 의원의 말을 검증해보았다. 찾아보니, 권력 서열이라는 용어는 없고 의전 서열만 있다. 다만, 아쉽게도 이미 4년 전에 YTN에서 팩트체크해놓은 것이 있었다. 의전 서열은 관례로만 있을 뿐 문서화된 공식적 의전 서열은 없다고 한다. 이렇게 확인하고 나니 의문이 풀렸다.IFCN에서는 팩트체크를 할 때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준칙을 만들었는데, 첫째가 비정파성과 공정성이다. 어느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알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한다. 둘째는 취재원을 밝혀야 하고, 셋째는 팩트체크하는 기관의 재정과 조직이 투명해야 한다. 넷째 검증 방법도 투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팩트체크는 한 번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이고 정직하게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잘 수행하면 팩트체크 인증기관이 된다고 한다.팩트 인식의 중요성은 몇 년 전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던 한스 로슬링 등의 저서 ‘팩트풀니스’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서문에는 저자가 출제한 문제 13개가 있는데, 맞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나도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이렇게 잘못 알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 느낌’과 ‘현실이 아닌 환상’에 근거하여 세상을 보기 때문이라면서, 사실에 근거하면 스트레스와 절망감이 줄어든다고 저자는 강조한다.정치 경제뿐 아니라 일반 사회 분야에서도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거짓 정보가 너무 많다. 한쪽 입장만 듣고 쉽게 격앙하지 말고, 정보의 진위를 검증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다양한 미디어를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거짓 정보에 휩쓸릴 가능성은 많이 줄어든다. 스트레스와 절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시민의 팩트체크 활동은 정말 필요하다.

2024-05-26

국회가 민주주의의 꽃이 되려면

유영희 작가 작년과 재작년 두 해에 걸쳐 내가 사는 지방 의회에 의정 감시단으로 활동했다. 다음 해 예산을 심의하는 자리였는데, 질문도 잘하고 대안도 제시하는 의원이 있는 반면, 예산 계획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질타만 하는 의원도 있었다. 의장의 태도도 회의 진행에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의장이 균형을 잡아야 회의가 원만하게 진행되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작은 지방 의회에서도 의장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국회의 운영을 책임지는 국회의장의 자리는 말할 것도 없겠다. 매일 참석한 것은 아니지만 뜻깊은 경험이었다.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에서는 22대 1기 2년 임기를 수행할 국회의장 후보로 우원식 의원을 선출했다. 정식 국회의장 선출은 6월 초 국회 개원 후 이루어지므로 지금은 후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사실상 국회의장이 되는 셈이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선택에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그런 와중에 투표 4일 전, 후보로 나선 정성호, 조정식 두 의원이 추미애로 단일화한다며 갑자기 사퇴하여 국민의 빈축을 샀다.그렇게 추미애 국회의장이 확실한 줄 알았는데 뜻밖에 우원식 의원이 후보로 선출되어 논란이 가중되었다. 이미 4월 29일 여론 조사에서도 추미애 국회의장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예상 밖의 결과에 추미애 강경 지지파들은 당심이 민심을 저버렸다며 탈당까지 하는 등 반발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반대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하는 입장도 있다. 최다선 연장자가 국회의장을 맡았다는 관례를 금과옥조로 받든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통하기 어렵다는 말도 이들의 말은 맞다. 우원식도 5선이나 한 국회의원이고 나이는 추미애보다 한 살 많으니 부족하지 않다. 게다가 추미애 의원의 강성 캐릭터 때문에, 팽팽한 여야 대치 상태의 현 정국을 잘 이끌어갈지 의문을 가진 사람도 많다.국회의장이 기계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협치 능력은 중요하다. 우원식 후보의 과거 행적을 보니, 2017년 당시 원내대표였을 때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를 인준하는 자리에 협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국민의힘 당색이었던 초록색 넥타이를 매자고 주문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기사가 있다. 반면, 추미애 의원은, 6선이라고 해도 직전에 의원은 아니어서 불리한 점도 있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는 등 예측하기 힘든 모습도 보여 불안하다는 평가도 일리가 있다.무엇보다 진행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가 중요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국회의원 선거 때 후보 단일화를 한 적이 몇 번 있다. 처음부터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중도 사퇴를 작정하고 출마한 사람도 있었다. 어느 당이라도 이런 행태를 더 이상 국민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같은 당 안에서 내가 지지한 후보가 당선이 안 되었다고 탈당한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의회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우원식 의원에게 기대해본다. 임기 동안 국회의장으로서 민주주의 원칙을 실천하기 바란다.

2024-05-19

분노가 오해 때문이라고요?

유영희 작가 포털에서 갑자기 ‘라인’ 매각 문제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카카오톡처럼, 네이버에서 개발한 라인은 일본의 국민 메신저이다. 라인은 오래전 몇 번 써본 경험이 있어, 무슨 일인가 궁금증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살펴보았다. 잘 알지 못하던 사건이라도 인터넷을 검색하여 기사나 뉴스를 최소 10개 정도라도 찾아보면, 어느 정도 윤곽을 알게 된다.이번 라인 사태는 일본 총무성이 라인야후에게 네이버와 지분 관계를 개선하라고 요구한 데서 비롯되었다. 지분 관계 개선이란, 네이버의 지분을 일본의 라인야후에게 매각하라는 뜻이다. 이미 2021년부터 일본 정부는 네이버의 보안 소홀 문제를 트집 잡고 있던 터였는데, 작년 8월과 11월에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유일한 한국인 이사였던 신중호 CPO를 이사에서 사퇴시켰는데, 문책이라는 의혹이 많다고 한다. 4월 29일 한국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총무성의 조치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행정지도일 뿐이라며 정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닌 것처럼 선을 그었다.그러나 이 문제는 ‘라인 사태’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하여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분 뺏기로 보안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데다, 일본에서 선례를 남기면 다른 나라에서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나 역시 지난 9일 조국혁신당의 이해민 홍보위원장이 급하게 했다는 기자 회견을 보니, 절반의 궁금증은 모두 걱정으로 변했다. 한국 외교부가 일본 총무성에 요청하기를, 라인야후가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데, 그것은 오해라고 한국 언론에 전화라도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오해라는 말을 들으니, 언젠가 정부는 잘하고 있는데 국민이 오해하고 있다던 기사가 생각나면서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이번 사태의 대응책을 찾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하나는 일본 총무성이 3월과 4월 연달아 행정지도를 했는데, 정부는 왜 5월 10일에서야 유감 입장을 내놓았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라인 사태는 정말 민간 기업 간의 문제이고, 그래서 네이버가 요청해야만 지원할 사안인가 하는 것이다.그동안 네이버는 일본에서 라인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에 상당히 신경 썼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라인을 한국 기업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애매하게 지분을 50 대 50으로 균형을 맞췄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발표한 네이버 입장문을 읽자니, 글자 하나하나 얼마나 신중한지 한눈에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의 요청을 기다린다는 것은 얄팍한 핑계이다.더 중요한 문제는, 라인 사태가 민간 기업 간의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 총무성에서 라인야후에 지분 관계 시정을 요구했다는 것 자체가 민간 차원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그러니 정부가 이것을 민간 기업 문제라고 나서지 않는 것은 책임 회피일 뿐이다. 술 나눠 마셨다고 친구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정부는 현실을 직시하고 똑바로 대응하기 바란다.

2024-05-12

핵개인 시대에 가족의 의미

유영희 작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을 거쳐, 21일에는 부부의 날로 마무리된다. 그 중간에는 스승의날까지 있다. 여기저기서 가족 모임을 한다고 분주하다. 자식이 결혼하면 아무리 같은 도시, 같은 동네에 살더라도 분가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기념일이 있을 때면 모두 약속을 잡는다.그런데 이런 삶의 방식에 모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배우 전원주 씨가 금쪽상담소에 나와서 돈은 있어도 외로워서 자식과 살고 싶은데 어느 자식도 자신과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전원주 씨처럼 나이도 많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서운함에 많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나이 든 부모가 결혼한 자녀와 함께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많지 않다. 2022년 통계만 보아도 3세대 가구는 3% 정도뿐이다. 반면, 1인 가구는 34%를 넘었고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전원주 씨 사례 영상 댓글에도 혼자 사는 법을 배우라는 의견이 거의 전부다.이렇게 개인화되어 가는 세상에 대해 송길영은 ‘시대예보’에서 핵개인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2세대 가구를 핵가족이라고 불렀다면, 1인으로 살아가는 시대는 핵개인 시대라면서, 사람들이 점점 똑똑해지고 오래 살게 되기 때문에 핵개인의 시대가 왔다고 한다. 인간의 적응력은 뛰어나니 이런 시대가 와도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 아닌 위로도 곁들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핵개인의 시대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잘 적응한다고 하기도 어렵다. 며칠 전 기사를 보니, 직장을 다니는 젊은이도 1인 가구의 고립감에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연결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족 같은 강한 연결도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인터넷에서 만나는 약한 연결도 사회적 소속감을 부여해주는 토대가 된다. 아즈마 히로키 역시 ‘약한 연결’이라는 책에서 전통 사회 가족 유대관계 같은 강한 연결도 필요하다고 한다. 다만, 세계화라는 세상의 변화 앞에서 강한 연결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신, 약한 연결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인터넷도 검색을 잘하면 충분히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현실 공간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내 경우는, 어차피 5월에 생일이 있는 딸도 있어서 어버이날은 따로 신경 쓰지 말라고 진작에 다짐해두었다. 그 생일 기념도 일부는 온라인으로 한다. 유럽과 호주에 떨어져 사는 어떤 가족은 영상통화로 만난다고 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상황이 변하니 새로운 방식을 찾게 된다. 핵개인 사회에 적응하기를 강조하다가 자칫 고립되는 위험이 생길 수 있다. 사람에게는 약한 연결은 물론이고, 가족 관계 같은 강한 연결도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연결의 방식과 형태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핵개인화되는 시대에서도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려면, 자신의 정서적 욕구를 잘 인식하고 가족이라는 강한 연결을 상황에 맞게 조화롭게 이어가야 한다.

2024-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