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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5만원의 얼굴

유영희 작가 더불어민주당에서 총선 기간에 발의한 전 국민 25만 원 지역 화폐 지급에 대해 논란이 많다.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고 개혁신당과 민노총,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사까지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더불어민주당에서는 고물가, 고금리 상황에서 실질소득을 보충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 화폐라서 실질적인 민생 회복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코로나19 때 재난지원금 14조 원 이상을 풀었지만 전체 투입 예산 대비 26.2~36.1%의 매출 증대 효과가 나타났을 뿐이고, 고소득 계층은 소비 변화의 폭도 크지 않았다고 하면서, 전 국민을 지원하는 방식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이런 논란을 보면서, 나에게 25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기에 주면 좋지 하는 마음도 있지만, 단 1회만 주는 25만 원으로는 실질소득 증가에 큰 영향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13조 원의 예산을 이렇게 써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미 작년 재정적자가 87조 원이라고 하니 더 걱정스럽다.그래서인지 13조 원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용혜인 의원의 보충 설명이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반대입장과 맞장토론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다가 인플레이션 공부까지 하게 된다.총 6부로 진행되는 EBS1의 ‘돈의 얼굴’ 중 지난주 방영된 3부 ‘돈이 떨어졌습니다’에서는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영상에 나오는 어느 노동자는 월급이 80만 원일 때가 더 행복했다면서 지금은 월급이 두 배로 올랐지만 물가는 더 올라서 오히려 그때가 더 좋았다고 말한다.실제로 제작진은 M사 햄버거 가격 변동을 보여주며 인플레이션의 위력을 증명해준다. 1960년에는 45센트로 햄버거 한 개를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12분의 1조각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정말 물리적으로 객관적으로 우리 삶이 팍팍해졌나 하는 의문도 든다. 이런 의문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이 영상에 흥미로운 댓글이 달려 있다. ‘지금은 부모 세대보다 노동시간이 줄었고, 지난 50년간 명목 임금은 100배 이상 올랐으며, 공산품 물가가 오르기는 했지만 임금 상승 비율과 비교하면 오히려 낮아졌다.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주요 원인은 물가가 아니라 집값, 정확하게는 땅값인데, 서울의 강남 땅값은 3천 배 올랐다. 물가가 오른 것이 아니라 욕망이 많아졌다.’ 실제로 2020년 동아일보에도 짜장면 50배, 돼지고기 133배 오를 때, 1인당 소득은 415배 늘었는데, 그래도 통장이 텅장 되는 이유는 집값과 소비 욕구 때문이라고 분석해놓은 기사가 있다.이런 자료를 보면, 25만 원이라는 지원금이 인플레이션 조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87조 원 재정적자 상황에서 13조 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고, 매출 증대 효과가 미흡하다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좋겠다. 혹시나 돈을 풀어서 정부만 이득을 본다는 토마스 사전트 교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원금 방식은 더욱 신중해야 할 일이다.

2024-04-28

안락사는 자살이 아니다

유영희 작가 2주 전부터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에서 자살 예방 특강 영상을 릴레이로 올리고 있다. 예일대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를 필두로, 우울증을 앓는 아내를 7년간 돌본 최의종 작가, 뇌과학자 장동선과 김용 전 세계은행총재가 출연하여 자살을 예방하는 방법, 자살하고 싶은 사람을 돌보는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다 조회수가 많지만, 최의종 작가 영상은 77만회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이다.한국의 자살률은 지난 20년간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에 가면, 자살자의 연령별, 성별, 직군별 등 다각도로 분석된 통계를 볼 수 있다. 2022년 한국 자살률은 24.1%로 OECD 평균 10.7%의 두 배가 넘는 부동의 1위지만, 그나마 자살률이 감소하는 추세라 다행이기는 하다. 2012년 한국의 자살률 30.3%보다 6%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다만, 자살률 감소는 세계적인 흐름이고, 2012년 한국과 비슷하게 30.1%였던 리투아니아가 10년 후 18.5%로 줄어든 것을 보면 마냥 다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 경제적 곤란, 치료가 어려운 질병 등 자살의 원인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한국이 이토록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과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살률을 낮추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긴급한 화두다.눈에 띄는 것은 연령별로 자살 원인이 다르다는 것인데, 고령층의 자살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질병이다.‘2020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이 자살을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건강’(23.7%)과 ‘경제적 어려움’(23.0%)이라고 하는데, 의료비 지출 역시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하는 큰 요소이다. 그러니 80대 이상이 치료 불가능한 질병에 걸리면 자살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80대 이상의 자살률이 117.9%라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자살은 남은 가족에게 큰 상처를 남기며 혼자 외롭게 고통스럽게 죽는 일이지만, 안락사는 가족의 합의를 얻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 평화로운 죽음이다. 오남용의 여지는 제도적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실제로 소피 마르소 주연의 프랑스 영화 ‘다 잘된 거야’에서는 아버지가 선택한 안락사를 가족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는데,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까지 상세히 표현되어 있다.네덜란드는 삶의 질 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국민의 4%가 안락사로 죽음을 맞는다는데, 올해 1월에는 병을 앓던 판 아흐트 전 총리 부부가 자택에서 동반 안락사를 선택했다. 최근에는 중증 치매 환자의 안락사도 허용했다고 한다.극단적인 저출생 현상과 함께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의 자살률은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이 얼마나 나쁜가를 보여준다. ‘세바시’ 영상처럼 우울증 치료도 중요하지만,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안락사 허용은 필요하다. 그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안락사는 자살이 아니다.

2024-04-21

취리히에서 저상버스를 타고 눈물을 쏟은 이유

유영희 작가 여행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고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도 많지 않아서 국내 여행도 잘 하지 않는 편인데, 며칠 전 멀고도 먼 스위스로 여행을 다녀왔다. 딸이 취리히로 떠난 지 3년이 되도록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위스 하면 아름다운 자연과 부자 나라라는 이미지만 있었는데, 직접 가보니 검색으로 깨닫기 어려운 것을 알게 되었다. 딸이 사는 동네는 물론, 취리히 시내에서도 한두 명의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부모들이 정말 많았다. 알고 보니 스위스 출산율도 아주 높은 편은 아니어서 한동안 1.5를 유지하다가 2022년에는 1.3으로 내려갔다는데도, 정말 아기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못지 않게 대중교통도 놀라웠다.취리히 시내는 모두 버스, 트롤리 버스, 트램 등 대중교통으로 이동했는데, 출입문이 두 사람이 동시에 탈 수 있을 만큼 넓었다. 거기에다 차가 정차할 때 튀어나오는 발판이 승강장과 수평이 되어 승차할 때 계단을 오를 필요가 없었다. 한국도 저상 버스가 일부 있기는 하지만, 취리히의 모든 버스는 저상이었고 승강장과 발판 간격이 거의 맞붙을 만큼 좁아서 더욱 안전했다. 스위스 경계 내 기차도 같은 방식이었다.출입문이 충분히 넓은 데다 단차도 없고 틈도 없으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유아차를 끌고 다니는 부모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버스를 탈 수 있다. 게다가 휠체어를 탄 사람이 승강장에 있으면 버스 기사가 내려서 휠체어가 타기 좋게 더 넓은 발판을 펼쳐주고 휠체어를 밀어준다.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에는 장애인 승차 가능 여부가 표시되는데 거의 모든 버스가 장애인 승차가 가능하다.한층 더 놀라운 것은 버스나 열차를 탈 때 매번 카드를 태그하지 않고 그냥 타고 내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료는 아니고, 여행객은 프리패스권을 사고, 취리히에 살고 있는 사람은 정기권을 결제하거나 앱이나 정류장에서 구매하는데, 버스 안에 태그하는 기계가 없는 것이다. 아주 가끔 불시에 승차권을 검사는 하고, 걸리면 요금의 20배정도 벌금을 물린단다. 벌금이 무서워서인지 명예를 중시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시스템이 취리히에서는 잘 운영된다고 한다. 이렇게 매번 카드를 태그하지 않는 편리함은 상상을 넘는다. 짐이 많거나 어린아이를 동반하거나 몸 균형을 잡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승하차 때 카드를 꺼내는 일은 정말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딸에게 스위스의 풍경보다 취리히 대중교통의 편리함에 감동받았다고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나는 장애도 없고, 나이가 들면서 승하차 불편감을 조금 느끼는 정도인데도 이 편리함이 이렇게 크게 다가오는데, 실제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얼마나 소외감을 느낄지 사무쳐왔기 때문이다. 전장연 시위 때 그들의 불편에 더 공감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들었다.며칠 전 22대 국회가 구성되었다. 물가는 물론이고, 더 많은 민생의 삶을 구석구석 세심하게 살피는 정책 입안에 여야 모두 마음을 모아 노력해주기 바란다.

2024-04-14

군자의 의리, 소인의 의리

유영희 작가 며칠 전, 국민의 미래 인요한 선거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일러 정이 너무 많다고 하면서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을 가져온 사람을 차마 박절하게 끊지 못했다고 변명한 것을 옹호했다.또 마피아도 부인과 아이는 안 건드린다면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비판을 너무 심하다고 비난했다.이런 뉴스를 듣자니 중국 고대의 재상 관중이 생각난다. 관중은 관포지교라는 사자성어로도 유명한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재상이다. 제나라의 군주 자리가 공석이 되었을 때 포숙아가 모시던 소백이 먼저 제나라에 들어와 환공이 되었다. 그런데 그 전에 관중은 자기가 모시던 규를 군주자리에 앉히려고 소백을 죽이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다. 그래도 포숙아는 관중을 소백에게 추천했고 환공 역시 자신과의 사사로운 관계는 잊고 그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그후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나라의 국력을 키웠다.이러한 관중의 처세에 대해 공자 제자들과 공자의 의견이 갈린다. ‘논어’헌문편에서, 자로는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는데도 관중은 따라죽지 않았으니 어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자는 관중 덕분에 환공이 제후를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관중을 어질다고 평가한다. 자공 역시 자로 편을 들면서 관중은 자신이 모시던 공자를 따라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원수에게 충성했으니 어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자는 관중이 없었으면 한족은 모두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라면서 관중이 어질다고 옹호한다. 그러면서 공자는 개인 관계의 작은 도리에 연연하는 것은 필부의 의리이고, 백성을 위한 큰 의리를 실현하는 것은 군자의 의리라고 부연한다. 이것을 군자의 의리와 소인의 의리라고 한다.한편, 군자와 소인의 차이에 ‘논어’ 위정편에서 군자는 의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소인은 이익을 밝히는 사람이라고 하고, 맹자 역시 어떻게 하면 이익을 키울 수 있느냐는 양혜왕의 질문에 군자는 이익이 아니라 의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맹자도 의리란 결국 군주가 백성이 즐거워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라고 하면서 의리와 이익이 서로 관계가 깊다고 보충한다.정은 가까운 사람과 나누는 교감이므로 정이 많다는 것은 자기와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말이다. 대통령이건 대통령 부인이건 모두 공인 중의 공인이므로 사사로운 정보다는 국민 모두를 위한 정의와 공정에 힘써야 한다. 공직에 뜻을 두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출마한 인요한 선거대책 본부장이 정이 많은 것을 약점이라고 포장하면서 옹호하는 것은 군자의 의리와 소인의 의리를 혼동한 처사이다.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대의를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사사로운 관계를 무조건 끊어야 한다고 하기도 어렵고, 정이 많은 것을 나쁘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다만, 사사로움을 확대하여 그 다정함을 누구를 위해서 사용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공직에 있거나 공직을 꿈꾸는 사람은 자신의 다정함과 즐거움을 얼마나 많은 사람과 나누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기 바란다.

2024-04-07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면

유영희 작가 4월 10일, 22대 총선일이 열흘 남짓 남았다. 정당마다 구호를 내걸고 표심을 얻기에 분주하다. 어떤 이는 진작에 마음을 굳혔겠지만, 아직 표를 줄 정당과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도 많다. 처음부터 판세가 결정된 지역도 있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격전지도 있다. 그러니 투표일까지 유권자는 두 눈 크게 뜨고, 두 귀 활짝 열고 후보의 인물과 정책을 주시해야 한다. 문제는, 인간이 그렇게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정당의 정책과 인물을 보고 자기 이익에 기반해서 투표하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당연히 그렇게 투표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피지배 집단이 지배 집단을 위해 투표하는 일이 종종 있다. 10여 년 전에 출간된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도 캔자스 등 낙후된 지역 주민들이 공화당에 표를 주는 현상에 주목했다.이런 현상에 대해 뉴욕대 심리학 교수 존 조스트는 ‘체제 정당화의 심리학’을 통해서 사람들 대다수는 현 상태를 옹호하고, 강화하고, 정당화하도록 동기화 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이 이런 방식으로 동기화되는 이유는 많고도 복잡하다. 그중에 내가 관심 있는 방식은 양가감정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지위가 높은 집단과 자기 집단에 대해서 모두 양가감정이 높다는 가설이 검증되었다. 양가감정이 높다는 뜻은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이 모두 높은 수준으로 다 있다는 것이다.존 포스트가 보여준 여러 실험에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비난하면서도 선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존감도 낮은 편이다. 이런 현상은 빈부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흑인과 백인, 명문대와 비명문대 등 사회적으로 강자와 약자로 구분되는 집단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비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데에는 문화적인 고정 관념도 중요하게 작동한다고 한다. 존 포스트는, 찰스 디킨스가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크래칫 가족을 통해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고정 관념을 만들었다면서 이런 고정 관념이 사회에 널리 퍼지면 약자인 당사자도 그것을 내면화한다는 것이다.이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 대다수 사람이 양가감정을 비롯한 인지부조화에 휘둘리면서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관성이 없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우리가 이런 식의 양가감정에 지배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인터넷의 발달이 언제나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양가감정에서도 자유로워지고 교차검증을 통해 합리적인 사고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냉철한 이성으로 정책과 비전에 입각하여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쌓아왔다. 돌아오는 4월 10일에 그 능력을 발휘해보자.

2024-03-31

공허한 자유는 이제 그만

유영희 작가 지난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에서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화상으로 열렸다. 미국에서 열린 1차 때부터 화상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회의 환영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고 강조했다.그런데 같은 날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사퇴했다. 황상무 전 수석이 MBC 잘 들으라며 1988년 정부에 비판적 기사를 쓰다가 회칼 테러를 당한 기자 이야기를 농담거리 삼아 했기 때문이다.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사퇴는 했지만,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라는 자리에 있는 인물이 기자들 앞에 두고 정부를 비판한 기자가 테러 당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말한다는 것은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존중한다는 윤석열 정부에서 애당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그것뿐이 아니라 지난 1월과 2월에는 세 사람이 입틀막 당하며 끌려가는 모습을 온 국민이 지켜 보았다. 1월 18일 전북자치도 출범식에서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외치던 강성희 의원이 사지가 들린 채 끌려 나갔고, 2월 16일에는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RD 예산 삭감에 항의하던 졸업생이 입틀막 당하고 끌려 나갔으며, 2월 1일에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에서 임현택 소아청소년과 회장이 필수 의료 의견을 전달하려다 역시 입틀막 당한 채 사지가 들려 끌려 나갔다.이런 시절이고 보니, 지난 3월 7일 발표된 브이뎀 보고서에서 한국이 0.6점을 받아 세계 179개 나라 중 47위를 차지했다는 뉴스를 보아도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브이뎀은 민주주의 다양성(Variety of Democracy)의 약자인데, 이 보고서는 스웨덴 예텐보리 대학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에서 발행하고 있다. 전 세계 4천200명 이상의 전문가가 민주주의 이슈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어서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채점 기준은 선거·자유·참여·심의·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5가지 상위 원칙이다.이 기사를 보고 직접 브이뎀 보고서를 찾아보니, 2003년부터 2023년까지 자유민주주의 지수 변화가 극적인 나라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선 그래프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에 한국은 벨 형 탑 10에 포함되었는데, 2015년 0.6점에서 2018년 0.8점으로 13위로 올랐다가, 작년에는 0.73으로 28위더니 올해는 더 내려가서 2015년 점수로 회귀하여 47위를 기록하여 U자를 엎은 벨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특히 언론 자유가 눈에 띄게 위축되는 20개국에 포함되었다고 한다.1에 가까울수록 민주주의가 발달한 것이고 0에 가까울수록 독재 국가다. 어떤 사람은 0.6도 높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 42개국 중에 꼴찌라는 점, 0,8을 기록한 시절이 있었는데 퇴보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유는 소수에 의해 자의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만 주어지는 특권도 아니다. 공허한 자유 이야기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

2024-03-24

커밍아웃이 필요 없는 세상

유영희 작가 ‘삼국유사’에는 임금님의 두건을 만드는 장인이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것을 혼자만 알고 있다가 죽기 전에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있다.이 이야기의 교훈은 권력자의 횡포로 읽기도 한다. 그러나 임금님 같은 권력자라도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남들이 알까, 장인이 발설할까 전전긍긍하며 두려움에 떨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권력자라도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 하거나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이렇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혼자만 또는 아주 극소수만 알고 있다면, 그것을 지키는 데는 큰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 정보가 알려졌을 때 자신이 심한 피해를 보게 된다면 그것을 말하지 않기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는 몇 배 가중될 것이다. 그런 사람 중에는 성소수자들도 있지만, 특정 질환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들은 커밍아웃의 부담을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은 채 살아간다.치매 역시 너도나도 밝히기를 꺼리는 질환이다. 한국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 환자가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 이미 초고령사회인 일본의 대처 방법을 눈여겨보게 된다. 김웅철의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의 첫 장에는 스타벅스가 어떻게 치매와 만나는지 소개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치매 환자의 가족은 물론, 치매 당사자와 간병인, 전문가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모여 차를 마시거나 간단한 식사 하면서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정보를 공유한다고 한다.이것은 일본 정부가 2012년부터 치매 정책 5개년 계획에 2025년까지 일본 전역에 치매 카페를 설치한다는 목표를 세운 후 일어난 일이다. 처음에는 공공시설이나 빈 가게를 활용하다가 최근에는 스타벅스가 나서서 치매 카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도쿄 근처 마치다 시에는 치매 카페를 의미하는 D-카페 푯말이 붙은 스타벅스가 8곳이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고령의 치매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일상의 여유를 즐기는 방식이라고 한다.치매 카페에서도 이들을 특별히 따로 구분하지 않아서, 일반 손님과 자연스럽게 섞여 어울리니 주민들도 치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스타벅스는 이것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장소로 운영한다고 한다. 일본 상황을 잘 아는 지인에게 들으니, 일본에는 치매 환자들의 토론대회도 있다고 한다.2021년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치매 유병률은 10%, 85세 이상은 40%라고 하니, 더 이상 쉬쉬할 일이 아니다.그런데도 주변에는 검사를 받아보시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 누가 진단이라도 받는 날이면, 가족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치매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고 환자를 일상에서 배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그들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당나귀 귀처럼 생긴 귀를 가지고 있어도 기꺼이 두건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2024-03-17

긍정적 차별도 차별이다

유영희 작가 어르신이라고 불릴 나이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요즘 어르신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존칭의 의미를 담았다고는 하나 실제 사용할 때는 사회적 약자한테만 쓰는 말처럼 들린다. ‘어르신’이라고 또박또박 발음해주면 그나마 그런 기분이 덜할 텐데, ‘어르신’을 ‘으르신’으로 부르는 사람도 많고 이렇게 부를 때는 대부분 톤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보니, 귀도 잘 안 들리는 불완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가만히 보면, 나이별로 붙이는 이름의 형식이 다 다르다. 대략 초등학생까지는 어린이라고 하는데, 청소년부터, 청년과 중장년까지는 시기를 나타내는‘년’으로 부르다가 65세 이상 노년은 갑자기 ‘어르신’으로 부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어른’은 중장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게 기계적으로 볼 수는 없다. ‘이 시대의 어른’이라는 용례에서처럼, ‘어른’은 귀감이 될 만한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여기서도 ‘어르신 김장하’라고 하지 않았다.그러니 ‘어르신’은 ‘어른’의 높임말이라기보다는 ‘늙은이’의 높임말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단어라는 것이 참 오묘해서 같은 ‘이’라도 ‘어린’에 붙으면 높임, ‘늙은’에 붙으면 하대처럼 보인다. 국어사전을 보면, ‘어린이’는 ‘어린 아이’를 높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젊은이’는 그나마 가치중립적으로 그저 젊은 나이대 사람으로 생각되는데, ‘늙은이’는 폄하하는 말처럼 들린다. 실제로 ‘늙은이’는 대부분 욕으로 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단어가 ‘어르신’일 것이다.애당초 어른이라는 명사에 어떻게 ‘시’를 붙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어 찾아보니 ‘어르신’의 어원은 16세기 ‘얼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얼운’은 동사 ‘어르’에 사동접미사 ‘우’와 관형사형 어미 ‘-ㄴ’이 붙은 것이고, ‘어르신’은 거기에 존칭을 의미하는 선어말어미 ‘시’를 붙인 것이란다. 그러고 보면, 어르신이라는 단어는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고 족보가 있는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어르신’이 ‘어른’보다 낮춤말 같이 느껴진다. ‘어르신’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적 관계에서 마음을 담아 사용하는 존칭을 보통명사로 만들어서 존대의 의미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르신’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존대의 마음을 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기에다 우리 사회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지위는 한없이 처량하다. 빈곤율 세계 1위는 말할 것도 없고, 65세만 넘으면 갈 곳이 없다. 호칭만 어르신이지, 그에 걸맞은 처지도 아니고 대우도 없다. 그저 호칭 인플레만 고공행진일 뿐이다. 이러니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달가워할 수가 없다. 오히려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차라리 ‘어른’이 백번 낫다.공식적인 명칭에 존칭을 붙이는 해괴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좋게 보면, 긍정적 차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실속 없는 ‘긍정적’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긍정적 차별도 차별이다.

2024-03-10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의 출산 정책을 보며

유영희 작가 두 딸이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출산을 하지 않았다. 더 미루다가는 임신이 안 될까 걱정하면서도 선뜻 결정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둘 다 직장에 다니다 보니, 육아 부담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치러지는 총선에서 거대 양당의 출생률 높이기 정책에 눈길이 더 간다.통계에 따르면, 작년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이다. 2022년만 해도 0.78명이었는데 1년 사이에 더 훅 떨어진 것이다. 2005년부터 저출산 대책을 시행했지만 이제는 젊은이들이 결혼은커녕 연애도 포기한다고 하니, 출생률 높이기는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설문조사에 의하면, 이렇게 초저출산이 계속되는 것은 경제적 부담과 육아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옛날에는 더 가난해도 아이만 잘 낳았다는 ‘라떼 레퍼토리’가 나올 법하다. 그러나 작년 12월에 발표된 경제연구원이 조사한 결과를 보니, 한국 젊은이들의 형편이 얼마나 열악한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2022년 현재 25∼39세 고용율을 보면, OECD 평균은 87.4%인데 우리나라는 75.3%이고, 그나마도 청년층 비정규직 비중이 2003년 31.8%에서 2022년 41.4%로 증가하였다. 이런 물리적 조건을 보면, 우리나라 MZ세대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생활비 우려와 재정 상황 불안도 45%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글로벌 MZ 세대의 불안도는 32%라고 한다. 반대로 재정에 대해 안정감을 느끼는 한국의 MZ세대는 31%이고 글로벌 평균은 42%이다. 우리나라 도시인구 집중도는 431.9로 OECD 평균 95.3의 4배가 넘고, 우리나라 여성 고용은 OECD평균 87.2%에 비해 매우 낮은 75.8%다. 게다가 OECD 육아 가능 기간과 이용률은 61.4인데, 우리나라는 10.3이다. 이러니 출산하는 사람이 신기할 지경이다.각계 전문가들이 진단한 초저출산 원인과 대책을 살펴보니, 각자 자기 전공에 치중하는 느낌이 든다. 육아 전문가는 아이가 소비재로 전락한 현상을 원인으로 들고, 인구학자는 대도시 집중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 안정이다. 고용이 안정되면, 주거 문제도 해결되고 육아 부담도 완화된다. 지방에서 고용이 창출된다면 인구도 분산된다.그런데 양당의 저출산 대책을 보면, 현금 지원성 대책이 많다. 여당은 10조원, 야당은 28조원의 예산을 잡고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외치며 만든 여당의 ‘늘봄’ 정책은 부모와 아이가 ‘늘못봄’ 정책이라며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고, 제1야당의 1억 대출 역시 미봉책이다. 도대체 그 1억을 10년 만에 어떻게 갚을 것인가? 그보다 세수 감소로 올해 각종 예산도 다 삭감한 마당에 이런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법률적 부부에게만 지원하는 정책만으로는 출생률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선진국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총선을 앞둔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면하려면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해주기 바란다.

2024-03-03

양시양비에도 책임자는 있다

유영희 작가 지난 2월 6일, 정부는 현재 3천58명인 의대 정원을 2025년부터 2000명씩 늘려서 2035년까지 1만 명을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의료인들이 집단 반발하며 단체 행동을 불사하고 있다. 며칠 전 빅 5 병원의 전공의 50%가 사직서를 냈다는데, 정부 역시 물러설 기미가 없으니, 이 문제의 본질과 해법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국민 1천 명당 OECD 평균 의사 수가 3.7명인데, 현재 한국은 2.6명으로 멕시코 다음으로 적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부의 계획은 타당해보인다. 그런데 1천 명당 의사 숫자가 한국과 거의 비슷한 일본조차도 의대 정원을 줄일 예정이라고 한다.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대 정원은 똑같은데 1천 명당 의사는 2006년 1.8명에서 2012년 2.0명, 2022년 2.6명으로 계속 증가했다. 이것은 출생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 정원을 왜 1만 명씩이나 늘려야 하는지 근거가 없다. 사회적 비용만 엄청나게 드는 정부 계획에 대해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불사하며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옳다.또 다른 문제는,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이 현재 의료 서비스 불만을 해소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의사가 많아져도 수가로 수입을 보장하는 시스템으로는 필수 의료 분야 부족 문제나 지방 의료 공백이 해결되지 않는다. 1천 명당 의사 숫자가 2019년 현재 5.04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리투아니아의 경우만 해도 대도시와 지방의 의사 공급 편차가 극심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수가로 운영되는 방식을 개선하고 공공의료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의료인들과 정치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작년 남인순 국회의원의 보고에 따르면, 2021년 OECD 국가 중 공공의료 기관 비중은 영국 100%, 캐나다 99.0%, 프랑스 45.0%, 미국 23.9%, 일본 22.8%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5%대로 세계 꼴찌이다. 공공의료 확충 없이 의사만 증원하면 시장 경쟁만 부추길 뿐 지역 격차도 커지고 필수 의료는 사라진다. 그런데 지금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의사들은 이런 의료의 공공성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응급 의료를 간호사에게 맡기는 무책임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은 집단이기주의라고 비난받을 여지가 많다.증원된 의사들이 필수 의료 분야나 지방 의료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 섬세한 계획도 없이 무작정 현재 의대생의 세 배를 증원하겠다는 정부도 무책임하고, 공공의료 확충에는 관심 없고 의사 숫자 늘리는 것만 반대하는 의료인들도 명분이 부족하다. 다만, 양측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국민을 안전하게 해줄 정책을 제시해야 하는 정부 책임이 더 크다. 130회 소통했다고 횟수만 생색내지 말고, 정부는 필요한 의사 인원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의대 졸업생이 공공 의료에 참여하게 하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의 갈등을 봉합하고 국민의 생명을 위하는 길이다.

2024-02-25

나와 너를 살리는 잠깐 멈춤

유영희 작가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반칠환(1964~)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전문이다. 얼핏 보면 알 듯도 한데, 썩 개운하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이 시를 인용해서 칼럼을 쓴 작가도 씀바귀꽃과 제비만 언급하고 있으니, 시인이 왜 노점상 할머니나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나를 다시 걷게 한다고 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강의 시간에 이런 의문을 말하니, 칼럼을 소개한 글벗은 그 대상들이 나의 감각을 깨웠다는 뜻인 것 같다고 한다. 눈이 번쩍 뜨였다. 실제로 감각이 깨어나면 활력이 생긴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대부분 알고 있다. 무기력하면 무감각해지고, 무감각해지면 무기력해진다.그런데 시인의 말대로 이렇게 감각이 깨어나기 위해서는 잠깐 멈춤이 꼭 필요하다. 다만,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큰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도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을 멈춰 세울 수는 없다. 멈추게 하는 힘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잠깐 멈춤은 개인에게도 필요하지만,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며칠 전, 지난 2021년 서울대 휴게실에서 숨진 청소 노동자의 유족에게 법원이 8천6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숨진 노동자는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혼자 날랐고, 그런 노동자에게 학교 측에서는 필기시험까지 보게 했다. 학교 건물 이름을 한자로 쓰라거나, 자신이 속한 조직을 영어로 쓰라는 문제도 있었고, 건물이 몇 년도에 지어졌는지도 물었다고 한다. 일이 끝나고 회의를 할 때는 정장에 구두를 신고 오게 했다고 한다. 법원은 이런 서울대의 방침이 갑질이라고 판결한 것이다.서울대 측은 이것을 갑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울대 측이 청소 노동자에게 요구한 것은 지식인에게는 당연하고도 쉬운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엘리트의 독단일 뿐이다. 잠깐만 멈출 수 있었다면, 그래서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질질 끌고 가는 청소 노동자를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런 요구가 당연한 것도 쉬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청소부가 맡은 일이 과중하지 않아서 퇴근 후에는 문학 작품도 읽고 정장을 입고 음악회에도 갈 수 있기에 행복하다는 동화를 문학적 상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청소 노동자에게 강제로 한자와 영어를 익히게 하고 정장을 강요하는 것은 잠깐 멈춤을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3년간 송사를 하느라 서울대도 괴로웠을 것이다. 멈추어 바라볼 줄 알았다면 괴로울 일도 없었을 것이니, 멈출 줄 알면 남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산다. 이번 판결이 잠깐 멈춤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2024-02-18

대통령 부인의 명품백 수수 핵심 문제는

유영희 작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정무위원회가 열렸다. 정무위원회는 국회의 상임위원회 중 하나로 권익위원회 등 국무총리 직속 기관에 속하는 여러 기관을 관할한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문제가 현안으로 상정되자, 국민의힘 정무위원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명품 옷과 귀금속,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도 마찬가지 아니냐며 바로 전원 퇴장해 버렸다.그 후 진행된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와 관련하여 질의했는데, 류철환 권익위원장은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대통령기록물로 이관되었다는 답변만 했다. 이런 회의 태도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국회의원들의 회의 수준이 너무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나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 토론을 꼭 챙겨서 수업하기도 했고, 여러 토론대회에서 심사를 맡기도 했다. 아카데미 토론을 많이 하면, 논리적 사고도 길러지고 잘 지는 법도 배우게 되어 건강한 대화 문화를 만드는 힘이 성장한다. 토론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말싸움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은 토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된다. 아무리 정치라도 무조건 나만 이겨야 한다고 하면 정국은 진흙탕이 될 수밖에 없다.문제에 집중하는 것 역시 무엇이 옳으냐와 직결된다. 상대가 제기한 토론 쟁점에서 벗어나는 다른 주제를 꺼낸다든지 상대의 사람 됨됨이를 트집 잡는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옳은 것을 찾아가는 데 걸림돌일 뿐이다. 상대 주장에 간결하고 명료하게 질문하는 것 역시 상대방의 허점을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하므로 매우 중요하다. 이런 아카데미 토론을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으나 그 기본 정신은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때문이다.그러나 오로지 국민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정무위원들의 회의 모습은 이런 토론의 원칙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의에서 벗어나는 주제를 꺼내든 것은 논점을 일탈한 것이고, 자진 퇴장한 것 역시 대화를 거부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안건을 다루는 방식에도 문제는 있다. 명백한 근거가 있는 내용도 괜히 질문으로 시작하여 발언 시간을 초과하는 의원이 대다수고, 설득력 있게 논증을 이어가지 못하고 혼자 마음대로 결론 내는 모양새를 자주 보였다.대통령실의 ‘몰카 정치 공작’이라는 입장도 논점에서 비껴가 있다. 정치 공작이든 아니든 대통령 부인이 일반인에게 300만 원짜리 명품백을 받은 것이 적절한가 하는 것이 핵심문제다. 명품백을 준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를 문제 삼는 것도 인신공격의 오류이다.학교에서 토론을 많이 해도 정치인들이 건강한 토론 문화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오는 7일 대통령은 KBS와 방송 대담 형식으로 국정 운영 구상을 밝히면서 부인의 명품백 문제도 설명할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핵심 문제에 대한 입장이 꼭 나오기를 바란다.

2024-02-04

탄핵이 능사는 아니다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이언주 전 국회의원이 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25%라면서 이 정도면 탄핵 수준이라고 말하는 영상을 보았다. 언제부터 대통령 탄핵 이야기가 나왔는가 살펴보니, 검색으로는 2023년 6월부터였다. 그러다 11월이 되면서 탄핵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 지지도 추이를 찾아보았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첫해에 7, 80%에서 점차 내려가기는 했으나 임기 내내 높은 지지율을 보였고 마지막까지 41.4%로 퇴임하였다. 2012년에 당선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2014년을 포함해서 임기 내내 4, 5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다가 2016년 10월에 11%대로 떨어진 후 11월에 한 자리 숫자를 기록하면서 탄핵되었다.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하던 해 1년 동안 내내 23% 정도를 기록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초창기에 60% 지지율을 기록한 적은 있으나 그 후 임기 전반에 걸쳐 20% 대가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회에서 탄핵 소추를 받기는 했으나 지지율이 낮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임기 후반 2년간 지지율은 20% 중후반 대가 많았다. 이보다 더 지지율이 낮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10%대였다.동영상 하나로 이렇게 뜻하지 않게 역대 대통령의 재임 기간 지지율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이런 기록을 보면, 10%대도 있었고, 탄핵된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였다. 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아무리 봐도 탄핵될 만큼 치명적으로 낮은 것은 아니다. 지금 지지율이 25%라고 탄핵을 꺼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대통령 탄핵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정도가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심각할 경우에만 할 수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의회나 헌재가 파면한다는 것도 부담이고, 탄핵 이후의 혼란과 비용 등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당한 정책 결정이나 정치적 무능력으로 야기된 행위로는 탄핵할 수 없고 국민에게 확실한 이익이 있을 때만 해야 한다. 정책의 부당함이나 무능이라는 기준은 다툼의 여지가 많아서 이런 일로 탄핵하면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분열과 갈등에 빠진다.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후 여러 행보를 보면 민망한 것이 많다. 영국 여왕 조문에 참석하러 갔다가 정작 참배는 하지 않는 해프닝도 있었고, 파리에서는 기업 총수를 불러 폭탄주를 돌렸다는 등의 뉴스에 얼굴이 붉어진다. 중국과의 외교 마찰은 더 큰 실책이다. 10위권 안에 들던 경제 성장률 세계 순위가 작년에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대출을 부추기는 부동산 완화 정책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도 크다.그렇지만 법을 아는 사람이 25% 지지율을 근거로 탄핵을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더러,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의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탄핵이라는 방법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뿐이다. 정치인들은 정도를 지키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2024-01-28

동물농장의 딜레마는 극복할 수 있다

유영희 작가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흉기로 습격당했다. 범인 김모씨는 작년 4월부터 범행을 준비하면서 작성한 ‘남기는 말’에 의하면, 총선에서 이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하면 좌경 세력에게 국회가 넘어가고,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좌파 세력에게 넘어가게 될까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범행을 기획했다고 한다.자기와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무찔러야 할 적이라고 생각하거나 대표 한 사람이 죽으면 자기가 원하는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은 범인 김모씨 한 사람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보수만 그런 것도 아니다. 김모씨와 반대되는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은 여당 대표가 사라지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사람들이 이런 비합리적인 신념을 갖는 것은 평소 한쪽 편향의 뉴스만 보기 때문이다. 김모씨는 월간조선을 32년간 구독했고 평소에도 보수 유투브를 시청했다고 한다. 그 사람뿐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한쪽 편향적인 뉴스만 보고, 나와 의견이 다른 매체를 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많은 사람이 자기 구미에 맞는 뉴스만 편식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절대시하고 상대를 향해 적개심을 불태운다.저술가 홍일립은, 국가 운영의 토대인 헌법과 법률에 동의하지 않았으면서도 국가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국가의 비천한 기원을 망각했거나 아니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정당하지 않은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국민이 무지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에 눈이 번쩍 뜨인다. ‘동물농장’을 쓴 조지 오웰의 관점과 아주 비슷하기 때문이다.동물농장의 나폴레옹 돼지 일당은, 농장의 동물을 동원해 그들을 학대하는 인간 농장주를 몰아낸 후 자기들이 다른 동물을 착취한다. 나폴레옹 일당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다른 동물이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동물주의를 표방하는 동물 일곱 계명을 만들고 모두에게 외우게 했을 때 말, 오리, 염소, 양 등은 암기하지 못했다. 돼지들이 일곱 계명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수정해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 당나귀 벤자민은 침묵했다.홍일립은 이런 문제가 해결되려면 ‘사실 복원’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국가의 딜레마-국가는 정당한가’에서 특정 정치가나 이념을 신격화하지 말고 객관적 사실을 복원하여 이성적으로 판단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민이 무지하다면, 사실을 복원하여 자기 신념의 정당성을 판단하자는 홍일립의 주장은 실현되기 어렵다. 자기가 좋아하는 뉴스만 보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사실 복원에 힘을 보탤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홍일립은 사실 복원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도덕적 작업이라고 했을 것이다.그래도 희망은 있다. 동물농장은 수십 년 전 일이고, 당나귀 벤자민은 혼자였지만 지금은 신념의 정당성을 판단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 또한 신념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기의 신념을 절대시하지 않고 사실 복원에 힘쓰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더디더라도 내일은 사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2024-01-21

중간이 중용이 되려면

유영희 작가 진보 성향의 어느 작가가 보수 성향의 언론에 칼럼을 기고했다가 진보 언론에서 오던 칼럼 요청이 끊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종탁의 ‘칼럼의 이해’라는 책에도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여기에 나온 사례는 위와 반대로, 진보 성향의 언론이 보수 논객의 칼럼을 실었다가 찬반 논란이 심하여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신문에는 오피니언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사설과 칼럼 두 가지가 있다. 사설은 신문을 발간하는 언론사의 의견을 담고 있어서 그 언론사의 성향과 일관성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굳이 글쓴이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칼럼은 개인의 의견이나 주장 또는 감상을 담고 있는 자유로운 성격의 글이라 이름은 물론 사진까지 들어가며, 언론사의 입장과 다를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 신문에는 진보 성향의 언론에 보수 논객의 칼럼도 종종 실린다고 한다.그러나 앞에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걸릴 듯하다. 사설과 칼럼의 논조가 다르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보수 언론은 보수 칼럼만 싣고, 진보 언론은 진보 칼럼만 싣는다. 독자 역시 이렇게 한쪽만 보면 자기 생각만 옳다고 하기 십상이다. 나와 다른 주장을 만나면, 주장을 이끌어내는 논리적 추론을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고 ‘너는 어느 편이냐?’부터 따진다. 나 역시 그런 경향이 있었지만, 칼럼을 쓰다 보니 장관을 임명하거나 중요한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진보 언론과 보수 언론을 다 찾아보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한다.그런데 이렇게 양쪽 중 한쪽에 속하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정현종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섬’이라는 짧은 시는 양극단을 극복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녹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 사이가 있었다. 그 / 사이에 있고 싶었다. //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박덕규의 시 ‘사이’ 전문)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이준석은 탈당 선언문에서, 적장을 쓰러뜨리기 위한 극한 대립, 칼잡이의 아집이 우리 모두의 언어가 되어야 하느냐고 비판하며 신당 창당의 의지를 다지고 있고, 이낙연 역시 무능하고 부패한 거대양당이 극한 투쟁을 계속하는 현재의 양당 독점 정치구조를 깨야 한다며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도전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시중’이라는 말이 있듯이, 중간이란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적절함’을 의미한다. 이들이 양극단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면서 자기 이해에 연연하며 혐오 발언을 일삼거나 또 다른 편 가르기를 한다면, 국민들의 정치 피로감만 가중될 것이다.우리 사회에서 중간이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일상에서부터 내 의견만 옳다고 고집하지 말고 다른 의견을 경청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런 문화를 만드는 데 무엇보다 언론의 역할이 막중하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조롱을 듣지 않도록 언론이 극단적 보도를 지양하고 다른 의견을 허용하면 ‘사이’는 더 빨리 좁혀질 것이다.

2024-01-14

공공도서관의 독서동아리를 위하여

유영희 작가 새해가 되니 새로 시작하는 것이 많다. 동네 도서관에서도 독서동아리를 새로 신청받는다고 한다. 그동안 H 생협에서 꾸준히 독서 모임을 하다가 작년에는 동네 도서관에 ‘감정과 뇌과학’이라는 주제로 독서동아리를 신청하여 운영했다. 올해도 ‘감각과 장과 뇌’라는 주제로 동아리를 만들어 인간의 감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장이 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공부할 예정이다. 작년처럼 전문가 초청까지 계획하고 있다. 동아리 초청이라 강사비가 너무 적었지만 모두 기꺼이 달려와 주셨는데, 올해 초청한 분도 흔쾌히 수락하셨다. 며칠 전 사서에게서 들으니, 올해 동아리 신청이 작년보다 두 개 더 많아질 것 같다고 한다. 이웃 어느 도서관은 동아리가 너무 많아 공간이 부족하여 기준을 정해 선별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이런 소식에 독서동아리 증가가 당연히 전국적인 현상일 것이라 생각하고 실증 자료를 찾기 위해 통계를 찾아보니, 아쉽게도 우리 지역의 특수한 상황일 뿐, 전국적인 추세는 아닌 것 같다. 인구 많은 서울시가 독서동아리 숫자는 가장 많지만, 최근 3년간 독서동아리와 참여 인원은 오히려 감소 추세이고, 전국 독서동아리 상황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2013년에 나온 독서동아리 실태 조사에서 언급된 문학 편중 현상이 최근 조사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2020년 이은주, 정하영, 윤유라의 연구 ‘독서동아리 운영 현황과 과제’와 2023년 심효정의 ‘공공도서관 독서프로그램 운영 현황 및 정책 제안’을 보면, 독서동아리에서 읽는 도서가 문학 등 4개 분야로 한정되어 있고 다른 분야는 미미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많은 예산을 쓰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독서 대전’이 지속적인 독서 문화를 만드는 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눈여겨볼 만했다. 연구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공공도서관의 독서프로그램에 1회성 행사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황도 아쉬운 부분이다.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이 도서관 탓은 아니다. 실제로 유명 작가나 와야 겨우 도서관에 발걸음하는 주민이 많고, 소설 같은 문학 분야가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책을 읽는 것도 우리 사회의 베스트셀러 중심의 독서 편식의 반영이기도 하다.그럼에도 일부 지역만이라도 독서동아리가 증가하고 있고, 독서동아리 내용도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은 고무적인 일이다. 어느 도서관에서는 인지력이 떨어진 고령층을 위해 책놀이 활동 동아리가 올해 출범했다고 하고, 책을 수선하는 책구조대라는 동아리도 오랫동안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작년에 EBS에서 ‘당신의 문해력’이나 ‘책맹인류’를 통해 진단했다시피, 독서 재난 시대를 헤쳐갈 방법은 행사나 이벤트가 아니라 독서동아리뿐이다. 새해 공공도서관 정책을 입안하는 관계자들은 다양한 독서동아리가 내실 있게 운영되기 위해서 도서관이 주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해 주면 좋겠다. 이와 함께 독서동아리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도 하루빨리 정비되기를 바란다.

2024-01-07

모험의 끝이 영광은 아닐지라도

유영희 작가 지난 연말에 ‘호빗’을 읽었는데, 다 읽고 보니 새해를 맞이하는 멋진 이벤트가 되었다. ‘호빗’으로 새해 모험을 떠나는 내게 큰 통찰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호빗’은 마법사 간달프가 난쟁이 13명과 보물을 되찾으러 떠나기 전 호빗 족의 빌보를 합류시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눈치챘겠지만, 맨 나중에 합류한 빌보가 주인공이다. 빌보는 골목쟁이네라는 별명이 따라다닐 정도로 땅속 굴 생활에 만족하며 다른 세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그저 이웃의 좋은 평판에 기대어 안락하게 살아간다.간달프의 재촉으로 모험 여행에 합류하기는 했지만, 빌보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고향에 가고 싶어 하고, 난쟁이들의 무시에 마음 상하기도 하는 등 소심한 면이 많다. 그러다 절대 반지도 얻고 간달프가 없는 상황에서 일행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결국 빌보는 악한 용 스마우그를 죽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평화롭게 산다.‘호빗’에서 특이한 점은 빌보가 영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쟁이들에게서 엄청난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의 이웃은 빌보를 불편해하며 상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의 백미는 빌보가 모험을 성공으로 이끈 부분보다는 마지막에 이웃의 냉대에도 개의치 않고 시를 쓰며 만족스럽게 살아간다는 결말 부분인 것 같다. 이런 여정을 보노라면, 모험에 성공했다고 반드시 칭송과 영광이 뒤따르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빌보도 모험의 대가를 바라기는 했으나, 나중에 자기 몫의 보물을 기꺼이 포기한 것을 보면, 빌보에게 잠재되어 있던 모험 정신이 발동한 면이 더 컸다.‘호빗’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새해에 시작하는 나의 모험 때문이다. 빌보가 제한된 곳에서 다른 세상은 모른 채 살았던 것처럼 나 역시 지금까지 연구자와 강사로만 살며 다른 세상을 모르고 살았는데, 우연히 뜻 맞는 퇴직자 5명이 모여 창업하게 되었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인지력이 떨어지는 인구 역시 늘어가고 있고, 우리 역시 언젠가는 인지력 저하를 걱정하게 될 것이라, 인지력 저하를 예방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창업하는 과정에서 창업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어려운 순간이 수시로 찾아올 수도 있고, 동료와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어쩌면 보물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호빗’을 읽노라니,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빌보처럼 용기낼 수 있을까, 빌보처럼 조력자를 만날 수 있을까, 빌보처럼 만족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해본다.지난 6개월을 돌아보니, 필요할 때마다 조력자를 만났고, 갈등도 잘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보물을 얻고자 시작하지만, 그 보물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쓰이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보물이 적거나 이웃의 칭송이 없더라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생긴다. 안 쓰던 뇌의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독자 여러분도 새해에는 잠재된 유전자를 발동시켜 모험을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머무는 것보다 확실히 성장하게 될 것이다.

2024-01-01

연말 결산에 추가해야 할 항목

유영희 작가 뉴스를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정치인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밀 때도 많고, 폭력, 사기, 산업 재해 등 사회면 기사에도 울분이 치밀어 오를 때도 많다. 뉴스에 딸린 댓글도 유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가끔 사이다 같은 댓글을 만나기는 하지만, 그 댓글의 내용도 분노나 조롱인 경우가 많으니, 내 마음 역시 그들처럼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상태일 것이다.그러나 잠시 이성을 찾고 생각해보면, 이런 분노나 울분이 문제 해결에 도움되기는커녕 갈등만 증폭시킨다. 무엇보다 분노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해를 입는 것이 내 신체이다. 분노에 휩싸이면 맥박이 빨라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런 신체의 반응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감정에 휩싸여 공격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많다. 증오심에 가득차서 악플 달기를 계속하거나 대놓고 물리력을 가하면서도 자신의 신체 감각이 불편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쾌감으로 느끼는 경우도 있다.요즘에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체에 해를 가하면서도 그것을 쾌락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알콜 중독을 비롯한 각종 중독은 자신의 신체가 망가지는 일인데도 감행하는 사람이 늘어간다. 게임을 하며 몸을 한껏 긴장 상태에 몰아넣고 즐겁다고 착각한다. 도파민 중독은 더 미묘해서 신체에 얼마나 해가 되는지 알아차리는 사람이 드물다.‘소통하는 신체’를 쓴 우치다 타츠루는, 우리가 자신의 신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뇌의 지시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는 감각을 차단하거나 자기 생각대로 몸에게 명령하며 신체를 침묵시킨다. 이렇게 신체적으로 둔한 사람은 사회적으로도 둔감해져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뎌지게 되고, 가해하기도 한다. 우치다는 무뎌진 신체 감각을 민감하게 하려면, 지금 나의 신체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얼마만큼 먹고 싶어 하는지, 얼마만큼 자고 싶은지, 어떤 목소리를 듣고 싶은지 몸에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뇌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 역시 느낌은 몸과 뇌와 마음을 연결하는 항상성의 기초라고 하면서 느낌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내 신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 신체가 보내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것은 나의 신체에 경의를 표하는 일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몸에게 묻지 않는다. 경쟁 사회의 불안과 공포에 휘둘리다 보면 몸에게 물을 겨를이 없고, 내 편만 옳다고 고집하며 상대편 공격에 몰두해도 내 몸이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12월은 연말 결산하는 때다. 결산이라고 하면 일의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하지만, 나의 신체에 얼마나 경의를 표했는지 점검하는 것도 연말 결산 항목에 추가하면 좋겠다. 요즘 침대 옆에 화이트보드를 세워놓고 아침에 깨자마자 내 몸이 더 누워있고 싶은지 물어보거나, 느낌을 점검하여 아주 짧게 기록하고 있는데, 항상성 유지에 도움 되고 있다. 민감한 신체 감각을 갖는 것은 소모적인 대립을 완화하는 데도 유익하다. 자기 신체에 좀 더 자주 경의를 표하자.

2023-12-17

가까운 사람이 기뻐해야 멀리서 찾아온다

유영희 작가 올 12월에도 작년에 이어 지방 의회를 방청하고 있다. 의원들의 질의를 듣다 보면, 일부러 검색하지 못한 세세한 지역 소식을 알게 된다. 올해는 내가 사는 지역의 출산율이 0.5명대라며 육아 환경 질의가 오고 갔다. 나 역시 몇 년 전에 결혼한 두 딸에게 아이 낳는 것을 부추겨야 할지 망설이는 상황이라 관심이 갔다. 맞벌이하면서 육아를 해나갈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잘 되어 있는지 걱정되기 때문이다.출산율 하락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는 하지만, 한국 출산율의 하락 추세는 더 가파르다. 전국 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했고, 서울은 3년 전에 0.5명대로 떨어졌다. 이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021년 평균 합계출산율 1.58명의 절반 수준인데, 앞으로 전망은 더욱 어둡다. 현재 인구 소멸을 걱정해야 할 지역은 인구소멸 고위험지역과 위험지역, 주의지역으로 지정된 기초자치단체를 합하면 전체 지자체 226곳 중 90%가 넘는 206곳이나 된다. 광주광역시조차 인구소멸을 걱정한다니,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취임 때부터 이민청(출입국·이민관리청) 신설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번에 추진하는 이민청은 완전한 신설이라기보다는 기존 기구의 승격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이미 있었던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업무에 외교부,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등에 흩어진 이민정책을 모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리 업무는 1961년부터 법무부 산하에 있던 출입국관리소가 맡아 왔고, 이것이 2007년에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로 전환되어 외국인 등록이나 영주권 업무를 지금까지 담당해 왔다.이런 움직임에 대해 이주민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이자스민은 이민청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민청 설립만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다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주민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77년생인 이자스민 자신만 해도 현재 1남 1녀를 두고 있는데 필리핀에 살았더라면 더 낳았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참고로, 2022년 필리핀의 출산율은 1.9명이지만, 2020년만 해도 2.78명이었고 그 전에는 훨씬 더 높았다.‘논어’ 자로 편에는, 섭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가까운 사람이 기뻐하면 멀리서도 찾아옵니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기록이 있다. 이민청 설립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한국이 아이 낳기 좋은 정치를 하는 것이다. 한국 젊은이들도 아이를 낳기 어려운데, 이주민이 아이를 낳고 영주하기는 더 어렵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사용하려고만 한다면 출산율 제고는 더 불가능하다.먼저 한국에서 살고 있는 미등록 외국인들부터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고급 인력이 오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한국에 온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떠나지 않게 할지 이주민 정책을 잘 세워야 한다. 이것이 이민청이 저출산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2023-12-10

대통령과 평어를 쓴다면

유영희 작가 아이들이 분가하기 전 나를 부르는 호칭이 ‘용희야’였다. 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놀라지만, 그래도 그 호칭 덕분에 지금까지 아이들과 친하게 잘 지내는 것 같다. 갑자기 이 기억이 소환된 이유는 경희대학교 김진해 교수 때문이다. 김 교수는 강의 시간에 교수와 학생이 서로에게 평어를 쓰면서 수업을 한다고 한다. 2022년 2학기부터 평어 수업을 했다고 하니 만 1년이 지난 셈이다. 2015년부터 평어 수업을 해온 고등학교의 이윤승 수학 선생님도 있다.이런 시도는 교수에게도 낯선 경험일 것이다. 대학에서는 교수도 학생에게 반말하지 않는데다가, 다수를 대상으로 강의할 때는 더더욱 존댓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김진해 교수는 ‘반말’ 대신 평어라는 표현을 써서 수평적 관계 형성을 추구한다는 사회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반말은 ‘야’, ‘너’ 같은 하대의 태도를 띠는 데 비해, 평어는 상대방과 수평을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김 교수는 자기를 소개할 때 경희대학교에서 가르친다고 하지 않고 공부한다고 말한다. 교수가 기대한 대로,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질문도 편하게 하게 되었고, 문자나 메일도 존댓말로 할 때보다 마음 가볍게 쓰게 되었다고 한다.그런데 뜻밖에 김 교수는 이 평어 수업의 중요한 의의는 교수와 학생간의 평어보다 학생들 사이의 평어 사용이라고 강조한다. 학생들이 선후배 사이에 존댓말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요즘에는 같은 학년 같은 나이라도 존댓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이 존댓말은 정말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라기보다는 상대와 거리를 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많아서 친근감 형성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지나치게 경직된 분위기를 만들어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로막는다.진작부터 평어를 쓰는 기업도 있다. 유명 출판사의 한 팀에서도 2년 전부터 평어를 쓰고 있다고 하고, 일부 스타트업에서도 하는 모양이다. 어느 회사에서는 평어는 쓰지 않지만, 직급 대신 영어 이름을 지어 부르기도 한다. 이런 시도는 모두 존댓말의 위계를 무너뜨려서 소통을 넓히려는 몸짓이다.한국어의 존댓말이 극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대한항공 비행기 추락사고이다. 1997년 대항항공 801편 항공기가 괌의 섬에서 추락해서 253명의 탑승객 중 228명이 사망했는데, 이 비행기 사고의 결정적인 원인이 부기장이 위계에 눌려 기장에게 제대로 할 말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이 난 것이다. 그 후 영입된 그린버그 부사장은 조종실에서 영어만 사용하게 했고, 그 결과 대한항공이 안전한 항공사로 거듭났다고 하니, 말투와 소통의 상관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 알 수 있다.그렇다면 학교에서만 평어를 쓸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시도해보면 어떨까? 며칠 전,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여야 간 대치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과 평어로 대화한다면 혹시 소통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이런 기대가 어처구니없기는 하지만, 한치 앞이 안 보이니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이나 해본다.

2023-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