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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암컷과 젖소는 죄가 없지만

유영희 작가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BBK를 설립했다는 동영상이 나오자, 나경원 대변인이 주어가 없었다고 해서 온 국민이 국어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요즘 그와 비슷한 언어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암컷과 젖소 이야기다. 암컷은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민형배 의원 북콘서트에 참석해서 한 말이다. 최강욱 의원은 동물농장에도 암컷들이 나와서 설치는 건 없다면서, 암컷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설치는 암컷을 암컷이라고 부른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에 비난이 일자, 여성비하 발언이 아닌 동물에 비유한 표현일 뿐이라고 해명하였다.젖소는 23일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동두천, 연천) 보좌관이 SNS에 올린 글에 나온 말이다. 손수조 리더스클럽 대표가 그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데, 보좌관이 자신의 SNS에 개나 소나(앗, 젖소네) 지역을 잘 안다는 사람이 넘쳐난다고 쓴 것이다. 손수조 대표가 항의하자, 개 이모티콘 다음에 소 이모티콘을 치는데 젖소길래 그냥 ‘앗 젖소네’라고 덧붙인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김성원 의원 측에서도 그 글 어디에도 손수조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며 손 대표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모두 옹색한 변명이다.화용론이라는 언어학 분야는 상황과 맥락에 따른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화용론 연구 주제 중 하나인 함축은 발화된 것에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을 말한다. 발화에 직접 나타나진 않지만,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여러 증거를 통해 발화의 의미를 생각해낼 수 있다.암컷 발언의 경우, 최강욱 의원의 발언 직전에 박구용 교수가 현 정치 상황을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빗대어 말했고, 최강욱 의원 역시 이를 받아서 동물농장조차 암컷이 설치는 경우가 없었다고 했으니, 이는 현재 상황이 동물농장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그가 변명으로 내놓은 동물에 빗댔다는 말은 동물이 아닌 사람을 겨냥했다는 뜻이다. 젖소 발언 역시 이미 손수조 대표에게 출마 포기를 종용한 후에 나왔고, 해당 지역구 출마 도전자가 손수조 한 명뿐이므로 다른 의미를 가질 여지가 없다. 그러니 암컷과 젖소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개만도 못하다고 하면, 듣는 개가 기분 나쁘다는 말이 있다. 암컷과 젖소는 죄가 없지만, 그가 누구든 간에 여성을 가리켜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발화자의 인격을 떨어뜨리는 막말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항의와 반박에 대응하는 태도다. 그들의 변명은 비겁한 궤변에 지나지 않고, 국민의 합리적 추론 능력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이다. 따지고 보면, 진정한 사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는 하다.그렇다고 정의당 류호정 의원처럼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최강욱 의원은 인간이 되긴 틀렸다고 하거나 북콘서트 한다면서 이런 이야기나 하는 것은 한심해 죽겠다고 비난하는 방식 역시 정당 정치인의 품격에 맞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인물을 보고 제대로 투표하는 품격 있는 국민이 되어야겠다고 굳게 다진다.

2023-11-26

편파의 기준을 생각한다

유영희 작가 며칠 전부터 KBS에서 편파 논란이 한창이다. 지난 12일, 제26대 KBS 사장으로 취임한 박민은 임명된 지 하루만에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를 대폭 교체하고 프로그램도 개편하였다. 하차 당한 사람 중 뉴스에서 대표적으로 거론된 인물은 KBS 뉴스 9의 이소정과 주진우 라이브의 주진우이다. 2TV 시사토크 프로그램인 더 라이브는 아예 폐지되었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조치라 당분간 예능 등 다른 프로그램을 송출할 예정이라고 한다.그 다음 날 박민 사장은 과거 KBS에서 편파 방송을 했다며 사과하였다. 그가 편파보도라고 예시한 사례들은 한동훈 관련 ‘검언유착’ 오보, 고 장자연 씨 사건 관련 후원금을 모금하고 도피한 윤지오 씨 출연, ‘오세훈 시장 생태탕 의혹’ 관련 보도 등이다. 그가 직접 언급한 이 세 가지 사례는 모두 여당 또는 보수 언론에 불리한 사건들이다.그러나 편파의 기준은 상대적이라 박민 사장의 행보 역시 편파 혐의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박민에 대한 기사에는 ‘이제 편파 방송 하겠다는 거지?’ 하는 댓글도 많이 보이고 시청료 거부 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누가 편파적이고 누가 공정한가를 객관적으로 결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중국 고대 춘추 전국 시대에도 백가가 다투는 혼란한 시기에 장자는 다툼을 해소하기 위해 제물론을 주장했다. 장자는 애당초 객관적 공정성은 불가능하다면서 모든 주장이 동등하다고 한다.“내가 자네와 논쟁을 했다고 가정해보세. 자네가 나를 이긴다면, 자네가 옳고 내가 옳지 못한 것일까? 내가 자네를 이긴다면, 내가 옳고 자네가 옳지 못한 것일까? 어느 한 쪽이 옳고, 다른 한 쪽은 그른 것일까? 우리가 둘 다 옳거나, 둘 다 그른 것일까? 만약 자네와 의견이 같은 사람더러 판단해 보라고 하면, 그는 이미 자네와 의견이 같은데,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겠나?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판단해 달라고 한들,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겠나? 그렇다고 나나 자네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판단해 달라고 한들, 어찌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겠나?”나아가 장자는 모든 주장이 다 주관적이므로 나의 주장을 고집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장자의 말은 귀 기울일 만하기는 하나, 모든 주장에 동등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의심한다’의 저자 보 로토는, 인간의 지각 능력은 근원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신경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나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본 것이 객관적 실재인지 의심하라. 멈추고 그냥 보라.’고 한다. ‘그냥 보기’ 위해서는 낯선 곳에 가보고, 평소 하던 것과 다르게 해봐야 한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 내가 싫어하는 것과 기꺼이 만나는 일이다.절차와 협약을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 관철시키면 또 다른 편파 시비를 불러온다. 정말 편파를 시정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생각을 의심해야 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그냥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편파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2023-11-19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유영희 작가 연일 터져나오는 여당 발 현대사 쟁점에 등 떠밀려 역사를 공부하는 국민이 많을 것 같다. 육사 안에 있던 홍범도 흉상을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에 자유시 참변을 공부하게 하더니, 백선엽의 친일 기록을 삭제해 간도특설대를 다시 들춰보게 된다. 백선엽은 1943년 간도특설대에 참여해 독립군을 토벌한 행적으로 친일행위자로 이름이 올랐다.백선엽의 친일 행적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만, 이번 논란의 계기는 노무현 대통령 직속으로 설립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와 관련이 있다. 이 위원회는 5년 간의 활동을 마치며 친일반민족행위자 1천6명을 발표했는데 현충원 안장자 중 백선엽을 비롯한 12명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백선엽은 99세 나이로 2020년에 사망하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는데, 당시 국가보훈부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 12명의 안장 정보에 모두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2009년)’라는 문구를 기록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백선엽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시작되어 백선엽 추모식을 챙기더니, 지난 6월에는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을 설립했고, 7월에는 백선엽 안장자 기록에서 이를 삭제했다. 이에 대해 지난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를 비판하자,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립묘지에 전과기록을 기재한 사람이 없다”면서, “최초 기재 행위 자체가 법적 근거 없이 이루어졌다”고 대답한 것이다. 알고 보니, 다른 11명의 기록은 삭제하지 않았다.이런 기록이 부당하다면 12명 친일 기록을 다 삭제해야 할 텐데 왜 백선엽 기록만 삭제했는지도 의문이고, 아무리 전 정권의 결정이라고 해도 이미 오래 전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진 조사 결과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한순간에 뒤집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런 결정은 국가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문제인데, 이렇게 합의 과정 없이 졸속으로 그것도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처리한 것이다.친일행위자로 판정되었으면서 현충원에 안장된 인물을 둘러싸고 여권에서는 기존 친일 평가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고 나섰고, 민주당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고 현재 친일 묘지는 이전하라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라 접점 찾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역사의식을 가지면, 지금 현실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선택들을 고뇌하고 번민하게 된다”는 어느 언론인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정치인들은 자신이 지금 하는 선택이 어떤 역사를 만들어 갈지 고뇌해야 한다. 윤동주처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보는’ 자아 성찰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라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번민해야 한다. 국가경쟁력은 해마다 떨어지고, 하루하루의 삶이 팍팍하기만 한 민초는 정쟁에 갇힌 정치인의 행태가 부끄럽기만 하다.

2023-11-12

지방 균형 발전 외치더니 서울을 확대한다고요?

유영희 작가 지난 10월 말,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김포를 서울시에 편입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구리, 하남 등 서울과 인접한 다른 도시도 서울시 편입을 요구하자, 주민 합의를 전제로 서울에 편입하는 것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하면서 메가시티가 세계적 트렌드라며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를 경기남도 경기북도로 나누는 과정에서 불거진 이 논의에 김포시장은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고 하지만, 주민 설문 조사 보고서 한 장 없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어 그 배경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갑작스러운 이 소식에 국민들 모두 총선용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고, 도시공학자 등 전문가들은 그 나름대로 도쿄나 뉴욕의 메가시티화는 행정구역을 편입시키는 방식이 아니라면서 김포시의 서울 편입에 대해 부정적인 상태다.양천구, 강서구의 서울 편입 선례 역시 군색한 변명이다. 김포시는 인구 50만 명이 대도시인 데다 서울과 동심원을 그리는 상태도 아니고 마치 열쇠 모양처럼 길죽한 형태라서 도시 이용 효율성마저 엄청나게 떨어진다. 어떻게 보아도 서울시 인구나 면적이 세계의 다른 나라보다 작지 않은 상황에 서울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의 정당성은 찾기가 어렵다.김포시의 서울 편입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서울시 편중 심화를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메가시티와 서울의 확장은 개념이 다르다. 메가시티 구상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려면, 전국적으로 메가시티를 어디에 어떻게 몇 개를 건설할 것인지 큰 단위에서 행정구역 개편 논의와 맞물려서 이루어져야 한다. 게다가 인접 도시까지 주민만 합의하면 서울 편입을 적극 고려하겠다니, 이것이 책임 있는 여당에서 일하는 방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서툴고 위험하다.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은 김포시의 서울 편입 발표가 있은 지 며칠이 안 되어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11월 1일부터 3일간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지방시대 엑스포’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 행사에서 있었던 ‘제1회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 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중앙정부는 쥐고 있는 권한을 지역으로 이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10월 29일 지방자치의 날은 2012년에 정했던 것인데,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로 올해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에 제1회가 된 것이다. 이것만 보면 정부가 지방 균형 발전의 의지가 꽤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이번 서울을 메가시티로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보면서 과연 이런 명칭 변경과 엑스포 행사가 진정성도 없고 그저 형식적으로 행사만 치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방보다 경제보다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공자의 말도 있듯이, 신뢰는 정치의 근본이다. 당리당략으로 졸속 정책을 발표하는 방식은 구시대적 발상일 뿐 아니라 성공하기도 어렵다.장기적인 국토 균형 발전 계획을 세워서 지방의 인구 소멸도 막고 국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2023-11-05

인요한 혁신위원장에게 바란다

유영희 작가 지난 23일, 국민의힘이 혁신위원회를 꾸렸다. 서울 강서구 선거 패배 이후 내년 총선의 승기를 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일이다.12월 24일까지 60일간 활동하는 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뜻밖에도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장이 지명되었다. 외국인이기는 하지만, 할아버지가 1912년 한국에 선교 활동하러 와서 아버지도 군산에서 태어났고, 인요한 역시 전주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라 스스로 순천 촌놈이라고 소개한다고 하니 토종 한국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할아버지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점, 아버지가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는 점들로 인요한 가족의 한국사랑은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존 린튼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국적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한 공으로 2012년 정부로부터 순천 인 씨라는 성을 받고 특수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도 갖게 되었다.인요한 혁신위원장은 광주 시민군을 위해 통역도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했다니, 일반 국민의힘 기조와는 많이 다르다. 이번에도 인요한은 첫 대외 행선지를 광주로 정하고, 개인자격이지만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에도 가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정도라면 진정한 통합을 위해 그가 적격이라는 생각이 든다.이제 그가 혁신위원장이 된 지 3일 만에 내놓은 12명의 혁신위원 명단을 보니, 여성이 7명으로 남성보다 1명 많고, 청년층의 참여도 두드러진다. 70년대생 3명을 제외하고라도, 80년대 4명, 90년대, 2000년대가 각 1명이다. 사업가로 이름을 올린 여성은 나이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아무래도 중장년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정치인 6명 외에 교수 2명, 의사 2명, 앵커, 학생회장, 사업가 등이라 전문 정치인에게 휘둘리지 않을까 의문이 든다. 인요한 위원장도 그 점을 의식했는지 혼자서라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겠다고 약속한다.그러나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지난 행적이나 현재의 정치 이상이 아무리 통합 지향적이라고 해도 현실 정치에서 그 뜻이 관철되게 하려면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 추모식에 가는 이유에 대해 우리 모두 죄인이니 추모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뭉뚱그리며 책임소재를 흐리고, 홍준표 이준석에 대한 대사면 제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떡하겠느냐는 질문에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하면 곤란하다. 혁신위원회의 권한 범위를 모르겠다면서 와이프와 아이만 남기고 바꾸겠다는 말을 어떻게 실천할지도 의문이다. 인요한은 박근혜 정부 때도 참여했지만 자기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자 후회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물러난다면 개인에게나 우리 사회에 손실이다.누가 정권을 잡든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이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여러 의구심과 불안 요소를 잘 극복하고 평소 가진 통합의 지향을 잘 관철해서 국민의힘이 이념 논쟁 그만두고 민생 정치를 펼치는 데 기여해주기를 바란다.

2023-10-29

이제 디지털 다이어트를 할 시간

유영희 작가 페이스북에 가입한 지 10년이 넘었다. 열심 사용자도 아니고 친구도 많지 않지만, 읽을거리도 많고 접속 속도도 빨라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심지어 신호등을 기다리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 보게 된다. 카카오톡은 페이스북보다 더 실시간으로 상대와 연결된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큰애에게 고양이 사진을 보내고, 친구와 수다 떨거나 업무를 보는 데 카톡은 필수다. 요즘엔 인스타그램까지 들어가고 있다.이제 현대인은 디지털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정도에 이르렀다. 코로나19로 은둔 생활을 해야 했던 지난 3년 간 인터넷 사용자는 더욱 급격하게 늘었다. 글로벌 인포메이션 자료에 의하면, 2022년 현재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는 55억 명이 넘어서 보급률이 70%에 이른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 제한을 극복한 인터넷 세상은 인류에게 새로운 대안을 주었다.그러나 이런 디지털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센터와 해저케이블 등 많은 물리적 실체가 필요하다. 페이스북이 북극 가까이에 있는 스위스 룰레오 호수 근처에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세운 덕에 수십 억 명의 페이스북 가입자는 수백 장의 사진을 올릴 수 있고, ‘좋아요’를 주고받는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구글 클라우드에 온갖 데이터를 올린다. 문제는 이런 데이터를 전송하고 보관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큰 데이터센터를 만들어야 하고, 해저케이블을 가설해야 한다는 것이다.프랑스 언론인 기욤 피트롱은 이런 디지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2년 간 조사하고 나서,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라는 책(원제 ‘디지털 지옥’)을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좋아요’ 하나에도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고, 셀카 한 장에도 석탄이 필요하다면서,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땅이 개발되는지 밝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디지털 장비는 340억 개, 그 무게는 2억2천400만t이라면서, 이 장비들이 세계 전기 소비량의 10%를 차지하고 지구 온실 가스 배출량의 약 4%를 발생시킨다고 한다.그러나 디지털 산업이 엄청난 물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광물 자원을 고갈시킨다고 아무리 외쳐도 디지털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 초고속인터넷망 보급률이 99.96%로 디지털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건강을 위해 작년에는 몸무게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체력이 좋아졌고, 올봄에는 살림 다이어트로 집안을 비웠다. 이제는 디지털 다이어트에 도전해보자. 정신을 빼놓는 앱 몇 개는 바로 삭제했다. 일요일 정도는 스마트폰을 끄거나 간헐적 단식처럼 일정 시간 꺼놓는 식으로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을 줄여도 좋겠다. SNS에 글을 쓰거나 사진을 올릴 때는 그것을 위해 소비될 에너지를 상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자. 휴대폰의 사진도 수시로 정리하고 클라우드 청소도 해보자. 이참에 사회의 디지털 다이어트 방법도 고민해보자. 환경도 보호하고 멀리 나간 정신도 돌아올 것이다.

2023-10-22

나도 정의감 중독자일까?

유영희 작가 지난 주 목요일에 동네 문화 행사에 다녀왔다. 지역 문화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정책 토론회였는데, 공공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있어 관심이 갔다. 그런데 자료집을 보니, 오프닝 공연 연주자가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의 약력은 누락되어 있고, 연주곡의 작곡자도 잘못 표기되어 있었다.행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음날 행사를 주관한 기관에 전화하니, 담당자는 그쪽에서 보내준 대로 편집했다며 같은 말만 반복한다. 결국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고 다음부터는 오류가 없도록 꼼꼼하게 살피겠습니다. 이렇게 답변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하니, 담당자는 내 말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따라한다. 그러자 조금씩 올라오던 감정이 고삐가 풀리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차, 나도 정의감 중독자인가?’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갔다.한때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을 정도로 분노는 정의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감정이다. 그러나 안도 슈스케는 ‘정의감 중독 사회’에서 ‘분노’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과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지만, 정의감에 휩싸여 분노가 폭주하면 정의 실현은 간 데 없고 자신에게도 사회에도 해롭기만 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감정을 일그러진 정의감이라고 하면서, 저자는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나와 다른 사람에게 건전한가?’를 숙고하고, 나아가 관여할 필요가 있는 일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가늠해보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여하고 싶다’와 ‘관여할 필요가 있다’를 구분하는 일이다.이런 이야기는 자칫 소시민적 행복을 추구하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일은 개인이 관여하기도 어렵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관여할 필요가 있는 일은 해야 하며, 다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하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분노는 지혜로운 이성으로 대체되고 정의가 실현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이것을 참고해서 내 행동과 감정을 점검해보니, 관여할 필요성보다는 평소 오타 하나에도 지나치게 예민한 나의 특성이 작동해서 관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소소한 에피소드지만, 이렇게 올바름을 추구하는 행동의 기저에는 해결을 기다리는 마음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충분했다.여기저기 SNS에 분노를 폭발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은 정의감에 중독된 현상이다. 우리 사회에는 정의감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도 해야 하지만, 사회 교육 기관에서도 개설하면 좋겠다. 분노하는 내 마음의 기저를 인식하는 연습은 혼자만 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확산될 때 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관여할 필요가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하게 실천할 때 정의는 더 잘 실현된다.

2023-10-15

연구개발비 삭감하면서 의사과학자 양성한다고?

유영희 작가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고전 한 구절 인용하는 방식은 진부하면서도 울림을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며칠 전 ‘논어’ 한 구절을 읽다 보니, 역시 단순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맛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천 개의 수레를 보유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는 신중한 태도로 백성의 형편을 잘 헤아려 정책을 실시하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서 백성에게 믿음을 주며,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고 백성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2024년 예산안은 여러 분야에서 삭감되었는데, 삭감된 내용을 보면 더 놀란다, 현 정부 출범 당시 중점 육성하겠다고 한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 우주, 데이터 분양까지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예산 15억원을 비롯하여 과학기술 인력 양성 사업 전반에 걸쳐 940여 억원이 삭감되었다. 이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RD 이권 카르텔 한 마디에 빚어진 사태다. 9월 5일,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가 출범해 과학기술기본법에 있는 절차도 무시했다고 항의하며 예산 지키기에 나섰지만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낙관하기 힘들다.그런데 한편에서는 대통령의 한 마디로 의전원이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카이스트에서 의사과학자 육성 대학원 설립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보낸 후 카이스트의 의전원 설립이 속도가 붙었다. 포스텍도 2028년을 목표로 의전원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의사과학자의 필요성은 두 말이 필요가 없다. 화이자에서 mRNA 백신을 개발하여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종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독일의 우구르 사힌, 외즐렘 튀레지 박사 부부가 바로 의사과학자이다. 오랜 기간 과학계의 mRNA 연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여성 과학자 카탈린 커리코는 드류 와이즈만과 함께 mRNA가 면역 체계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발견하여 백신 개발에 기여한 공으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이처럼 중차대한 의사과학자가 우리 사회에서 양성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과학자에 대한 홀대 때문이다. 카이스트가 미래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의사과학자를 배출한다고 해도 진료하는 의사의 평균 연봉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우로 과연 계속 이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가 하는 현실이 의사과학 연구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금도 과학고등학교 졸업생의 의대 쏠림 현상이 노골적인데, 의전원 졸업생을 의사과학자로 붙들어두기는 더 어렵다. 현재 배출된 의사과학자에 대한 지원이 더 절실하다는 반대 의견이 타당하게 들리는 이유다. 게다가 기초의학을 가르칠 교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카이스트나 포스텍에서 설립할 의전원에서 얼마나 내실 있게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가 하는 비판도 많다.무엇보다 연구개발비는 삭감하면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한다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어떤 정책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신중한 절차를 거쳐 백년을 내다보는 정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온다.

2023-10-09

민생과 민심

유영희 작가 언제 끝날지 암담하기만 했던 코로나19가 지난 8월 31일 인플루엔자와 같은 4급 감염병으로 전환됐고, 그 이후에도 안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추석에는 대규모 이동이 일어날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기 어려웠으니 오랜만에 마음 놓고 회포를 풀 것이다.친한 사람과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정치 이야기가 빠지기 어렵다.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대통령에 당선된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지난 1년 반 동안 얼마나 정치를 잘하고 있는지 찬반이 분분할 것이며, 최근 단식을 감행한 이재명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의견도 극과 극을 오갈 것이다.정치는 어떤 사안이라도 정당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향이 많고, 일반인에게 전달되는 정보도 왜곡되거나 제한적이라 소통하기가 참 어렵다. 자기가 즐겨 듣는 미디어에만 의존하다 보면, 자기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게 되고, 그만큼 양쪽 입장의 골은 깊어지고 대화는 끊어진다.민심이 천심이라는 말도 있지만,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현대 사회에서 민심은 미디어에 의해서 세뇌될 가능성도 많다. 그러니 민감한 정치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들리는 대로만 듣지 말고 조심스레 탐색하는 태도가 필요하다.최근의 가장 큰 이슈는, 지난 21일 제1야당 대표 이재명 의원에 대해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일일 것이다. 지난 2월 16일 대장동 등의 문제로 기소된 체포동의안이 한 표 차이로 부결된 후 백현동으로 다시 기소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이 많았고, 이렇게 쪼개서 기소하는 검찰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일부 국민의 피로감은 이재명 때문이라기보다는 검찰의 전략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대장동 관련해서는 곽상도와 박영수의 혐의만 일부 증명되었을 뿐이어서 더 그렇다. 게다가 이번 체포동의안 가결이 비명 계열의 위기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는 것을 보면, 이런 결과가 백현동 문제나 대북 송금 등의 혐의 때문인지 친명·비명 통합에 실패한 리더십 부재 때문인지 혼란스럽다.다른 한편, 이재명 대표의 대응이 선뜻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상에 보장된 불체포 특권을 먼저 포기한다고 해놓고 이번에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한 것은 모순으로 보이는 데다 지난달 31일부터 단식에 돌입한 행보도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사의 강한 권고로 성과도 없이 24일간의 단식을 중단하고 보니, 방탄용이었느냐는 의심을 해소하기도 어렵다. 다만, 단식이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것이 범죄 혐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지금 정말 중요한 것은 경제다. 지난 6월 OECD는 세계 경제 성장률을 전망하면서, 3월의 2.6%에서 2.7%로 올린 반면, 한국은 1.6%에서 1.5%로 내려잡으면서, 취약계층 직접 지원과 재정건전성을 높일 것 등 여러 가지 권고했다. 이것은 대부분 정치력이 필요한 사안들이다. 민생이 해결되면, 민심은 돌아온다.

2023-09-24

이런 청문회를 보고 싶다

유영희 작가 지난 13일 윤석열 정부는 2차 개각을 단행하면서 국방부 장관에 신원식, 문체부 장관에 유인촌, 여성가족부 장관에 김행을 임명했다.신원식은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을 촉발한 인물로, 2021년에는 홍범도 장군을 찬양했다가 2022년에는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의 주역이라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유인촌은 이명박 정부 때 문체부 장관을 하면서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과 기자를 향한 막말 영상으로 문화계의 수장 자격을 의심받고 있다. 김행 역시 박근혜 정부 대변인을 지낸 인물로, 최근에는 입시와 관련된 킬링 캠프 허위 뉴스를 인용하여 망신을 당했다.그러나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윤석열 정부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보여주기식 개각을 지양하고 오직 국민과 민생을 위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정부를 구성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속도감 있게 이끌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에 고삐를 당겼다”고 논평했다. 이번 개각의 키워드는 ‘효율성’과 ‘속도감’인 셈인데, 이번 인선을 두고 실전형이니 전투형이니 하는 평가와 통하는 말이다.그러나 세 인물의 과거 행적을 보자니, 이념 논쟁으로 국가 에너지를 탕진할까 걱정되고, 자유가 가장 보장되어야 할 문화계의 질식이 눈에 보인다. 헌재가 인정한 낙태권을 반대하는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이 여성의 권리 향상에 어떤 역할을 할지도 의문이다.이런 개각에 2주일 넘게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 삶을 돌보지 않는 정권만을 위한 개각이라면서,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개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MB 시즌 2라면서 ‘구한말 인사’라고 개탄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어떤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먼저, 이들이 말하는 국민은 같은 국민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위한다는 국민과 더불어민주당이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국민은 다른 사람이다. 이미 자기편을 지지하는 국민을 전제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두 번째 구한말 인사라는 비판의 의미가 불분명하다. 구한말은 대한제국 시기를 말하는데, 당시 고종 황제가 구성한 관료들은 왕실 측근 세력 등 보수파였는데, 이때 등용된 이완용, 민병석, 박제순, 고영희, 이병무, 한규설 등은 을사오적이나 정미칠적, 경술국적 명단에 올랐다. 이런 역사를 고려하면, 이번에 임명된 세 인물을 구한말 인사라고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의문이다. 단순히 구시대적 인물이라는 뜻이라 해도 주관적인 평가로 치부될 수 있다. 이런 태도로 청문회에 임한다면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것이다.장관 임명이 대통령 소관이라고 해도 청문회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비판하느냐에 따라 영향은 충분히 줄 수 있다. 호통치고 삿대질하는 청문회로는 자질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다. 전 국민에게 중계되는 청문회이니만큼, 더 많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냉철하고 엄정하게 검증해서 의미 있고 생산적인 청문회 문화를 보여주기 바란다.

2023-09-17

책맹인류와 독서 예산 삭감

유영희 작가 지난 토요일 동네 도서관에서는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김애란 작가를 초대해서 ‘소설, 삶을 담은 그릇’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애란 작가의 말 중에, 소설이란 한숨 같은 소리를 말로 바꾸고 그 이야기에 지위를 주는 것이라는 말이 크게 기억에 남는다.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에 대한 존중과 대접이 담겨 있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런 작가와의 대화는 독서를 자극하고 삶의 의미와 관계 맺음에 대한 통찰을 갖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독서율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이런 책 문화 프로그램은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독서율이 꼴찌다. 19세 이상 성인 중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EBS에서는 8월말부터 9월말까지 5주에 걸쳐 ‘책맹인류’를 10부작으로 방송하고 있다. ‘책맹인류’란, 문자는 해독했으나 긴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지난 수요일 방송된 ‘책맹인류’ 3부 ‘우리는 왜 읽지 않는가’에서는 세계적으로 독서율이 낮아지는 이유를 분석하고 일본이나 핀란드에서 독서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 있다. 이날 방송에서는 주로 개인이나 민간 차원의 노력을 소개했는데, 후속 방송에서는 미국, 영국,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호주, 일본. 많은 나라들이 국가 정책 차원에서 ‘읽기 능력’ 향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소개할 예정이다.그런데 우리 정부는 독서율을 높이는 데 별로 관심이 없나 보다. 정부는, 올해 약 60억 원이던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을 전액 삭감했을 뿐 아니라, 아예 예산 코드 1433-308을 없앴다. 결국 내년 독서 관련 예산은 ‘독서대전’, ‘지역독서대전’, ‘책읽는도시협회지원’ 등 일부 사업들을 위한 10억 원가량뿐이다. 체육기금을 활용하는 ‘책 읽어주는 문화 봉사단’ 예산 2억 원을 합해도 12억 원이라, 올해 독서 진흥 예산 약 114억 원에 비하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이 사라져서 작은 서점에서 진행하던 작가와의 대화나 문학 행사를 내년에는 하지 못하고,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 청소년 독서를 위한 전국청소년독서토론한마당, 성인을 위한 독서동아리 지원, 장병을 위한 병영독서 활성화 지원도 모두 할 수 없게 되었다.이 중에서 병영 독서는 2년 간 참여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더 관심이 간다. 구독자 100만이 넘는 북튜버 김송은 어려서는 책을 읽지 않다가 군대에 가서야 지인 추천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군대에서도 독서는 청년들에게 꿈을 꾸게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는데, 내년에는 전면 폐지되었으니 안타깝다.다행히 오늘 도서관 행사는 자치단체 예산이라 내년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크고 작은 책 문화 행사가 많아지면 독서율이 올라가고 독서율이 올라가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알게 된다. 정부는 내년 독서 예산안을 재고하기 바란다.

2023-09-10

안다는 믿음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유명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sns에서, 요즘은 질문은 없고 대답만 있다는 글을 보았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자신의 답에 확신하며 질문하지 않는다는 세태가 안타깝다는 뜻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아는 것은 얼마나 정확한가, 나의 선택과 행동은 얼마나 일관성 있을까, 하는 문제에 자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수시로 자신의 뇌에 속기 때문이다.닉 채터는 ‘생각한다는 착각’에서 여러 실험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2010년 스웨덴 총선거를 앞두고 실험을 했는데, 실험자는 응답자가 선택한 것과 반대되는 대답을 했다고 바꿔서 보여주었다. 좌파 성향의 응답자에게는 그들이 낮은 소득세나 건강보험에 민간 개입 등 우파 성향의 답에 공감했다고 알려주고, 우파 성향의 응답자에게는 그들이 넉넉한 복지와 노동자 권리 선호 등 좌파 성향의 답에 응답했다고 바꿔서 알려주었다. 이때 평소 4분의 1만이 실수로 잘못 응답했다면서 답을 수정했고, 나머지 4분의 3은 바뀐 답에 맞게 그것이 자기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그 입장을 옹호했다고 한다.응답자에게 여러 인물의 카드를 보여주고 매력 있는 인물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도 그가 고른 것과는 다른 카드를 내밀며 당신이 고른 카드라고 속여도 대부분 못 알아채고 자기가 왜 그 카드를 선택했는지 열심히 설명한다고 한다. 이렇게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을 옹호하는 현상을 ‘선택맹’이라고 한단다.질문 문항이 500개가 넘는 다면적 인성 검사 MMPI에는 같은 질문이 여러 번 나온다. 체크한 답이 정말 자기 생각인지 일관성 있는 답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단다. 나도 해본 적이 있는데 같은 질문이라는 기억은 나면서도 몇 번에 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니 같은 질문에 다른 답을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닉 채터의 말대로, 우리의 뇌는 순간순간 마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지각과 인식과 기억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붙잡는 경향이 많다. 나의 지각과 기억과 인식이 확실하다는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관찰하고 질문하는 수밖에 없다.사도시마 요헤이는 ‘관찰력 기르는 법’에서 사람은 모호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일정량의 지식이나 경험이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가설을 떠올리고 그에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관찰하면 이런 자동적 행위를 의식하게 되고, 가설에 따르려는 본능에 저항하게 된다면서, 세상과 자신을 관찰하려면 용기도 필요하고 질문과 가설의 순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지난주에 쓴 칼럼과 근거 자료를 여러 채널에 올려서 의견을 받았다. 그 의견을 모아 ‘방류하면 안 된다’, ‘방류해도 무방하다’로 표현을 바꾸어 다시 정리하였다.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나의 가설을 내놓고 의견을 받으니 질문하는 힘이 성장한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이 나날이 심각해져 간다. 관찰하고 질문하는 문화가 정착하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

2023-09-03

사실과 믿음

유영희 작가 지난 24일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오염처리수를 방류하기 시작했다. 이미 2021년에 방류를 결정했고, 올해 1월에 구체적인 방류시기를 예고한 터라 그 동안 이 문제로 찬반양론이 분분했는데, 방류가 시작되고 나니 인터넷이 더 뜨거워졌다.후쿠시마 원전에서 오염수가 쌓이게 된 것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일과 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의 냉각 시스템이 파괴되어 원자로 노심이 과열되면서 시설 내 용수가 고농도 방사성 물질로 오염되었다. 이 원자로 연료봉을 식히기 위해 냉각수를 투입하고 있어서 원전에서 매일 오염수가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올림픽 수영장을 500개 넘게 채울 수 있는 양이 1000여 개 탱크에 저장되어 있는데 한계에 다다라 2021년에 방류를 결정하고 이번에 첫 방류를 시작했다. 하루 약 460톤씩 17일간 7,800톤을 방류하고, 내년 3월까지 같은 방식으로 세 번 더 방류한다고 한다. 현재 저장된 오염수를 모두 방류하는 데 30년을 잡고 있다.문제는 이 오염처리수에 삼중수소라는 방사능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제 기준에 맞게 희석시켰다고는 하지만, 이 위험물질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지는 않는 실정이라 많은 시민이 반대하고 있다. 내 지인들은 대부분 반대 의견이라 반대에 기울다가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에 반박할 거리가 마땅치 않다. 반대하는 입장의 논거는, 일본이 한국과 가까우니까 위험하지 않겠느냐거나 막연히 안전하지 않다고만 할 뿐인데, 문제가 없다는 주장에는 논거가 분명하기 때문이다.삼중 수소가 자연에도 있다는 사실, 방류기준이 리터당 1만 베크렐(삼중수소 등 핵물질의 방사능 측정 단위)인데, 현재 방류하는 물의 삼중 수소 농도는 그보다 6배 낮은 1500베크렐이라는 사실, 해류의 흐름으로 보면, 방류된 물이 한국으로 바로 오는 것이 아니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과 캐나다 쪽으로 갔다가 한국 근해에 오는 데는 3년 이상 걸린다는 사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니 방류를 반대하기가 쉽지 않다.게다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후쿠시마 원전이 지진과 해일로 ALPS처리 되지 않은 방사능 물질이 많이 방류되었는데, 그 후 10여 년간 태평양의 방사능 물질 농도와 수산물을 조사 결과 위험한 변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사실을 다 알아도 불안이 다 해소되지 않는다.가장 근원적인 불안의 실체는 원자력에 대한 불안이다. 그러나 원자력을 반대하는 것과 방류를 반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 국면에서 시급히 해결할 과제는 일본과 한국 정부에 대한 비호감과 불신이다. 믿음에는 사실뿐 아니라 감정도 포함되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말하면 믿고 싶고, 미워하는 사람이 말하면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정부가 여러 실책으로 비호감을 쌓아온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다. 국민의 오염처리수 불안을 해소하는 지름길은 국민을 위해 정부가 책임감 있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2023-08-27

진짜 공부

유영희 작가 경제적 여유도 많아지고 수명도 늘어나면서 평생 학습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퇴직 후에도 계속 배움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어쩌면 배움에 대한 갈망은 나이를 들면서 오히려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렇게 배움을 찾아다니다 보니, 무엇을 배워야 할까? 배움의 목적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도 꼬리를 잇는다. 그런 의문에 화답이라도 하듯 공부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책이 많고, 이와 관련된 영상도 많다.공부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부의 목적을 자아 찾기에 두고 있다. 어떤 이는 공부가 자아를 찾아 떠나는 설레는 여행이라 하기도 하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발휘하라고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아란 내 마음속, 또는 나의 뇌 어딘가에 자리 잡고 앉아 발견을 기다리는 나의 본질일까, 그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체일까, 진정한 자아와 거짓 자아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모든 상상력은 허용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자아’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고 막연하기 때문이다.그러니 자아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감정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이 더 실질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맹자는 그 옛날에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은 사단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이나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같은 네 가지 도덕적인 감정을 들어 성선설을 주장했을 것이다. 이렇듯이 감정은 인간에 본질이 있다는 가정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그런데 리사 펠드먼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감정에 대해 새로운 견해가 나온다. 배럿에 의하면, 감정은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속성이 아니라 뇌의 신경망이 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같은 인간을 놓고도, 순자는 맹자와는 다르게 인간의 감정이 이기적이라면서 성악설을 주장하는 것이다. 배럿이 본질주의에서 벗어나자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감정을 인간이 타고난 본질이라고 한다면 모든 문화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인식되어야 하는데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본질주의에 사로잡혀서 자기의 생각과 다른 집단을 배척하고 무력 충돌도 마다하지 않는다.자아 역시 본질로서의 실재가 아니라 자신의 개념으로 구성한 실재이다. 그러고 보면, 자신이 설계한 자아를 발견하고 향유하는 것은 자아의 확장일 뿐이다. 자아가 확장되어 비대해지면 다른 사람과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서로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진짜 공부란, ‘자아’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구나 하는 인식을 향해 가는 여정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내가 구성한 개념일 뿐이고, 그런 ‘나’가 인식하고 느끼는 것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깨달음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완고함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와 대화하고 협력하게 된다. 청소년 시절에는 어려울 수도 있으나, 이런 공부는, 나이 들수록 절박하게 해야 하는 진짜 공부다.

2023-08-20

치매는 치매가 아니다

유영희 작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병을 꼽으라면 누구나 치매를 들 정도로 치매는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치매에 걸리면 벽에 똥칠한다는 소문으로만 치매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치매를 두려워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치매라는 명칭 때문이다. 치매는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어서 지나치게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 환자의 증상과도 동떨어져 있다. 치매 환자의 인지 기능이 낮기는 하지만 어리석지도 않고 증상의 범위도 넓기 때문이다.지난 6월부터 노후 준비 차원에서 치매를 공부하고 있다. 사회교육기관에서 치매 강의를 같이 들은 동료들과 모임을 만들어 학습을 이어가고 있는데, 아무리 중증 치매 환자라도 자기주도권에 대한 의식은 끝까지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알고 숙연해진 적이 있다.신경과 전문의 양현덕은 치매 환자 진료에만 머물지 않고 치매 전문 출판사와 인터넷 신문을 발간하고 있는데, 2021년 ‘디멘시아 도서관’을 개관하여 치매 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치매 정명’이라는 책에서 ‘치매’라는 단어의 뜻을 알기만 해도 이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며,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명칭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대만은 2001년에 실지증으로, 일본은 2004년 인지증으로, 홍콩과 중국은 2010년과 2012년에 뇌퇴화증으로 이름을 바꾼 상태다.우리나라에서는 이들 나라보다 조금 늦게 2006년부터 보건복지부에서 치매 명칭 개정을 추진했고, 2017년에는 ‘인지장애증’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기 위한 국회 입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병명 개정보다 사회적 인식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계류된 이후 최근까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다행히 작년 말부터 다시 개명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간질은 뇌전증으로, 정신분열증은 조현병으로, 나병은 한센병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많이 감소한 사례가 있다. 막연히 예쁜 이름으로 바꾸자는 말이 아니다. ‘치매 정명’에서는 새 명칭의 조건으로 질병의 본질이 잘 반영해야 하고, 과학적 타당성이 있어야 하며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현재 84만 명으로 추정되는 치매 환자는 2030년에는 136만 명, 2050년에는 300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치매에 대한 무지로 이들을 불편하게만 생각한다면, 그 부담은 우리 모두가 같이 질 수밖에 없다. 초기에 발견하지 못하여 악화되면 시설에 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환자에게도 고통이고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조기 발견할 수 있고 잘 관리하면 자기 집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난다.그러기 위해서는 명칭 개선이 급선무다. 그동안 후보에 오른 ‘인지장애증’와 ‘인지저하증’, ‘신경인지장애’ 중에서 선택해도 좋다. 이 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치매라는 단어를 썼지만,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치매는 치매가 아니다.

2023-08-13

질서 있는 삶

유영희 작가 “우리의 소유와 필요를 확대해가면 갈수록 그만큼 더 운과 역경의 타격에 부닥친다. 욕망의 길은 한계를 지어 제한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정신의 위대함은 위대함 속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정신의 가치는 높이 올라가는 데 있지 않고, 질서 있게 살아가는 데 있다.”이 글은 몽테뉴의 ‘에세’에 나오는 몇 구절을 붙인 것인데, 이승연의 ‘살고 싶어 몽테뉴를 또 읽었습니다.’에서 골랐다. 이 문장 중에서 특히 ‘질서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정신의 가치를 높인다는 말에 눈길이 꽂힌다. ‘질서 있는 삶’이란 남과 비교하지 않고 명분에 자신을 매몰시키지 않으며 자신에게 충실한 소박한 삶을 말한다. 이런 질서 있는 삶의 모델 중에 이나가키 에미코도 포함될 것이다.이나가키 에미코는 그의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에서 아사히 신문사를 50살에 퇴사한 이야기를 자세히 썼다. 여기서 그는 회사의 후광을 믿고 자신을 회사와 동일시하는 ‘회사 인간’으로 살면서 소비를 탐했던 이야기, 그러다가 10평짜리 집에서 단촐한 삶을 살게 된 이야기를 진솔하게 서술한다. 결과만 보면 객기어린 낭만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는 무척이나 진지하고 필연적인 과정으로 보여서 무척 공감이 갔다.이나가키는 명문대 엘리트 코스를 밟아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격표도 떼지 않은 새 옷이 즐비한 데도 계절이 바뀌면 새 옷을 사고 온갖 요리책을 사서 화려한 음식을 먹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전기를 흥청망청 쓰는 소비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우동으로 유명한 다카마쓰라는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돈 없이 생활할 때의 기쁨을 경험한 것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10여년의 준비 끝에 퇴사하고 나서 그는 에어컨은 물론, 냉장고나 전기밥솥조차 없이 휴대용 버너로 냄비 밥을 하고 10분 만에 끓이는 국을 곁들여 맛있게 먹으며 여러 가지 즐거운 일을 한다. 옷은 서랍장 하나로 충분하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행복한 삶의 질서를 발견하고 마을을 내 집 삼아 회사 사회가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넉넉하게 살아가고 있다.그의 삶이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남편도 자식도 없는 싱글라이프이고, 28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모은 돈이 있으며, 글 쓰는 능력도 남달라서 적은 원고료나마 수입을 가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정신의 가치이다.얼마 전, 집이 작은데도 정신이 너무 산만해서 공간을 재구성했는데, 버릴 것이 다섯 박스가 나왔다. 특히 옷걸이 50개로 사계절 옷을 다 걸게 되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가해지고 정신이 고양되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저 ‘자기 힘에 맞게’ 소유하고 일상을 질서 있게 가꾸어가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다. 올해는 더워도 너무 덥다. 이런 일상을 살다 보면, 기후 변화도 조금은 늦출 수 있지 않을까?

2023-08-06

세대 모임을 찬양함

유영희 작가 “안녕하세요? 제가 운영자님이 상상하시는 것보다 나이가 많은데, 참가해도 되나요?” 이제는 어느 모임에 가도 내가 최고령인 경우가 많아서 점점 조심스러워 사전에 나에 대한 정보를 알리게 된다. 선생으로 젊은이를 대한 적은 있어도 참가자로 젊은이들과 함께 한 자리는 많지 않은데, HOLIX라는 플랫폼의 모양새를 보니 젊은이들이 많을 것 같았다.그래도 과감하게 용기를 낸 것은 올해 특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동네 도서관에서 ‘감정과 뇌’라는 주제로 뇌 과학 책만 읽는 독서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15명의 참가자 나이 구성이 20대부터 60대까지다. 도서관을 통해 신청을 받고 보니, 나이 구성이 40년에 걸쳐 분포하게 된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주로 생협에서 비슷한 또래의 여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모임을 해왔기에 이런 다양한 연령대의 모임은 약간 낯설어 긴장했지만,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에 허물없이 서로 잘 배우고 있다.그러나 HOLIX에서 알게 된 영화 모임은 아무래도 더 젊은이 중심인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역시 운영자도 30대이고 대부분 20~30대였다. 그래도 며칠 전 세 번째 모임에는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 참가자가 왔는데, 그 역시 나이가 많은데 와도 되나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이런 나이든 사람의 망설임에는 늙은이에 대한 사회적 개인적 편견이 한 몫 한다.신경과 전문의 김진국의 책 ‘기억의 병’에서는, 사람들은 ‘늙음’에서 고집, 욕심, 무뚝뚝함, 괴팍함과 같은 부정적인 편견과 가까이 가기 싫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떠올린다고 한다. 이런 글을 보니, 젊은이들이 늙은이들을 불편해할까 두려워했던 내 염려가 기우는 아니었구나 싶다. 이런 부정적 편견은 만나야 해소될 수 있다. 나 역시 장거리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은 80세 노인이 노트를 꺼내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노인에 대한 편견이 깨진 적이 있다. 대화를 하면서 알고 보니 60세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이어서 김진국은 나이 들면 불안과 우울이 많아지고, 그러면 치매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 불안과 우울을 줄이기 위해서는 속물적인 행복을 지양하고 개성 있는 주체로서 행복을 누리는 경험을 많이 하라고 조언한다. 나이 들었다고 집안에만 들어앉아서 자식들만 바라보면 불안과 우울이 침범하기 쉽다. 뇌세포와 심장세포는 늙지 않는다고 하니 나이 들수록 교류 범위를 넓혀 동네 독서 동아리에 참여해보자. 조금은 낯선 SNS 클럽에서 공부하는 것도 주체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두 모임을 겪어보니, 젊은이들의 생각과 마음씀씀이가 예상보다 깊고 여유가 있다. 영화 모임에 온 어느 젊은이는 또래끼리만 어울리면 생각이 좁아진다며 우리를 반긴다. 세대 간 교류는 젊은이들에게도 늙은이에게도 서로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고 생각의 폭도 넓혀준다. 또래모임도 편안하고 좋지만, 세대모임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젊은이들이 싫어할까 지레 겁먹지도 말고 젊은이들에게 자존심도 세우지 말고 배우는 마음으로 어울려 보자.

2023-07-30

오은영과 서천석

유영희 작가 초등교사가 6학년 학생에게 폭행을 당해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에 뒤이어 학부모 갑질 때문으로 짐작되는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을 접하고 나니, 착잡하기 그지없다. 어느 기사를 보니,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초등교사 사망자는 74명으로, 그 이전 4년 동안 46∼55명 사망에 비해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교원 죽음에서 극단 선택 비율도 전체 사망자의 11%라고 한다. 교원단체는 초등교사 사망 급증이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과 극단선택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실증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흘려 들을 일은 아니다. 교사의 정신적 안녕은 교육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난데없이 금쪽이 상담으로 유명한 오은영이 소환되었다. 네티즌들은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을 돌봐야 한다는 오은영의 해법이 교사가 훈육을 제대로 못하게 했고 학부모 갑질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이 힘을 보탰다. 서천석은 오은영의 방송이 몇 번의 상담으로 아이의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고 비판한다. 그는 정신적 문제를 가진 아이는 상담이 아니라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 아이들의 치료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방송을 가만히 보면, 오은영은 방송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영상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금쪽이와 부모의 일상까지 관찰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도 밀착해서 관찰한다면 짧은 기간이라도 문제 원인과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출연자의 문제는 해결된다 해도, 시청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오은영이 감정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제안한 ‘생각하는 의자’는 많은 부모가 방치의 수단이나 체벌의 형태로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책이나 방송만 보고 적용할 때는 오남용 여지가 많다.얼마 전, 집이 너무 어수선해서 정리 팁을 얻으려고 유튜브 영상을 수십 개를 봤지만 문제와 해결책을 발견하기 어려웠는데, 컨설팅 업체를 불러 30분 상담하니 다 해결된 경험이 있다. 집 정리 같은 단순하고 물리적인 문제조차 이런데, 인간의 마음처럼 복잡한 문제를 영상을 보고 도움 받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교사에게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힌 초등학생은 작년 5월부터 정서행동장애로 하루 1시간 특수반 수업을 듣고 주 2회 상담수업을 받고 있었고 평소에도 상담 수업에 가기 싫다면서 교사를 여러 번 때렸다고 한다. 현재 이 문제를 교권 침해로 접근하여 엄벌을 청원하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치료의 적절성을 더 문제 삼아야 할 것 같다.서천석의 말처럼 정신적 문제를 가진 아이는 적극적인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오은영 방송이 상담에 환상을 심어준다는 서천석의 비판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아이들의 정신적 문제는 적극적 치료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부모와 정책 입안자들이 경청해야 한다. 그래야 무너진 교권도 회복될 수 있다.

2023-07-23

재앙이 아닌 패션을 위하여

유영희 작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국회의원회관에서 ‘옷, 재앙이 되다’ 행사가 열렸다. 패션회사가 팔지 못한 재고를 소각하거나 폐기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법안 마련을 위한 자리였다. 이 법안이 필요한 이유는 팔리지도 않은 엄청난 양의 새 옷이 소각되거나 매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엘렌 맥아더 재단이 2017년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15년 사이에 의류 생산이 2배 증가해서 2015년에는 1천억 벌의 옷이 생산되었으며 그중 73%가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등 폐기되었다고 한다. 국내 의류 폐기물 발생량 역시 심각해서, 2020년의 폐의류 발생량은 약 8만 t이 넘고, 공장의 폐섬유 발생량은 3만 t 가까이 된다. 우리 헌 옷을 수입한 나라에서도 재사용되지 못한 옷이 쓰레기 산을 이룬다.이러한 생산 증가가 단순한 인구 증가 때문이거나 삶의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18년 유엔 조사에 따르면 의류 산업의 탄소배출 비중은 10%나 되고, 폐수 발생 비중은 20%를 차지할 정도로 옷 생산에 환경 부담이 크다. 청바지 하나에 물 7천ℓ, 섬유 1t 생산에 물 200t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이렇게 의류 폐기물이 급증한 데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려는 의류 산업의 상술과 재고 보관에 비용이 든다는 이유도 있지만, 패스트 패션의 유행도 한 몫 한다. 일반적인 패션 브랜드는 계절에 따라 1년에 4번 기획하고 생산하지만, 패스트 패션 브랜드는 1~2주마다 새로운 의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류 산업 차원에서 대규모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아무리 중고 마켓을 이용하고 재사용을 위해 힘쓴다고 해도 개인의 힘이 닿지 않는 영역이 있다.의류 폐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산자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재고 의류 재사용을 법제화했고, 벨기에나 독일은 재고 물량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법안으로 제정했다. 한국에서도 2022년에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이 제정되기는 했으나 의류 폐기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의 헌 옷 수출량이 미국·중국·영국·독일 다음으로 많은 세계 5위로, 인구를 고려하면 1인당 버리는 옷의 양은 세계 1위인 셈이니, 어느 나라보다 법안 제정의 필요성은 절박하다. 그런 이유로 이번 ‘옷, 재앙이 되다’에서 재고 의류 폐기 반대 법안에 서명해줄 것을 호소한 것이다.아무리 의류 산업이 환경 부하가 크다고 해도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패션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3, 4년 전까지만 해도 패션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작은 집으로 이사 오면서 옷을 다 정리하고 나니 좋은 옷이란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 옷을 장만할 때는 더 신중해지고 나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옷 몇 벌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잘 맞는 패션을 아는 것도 패스트 패션의 광풍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3-07-16

자전축이 기울다니요

유영희 작가 지난 6월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서기원 교수 연구진이 엄청난 논문을 발표했다. 지구물리학 연구 회보에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팀은, 1993년부터 2010년까지 인류가 퍼 올린 지하수가 2조1천500t이라고 추정하면서, 이렇게 인위적으로 대량의 물이 이동하면서 지구 자전축이 기울었다고 한다. 연구에서는 이 정도 양이면 해수면이 6.24mm 상승할 만하다고 덧붙인다.이 뉴스에 이어서, 며칠 전에는 환경 단체 ‘멸종 저항’이 스페인 전 지역의 골프장의 홀컵을 시멘트와 채소 모종으로 메웠다는 기사가 나왔다. ‘멸종 저항’은 지구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2018년 영국에서 결성된 단체인데, 유명한 청소년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멸종 저항’은 ‘스페인 전역에서 437개의 골프장에 매일 대는 물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합한 인구가 사용하는 양보다 많다’고 주장하면서 유례없는 가뭄에도 인구의 0.6%만이 즐기는 운동을 위해서 물을 이렇게 많이 사용한다고 비판한다. 더 찾아보니, 이 단체는 2022년에도 프랑스에서 골프장 홀을 시멘트로 메운 일이 있었다. 기사로 추측하건대, 올해는 시멘트로 막기만 한 것이 아니라 채소 모종도 심은 것을 보면 운동 방법이 진화한 것 같다.시멘트로 골프장 홀 컵을 메우는 직접 행동으로 ‘멸종 저항’이 벌금을 물거나 체포되지 않았을지 걱정은 되지만, 그 홀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많은 물을 쓰는지 안다면 이들의 직접 행동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미국 골프 협회(GCSAA)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골프장은 매일 물 1억7300만 리터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약 58만 명의 미국인이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한국 통계를 보면, 2020년 전국의 1만 여개 홀에서 거의 45만 리터를 썼다니, 하루 약 300 리터를 쓰는 한국인 기준으로 150만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나 역시 소박하나마 물을 덜 쓰고 오염을 줄이려고 나름대로 애써왔다. 1회용품은 안 쓰거나 재사용하는 것은 물론, 2년 전부터 비누로 머리를 감고 있고, 수십 년간 손빨래를 했다. 세탁기가 물 사용량도 많고 합성세제 때문에 물을 오염시킨다고 해서다.그러나 아무리 수질 오염에 생활하수의 비중이 60%에 달한다고 해도 개개인의 실천에는 한계가 있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질 정도로 지하수 퍼내는 일을 줄이는 것, 골프장의 물 공급을 제한하는 것은 대대적인 정책으로만 가능한 일인데, 이런 소소한 개인의 실천은 자기만족이 될 가능성도 있고, 손가락에 병이 나거나 다른 사정이 생기면 손빨래를 계속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그렇다고 개인의 실천을 멈출 수는 없다. ‘멸종 저항’ 같은 정치적 직접 행동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자기 생활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생수 덜 사먹기, 세탁기나 에어컨 덜 쓰기를 하는 것도 여러 사람이 함께하면 의미가 있다. 인간이 자전축을 기울였으면 인간이 멈출 수도 있다.

2023-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