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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동참을!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2월 초하루에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축출하는 쿠데타를 감행한다. 쿠데타에 저항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열렬한 민주화운동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미얀마의 정치상황을 본래 궤도로 돌려놓기 위한 시민들의 목숨을 건 투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최소 5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천700명이 넘는 시민이 군부에 억류돼있는 상황이다. 민주주의는 진정 피를 먹고 자라나는 것인가?!미얀마 시민들의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을 보면서 맨 처음 떠오르는 사건은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고립무원의 절체절명 상황에서도 광주 시민들은 전두환 일당의 군사 쿠데타를 용인하지 않으려는 결사항전의 자세로 싸웠다. 광주의 피어린 항쟁은 도이칠란트의 위르겐 힌츠 페터 기자의 기록으로 세계 전역에 알려진다. 우리는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그것을 가슴 절절하게 확인한 바 있다.미얀마 시민들의 투쟁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혹은 트위터나 텔레그램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타전되고 있다. 딴 툿 우(다니엘딴) 동국대 초빙교수는 이런 정황을 “불행 중 다행”이라 말하면서도 몹시 괴로워하는 표정이다. 대구 문화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시인의 저녁’에 출연한 그는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에 한국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를 여러 차례 부탁한다.2007년부터 한국에서 공부했던 그는 동국대 아시아연구원의 초빙교수가 되어 한국어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한국인처럼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라면서,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격변이 조속히 안정되기를 희구하고 있다. 그와 대담(對談)하면서 나는 41년 전 절해고도(絶海孤島) 광주에서 속절없이 죽어가야 했던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괴롭기 그지없었다.우리는 광주 시민들의 희생 위에 견고한 민주주의의 성채를 세울 수 있었다. 오늘날 경제와 정치,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우리가 도달한 성취의 배후에는 광주의 고귀한 희생이 자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한창 진행되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의 강고하고 열렬한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치와 경제의 대표적인 모델이 우리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지구촌 전역의 상황이 순식간에 알려지는 시대에 미얀마 군부의 자국민 살해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총칼로 자국민을 살해하는 군대는 군대가 아니라, 학살자나 도살자에 지나지 않는다. 1980년 광주에 투입된 한국군이 그러했고, 지금의 미얀마 군대가 그러하다.미얀마 군부의 야만적인 폭거에 대응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미미하다. 상황이 종식될 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정도가 고작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한 세대 전에 겪은 학살과 폭력의 기억을 현재화하여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일일 것이다. 스테판 에셀의 말처럼 분노하고 연대하는 길밖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분노하라! 연대하라!

2021-03-09

2·28 민주운동기념일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2월 28일은 61번째 맞은 2·28 기념일이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타오른 민주주의를 향한 봉화가 나라 전체로 번진다.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자 이승만의 예정된 부정선거에 저항하는 청춘들의 피 끓는 함성이 달구벌에 울려 퍼진다.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급사하는 바람에 이승만은 당선이 확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자유당의 부통령 후보 이기붕은 장면 민주당 후보에 밀리는 형국이었다. 특히 대구에서 그런 양상이 강했다고 한다.올해처럼 1960년 2월 28일도 일요일이었다. 그날 장면 후보의 유세가 신천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자 대구의 8개 고등학교에서는 일요일 등교라는 희한한 고육책을 감행한다. 이런 불의하고 참람(僭濫)한 행태에 반대하여 경북고, 대구고, 대구여고, 경북여고, 경북사대부고, 대구농고, 대구공고, 대구상고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이팔청춘 고등학생들이 주역이 되어 독재자 이승만에게 목숨을 걸고 투쟁한 것이 2·28이다.2·28운동은 3월 8일 대전으로, 3월 15일 마산으로 이어지면서 전국적인 저항운동의 씨앗으로 작동한다. 마침내 2·28은 위대한 4·19혁명을 촉발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영원히 빛내게 한다. 2·28은 1945년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최초의 민주주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13년 동안 독재의 외길로 일관한 이승만을 권좌에서 축출한 기폭제가 대구의 청년학도들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 뜨겁다.당시 항쟁에 참여한 장주효 선생의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대구고 2년생이었던 장주효 선생은 경북고 학생대표 등과 거사를 모의하면서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죽음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던 상황을 말씀하시면서 “장가도 못 가고 죽는 게 가장 한스러울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만 18세 소년들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눈앞에서 되살아나는 것 같다. 한편으로 담대하고, 다른 한편으로 천진스러웠던 그들!2·28과 관련하여 인상적인 분은 ‘2·28 행진곡’을 작곡한 백남영 선생이다. 능인고 교사로 재직하던 그는 동료 김장수 선생이 작사한 가사에 곡을 붙인다. 평양 출신으로 만주에서 활동하던 그는 6·25 한국동란에 대구로 피란 와서 주저앉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그는 김장수 선생과 함께 대구에서 ‘4·19의 노래’도 만들었지만, 기억해주는 이가 없는 실정이다.언제부턴가 대구와 경북이 수구의 본산처럼 각인되고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1946년 10월의 대구 봉기가 제주의 4·3과 직결되어 우리나라의 아픈 현대사 첫 장을 대구가 연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더욱이 1960년 4·19 대혁명의 진원지였던 대구는 오랜 세월 자유와 민주를 향한 열렬한 투쟁의 본산이었다. 그러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30년 군부독재의 서슬로 풀 죽은 형국이 되어 30년이 지났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30년이면 한 세대가 종언을 고하는 법이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불변하는 것은 없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동토(凍土)의 대구에도 산수유와 홍매, 백매 환하게 피어나기를 고대해본다.

2021-03-02

라떼는?!

김규종 경북대 교수한국인은 언어유희에 능하다. 머리가 좋기도 하지만, 한국어에 동음이의어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수의 언어유희가 동음이의어에 기초한 말장난에서 출발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예컨대 내 작은 아이 이름이 ‘우연’이다. 사람들이 “우연이 어떻게 지내요?”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우연(佑鍊)이요, 우연(偶然)히 잘 있어요!” 우연이가 두 번 겹치면서 듣는 사람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런 본보기는 끝이 없다.요즘에는 외국어까지 언어유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세계화의 물결이 우리 언어생활까지 넘보고 있는 셈이다. 그 가운데 으뜸은 ‘라떼는’이 아닐까?! ‘카페라테’에서 추출된 용어일 텐데, 하루에도 몇 번씩 ‘라떼는 말이야’ 하는 말을 듣게 된다. 대개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갑질의 하나로 쓰이고 있다. 나이 든 축이 예전 경험담을 일반화하면서 젊은 친구들을 훈계할 때 나오는 말이 ‘나 때는 말이야~’ 하는 어구다.나는 ‘라떼는’에 유감이 많은 사람이다. 염량세태가 변했다 해도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대물림에 기초한다. 아버지 세대에서 아들 세대로, 아들 세대에서 다시 손자 세대로 무수한 대물림이 21세기 21년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오죽하면 구약의 ‘전도서’ 1장에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구절이 나오겠는가?! 발명이 아니라, 오직 발견밖에 없다는 확신은 창조주를 가리키지만, 나는 대물림으로 수용한다.대물림의 정점에 자리하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출발점은 언제나 지금과 여기다. 지금과 여기는 과거의 시공간과 경험 그리고 인과율과 결합한다. 그래서다! 2천500년 전에 공자가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를 설파한 까닭은 이유가 있다.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선생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교육자의 첫 번째 조건을 옛것을 익히는 것에 둔 공자. 따라서 새것은 옛것을 바탕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요즘 젊은이들은 나이 먹은 사람들의 경험이나 방법론을 잔소리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거야 옛날얘기고, 모든 것이 나날이 바뀌는데, 너무 낡고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그와 같은 생각의 바탕에는 옛것은 모두 케케묵은 것이고 시대착오적이기에 서둘러 내버려야 한다는 강박증이 자리한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은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이 드러난다. 20대 청년을 존립하게 하는 것은 ‘지나간’ 20년 남짓한 세월의 삶과 경험에 근거한 과거에 있다. 우리 모두의 지금과 여기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지나간 것’에 터를 두고 있다. 과거의 유용한 누적을 기억과 경험 속에 축적한 사람을 우리는 현인이나 원로라고 부른다. 모든 늙은이가 현명하거나 원로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들이 경험한 시공간과 인과율의 깊이와 너비 그리고 목표지점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누군가 ‘라떼는’ 하고 말하면, 잠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누구나 ‘조르바’의 경험을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인생에서 배울 것은 있기 때문이다.

2021-02-23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2021년 2월 15일 새벽 백기완 선생이 세상과 작별했다. ‘회자정리’라는 말도 있지만, 있을 것 같지 않은 일로 여겨짐은 비단 나만의 소회는 아닐 성싶다. 그렇다 해서 내가 선생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다. 그저 먼 발치에서 선생을 보고 들으면서 마음에 들어온 두 가지만 회상하고자 한다. 인간사는 작은 기억과 그것의 누적이 희로애락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바 크기 때문일 것이다.1987년 1월 초 ‘민중문화운동연합회(민문협)’ 새해맞이 행사인 단배식이 열렸다. 당시 한국의 민중운동은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이 주도하고 있었다. 민문협은 민통련을 구성하는 단체였고, 백기완 선생이 의장이었다. 민통련 의장은 1994년에 고인이 되신 문익환 목사였다. 모임 장소에는 2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청춘들이 왁자지껄하는 소리로 활기가 돌았다. 백 선생은 그런 우리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때 “문 목사님 오셨습니다!”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백 선생은 우리에게 담배 하나 달라고 하면서 자리를 문 목사께 넘기고 슬며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기실 민중민주 운동판에서 보면 백 선생이 연배는 어리지만, 연륜은 문 목사보다 윗길이었다. 여하튼 그날 문 목사는 한복 두루마기 곱게 입고, 돼지 대가리가 차려진 고사상에 절을 하고, 돼지주둥이에 만원 짜리 몇 장을 꽂아 넣었다.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내게는.1980년대 한국 민중운동의 두 기둥을 모신 민문협 새해 단배식 자리는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향한 뜨거운 기운이 분출했다. 어쩌면 그런 열기가 하나로 모여 1987년 평화대행진과 대통령 직선제 쟁취가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2014년 8월 13일부터 15일까지는 나는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세월호 대참사 희생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유진 학생 부친 김영오씨가 단식하던 곳이다. 그이의 단식에 동조하는 단식을 하려고 2박 3일 여정으로 광화문에 갔더랬다. 마지막 날인 8월 15일 우리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대형 현수막을 앞세우고 시가행진을 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백 선생을 뵙게 됐다.여든 살의 노구(老軀)를 이끌고 거리에 나선 백 선생의 거동이 몹시 불편해 보였다. 동행한 친구 말로는 당뇨와 신장이 불편하여 일상생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국가 환란을 맞이하여 일신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거리로 광장으로 나와 시민들과 구호를 외치는 백두산 호랑이 같은 모습을 보여준 이가 백기완 선생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백 선생을 뵙지 못했고, 그저 들리는 말로 선생의 안부를 듣곤 했다.백 선생 부음을 접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것은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문장으로 요약 가능할 것이다. 나와 함께했던 1980년대부터 2021년까지 어디가 됐든 고통받고 억압받고 학대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백기완 선생이 계셨다는 자명한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그토록 열망한 통일을 보지 못하고 눈 감으신 백 선생의 영면을 기원한다.

2021-02-16

뽕짝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대학시절을 돌이키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은 젓가락 장단과 거듭된 폭주(暴酒)다. 강의가 끝날 무렵이면 선배 가운데 한 사람이 쪽지를 보낸다. ‘고모집, 6시!’ 술집 이름치고는 정겨운 고모집이 우리 학과 아지트 비슷한 곳이었다. 막걸리와 빈대떡, 김치찌개, 제육볶음 정도가 주된 안주였다. 제육볶음은 특별한 일이 있어야 먹는 호사스러운 음식이었다. 가난했던 시절에 고기안주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으니 말이다.자리를 잡으면 막걸리나 소주를 한 순배하고 누군가 흘러간 옛노래를 선창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노랫소리가 들리면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들고 술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당시 우리가 즐겨 부르고 따라 했던 노래는 예외 없이 뽕짝이었다. 요즘 고급스럽게 ‘트로트’라고 하지만, 나는 뽕짝이나 ‘도로토’ 같은 용어가 친숙하다.뽕짝은 4분의 2박자가 주조를 이루는데,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고복수의 ‘사막의 한’이나,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 같은 노래는 ‘폭스트로트’이기에 속도감이 배가된다. 그런 노래가 나올라치면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기 마련이었다. 누군가는 운치 있게 ‘왈츠’나 ‘슬로 록’ 혹은 ‘탱고’ 같은 곡으로 분위기를 잡기도 했지만, 대세는 뽕짝이었다. 수준 높은 일부 선배는 ‘명태’ 같은 가곡으로 기를 죽이기도 했지만.뽕짝을 함께 부르고, 정치 얘기에 치열하게 몰두한 적도 많았다. 유신정권 말기에 학교를 다녔기로, 세상의 모든 것이 고깝고 부정적으로만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술을 먹고, 강의 빠지고, 여기저기 쏘다니고, 염세주의에 함몰되어 20대를 마구 살았던 시절이었다. 성실하고 근면하게 공부했던 극소수의 대학생이 ‘범생이’ 딱지로 소외되고 고립되어야 했던 희한한 시대. 그 시대를 위로했던 흘러간 옛노래와 젓가락 장단 그리고 막걸리의 추억.요즘 ‘트로트 열풍’이라고 한다. 일부 유튜브에서는 외국인 여성까지도 기막히게 트로트를 불러댄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K’로 시작하는 온갖 것이 세계 전역으로 팔려나가는 놀라운 시대를 경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와중에 뽕짝이 불러온 향수는 대단한 것이다. 어린 친구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흥얼거리는 뽕짝의 열풍은 분명 놀라운 시대상이다.20대 10년을 학교에 다녔던 까닭에 나는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막걸리와 젓가락 장단과 뽕짝에 심취한 사람이다. 그 결과 수많은 노래와 곡조를 기억한다. 더욱이 남들의 노래를 듣기보다는 직접 노래하는 게 체질에 맞는다. 농촌에 사는 관계로 이웃에 아무런 방해도 주지 않고 노래 부를 수 있는 환경 또한 든든한 우군이다. 힘들고 지치고 괴로운 때가 오면 조용히 기타를 꺼내서 조율하고 노래한다.한동안 국민 뽕짝이었던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을 3절까지 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맺혔던 울혈(鬱血)이 풀리는 느낌이다. 두만강을 건너간 사람과 그이를 보내는 사람의 정한이 사무치게 다가오는 시대의 명편(名篇) ‘눈물 젖은 두만강’. 여러분은 3절 가사를 아시는가?!

2021-02-09

‘시인보호구역’

김규종 경북대 교수2020년 10월 5일부터 대구 문화방송국에서 ‘시인의 저녁’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언뜻 들으면 생뚱맞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세상에 누가 시를 읽는다고 ‘시인의 저녁’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시사와 인문학이 있는 저녁’의 줄임말이다. 대략 40분 남짓한 시간 앞부분에는 시사를, 뒷부분에서는 인문학을 다룬다. 다채로운 손님을 모셔다 여러 가지 세상 이야기를 주고 받는 시간이어서 호응도 제법 좋은 편이다.지난주에는 인문-예술공동체 ‘시인보호구역’의 대표인 정훈교 시인과 함께 대구와 경북의 인문학, 특히 시를 둘러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았다. 요즘에는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뿐 아니라, 자가 출판한 사람도 시인으로 인정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등단 여부와 무관하게 시인으로 인정받고 활동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의미다. 문제는 시를 읽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그나마 소설은 어느 정도 호응이 있지만, 시나 희곡 분야는 그야말로 설한풍(雪寒風)이 불고 있다 한다. 하기야 나 같은 사람도 시집을 산 지가 꽤 오래전 일이니까 문자 그대로 유구무언이다. 나는 우리나라 독자들이 시를 읽지 않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는 문학 전반에 관한 독자들의 처절할 정도의 무관심과 냉소일 것이다. 대학입시에 필요한 정도의 독서가 끝나면 책과 멀어지는 염량세태가 사태의 본질 가운데 하나다.다수 대중은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도 텔레비전의 ‘막장드라마’와 철 지난 트로트 열풍에 휩쓸린다. 왜냐면 단순하되 재미있고, 시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며, 화제로 삼기에 이것보다 더 좋은 질료(質料)가 없기 때문이다. 화제가 궁한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가볍고 유쾌하며 부담 없는 오락 프로그램 아닌가.그에 비하면 문학, 특히 요즘의 시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 명색이 문학 교수라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구절과 문맥과 사유와 감성이 차고 넘치는데, 누가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친구 안사람이 시인으로 등단해서 상까지 받았다고 해서 기꺼운 마음으로 몇 편 읽다가 던져버렸다. 내가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윤동주와 이육사,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편 가운데 정말 이해되지 않는 시가 있는가?! 한국의 독자들이 시를 외면하는 두 번째 이유는 시인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일찍이 ‘장한가(長恨歌)’의 시인 백거이는 ‘노구능해’라는 전범을 선보였다. 뒷집에 사는 늙고 문맹인 노파가 이해할 때까지 퇴고를 거듭했다는 백거이. 그런 자세를 진즉에 잃어버린 한국 시인들의 자승자박 자업자득 사필귀정이 독자의 상실이리라.그러나 21세기에도 시인은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마땅한 귀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소멸하면 인간세(人間世)도 끝장이다. 자연 생태계의 깃대종처럼 시인은 저잣거리의 난잡함과 번다함을 저지하는 최후의 보루일 것이다. 시인을 ‘시인보호구역’에서 해방할 그 날을 고대한다.

2021-02-02

나의 작은 동무

김규종 경북대 교수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프랑스 혹은 중국 영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영화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1월 14일 개봉된 에스토니아 영화 ‘나의 작은 동무(The Little Comrade)’는 신선하고 유쾌하게 다가왔다. 에스토니아란 나라가 어디 있는 거야, 하고 묻는 교수도 있었으니 말이다.우리는 가끔 ‘발트 삼국’이라는 어휘와 대면한다. 북구와 러시아에 면한 발트해에 자리하고 있는 세 나라를 가리킨다. 위도상 위쪽부터 거명하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순서다. 18세기에 러시아 영토로 편입된 세 나라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8년 1차대전 종결로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1940년 스탈린의 강제 통합으로 국권을 상실한다. 세 나라는 1990년 다시 주권을 회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영화 ‘나의 작은 동무’는 1950년 스탈린 통치 아래 있던 에스토니아 시골 소녀의 이야기다. 2차대전의 영웅으로 떠오른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전제정치로 자유를 향한 에스토니아 국민의 열망이 짓밟히던 시절. 여섯 살 소녀 렐로는 9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교사인 엄마가 소련에 저항하고, 에스토니아 독립을 지지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에스토니아 국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다른 혐의가 없음에도 엄마 헬무스는 시베리아로 유배당한다. 아빠인 펠릭스는 여러 방면으로 구명 노력을 하지만, 렐로에게 약속한 9월 입학 전까지 헬무스를 빼내지 못한다. 그들 부녀가 만 5년 동안 겪어나가는 눈물겨운 애환이 영화의 얼개다. 약소국 에스토니아가 강대국 소련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대목과 소련 앞잡이로 등장하는 펠릭스의 친구가 얄밉기 그지없다.영화를 보면서 식민지 조선을 살아갔던 민중과 그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일제 앞잡이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특히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하는 말로 유명한 의열단장 김원봉이 친일 악질분자이자 이승만의 충실한 하수인 노덕술에게 모욕당한 일이 절로 떠올랐다. 일제가 거금의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려던 김원봉이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 앞잡이에게 당해야 했던 치욕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렐로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도, 학년이 올라가도 엄마는 돌아올 기미가 없다. 그러다가 1953년 3월 5일 공포의 독재자 스탈린이 사망한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거기서 다시 2년 넘는 세월이 흐른 1955년 5월 헬무스는 열차 편으로 에스토니아 수도인 탈린에 도착한다. 엄마를 찾으려던 렐로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던 엄마 아빠를 본다. 조금은 어색하게 엄마를 바라보는 렐로에게 눈물 젖은 얼굴로 엄마가 손을 내민다.어린아이에게 만 5년 넘도록 엄마를 빼앗아간 전체주의 통제국가 소련의 운명은 우리가 보고 들은 대로다. 그들도 1991년 12월 31일 종언을 고했다. 철권통치의 끝은 언제나 고약하다. 역사가 그것을 입증한다.‘나의 작은 동무’는 우리가 잊었던 시절을 일깨우는 소중한 영화다.

2021-01-26

일관성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임마누엘 칸트(1724∼1804)의 저작은 모르지만, 그의 습관은 기억한다. 그는 매일 오후 3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산책을 시작했다고 한다. 평생에 두 번 산책을 빠트렸는데, 장-자크 루소의 ‘에밀’을 읽다가,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을 보도한 신문을 읽다가 그랬다는 것이다.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걸은 것으로도 유명하다.왜소하고 병약한데다 결혼도 하지 않은 칸트가 80세의 천수(天壽)를 누린 것은 규칙적인 산책 덕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장구한 세월 정해진 시각에 산책을 시작해서 마친다는 것은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칸트가 위대한 사상가가 될 수 있던 근저에는 자신을 이겨낸 탁월한 의지도 한몫했을 것이다. 칸트처럼 좋은 습관을 평생 지켜온 사람을 주위에서 보셨는가?! 그것을 일관성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성싶다. 언제 어디서든 수미일관(首尾一貫)하는 자세와 관점을 유지하는 것을 일관성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요즘처럼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점에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더욱 쉽지 않다. 일례로 양치질의 ‘3-3-3법칙’을 들 수 있다. 하루 3번, 식후 3차례, 3분 동안 이를 닦는 것이다. 사정이 허락하는 사람들은 이 법칙을 성실히 지켜왔다. ‘치아가 오복(五福)의 하나’라는 말이 시중에 떠돌 만큼 장수의 비결 가운데 하나가 치아이기 때문이다.그런데 ‘3-3-3법칙’ 치아를 상하게 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식후 최소 30분 후에 양치해야 치아의 법랑질 성분이 벗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가까이 지켜온 습관이 오히려 치아 건강에 해롭다는 결과를 천연덕스레 보도하는 언론이 마냥 신기했다.기다렸다. 치과협회나 치과의사들이 사과 성명이라도 낼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3-3-3법칙’을 오랜 세월 주장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태도를 돌변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연구와 실험 결과 지금까지 우리가 주장한 ‘3-3-3법칙’이 유효하지 않기로 미안하게 됐다.”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했던 ‘3-3-3법칙’의 피해자들은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한단 말인가?! 흡연으로 폐암에 걸린 사람들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참에 우리 국민도 치과의사들과 치약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해야 할 판인가, 궁금하다.이런 일은 날마다 되풀이된다. 코로나19 백신 구매가 늦다고 정부-여당을 몰아치던 정당과 언론사들이 화이자를 비롯한 백신의 부작용으로 사망자가 발생하자 하나같이 입을 닫는다. 중요사안을 정파적으로 접근하는 언론사와 정치인들은 돌아봐야 한다. 얼마나 오래 일관성을 지킬 수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올바른 행위인지! ‘내로남불’은 남의 일이 아니다.

2021-01-19

북극한파

김규종 경북대 교수일주일 가까이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다. 요즘은 대구나 청도 기온이 다를 바 없다. 예년 같으면 청도 최저기온이 대구보다 4∼5도 정도 낮았는데, 그런 차이가 사라졌다. 영하 18도 가까운 추위를 경험하는 일은 행운이다. 내가 좋아하는 기온이 영하 18도이기 때문이다. 바람 한 점 없이 쨍한 날 아침에 맞는 영하 18도의 상큼함은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이다.우리나라 추위에는 언제나 바람이 동반한다. 날이 추워질 기미를 알려주는 것도 바람이고, 기온이 오를 징조를 통지하는 것도 바람이다. 겨울에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날이 차가워질 것이고, 차갑던 날에 바람이 잠잠해지면 포근해지기 마련이다. 이 땅에 살면서 체득한 이치 가운데 하나다. 러시아인들이 기장(機長)의 인천공항 일기예보에 환호하다가, 공항 바깥에 나오자마자 괴로워하는 데에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유라시아 대륙의 내부에 있는 도시들, 예컨대 베를린이나 모스크바 혹은 이르쿠츠크에는 바람이 드세지 않다. 그곳의 추위는 바람 없이 생짜로 내려가는 한기(寒氣)에서 발원한다. 영하 30도의 베를린과 영화 28도의 이르쿠츠크, 영화 25도의 흑룡강 추위의 경험은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일상을 영위하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겨울을 맞이하고 보낸다.언론에서는 이번 추위의 원인 제공자가 북극이라면서 ‘북극한파’라는 별칭(別稱)을 부여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북극 기온이 상승하고, 찬 기운을 막아주던 제트기류는 상대적으로 약해져 북극의 찬 공기가 그대로 남하해 한파가 닥쳤다는 것이다. 호모사피엔스가 불러온 기후재앙의 결과로 이해하면 속 편할 듯하다. 스웨덴의 18살배기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강력한 저항운동이 절실해 보이는 까닭이 여기 있다.북극한파가 가져다준 선물도 소중하다. 한국인들의 지리적 이해도를 강화한 점을 들 수 있겠다. 한반도 남단, 그것도 서울과 경기도 인근의 미소(微小)한 공간에 갇힌 사람들의 시선을 확장한 공이 크다. ‘우물 안 개구리’도 유분수지, 날이면 날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타령이 끊이지 않는 나라의 좁디좁은 소견이 가관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북극이라는 지명과 그곳의 맹추위가 잠자는 한국인들의 협소한 의식을 일깨운 셈이다.이런 정도의 추위를 감내하고 살아가는 지구촌 사람들이 많다는 인식의 확장은 덤이다. 극동 러시아의 야쿠티아 자치 공화국에 자리한 오이먀콘 초등학생들은 영하 52도 아래로 떨어지면 등교하지 않는다. 영하 56도까지 내려가야 휴교한다고 알려져 있다. 눈보라 치는 영하 50도의 날씨에 학교에 가는 7~12살짜리 아이들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과잉보호가 넘쳐나는 이 나라 학부모들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여름에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병해충이 이번 추위로 상당수 절멸했을 가능성도 있다. 덕분에 올여름에는 모기나 각다귀가 조금은 적을 듯하다. 세상사 대차대조표는 결국 영(零)이다. 조금은 여유롭게 북극한파와 대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1-01-12

새해 소망

김규종 경북대 교수신축년 2021년 올해 전국의 해맞이 명소가 폐쇄되었다. 달갑잖은 코로나19의 선물이었다. 해마다 1월 초하루면 해맞이 차량으로 몸살을 앓던 국도 7호선도 조용했으리라. 해맞이 차량 행렬에 끼지 않으면 무슨 사달이나 나듯 호들갑 떨던 사람들은 어디서 뭘 했을까, 궁금하다.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맞물려 있다. 고3은 대학 신입생이 되고, 대졸자는 사회 초년생이 되는 이치와 같다. 노자(老子)는 그것을 ‘전후상수(前後相隨)’로 풀었다.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는 뜻이다. 등산 가다가 길을 잘못 들으면 되돌아서야 한다. 끝에 가던 사람이 선두가 되고, 가장 앞선 사람이 최후미에 자리한다. 앞서간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고, 뒤처져 있다고 위축될 일도 아니라는 얘기다.‘전후상수’는 한국인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을 연상하면 좋겠다. 가난한 집 자식들이 공부든 노동이든 열중하여 사회에서 대접받는 자리에 올랐을 때 하는 말이다. 지난 세기 6-70년대 우골탑 신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산업화의 첨병으로 활약했던 신진기예는 대개 개천에서 나온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었다. 그들이 이룩한 고도성장 신화가 오늘의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었다.그런데 21세기에 개천과 용의 관계는 전면 실종되었다. 요즘 개천에는 용은커녕 토룡조차 찾기 어렵다. 실지렁이 몇 마리 떠돌 뿐 적막하기 그지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와 관련된 기사는 차고 넘친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런 현상의 근저에 자리하는 불의와 불평등이다. 아빠와 엄마 찬스, 부의 대물림과 불법 편법 무법 초법 탈법 같은 무소불위 권력자들의 ‘내로남불’에 잠재된 이데올로기가 두려운 것이다.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계층의 자유로운 이동이 무시로 일어나야 한다. ‘역동적인 대한민국’이라는 용어에서 긍정적인 면모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거대한 호수가 아니라, 실개천에서 천하를 호령하는 용들이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반대 아닌가. 사회 기득권층이 막강한 특권을 행사하고, 그것을 대물림하는 풍경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병약하게 하는 근간이다.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소식은 어둡고 출구 없는 칠흑 같은 무간지옥을 연상시키는 흑색 스릴러 영화와 다르지 않다. 외부에서 언론 뉴스만 본다면 한국 사회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고 휘청거린다. 과연 그러한가,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젊은 세대의 장탄식과 고통스러운 한숨은 분명 이유가 있다. 그들의 비상(飛翔)과 장쾌한 미래기획이 실현될 방도를 마련해주는 것이 나이 먹은 축들이 할 일이다.부동산 투기로 자식 세대의 돈을 갈취한 자들은 그만 자제했으면 한다. 전국 곳곳의 기획부동산에 철퇴를 내리지 않는 국토부의 소임은 무엇인가?! 젊은이들이 꿈과 미래를 걸 수 있도록 선명한 방침과 실행력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21-01-05

2020 경자년을 돌이키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나간 일과 관계와 사건은 아쉬움을 남긴다. 더 나은 결과와 평안한 관계, 안정적인 사후처리가 가능했음을 깨닫는 것은 언제나 나중이다. 일컬어 ‘사후 약방문’이거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 한다. 차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것과 같이 만사휴의(萬事休矣) 상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실패와 좌절을 돌이키면서 우리는 같은 성질의 패배와 절망을 경험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1960년생이 환갑을 맞은 경자년(庚子年)이 저물어 간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시작해서 코로나19로 끝나고 있다. 호모사피엔스가 여태까지 겪지 못한 쓰라린 상처를 지구촌 곳곳에 남기면서 코로나19는 아직도 맹위(猛威)를 떨치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지만, 바이러스의 종식(終熄)은 내년 가을 이후에나 가능하리란 것이 중론이다. 나는 열네 살 먹은 인도 소년 아난다의 예언에 500원을 걸었다. 내년 11월에 코로나가 끝날 것이라는!인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기억은 100년 전 일인 성싶다. 1918년에 발생한 에스파냐(스페인) 독감 때문에 세계적으로 2천500만에서 5천만의 인명이 희생된 것으로 전한다. 지난 12월 26일 기준 코로나19 확진자는 8천만, 사망자는 176만에 이른다. 페니실린도 발명되기 이전의 에스파냐 독감과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있은 2020년 코로나19의 수평적 비교는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더욱 뼈아프다.문제는 코로나19의 뒤를 이어 훨씬 강력한 바이러스 침입이 일상화하리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알다시피 1976년 에볼라 바이러스, 2002년 사스, 2012년 메르스에 이은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은 인간이 자행한 생물 서식지 파괴다. 지구촌에 거주하는 다수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는 거주공간을 인간이 무차별적으로 훼손하고 개발한 결과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창궐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수용된다.그 원인은 인간의 탐욕이다. 인간의 무한욕망이 불러온 자연 생태계의 무차별적인 파괴와 유린은 반대로 인간의 생명을 옥죄는 카르마로 작용하고 있다. ‘노 마스크’로 일관한 트럼프나 브라질 대통령 보우소나루의 코로나 확진은 인과응보의 성격이 짙다. 정치와 경제의 효능과 이해관계를 위해 대중의 방역과 예방을 소홀히 한 업보를 고스란히 경험한 셈이다. 일본의 전임수상 아베의 행적도 그들과 비슷한 궤도를 보인다.코로나19의 창궐은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깃발을 든 신자유주의 기조로부터 발원한다. 그들은 한물간 19세기 자유주의 정책을 20세기 후반기에 실현하려는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정치적 하수인들이다. 그들로 인한 폐해는 지금까지도 온존된다. 20대 80의 사회에서 1대 99의 사회로, 숱한 비정규직과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양산(量産)으로 해를 보내고 있다. 이제라도 반성해야 한다.코로나19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노동자들을 사지에서 구출해야 한다. 가혹한 시련과 아픔을 남긴 경자년이 저물기 전에 우리가 돌이킬 대목이다.

2020-12-29

봄이 온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엊그제가 동지였다. 입동에서 시작하는 겨울이 소설과 대설을 거쳐 동지에 이른 것이다. 이제부터 소한과 대한을 지나면 입춘이다. 그날이 왔다고 곧바로 봄은 아님을 경험은 가르친다. 하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드디어’ 하는 고요한 탄성이 시나브로 자리하게 될 것은 명백하다.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사멸과 적요(寂寥)의 기나긴 터널을 지나 생명과 약동의 시절과 대면하게 되리라.12월 21일 세계 전역이 코로나19로 동분서주할 때 천상에서는 진기한 장관이 연출됐다. 무려 400년 만에 토성과 목성이 근접하는 보기 드문 천문현상이 관측된 것이다. 그런 일은 앞으로 60년 후에야 재연(再演)된다고 하니, 지금의 40-50세대는 죽어서야 그 소식을 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주가 제공한 희귀한 장면에 눈과 마음을 돌렸을지 알 도리는 없다. 그래서 더욱 궁금한 게다.‘별 헤는 밤’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시인 동주는 별을 향한 그리움과 찬탄과 미구에 다가올 찬연한 봄날의 도래를 노래한다.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하나씩 붙여가던 시인은 별빛이 내린 언덕에 ‘자신의 부끄러운 이름’을 써보고는 흙으로 덮어버린다. 식민지 조선의 백면서생으로 살아가야 했던 지식인의 자화상이 서러웠을 터. 하지만 그는 자기부정의 세계에서 긍정의 세계로 이동한다. 내가 동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소이는 거기 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별 헤는 밤’ 마지막 연)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멀리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로, 아버지가 보내주는 학비로 학업을 이어가는 대학생으로, 용정의 이국 소녀들을 기억하는 청년으로 동주는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성찰과 응시를 별로 치환한다. 그리하여 치열하게 자신의 실존을 날카롭게 부정한다. 아름다운 것들의 정화가 쏟아져 내린 언덕 위에 제 이름을 썼다가 황급히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긍정과 확신의 세계로 환원하는 시인의 내적인 의지가 아름답게 다가온다.아침 해가 늦게 뜨고, 저녁 해가 서둘러 지는 아파트가 싫어서, 하루가 멀다 않고 일어나는 끔찍한 층간소음을 피해서, 자동차들의 경적과 소란스러움이 징글징글해서 도피하듯 찾아든 농촌의 삶이 어느덧 6년 반을 넘어서는 시점이다. 아침 해는 서둘러 오고, 저녁 일몰은 천천히 찾아오는 곳. 새들의 층간소음에 잠을 깨고, 자동차의 경적마저 고요한 공간. 여기서는 외려 도회의 부산스러움과 시끌벅적함이 더러 그리워진다.사람은 언제나 얻을 궁리만 한다. 잃어야 얻고, 얻으면 내놓아야 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모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식자나 평균인이나 다를 바 없다. 겨울의 정점이 왔기로, 봄을 향한 그리움이 짙어질 수 있으며, 근본적인 부정이 있고 난 후에야 비로소 긍정의 세계가 문을 연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아침이다. 언젠가 지나갈, 그리하여 추억으로 남을 코로나19와 온갖 번다한 세상사와 잠시 거리 두고 동주와 함께 천상의 별을 헤아릴 일이다.

2020-12-22

트럼프로 흔들리는 미국

김규종 경북대 교수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출간한 ‘문명의 붕괴(원제 Collapse)’를 읽고 깨우친 바가 많았다.서책의 부제(副題) ‘과거의 위대했던 문명은 왜 붕괴했는가’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체(要諦)를 적절하게 설명한다. 시공간을 입체적으로 사유하고 성찰하는 유일한 생명체로서 인간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기획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그런 까닭에 지나간 날들은 화석화되거나 허울만 남은 빈껍데기가 아니라, 오늘을 인식하고 내일로 인도하는 나침반과 다르지 않다. 8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서책에서 지은이는 사회가 붕괴하는 다섯 가지 요인을 거명한다. 환경 훼손, 기후변화, 적대적인 이웃의 존재, 우호적인 이웃의 지원중단이나 감소, 사회문제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그것이다.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가 세계적으로 7천만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160만을 돌파했다는 우울한 전갈이 들려온다. 급속한 세계화의 물결로 전례 없는 바이러스의 재앙을 경험하고 있는 인류가 어떤 재앙과 마주할 것인지 예측 불가능하다. 사스와 메르스, 에볼라 바이러스의 창궐은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 훼손으로 인한 인재(人災)였다. 코로나19도 다르지 않다.그러나 우리는 기후변화와 환경 훼손이 가져올 폭력적인 결과에 전연 무심하다. 스웨덴의 환경 소녀 그레타 툰베리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가는 많지 않다.트럼프나 브라질 대통령 보우소나루 같은 자들은 툰베리를 모욕하고 무시하기 일쑤다. 집에 가서 친구들과 영화나 보라는 그들의 말투는 매우 공격적이고 안하무인이다.트럼프가 붕괴시키고 있는 것은 지구적인 차원의 환경과 기후문제만은 아니다. 이번 미국 대선과정에서 그가 보여주는 태도는 세계인에게 실망을 넘어 좌절과 충격까지 던져주고 있다.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의 용광로이자 인종전시장이며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양키 아메리카 제국의 민낯과 속살을 낱낱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자신이 패배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소인배 트럼프는 미국 사회의 근간 가운데 하나인 ‘승복(承服)의 문화’를 붕괴시키고 있다. 그는 2000년 대선에서 억울한 패배를 감수하고 승복했던 앨 고어의 전례를 따르지 않고 있다. 고어는 당시에 조지 부시 후보보다 전국적으로 54만 표를 더 얻었음에도 미국의 전통을 따랐다. 트럼프는 자명한 패배를 수용하지 않고 버팀으로써 미국 사회를 분열과 혼란으로 몰고 가고 있다.그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지적을 외면하고 있다. ‘사회문제(대선)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그것이 핵심이다. 미국인들이 이번 대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그것이 미국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살펴볼 일이다.트럼프의 행동이 2024년 대선을 노리는 정치적인 술수인지, 자신을 향하는 법의 칼날을 회피하기 위한 술책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세계 제1의 제국 미국과 미국인들이 감내해야 할 고난은 조만간 현실화할 것이다. 그의 깊은 성찰과 사유를 촉구한다.

2020-12-15

아, 울산대학교!

김규종 경북대 교수바다를 처음 보았던 것은 고2 수학여행 때였다. 동대구역에서 해병대 군용트럭이 우리를 포항에 자리한 해병대 숙소로 데려갔다. 해병대 1일 입소를 통해 호연지기를 키워주겠다는 교장의 의지였다. 그때 처음 갯내음을 맡고 나서 내가 한 일은 바닷물을 맛보는 것이었다. 바닷물은 짰다, 아주 심하게. 내게 바다는 그렇게 다가와서 지금까지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울산에서 3수로 괴로워하던 친구가 보자는 전갈을 보내왔다. 5월의 대학축제를 팽개치고 도착한 울산은 현대의, 현대에 의한, 현대를 위한 도시였다. 현대 직원용 아파트에서 이틀 묵으면서 방어진과 주전 바다를 보고, 경주를 경유(經由)해서 서울로 돌아온 일이 엊그제처럼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런 울산을 지난주에 다시 다녀왔다. 이번에는 목표지점이 울산대학교로 바뀌었다.어느 도시에도 그곳을 대표하는 대학이 있기 마련이다. 울산과학기술대학교(유니스트)가 있지만, 명실공히 울산의 간판 대학은 울산대학교다. 울산광역시에 거점 국립대학교가 없어서 서운하지만, 그래도 울산대학교는 분명 자타가 인정하는 울산의 명문대학이다. 차가운 초겨울 날씨를 뚫고 울산대학교 인문관에 도착한 즉시 ‘뭔가 이상한데’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것일까?!복도와 화장실에서 감촉되는 싸늘한 냉기는 과객의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대학을 방치(放置)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1970년 울산공대를 모태로 시작된 울산대학교 50년 역사가 아련했다. 설립자인 정주영 회장의 배움을 향한 갈망이 근간이 되어 만들어진 울산대학교. 고려대학교 공사판에서 부러운 눈으로 학생들을 보면서 향학의 꿈을 키웠던 청년 노동자 정주영.나는 한국의 유일한 기업가로 정주영을 꼽는다. “임자, 해봤나?” 대형 유조선에 물을 가득 채워 서산 간척지의 악명 높은 물살을 이겨낸 신화의 정주영. 그런 희대의 인물이 설립한 울산대학교가 위축되고 찌그러지고 있는 것이었다. 삼성의 성균관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울산을 대표하는 대학을 이렇게 홀대하는 것은 정말로 뜻밖이었다. 대학의 위축과 몰락은 도시의 위축과 몰락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킨다.위대한 현대의 신화를 학문과 교육에서 뒷받침해야 마땅할 울산대학교가 오후의 햇살 속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하루였다. 오늘날 사립대학의 발전과 융성은 재단의 풍부한 물적 지원과 대학 자체의 자율성과 교수들의 책임감으로 이루어진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 체제를 우리나라 전역에 산재한 사립대학 재단들은 하루빨리 배워야 한다. 대학은 돈 버는 곳이 아니라,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다.너무나도 자명한 이치를 망각한 허다한 재단과 이사장과 총장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미래와 어린것들이 구슬프다. 그들에게 다가올 희망의 광명이 환하게 퍼질 날을 고대하면서 다시 한번 말한다. “현대여, 울산대학교에 투자를 아끼지 마시라!”

2020-12-08

문학은 우리를 위안하는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얼마 전에 정지창 선생이 ‘문학의 위안’이라는 서책을 출간했다. 조금 낯설지만 정겨운 느낌의 제목이 눈길을 끈다. “문학작품은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완화하고 살아갈 힘을 주는 미학적 구조물”이라는 설명이 와 닿는다. 그는 인생은 고해라는 자명한 사실을 위로하고, 삶에 지쳐버린 사람에게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북돋우는 미학적 구조물로 문학을 포착한다.희곡은 물론 시와 소설마저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 20세기 20년대에 문학에서 위안을 구하는 선생의 자세는 놀라운 것이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문학을 벗하는 한국인이 있는지 궁금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화기에 눈과 코와 얼굴을 밀착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홍수에서 느닷없이 문학과 위안이라니?! 이런 담대한 기획의 이면에는 노장의 패기와 경륜이 담겨있을 것은 정한 이치다.3부로 구성된 서책 가운데 나는 1부에 등장하는 ‘고은과 그의 시대’와 ‘백무산이 만난 최제선’을 주의 깊게 읽었다. 박정희의 철권통치가 기승을 부리던 197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결성하여 억압과 폭정에 저항했던 고은 시인의 편력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다. 군부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펜’ 하나에 의지하여 불의하고 부당한 권력과 맞서 싸운 기개(氣槪) 높은 시인은 이제 코로나 블루 만큼이나 우울한 만년과 대면하고 있다.신화는 깨지게 되어있다지만, 이토록 허망하게 하나의 시대가 뭇매를 맞고 소멸하는 것은 참혹한 일이다. 일초 선생의 기행과 괴담은 익히 알려졌으나, 그것의 붕괴가 삽시간에 진행되는 바람에 우리는 거기 담긴 함의마저 제대로 읽지 못하고 눈감아버린 것은 아닌가! 시대가 사람을 낳고, 사람은 시대를 만드는 법!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하는 김상헌의 시조 가락이 가슴을 저민다.1990년 시집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로 노동시의 지평을 넓힌 백봉석. 부모가 지어준 ‘봉석’이라는 이름 대신 무산, 프롤레타리아로 자신을 자리매김한 시인. 그가 찾아낸 실패와 좌절과 회한의 인물 최제우의 본명은 최제선이었다. 어리석은 민중을 구하겠다고 새로 지은 이름 제우(濟愚)처럼 봉석도 노동자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무산(無産)이란 이름을 가진다.“스스로 일어나 스스로를 구하라/ 그리 일어나 스스로 구하는 자 모두 한울이라/자신의 모가지를 허공에 베어버린/선생이여/수운 선생이여/어찌 허공으로 세상을 내리쳤더란 말입니까” (‘최제선’ 부분)백성이 스스로를 구하기를 바랐던 혁명가 최제우는 모가지를 길게 드리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자신의 존재를 넘고,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허공을 가르는 칼을 만들었던 최제우. 하지만 빈틈없는 세상은 그를 살해한다. 최제우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는 백무산의 비애가 바로 곁에 있다. 무너지고 스러진 시인들의 형상에서 작가는 시의 위안과 우리가 떨치고 나갈 동력을 찾는다. 문학은 언제까지 우리를 ‘위안’할 수 있을 것인가?!

2020-12-01

시조와 하이쿠

김규종 경북대 교수하버드 대학교 한국학과에 재직하는 푸른 눈의 교수 말이 가끔 떠오른다. 하버드 한국학과 학생들의 시조 생산량이 한국의 모든 시조 시인의 생산량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시조를 짓는 일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어휘 운용능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단시조(평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의 정형화된 형식을 가진다. 단시조의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다소 길어진 형식이 장시조(사설시조)다.현대시조로 오면 이런 틀이 작동하지 않는다. 1968년 발표된 이호우의 ‘개화’ 같은 작품이 좋은 본보기다. 이런 방식으로 문학 장르는 탄생과 변화-발전 및 쇠퇴와 소멸을 거듭한다. 세상만사 모든 것은 태어남과 사멸을 운명으로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북아 세 나라의 정형화된 시가형식은 각기 다른 양상을 가진다. 5언절구(고시)나 7언절구(고시)의 한시(漢詩)와 우리의 시조, 그리고 일본의 하이쿠(俳句)를 비교해보는 일도 흥미롭다.고려 후기에서 조선전기에 형식이 마련된 시조는 적어도 600년의 역사를 가진다. 일본의 하이쿠는 마쓰오 바쇼(1644∼1694)가 기틀을 세웠으니, 350년 정도의 연륜을 가진다. 5-7-5 17음절을 바탕으로 창작되는 하이쿠에는 계절을 나타내는 어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예컨대 “두견새 운다 지금은 시인이 없는 세상”이라는 바쇼의 하이쿠에서 우리는 봄이라는 계절을 읽는다, 두견새(접동새, 자규)가 주로 우는 시절이 5-6월 봄철이기 때문이다.일본에서 하이쿠를 짓는 사람은 적어도 700만 이상이다. 세계적으로도 하이쿠는 널리 알려진 단시(短詩) 형식이다. 예전에는 하버드에서도 하이쿠를 많이 가르쳤는데, 요새는 한류의 영향으로 시조를 배우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시조의 본고장인 한국에서 시조를 즐겨 쓰는 사람들 숫자는 많지 않다. 시조를 쓰는 일이 대단히 어렵거나 불가능한 작업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 생각한다.시를 짓는 일은 나와 자연과 인연과 시공간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삶이 맞닥뜨린 지금과 여기를 생각하며, 주변의 자연과 관계와 인생 전반을 통찰하는 행위가 시를 짓는 일과 결부된다. 제한된 시공간에서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가는 눈물겨운 일상의 연속선에 인생은 자리한다. 그런 장구한 세월이나 한 대목이 툭, 소리 내며 끊어지는 관계와 사건을 맑은 눈으로 들여다보는 일이 시를 창작하는 행위에 내포돼있는 것이다.요즘처럼 세상 사는 일이 만만찮고 번거로우며 고달픈 시점에는 이런 작업이 여타의 수동적인 행위보다 유용하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의 수용자가 되는 일보다 연필 한 자루 들고, 종이에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정갈하게 표출하는 행위는 내면의 평정하고 안온한 세계와 만나게 한다. 번다한 일상의 소용돌이를 잠시 피해서 자신의 세계로 침잠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를 일이다.누구나 한때는 시인이었고, 누구라도 시인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오늘 밤에는 하늘의 별과 달을 올려다보며 시상(詩想)에 문득 젖어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2020-11-24

왕가위와 ‘동사서독’

김규종경북대 교수‘아비정전’(1990)이나 ‘중경삼림’(1995) 같은 영화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당대 동아시아 영화 관객들의 우상으로 군림한 왕가위. 그는 1995년 ‘동사서독’으로 엇갈린 남녀의 인연과 애증을 무협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한국 관객이 기억하는 그의 대표작은 ‘화양연화’(2000)일 것이다. 21세기 들어 왕가위는 ‘2046’(2004),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2008), ‘일대종사’(2013) 같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그의 영화 가운데 이해하기 어렵다는 ‘동사서독’은 허무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몽환적인 장면묘사가 곳곳에 나오고, 인물들의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긴 했는데, 무슨 영환지 모르겠다고 하는 관객도 적잖다. 왕가위 사단이 대거 등장하는 ‘동사서독’의 고갱이는 부차적인 인물들의 몫이다.해마다 복사꽃 필 무렵 서독 구양봉(장국영)을 찾아오는 동사 황약사(양가휘). 그는 절친인 맹무살수(양조위)의 아내 도화(유가령)을 사랑한다.서독은 고향 백타산에 두고 온 여인 자애인(장만옥)을 잊지 못한다. 그의 형수가 되어 아이까지 있지만, 자애인 역시 서독을 그리워한다. 객잔에 모룡연(임청하)이 찾아온다. 모룡연은 황약사와 술을 마시며 담소하다가 어느 사품엔가 그의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망각하는 황약사.사막에 자리한 서독의 객잔은 이들 등장인물이 모여들어 각자의 사연과 인연을 풀어놓는 간이역 같은 공간이다. 이름만으로도 관객의 심장을 뛰게 하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 ‘동사서독’. 그래서 관객은 감독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잘 포착하지 못한다. 배우들의 광휘가 너무 강렬하기 때문이다. 배경에 취해버리는 어리숙한 관객의 면모가 약여(躍如)하다.그들을 전경(前景)에 두고 홍칠(장학우)과 그의 아내, 당나귀 소녀(양채니)가 등장한다. 동생의 원수를 갚고자 하지만, 가진 것이 달걀 몇 알과 당나귀밖에 없는 소녀. 고향에서 남편을 찾아와 함께 가기를 고집하는 촌스러운 아내를 둔 살수 홍칠. 그는 소녀의 원한을 풀어주고 아내와 함께 사막을 건너 길을 떠난다.오래전에 자애인이 듣고자 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채 고향을 등진 서독은 홍칠이 떠난 다음 독백한다. “오래도록 사막에 살았지만, 나는 사막을 보지 못했다.” 서독의 독백에 사태의 핵심이 있다. 자애인이 죽은 다음 객잔을 불태우고 표표히 길 떠나는 서독.우리는 화려하고 은성(殷盛)한 사랑 이야기에 넋을 놓고 영화에 빠져든다. 왕가위는 위장막에 은폐된 사랑의 본질을 말한다. 당신을 좇는 인연에 따르라는 단출한 가르침이다. 소녀의 애끓는 호소를 물리치고, 아내와 함께 장삼이사의 길을 가는 홍칠.아마 그것이 왕가위가 바라보는 사랑의 종착점일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엇갈리고 애달파하면서 고통과 한탄, 연민과 그리움으로 괴로워하고 있는가! 그것을 놓아버리라고 왕가위는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붙잡을 수 없는 계절이 한사코 겨울로, 겨울로 달려간다.

2020-11-18

전태일

김규종 경북대 교수“정말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괴로움의 연속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다리미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1967년 3월 17일 전태일이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함께 그를 옥죈 것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근로기준법과 업주들의 부당노동행위였다. 청계천에 있는 의류공장 보조 재단사와 재봉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동료 여공들의 가혹한 노동조건과 부당해고에 맞선다. 그는 1969년 6월 평화시장에 노동운동조직 ‘바보회’를 결성한다. ‘바보회’는 1970년 9월 ‘삼동회’로 거듭나면서 노동운동의 거점이 된다.1970년 11월 13일 전태일과 ‘삼동회’ 회원들은 ‘근로기준법화형식’을 결행하려 한다. 평화시장 의료공장 업주들과 경찰이 이들의 시위를 저지하자 전태일은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지른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하는 구호를 외친 전태일은 병원으로 이송되나 끝내 절명한다.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 일이다.전태일의 분신은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일대 전환점이 되었으며, 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부당하고 불의한 세상에 죽음으로 항거한 그의 투쟁은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4)을 잉태하는 밑거름이 된다.“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밋빛 헛된 꿈을 싹둑 잘라/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미싱을 타고 장군같이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 ‘시다의 꿈’ 부분전태일이 분신한 지 15년 세월이 흘렀으되, 변하지 않는 노동조건과 생활고. 박노해는 “파리한 이마 위로 새벽별 빛난다”로 시를 맺으며 다가올 날들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는 신자유주의로 전환하여, 오늘날 상당수 노동자가 외주기업 하청 노동자로 전락한다. 그 결과 지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173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해마다 1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죽음의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 세상은 무너지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사람이 사람값을 온전하게 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재벌과 대기업을 위한 일회용품이 아니라, 세상을 구성하는 소중한 일원으로 수용될 때만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선진국 대열에 오를 것이다.전태일이 분신한 지 50년 세월이 흘렀다. 반세기 동안 우리가 이룩한 성취도 대단하지만, 그 뒤에서 소멸해간 숱한 생명과 인연과 관계를 생각할 때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그것을 어린것들에게 넘겨주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인 과제가 아닌가 한다.

2020-11-11

고독사

김규종경북대 교수코로나19가 계속되면서 고독사(孤獨死)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는 전갈이 들린다. 고독사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자택에서 사망한 사람이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 발견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가족이나 친구는 물론, 이웃과도 왕래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홀로 임종을 맞이하고, 그 시신마저 뒤늦게 발견되는 고독사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해마다 약 3만 명이 고독사한다고 알려져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부 차원에서 고독사 숫자를 집계하지 않는다.고독사 통계 대신 무연고(無緣故) 사망자 집계를 내고 있으며, 지자체가 지역의 고독사를 관리하는 형편이다. 2012년 749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2018년에는 2천549명으로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코로나19로 나빠진 경제상황과 맞물리면서 증가추세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일본에서도 이른바 ‘잃어버린 20년’ 이후에 가족해체와 무연고자, 비혼자와 독신자가 급증하면서 고독사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비혼자와 미혼자,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가족해체 등이 급속하게 진행됨으로써 고독사 숫자의 증가는 불가피한 사회현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일본의 20대 여성 고지마 미유가 펴낸 서책 ‘시간이 멈춘 방’을 읽으면서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다. 만22세에 유품정리와 특수청소 업무를 시작한 작가는 고독사한 사람들이 남긴 물건을 본떠 미니어처를 제작하여 고독사의 실체를 알리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고독사 가능성은 열려 있고, 죽음은 불가항력의 자연현상임에 주목한 것이다.젊은 나이에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성숙한 자세에 감동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낀다.미니어처 제작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하는 질문에 대한 지은이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모든 이가 고독사와 자기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되면 그만두지 않을까 싶다.” 고독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현실임을 모두가 인식하게 될 때까지 고독사 관련 미니어처 제작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지난 10월에 문재인 대통령은 “기초 생활 수급자가 고독사의 절반을 넘고 있으며, 실태를 더 면밀하게 살피고 필요한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고독사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최하위계층 사람들을 따사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제도개선을 통한 원조방책을 세우는 일은 위정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본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2020년 3월 국회는 ‘고독사 예방과 관리에 관한 법률’을 마련했다. 이 법률은 사회문제로 대두된 고독사의 개념 정리와 실태 조사, 그리고 고독사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위한 제도 기반을 준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독사가 바다 건너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우리 앞에 제기된 시급한 사회문제라는 엄중한 상황인식을 공유함으로써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고독한 죽음이 하루빨리 해결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0-11-04

가짜편지

김규종 경북대 교수며칠 전 삼성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 숱한 화제를 뿌리며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했던 인물.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이 “이제 권력은 시장(市場)으로 넘어갔다”고 일갈했을 때, 시장이 뜻하던 바는 삼성. 삼성 총수가 6년 넘도록 투병하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이 10·26과 하루 차이라는 우연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절대권력도 엄청난 돈도 결국에는 죽음 앞에 무의미해진다는 자명한 사실.그들도 사랑 때문에 밤을 새우거나 가슴이 아파 몇 날 며칠 두문불출 괴로워한 일이 있는지, 궁금하다. 18년 권력을 휘둘렀던 전직 대통령과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면서 이 나라 삼척동자도 아는 재벌총수. 그들이 사랑하는 여인으로 번민의 밤을 하얗게 밝혔을지, 그것이 알고 싶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김수영 시인처럼 나는 왜 사소한 일에 관심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그의 죽음에 즈음해서 가짜편지가 시중에 떠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가 손수 썼다는 편지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검진 받아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며”로 시작하는 장문의 편지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양보하고 베푸는 삶을 설교하는 대목도 이채롭다.사람의 가치가 비싼 옷과 자동차와 집이 아니라, 건강한 몸이라고 설파하면서 만족할 줄 알라고 편지는 충고한다. 중간 이후는 스스로 자책하면서 늙고 젊은 사람들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무한한 재물추구는 나를 그저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어요. 내가 한때 누렸던 돈, 권력, 직위가 이젠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뿐….”자신의 성취와 소유를 이토록 강렬하게 부정할 줄 아는 비판능력의 소유자! 편지를 읽으면서 곳곳에서 나는 전율했다. 그리고 ‘좋아요’를 눌렀다. 젊은이들은 너무 황망히 서둘러 살지 말기를, 나이든 축들은 행복한 만년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라는 가르침. 내가 알던 재벌총수 이건희와 너무도 다른 모습에 당혹스럽기도 했다.삼성은 편지가 가짜라고 확인한다. ‘에휴, 그러면 그렇지!’ 하는 아쉬움과 허망함이 동시에 몰려온다. 숱한 불법 탈법 무법 초법(超法) 위법을 감행하면서 거대재벌 총수로 등극한 사람이 저리 자상하고 따뜻한 인물이었다니, 하는 희열의 순간은 아주 짧았다. 만일 우리나라 유수의 재벌 가운데 누군가 저런 편지를 유훈으로 남기면서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빌 게이츠 같은 사람 말이다.가짜로 드러났지만, 많은 사람이 감동과 기쁨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도록 한 편지는 오래도록 인구에 회자(膾炙)될 듯하다. 우리의 확증편향과 선택적 기억을 단박에 날려버리는 청량한 한줄기 소낙비 같은 편지였으므로! 가짜도 이런 가짜는 닦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나뭇잎처럼 말이다. 하나의 시대가 조용히 저물고 있다. 21세기가 흘러간다, 붉게 물든 단풍잎처럼!

2020-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