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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중년에 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나이 지긋한 축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가운데 하나가 ‘낭만에 대하여’ 일 것이다. 환하게 빛났던 한때를 추억하며 ‘다방’에서 중년 마담이 따라주는 ‘도라지 위스키’를 홀짝거리는 후줄근한 가수의 표정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지는 노래. 100세 시대라 불리는 요즘 50-60 나이대의 사람들을 신중년이라 부른다. 예전의 40-50대 정도와 비슷한 정열과 체력과 욕망으로 무장한 신중년. 그들을 노인이라 부르면 서운해하리라.인생의 절반을 살았고, 나머지 절반으로 달려가는 신중년. 이 무렵 누구나 생각이 많아진다. 젊어서 한칼 했던 사람일수록 뭔가 이루려는 의욕과 투지로 넘쳐난다. “나는 아직 한창이야, 내가 뭐 어때서! 이 정도면 쓸만하지, 안 그래!” 거울 들여다보면서 신중년 사내들은 혼잣말한다. 신중년 가운데 일부는 퇴직하여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이 되기도 하고, 일부는 아내 눈칫밥 얻어먹으며 산이나 공원을 떠돈다.신중년에 필요한 작업은 살아온 삶의 내력을 돌아보는 일이다.인생에 목적이나 의도는 없겠으나,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온 날들인지, 총체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은 남은 생을 요긴하게 살아가는 데 적실한 전제다. 주역 ‘계사편’에 “척확지굴 이구신야(尺8816之屈以求信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그것을 펴기 위함이다, 하는 뜻이다.성찰 없이 전진만 하는 삶은 피 끓는 청춘의 몫이지, 피가 식어가는 신중년의 몫은 아니다. 젊은 날 신중년을 매혹하고 열에 들뜨게 했던 오욕칠정(五慾七情)과 거리 두면서 세상과 사회를 돌이키는 작업이 소중하다. 그렇다 해서 반드시 이성적이거나, 매사에 사려와 냉정 그리고 신중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신중년에게도 어린아이 같은 맑고 투명한 치기(稚氣)와 장난스러움 그리고 패기가 요구되기도 한다.문제는 대다수 신중년이 너무 차갑고 계산적이거나, 반대로 너무 철이 없고 이기적이라는 데 있다. 양자의 조화로움을 유지하는 신중년은 나이를 먹어도 쉬 늙지 않을뿐더러, 고유한 매력으로 주위를 환하게 한다. 그러하되 신중년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지 않음을 직시하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다.생명 가진 모든 것은 소멸한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철칙(鐵則)이다. 주위를 돌아보시라. 얼마나 많은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성업하고 있는지. 그곳에 갇혀있는 수많은 노년도 한때는 신중년의 시기를 거친 분들이다. 누구도 그곳에 포획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 허여한 일정한 육체와 정신을 탕진하고 나면, 어쩔 도리없이 여생을 거기서 보내야 한다.그곳에 가기 전에 골똘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의 삶은 어떠했으며,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관계와 인연은 어떻게 정리하고, 몸과 마음은 또 어떻게 갈무리할 것인지.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 차지다.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을 깊이 사유하는 신중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0-10-21

행복을 찾아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벨기에의 시인이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아동극 ‘파랑새’는 행복을 찾는 틸틸과 미틸 남매 이야기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찾아온 마술 할멈이 건넨 녹색 모자를 쓰고 파랑새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얘기다. 병을 앓고 있던 할멈의 딸이 나으려면 파랑새가 있어야 하기에 그런 부탁을 한 게다. 남매는 추억의 나라, 밤의 궁전, 행복의 궁전, 미래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파랑새를 구하지만, 마침내 자기들 집에서 파랑새를 찾는다.많은 사람이 삶의 목적을 행복에서 찾는 세상이다. 본디 삶에 목적이 있을 수 없다. 운명처럼 주어진 삶의 조건을 의식하면서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살아갈 뿐. 더욱이 행복은 추상적이어서 계량하기도 힘들거니와, 사람마다 체감하는 영역과 강도도 다르다. 그렇지만 우리는 행복을 입에 달고 산다. 왜 그럴까?!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부탄 영화 ‘교실 안의 야크’를 보고 나서 다시 행복을 떠올렸다. 영화는 20대 중반의 게으른 초등학교 교사 ‘유겐’을 주인공으로 진행된다. 부탄에서는 모든 교사와 의사가 국가 공무원이며, 무상교육과 무상의료가 제공된다. 사범대학을 마치면 의무적으로 5년 동안 교사로 근무해야 한다. 유겐이 마지막으로 발령받은 곳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외진 루나나 초등학교다.해발 4800미터에 위치하고, 56명 인구에 9명의 학생을 가진 루나나. 영화는 루나나에서 유겐이 맞닥뜨리게 되는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사건과 사람들을 잔잔하고 따뜻하게 풀어간다. 무엇보다도 마을 처녀 살돈이 부르는 ‘야크의 노래’와 노래에 얽힌 사연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루나나 사람들에게 우유와 고기, 털은 물론이려니와 연료로 쓰이는 똥까지 제공하는 야크. 야크는 그들에게 툰드라 유목민의 순록과 같은 동물이다.루나나 사람들이 가장 슬퍼할 때가 야크를 잡는 날이라 한다. 티베트로 팔아넘길 야크를 잡던 촌장이 가장 아끼던 야크를 죽여야 했던 사연을 품은 야크의 노래. 살돈은 마을에서 가장 늙고 순한 야크 ‘노르부’를 유겐에게 주고 잘 보살피라고 한다. 야크를 교실에 데려와 학생들과 함께 있도록 하는 유겐. 마을과 사람들에게 동화되면서 유겐은 자신이 목동이라 생각하지만, 촌장은 그를 야크라고 말한다.교실 안의 야크는 진짜 야크 ‘노르부’이기도 하고, 루나나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면서 존중과 사랑을 받는 유겐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겐은 겨울이 오기 전에 루나나를 떠나고 그토록 열망한 호주로 이주한다. 시드니 어느 술집에서 ‘야크의 노래’를 부르는 유겐. 우리는 유겐이 언젠가 루나나로 돌아가리라고 유추할 수 있다.촌장의 말이 폐부를 찔러온다. “부탄이 행복지수 세계 1위라는데, 젊은이들은 행복이 외국에 있다고 생각해서 여길 떠나요.” 행복을 찾아 떠난 틸틸 남매나 유겐이나 행복이 어디 있는지 훗날에야 깨닫게 되는 셈이다. 여러분은 어디서 행복을 찾고 있는지, 궁금하다. 행복은 정녕 우리 곁에, 우리 안에, 우리나라에 있는 것일까?!

2020-10-14

세계 한인의 날

김규종경북대 교수지난 10월 5일은 ‘세계 한인(韓人)의 날’이었다. ‘세계 한인의 날’은 거주국 내 재외동포의 권익신장과 역량강화, 한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 고양, 동포들의 화합 및 모국과 동포 사회의 호혜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제정되었다. 세계 곳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한인 동포의 숫자는 700만 정도로 추산된다. 대구와 부산, 울산의 인구를 합친 정도의 한인들이 디아스포라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오랜 세월 한반도를 거점으로 살아온 한국인은 특정한 시기와 인물을 제외하면 영토확장을 위한 정복 전쟁에 나서지 않았다. 전쟁은 숱한 인명 살상과 참화를 불러온다. 우리는 대륙(중국)과 해양(일본)으로부터 900여 차례 침략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대륙이나 해양으로 전쟁하러 나간 경우는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쓰시마 정벌과 나선정벌,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는 베트남전쟁 정도가 아닐까?!한인들의 외국 이주는 크게 네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 시기는 1860년대 이후부터 1910년 사이다. 조선왕조의 가혹한 수탈과 억압을 피해 노동자와 농민들이 중국과 러시아, 하와이, 멕시코, 쿠바 등지로 이주한다. 두 번째 시기는 일한합방으로 국권을 상실한 1910년부터 8·15해방에 이르는 1945년까지다. 일제의 수탈을 피해 농민과 노동자들은 만주와 일본으로, 독립지사들은 중국과 러시아, 미국 등지로 떠나갔다.세 번째 시기는 1950년대 초부터 1962년까지의 시기로 전쟁고아, 유학, 결혼 등의 이유로 대부분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했다. 네 번째 시기는 정부의 이민정책이 실행된 1962년부터 지금까지다. 대표적인 본보기가 분단 서도이칠란트로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한 일이다. 1963년에서 1977년까지 파견된 광부가 7천936명, 간호사가 1만1천57명으로 2만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머나먼 이역(異域)으로 떠나갔다.쾰른과 베를린에서 공부하면서 한인 간호사와 광부들과 만나면서 디아스포라의 실체를 경험했다. 그중에서도 환갑나이에 보훔에서 현역으로 탄을 캐던 초로의 광부와 ‘장기수후원회’를 열정적으로 돕던 쾰른의 간호사가 기억에 남는다. 1997년 문민정부가 ‘재외동포재단’을 설립하고, 1999년 국민의 정부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하면서 재외 한인들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이런 선행작업에 기초하여 참여정부는 2007년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10월 5일을 ‘세계 한인의 날’로 정하고 법정기념일로 제정한다. 아울러 10월 5일을 전후로 한 10월 3일 개천절과 10월 9일 한글날에 이르는 기간을 ‘재외동포주간’으로 설정-기념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부는 케이팝, 케이방역, 영화와 드라마, 방탄소년단 등의 선도적인 수용자인 해외 한인들의 성실한 삶에 고개 숙인다.그러하되 ‘재외동포주간’ 첫날에 ‘개천절 집회’를 강행하는 자들과 경찰의 실랑이는 우울한 풍경이었다. 처참한 코로나19 상황에 정치적 목적을 탐하는 자들의 야욕이 아프게 다가온다.

2020-10-06

스가 요시히데 내각 출범을 보면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9월 16일 아베 신조 후임으로 스가 요시히데가 일본의 99대 총리로 취임한다. 그는 2014년부터 지난 9월까지 관방장관을 역임하면서 아베의 하수인 노릇을 한 인물이다. 총리를 포함한 내각 인사를 보면 전임 아베 정권의 인물 8명이 고스란히 유임되었다. 스가는 아베의 동생을 방위상에 임명함으로써 아베 정권의 기조를 강화하는 태도를 보인다. 아베가 지금까지 보인 반한정책 철회는 당분간 없을 듯하다. 일제 강점기 징용공 관련 대법원판결 불복과 위안부 문제 처리에서 문재인 정부는 원칙적인 입장을 천명해왔다. 하지만 자국에 유리한 결과를 고집한 일본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는 강경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작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가는 이런 정책을 견지할 것이라는 평가가 주조다.일본 내정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 우려되는 바가 적잖다. 더욱이 일본은 중국과 함께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아닌가?!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더라도 일본은 한반도의 명운과 긴밀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663년 백강 전투와 1592년 임진왜란, 1895년 을미사변,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는 모두 일본과 관련된 사건이다.올해는 일본 제국주의 압제에서 해방된 지 75주년이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 최빈국에서 3050클럽에 가입하는 쾌거를 이뤘고, 1998년에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른바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위상이 날로 웅혼해지는 시점이다. 반면에 일본은 2010년 중국에 밀려 세계 경제순위 3위로 내려앉은 후 과거의 영화(榮華)를 추억으로 간직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패전국가에서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던 일본의 추락은 숱한 평가와 해석을 낳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일본의 정체(停滯)를 말하고 싶다. 일본 사회의 역동성이 약화하여 미래를 추동하거나 견인할 세력이 사라진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온전한 정권교체는 2009년 8월 30일 민주당이 자민당을 대신한 2년의 경험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일본은 자민당 일당 독재라는 말이 나와도 유구무언이다.어느 나라든 대안세력이 존재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야당이나 시민사회단체라 부른다. 수권 능력을 갖춘 실력 있는 야당과 정부의 실정과 부패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시민사회의 존재가 나라의 명운을 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무력한 야당과 미약한 시민사회로 인해 미래를 열어나갈 구심력과 추동력을 스스로 상실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내각은 이것을 깊이 성찰하고 사유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건강한 이웃이자 경쟁하는 국가로 재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선량하고 능력 있는 이웃이야말로 커다란 선물 아니겠는가?!

2020-09-23

누가 변화를 두려워하랴?!

김규종 경북대 교수언젠가 솔깃한 말을 듣고 실천에 옮긴 적 있다. 바라는 소원이 있으면, 마음속에 가두지 말고 날마다 글로 쓰라는 것이다. 간절한 소원을 위해 뛰어내리는 ‘와호장룡’과 달리. 혼잣말로 소원하는 것보다 소원을 글로 쓰면 손과 눈과 마음이 함께 움직여서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소원을 쓰려고 만년필도 사고, 공책도 준비했다. 그날부터 최소 3년 동안 날마다 소원을 썼다. 드물게나마 잊어버린 날이 있지만, 꾸준하고 진지하게 소원을 쓰고 또 썼다.소원은 소박한 것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문필가!’ 고작 12글자로 이루어진 소원을 가졌던 날들을 돌이켜본다. 20대 청춘의 나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로 시작하는 노래를 즐겨 부르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다시 거침없이 흘러도 검은 머리에 백발 돋아나도 사람 사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저 돈 많은 사람 숫자만 늘었을 뿐.그러던 어느 날, 소원 쓰기를 그만두었다. 그것은 도달할 수 없이 아스라한 저 너머의 신기루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세상이 변해야 한다. 그런 세상은 어느 한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왜냐면 변화가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가들은 언제나 변화와 개혁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변화를 말하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이율배반이다. 나이 먹으면서 깨닫게 된 대목이다. 세상을 향한 손가락질과 비난의 눈길과 매서운 말길을 거두어야 한다는 것! 이토록 자명하고 단순한 이치를 깨우치지 못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사람을 한탄하고 시대를 나무랐던 자신에게 되묻는다. “너는 변하고 있는가?!” 고개를 흔들면서 자탄(自嘆)한다.자신의 정의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당성을 믿는 사람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거처(居處)하는 세상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돌처럼 굳건하다. 지금과 여기에 만족하는 사람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항상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진 것, 지킬 것, 누릴 것 많은 사람은 변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보수와 수구(守舊)는 변화와 거리를 둔다. 변화는 진보와 혁명의 편에 선 자의 전유물이다.세상과 다중(多衆)에게 향했던 손가락으로 내 가슴과 머리를 가리키면서 중얼거린다. ‘너는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이유는 너무 자명하다. 나는 하나의 타자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고유한 사고방식과 습관과 가치관, 역사의식과 행동방식이 있다. 그것은 석영이나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게 흉중에 자리한다.어떻게 바꾸겠는가?! 그것을 바꾼다 해서 전혀 다른 꿈같은 세상이 열리기라도 한단 말인가?!세상을 바꾸려 했던 시절을 보내니 남은 명제는 단출하다. “그래도 나는 변할 것이다!” 변화를 향한 더운 열망이 오늘도 나를 재촉한다. 벌개미취가 봄처럼 환한 아침나절 지나간다!

2020-09-16

이리나를 생각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1990년 10월 3일 동서 도이칠란트가 재통일되면서 남북의 분단상황이 더욱 괴롭게 느껴지던 무렵의 이야기다. 유학의 피로와 염증이 있던 데다가, 육체적·정신적 소모가 상당해서 일상의 하중을 견디기 어려웠다. 항시적인 피로와 체중감소로 집 근처 내과를 찾았다. 50대 초반의 여의사가 반가운 얼굴로 맞이한다. 루마니아 태생이며 ‘이리나’라는 이름을 가진 의사. 체호프의 ‘세 자매’에 등장하는 막내딸 이리나가 생각났다.무슨 일로 왔는지 물으면서 차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면서 나의 신상 하나하나를 캐묻기 시작한다.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상당히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야경꾼으로 일하고 있는데, 낮과 밤을 바꿔 살아야 하는 일이어서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가깝게는 부모님의 건강 이력부터 멀게는 조부모에 형제들까지 소급해가면서 요모조모 캐묻는 이리나의 진지함과 성실함에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1시간도 넘게 걸린 질의응답을 거쳐 그녀는 일주일 후에 자신이 지정한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당시 나는 유학생 신분으로 한 달에 1만5천원 정도를 의료 보험비로 지출했다. 물론 보험은 3인 가족 전원에게 적용됐다. 종합검진을 받고, 약속한 날짜에 이리나의 병원을 찾아갔다.그녀는 간단한 결론을 준비하고 있었다. 양자택일하라는 것이었다.“학위논문을 포기하거나, 야경 일을 관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에 큰 사달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야경 일을 내려놓는 것이 유일한 출구였다. 그러나 안양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 그것도 선택 밖의 일이었다.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이리나에게 물었다. “무슨 방도가 없을까요?” 하는 질문에 그녀가 소견서를 써주겠다고 한다.소견서의 골자는 나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야간근무를 주간근무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리나와 나의 두 번째 대면은 30분 정도로 끝났다. 소견서 덕분에 나는 야경(夜警)꾼이 아니라, ‘주경(晝警)’꾼이 될 수 있었다. 야경으로 학업을 유지하던 주변의 유학생들은 그런 나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대목은 다른 곳에 있었다.환자 한 사람과 1시간 이상 의료상담을 하면서 도이칠란트 의사들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는 것일까?! 그것이 정말 궁금하고 신기했다. 지금도 한국인 의사들은 환자 1인에게 5분 이상의 시간을 허여하지 않는다. 내원자가 많을수록 의료비는 올라가고 그것이 고스란히 의사 개개인의 수입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아주 특별한 가정의나 부자들의 개인 전담의가 아닌 담에야 어떤 한국인 의사가 환자에게 1시간의 상담과 진료시간을 베풀고 있는가?!그런 도이칠란트조차 의대 입학정원을 5천명 이상 늘리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인구 천명당 의사 수가 4.6명이라는 도이칠란트의 의사들이 의대 정원확대를 반긴다고 한다. 우리는 2.3명 혹은 2.6명이라 한다. 한국의 의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2020-09-09

파업하는 의사들에게!

김규종경북대 교수코로나19가 창궐하는 시점에 광화문 광장에 모인 정계와 종교계 인사들이 목청껏 독재를 주장한다. 진정한 독재자들과 학살자들이 권좌에 앉아 있을 때, 저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던가?! 세계적인 유행병의 추상같은 위협 아래 근근이 살아가는 시민들 보란 듯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한다. 의사들은 이것을 ‘파업’이라 부른다.파업은 사회적 약자가 노동조합 같은 조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집단행동을 가리킨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과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권이 제법 신장한다. 군부독재 시기에는 생각지도 못한 노조가 만들어지고, 노동자들의 인권과 권익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높아졌다.그러나 노동현장에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보장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국민의 정부’를 자처한 김대중 정권은 2000년 6월 3천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롯데호텔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한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파업 당시 대테러 임무를 담당하는 경찰특공대를 파업 현장에 투입하고, 다목적 발사기, 테이저건 등 대테러 장비도 사용한다. 경찰은 헬기 6대로 유독성 최루액 20만ℓ를 노동자들에게 투하하기도 했다.반면에 2000년 봄 ‘의약분업’으로 촉발된 의사들의 파업에 대해 국민의 정부는 전전긍긍으로 일관한다. 의사들은 2000년에만 최소 세 차례의 전국규모 파업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찰의 물리력이나 폭력이 행사됐다는 기록은 없다. 국가 공권력이 사회적 약자와 정치-경제적 강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본보기다. 오늘날 의약분업 체계를 부정하는 의사는 없다. 필수 불가결한 정책이었기 때문이다.정부가 의료 서비스의 지역 불균형 해소, 필수의료 강화,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8월 21일부터 대학병원 전공의와 전임의가 파업을 시작했다. 의사들은 9월 7일부터 전면파업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 2000년 봄날 경북대 도서관 앞에서 마주친 의대생이 생각난다.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전단지를 내민 학생에게 나는 화를 내고 말았다.“1980년 서울의 봄과 대구의 봄에, 1987년 6월 항쟁 때 자네 선배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인의협(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을 알고 있나?! 파업은 사회적 약자가 강자에게 생존권을 주장하는 거야.” 의사의 파업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확연히 다르다. 노동자는 자신의 지위와 목숨을 걸고 파업하지만, 의사의 파업은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의사는 환자와 함께해야 한다. 정부의 의료정책이 성에 차지 않아도 최고 지성인답게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해야 한다. ‘제네바 선언’에 기초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가운데 한 문장만 인용한다. “종교나 국적, 인종이나 정치적 입장,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 그만하고 환자 곁으로 돌아오시라!

2020-09-02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김규종 경북대 교수8·15 광복절을 빙자해서 반사회적인 ‘건국절’ 행사가 거행됐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부르는 일군의 무리가 광화문 광장에서 전광훈 목사를 선봉에 내세워 문재인 독재 운운하면서 나라 곳곳에서 모여들었다. 경찰 추산으로 2만, 주최 측 추산 4만이니까, 대략 3만을 참가자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대개 60대 이상의 나이든 축들이 성조기와 태극기, 게다가 일장기에 욱일기까지 들고 ‘문재인 아웃’을 외쳤다. 참으로 해괴한 풍경이다.광복절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후 300만에 이르는 활동가들의 피어린 독립운동을 발판으로 35년 만에 얻어낸 기쁜 날이다. 가슴 벅찬 감동의 날에 일장기와 욱일기를 흔들어대며 현 정부를 독재라고 외쳐댄 저들은 대체 누구인가?! 일장기와 욱일기를 흔들어댄 것은 일제 강점기의 토착 왜구들조차 꿈꾸지 못한 짓 아닌가. 그런 치 떨리는 짓을 당당하게 해대는 저들의 혈관에는 어느 나라 국민의 피가 흐르고 있는가!이른바 ‘광복절 집회’는 소위 보수 기독교 계열 종교인들과 전·현직 미래통합당 의원들과 극우 유튜버가 합세해서 조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일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면면은 다음과 같다. 차명진, 홍문표, 민경욱, 김진태, 박찬종, 김경재 등 전·현직 미래통합당 의원들과 전 자유한국당 당 대표 법무특보 강연재,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 신혜식 극우 유투버 등등.문제는 또 있다. 코로나19의 전국적이고 전방위적인 전파에 있다. 사랑제일교회와 관련한 코로나19 확진자가 875명에 달하는 상황인데도 일부 신도의 도주와 검거, 검진 거부에서 나타난 반사회적인 행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미래통합당은 8월 16일 대변인 명의의 구두 논평에서 “정부-여당은 광화문 인근에서 있었던 수많은 사람이 정부의 실정을 비판한 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국민이 가장 우려한 코로나19 확산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 방역에 동참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한쪽에서는 비상대책위원장이 뙤약볕 내리쬐는 망월동 국립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다른 한편에서는 극우적인 행태를 두둔하는 모순을 보인 셈이다.권력을 잡으려면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건전보수에서 극우까지 모두 포괄하는 보수정당은 지구상에 없다. 그것은 극좌에서 건전진보까지 전부 포괄하는 진보정당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권력을 얻으려면 무엇이 급선무고, 무엇이 해서는 안 될 것인지 앞뒤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 양손에 떡 들고 두 개 다 먹으려다가는 모두 잃기 마련이다. 대상을 정확히 선별하여 제대로 대응하고 행동해야 한다.지금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전대미문의 난감한 상황에서도 권력만을 탐하는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행태는 국민의 비난을 받기 쉽다는 점, 그것을 간과하지 않기 바란다.

2020-08-26

종교와 과학

김규종경북대 교수K-방역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찬사의 대상이었던 대한민국에 코로나19 대유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8월 4일부터 17일까지 2주 동안 신규 확진자 1천126명 가운데 65%에 이르는 733명이 지역 집단감염 사례로 보고되고 있다. 그동안 해외유입 사례는 190명 17%에 불과하다. 8월 12일 서울시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사랑제일교회 관련 확진자는 19일 낮 12시 기준 623명이다. 대구·경북의 최근 사랑제일교회 방문자는 80명이며, 대구에 주소를 둔 시민은 33명이다. 이 가운데 서구와 달성군 주민 2명이 확진자로 드러났다. 경북도민 가운데 교회 방문자는 47명이며, 상주, 포항, 영덕 거주자 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8·15 광복절 집회에 대구·경북에서는 최소 수백에서 최대 1천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집단감염이 가시화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보수 기독교 단체로 알려진 일군의 교회가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어기면서까지 집단감염을 자초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과학의 발전과 비호 없이 종교의 융성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1348년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은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되었다. 신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려고 유럽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방법은 유대인학살과 마녀사냥이었다. 1450년부터 1550년까지 독일에서만 10만 명의 마녀가 화형을 당한다.신의 은총과 사랑으로 흑사병을 극복하려고 교회에 모여 기도했던 숱한 사람이 집단감염으로 죽어 나갔고, 그 후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은 잘 알려진 바다. 과학은 자신의 이론이나 방법론이 잠정적이고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 예상하며, 그것이 완벽하거나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에는 나만 옳다거나 나만 진리라고 주장하는 도그마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은 관찰과 실험, 반복-검증된 결과를 토대로 잠정적인 진실을 주장한다. 종교는 예배 공간과 교리 그리고 개인의 도덕률을 전제로 성립한다. 모든 종교에는 나름의 예배 공간이 있다. 그곳은 대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유산으로 남겨져 있다. 그런데 종교의 교리는 영원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차이를 드러낸다.개인의 도덕률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지만, 그 고갱이는 공동체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특정 종교집단의 존립과 번영을 위해 다수 공동체가 희생을 감내하고 죽음조차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앙의 자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타자의 파멸과 죽음을 불러온다면 그것은 철회해야 마땅하다.종교와 과학은 인간 생활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과학에 기초한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고려하면서 이제 종교도 타자와 공존하는 법을 심도 있게 숙고해야 할 때다.

2020-08-19

사학비리와 공영형 사립대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7월 14일 한국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한국 대표 사학 연세대의 비리가 교육부 감사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세대 송도캠퍼스 전 부총장의 딸과 연루된 대학원 입시비리를 비롯해 학사비리와 회계비리가 민낯을 제대로 드러냈다. 이른바 명문사학 연세대의 비리가 이 정도라면, 여타 사립대학은 어느 수준일까, 모골이 송연(悚然)할 지경이다. 이참에 한국의 고질적인 사립대학 문제를 심도 있게 성찰하고, 대안을 마련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한국은 대학교육을 내팽개침으로써 전국에 수많은 사립대학이 세워진다. 오늘날 대학생들의 80%가 사립대학에 재학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립대학의 원조라 불리는 미국의 두 배 수준이다. 국가는 사립학교법인 설립자가 사회에 재산을 환원한 것으로 생각하여 설립자에게 각종 세제 혜택과 사학 경영권을 보장했다. 하지만 설립자들은 대학을 이윤 창출의 도깨비방망이 혹은 화수분으로 생각하여 사학비리가 양산되었다.사학비리가 창궐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70년 장구한 세월 이어진 부패의 구조화와 조직화가 문제다. 사학비리는 역사화-체계화되어 가보나 훈장처럼 대물림되고 있다. 둘째로 2005년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이 개정한 사립학교법을 2007년 한나라당(미래통합당)이 개악(改惡)함으로써 사학의 효율적인 관리가 매우 부실하다. 셋째로 사학의 이해당사자들이 정계, 관계, 재계, 언론계, 종교계 등에 포진하여 부정부패 카르텔을 전방위적으로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립대학의 부정부패를 뿌리째 끊어내려면 국가가 주도하는 감사의 상설화가 절실하다. 그와 함께 사립대학을 건전하게 육성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영형 사립대학은 여기서 출발한다. 사학을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시의적절한 방안이 공영형 사립대학이기 때문이다.공영형 사립대학이란 국가가 대학 운영비를 50% 이상 책임지는 대신에 이사진의 50% 이상을 공익이사로 구성하여 반(半) 국립처럼 운영하는 제도를 말한다. 공영형 사립대학 제도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계획’에 포함된 사업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보, 대학서열 구도 완화, 지역균형발전 등을 위해 논의 중인 대안이기도 하다.그러나 대통령의 임기가 3년이 지났음에도 공영형 사립대학 제도는 기획재정부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2018년에는 교육부가 요구한 812억 예산 전액을 기재부가, 2019년에는 87억 증액요구를 국회가 모두 삭감해버린 것이다. 올해는 교육부 주도로 상지대, 평택대, 조선대 등이 공영형 사립대학 연구에 돌입하였다. 기재부도 내년 예산안 확정 이전에 교육부와 예산편성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낭보(朗報)도 들려오고 있다. 3050클럽에 속한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위상과 미래기획을 위한 공영형 사립대학 제도 도입은 국가균형발전과 부합하는 좋은 방안이 아닐 수 없다. 관계부처의 적극적인 대처를 기대한다.

2020-08-12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얼마 전에 영화 ‘1987’을 다시 보았다. 1987년 6월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상황을 정면으로 다룬 장준환 감독의 ‘1987’은 전국관객 723만을 모았다. ‘1987’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하다가 목숨을 잃은 서울대생 박종철을 전반부에서 다룬다. 후반부에서는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정문에서 시위하던 청년학도 이한열의 투쟁과 죽음을 보여준다.불과 30년 전에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대학생 살해사건이 새삼 끔찍하게 다가왔다. 대공업무를 전담하는 경찰관들이 종철이 머리를 욕조에 강제로 밀어 넣어 질식사시킨 희대의 고문 살인사건. 45도 이상 각도로 최루탄을 발사해야 함에도 수평으로 직격(直擊)하여 한열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전투경찰.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의 실체를 확인하면서 삼복염천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다.‘정의’라는 어휘가 반복되는 장면에서 사유가 흔들리곤 한다. 5공의 전두환 일파가 내세운 ‘정의사회구현’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명칭이 왜 자꾸 겹치는지! 분명히 그들은 한글을 공용어로 쓰는 한민족의 같은 일원이었으나, 그들의 정의는 너무도 달랐다. ‘정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다. 최고 권력자와 하수인들의 정의와 천주교 신부들의 정의가 왜 그토록 다른지, 영화는 묻는다.권부의 기득권 수호를 빨갱이 사냥으로 포장하면서 부하들을 다그치는 박처원 치안감의 종횡무진 활약상은 1980년대의 무차별적인 광기를 몸서리치게 재현한다. “내가 아니었으면 이 나라, 벌써 김일성이한테 멕혔어야!” 하고 강변하는 그의 서슬이 하늘을 찌른다. 당대 2인자로 불렸던 안기부장 장세동의 위세도 두려워하지 않는 박처원. 1950년 월남하여 대공업무의 전설이 되었지만, 그 역시 좌우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로 보이는 인간.그들에 맞서는 함세웅과 김승훈 신부, 김정남과 이부영의 정의는 민초(民草)들의 바람과 직결돼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전말(顚末)을 밝힘으로써 사회정의를 바로 잡겠다는 그들의 신념은 베드로의 반석처럼 단단하다. 영화가 흥미로운 까닭은 이들 양대 세력 사이에 자리한 이름 없는 소시민들의 행적이 곳곳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느 편에 서는가, 그것이 정의의 궁극적인 향배(向背)를 결정할 터였다.민주주의는 일상적인 국민투표로 이루어지며, 그것은 여론의 형태로 발현된다. 그래서 구시대의 반민주적인 정권과 앞잡이들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거나, 여론조작을 공공연히 자행했다. 매주 발표되는 대통령 지지율이나, 여야의 지지율도 여론의 동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2016년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는 의미심장하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인데,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요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명시적인 대결과 충돌이 화제다.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정의와 권력 그리고 민주와 독재의 고갱이가 무엇인지, 다시 살펴볼 일이다.

2020-08-05

무엇을 바꿀 것인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고교 시절 내 마음을 움푹 패게 한 구절이 있다. “만상의 본질은 부패에 있다.” 팍스 로마나를 구현한 5현제 가운데 한 사람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의 말이다. ‘페이터의 산문’이란 제목으로 국어책에 실린 이양하 선생의 글에 나오는 구절이다. 지극한 권력을 누렸으나, 세상만사 덧없음과 금욕주의를 설파한 아우렐리우스. 그가 만상에 담긴 허망과 사멸의 본질을 논하면서 구체화한 어휘가 ‘부패’다. 부패는 생로병사의 순환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방편(方便)이다. 부패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자연계의 사멸과 생성은 불가능하다. 백골이 진토(塵土) 되는 일이 없어, 시신이 세상을 하염없이 떠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생명 탄생을 헤살 놓거나, 원천 봉쇄할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세상에 현현(顯現)한 모든 것이 짧은 시간에 퇴락하여 부패로 귀결됨을 지적한 황제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우리는 영생불사의 존재로 자신을 사유한다. 나에게는 죽음이나 소멸이 닥치지 않으리라는 미망(迷妄)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치열하고 당당하며 아등바등 이를 악문다. 한 걸음 물러서면 벼랑 끝이라는 생각에 하나같이 앙앙불락(怏怏不樂)이다. 거기서 온갖 소음과 원망과 아귀다툼과 갈등과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발원한다.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것처럼 ‘호모 데우스’가 창궐하는 21세기다. 사멸할 운명의 호모사피엔스가 종언을 고하고, 영생불사하는 ‘데우스’로 인간이 탈바꿈하리라는 불길한 예언. 분명코 인간은 ‘길가메시 프로젝트’로 500세 인생의 도전에 성공할 것이다. 불멸하는 신의 반열에 오르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의미 있고 행복할 것인지는 다른 문제다. 하지만 부패하지 않는, 변하지 않는, 언제나 똑같은 인간이란 얼마나 큰 재앙일 것인가?!‘세상을 바꾸는 문필가’로 평생을 살고자 했던 패기만만한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은 점은 내가 언제나 옳은 것도, 진실한 것도, 선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너무도 많은 허점과 오류, 극복 불가능한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점철된 삶을 돌이키면서 그런 미망을 던져버렸다. 이제는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세상을 바꾸려면, 사람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 외려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자명한 이치. 사람을 잃고 나서, 관계가 파탄 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우치게 된 명징한 사실이 그것이다. 누구도 타인을 바꿀 수 없다. 타인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의 표정 하나하나 살피고, 그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도 늦게 깨달은 것이다. 잃어야 얻는다는 단순한 이치 하나를 깨닫는 대가(代價)가 자못 컸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사람은 고쳐 쓸 수도, 바꿀 수도 없다.” 아직도 세상을 아름답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러하되, 세상은 나름의 법칙으로 돌아간다. 더디고 꾸물거리는 느림보의 법칙으로!

2020-07-29

아파트와 그린벨트

김규종 경북대 교수1959년 중앙산업이 지은 종암아파트를 필두로 마포, 동대문, 정동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선다. 1970∼80년대에는 대구와 부산 같은 대도시에도 아파트가 보급되기 시작한다. 그 후로 아파트는 가정주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택형식으로 자리 잡는다.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아파트 불패신화는 어언 반세기를 이어온 셈이다. 하지만 1970년 4월 8일 33명의 인명을 앗아간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는 한국 아파트 역사에 악몽으로 남아 있다.정부는 서울의 평면적인 확산을 방지하고, 자연환경 보전과 안보상의 필요로 개발제한구역정책을 도입한다. 1971년 1월 19일 이른바 ‘그린벨트’ 제도 도입으로 정부가 개발제한구역을 설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린벨트는 1971년 7월 30일 서울에서 시작되어 1977년 여천지역에 이르기까지 8차에 걸쳐 대도시, 도청소재지를 중심으로 전국 14개 도시에 설정된다.그린벨트는 19세기부터 영국과 도이칠란트, 프랑스 등에서 법제화가 시작되어 1950년대 이후 활용된 제도다. 반면에 1956년 그린벨트 제도를 도입하려던 일본은 1965년 수도권정비계획법을 대거 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그린벨트가 사라지는 참상을 겪는다. ‘규제완화’라는 명분으로 일본의 개발제한구역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한반도에도 진행될 조짐이 보여 우려스럽다.지난주 언론을 달궜던 사안 가운데 하나가 서울의 그린벨트 해제 논의였다. 민주당과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를 거론하면서 강남구 세곡동과 서초구 내곡동의 아파트와 토지 가격이 급등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지난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린벨트는 야금야금 줄어들었다. 신도시 건설이니 200만 호 분양이니 하면서 숱한 아파트 건설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110%를 훌쩍 넘는다. 무주택자보다는 주택소유자가 많은 게 현실이다. 문제는 아파트를 가지고 돈을 벌려는 개인과 투기세력이 나라 곳간과 세금을 도둑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주 목적이 아니라면 아파트를 두 채 이상 소유하는 자에게는 중과세가 마땅하다. 증여와 상속 역시 고율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정부가 최저임금 올려서 경제가 망했다고 울부짖던 자들이 종부세 인상에는 활활 분노한다. 어불성설이다.그린벨트 풀어서 공급을 충당하겠다는 청와대 정책실장의 무능과 부패와 타락을 비판해야 한다. 투기세력과 3천조의 유동자금, 1% 미만의 수신금리 때문에 아무리 많은 아파트를 건설한다 해도 수요는 충족되지 않는다.가장 손쉬운 돈벌이가 아파트인데 누가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는다, 애 낳지 않는다고 손가락질해대는 기성세대는 정말로 대오각성해야 한다.그린벨트 풀어서 아파트 짓겠다는 발상은 젊은 세대를 담보로 기성세대가 최대한 짜내겠다는 행악질이다. 그런 참에 대통령이 나서서 그린벨트 해제 논의를 중단시킨 것은 시의적절하다. 이참에 국토부를 비롯한 주택정책 주무부서 수장과 정책실장 교체까지 고려했으면 한다.

2020-07-22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7월 10일 경북대 인문한국진흥관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경북대와 전남대 인문대학이 함께하는 제2회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가 열린 것이다. 작년 10월 18일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에서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주제로 처음 열린 학술대회에 이어 ‘기억과 기록: 대구와 광주’를 주제로 두 번째 학술대회가 열렸다.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의 거점 국립대학인 전남대와 경북대가 동서화합과 미래지향의 가치를 내걸고 개최한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이번 대회에서는 대구와 광주의 근현대사에 나타난 역사적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다뤘다. 그런 까닭에 대구에서 발원한 국채보상운동, 2·28 운동과 대구 3·1운동, 광주의 5·18 민중항쟁과 제주 4·3항쟁 같은 의미심장하고도 뼈아픈 한국 현대사가 소환됐다.코로나19의 창궐에도 불구하고 70여 청중이 모여 열기를 보여주었다.작년 학술대회에서 ‘인공지능에게 지역감정을 묻다’는 주제로 발제했던 나는 올해는 대담 진행을 맡았다.대구의 이창동 감독과 광주의 황지우 시인을 대담자로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자리. 주지하다시피 이창동 감독은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해 1997년 ‘초록 물고기’로 영화에 입문한다. 황지우 시인은 1983년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시인의 삶을 시작한다.작년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사람은 30년 넘도록 친교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 까닭에 올해 두 분을 모시고 문학과 영화 그리고 광주와 대구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는 터였다. 객석을 웃음바다로 인도한 것은 198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두 사람이 경험한 어긋나는 기억이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는 것이다.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던 황지우 시인의 기대와 달리 이창동 감독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던 모양이다.문인들이 들락거리던 술집에서 황지우는 홧김에 술집의 육중한 아크릴 입간판을 이창동 부근에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누구보다 자신과 뜻을 같이할 것이라 믿었던 친구를 향한 분노의 폭발이었다. 두 사람은 술집의 위치와 입간판의 색깔과 소재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기억을 소지하고 있었다.87년 대선판 ‘라쇼몽’의 재연이 33년 만에 성황리에 이뤄진 셈이다.두 분의 대담에서 청중은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이창동의 영화 ‘시’에서 낭송되었던 장면을 떠올리며 따뜻하게 추억했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나, 우리나라 감독 가운데 이창동 감독은 영화의 서사가 가장 탄탄하다는 언명을 황지우 시인이 여러 번 강조했다. 두 분의 우정과 예술혼의 교류가 오래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이철수 판화가와 도종환 시인이 친구인 것처럼 황지우 시인과 이창동 감독이 친구인 것은 한국문학과 예술에 유용한 자양분이다. 지역을 넘어 세계로 도약하는 도정에 있는 우리의 문학과 예술이기에 더욱 의미 있다 하겠다.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가 계속 이어지기 바란다.

2020-07-15

한반도와 한미워킹그룹

김규종경북대 교수7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안보라인을 대거 교체했다. 국정원장에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 통일부 장관에 이인영 민주당 의원, 국가안보실장에 서훈 국정원장,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을 내정했다.이들 가운데 박지원 후보자와 이인영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강경화 외무장관과 문정인 외교안보특보만 유임되었기로 전면적인 인사교체라 할 수 있다.외교안보라인의 교체는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을 겨냥하고 있다. 6월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서 시작된 북한의 대남공세는 6월 16일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정점에 이른다.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대북전단을 빌미로 시작된 공세였으나, 실상은 한국 정부에 대한 북한의 서운함과 불만족이 주된 원인이라 할 수 있다.돌이켜보면 2018년 4월 27일 역사적인 판문점 공동선언, 같은 해 9월 19일 평양 공동선언과 남북한 군사합의서는 8천만 한민족에게 찬란한 서광처럼 보였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5.1 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에게 행한 연설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와 아울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세 차례 북미 정상회담 역시 한반도의 평화와 안녕을 향한 우리의 희망을 구체화하는 것이었다.하지만 하노이 ‘노딜’에서 나타난 것처럼, 미국은 남북한의 평화와 화해에 관심이 없다. 그것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이었던 볼턴의 회고록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미국은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 유지와 통일반대, 그것에 따른 무기판매의 반대급부를 집요하게 노리고 있다. 나아가 그들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동아시아의 교두보이자 지정학적 희생양 정도로 한반도를 생각하고 있다.흥미로운 점은 9·19 공동선언 이후 한국이 자발적으로 이른바 ‘한미워킹그룹’을 만들자고 미국에 제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비핵화와 제재완화 및 한반도 평화를 한국과 미국의 실무자들이 함께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워킹그룹의 활동이 실제로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워킹그룹의 존폐문제까지 심도 있게 논의할 시점으로 보인다.4·27 공동선언과 9·19 공동선언에서 거명된 후속작업은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다.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 관광, 남북철도 연결과 현대화,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이 어느 하나 이루어지지 않은 채 2년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실질적인 진전 없이 언어로써만 남북의 화해와 평화, 민족통일 운운은 어불성설 아닌가.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안보와 국방 및 외교를 미국에 의지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언가 새롭고 창조적인 돌파구가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2020-07-08

우화등선

김규종 경북대 교수당송 팔대가 가운데 한 사람인 동파(東坡) 소식은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삼소(三蘇)라 불렸다 한다. 그의 ‘적벽부’에 나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실상을 보고 나니 감회가 적이 새롭다. 본디 ‘우화등선’이라 함은 번데기가 날개 달린 나방으로 변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일정한 상태의 근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충분하다.며칠 전 오후의 일이다. 마당에 심은 루드베키아의 크고 노란 꽃잎 하나가 아래로 축 처져 있는 것이다. 다른 꽃잎들은 하늘로 당당히 얼굴 쳐들고 있는데, 쟤는 무슨 일이야, 하고 혼잣말한다. 가까이 가보니 매미 유충이 여섯 개의 발가락으로 꽃잎을 단단히 붙들고 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녀석의 두 눈이 마치 나를 쳐다보는 듯하다. 오호라,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갈 심산이로구나.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 살핀다.멀지 않은 곳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그렇군, 저 아래 칠흑 같은 땅속에서 대여섯 해를 살았다는 얘기지. 미국에 사는 어떤 매미 유충은 지하세계에서 15년 넘게 견디는 일도 있다고 한다. 보름 남짓 밝은 세상 구경하려고 장구한 세월 굼벵이로 살아야 하는 매미의 가혹한 운명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짧지 않은 세월 굼벵이는 땅속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것일까?! 몸집을 불리고, 밖으로 나갈 날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견디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해 질 무렵까지도 루드베키아 꽃잎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튿날 아침 동트기가 무섭게 마당으로 나가본다. 어제와 다르게 꽃잎이 빳빳하게 고개 쳐들고 있다. 옆 줄기에 딱딱한 껍데기가 남아있다. 등줄기 한복판에 세로로 찢어진 자국을 남긴 황갈색 껍데기만 동그마니 남았다. 그래, 언제 우화한 걸까?!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어찌 됐거나 녀석이 성공적으로 날개를 달고 창천으로 날아오른 것은 분명하다.그러다가 생각이 오래전 옛일로 미친다. 백양로를 따라 늘어선 사철나무에서 기괴한 물상(物像)과 만난다. 등껍질을 뚫고 나오려던 굼벵이가 때마침 쏟아진 소나기에 날개를 펴지 못한 채 죽어 있었다. 굼벵이의 몸은 절반가량 껍데기 밖으로 나온 채 화석처럼 굳어 버렸다. 과거를 벗어나 미래로 질주하다가 현재의 족쇄에 걸려 처참한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해괴한 몰골의 그것, 굼벵이도 아니고 우화를 마친 매미도 아닌 사체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연구실로 데려왔다. 강의자료로 더할 나위 없이 제격이다. 학생들이 어렵다는 ‘그로테스크’ 개념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좋은 재료는 찾기 어렵다. 과거와 작별하고 빛나는 미래를 향해 온 힘을 다했으되, 시운을 만나지 못해 참혹하게 죽어버린 생명체. 그런 까닭에 우리는 과거가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대못을 소리 나게 내려쳐야 한다.누군가는 과거를 묻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과거는 현재를 규정하고, 현재는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과거에서 미래가 나온다는 자명한 사실을 우화등선에서 확인하는 아침이다. 현재가 붕괴한다 해도 미래의 토대는 현재와 과거에 있기 때문이다.

2020-07-01

6·25와 남북관계

김규종 경북대 교수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어언 70년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은 귀동냥이나 관념으로만 6·25를 체험할 뿐이다. 4·19 시민혁명도, 5·18 광주항쟁도 60년, 40년 전의 일이니 무슨 말을 덧대겠는가. 신속한 시간의 흐름에 무연히 입을 벌릴 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하되 남북관계가 급격하게 냉각되고 있어서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전쟁의 상흔(傷痕)을 딛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면서도 대한민국은 30-50클럽에 가입하는 놀라운 쾌거를 이뤄냈다. 그러나 북한의 상황은 여전히 어둡기 그지없다. 2016년부터 실행된 미국의 대북제재가 4년 이상 유지되었고, 코로나19 창궐로 인해 북한경제는 오리무중 첩첩산중이란 얘기도 들린다. 그런 와중에 중국은 북한에 쌀 60만 톤과 옥수수 20만 톤을 지원했다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끈다.2018년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북한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9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군중을 상대로 대중연설을 한 것은 거대한 사변으로 기억된다. 당시 남북한 8천만 민중은 전쟁과 대립, 갈등과 알력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남북화합의 마당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2019년 6월 30일 남북과 북미 정상이 손에 손잡고 판문점에서 회동함으로써 평화를 향한 우리의 염원은 현실로 현현하는 것으로 보였다.화해 분위기로 달리던 남북관계는 미국의 대북제재 연장과 탈북자를 비롯한 일부 단체의 무분별한 대북전단 살포, 날로 가중되는 북한의 경제난 등으로 악화하게 된다. 그런 일련의 사태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매우 엄중한 남북관계를 보고 있다. 통일부 장관의 사임에 이어 외교 안보 사령탑의 전면적인 교체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 목숨 걸고 남북과 북미대화 복원을 성사시켜야 할 시점이다.아무리 나쁜 평화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 대체(代替) 불가능한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하루아침에 앗아가는 전쟁의 참화를 우리는 알고 있다. 영화 ‘실미도’는 1968년 울진-삼척지구 무장간첩 사건 이후 남과 북이 어떻게 갈등했는지 보여준다. 청와대를 습격하려 한 김신조 일당에 맞서 박정희는 주석궁을 급습해서 김일성의 목을 따오도록 684부대를 신설한다. 허구와 현실이 공존한다지만, 영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한다.이제라도 우리는 돌아보아야 한다. 갑작스레 터져 나온 위기상황의 근본적인 원인과 진행과정 및 대응자세를 숙고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사태가 꼬여서 어떤 계기로 이토록 악화하였는지, 그것부터 냉정히 살펴봐야 한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무조건의 평화와 대화의 원칙 확인이다. 일부 야권에서 구두선(口頭禪)처럼 주장하는 핵무장이나 무력을 통한 대북대응은 사태를 악화시킬 따름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재확인해야 한다.남북의 갈등과 위기상황은 일본의 아베와 우익세력,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볼턴, 트럼프, 폼페이오 같은 자들이 기대하고 획책하는 최종지점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2020-06-24

방아쇠 수지 증후군

김규종 경북대 교수마당이 딸린 집에서 살려면 적잖은 노고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6년 넘도록 촌에서 살다 보니 생각지 못한 수고가 곳곳에 필요하다. 처음에는 농촌생활이 즐겁고 행복했다. 층간소음도 없고, 콘크리트와 자동차 경적(警笛)과 온갖 소음에서 벗어난 만족감이 깊이 밀려오곤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여 퇴색하고 시들어지기 마련 아닌가.작년에는 전남대 교환교수로 지내다 보니 집안일에 더욱 소홀하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19가 ‘집콕’을 유도했기로, 기회다 싶어 육체노동을 아끼지 않았다. 오래도록 방치된 유리창을 정성스레 닦고, 현관 데크에는 오일 스테인을, 계단과 가구에는 니스를 칠했다. 뒷마당의 대나무 뿌리 제거작업을 신호탄으로 좁지 않은 대지의 식물 전체를 손보기로 한다.땅속에서 종횡으로 뿌리내리는 대나무를 대적하는 작업은 상상 이상이다. 호미와 전지가위, 삽과 톱을 동반한 작업이 1주일 넘도록 진행됐다. 뿌리의 완강한 저항을 뚫고, 곳곳에 박혀 있는 돌을 캐내면서 구슬땀으로 범벅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잘 골라진 터에 왜성 체리 세 그루를 심고, 금계국과 안개꽃, 코스모스와 데이지, 구절초와 루드베키아 씨를 뿌린다.그뿐이겠는가! 체리 세이지와 정향초, 사계절 패랭이와 겹물망초를 사다가 심어준다. 장소를 안마당으로 옮기니 일이 더 많다. 30여 종에 이르는 나무를 전지(剪枝)하고, 대나무와 쑥의 뿌리를 캐내고, 사초를 한곳으로 몬다. 오래전부터 대나무에 꽂혀 있었기로 화분의 사초를 마당에 옮겼더니 제 세상 만난 듯 창궐(猖獗)했다. 그것들을 마당 한구석으로 몰아놓고 그 위에는 흑백의 자갈로 덮는 중노동을 감행한다.그러다 어느 날 오른손 세 번째 손가락이 90도로 접히면서 펴지지 않는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손가락. ‘햐, 뭐 이런 일이 있나?!’ 정형외과 의사는 그것을 ‘방아쇠 수지 증후군(Finger Trigger)’이라 했다. 방아쇠를 당길 때 의식적으로 손가락을 당기고 펴줘야 하는 것 같은 증상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약물요법과 수술요법 두 가지 치료법이 있다는 설명도 친절하게 덧댄다. 주사기로 약물을 투입하고, 사흘 분량의 약을 먹었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는다. 옆집 사람들에게 사정을 말하니, 남매가 유경험자였다. 한 사람은 수술했고, 다른 사람은 증상을 버려두었다고 한다. “사는 데 지장 없어예!” 남의 일처럼 말하는 품새에서 안도감 같은 게 느껴진다. 통계에 따르면, 1년에 1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방아쇠 수지 증후군을 경험한다고 한다.나도 그냥 견디기로 한다. 오랜 세월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살아온 인간이 불과 두어 달 일했기로 겪는 고초가 그리 만만찮다. 하되 육체노동이 주는 쾌감과 성취감은 크다. 집이 모양새가 나고 틀을 갖춰나가는 것을 보면 흥이 절로 난다. 손가락에서는 아직도 소리가 나고 불편하지만, 특별한 경험으로 날로 풍성해지는 초여름날이 깊어지는 시절이다.

2020-06-17

87년, 그해 여름은 뜨거웠네

김규종 경북대 교수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사람과 사건이 있다. 그들 덕에 인생은 풍성하고 화사해진다. 나이 들어서 얘깃거리가 부족한 사람은 사건과 관계가 궁색한 때문이다. 나와 무관하고 이해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과 관계와 사건을 외면해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대상에 대한 지적(知的) 호기심이 태부족한 때문일 것이다. 지구별이 오직 나를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는 강박증 환자 역시 같은 결과에 도달한다.1987년 6월 서울은 뜨거웠다. 6월에 예정된 평화 대행진은 시민들을 들뜨게 하였다. 피 끓는 열혈 청춘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는 6월 10일, 18일 그리고 26일의 세 번에 걸친 저항운동을 뭉뚱그려 ‘6·10민주항쟁’이라 부른다. 대학원 박사과정생이면서 강사이자 러시아문화연구소 간사에 민족극연구회 회원이었던 나도 1987년 6월의 소용돌이 속으로 합류한다. 80년 5월을 되새기면서!6월 10일 저녁 대학로에서 친구를 만난다. 그러다 불쑥 명동성당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가볼까, 한 마디로 그 자리를 뜬다. 명동성당은 넓지 않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학생들과 전투경찰로 양분되어 있었다. 평온한 분위기에서도 감촉되는 팽팽한 긴장감이 한밤중 어둠 속에서도 느껴지는 상황. 그 순간, 날카롭고 새된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전투준비!”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고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지?! 들어가, 아니면 후퇴?!” 친구와 나는 잠시 눈빛을 교환하고 물러선다. 그는 출근해서 아이들 건사해야 할 가장이었고, 나는 시간강사이자 간사로서 직분이 있었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우리가 물러선 이유는. 28∼9세의 호기로운 나이에도 우리는 쫓기듯 자리를 물러 나왔다. 살면서 지난날을 돌이키다 후회하는 일이 있기 마련인데, 그때 일이 간간이 떠오르곤 한다.대학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매일같이 모친은 “데모하지 마라! 네가 우리 집안 기둥이다.”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모질도록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모친에게 둘째 아들은 무너진 집안을 재건하는 첨병이었다. 어떻게 해서 대학에 보낸 자식인데 데모 한 번으로 속절없이 자식을 잃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언제나 먼발치에서 시위대를 보고, 마음속으로나 동조했던 소시민의 전형으로 살았던 내가 늘 우울하고 억울했다.80년 5월 15일 데모하다가 경동시장 부근에서 전경한테 잡혀들어갔던 기억이 80년대의 나를 구원해준 유일한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87년 6월의 사흘을 나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시위대와 함께했다. 개운사 젊은 승려들과 저녁을 함께 먹고 같은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들은 모두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그토록 뜨겁던 87년 6월 항쟁으로 한국 현대사는 다시 써졌고, 30년 넘도록 87체제는 유지되고 있다. 지금은 한낱 추억이나 영화로 반추되는 6월 민주항쟁기념일이 어제였다. 과연 나는 온전하게 사람과 사건과 대면하면서 우리의 기억과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2020-06-10

트럼프와 미국의 민낯

김규종 경북대 교수1991년 12월 31일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뒤 유일 강대국으로 군림한 미국의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국가 경제의 피폐, 여기에 더해진 경찰의 비무장 민간인 살해까지. 이것이 세계 최강 미국의 모습인가, 하는 의구심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 악화의 중심에 현직 대통령 트럼프가 있다. 세계 대통령이라 불리던 미국 대통령의 초라해진 모습이 약여(躍如)하다.코로나19로 10만이 넘는 사망자와 4천만이 넘는 실직자가 발생한 나라 미국. 설상가상 백인 경찰이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서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어떻게 비무장 국민을 한낮에 살해할 수 있단 말인가?!지난 5월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위조지폐로 담배를 사려 한다는 연락을 받고 미니애폴리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다. 경찰관 4명은 비무장 상태의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했고, 백인 경관 데릭 쇼빈은 무려 8분 46초 동안 군화 신은 무릎으로 조지의 목을 누른다. “숨을 쉴 수 없다.” 하고 조지가 애원했지만 쇼빈의 무릎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조지가 의식을 잃은 후에도, 심지어 응급 의료진이 현장에 도착한 1분 후에도 쇼빈은 조지의 목을 계속 짓눌렀다.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한 뒤 17분 만에 흑인 조지 플로이드는 사망한다. 뉴욕타임스가 현지시각 5월 31일 현장 CCTV, 목격자 촬영 영상, 관련 공식문서 등을 토대로 재구성한 ‘흑인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전모다. 단언컨대 이번 사건은 백인 경찰이 합법성을 등에 업은 폭력으로 비무장 흑인을 악랄하게 학살한 사건이다.조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SNS로 널리 유포되면서 시위가 시작된다. 하지만 트럼프는 5월 29일 백악관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자 시위대를 조롱하고 ‘군대의 무한한 힘’을 통한 무력진압을 천명한다. 아울러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대응시위를 벌이라고 제안한다. 국가가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오직 재선을 위한 정략적 선택에 집중하고 있다.홍콩의 국가보안법 제정을 둘러싸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한편, 코로나19 문제를 중국과 세계보건기구(WHO)로 돌리면서 무차별적인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은 치켜세우면서, 민주당 소속 시장들에게는 악의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는다. 모든 책임이 민주당과 지지자들 때문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하는 그의 주장이 공허하게 메아리치고 있다.코로나19가 가져온 세계화에 대한 불확실성과 유럽연합의 분열양상, 미국의 신고립주의는 21세기 세계의 혼란과 분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제국 아메리카의 소멸 혹은 쇠락(衰落)이 목전에 전개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시간대가 지나가고 있다.

2020-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