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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베의 황당한 백일몽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지난 7월 1일 시작된 일본의 경제침략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대한민국을 콕 집어서 일본이 자행한 경제보복이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도조 히데키가 주도한 진주만 공습에 비견되는 아베의 급습이 무엇을 겨냥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7월 21일 참의원 선거, 남북과 북미의 급속한 해빙과 평화체제 구축방안 논의에서 일본의 배제, 한국과 중국의 부상(浮上)에 따른 열패감 등등.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제기돼온 징병과 징용, 위안부 문제, 과거사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갈등,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출신의 역사의식 없는 어리석은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체결한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문재인 정부와 아베의 대립과 각축, 일본 우익의 입맛에 맞는 수구적인 인물과 친일정당을 통한 한국의 정권교체, 트럼프와 제휴해 아베가 세계최강 한국의 반도체를 손보려 한다는 대리청정 주장도 난무한다.모든 것을 합치고 거기 무엇을 덧댄다 해도 남는 문제가 있다. 일본과 일본인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151년 전인 1868년 명치유신(明治維新)으로 일본은 아시아 최초-최강의 근대화를 성취한다. 애국적이고 진취적인 청장년 지식인 계층이 위로부터 개혁을 강인하게 추진해나간 결과다. 과거의 낡고 무기력한 일본과 작별하고 새롭고 강력한 일본을 드러내려는 문구가 ‘탈아입구(脫亞入歐)’다.후진동양(後進東洋)의 맹주 청나라를 부정하고, 선진서양에 의탁해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계몽주의를 수용한 일본. 근대국가의 이념과 내용을 혁신을 위한 방편의 전면에 내세우고 유럽을 배워 아시아를 탈피하려던 일본.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려 했던 일본 지식인들의 열망이 ‘탈아입구’ 네 글자에 각인되어 있다. 나쓰메 소세키 같은 인물마저 러일전쟁의 승리에 도취하여 전염됐던 동북아 오리엔탈리즘의 원조 일본. 제국건설의 야망을 품은 그들이 실현한 식민주의는 유럽의 그것과 판이한 양상을 가진다. 그것은 가까운 이웃 나라들을 병탄(倂呑)하고 그 인민을 노예로 삼은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는 인접국을 병탄하여 그 나라의 인민을 노예화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웃 나라에 대한 도리이자 예의이기 때문이다. 인도차이나를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의 반목(反目)이 극에 달했을 때조차 그들은 태국을 중립지대로 삼아 유혈사태를 피한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논거로 태평양전쟁을 촉발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허다한 인민을 전장으로 내몰았다.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일제의 총알받이로, 탄광의 매몰사고로, 일본군 성노예로 죽어갔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우리는 일본 국왕에게 제대로 된 사죄 한 번 받아본 일도 없다. 그저 ‘유감’이니 ‘통석(痛惜)’이니 하는 수사(修辭)로 덧칠한 언어유희만 있었을 뿐.이런 맥락에서 이토 암살 100주년인 2009년 8월 30일 일본의 정권교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탈아입구’ 대신 ‘탈미입아(脫美入亞)’를 외쳤다.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돌아오겠다는 선언. 일본의 정체성을 유럽과 미국이 아니라, 동북아에서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 그러나 성숙하지 못한 일본의 관변 민주주의, 무기력한 소수의 시민사회, 강력한 비판적 지식인 세력이 부재한 일본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폭발로 속절없이 무너져버린다. ‘탈미입아’ 역시 허공 중에 산산이 부서진다.참의원 선거는 끝났지만, 일본군의 한반도 진군(進軍)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개정을 향한 아베의 백일몽은 진행 중이다. 아베와 일본의 극우세력을 대놓고 엄호하는 한반도의 정치 모리배와 정당과 언론의 칼춤도 끝날 줄 모른다. 강력한 시민사회와 비판적 지식인 세력,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국민의 나라가 아베의 꿈을 황당한 백일몽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라 확신한다.

2019-07-24

‘애절양’과 ‘녹두꽃’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2002년 ‘대망’을 끝으로 드라마와 작별했다. 1995년 ‘모래시계’로 선풍을 일으킨 송지나 작가와 김종학 연출이 만든 작품이었다. 우리로 하여금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다시 생각하도록 인도한 ‘모래시계’. ‘모래시계’전에 좋아한 드라마는 ‘서울의 달’이다. 출세를 위해 부나방처럼 떠돌던 촌놈의 허망한 삶을 아프게 그려낸 사회드라마.‘대망’ 이후에는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희곡과 연극 연구자가 드라마와 연을 끊는다는 것은 곡절이 있을 터. 혁명과 변혁의 80년대를 불처럼 바람처럼 파도처럼 산 자들은 1988년 대선패배와 군부독재의 연장을 잊지 못할 것이다. 문단(文壇)에서는 처절하고 응어리진 ‘자기고백’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투쟁의 전선은 하나둘씩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 전선이 1991년 “경대를 살려내라!”는 피어린 항쟁이었음은 재언을 요치 않는다.사회-정치 드라마나 역사 드라마에는 당대인들의 역사의식과 정치적인 견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들어있다. 세상이 너무 엄청나면, 상상을 절할 정도로 극악하고 폭력적이면 사람들은 유희와 오락으로 도피한다. 칼라일은 ‘프랑스 혁명사’에서 기요틴과 오락이 공존하던 1793년 12월의 파리에 23개 극장과 60개 무도장이 성업했다고 기록한다. 연극과 가면무도회에 도취한 한밤의 축제와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기요틴의 살육이 어우러진 혁명의 나날들.‘대망’의 누군가가 연극으로 세상을 뒤엎겠다는 포부를 말하는 장면에서 허망해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는 헛헛함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드라마와 작별한 까닭은. 얼마 전에 원광대 박맹수 총장의 동학관련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2014년 가을 동학농민전쟁 12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경북대 인문대학에서 개최했을 때 박 총장은 발표자로, 나는 사회자로 만난 일이 있다. 이번에는 연사와 청중으로 반갑게 재회했다.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은 왕과 귀족, 성직자계급의 과도한 특권과 제3신분 및 제4계급의 수탈과 억압이었다. 그것을 대표한 인물이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였음은 불문가지. 위고는‘레미제라블’에서 그들을 단두대로 보내고도 전혀 나아지지 않은 민초의 삶을 다각도로 그려낸다. 새로운 통치자와 지배집단이 등장했음에도 왜 민중의 삶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혁명이며 기요틴이었을까?!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이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준거로 작용했다면, 동학혁명을 이해하는 데에는 다산의 ‘애절양(哀絶陽)’이 필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1801년 신유박해로 강진에 유배된 다산이 1803년에 쓴 7언 22행시 ‘애절양’. 강진 갈밭마을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았는데 사흘 만에 군적에 오르게 되자 관리가 군포 명목으로 소를 끌고 가버린다. 절망한 백성이 그만 자신의 양경을 잘랐다는 얘기를 들은 다산이 쓴 뼈아픈 시가 ‘애절양’이다.다산은 백성의 고통과 조선의 문란한 군정을 보여준다. 남편의 양경을 들고 관아에 호소하는 아낙의 정경이 처절하다. 시아비상 마친 것도 얼마 전이고, 갓난아이 배냇물도 마르기 전이다. 그런데 아전은 군보에 시아비와 남편, 어린것의 이름을 올려놓고 소를 끌고 가버린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면서 고관대작들은 낱알 한 톨 비단 한 치 내는 법이 없다고 다산은 쓴다.동학농민전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녹두꽃’이 종영되었다. 박 총장에 따르면 1894년 당시 조선 인구는 1천50만 정도, 동학교도는 250만∼300만에 이르렀다 한다. 얼마나 많은 민초가 동학에 귀의하여 후천개벽을 열망했는지 가늠할 만한 수치다. 농민전쟁으로 30만∼50만 동학교도가 죽임을 당했는데, 그 가운데 3만∼5만이 고종의 비 민자영이 불러들인 일본군에게 학살당했다 한다. 2019년 여름 아베의 고약한 행악질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심할 시점이다.

2019-07-17

중국의 비상(飛翔)과 중국 유학생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2010년을 기점으로 세계경제의 위상에 변화가 표면화한다. 40년 가까이 부동(不動)의 2위를 고수했던 일본이 중국에 3위로 밀려난 것이다. 두 나라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져 작년의 경우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13조 6천억 달러, 일본은 5조 달러 언저리다. 흥미로운 점은 3위 일본, 4위 도이칠란트, 5위 영국, 6위 프랑스의 국내총생산이 14조 5천억 달러로 2위 중국과 거의 맞먹는 규모라는 점이다.이런 추세 때문에 미국 제일주의를 주창한 트럼프가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진 21세기 미국의 딜레마가 수치로 확인 가능한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다. 2010년 출간된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의 시대구분 방식인 기원전(BC)과 기원후(AD) 대신, 중국 이전(Before China)과 중국 이후(After China)로 경제사를 구분하는 학자들이 생겨났다는 지적은 통렬하다.습근평(習近平) 등장 이후 중국이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를 개창(開創)한 진시황과 비교되는 현대판 시황제 습근평의 자신 넘치는 프로젝트. 중국을 기점으로 하는 21세기 신실크로드를 육상과 해상의 두 가지 노선으로 육성하겠다는 원대한 기획. 한반도의 남단에 갇혀 70년 넘도록 살아온 우리로서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발상이다.그러나 교육현장에서 중국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바라보는 중국의 야망은 허망해 보인다. 지난 학기에 중국 유학생 5인을 포함한 다국적 학생들과 ‘영화로 보는 세상’ 수업을 진행했다. 마지막 수업에서 2002년 장예모가 연출한 영화 ‘영웅’을 다루었다. ‘영웅’은 사마천의 ‘사기열전’가운데 ‘자객열전’의 형가(荊軻)를 바탕으로 했음을 밝히고 물었다. 중국 학생들 가운데 ‘사기열전’을 읽은 학생들이 있는지?!형가와 ‘자객열전’은 고사하고 사마천이나 ‘사기’ 내지 ‘사기열전’에 대해서 그들은 들어본 적도, 읽은 적도 없었다. 돌이켜보니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의 ‘제서림벽 (題西林壁)’을 강의하다가 맞닥뜨린 떨떠름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가로로 보면 고개요, 돌려보면 봉우리라. 원근(遠近)과 고저(高低)에 따라 그 모양이 각기 다르구나. 여산(廬山)의 진면목(眞面目)을 알지 못함은 내가 산속에 있기 때문이리라.”장강 남쪽, 파양호 북쪽에 자리한 여산은 1996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지질공원이자 문화유산이 넘쳐나는 곳이다. 도연명, 이백, 백거이, 왕안석, 소식, 곽말약에 이르는 1천500여 시인과 묵객이 아름다움을 예찬한 절승(絶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거기서 나고 자란 중국 유학생은 그 내용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다른 학생들은 뭐, 그런 게 있기나 했나, 하는 생뚱맞은 얼굴이고.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국가의 기세가 세계최강 미국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고, 유라시아를 통관하는 육로와 해로를 개척하면서 세력을 확대해가는 중국. 전통적인 제국의 진면목을 21세기에 재연해보려는 야심만만한 포부로 가득한 중화세계. 하지만 중화의 청춘은 지나온 그들의 역사와 문화와 예술을 알지 못하고, 지금과 여기에 탐닉하면서 비상하는 조국의 힘을 막연히 향수(享受)하고 있을 뿐이라는 감상이다.20세기 초두(初頭)에 노신은 ‘아큐정전’에서 어리석은 중국인의 ‘정신승리법’을 통렬하게 풍자함으로써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제시했다. 덩치만 크고 내면은 텅 비어있는 지금과 여기의 중국인에게 무엇이 절실한지 갈파한 노신. 그의 가르침이 21세기 신흥강국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생각한다.

2019-07-10

섬과 바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열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에도 나처럼 진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자는 반드시 있겠지만, 나처럼 배움을 좋아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논어 ‘공야장’에 나오는 말이다. 평생 ‘학인(學人)’을 자처한 공구(孔丘)는 스스로를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 배워서 알게 된 자로 규정한다. 그래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명언을 남길 수 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매일 쏟아지는 신간(新刊)을 읽고 싶은 마음에 죽음이 두렵다는 소회를 피력한 적도 있다.지난주 ‘무등공부방’에서 광주의 향토사 전문가 김정호 선생의 강연이 있었다. 60년 가까이 전남과 광주의 인문지리와 역사, 인물을 두루 섭렵한 선생의 앎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광산 성씨 본관 이야기’가 주제였으나, 종횡으로 달리는 이야기의 향연은 특정분야에 한정되지 않는 것이었다. 혈연과 지연, 학연에 내재한 뿌리 깊은 공동체성에 대한 견해는 인상적이었다. 그러하되 섬과 바다에 대한 소략한 말씀이 가슴에 닿았다.선생이 내세우는 명제는 간명하다. “한국의 미래자원은 바다와 섬이다!” 그 말씀을 듣자니 익숙한 구절이 생각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島嶼)로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다. 여기서 ‘도서’라는 말이 낯설다. ‘도’는 섬, ‘서’는 작은 섬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한반도와 그에 딸린 크고 작은 섬이 우리나라 영토라는 얘기다. 해양영토 바다가 빠져있다.선생에 따르면, 대한민국 육지영토 면적의 8배에 이르는 바다가 한반도에 부속돼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바다와 섬을 도외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는 3천358개의 섬이 있는데, 유인도가 482개, 무인도가 2천876개에 이른다. 섬과 바다를 개발하는 것이 ‘국토균형발전’의 첫걸음이라고 선생은 목소리를 높인다.1952년에 ‘낙도중흥법’을 제정한 일본은 모든 섬을 육지의 지자체와 결합시켰다고 한다.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을 동경(東京)과 결합하여 섬을 발전시키는 정책을 70년 가까이 실행해온 일본. 우리는 1980년대에 비로소 섬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나, 일본을 따라잡기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정부주도로 섬이란 잡지를 간행하고, 해마다 5만여 섬 주민이 동경 한복판을 시위한다니 그럴 법하지 않은가?!우리나라의 모든 것은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런 까닭에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요상한 분류마저 생겨났다. 일기예보 하는 사람들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이런 표현이 적절함에도 ‘수도권’이란 말을 반드시 발화(發話)한다. 그렇다보니 대한민국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뉘어져 있다.이런 현상은 ‘비수도권’에서 되풀이된다. 광역시권역과 여타 지역으로 나뉘는 것이다. 대구나 광주, 부산과 대전을 중심으로 사건과 사고, 일기예보가 나오고 난 다음에야 여타지역이 거명된다. 그러기에 육지가 아닌 바다와 섬 이야기는 ‘딴나라’ 이야기처럼 아득하다. 하지만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문화와 예술이 흐르고, 추억과 역사가 있다. 섬과 바다는 ‘그 섬에 가고 싶다’ 따위의 가벼운 오락과 유희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근대를 열어젖힌 유럽제국의 출발은 바다였다. 작은 돛단배를 타고 그들은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었고, 급기야 육상제국 청나라와 러시아를 능가하는 세계제국을 성립시켰다. 가뜩이나 넘쳐나는 사람들로 아우성치는 지구촌의 미래는 바다와 섬에 있을 듯하다. 해수욕장 개장시점에 잠시 섬과 바다를 생각해본다.

2019-07-03

21세기 대중과 지식인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이분법은 단순하되 힘이 세다. 나와 너, 친구와 적, 이익과 손해로 극명하게 갈리는 이항대립은 선택장애를 일소한다. 기원전 6세기 무렵 낮과 밤의 주기적인 교체에 기초하여 광명과 암흑, 선과 악, 아후라 마즈다와 앙그라 마이뉴를 창안한 조로아스터(차라투스트라)가 배화교(拜火敎)를 창시한다. 배화교에서 구원은 선신과 악신의 대결로 실현된다.1만2천년 후에 선신(善神) 아후라 마즈다와 악신 앙그라 마이뉴가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선신이 승리한다. 아후라 마즈다를 따르는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태어나고, 악신의 추종자는 버림받는다.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는 훗날 성서에서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대결로 변신한다. 이분법이 종교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다.이분법은 선택지를 둘로 제한함으로써 양자택일의 난제(難題)를 전제한다. 양극단의 충돌과 대결이 발생하면 하나뿐인 출구 때문에 극한의 대립과 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 점에서 제3의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놓는 변증법이 매력적이다. 테제를 설정하고, 그것에 반하는 안티테제를 충돌시켜 양자를 지양(止揚)하는 진테제를 만들어내는 사고방식. 세계를 이렇게 이해하면 세상 모든 것은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것으로 다가온다.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민중주의(民衆主義) 내지 민중사관이 추동해왔다. 특정한 개인이나 엘리트집단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사회발전과 변화를 주도한다는 이념지향이 민중주의 내지 민중사관이다. 1987년 6월 항쟁에 등장한 넥타이부대가 본보기다. 어떤 이념이나 지도자에게 인도된 사람들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으로 모여든 30, 40대 회사원들이 주축이 된 넥타이부대. 그들이 6.29를 이끌어낸 장본인일 것이다.그들이 출현하기 전에 숱한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투쟁과 희생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독재정권을 타도하려는 열망으로 경찰력과 맞선 넥타이부대의 위력도 잊어서는 안 된다. 불과 30년 전에 일어난 극적이며 감동적인 현장을 추억하는 이가 아직도 적잖을 것이다. 사회학자와 정치학자들은 그런 무명(無名)의 다수를 ‘민중’으로 규정한다.요즘에는 민중이라는 표현이 흔치 않다.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인 지향으로 굳어진 사람들을 가리킬 때 민중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다. 이념이나 정파에 얽매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킬 때는 대중(mass)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대중은 특별한 형체를 가지지 않은, 특정(特定)하기 곤란한 다수의 사람을 의미한다. 21세기 대중은 20세기의 대중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의무보다 권리를, 역사의식보다 편의주의를, 영원보다 지금과 여기를 추구한다. 목전의 욕망과 목표에 충실하지만, 각자에게 부여된 책임과 공동체 의식은 희박하다. 독서와 사색에 인색하되 물질적 쾌락추구에 몰두한다. 문명의 발생과 진화원리에 무지하고 둔감하지만, 문명이 가져다준 결과물에 환호작약한다. 21세기 대중에게 스마트폰을 제거해보라. 곧바로 폭동이 발생할 것이다. 세계 전역에서!!문제는 21세기 한국의 대중이 지식인의 세계에 자유자재로 틈입(闖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정분야의 전문가를 자임하는 판검사와 정치인 같은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대중의 길을 걸으면서 여타 지식인 집단과 스스로 격절(隔絶)되고 있다. 격절이 일상화하면서 분야별, 부문별로 단절과 간극(間隙)이 생겨나고, 그 빈자리를 대중이 점령하는 형국이다.지식인이 대중을 추종하고, 대중이 지식인을 조종하는 나라의 미래는 없다. 대중추수주의와 포퓰리즘에 사로잡힌 일군의 어리석은 대중 정치인들의 뼈아픈 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2019-06-26

고르바초프의 교훈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1985년 3월 10일 소련 공산당 서기장 체르넨코가 서거하고, 이튿날 고르바초프가 54세 나이로 서기장에 취임한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가운데 1917년 10월 사회주의 혁명 이후 출생자는 고르바초프가 유일하다. 장로정치(長老政治)에 익숙한 소련은 젊고 역동적인 고르바초프에게 묵직한 과업을 부여한다.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내세운 레이건의 국방과 외교정책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소련내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역사적인 과업.케네디와 존슨, 닉슨을 거쳐 15년 넘게 2천억 달러를 쏟아 부은 베트남전쟁에서 참패한 미국은 1979년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의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을 수수방관해야 했다. 인권과 민주주의, 동서화합을 주도한 카터는 강력한 미국의 재생을 선언한 레이건에게 패배한다. 친기업과 부자감세, 작은 정부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레이건은 천문학적인 국방예산 증액으로 사회주의 심장부 소련을 압박한다.휘청거리는 제국을 물려받은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jka)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로 국내문제에 천착한다. 사회주의 체제를 온존하면서 국가재건을 도모하겠다는 것이 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이고, 각종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것이 글라스노스트다. 후자의 극명한 본보기가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다. 이전 권력자들 같았으면 감추기에 여념이 없었을 터이나, 고르바초프는 모든 것을 밝히도록 한다.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당면문제를 관료주의와 알코올중독, 두 가지로 압축한다.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 수리를 맡기면 동베를린에서는 3개월, 레닌그라드에서는 6개월, 모스크바에서는 1년이 걸리던 때. 끝없는 서류와 문건, 승인절차와 도장 따위로 일을 지연시키고 효율을 떨어뜨리는 관료주의. 복지부동과 상명하복으로 악명 높은 관료주의 척결과 국민의 30%를 넘어서는 알코올중독이 제국을 80대 동맥경화 노인으로 만들고 있었다.산적한 현안에 고르바초프가 골머리를 썩일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아제르바이잔 내부에 자리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해묵은 민족문제가 터진 것이다. 1988년 일이다. 이것은 이슬람의 아제르바이잔과 기독교의 아르메니아 사이의 종교분쟁이기도 하며, 훗날 유고연방에서 벌어진 보스니아 내전을 앞선 사건이기도 하다. 고르바초프는 이 문제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한다.사회주의 소련에서는 200여 종에 이르는 모든 민족과 종족이 동등한 지위를 가졌다. 소련을 구성하는 핵심세력은 대러시아, 백러시아, 우크라이나였지만, 헌법상 지위는 차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루지야 출신의 스탈린이 레닌의 뒤를 이을 수 있었다. 사회주의 원칙에 충실했던 고르바초프는 민족문제 발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실각과 제국의 몰락을 재촉하는 아킬레스건으로 작동한다.홍콩 시민들의 반중시위가 세계적으로 화제다. 중국 공산당 정부의 ‘송환법’에 저항하는 홍콩 시민들의 강력한 함성이 지구촌 곳곳을 달아오르게 한다. 중국이 원하면 홍콩인이나 홍콩을 방문하는 외국인까지도 중국송환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송환법의 요체(要諦)다. 이 법안이 관철되면 홍콩의 반체제인사와 인권운동가들이 중국본토로 송환되는데 악용될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홍콩은 1984년 등소평과 대처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에 따라 1997년 중국에게 이양된다. 홍콩 주권반환 이후 50년 동안 중국이 홍콩의 외교와 국방주권을 갖되 홍콩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이 일국양제의 고갱이다. 송환법은 그것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740만 인구의 홍콩을 14억 중국이 경시한다면 그것은 대만과 또 다른 일국양제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나아가 그것은 중국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고르바초프의 교훈이다.

2019-06-19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생각하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지난 6월 4일은 천안문 사태가 발생한 지 30주년 되는 날이다. 1989년 6월 4일 북경의 천안문 광장에서 언론자유, 법치주의, 사상해방 및 민주화를 요구하던 100만의 학생과 시민들에게 인민해방군이 무차별적으로 발포함으로써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1990년 중국정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희생자는 민간인사망 875명, 부상자 1만4천550명, 군인사망 56명, 부상자 7천525명이었다. 현대중국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이 천안문 사태다.천안문은 명-청시기에 국가의 주요 법률이나 명령을 공표하던 장소로 출전과 개선하는 군대를 황제가 맞이하던 장소였다. 천안문은 천명을 받들고 하늘을 섬겨 나라를 평안하게 하고 백성을 다스린다는 ‘수명우천 안방치민(受命于天, 安邦治民)’에서 유래한 것이다.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장소가 천안문이었고, 인민해방군 열병식이 거행되는 곳도 천안문이다. 이런 천안문에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학살이 자행된 것이다.천안문 사태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한다. 대약진운동(1958∼1960)의 실패로 권력상실의 위기에 몰린 모택동이 추진한 문화대혁명은 숱한 모순과 파탄을 경험하면서 10년 만인 1976년 그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린다. 모택동의 뒤를 이은 화국봉(華國鋒)은 모택동 사상을 국가의 기본 정강으로 설정하면서 체제유지에 몰두한다. 문화대혁명으로 박해와 탄압을 받은 공산당 원로들은 화국봉을 비판하고 등소평을 전면에 내세워 권력지반을 다져 나간다.실사구시(實事求是)와 사상해방을 내세운 등소평은 1982년 개혁적인 인물 호요방(胡耀邦)과 조자양(趙紫陽)을 총서기와 총리로 세우고, 자신은 중앙군사위 주석에 오름으로써 정권을 장악한다. 실질적인 등소평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등소평은 농업, 공업, 과학, 기술의 4대 현대화를 주창하면서 이른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설파한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지극한 실용주의 노선이다.오늘날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상품경제를 대거 도입함으로써 중국 현대화를 주도한 인물이 등소평이다. 그는 1985년 이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실시한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선행하는 개혁개방 정책을 담대하게 구체화한다. 중국의 신경제정책은 연평균 11%의 경이로운 성장으로 결실을 맺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다.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와 도시내부의 빈부격차가 그것이다.평등을 최우선 가치로 인식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소득격차는 체제에 대한 불만을 야기했고, 실업문제와 인플레이션은 그것을 가속화한다. 텔레비전과 개방정책으로 서방세계의 생활과 정치의식에 노출된 중국인들은 정치적 변화에 대한 소망을 품기 시작한다. 정치적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태동한 것이다. 그러나 등소평은 공산당을 통한 개혁과 개방만이 유일한 방도라고 확신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정치개혁과 변화요구에 소극적으로 임한다.이런 상황에서 1986년부터 시작된 대학생들의 시위는 1989년에 절정에 이르게 된다. 개혁파 지도자 호요방의 실각과 급사(急死), 조자양의 가택연금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발생한다. 동시에 등소평의 충실한 하수인인 이붕(李鵬) 총리와 양상곤(楊尙昆) 같은 보수파가 천안문에 모인 시민과 학생들을 향해 총포를 난사함으로써 천안문 사태가 촉발된다. 중국판 ‘피의 일요일 사건’은 이와 같은 일련의 역사적인 변곡점을 매개로 발생한 것이다.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아 중국정부는 검열과 사상통제를 강화했다고 한다. 세계 시민들은 중국의 비극적인 사건을 성찰하면서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천안문 사태와 같은 비극은 결코 반복되면 안 된다. 이것이 천안문 사태의 교훈이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근본 목적이다.

2019-06-12

21세기 양생법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공부 싫어하는 대학생을 위해 장자 ‘내편(內篇)’의 ‘양생주 (養生主)’ 첫머리를 인용한다. “우리 인생은 끝이 있지만, 앎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따름은 위태롭다. 그럼에도 앎을 추구함은 더욱 위태로울 따름이다.” 유한한 인생에서 무한한 지식을 추구하는 한계와 무의미를 지적한 대목이다. 태상노군(太上老君)과 달리 장주(莊周)가 백성의 무지를 주장하지 않은 사상가라는 점에서 이 구절은 낯설게 다가온다.끝없는 살육과 전쟁 그리고 백성의 피폐한 삶의 근원을 장주는 지식인의 탐욕에서 본다. 각종 방편과 책략을 가지고 제왕들에게 유세해 권력을 쟁취하려는 부박(浮薄)한 자들의 아수라판 전국시대. 전국 7웅이 투기장의 투사들처럼 죽을 때까지 싸워야 했던 암울한 투쟁의 시대. 그 시대에는 부국강병을 설파하는 지식인 무리 제자백가가 포진하고 있다.그들이 말하는 부국강병의 요체는 제도(帝道)나 왕도(王道)가 아니라 패도(覇道)였다. 요순시대의 태곳적 평화와 안빈낙도(安貧樂道)나 격양가(擊壤歌)의 방도가 아니라, 타방(他邦)의 궤멸을 전제로 아방(我邦)의 번영을 주장하는 투쟁이 패도다. 나라 곳간을 풍족하게 하고, 강성한 군대를 보유하게 되면 즉시 출병하여 이웃 나라를 병탄하는 전쟁에 돌입하는 부국강병. 그 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평민계층, 즉 백성이었다.백성이 고종명(考終命) 하려면 전쟁이 없어져야 한다. 전쟁이 없으려면 글줄깨나 읽은 지식인 집단의 선동과 책략이 사라져야 한다. 여기서 발원하는 것이 앎의 무한지평과 인생의 유한성 인식이다. 지식의 세계는 난바다처럼 그 폭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하되 몇 줌 안 되는 앎으로 혹세무민하는 식자(識者)들에게 날카로운 비난의 화살을 날린 장자.장주가 이런 결론을 내린 데에는 사기열전의 ‘상앙’ 같은 인물의 인생역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나라 효공(孝公)이 천하인재를 등용한다는 소문을 듣고 변법(變法)을 통한 부국강병책을 간하여 권력을 장악한 상앙. 전국 7웅 가운데 가장 취약했던 진나라는 상앙의 개혁으로 일약 강성대국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효공의 죽음과 함께 갑작스레 상앙을 찾아오는 ‘법가(法家)’의 몰인정과 비인정(非人情)의 결과는 거열형으로 종결된다.숱한 인민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도 능지처참으로 막을 내린 가혹한 드라마. 모든 것의 시발점은 권력에서 소외된 지식인의 욕망과 약소국 군주의 정치적 야망이었다.그들의 의기투합이 거대제국 진나라의 초석이 되었음은 자명한 사실. 상앙과 대진제국 사이참에 저잣거리에서 은둔했던 장주는 행복과 평안의 요체로 지식의 폐절, 지혜의 유폐를 주장한 것이다. 장주 자신도 ‘예미도중(曳尾塗中)’ 고사처럼 평생 출사하지 않는다.도보(徒步)로 세상사가 알려졌던 고대의 시간대와 광속으로 지구촌 일상이 전해지는 21세기는 질적으로 판이하다. 차고 넘치는 지식과 정보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갈피를 잡기도 버겁다. 욕망과 목표가 갈등과 파국을 낳고, 그것은 언어폭력과 막말의 무한반복을 잉태한다. 거기서 정치혐오와 정치인 기피증이 만들어진다. 반갑고 푸근한 소식은 끝내 찾기 어렵고, 처절한 절규와 투쟁의 저열한 목소리만 높아간다.이러매 조용히 눈 감고 생각해 볼밖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선지자들이 온 곳을 모르고, 그들이 간 곳 또한 알지 못한다. 언젠가 우리도 그리로 떠나야 한다. 이런 자명한 이치를 눈감아버리고 오늘도 헛헛한 투쟁으로 허우적댄다.잠시 눈감아보자. 나의 지금과 여기, 과거와 미래의 시공간을 돌이키자. 그리고 깊게 숨 쉬어보자. 21세기 양생법이다!

2019-06-04

삼독과 절사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조리스 위스망스는 소설 ‘거꾸로’(1884)에서 격절된 공간 ‘테바이드’를 찾아 나서는 염세주의자 제쎙트를 그려낸다. 주인공이 세상과 작별하고 고독과 은둔의 공간을 찾으려는 근저에는 쇼펜하우어의 명제가 자리한다. “지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녕 비참한 일이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하인들과 함께하는 시공간마저 최소화하는 제쎙트. 19세기 후반 프랑스 세습귀족의 후예가 절대고독을 추구한 배후는 무엇인가.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와 자본주의, 제정과 공화정을 줄타기하는 정치체제, 귀족과 성직자 계급의 몰락과 부르주아의 대두. 사회-정치적인 양상의 변화가 재촉한 시대풍조를 위스망스는 각박한 실용주의와 어리석은 감상주의(感傷主義)로 규정한다. 그는 귀족의 자리를 꿰찬 부르주아가 초래한 재능의 압살, 정직의 부정, 예술의 죽음을 애도한다. 제쎙트는 절규한다. “무너져라, 사회여! 제발 죽어라, 낡은 세계여!”소설의 주인공은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퇴폐와 타락, 방종과 지적 유희와 쾌락의 세계다. 일반대중은 물론 교육받은 부르주아도 엄두 내지 못할 도저한 경지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제쎙트. 그의 자발적인 소외와 칩거는 납득할 만하다. 30세 창백한 지식인이자 귀족인 그가 세상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전무 하기 때문이다. 염세주의와 이른 조락(凋落)으로 세상과 절연하고 싶은 주인공.21세기 세계는 개인을 홀로의 시공간에 방치하지 않는다. 똑똑한 전화기가 선사하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의 범지구적인 광통신은 빛처럼 빠른 속도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국가, 인간과 대륙을 연결한다. 언젠가 우리는 우주의 소리나 통신과 만날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크고 작은 외침과 깃발과 구호와 열망이 불타오른다. 어디서나 갈등과 대결이 피처럼 선명하다.끝없는 갈등과 대결은 개인과 사회와 공동체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다. 인간이 지상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의 근원을 붓다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라 갈파했다. 일컬어 ‘탐진치 (貪瞋痴)’ 삼독(三毒)이라 한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욕망을 제거하면 식물인간이 된다. 우리 모두 욕망의 수인(囚人)으로 살아간다.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까지 우리는 욕망한다. 문제는 그것이 욕망을 넘어 탐욕(貪慾)의 지경에 도달하는 것이다.돈이든 권력이든 지식이든 지나치게 욕망하면 탐욕이 된다. 이른바 ‘사로잡힌’ 인간, ‘귀신에 씌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탐욕에 사로잡히면 인간은 쉽게 분노하고 몹시 어리석어진다. 탐하는 것을 끝내 얻지 못하면 강력한 분노가 화산처럼 불끈 폭발하기 때문이다. 분노하는 인간은 관계와 사물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어리석음의 노예로 전락한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인간의 분노와 어리석음의 진원지는 탐욕이다.붓다는 삼독에서 생로병사 수비뇌고(愁悲惱苦)가 생겨난다고 가섭 형제에게 설했다. 그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공자는 네 가지를 하지 않은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무의 무필 무고 무아!’ 일컬어 ‘절사(絶四)’라 한다. “넘겨짚지 아니하고, 꼭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으며, 고집하지 않고, 나만 옳다고 내세우지 않는다.” 혼란한 춘추시대를 살았던 중니의 인생관이다.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주의를 실천한 것이다.세상의 갈등과 투쟁과 혼란과 아수라판을 만드는 것은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지식인 집단이다. 제 앞가림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국익이니 국민의 알권리니 운운하며 사리사욕과 붕당의 이익에 급급하다. 이제 됐으니 국회로 돌아가 백성의 고단한 삶을 돌아보고 민심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낡고 타락한 세계의 조속한 붕괴와 근본적인 쇄신을 소망한다.

2019-05-29

정치인의 언어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날마다 마주하는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직업은 무엇인가. 필시 정치인일 것이다. 정치의 요체가 분배에 있고, 그것의 실행주체가 정치인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정치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밑천은 무엇일까?! 자의반 타의반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국내와 세계정세의 변화양상을 보면서 가지는 의문이다. 무슨 자산을 가지고 정치인들은 지역사회와 국가,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하는 것일까.21세기 한국사회의 초석을 놓은 사람들은 노동자와 농어민이었다. 그들은 산업사회를 경과하면서 정치-경제적인 불평등과 소외를 우심하게 겪은 분들이다. 그들이 일궈낸 우골탑 (牛骨塔) 신화를 바탕으로 대졸자들이 양산되어 7∼80년대 수출역군이 된다. 그런 사품에도 사법-행정-외무고시가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그들이 한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한다. 오늘날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이른바 관료들은 ‘고시족’의 선배인 셈이다.일본과 한국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관료공화국’이라는 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을 터. 그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 국가를 논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관료들의 최종 목표지점은 장차관이며, 그것을 위한 교두보는 1급 국장이다. 실무야 5급 사무관이 하겠지만, 최종 결재권자 직전의 국장이 가진 힘은 막강하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정치는 관료들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가 핵심이다.한국사회의 최고 엘리트를 자임하는 관료집단을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방도는 정치인의 사회정의와 역사관, 그리고 언어일 것이다. 정치인은 기획하고, 관료는 실행하기 때문이다. 기획의 정점에 자리하는 것은 기획자의 역사의식과 사회정의이며, 그것은 오직 언어로 온전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정치인의 언어는 그가 가진 자산과 밑천의 최대치를 발현하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요컨대 정치인의 언어를 분석하면 그의 모든 것이 명확하게 현현(顯現)하게 된다.세간에 회자되는 ‘달창(달빛창녀단)’과 ‘문빠’ 그리고 ‘독재자’ 같은 어휘는 이른바 판검사 출신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왔다. 제1야당 대표자들이 대중적인 집회에서 박수와 환호갈채를 받으며 쏟아낸 반역사적이고 반지성적이며 거칠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우리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30년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폭력과 억압, 굴종과 투쟁의 시기를 지나왔다. 1980년 5·18 광주항쟁, 1987년의 87항쟁이 그것을 웅변한다.무명의 시민, 노동자와 농민이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뜨겁게 싸웠던 그 세월에 판검사 노릇했던 자들이 ‘독재와 독재자’를 논한다는 사실 자체가 실로 어이없는 노릇이다. 학살자들의 편에 서서 이 나라의 건강한 민중과 지식인을 투옥하고 중형을 선고했던 자들이 갑자기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달창’과 ‘한센병환자’ 운운하는 정치인들을 볼라치면 그들의 영혼과 정신이 새삼 궁금해진다.정치인은 몸이 아니라 언어로 자신을 드러낸다. 언어는 사유의 결과물이자 등가물이기에 언어가 빈곤한 사람은 사유가 부족하거나 결석해있다. 인간은 생각하기 위해 언어를 만들었고, 언어를 가지고 사유를 표현했다. 따라서 거칠고 비속하며 저급하고 공허한 말을 쏟아내는 정치인은 영혼과 지식의 창고가 텅 비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저 개인과 가문의 영광, 붕당(朋黨)의 이익을 위해 정치의 길로 나선 자인 것이다.언어의 빈곤은 사유의 빈곤과 동행하며, 양자는 행동의 빈곤과 위축을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그런 자들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듣고 본다.‘오디세이야’의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처럼 방향감각과 균형감각을 상실함으로써 파멸과 대면하게 된다. 수준 높은 대다수 한국인은 투철한 역사의식과 사회정의로 무장한 정치인을 고대한다. 막말과 우격다짐으로 한국정치를 희화화하는 저급한 수준의 정치인과 정말 작별하고 싶다.

2019-05-22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젊은 날 즐겨 불렀던 노래 가운데 ‘이 산하에’가 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과 1919년 3·1운동, 1930년대 만주의 항일 무장투쟁을 내용으로 하는 3절 노래다.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아프고 괴로웠지만, 눈부시게 빛났던 1987년 어느 여름날 새벽 거리에서 그 노래를 처음 들었다. 가사에 담긴 근현대 한국역사의 질곡과 해방을 절절하게 담아낸 ‘이 산하에’. 완창(完唱)하려면 10분도 넘게 걸리는 이 노래에 빠져든 것은 20대 청춘의 당연한 귀결이었다.유학시절 베를린 공대건물 야경꾼으로 일하러 가는 길에 나지막하게 부르곤 했던 ‘이 산하에’. 그것은 힘들고 지친 나를 위로하고, 주저앉거나 포기하는 것을 막아주는 든든한 요새이기도 했다. 귀국한 뒤에도 불렀던 노래는 제도적 민주화 성취와 평화적 정권교체 등으로 서서히 망각된다. 그러하되 언뜻언뜻 노랫말이 생각나 흥얼거렸던 ‘이 산하에’. 지난 11일 제1회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虐政)과 탐욕, 가렴주구로 일어난 민란의 형태로 동학농민전쟁은 불타오른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인내천’ 사상으로 무장한 녹두장군 전봉준은 일개 탐관오리 조병갑의 척살(擲殺)을 넘어서는 대의를 생각한다. 제세안민(濟世安民), 축멸왜이(逐滅倭夷), 진멸권귀(盡滅權貴) 등이 그것이다.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하며, 왜놈 오랑캐를 몰아내 박멸하고, 권세 있는 부귀한 자들을 멸절(滅絶)시키겠다는 내용이다.전봉준을 수장으로 하는 동학농민군은 1894년 5월 11일 정읍 황토현 전투에서 관군에게 대승을 거둔다. 전봉준은 여세를 몰아 북접의 손병희와 함께 한양으로 진군한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은 그해 11월 공주 인근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 연합군에게 패배하고 전봉준은 체포되고 만다. 동학농민전쟁 시기에 발발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조선의 운명은 백척간두에 서게 된다. 이후의 역사는 독자 여러분 모두가 아시는 바와 같다.2019년 5월 11일 기념식에서 이낙연 총리는 125년 만에 정당하게 역사적인 평가를 받은 동학농민혁명을 여러 갈래로 회고한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이 프랑스 대혁명 같은 서유럽의 근대혁명에 버금가는 대규모 민중항쟁이자 반봉건 민주주의 운동임을 밝힌다. 당시 동학농민들은 부패한 지배세력과 탐관오리의 가렴주구를 철폐하고 양반과 상민, 주인과 노비,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했다고 덧붙인다.이 총리는 동학농민혁명이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임을 강조한다. 청일전쟁 승리를 바탕으로 경복궁을 무단 점거하고 국정을 농단하던 일본세력을 축출하려는 운동이 동학농민전쟁임을 말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동학농민혁명이 불붙인 민족의식을 지적한다. 기미년 3·1 만세운동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동학교도는 15인, 그 가운데 9인이 농민전쟁 참가자였다.동학농민운동 정신은 연면부절(連綿不絶)하게 이어져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으로 나타난다. 국가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놓일 때 민초들이 동학농민들의 잠재적 후예로 출현하여 나라를 구해낸 것이다.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이나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으로 외연을 확장해온 동학농민운동. 그런 뜻깊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되살려내는 작업은 우리의 어린것들과 미래를 위해서도 적실(適實)한 일이다.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개인과 사회, 공동체는 반드시 절멸한다. 패배와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는 끝내 파멸의 나락과 대면한다. 그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내려주는 선물이다. 승리와 패배, 성공과 실패, 영광과 오욕(汚辱)은 기실 종이 한 장 차이일 뿐! 장쾌한 역사적 안목과 통찰을 가지고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기획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우리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이 아닐 수 없다.

2019-05-15

석현 박은용과 한국화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누구에게나 약점이 있다. 나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그림이다. 수많은 인간적인 결함도 그렇지만, 지적인 능력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그림 그리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고교 시절까지 그림숙제를 형이 대신해주었을까?! 나무나 꽃을 스케치하는 것도 힘들고, 사람이나 개와 같은 대상을 그려보면 아예 비슷하지도 않다. 내가 자신 있게 그릴 수 있는 유일한 형상은 귀신 그림이다.서두가 장황한 데에는 까닭이 있는 법. 지난 4월 30일 광주 ‘무등 공부방’에서 특별한 경험을 한 때문이다. 박종석 화가의 강연 ‘검은 고독, 푸른 영혼’을 보고 들은 것이다. 강연의 주인공은 진도에서 나고 자란 한국화가 석현 박은용(1944∼2008)이었다. 귀밑머리 세도록 들어보지 못한 박은용 화백 이야기. 6·25 전란 중에 부모와 일가친척의 참혹한 죽음을 예닐곱 나이에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개인사로 시작한 강연.석현은 그날 이후 학살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평생을 살았지만, 그로 인한 심리적 외상(外傷)을 평생 안고 살았다 한다. 분단과 전쟁의 서슬 퍼런 상처로 굴곡진 인생살이를 살아야 했던 신산(辛酸)한 운명. 그럼에도 석현은 생의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았고, 그림으로 자신의 성성한 성정과 인고의 날들을 담았다 한다. 강연제목이 ‘검은 고독, 푸른 영혼’인 연유는 거기 있다. 죽음과도 같은 절대고독 속에서 피워낸 눈 시리도록 시퍼런 영혼!한국의 미술교육이 서양에 경도되어 있었기에 나는 서양화에 익숙한 편이다. 원근법을 발견한 이후 서양화가들이 보여주는 선연한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 매혹적이기도 했다. 성서와 신화의 세계 그리고 유럽인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낸 그들의 그림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정황이 인상파 등장 이후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이제 우리는 ‘포스트모던’도 낡아져버린 21세기 시공간에 거주하고 있다.서라벌예대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하루 20시간 데생에 몰두했던 석현은 어느 사품엔가 한국화로 방향을 전환한다. 강연에서 만난 석현의 그림은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었다. 박종석 선생에 따르면, 석현은 적어도 2만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가운데 몇 점이나 살아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훗날 화순의 두강마을에 정착해 혼신의 힘으로 이 나라 산야와 민초들의 나날을 따뜻한 필치로 그려낸 석현 박은용.1568년 피터 브뤼헬이 그린 ‘장님의 우화’에서 나는 루터의 종교개혁 50년 세월의 허망을 독서한다. 프랑스 군대가 마드리드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담은 프란치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에서는 신의 부재와 냉정한 무관심을 읽는다.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에 드러난 전쟁의 참상에도 신은 결석한다. 그래서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적인 노력과 지극한 헌신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 그런데 석현의 그림은 다른 세계를 열어젖힌다.2006년에 석현이 그린 ‘귀로’를 보자. 소장수가 큰 뿔을 가진 황소 세 마리를 데리고 담배를 피우며 느긋하게 걸어간다. 그 주변에 생선꾸러미와 작은 보퉁이를 둘러맨 두 사내가 걸음을 옮긴다.‘귀로’에서 내가 주목하는 대상은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젊은 아낙이다. 머리를 질끈 동인 그녀의 광주리에는 닭 두 마리와 오리가 들어있다. 노란 옷을 입은 아이가 평온한 얼굴로 그녀 등에 업혀 있다. 삶을 향한 그녀의 갈망은 광주리를 움켜쥔 두 손과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 같은 생명들과 이목구비 뚜렷한 아이로 형상화돼 있다.‘귀로’는 한국농촌의 장날풍경과 훈훈한 정감을 소환한다.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까까머리 소년의 어린 기억이 환하게 살아오는 환각을 본 것이다. 그래서일까?! 굳이 한국화와 동양화의 경계와 근거를 물었던 어리석음을 새삼 반추하는 까닭은!

2019-05-08

대구시민대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올해도 어김없이 숲은 일어서고 있다. 초록과 연두(軟豆)로 무장한 신록의 나무들이 팽팽하게 봉기하는 4월과 5월의 숲.이영도 시인은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爛漫)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간 젊은 같은 꽃사태”로 절창(絶唱)‘진달래’를 시작한다. 4월 혁명으로 산화해간 이 나라 청춘들의 붉은 피와 산야에 하염없이 피어나는 진달래를 대비한다. 오랜 세월 응어리진 한이 일순 터지듯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의 개화를 선연히 드러내는 것이다.해마다 봄은 그렇게 온다. 시인이 진달래를 바라보는 것처럼 나는 초록 초록한 색으로 산마루를 치달려 오르며 일어서는 숲을 예찬한다. 그것은 분명 지난 겨울 추위와 눈보라와 설한풍(雪寒風)을 이겨낸 자들의 장려(壯麗)한 저항의 결실일 터다. 이즈음 이 나라 산천을 돌아보는 것은 자연이 베푼 위대한 축복을 확인하는 일이다. 살아있음을 명명백백하게 확인하는 환희의 순간이 바야흐로 우리 곁에 있다.다정다감한 김영랑 시인은 울안의 모란으로 봄날의 서정을 그려냈으되, 눈 들어 먼 산 바라보면 거기 또 다른 봄의 일어섬이 있다. 혹자는 봄날에 꽃을 보며 찬탄하지만, 나는 일어서는 숲과 봉기하는 산야에 경탄한다. 거역할 수 없는 뭇 생명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침묵의 환호는 얼마나 깊고 웅장하며 창대한가?! 사계의 운항법칙에 순응하는 초목의 생동은 해마다 인간세의 번다함과 유한함을 깨우치곤 한다.2017년부터 시작된 ‘대구시민대학’이 올해로 세 해를 맞았다. 불초한 나도 인문학 강연 한 자락에 이름 올린다. 4월 25일 한반도를 노려보는 대륙과 해양세력이라는 제목으로 대구 시민들을 만났다. 대구시청별관에 마련된 강연장에는 200여 청중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순(耳順) 고비를 넘긴 분들이 다수였으나, 간간이 젊은 축들도 강연에 몰입하여 아연 흥미로운 이야기 마당이 펼쳐진다. 대구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사념.처절하게 실패한 역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중심으로 일본과 청나라의 침략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무능한 왕과 부패한 벼슬아치들의 행악질로 사그라지던 나라의 명운을 건져낸 임란의 의병들이 무명의 백성이었음을 밝힌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황태극 앞에 온몸과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인조의 참혹한 몰골과 ‘환향녀(還鄕女)’와 ‘호로자식(胡虜子息)’을 말한다. 실패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왕조의 붕괴는 필연의 결과였는지도 모른다.21세기 우리도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병자호란을 다룬 ‘최종병기 활’(2011)은 가공인물 ‘남이’를 등장시켜 747만 관객을 동원한다. 조선 신궁으로 이름을 떨치던 남이가 ‘육량시(六兩矢)’로 무장한 청의 명궁 쥬신타를 혼내주는 허무맹랑한 영화. 반면에 김훈 작가의 소설원작에 기초한 ‘남한산성’(2017)은 385만 관객을 불러 모은다. 우울하고 참람(僭濫)한 실패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완미(頑迷)하고 썰렁한 객석.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아는 것이다”(논어, 위정편)라고 갈파했다. 말을 바꾸면 이쯤 되리라. “실패한 것을 실패했다고 하고, 성공한 것을 성공했다고 하는 것, 그것이 성공하는 것이다” 실패를 외면하고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우리는 멀리 나아갈 수 없다. 패배를 인정하고 그것의 원인과 과정 및 결과까지 통렬하게 성찰해야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이다.시민들에게 나는 힘주어 말하고자 했다. 우리는 미-중-일-러 사이에 낀 새우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최소 돌고래다. 우리만 우리의 힘과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우리 국민이 하나 되어 만들어온 결과다.대구시민대학 강연장을 나서는 청중들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워 보였다. 이참에 시민대학을 개설한 대구시에 재삼 감사와 축복을 전하고자 한다.

2019-05-01

광주에서 대구를 생각하다!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무등산 자락에 자리한 작은 원룸에 둥지를 튼 지 어느덧 두 달. 경북대와 전남대 교환교수제에 따라 광주에서 1년을 보내기로 한 때문이다. 광주와 대구의 거점 국립대학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남대와 경북대. 그동안 학생교류는 지속적(持續的)으로 진행됐으나, 교수교류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경북대와 전남대 양교 총장이 교환교수제에 합의함으로써 실질적인 교류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거기에 첫 번째로 동승(同乘)한 셈이다.예전에 민교협 회의나 국교련 회의차 광주에 들른 적은 있지만, 장기체류는 이번이 처음이다. 관찰자나 관광객이 아니라, 거주민의 한 사람으로 광주를 살펴봄은 초로(初老)의 인생살이에 하나의 전환점이 되리라 희망한다. 역마살 탓인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나라 곳곳을 떠돌며 지난 20년을 살아왔다. 자동차로 획득한 이동의 자유와 떠돌고자 하는 욕망에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닌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사계절 정착민으로 광주에 머물고 있다.대구나 광주, 어딜 가나 눈에 밟히는 것은 시장이며 노점상이다. 거주지 부근에 있는 말바우 시장은 2, 4, 7, 9일이 장날이다. 열흘 가운데 나흘이 장날인 셈이다. 그때마다 길거리에 영감과 노파들이 노점(露店)을 펼치고 줄지어 앉아들 있다. 쑥과 냉이, 달래에서부터 양배추와 대파, 각종 한약재 등속을 펼쳐놓고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얼마 전에는 홍어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양동시장에도 들렀다. 노점은 거기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러다가 대구의 크고 작은 재래시장이 떠올랐다. 그곳에 터를 잡은 숱한 노점상들의 모습과 매무새가 새삼스레 기억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도처(到處)에 깔린 24시간 편의점과 각종 마트와 슈퍼마켓, 소규모 점방과 대규모 할인매장들이 두 도시의 닮은꼴을 형성한다. 간간이 들려오는 누추하고 낡은 트럭의 녹음방송이 광주와 대구의 친연성을 강조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렇게 고단한 나날을 영위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상념이 찾아든다.거리거리에서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노인들의 행장(行狀)도 광주나 대구나 매한가지다. 빈자는 어디에도 있고, 그들의 팍팍한 삶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하되 대구와 광주는 확연히 다르다. “기억하고 행동할게요” 현수막이 내걸린 문흥초등학교 정문. 4·16 세월호 대참사 5주기를 추념(追念)하는 노란 현수막.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광주에 정착한 데는 까닭이 있다.‘무등 공부방’에서 열린 김용운 선생 초청강연 진행자는 대구의 성리학과 광주의 실학을 대비하여 말한다. 과거를 투영하는데 거금을 들이는 대구와 소액을 미래에 투자하는 광주의 차이를 지적하는 것이다. 영광스러운 조선의 성리학과 빛나는 과거와 벼슬자리와 가문을 추억하는 대구와 실패한 조선의 성리학과 민초들의 신산(辛酸)한 삶과 미래를 떠올리는 광주. 아마도 그런 차이가 5.18 민중항쟁의 광주와 간첩과 폭도 운운하는 대구의 차이일지도 모른다.지난주에 문을 연 산수동의 인문연구원 ‘동고송(冬孤松)’ 창립대회는 은성(殷盛)했다.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의 ‘향원익청(香遠益淸)’ 출판기념회를 겸한 개원식에 60명도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가난한 지역 문사들의 후원을 자처한다. 1980년대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폭력적인 군부정권 아래서 12년 도피 생활을 했다던 황광우 소설가가 잠시 운을 뗀 지난날의 회억(回憶)은 참으로 따스하고 인간적인 것이었다.대구에서 광주로 올 때 어떤 분들은 대구에 없는 ‘무등 공부방’을 아쉬워했다. 반면에 대구에는 ‘지식과 세상’이나 ‘대경인문학협동조합’ 그리고 ‘가락 스튜디오’같은 곳이 있다. 그런 단체와 기관이 서로 어울려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화합과 상생, 과거와 미래를 터놓고 논하는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도 뜻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4월 하순의 상념이다.

2019-04-24

“이제 징글징글해요!”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4월 16일 노란 ‘세월호 대참사’ 추모배지를 달고 거리에 나선다. 어언 5년 세월이 지나갔다. 5년 전 그날 저녁 구들방에 군불을 지피다가 뒷집 할머니에게 들은 참사는 차마 믿을 수 없는 전갈이었다.촌동네로 이사한 지 한 달 만에 들은 천붕(天崩) 같은 소식. 지금이나 그 시절이나 텔레비전이 없기에 세상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확인한다.당시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보여주던 흉악무도함 때문에 세상사와 절연하고 살아가던 터라 참사소식은 상상을 절(絶)하는 것이었다. 열여덟살박이 고2 학생들만 250명을 수장시킨 희대의 참극. 내가 ‘세월호’ 유가족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의 목숨 건 단식에 2박 3일 동참한 일, 진도 팽목항을 찾아 304명 위폐에 분향하고 명복을 빈 일, 경북대 콜로키움에서 희생자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고작이다.강의실에서 “벌써 5년 전이로구나!” 했더니 학생들이 이내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올해 신입생들이 19학번이므로 당시 고2였던 단원고 학생이 대학생이 됐다면 16학번, 4학년이 됐을 것이다. 인간이라 생각할 수 없는 행악질과 패륜이 자행됐던 지난 5년의 세월. 그것을 묵묵히 견디며 유가족들은 지난 3월 18일 광화문에 설치됐던 ‘세월호’ 천막을 철거하기에 이른다.그리고 불과 1개월 지난 시점에 터져 나온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들의 폭력적인 망언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 금하기 어렵다. 차명진은 4월 15일 페이스북에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처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처먹는다”는 글을 남겼다. 정진석은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거죠. 이제 징글징글해요”라는 동조(同調) 글을 올렸다.그들의 언어에 담긴 핵심은 ‘자식들과 세월호를 징하게 회 처먹고 우려먹는’ 유가족과 현 정권에 대한 조롱과 짜증과 분노다. 그들에 따르면 ‘세월호’ 유가족은 5년째 자식들의 시체장사를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자식들의 시체를 ‘회로, 찜으로, 뼈까지 우려내먹는’ 희대의 악마로 단원고 학부모들을 몰고 가는 자유한국당 의원들! 그들의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 권력과 집권여당의 정치·경제적 이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인간으로서 최소한도의 품격과 절제와 사유의 언어가 결석한 자들이 나라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자리에 있다니, 정녕 놀라운 일이다. 그들의 언사에서 일본 수상 아베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었을까?! 한국정부가 툭하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치 쟁점화 하여 한일관계를 왜곡한다는 그자의 언사. 식민지 조선의 여성을 성적으로 노예화한 자신들의 범죄행각에 대한 반성과 사죄는 고사하고 ‘또 위안부냐’ 하는 투의 신경질적이고 짜증스러운 반응!!우리가 역사를 거론하면서 과거를 반추함은 거기서 얻어내야 하는 교훈 때문이다. 패망한 나라의 유랑민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민초들의 처참한 형극(荊棘)의 길을 떠올려 재발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말하고, 그것을 돌이키는 것은 또 다른 참사를 미연에 예방하고자 함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502명이 숨지는 참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대한민국 정부와 무소불위 최고권력. 언제까지 이런 대규모 참사를 되풀이할 것인가, 하고 국민들은 준엄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너무도 슬프고 괴로운 백발의 유가족들에게 ‘회 처먹고, 찜 쪄먹고, 뼈까지 발라먹는’다고, ‘이제 그만 우려먹으라고, 징글징글하다’고 말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보다 의원자리와 대통령이 더 소중한 그자들. 우리는 당신들이야말로 정말 징글징글하다!

2019-04-17

산불과 식목일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봄날이 산야를 초록으로 물들이는 시기의 불청객이 산불이다. 녹음(綠陰)이 대지를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4월의 건조함은 산불이 퍼지기 좋은 조건이다. 여기에 강풍이 불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다. 2000년 4월 7일 임야 2만3천 헥타르를 태우고, 재산피해 1천억과 이재민 850명을 만들어낸 고성산불을 기억한다. 천년고찰 낙산사를 태워버린 2005년 4월 4일 양양산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지난 4월 4일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에 산불이 났다.동해가 고향인 지인이 보내온 휴대전화 사진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무너져 내린 기왓장들이 켜켜이 쌓여있고,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벽체만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문틀과 창틀은 검게 그을려 흉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푸른 하늘 아래 꼿꼿하게 서있는 침엽수림의 몸체도 검게 타들어간 상처가 역력하다. 민가를 할퀴고 간 화마(火魔)의 상흔은 너르고 깊다.지인은 부친의 산소가 걱정되어 고향을 찾았는데, 정작 친구의 집이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를 위로하며 낮술 먹고 있다는 전갈에 유구무언이다. 언론에서는 산불진화에 공을 세운 산림청 ‘특수진화대’와 소방관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산림청 특수진화대는 일당 10만원을 받고 불을 끄는 비정규직이다. 이참에 그들을 정규직으로, 지방직인 소방관직을 국가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위에 적시(摘示)한 날짜가 공교롭다. 4월 4일과 4월 7일. 기시감이 없으신가?! 그렇다. 4월 5일 식목일 전후한 날이다. 요즘에는 식목일이 공휴일도 아니고, 식목행사가 대대적으로 행해지지도 않는다. 주5일제 40시간 노동이 일반화되면서 2006년부터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이다. 더욱이 나무를 심기 좋은 시기는 4월 초가 아니라, 3월 중순이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해방이후 한반도 평균기온이 2∼4도 상승한 때문이다.나무는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키우는 일도 그만큼 종요롭다. 자식농사의 핵심이 잘 키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중학교 다니면서 해마다 워커힐 부근 아차산에서 송충이를 잡았다. 식목일 전후로 모든 학생이 도시락 싸들고 아차산 입구에 모이는 것이다. 배급받은 나무젓가락으로 어른 검지나 장지 크기의 송충이를 2-3가마 잡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송충이를 잡고 나면 우리는 풀독과 쐐기 통증으로 고생해야 했다. 양호실에서 발라주는 암모니아수가 치료의 전부였지만 크게 괴로운 줄도 몰랐다. 아차산 인근을 지나칠 때면 짙푸른 녹음으로 뒤덮인 산세에 내심 흐뭇하다. 저기 어딘가에 어린 시절 우리의 땀이 서려있지 아니한가, 하는 것이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외삼촌에 등장하는 아스트로프가 나무를 만지면서 느끼는 소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일제의 가혹한 약탈과 6·25 한국동란, 그 후의 무분별한 벌목으로 흉물스러웠던 우리의 산야는 면모 일신했다. 대한민국은 핀란드, 일본, 스웨덴의 뒤를 이어 세계4위의 산림강국이다. 국토전역이 초록으로 넘쳐나는 조림(造林)의 나라가 된 것이다. 아프리카 신생국가들도 조림을 배우러 일본이나 도이칠란트가 아니라 한국을 찾는다. 식민지배를 경험한 나라 가운데 한국처럼 신속하고 성공적으로 조림에 성공한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봄철이면 되풀이되는 산불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너무 안이하다. 이번 산불을 교훈 삼아 소방헬기를 즉각 도입하고, 산불진화에 헌신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으면 한다. 아울러 산불과 관련한 일부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인신공격과 정치공세는 완전 진화·소멸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화마보다 처참한 것이 무책임한 험담과 폭언이므로!

2019-04-09

한국판 ‘푸거’는 가능할까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나이 들어 세상과 인간을 들여다볼라치면 문득 허망해질 때가 있다. 인간과 세상에 드리워진 선명한 모순의 그림자 때문이다. ‘사랑’과 ‘이차돈의 사’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 나는 춘원(春園)의 필력에 감읍했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극복하고 지고지순한 사랑과 지극한 도에 이르는 인물을 형상화하는 대가의 솜씨. 훗날 그가 봉은사에 칩거하며 썼다는 반성문 ‘산중일기’도 친일부역의 흠집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의 망연자실함이라니!15-16세기 신성로마제국 신민(臣民)으로 거부(巨富)가 된 야코프 푸거(Jakob Fugger)라는 인물이 있다. 푸거는 아우그스부르크의 평민 출신으로 젊은 시절 베네치아에서 금융과 복식부기를 배운다. 유럽의 근대 혹은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요소로 우리는 원근법, 대학, 아르스 노바, 기계시계, 금속활자 등을 거명한다. 하지만 일상생활과 긴밀하게 연결된 복식부기를 빼놓을 수 없다. 루카 파촐리(Luca Pacioli)는 1494년 ‘산술집성’에서 복식부기를 다룬다.파촐리가 이론적으로 복식부기에 접근한 수도사이자 수학자였다면, 속세의 장사치 푸거는 세계교역의 중심지 베네치아에서 복식부기를 배우고 익힌 인물이다. 근대적인 은행업의 본산 베네치아에서 장사에 눈을 뜬 푸거는 제국의 변방 아우그스부르크가 좁다하고 활동영역을 넓혀간다. 직물업, 은행업, 광산업에 손대고, 정치와 종교와 결탁하여 고리대금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1525년에 타계했을 때 그가 소유한 부는 유럽 총생산의 2%에 이르렀다고 한다.헝가리 구리광산을 경영하면서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노동 선동가를 처형하는 악행도 서슴지 않은 푸거. 그는 마인츠 대주교 선정과 관련하여 교황 레오10세와 결탁해 면죄부 판매이익 절반을 챙기기도 한다. 고로 루터의 종교개혁 여파로 발생한 독일농민운동 (1524-1525) 과정에서 푸거가 공격의 표적이 된 것은 이상하지 않다. 정작 이상한 일은 그토록 돈에 집착한 푸거가 세계최초의 사회복지주택 ‘푸게라이(Fuggerei)’를 지었다는 사실이다.그는 1521년에 5만㎡ 부지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단거주시설을 건설한다. 두 채의 집으로 시작한 푸게라이는 오늘날 67동의 건물 142가구를 포괄한다고 전한다. 푸게라이 거주요건은 가톨릭 신자로서 하루에 세 차례 기도를 하고, 연 0.88유로의 집세를 내면 된다고 한다. 1년에 1천300원의 집세로 거주 가능한 녹지(綠地)와 아늑한 방과 마당이 딸린 집단거주시설! 푸거는 그런 시설을 500년 전에 생각해내고 구현한 인물이다.그의 동시대인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가 1516-1517년에 그린 푸거의 초상화를 보면 뭔가 짚이는 것이 있다. 이지적으로 보이는 넓고 단단한 이마, 먼 곳을 응시하는 단호한 두 눈, 얇지만 꼭 다물려 있는 입술, 강력하게 발달한 굵고 두툼한 목. 그가 입고 있는 검정색 겉옷과 자줏빛 숄은 거부의 옷차림이 아니라, 경건한 수도사나 구도자의 옷처럼 보인다. 돈으로 한평생 정치와 종교를 주무르고, 세계최고 갑부가 된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래서일까. 나라도 하지 못한다는 가난구제에 나서서 ‘푸게라이’를 지은 모순적인 행태를 보인 까닭은. 뜬금없이 500년 전 유럽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가 아직도 낯설어하는 보편적 복지나 토지공개념 같은 공적 영역의 담론과 실천부재 때문이다. 유럽의 보편적 복지나 무상교육을 부러워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여지없이 청와대 대변인의 사퇴와 장관 후보자 낙마(落馬)로 허망하게 종결된다.삼성총수의 개인주택 2채의 공시가격이 736억원이며, 보유세 합계만 12억원이라 한다. 돈 많이 벌어 호화로운 집을 사지 않고, 가난뱅이들을 위해 공공주택을 지은 푸거와 현저한 대비(對比)가 아닐 수 없다. 이참에 한국의 부자들, 권력자들, 지식인들은 조금만이라도 돌아보면 어떨까?!

2019-04-03

‘줬다 뺏는’ 기초연금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분노한 촛불이 새로운 권력을 탄생시킨 지 어느덧 2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간다. 2016년 늦가을부터 2017년 신춘에 이르는 장정(長程)으로 우리는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무장한 대통령과 집권세력을 교체했다. 그것은 낡고 타락한 지배권력을 일소하고,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의 본령에 충실하라는 국민들의 지상명령이기도 하다. 백성이 주인이며, 모든 사람의 입에 쌀밥이 들어가는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다.사정이 그럴진대 실제 돌아가는 상황은 그다지 탐탁지 않다. 세간에 떠도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기초연금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만65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국가가 설정한 소득기준금액 이하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노인에게 제공하는 돈을 기초연금이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소득하위 20% 노인들에게 월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했지만, 다음달부터 30만원으로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좋은 일이되, 호사다마(好事多魔)인가?!보건복지부 추산에 따르면, 월30만원의 기초연금 수급대상 노인은 154만 명 정도라 한다. 그 가운데 정부에게 생계급여를 받는 37만명에게는 일명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 되리라 전한다. 3월까지는 월20만원을 줬다 뺏고, 4월부터는 30만원을 줬다 뺏는다는 것이다. 돈 1만, 2만원이 아쉬운 노인들을 대상으로 국가가 이렇게 무책임한 행정을 일삼는 것은 문자 그대로 적폐 자체이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야기한다.‘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해결은 2016년 민주당의 국회의원 총선거 공약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2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2018년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기초수급 노인들에게 월10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방안에 합의했지만, 본회의에서 좌절되었다. 거기 소요되는 예산은 고작 4100억 원이다. 왜 ‘고작’인가?! 2019년 예산총액은 470조원에 달한다. 전체예산의 0.1%도 되지 않는 미미한 액수의 예산확보에도 실패한 집권여당은 대체 무엇하는 집단인가?!한국노인들의 빈곤비율은 2015년 기준 46%에 이른다. 100명 가운데 46명이 빈곤선 아래서 살아간다는 얘기다.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평균 빈곤비율은 12.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지역구 예산확보에만 눈이 벌개져서 수천억 예산을 막판에 끼워 넣어 지역구에 ‘투하’하는 식으로 국민세금을 탕진(蕩盡)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아침저녁으로 우리가 듣고 있는 ‘적폐 중의 적폐’가 아닐 수 없다.대통령과 장관들은 툭하면 ‘포용적 복지국가’를 말한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그대로 놔둔 채 포용적 복지국가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가진 자들을 위한, 가진 자들의, 가진 자들에 의한 포용적 국민국가인가, 되묻고 싶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자와 졸개들을 내친 까닭은 정반대되는 세상을 염원했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한 무리를 준엄하게 징벌한 까닭도 민주공화국을 염원한 때문이다.‘적폐’라는 것은 과거에 누적된 폐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적폐는 ‘지금과 여기’에서도 끊임없이 생산되고 축적되어 우리의 미래와 다음 세대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다. 가난한 노인들에게 월10만원도 제대로 보태주지 못하는 정권은 우리가 꿈꾸고 염원한 권력이 아니다. 누군가는 말한다. 대통령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을 개정하면 기초연금 수급이 보장될 수 있다고. 국민들은 크고 엄청나며 역사적이고 미증유의 거대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김학의, 장자연, 버닝썬, 그런 문제를 정의롭고 합당하게 해결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하되 당장의 생계가 아득한 노인들과 사회최하층 국민을 따뜻하게 보듬고, 그들에게 따사로운 밥과 옷과 집을 마련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적폐청산이자 사회통합 아닐까?! “줬다 뺏는 기초연금, 당장 해결하라!”

2019-03-27

‘시’를 보다 ‘시(詩)’를 생각하다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이창동 감독은 과작(寡作)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97년 ‘초록 물고기’로 데뷔했으니 2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그는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을 연출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는 관객동원 면에서는 열세를 면치 못한다. 2007년 전도연이 ‘밀양’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덕에 160만 관객이 들었을 뿐, 여섯 편 관객이 340만이 안 된다. 자고 나면 천만 영화가 나오는 세상에 희귀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얼마 전에 윤정희가 주인공으로 나온 ‘시’(2010)를 다시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치매 초기 단계의 초로(初老) 여인 미자가 어린 시절 꿈이던 시 쓰기에 도전한다. 동네 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시 강의에 떼를 쓰다시피 해서 수강하는 미자. 강사인 김용탁 시인은 ‘시는 일상 곳곳에 있으며, 시상(詩想)을 구하려면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애정을 가지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공책을 들고 다니면서 시상을 찾아 헤매는 미자는 아름답다.문제는 미자의 일상이 녹록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창동 영화가 그렇듯 미자에 관한 정보는 전혀 넉넉지 않다. 이혼하고 홀로 부산에서 살아가는 딸이 하나 있고, 그녀 소생(所生)의 외손자를 데리고 사는 66세의 미자. 중3 종욱이는 또래 아이들과 다를 게 하나 없는 천둥벌거숭이다. 게임과 전화기와 늦잠과 짜증에 익숙한 종욱. 그런 연장선 위에서 종욱은 친구들과 함께 같은 학교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한다. 여기서부터 ‘시’는 종잡기 어려운 길을 간다.‘시(詩)’는 문자 그대로 절집의 언어다. 절제와 은유와 깊이와 혜안(慧眼)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시 쓰는 일이 가능해진다. 빛나던 20대 청춘 호시절에 나도 시를 쓰고자 했다.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으되,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대상(對象)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도 없었고, 깊이 있는 사유와 인식에 이르는 독서도 태부족했다. 무엇보다 시를 쓰고자 하는 욕망의 최종지점이 부재했으므로, 물러섬에 거리낌이 없었던 탓이 크리라.시는 혁명가의 몽상과 더불어 창공 너머로 아스라이 사라져버린 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시인들의 평전과 시집을 언제나 품고 다녔다. 그들의 시를 읽고 여러 번 고쳐 읽으면서 시를 기억하려 노력했다. 소설가 정한숙 선생은 “시는 기억하지 않으면 제맛이 안 나!” 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래서일까?! 난 적잖은 한국시와 시조(時調)와 한시(漢詩)를 기억한다. 특이한 것은 러시아 시인들의 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아흐마토바의 ‘저녁에’와 예세닌의 ‘귀향’, 기피우스의 ‘바느질하는 여인’ 같은 시편을 즐겨 읽으면서도 오래 기억하지 못함은 무슨 연유일까?! 그렇지만 러시아 시인들이 보여주는 섬세함과 애틋함, 안타까움과 의식의 전변(轉變) 같은 것은 독자인 나를 언제나 격동(激動)시킨다. 참 잘 쓰네, 하는 찬탄이 절로 나온다. 아마도 내가 시를 쓰지 못한 결정적인 까닭은 재능이 없어서일 것이다.영화에서 시인은 말한다. “요즘은 시가 죽어버린 시대에요. 아무도 시를 읽지 않고, 시집을 사지도 않잖아요?!” 시를 읽지도, 시집을 사지도 않는 시대에 청춘들은 무엇으로 세월과 만나는지, 언제나 그것이 궁금하다. 술도 안 먹고, 책도 읽지 않고, 시는 못 본 척하고, 시대와 역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무엇이 21세기 우리의 청춘들을 설레게 하는가! 취직인가, 성적인가, 게임인가, 영화인가, 사랑인가. 종잡을 수가 없다.2500년 전에 중니(仲尼)는 ‘불학시 무이언’이라 설파했다.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쓸 말이 없다는 얘기다. 시를 통째로 기억해 자신의 언어로 삼았던 고대의 선비들은 그것을 길잡이 삼아 평생을 살아갔다. 곧 4월이 오면 이영도의 ‘진달래’가 시나브로 떠오를 것이다. 매화가 채 지기도 전에, 벚꽃이 아직 피기도 전에 나는 ‘진달래’를 그리워하고 있다.

2019-03-20

불평등과 천지불인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도덕경’ 제5장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전복시킨다.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간략하게 번역해보면 ‘하늘과 땅은 인하지 않아서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성인은 인하지 않아서 백성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천지를 다른 말로 바꾸면 자연이 된다. 인간을 둘러싼 자연에 내재한 불편부당과 무심을 강조하는 말이 천지불인이다. 노자의 사유에 따르면, 자연의 본원적인 속성은 ‘인하지’ 않다는 것이다.2011년 3월 11일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은 진도 9.0의 강진으로 1900년 이후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이었다 한다. 1995년에 일어난 진도 7.8 고베지진의 180배 위력을 발휘했다고 하니 그 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대지진의 여파로 사망-실종자가 2만 5천명을 넘고, 피해주민이 33만명을 헤아린다고 하니 지진피해가 흔치 않은 한반도 거주민의 상상을 뛰어넘는 재해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런 참혹한 자연재해가 왜 일어나는가, 하는 점이다.지진으로 최고 20m 높이의 ‘쓰나미’가 발생하고, 후쿠시마 원자로 폭발로 대참사가 발생한 원인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다. 왜 자연은 인간에게 너그럽고 관대하지 않느냐, 하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하기야 자연재해가 인간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공룡 멸종을 불러왔다는 지구와 소행성 충돌은 측량하기 어려운 우주의 티끌에 거주하는 지구 생명체의 유한성을 몸서리치게 경각시킨다.그러하되 천지불인은 감당한다 해도 ‘성인불인’은 전혀 뜻밖이다. 만백성을 어버이처럼 긍휼히 여기고 인자하게 보듬어야 할 성인이 ‘인하지’ 않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특별한 애착 없이 무심하고 초연하게 백성들을 대하는 위대한 정치 지도자를 어찌 성인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그것은 ‘인’에 대한 노자의 반감을 표출하고 있는성싶다. ‘인’을 숭상한 공자의 유가에 대한 직접적인 반발이 아닌가 한다. 그것을 입증하는 구절이 ‘도덕경’ 제18장에 나오는 ‘대도폐유인의’이리라. ‘커다란 도가 사라져버리니 인과 의가 나오게 된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노자가 생각한 도의 본질은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이었다.‘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며,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 노장(老莊)의 도가에서 내세운 극상의 도는 ‘자연’에 있다. 고로 자연의 본성이 인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을 따르는 성인 역시 인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름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하되 인간적인 것을 희구하는 21세기 현대인은 뭔가 아쉽다. 자연도 성인도 ‘인하면’ 좋지 않겠는가,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만의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다. ‘자연보호’를 외치는 일부 지각 있는 분들의 거룩한 외침이 허망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나는 천지불인은 허하되, 성인불인은 21세기에 맞춰서 수정했으면 한다. 현대의 위대한 정치 지도자들은 유구한 자연을 따르되, 어질고 자상하며 인자했으면 한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숱한 가난뱅이들과 배우지 못한 사람들과 아무런 기댈 언덕 없는 사람들에게 그 끝을 모를 정도로 ‘인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인간과 자연을 구별하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이자 원리가 아니겠는가, 생각하는 것이다.근자에 보도되는 한국사회의 우심(尤甚)한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춘추전국시대의 노자를 새삼 생각한다. 인위가 아닌 무위자연에 의지했던 고대의 사상가를 떠올리면서 인간 불평등의 오랜 역사를 돌이켜보는 것이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하지 못한다!”는 옛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인간다운 공동체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백일몽을 꾸어본다.

2019-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