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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알아준다는 것!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다른 사람을 아는 것과 알아준다는 것은 별개(別個)의 사안이다. 안다 함은 정보나 인식에 근거해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다. 알아준다 함은 아는 것에서 나아가 그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인정함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인정심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어린아이가 까닭 없이 울 때에는 인정심리 기제가 작동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왜 날 버려두는 거야?”여기 문제적인 인물이 있다. 공자다! 그의 사유와 인식은 첫 머리부터 범상치 않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니 그 또한 군자 아니겠는가?!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논어, 학이 편)” 나는 이것이 `군자삼락(君子三)`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문구라고 생각한다. 노나라를 떠나 십여 년 천하를 철환했으나 아무도 자신의 쓰임새를 인정해주지 않은 비정(非情)한 세태에 답한 공자의 의기(意氣)와 자신감 아닌가?!나이 삼십에 홀로서기에 도달했던 공자가 35세에 노나라의 환란으로 제나라로 피신한다.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알고 있던 경공이 정사(政事)의 요체를 묻는다.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비가 아비답고 자식이 자식다워야 합니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안연 편) 군주와 신하가 제 노릇을 다하면 나라가 안정될 것이오, 아비와 자식이 근본을 다하면 가정이 평안해질 것이라는 간명한 답변. 청년 공자의 지성이 번뜩이는 장면이다.하지만 경공은 재상 안자(안영)의 반대로 공자를 기용하지 못한다. 공자가 주창하는 법도가 너무 번거롭고 어려워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라는 안자의 진언(進言)을 경공은 무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공자가 내세운 예법은 500년 전 서주(西周)의 케케묵은 구습(舊習)이었다. 오래 전에 흘러가버린 강물로 오늘의 발을 씻으려 했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 여기서 우리는 시대착오적인 보수주의자 공자의 면모를 확인한다.그러하되 공자는 더 나아간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그들을 알지 못함을 근심하라.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학이 편)” 남에게 인정받기를 꾀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그들을 수용하고 인정하라는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한다. 어디 그뿐이랴!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능력이 없음을 근심하라. (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헌문 편)” 이 정도 배짱과 자신감을 가졌던 인간 공자!권력자와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보다 그릇된 것은 내가 그들을 알지 못함이오, 나의 무능이라고 갈파했던 공자. 2천500년 전 그의 생각은 이른바 광속의 2016년에도 적용 가능하지 않을까. 내 남 할 것 없이 권력자와 부자에게 잘 보여 한 자리 하려는 부박한 세상에서 꼿꼿하게 뻗대는 사람 한 둘 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나를 알아주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는 천박한 세태가 지배하는 `헬조선`의 만화경!작은 고기조각이나 뼛조각 물고 승냥이처럼 울부짖으며 호가호위하는 환관과 비선의 나라. 그 한 줌의 무리에게 아부하고 권력자의 치질을 빨아주며 (`장자`, 열어구) 돈주머니와 벼슬자리에 환호작약하는 자들이 넘쳐나는 `헬조선`. 멀쩡한 농민 죽여 놓고 사인 (死因) 찾겠다고 시신에 칼질을 해대려는 후안무치한 무뢰배들의 천국.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치는 청년들을 절망과 한숨의 나락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들의 파라다이스!막돼먹은 나라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상상이상의 고통이다. 부패와 타락과 무능과 패거리주의로 무장한 일군의 야수들에게 수족과 영혼을 저당 잡힌 채 눈만 껌벅이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공자는 이런 시국에는 몸을 숨기라고 했지만, 광명천지 21세기에 어디로 잠적한단 말인가?! 이러매 눈 감고 다시 생각할 밖에!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근심하지 아니하는 도저한 경계를 찾아봄이 어떠한가?!

2016-10-28

복세편살 나시나길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만약 독자 가운데 위의 여덟 글자의 뜻을 아는 분이 있다면 행복한 가정의 부모라 확신해도 좋을 듯하다. 요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이걸 모르면 간첩이란 소릴 들어도 무방(無妨)할 정도로 흔한 표현이라고 하니까.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나는 시팔 나의 길을 간다” 후자에는 쌍시옷이 들어가지만 신문이 공공재임을 감안해 순화(醇化)했음을 밝혀둔다. 한글로 만들어진 사자성어 두 개를 대하면서 느껴지는 소회(所懷)가 몇 가지 있어 적는다.`복잡한 세상`의 함의는 어린 청춘들의 눈으로 봐도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가 만만찮다는 점이다. 하루가 멀다않고 터져 나오는 각종비리와 추문과 절망과 탄식이 인터넷 포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 성적비관이나 학교폭력 내지 부적응으로 자살하거나 학교를 떠나는 어린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가.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교육현장에서 어떤 구원도 희망의 빛도 찾지 못하는 것이 어린것들이 처한 암울한 현실 아닌가.고등학생들이 뼈 빠지게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다 해도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취업관문 내지 절벽이다. 일자리를 늘리지 않는 대기업의 사내보유금이 사상최고를 기록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언론은 많지 않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대학 신입생 가운데 상당수가 입학하자마자 영어학원이나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 결국 대학은 기업에 종속된 예비 직장인 양성소로 전락해버렸다. 이런 사실을 빤히 아는 `고딩`들 아닌가?!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다가 죽어나간 고등학생들 숫자만 250명인 나라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헬조선`담론은 2016년 대한민국의 `지금`과 `여기`를 가장 명쾌하게 투시한다. 미래를 향한 청춘들의 꿈이 완전 실종된 나라에서 선택은 자명(自明)하다. 그것이 `편하게 살자!`는 말로 드러난다. 아무리 힘들게 애쓰고 공들여도 결국 `금수저`와 `흙수저`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린것들은 이미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것이다.그 다음의 욕설을 동반한 강렬한 구어(口語)는 세태반영의 절정이다. 여담(餘談)이지만, 2013년 타계한 김열규 교수는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2003)에서 욕에 담긴 의미를 살핀다. 그는 욕을 “역사성과 사회성을 갖는 무형(無形)으로서 한국문화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버릴 수 없는 요소!”라고 갈파한다. 어쩌면 흉중에 겹겹이 쌓인 분노와 울분과 설움과 절망을 욕으로 발화함으로써 스스로를 정화(淨化)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도 욕의 미덕일지 모른다.요즘 어린 세대들은 `시발`이나 `시팔` 같은 상스런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그것은 한국사회에 내재한 폭력성과 조야함의 민낯을 그대로 재연(再演)하는 기제다. 온갖 비속어(卑俗語)와 욕설로 묻혀버린 한국어가 순화되는 날, 그날이 언제 올 것인지 궁금하다. 그렇게 욕을 해대면서도 우리 어린것들은 `나의 길`을 말한다. 어린 나이에 이미 나의 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선사한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무한책임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낀다.삶의 깊이와 너비를 아직 온전하게 측량하지도 가늠하지도 못할 나이에 `나의 길`을 운운하는 고등학생들의 처지가 못내 안쓰럽다. 마치 굳은 암석이나 빙하처럼 냉혹한 세상은 등 돌리고 저만치 서 있는데, 아이들은 속수무책 (束手無策) 두 손을 비비고 있는 이 나라 형세가 참으로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하되 청춘들이여, 아직은 희망의 끈을 놓을 때가 아니다! 한줄기 희미한 빛이라도 있거든 그 길로 용감하게 전진할 일이다! 그들을 구원해 주소서, 신이여!

2016-10-21

중산층의 붕괴와 조건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요즘 언론에 간간이 보도되는 사안(事案) 가운데 하나가 중산층의 붕괴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7년 중산층 비율은 74%였으나, 2016년 10월 기준 69%로 5% 이상 감소했다고 한다.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기는 국민의 비율은 47%에 불과하다. 한국의 통계야 고무줄처럼 들쭉날쭉하니 신뢰할 수 없다지만, 50% 아래로 떨어진 중산층 비율은 적잖게 충격적이다. 중산층의 조건을 생각해보면 통계치가 허수(虛數)만은 아닌 듯하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조건은 이렇다.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월 급여 500만원 이상, 배기량 2000cc 이상 중형차, 예금 잔고 1억 이상, 1년에 해외여행 1회 이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물질적인 조건이다. 돈에서 시작하여 돈으로 끝나는 것이 한국인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조건이다. 참으로 적나라하게 우악스럽고 거칠며 속악(俗惡)하여 우울하기까지 하다.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을 보자. 외국어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직접 즐기는 운동이 있을 것,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을 것, 자기만의 요리 실력이 있을 것, 공분(公憤)에 참여할 것, 약자를 돕고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등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중산층 기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불법과 불의, 부당함에 저항하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을 중산층의 조건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그들 나라 중산층이다.우리는 아직 1960~70년대 `잘 살아보세!` 하는 구시대 유물의 사유와 인식의 틀에 갇혀 있다. 행복과 성공의 척도(尺度)를 물질적 성취로 판단한다. 이럴진대 사회전체가 돈으로 몰려든다. 한마디로 “돈의, 돈에 의한, 돈을 위한” 나라와 궁민(窮民)이 되고 만 것이다. 물적인 욕망의 추구는 그 끝을 알지 못한다. 현대와 같은 대량 소비사회에서 그와 같은 욕망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탄탈로스`의 조갈증과 다르지 않다.한국사회에 만연한 욕망과 타락의 징후는 지난 정권에서 기초가 마련됐다. 유명한 `747전략`으로 권력을 장악한 자들의 슬로건은 “부자 되세요!”였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구호 아닌가! 2009년 이후 베스트셀러는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같은 투자전략을 담은 책이었다. 부자가 되려고 너나 할 것 없이 주식과 부동산에 달려들었다. 문제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돈이었고, 돈 없는 사람들은 하나둘 중산층 대열에서 탈락했다.아직도 한국인들은 돈이 고프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그러다보니 돈 이외의 문제는 부차적이거나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유럽과 미국의 중산층이 가지고 있는 자기만족이나 여유로운 삶의 미덕과 정의(正義)는 그림자조차 얼씬하지 못한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중고생들마저 10억을 준다면 감옥살이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점입가경 목불인견 (目不忍見) 설상가상이다. 이제 돌아보면서 살 때도 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가난하고 일자리 없고, 비정규직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이웃을 배려하면서 살아갈 때도 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나와 내 가족이 소중하다면, 이웃과 그들의 가족도 그만큼 소중하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논리는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묻고 싶다. 인간다운 염치(廉恥)와 도덕성을 내면에 간직하고 시대와 역사와 인과율(因果律)을 사유해야 하지 않겠는가, 묻고 싶다.이런 기본적인 덕목이 배제된 중산층의 몰락이라면 나는 동의하겠다. 영혼 없고 불의한 욕망의 화신(化身)이 중산층이라면 그들의 몰락을 쌍수(雙手) 들어 환영하고 싶은 마음이다. 한번쯤 돌아보면 어떨까, 우리가 걸어온 길을! 그리고 잠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중산층의 붕괴나 몰락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중산층의 조건을 재정립하는 일이 시급한 2016년 한국사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2016-10-14

시인의 죽음, 농민의 죽음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1837년 2월 10일 러시아 최초의 계관시인 푸쉬킨이 죽었다. 니콜라이 1세의 최대 정적으로 떠오른 시인은 감시와 추적에 시달린다. 정치경찰 벤켄도르프, 문단권력자이자 극작가 쿠콜리니크, 주 러시아 네덜란드 공사 단테스 같은 자들이 승냥이처럼 푸쉬킨 주위를 배회했다. 그자들은 하나같이 니콜라이 황제의 자동인형이었다. 시인을 모욕하고 분노케 하여 마침내 그로 하여금 결투를 신청하도록 유도한 단테스.2016년 9월 25일 보성의 농민 백남기가 운명했다. 향년 70세. 2015년 11월 14일 어리석은 국가에 저항하는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그는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차가운 길거리에 내동이쳐진다. 그 후 317일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9월 25일 불귀의 객이 되고만 것이다. 국가 공권력의 대명사라 할 경찰은 백남기 농민을 겨냥하여 물대포를 직수하였다. 그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가 세상을 버린 것이다.그러나 보라.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국가가 농민과 그 유가족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가는 이미 죽은 농민의 시신에 칼을 들이대고자 한다. 명확한 사인을 규명한다는 미명 아래, 과학수사라는 명분으로 칠십 노인의 차디찬 육신에 칼질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안다. 농민이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농민을 부검하지 않아도 그를 죽인 것은 경찰이고 국가라는 자명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179년 전 시인의 죽음은 치밀한 각본에 따른 연출이었다. 니콜라이 연출, 단테스 주연, 벤켄도르프와 쿠콜리니크 조연. 그리고 희생자는 계관시인 푸쉬킨이었다. 그의 아내 나탈리야 곤차로바를 궁정연회에 초대하고자 니콜라이는 시인을 자신의 시종보로 임명한다. 러시아인들에게 황제보다 더 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시인을 향한 황제와 측근들의 시기와 질투, 음모는 나날이 커져갔고, 급기야 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2015년 11월 14일 왜 백남기 농민은 노구를 이끌고 민중총궐기에 참가했을까?! 국가와 그 대표자들의 부패와 무능과 타락과 패거리주의를 경고하고, 민중의 분노와 절망을 세상에 알리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헬조선`이 되어버린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에 통곡하던 농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수수방관하는 촌로가 아니라, 민중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처절한 나라의 현실을 바로 잡아보고자 차가운 거리로 나아간 것이었다.불의하고 타락한 자들이 줄줄이 고관대작의 지위에 오르고, 바른말하고 행실 올바른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리는 나라. 40~50대에 실직하여 생계형 창업을 하고 이내 망해버리는 나라. 70~80대 노인들이 거리거리마다 폐지와 빈병을 주워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나라. 명절 때마다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나라. 백주대낮에 국가권력을 돈과 바꿔먹는 검사와 판사의 나라. 십 년 넘도록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백남기 농민은 이런 참담하고 또 참람한 나라 형편을 참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도탄에 빠진 국가와 민중을 구하겠다는 따사로운 일념으로 궐기한 것이다. 그러나 부패하고 타락한 국가는 그를 향해 차가운 물줄기를 쏟아냈다. 얼음보다 차가운 길거리에 쓰러진 그를 향해 연신 물줄기가 발사되었다. 제 나라 백성을 죽이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어찌 이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더란 말인가?!푸쉬킨의 시신을 도둑질하려던 권력자들의 음모는 페테르부르크의 분노한 시민들의 봉기로 저지되었다. 10만의 시민들이 그를 추모하며 장례행렬에 동참했다. 백남기 농민의 시신에 칼질을 하려는 국가권력에 한국의 시민들이 저항하고 있다. 그로 하여금 저승에서라도 영면하도록 수많은 시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국가에 항거하고 있다. 시인은 죽어서 문학으로, 농민은 죽어서 따사로운 눈길과 마음으로 민족과 국가를 보듬을 것이다. 아주 오래도록!

2016-10-07

`김영란법` 시행에 즈음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지난 28일자로 한국 초유의 `김영란법`이 실행에 들어갔다.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패와 타락을 방지하고 극복하자는 취지다. 기술과 인지, 유희와 오락에서 한국은 선진국 반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과 예술, 기초과학과 교육, 교양과 민도(民度)는 여전히 아쉬운 수준이지만 말이다. 그런 한국의 전통적인 병폐가 물적 욕망에 기초한 부패다.대중강연에서 종종 나는 한국사회의 걸림돌로 네 가지를 거론한다. 부패와 무능, 타락과 패거리주의다. 일부 파당과 패거리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독점하면서 보이는 부패와 무능과 타락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나라와 민족은 겉치레로만 작용하는 형식논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각자의 가문과 개인의 영달과 물질적 성공에 눈이 빨간 자들이다.각종 불법과 무법, 탈법과 초법, 위법과 범법이 그들의 일상이 되었다. 근자에 인구에 회자되는 검사와 판사들의 행악질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인이라면 초등학생도 아는 내용이다. 10억을 준다면 감옥에 가겠다는 고등학생이 47%, 중학생 33%, 초등학생이 16%에 이른다. 돈이라면 범죄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풍조가 만연해있는 한국사회!이토록 타락하고 부패한 나라와 국민의 영혼을 부분적으로나마 정갈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김영란법의 취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연히 환영하고 동의한다. 그러나 한두 가지는 생각해봐야 할 듯하다. 대저 이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람들은 평범한 민초들이 아니라, 가진 자들 무리다. 권력자들, 기업가들, 정치가들, 비리관련 공무원들이다.김영란법은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가와 민족도 팔아먹을 태세가 되어 있는 자들을 최우선적으로 겨냥해야 한다. 법은 모름지기 크고 강하고 힘센 자들을 향한 날카로운 무기로 작동해야 마땅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3-5-10만원 단위로 세분되는 허다한 경우의 수다. 뭐는 되고, 뭐는 안 되고 하는 자질구레한 가지치기!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한다. “그 정사(정치)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그 백성은 점점 더 순박해지고, 그 정사가 살피고 다시 살핀다면 백성들은 점점 더 일그러질 것이다.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58장)가정에서 엄마가 아이들을 지나치게 통제하다보면 아이들은 겉보기에는 순종하지만 언제나 나쁜 궁리를 하기 마련이다. 외려 아이들의 자유와 자율을 보장해주면 아이들은 알아서 제 일을 스스로 챙겨나가는 법이다. 얼마짜리 밥과 선물과 경조사비를 써야 한다는 식의 법률적 통제로 한국인들을 옥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견(短見)으로 보인다.부패와 타락과 무능과 패거리주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동의하겠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망(法網)은 언제나 `유전무죄 무전유죄`였으며 크고 강한 자들은 아예 그물에 걸리지도 않는다. `국제통화기금` 사태가 왔을 때 직장에서 맨 먼저 잘려나간 이들은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김영란법이 이런 식의 재연(再演)이 아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법 앞의 평등을 주장하려면, 법에 저촉될 만한 일을 한 사람들부터 제대로 수사하여 벌주면 그만이다. 온갖 부패와 타락의 당사자들이 장관임용 후보자가 되어 청문회에 계속 얼굴 내미는 추악한 작태가 반복되는 현실 아닌가?! 범법자들만 골라서 후보자로 세우는 청와대의 능력도 비상(非常)하지만 그런 작태가 끝없이 용인되는 나라도 어처구니없지 않은가?!아주 좁은 그물코로 멸치 몇 마리 잡고 생색내는 법이 아니라 정말로 썩어 문드러진 부패공화국의 기초를 다시 세우는 김영란법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16-09-30

지진과 정보통신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2016년 9월 12일 월요일 밤 8시 33분은 잊기 어려운 시간으로 남을 듯하다. 그 시각 나는 대학원동 2층 연구실에 있었다. 우르릉 소리와 함께 건물전체가 요동쳤다. 보던 책을 덮고 복도로 달려 나갔다.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20년 묵은 대학원동은 설계부터 시공과 준공에 이르기까지 부실로 점철된 5층 콘크리트 건물이다. 학과 도서실에 불이 환하다. 창밖에서 대학원생들을 부른다. 하나둘씩 밖으로 나오는 청춘들. 건물의 요동은 멈췄지만 마음의 동요와 다리의 후들거림은 쉬 멎지 않는다. 그날 밤 경험한 지진은 강도 5.8의 본진이었다. 강도 5.1의 지진이 발생한 7시 44분에 산책하던 나는 지진을 감지하지 못했더랬다.대학원생들과 함께 일청담 부근으로 자리를 옮겨 여기저기 연락해 보았다. 휴대전화는 먹통이었고, 카톡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인터넷 연결도 끊긴 상태여서 답답하고 울적한 심사였다. 함께 자리한 4명 가운데 긴급재난문자를 받은 사람은 단 하나. 상당시간이 흘러서야 통화도 카톡도 인터넷도 연결되었다.지난여름 더위와 폭우가 기승을 부릴 때 더러 긴급재난문지를 받았다. 7월 22일 폭염주의보, 8월 17일과 20일 폭염경보, 9월 3일 호우경보가 그것이다. 2015년부터 `소방방재청`을 대신해 `국민안전처`가 재난문자를 보내온 것으로 기억한다. 대표적인 본보기가 작년 6월 6일에 발송한 `메르스 예방수칙`이다.“자주 손 씻기, 기침과 재채기 시 입과 코 가리기, 발열 및 호흡기 증상자와 접촉 피하기 등”을 내용으로 한 재난문자. 이것은 매우 진화한 내용이다. 애초에 그들이 보낸 수칙은 `낙타고기 익혀서 먹기`였으니 말이다. 국민들의 고통경감이나 안전보장보다는 웃음으로 국민들의 정신보건과 위생을 책임지는 부서가 `국민안전처`아니었나?!여기 보태진 것이 세계 1위라고 자랑해대는 정보통신의 불통이다. 엄중한 자연재해가 발생했는데 그 잘난 세계 1위 정보통신이 먹통이라니?!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직결된 위급상황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한 세계1위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1%로 아랍에미리트,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1위다. 스마트폰 보급률 80%를 넘긴 나라는 세계적으로 13개국이며, 중국은 79%, 미국은 72%의 보급률을 기록하고 있다. 인터넷 속도 세계1위와 함께 정보통신 강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문제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쓰임새에 있다.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신속한 시간에 제공하는 것이 정보통신의 1차적인 존립근거다. 이른바 정보화 시대와 그것을 선도하는 나라에 살면서 정작 그 쓰임새에 이르러 효용이 없다면 정보통신을 어디에 쓰겠는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노래를 듣고, 게임하고 물건 사고 시시덕거리는 용도로만 스마트폰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위급한 시점에 스마트폰이 작동하지 않을 때 그 난감함이란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국민안전처`는 돌아봐야 한다. 소를 잃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외양간을 고쳐야 소를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긴급재난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민 스스로 깨우치도록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인 안내와 홍보, 예방에 진력하기 바란다.

2016-09-23

덕혜옹주와 `덕혜옹주`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중국에는 역사적으로 4명의 미인이 있었다 한다. 침어(浸魚) 서시, 낙안(雁) 왕소군, 폐월(閉月) 초선, 수화(羞花) 양옥환이 그들이다. 경국지색으로 이름난 그들이기에 오왕 부차, 동탁과 여포, 당 현종 등이 그들로 인해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트로이 멸망의 씨앗 역시 헬레네의 아름다움에 빠진 파리스의 선택이었으니 어찌하랴?! 왕소군과 관련해서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지은 오언고시의 한 구절만 인구에 회자된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영화 `덕혜옹주`를 보고 나서 찜찜했다.`덕혜옹주`는 남녀의 내밀한 심사 깊은 곳까지 파헤치는데 능기가 있는 허진호 감독 영화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외출`(2005), `호우시절` (2009) 같은 작품목록이 떠오른다. 멜로드라마의 정수를 보여주는 그가 미모와 연기를 겸비한 손예진과 손잡고 찍은 영화가 `덕혜옹주`다. 고종의 마지막 혈육으로 남은 조선왕조 최후의 옹주 이덕혜(1912~1989) 이야기.영화는 첫머리에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지적한다. 비록 작은 글씨지만 사실관계 왜곡이 있음을 밝히고 시작한다. 영화가 충실하게 추적하는 것은 인간 덕혜가 아니라, 조선왕조의 옹주다. 개인사적으로 보면 덕혜옹주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7살 나이에 아버지 고종이 세상을 떠나고, 1921년 4월부터 일출소학교에 입학해 일본식 교육을 받는다. 덕혜옹주는 1925년 3월 일제의 뜻에 따라 일본유학 길에 오른다.1929년 어머니인 양귀인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그녀는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2년 뒤 그녀는 36대 대마도주인 24세의 소 다케유키와 혼인하게 된다. 이것은 당연히 일본 제국주의가 획책한 정략결혼이었다. 1932년에 덕혜옹주는 딸을 순산하지만, 병세는 지속적으로 악화한다. 소 다케유키는 1946년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고, 1955년에 이혼한다. 1962년 귀국이 허락되어 1987년 창덕궁 수강재에서 77년의 생을 마감한다.옹주의 일대기를 보면 영화에서 다루는 그녀의 삶과 일치점을 찾기 어렵다. 허진호는 어린 시절 덕혜의 남편이자 고종의 부마(駙馬)가 될 뻔했던 김장한을 등장시켜 처음부터 끝까지 덕혜와 관계를 맺도록 한다. 옹주의 일생일대 호위무사로 그려지는 김장한. 감독은 덕혜옹주로 하여금 반일과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감동적인 대중연설까지 감행하도록 한다. 패망한 나라의 옹주와 왕자들이 항일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처럼 그려낸다.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기록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고종의 후예들이 치열하게 망국을 극복하고자 했다면, 1945년 해방정국에서 그들은 대대적으로 환영받았을 것이다. 당시 어느 누구도 왕조의 부활이라든가,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귀환을 대놓고 주장하지 않았다. 시대변화에 눈감은 채 사멸한 왕조의 뒷자락에 의지해 평생을 살아간 그들을 민초들은 외면한 것이다.열두 살이면 관람할 수 있는 `덕혜옹주`는 55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런 추세라면 600만 관객도 가능해 보인다. 나이든 관객도 그렇지만, 영상매체에 익숙한 어린것들이 왜곡된 역사를 배울까 저어된다. 저토록 도도하고 자부심에 넘치는 옹주가 일본에 저항했다면 얼마나 가슴 뿌듯하겠는가?! 정말 사실이라면! 하지만 `최종병기 활`(2011)처럼 `덕혜옹주`는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우리는 패배한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광개토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정복과 승리가 아니라, 평양성 함락과 조선왕조 패망에서 깨달음을 구해야 한다. 승리한 역사는 도취를 낳고, 패배한 역사는 교훈을 준다.`조선상고사`에서 단재 선생은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再生)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패배하고 능욕당한 역사를 되살려 교훈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크고 빛나는 미래를 준비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2016-09-09

인간에 대한 예의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언젠가 `동방의 등불`이나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린 나라가 있었다. 국권(國權)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겼지만 아시아의 미래를 밝힐 나라로 지목된 나라. 국민소득 세계 최하위였지만, 이웃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살아갔던 민초들의 나라. 불의하고 부당한 권력이나 돈벌이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설 줄 알았던 예의와 염치의 나라. 나와 내 마누라 내 자식뿐 아니라, 이웃과 그의 가족 역시 소중하게 여겼던 인간들의 나라.언제부턴가 그 나라가 실종됐다. 지도상으로는 있다는데, 실체가 모호하고 형상이 배배틀려 예전 용모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세계유수의 경제 대국이자 `한류`를 수출한다는 문화강국, 큰 나라 대통령이 툭하면 거론하는 성공한 나라 대한민국 얘기다. 먹고 살만해진 나라에는 돈과 권력과 성공이라면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종횡무진 하는 인간들로 가득하다. 가족주의를 뛰어넘는 가축주의와 불고염치가 판치는 나라.지구 반대쪽 에스파냐에서 상당히 기이한 장면이 포착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동영상. 70세 넘어 보이는 배불뚝이 노인이 운동장 한가운데 서있다. 발렌시아 축구 경기장. 객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기립하여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 외관으로 보아도 노인은 발렌시아 단장도 고위 관계자도 아닌 그저 평범한 늙은이에 지나지 않는다.그는 발렌시아 축구팀 장비관리사 베르나르도 에스파나. 지난 1961년부터 55년 동안 선수들의 유니폼과 축구화를 세탁해왔던 인물. 그를 위한 은퇴식이 축구경기를 앞두고 펼쳐진 것이다.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고 허공을 응시한다. 한낱 저런 노인을 위해 구단 관계자들과 선수들과 코치, 감독이 모두 나와 박수를 치고 있다. 거기에 5만 관중이 합류해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다.독자 여러분은 이런 은퇴식을 한국에서 보신 적이 있는가?! 55년 동안 빨래하고 운동화 닦은 노인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은퇴식을 함께하는 장면을 보셨는가?! 평생 무명으로 살면서 생계를 꾸려온 중늙은이를 위한 소략하되 의미 충만한 자리를 대면하셨는가?!에스파나의 은퇴식에서 떠올린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다. 누구나 어떤 자리에서건 주어진 소명을 성실하게 수행했을 때 사회가 베푸는 최소한의 예의.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심심찮게 경제위기를 겪는 에스파냐. 그럼에도 세계최고 수준의 축구리그를 가진 나라. 나는 그날 깨달았다. 어째서 에스파냐가 세계최강의 축구실력을 갖추게 됐는지. 아주 작은 인간을 향한 그들의 배려는 아름답고 눈부신 것이었다.돌아보시라, 대한민국을! 아침저녁으로 언론에 보도되는 허다한 갑들의 행악질을 우리는 목도한다. 너무 자주 너무도 익숙하게 전달되는 가진 자들의 부도덕과 불의와 비정상이 횡행하는 나라.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그 부모를 죽이는 황음무도(荒淫無道)한 나라.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허용되고 모든 것이 가능한 물신(物神)의 나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도 예의도 던져버린 천둥벌거숭이들의 나라 대한민국.이런 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상하지 않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엽기적인 사건사고가 빈발해도 무감각해진 사람들. 가진 자들의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가 횡행해도 그것을 제지할 아무 수단도 방법도 없는 나라. 젊은이들이 `헬조선`을 말하면 그것을 나무라는 몰염치한 노인들의 나라.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다. 임계점을 가리키는 시계소리 들린다. 폭발하기 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창밖에 태풍 지나간다.

2016-09-02

금복주 유감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누구에게나 고유한 습관이 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 동네에 가면 그 동네 소주를 먹는다. 이것이 나의 오랜 습관이다. 경북대에 둥지를 튼 게 25년 전 일이니, 그 동안 나는 줄기차게 금복주를 마셔온 셈이다. 더러 타지(他地)에서 온 친지들이 그들에게 익숙한 소주를 찾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주로 금복주를 벗 해왔다. 그러다가 지난봄부터 금복주와 작별했다. 다른 선택이 없으면 모를까, 일단 금복주를 떠나기로 했다.이유는 간단하다. 금복주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우심(尤甚)한 기업이기 때문이다.금복주는 여성이 입사해 결혼을 통지하면 그 순간 해고를 감내해야 한다. 지난 8월 24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금복주의 이런 황당한 관행은 1957년 창사이후 60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무노조경영을 신조(信條)로 수십 년 재벌의 선두를 달린 기업도 있다지만, 이런 어리석은 신조는 케케묵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닐 수 없다.)금복주는 결혼하면 안정적인 회사업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여직원은 경리나 비서 같은 제한된 관리직만 맡겼다고 한다.경조휴가도 친가만 인정하고 외가관련 휴가는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런 관행이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의 결혼을 퇴직사유로 예정하는 노동계약 체결 시 5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금복주의 행악질로 지난 6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여직원들이 부당해고 당했거나 불이익을 당했을까.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그런 것도 모르고 대구경북의 술이니까 무작정 금복주를 마셔왔던 내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깊이 사유하고 판단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살아온 자신을 질책하면서 금복주와 작별한 것이다. 하기야 이런 관행이 비단 금복주에 국한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 참에 낱낱이 밝혀져 그릇된 관행이 뜯어 고쳐지기 바란다.베를린에서 유학할 때 게오르크 렘케라는 중소기업에서 노동한 적이 있었다. 하루 8시간 남짓 6~8t의 물량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육체노동이었다.당시 52킬로그램 몸무게의 나로서 하루 6천내지 8천kg의 물량을 소화하는 것은 고단한 노릇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속한 부서(部署)의 십장(什長)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외스터라이히 부인(Frau Oesterreich)이 그 주인공이다. 성을 국가 이름에서 따온 재미난 경우다.그녀는 정년퇴직 2개월 앞두고 명예 퇴직했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남녀불문하고 누구나 십장이 될 수 있는 나라, 정년이 코앞이라 해도 건강에 이상이 있으면 명예 퇴직시키는 나라 도이칠란트. 그런 일관성과 평등한 작업장이 부강한 공업국가 도이칠란트의 지금과 여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아주 특별한 육체노동이 아니라면, 여성이 할 수 없는 일자리는 거의 없다. 불가능할 것이라는 남성들의 편견장벽만 존재할 뿐이다.21세기는 막연한 신화나 전설 혹은 전통이라 여겨지는 우스꽝스러운 인습의 잔재(殘滓)와 작별해야 하는 시기다.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전역의 사람들과 실시간 연결되는 광명의 시간대에 60년 전 고용관행을 관철하는 시대착오적인 기업이나, 무노조를 신화화하는 후진적 그룹경영 방침으로 삼고 있는 기업이 세계유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은 참으로 희화적(戱畵的)인 일이다. 이런 일로 더 이상 세계인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결혼하면 여자는 물론 남자도 불편해진다. 가사노동의 분담과 양육 역시 여성 일변도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세상이 변하면 변한 만큼은 따라가야 손가락질 받지 않는다. 선두에 서지는 못할망정 뒤처지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금복주가 하루속히 제정신을 차려서 즐거운 마음으로 금복주 마실 날을 기다려본다.

2016-08-25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하라!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1987년 10월 초 제법 쌀쌀한 도이칠란트의 어느 가을날 나는 킬에서 쾰른으로 향하는 급행열차 안에 있었다. 도이칠란트 북부에 자리한 슐레스비히 홀스타인의 주도(州都)인 킬(Kiel)의 친구를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처음으로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내린 이국(異國)의 풍광과 기후와 언어가 몹시도 낯설었던 기억이 지금도 삼삼하다. 쿠페형태의 서도이칠란트의 열차 한 칸에는 6인이 탑승 정원이었다. 나의 맞은편에는 젊은 도이치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군대에 입소하는 대신 대체복무를 하러 떠나는 길이라고 했다. 당시 분단 상태였던 도이칠란트의 서쪽에서 나고 자란 그는 군복무가 아주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한창 일하고 공부해야 할 나이지만 나라의 부름을 받으면 응당 입대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이국청년의 애수(哀愁)와 분노.당시 서도이칠란트의 군복무기간은 24개월 안팎이었고, 대체복무 기간은 다소 길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게 되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노인 전문병원 같은 사회복지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했다. 총을 잡는 것보다는 그래도 이런 선택이 훨씬 낫다는 그의 말에 수긍이 갔다. 군대는 근본 인명살상을 조직적-체계적으로 연습하는 곳이다. 조국수호나 자주국방을 말하지만 근간에 깔린 것은 어쩔 도리 없는 살생 아닌가!얼마 전 청주지법에서 입영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장 아무개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판결이 나왔다. 장 아무개는 “전쟁준비를 위해 총을 들 수 없다는 종교적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국방의 의무위반`이란 죄목으로 그를 재판에 넘겼다. 판결을 담당한 이형걸 판사는 “사회봉사나 대체복무 등으로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고도 국가에 기여할 방법이 있으며, 형법적 처벌만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시했다.여기 멈추지 아니하고 이 판사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사이에 갈등이 심각한데도 정부는 대안모색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징병제도가 실시된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중대한 헌법적 갈등상황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 판사의 이런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2004년 남부지법을 필두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무죄를 선고한 이후 하급심에서 무죄선고가 잇따랐고, 유엔 인권이사회도 한국정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음에도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2007년 국방부는 현역사병 복무기간의 2배에 달하는 기간 사회복지 시설에서 치매노인이나 중증 장애인 수발 같은 대체복무제 도입방안을 발표한다. 그러나 보수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국민정서를 핑계로 대체복무제를 철회해버린다. 이런 상황은 국회에서도 반복되었다. 17대부터 19대 국회까지 대체복무제 도입을 담은 병역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없이 폐기됐다.1948년 정부수립 이후 시작된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69년째 제자리걸음이다. 20대 청년들에게 전과자 낙인을 찍어가며 오로지 국방의 의무만을 되새김질하는 국방부와 국회는 세계의 변화와 국제사회의 요구에 눈감고 있다. 2013년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간 사람은 지구 전체에 5천600여 명인데, 그 가운데 90%가 한국인이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해마다 5~600명을 전과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의 우울한 자화상이다.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국회의 적극적인 보완입법과 정부의 대안마련이 시급한 당면현안이다. 누구나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천부인권을 2016년에도 실현하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 우리만큼이나 치열하게 냉전과 반공과 분단을 경험한 서도이칠란트의 관용과 지혜가 부럽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하라!

2016-08-19

대마도 기행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여행을 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단순한 관광이나 유희가 아니라, 무엇인가 흉중(胸中)에 남아 더러 상기(想起)되는 여행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8월 7일부터 8일까지 1박2일의 짤막한 대마도 여행을 다녀왔다. 오전 9시 반에 부산항을 떠나 10시 40분에 대마도 히타카쓰 항구에 도착한다. 폭염의 기세는 한반도나 대마도나 거기가 거기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땀으로 젖는 한여름 대마도 기행은 만만한 여정이 아니다.부산에서 대마도까지 직선거리가 49.5킬로미터. 대마도가 속한 큐슈 본토까지 직선거리가 80킬로미터. 거리로 따진다면 대마도는 한반도에 훨씬 가깝다.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에 조공하고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도모했다고 전한다. 고려 말 왜구가 창궐하자 1389년 창왕이 박위를 시켜 대마도를 토벌했다. 1419년 조선의 세종 역시 왜구토벌을 목적으로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케 하기도 한다.대마도는 전통적으로 조선과 일본 양국의 지배를 받는 양속관계(兩屬關係)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1592년 임진왜란의 거점이 됨으로써 대마도는 조선의 영향권 밖으로 사라진다. 1598년 임란종결 이후 실권을 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선조에게 조선통신사 파견을 강력히 요청한다. 1607년`회답겸쇄환사`라는 명칭의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향발(向發)했을 때 첫 번째 기착지(寄着地)가 대마도였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대마도 곳곳에는 조선과 관련된 사적이 적잖다. 조선통신사비도, 의병장 최익현 선생을 기념하는 절도 여름의 정밀(靜謐) 속에 고요했다.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1931년 36대 대마 도주(島主)이자 백작이었던 소 다케유키와 결혼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유적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소회는 지나가버린 역사의 자락에서 끼쳐 오는 아픔이거나 슬픔이다.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노산군의 거처에서 마주친 쓸쓸함이랄까?!종이에 남은 기록이나, 돌과 건축에 새겨진 글자가 추억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거기 담긴 행간을 사유하고 감응하는 것은 오롯이 지금과 여기를 살아가는 자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6년 시점에서 우리는 최익현 선생의 내면이나,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은 덕혜옹주의 아픈 심연을 헤아릴 수 없다. 그럼에도 잠시 침묵하고 하늘을 우러르면 그분들의 상처와 이야기가 조곤조곤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90% 이상이 산으로 이뤄져 있는 대마도는 일본본토의 일용품 공급과 한국 관광객이 없으면 유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기야 폭염을 뚫고 거리와 사찰과 기념비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오직 한국인들뿐이었다. 여행 안내인은 여러 차례 우리 일행에게 예의범절을 각별히 당부하고 다시 당부하곤 했다. `대화(大和)`를 기본적인 틀로 사유하고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일상풍경은 정갈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인구 3만2천명의 작은 섬이기는 했지만, 일본풍이 면면히 이어진 듯 보이는 대마도. 깔끔한 도심지와 양보운전에 익숙한 운전자들, 시끄러운 법 없는 식당. 아마도 이런 것이 일본을 관광대국으로 인도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 기념품 하나를 팔아도 포장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주는 성실하고 세심한 점원들의 자세 역시 정갈하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일을 처리해가는 품이 무엇보다도 속도(速度)의 대한민국과 다른 점이었다.숱한 우여곡절과 사변(事變)으로 우리가 수난을 많이 당했던 과거사를 기억한다. 그럼에도 일본과 중국, 러시아는 우리가 운명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이웃이다. 그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가, 하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것이다. 땡볕을 뚫고 대한해협을 건너면서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느낀 대마도 기행의 소회 끄트머리다.

2016-08-12

중국 굴기의 기원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사드배치`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동아시아와 세계정세 변화를 도외시한 즉흥적인 결정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적잖다. 이런 바탕에는 중국의 융성과 발전을 뜻하는 중국굴기가 자리한다. 2006년 중국 중앙방송은 12회에 걸쳐 `대국굴기`를 방영한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필두로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나라들에 대한 역사 기록물이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도이칠란트, 일본, 러시아, 미국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대국굴기`의 최종편인 `대도행사(大道行思)`에서 그들은 21세기 강대국의 조건을 사유한다.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중국의 굴기다. 10년 전에 이미 중국은 21세기를 주도할 대국으로서 자국을 상정하고 준비해왔다는 얘기다. 실제로 세계의 커다란 흐름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형국(形局)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출범초기의 당당했던 위세가 `브렉시트`로 약화되어 당분간 답보할 가능성이 크다.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잠자는 거인`정도로 치부돼왔던 중국이 약진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기록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사에서 유서(遺緖) 깊은 문명을 말할 때 우리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그리고 황하문명을 거명한다. 인류의 문명사를 가늠하는 가장 오래되고 뿌리 깊은 문명이 이들 4대 문명이다. 그 가운데 황하문명 하나만이 발생 이후 오늘날까지 연면부절 이어지고 있다.생각해보시라. `길가메시 서사시`와 함무라비 법전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21세기 이라크가 무슨 연관이 있는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왕들의 계곡과 현대 이집트는 어떤 상관성을 제시하는가!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에 몇몇 유적을 남긴 채 역사에서 황망히 사라진 인더스 문명을 현대의 인도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는가?! 하지만 황하문명에 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동양고전에서 확인한다.2천500년 전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갔던 고대중국의 철학사상은 아직도 유효하다. 공자의 `논어`, 묵자의 `묵자`, 노자의 `도덕경`같은 서책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의 후대를 장식한 `한비자`나 `장자`, `맹자`역시 동일한 궤적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기록문화의 절정으로 시대의 획을 그었다고 할 것이다.법가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의 뒤를 이은 한나라가 유가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확정하지만, 세계제국 당나라는 도가와 불가를 장려한다. 그 결과 동양사상의 근본인 유불선 3교가 정립한다. 남북한과 대만, 중국, 일본 독자들을 매혹하는 나관중의 `삼국지`는 중국 기록문화의 대미(大尾)를 이룬다. 세계 문화사에서 이렇게 풍성한 역사기록을 오래 유지하면서 21세기를 맞이한 경우는 없다. 이것이 중국굴기를 설명하는 하나의 동인(動因)이라 생각한다.오늘의 중국이 있기 전 150여 년 세월 중국인들은 무수한 고초(苦楚)와 치욕을 경험했다. 1937년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남경대학살`로 30만의 중국인들이 잔인하게 학살되었다. 중국 현대사에서 이토록 끔찍한 사건과 기억은 다시 없을 것이다. 그런 고통스러운 세월 중국과 중국인을 지탱해준 것은 빛나는 역사기록이 아니었을까. `회자정리(會者定離)`로 요약할 수 있는 역사의 본질이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우리에게도 적잖은 한문기록이 있다.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에만 31만 여점의 기록물이 해석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과거를 사장(死藏)하지 않고 현재화할 때 그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담보될 것이다. 중국굴기가 주는 교훈은 여기에도 있다.

2016-08-05

어찌 하오리까?!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도가의 창시자인 태상노군의 `도덕경`은 세상을 뒤집어보는 관점의 정수(精髓)를 보여준다. 예컨대 `도덕경` 제18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대도폐 유인의(大道廢 有仁義), 육친불화 유자효(六親不和 有慈孝), 국가혼란 유충신(國家昏亂 有忠臣).”현대어로 번역하면 “대도가 없어지니 인과 의가 나오고, 육친이 불화하니 자애와 효도가 있으며,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생겨난다.”놀라운 역설 혹은 아이러니 아닌가.인과 의는 고대 동양, 특히 유가(儒家)에서 숭상해마지 않은 덕목인데, 그것의 출현을 커다란 도의 사멸에서 보고 있으니 말이다. 부자와 부부, 형제의 혈연관계에 기초한 육친의 덕목이 자애와 효도인데, 그것의 발원을 불화에서 독서함은 낯설게 하기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나아가 충신이 나타나는 현상을 국가의 혼란에서 독서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현실과 지극한 대조를 이룬다 하겠다.태상노군의 사유를 유추하면 인간세상을 관류(貫流)하는 근본으로 대도(大道)가 올바르게 작동한다면 인의 (仁義) 같은 덕목은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부자와 부부, 형과 아우가 본분을 다한다면 자애와 효도가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그런 생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자는 나라가 제대로 굴러간다면 충신이 나올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간결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찜통더위와 열대야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엄습하는 요즘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다. 권부의 핵심에 있는 자들의 국정농단이 국민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양파껍질마냥 들춰지는 그자들의 비리를 볼라치면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지, 한숨이 앞선다.노자의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국가가 너무나도 안정돼 있기 때문에 이런 오리(汚吏)가 나타나는 게 아닐까, 하는 기막힌 역발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근자에 다시 읽은 사마천의 `사기열전`가운데 `순리(循吏)`로 이름 높았던 석사(石奢) 이야기가 생각난다.전국시대 초나라 소왕의 재상이었던 석사. 그는 지방순행 중에 살인사건과 대면한다. 살인자를 추적한 끝에 잡고 보니 자신의 아버지였다. 아비를 놓아주고 난 다음 석사는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다. 그리고 소왕에게 사람을 보내 고한다.“아비를 처형하고 정사(政事)를 바로잡음은 불효이며, 아비의 죄를 용서하고 방면함은 불충입니다. 부디 저를 벌하여 주소서!”소왕은 석사의 사정을 듣고 그 죄를 묻지 않으려 한다. 죄인을 잡지 못한 것은 재상의 허물이 아니니 예전처럼 국사를 보필하라 명한다. 그러나 석사는 소왕의 명을 거역하고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 부자의 정을 앞세우자니 국가가 흔들리고, 국가를 내세우자니 천륜(天倫)을 거역해야 하는 막다른 상황에서 석사의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는 양자(兩者)를 살리되 스스로를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다.독자 여러분이 석사의 상황이라면 어찌 하시겠는가. `부지지정`을 따르시겠는가, 아니면 `우국충정`에 헌신하시겠는가. 혹은 석사와 같은 고난의 선택을 취하시겠는가.대도가 사라진 지 오래건만 인과 의가 죽어 없어지고, 육친은 불화하지만 자애도 효성도 말라버린 시대. 나라가 지극히 어지러운 시절임에도 충신을 찾기 어려운 시대상황을 보면서 `도덕경`과 `사기열전`을 떠올림은 열대야를 식혀줄 청량한 한 줄기 바람을 대망(待望)하는 서민의 심경 아니겠는가.그러하되, 머지않아 가을은 또 찾아오리라.

2016-07-29

취업과 전공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없다. 고용이 불안정한 시간제나 저임금 일자리가 있다지만 취업을 권장할 수는 없다. 10% 내외의 청년 실업률은 이제 붙박이로 고정된 형국이고, 체감 실업률은 30%를 상회(上廻)한다. 청년실업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실행된 이후 세계적인 풍속도가 됐다. 이른바 1%와 99%의 양극화가 일상화된 세계 곳곳에서 청년들의 신음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교육을 통한 경제적 안정이나 신분상승을 갈망하는 상황에서 대졸실업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직도 지난 세기 1960~1970년대 우골탑 신화를 기억하는 세대에게 대학은 출세의 사다리였으니 말이다. 1981년에 단행된 대학졸업정원제와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의 여파(餘波)가 대학과 대졸자 과잉의 진원지다. 미래를 주도면밀하게 기획하고 과거를 성찰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쓰라린 결과를 우리는 오늘도 확인하고 있다.상당수 대학생들이 취업과 전공의 단절에서 기인(起因)하는 고통을 호소한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착잡해진다. `문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 인문사회계열 소속 학생들의 심리적 하중이 무겁게 다가온다. 한때 잘나갔던 경영대학 학생들마저 불확실한 미래로 괴로워하는 현실을 볼라치면 풍요의 21세기가 신기루인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전공과 취업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대립각은 강의실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문학과 예술, 역사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눈을 맞출 학생들이 점점 줄어든다. 장편소설은커녕 단편이나 단막극 하나 읽기도 버거워하는 대학생들이 수두룩하다. 예술과 역사에 각인된 지난 시대의 흥미진진한 사연들과 인간군상은 더 이상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3일`에 새겨진 마드리드 시민들의 비참한 운명은 알파고의 21세기에는 지나치게 낡아 버린 골동품에 다름 아니다.사정이 이렇다보니 동양고전 `논어`, `도덕경`, `장자`, `사기`는 물론이려니와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오셀로`, 괴테의 `파우스트` 역시 찬밥이다. 자격증을 얻기 위한 한자공부 혹은 토익점수를 위한 영문학 공부가 고작이다.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야 움직이는 청춘들의 느릿한 동공(瞳孔)이 안타까운 요즘이다. 인문대 학생들은 경영학부로 몰리고, 경영학부 학생들은 행정학부나 공대까지 넘실거린다.교수가 죽고 대학이 죽고 학문이 죽은 21세기 대한민국 교육현장은 우울하다. 오로지 취업이라는 외길을 향해 질주하는 청춘남녀를 기다리는 취업의 질곡(桎梏)! 그런데 문제는 거기가 끝이 아니란 사실이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입사한 청춘들은 이내 기업과 기업문화와 업무에 질려버리기 일쑤다. 자신이 바라마지 않았던 직장 초년생의 풍경과 너무나 다른 기업현장. 그들은 다시 일탈과 출구를 찾기 시작한다.해마다 끈질기게 되풀이되는 시행착오의 대물림이 아무런 반성적 울림 없이 지속되는 대학의 살풍경은 적잖게 참담하다. 죽어라 하고 전공을 공부해보고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입학하자마자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풍속도는 바꿔야 한다. 비싼 등록금과 시간적-정신적 피로를 동반한 대학졸업장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이런 문제 하나 온전하게 풀지 못하는 교육부의 대학정책은 암담하다.대학은 직장인 양성소가 `더`이상 아니다. 21세기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은 대학에 없다. 차라리 기업이 바라는 인재를 기업이 육성하는 편이 빠를지 모른다. 학문의 보급과 전파의 최후 전진기지로 작용하지 못하는 대학은 문 닫아야 한다. 취업과 전공이 상호 모순적인 대립관계가 아니라, 선순환하는 상보작용으로 결합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창밖의 매미가 나의 견해에 동조하듯 크게 울어댄다.

2016-07-22

관리의 길, 공복(公僕)의 길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교육부 관료의 폭언으로 나라가 소란스럽다. 고고도 미사일, 사드를 배치하는 문제로 호떡집에 불난 형국인데 정말 혼란스럽다. 거기에 대구공항을 이전한다는 소식이 보태진다. 사드와 대구공항이 아니더라도 각종 비리 사건들과 크고 작은 스캔들로 시끌벅적한 나라였다. 오죽하면 `역동적인 대한민국` 아닌가? 교육부 관료의 발언 가운데서 나는 구의역에서 죽은 청년 이야기가 마음에 걸린다. 열아홉 살 청춘이 황망하게 맞이했을 죽음의 나락이 어떠했을까. 컵라면 하나 변변히 챙기지 못한 채 악착같은 이승을 서둘러 떠나야 했을 그의 심중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런데 관료는 말한다. “그런 죽음을 동정하는 것은 사실, 위선 아닌가요?”불행한 사건의 피해자를 동정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우리와 일면식(一面識)도 없는 지구촌 저편에서 일어나는 참사에도 연대와 도움을 전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나 2015년 네팔 지진에 우리 국민들이 보내준 성원과 연대는 인간적인 정리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달포 전에 일어난 구의역 사고로 목숨을 잃은 19세 청년을 동정하는 행위에서 위선을 보는 교육부 관료의 언행은 자못 섬뜩하다.그의 사유를 유추하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로 죽어간 300여 희생자를 동정하는 행위 역시 위선이다. 240명 단원고 학생들 뿐 아니라, 허다한 사연을 안고 불귀의 객이 된 사람들을 안타까워하고 눈물 흘리고 공분하는 것도 위선적인 행위란 얘기다. 창졸간(倉卒間)에 아들딸 잃어버리고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피눈물에 가슴 아파하고 공감하며 동정하는 것이 위선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정말 그런지, 묻고 싶다.그가 소속된 정부부서가 하필이면 교육부다. 이 나라 교육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장(管掌)하는 최고 행정기관의 고위직이 그의 본분이었다. 일국의 교육행정을 기획하는 책임자가 허망하게 죽어간 청춘들에 대한 동정과 예의를 위선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인 까닭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는 물론이려니와 지구촌이란 공동체의 삶에서 기본은 관계에 있다.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제도나 법령뿐 아니라, 공감과 교류 그리고 연대에 있다. 나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전달할 사회적 관계가 있는 사람은 살아나갈 수 있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그것을 공유할 사회적 관계망 안에 존재하는 사람은 견딜 수 있다. 그것이 공감과 연대의 힘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나고 힘 있는 자라 하더라도 사회적 고립 속에서 버틸 수 없다. `왕따`를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까닭은 거기 있다.오늘날 한국의 교육과 입시제도는 무한경쟁을 기본질료로 삼는다. 1등만 기억하는 승자독식의 경기규칙이 지배하는 교육과 입시제도. 거기서 발원하는 탈학교 행렬과 자살학생들의 끝없는 대열! 그런데 그와 같은 교육과 입시를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내 아들과 딸의 1% 소속을 확신하는 교육부 관료들의 작품 아닌가. 입시와 교육을 통한 신분제 사회를 기획하는 자들의 섬뜩한 음모는 아닌가? 그런 의구심마저 든다.관료는 국가의 기둥이자 공복이다. 국민의 종복인 관료는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을 위해 진력함으로써 존립근거가 확보된다. 교육 관료가 99% 국민을 개돼지로 인식하는 나라는 미래는커녕 현재도 없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에게 이번 사건은 충격을 넘어 공포 자체다. 이참에 1%를 자임하는 관료들의 근본적인 자질과 품성을 근본적으로 다잡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2016-07-15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장마철이지만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과 열대야가 간간이 끼어든다. 장마 지나가면 우리는 여름의 기세에 눌려 지낼 수밖에 없다. 장마는 그런 날들이 오기 전의 짧은 축복이리라. 대구에 내리는 비가 영덕과 포항을 비켜나가기 일쑤다. 비구름대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탓이다. 그럼에도 대구와 영덕 포항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분주하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만나는 그들의 얼굴에는 화색(和色)이 없다. 짜증스럽고 화난 표정으로 걸음을 서두르는 인총들을 보노라면 적잖게 우울하다. 용케 아는 얼굴이라도 볼라치면 바쁘다는 말을 이내 내뱉는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 자동화된 일상의 부품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21세기 대중사회의 그늘이 날로 깊어간다. 이런 장마철에 동화 (童話) 같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까닭은 거기 있다.`소가 된 게으름뱅이`라는 이야기를 기억하시는가?! 열두어 살 무렵 국어책에서 본 듯하다. 놀기만 좋아하고 빈들거리며 살아가던 게으름뱅이가 어느 날 소가 된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하지만, 그의 말소리는 소 울음소리로 바뀐 지 오래다. 고된 노동과 인간소외로 자살을 결심한 게으름뱅이는 먹지 말라는 무를 먹고 인간으로 환생(還生)한다. 이야기의 교훈은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는 것이었다.근면 자조 협동, 새마을운동, 조국근대화 같은 구호로 길들여진 지난 세기에 부지런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한국인들이 가난한 까닭을 게으름에서 본 것은 일제 총독부 관리들이나 해방이후 위정자들이나 동일하다. 부모나 조상 탓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면 먹고살 길이 열린다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흙수저 금수저 따지지 말고 죽어라 노동하면 언젠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그러다가 우연히 마주친 버트란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제목부터 낯설었을 뿐 아니라, 그 내용까지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대목은 공평한 노동이다. 1935년에 집필된 서책에서 러셀은 `누구나` 하루에 3시간만 노동하면 된다고 못을 박는다. 당연히 누구나란 말에 방점이 찍힌다. 왕후장상(王侯將相)도 정신노동자도 육체노동자도 예외 없이 하루 3시간만 노동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3시간 노동하고 남는 시간을 문화와 예술분야로 돌리자는 발상 또한 놀라운 것이었다. 잉여노동(剩餘動)과 생산을 통한 부의 축적과 극대화한 소비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이라니!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움과 인간성의 발현을 위한 적절한 방책이라는 주장은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 누군가는 땀에 흠씬 젖어 노동할 때 누군가는 골프를 치고 해외여행을 즐기며, 산해진미(山海珍味)로 미각을 충족시키고 있다.지구전체 차원에서 하루 3시간 노동을 설파한 러셀의 사유는 실현되지 않았다. 저임금 받으며 장시간 노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금수저 물고 나와 노동과 무관하게 일평생을 살아가는 족속(族屬)도 있다. 러셀은 이런 부당하고 불의한 현실에 경종을 울린 것이거니와,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21세기에도 이런 부당성은 개선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것이 거리와 광장과 지하철에서 만난 분망(奔忙)한 표정의 인총들 사연 아닐까?!19살 청년이 지하철 작업장에서 죽고, 시간에 쫓긴 냉방기 기사가 추락해 죽고, 30대 젊은 검사가 상관의 모욕으로 죽어나가는 한국사회! 보도되지도 않는 노동자들의 분노와 절망과 죽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자기실현과 경제적인 독립을 보장하는 노동의 가치는 재언을 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옥죄는 사회적 불평등과 불의는 장마철 젖은 대기처럼 끈적이며 달라붙는다. 청량한 한줄기 바람은 언제 어디서 불어올 것인가?!

2016-07-08

`브렉시트`와 한국인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지난 일주일 지구촌을 뒤흔든 사건은 `브렉시트`다. 1993년 유럽 12개국으로 창설된 유럽연합은 2007년에 28개국으로 확대된다. 2002년부터 영국을 제외한 유럽연합 국가들은 공용화폐 `유로`를 사용하기에 이른다. 작년에는 그리스의 유럽연합 탈퇴를 의미하는 `그렉시트`가 인구에 회자(膾炙)되기도 했다. 그리스는 국민투표를 거쳐 유럽연합 잔류를 결정했지만, 영국은 탈퇴를 선택함으로써 지구촌이 들썩거리고 있다.월러스틴과 함께 대표적인 세계주의자로 꼽히는 리프킨은 `유러피언 드림`(2009)에서 21세기 세계의 향방을 정립하고자 한다. 그는 유럽연합과 더불어 북미의 `나프타`, 중남미의 `메르코르수르`, 아프리카의 `아프리카 통일기구`, 동남아시아의 `아세안` 등을 거명한다. 2030년 이후 세계는 지역연합에 기초해 재편성될 것이라고 리프킨은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의미심장하다.국내 언론에서 다루는 브렉시트 문제는 거개가 경제문제에 한정돼 있다. 엔화와 달러화의 급등, 안전자산인 금값의 폭등 혹은 국내 주식시장의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 중국의 `일대일로 (一帶一路)` 정책과 러시아의 서방정책 그리고 미국의 유럽과 아시아 정책향방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찾기 어렵다. 브렉시트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는 당면한 몇 가지 사안을 다각도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브렉시트로 불거진 세대갈등과 계층갈등을 숙고해야 한다. 20~40대 젊은 세대와 60대 이상의 나이든 세대의 충돌, 가진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의견대립이 현저했다. 젊고 고학력이면서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은 유럽연합 잔류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탈퇴를 선택한 것이다. 세계화의 흐름에 동조하면서 미래기획을 하는 집단과 거기서 소외되어 과거의 영화(榮華)를 그리워하는 자들의 한판 승부가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였다. 영국의 계층갈등과 세대갈등을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있을까?신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밀양이냐 가덕도냐, 하는 소란스런 논란이 떠오른다. 지난 6월 21일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났다. 10조원에 이르는 예산이 소요되는 대형 국책사업에 `티케이`와 `피케이`가 사활을 걸고 맞장 뜬 사건. 표면적으로는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든 필요에 따라 부상 (浮上) 가능성이 큰 국책사업. 국민 세금으로 지어질 공항을 두고 전개된 정치권의 패거리 싸움은 매우 고약하다.국가예산을 제 주머니의 푼돈정도로 여기는 정치인들과 정파(政派)의 부패-무능-타락-패거리주의는 끝장내야 한다. 세계적인 불황의 늪에서 국민들이 낸 세금을 특정지역과 집단을 위해 써도 좋다는 타락한 의식은 종식(終熄)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문학관` 건립사업 역시 같은 전철(前轍)을 답습하고 있다. 문학과 문학가가 아니라, 문학관과 거기 따른 부대이득에 혈안이 된 자들과 지자체의 물고물리는 이전투구(泥田鬪狗)는 끔찍하다.브렉시트로 확인된 지구촌의 거리는 상상 이상으로 가까운 것이었다. 하기야 `코파아메리카 2016`과 `유로 2016`이 실시간 중계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지금과 여기서 발생하고 전개되는 모든 사건이 똑똑한 전화기로 매순간 생중계되는 21세기 아닌가! 그런 마당에 우리는 여전히 지역과 관계와 이해관계와 정파에 묶여 살아간다. 최소한도의 미래전망이나 반성적 사유도 없이.브렉시트로 세계주의에는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자본의 앞잡이로 기능하고 있는 영미중심의 강요된 세계화와 천민자본주의가 끝장나기를 희망한다. 그럼에도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은 우리 내부를 돌아보게 하는 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날선 모순의 해결책을 찾는 비상(非常)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2016-07-01

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얼마 전 서울에서 열리는 월례(月例) 발표회에 다녀왔다. 학회장을 맡고 있는 후배가 발제를 권하기도 했고, 평소에 고민하던 문제이기도 해서 모처럼 발품을 팔았다.`한국 인문학의 미래와 대학 구조조정`, 이것이 당일 콜로키움 주제였다. 여기에는 상당히 거창한 문제제기와 가능성 타진이 함축돼 있다. 내가 제기한 몇 가지 문제를 놓고 토론만 한다 해도, 몇날며칠은 걸릴 것이고, 책자로 나와도 몇 권은 소요될 것이다.거두절미하고, 두 가지만 생각해보자. 첫 번째는 한국 인문학의 자생성이다. 장구한 세월 구축해왔다고 우리가 믿는 (혹은 믿고 싶은) 한국 인문학의 뿌리에 자생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문학이 아니어도 좋다.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예술이든 종교든 모든 영역에 이른바 `자생성` 내지 독자성이란 게 있느냐 하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동학(東學)은 예외로 하자!) 한국의 학문이 독자적인 생존능력과 독창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과문(寡聞)한 탓인지 모르지만, 어느 학문 영역에도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독자적인 담론이자 이론체계다!” 할 것이 있나 싶다. 장구한 세월 외부에서 수입한 이론이나 담론체계를 손봐서 살아오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다.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 이전에는 중국을, 1945년 해방 이전까지는 일본을, 그리고 2016년 지금까지는 미국을 베껴오지 않았느냐고 나는 묻는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언제까지 베낄 것이냐`하는 것이다.두 번째는, 교육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대학 구조조정 문제다. 단순화하자면, 대학정원이 신입생에 비해 과다하기 때문에 부실대학은 정리하고, 취업 안 되는 인문사회계열 정원 줄이겠다는 얘기다. 전자는 동의할 만하다. 하지만 부실사학 교주(校主)들의 재산권을 보전해주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익을 남길 때 그들은 우리와 이익을 함께 했는가. 국민세금으로 배부른 교주들의 배를 불리고 등을 덥혀줄 이유가 있는가?!인문사회계열 정원 줄여서 공대에 몰아주겠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다. 오늘날 대학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은 교육부다.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내세워 부실사학을 양산(量産)하고, 2년제 전문대학을 4년제 대학으로 격상시킨 장본인이 교육부 아닌가.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극복하지 못한 현실에서 이공계 증원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단견(短見)이 아닐 수 없다.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면 축대가 튼튼해지겠는가?!2016년 시점에서 한국대학은 모순과 부조리의 총체적인 복합체다. 소설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대학생들이 허다하다. 장편은커녕 단편소설마저 읽기 버거운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75분 동안 진행되는 수업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느끼는 강단의 절망감은 형언(形言)하기 어렵다. 대학이 어떤 곳인지, 거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대학생이 된 청춘이 너무 많다.지난세기 60-70년대 `우골탑신화`를 기억하는 낡은 세대의 추억을 잊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대학은 직장인 양성소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는 현실이 2016년이다. 그것을 입증하는 사건이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對局)이었다. 불과 20년을 내다보지 못한 교육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이 앞으로 한국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망칠 것인가, 두려움이 앞선다. 그들이 취업률 운운하며 대학에 칼날을 들이대는 현실이 안타깝고 두렵다.인공지능 시대와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상황을 돌이키지 않고 교육부가 막무가내로 진행하는 대학 구조조정은 실패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칼춤을 출 것이고, 학생과 학부모들만 희생양이 될 것은 자명하다. 아아! 교육의 신이여, 강림(降臨)하소서!

2016-06-24

혼자만을 위한 식탁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그것은 어렴풋한 기억이다. 간유리로 보이는 사물처럼 뿌옇고 막연하다. 하지만 이미지만큼은 생생하다. 식탁 가득 음식을 차려놓은 여인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뭐, 어때! 나 혼자만을 위한 식탁을 차리는 게!” 아마 화면(畵面) 속의 여인은 그렇게 말했던 듯하다. 항상 함께 했던 `그`의 존재는 지워지고 오롯하게 남은 여인의 화사(華奢)한 얼굴이 선하다. 오래 전 보았던 텔레비전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다.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500만을 넘었다는 방송보도가 얼마 전에 나왔다. 30년 전에 비해 8배 이상 늘었다는 보도와 함께 10가구 가운데 3가구가 1인 가구라는 통계도 나왔다. 한국사회의 변화속도는 가히 `넘사벽`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수준이다. 2005년 동성동본 금혼폐지 이전에 적잖은 청춘남녀가 전근대적인 풍속 때문에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요즘 대학가에 넘쳐나는 동거습속은 얼마나 우후죽순(雨後竹筍) 격인가?불과 30여 년 전에는 낯설었던 1인 가구가 한국가정의 주류(主流)를 형성하게 됐음은 경이로운 현상이다. 가공할 속도의 시대에도 한국인들은 구시대의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의 단적(端的)인 예가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다. 언제 시집가고 장가갈 것인지를 묻는 집안 어른들 때문에 괴로운 청춘들의 이야기는 너무 흔하다. 세태풍속의 변화와 내 자식과 손자들은 무관하다는 무의식(無意識)의 범람이 지배하는 한국사회.1인 가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1인용 식탁을 양산(量産)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시장에서도 1인용 식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사정은 영 딴판이다. 적어도 3~4인 가구 기준으로 식재료가 판매된다. 사자니 남아서 버려야 하고, 안 사자니 그럴 수 없는 지경이다. 1987년 쾰른 거리시장에서 수박을 8등분해서 파는 것을 보고 경악(驚愕)한 일이 있다. 1인용 판매를 본 적이 없는 토종 한국인의 망양지탄(望洋之嘆)이라니!수박 1통의 가격은 8등분한 수박 1통과 동일했다. 많이 산다고 해서 깎아주지도 않고, 적게 산다고 해서 손해 보지 않는 그들의 염량세태(炎凉世態). 이제야 그런 풍속도가 온전히 이해되는 것이다. 당시 도이칠란트에는 1인 가구가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훗날에야 깨달은 셈이다. 유럽이나 미국을 보면 일본이 보이고,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이는 것이 역사발전 단계인가? 여하튼 1인 가구가 시대의 대세(大勢)로 자리 잡은 것은 명백하다.문제는 1인 가구의 세대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다. 작게는 식재료에서부터 크게는 사회적 편견의 해소(解消)가 필요하다. 왜 혼자 사는지를 묻기 전에 혼자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사회의 1인 가구는 20~30대에 국한(局限)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고독사(孤獨死)로 세상과 작별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정확한 통계수치조차 없는 해괴한 나라 아닌가?여기 더해서 미혼모(未婚母)라든가, 이혼한 남녀, 가출 청소년, 사회 부적응자(不適應者)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배려가 필요한 영역은 헤아리기 어렵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얕은 인식에서 기인하는 편 가르기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사안(事案)을 들여다봄이 온당할 것이다. 그날 1인용 식탁에 차려진 풍성한 음식을 보면서 나는 쓸쓸했다. 역시 누군가 옆에 있어야 제격일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시공간과 인과율마저 무너져 내리는 `인터스텔라`의 시대에 살면서 아직도 19세기 암흑천지에서 배회하는 영혼들의 아우성이 오늘도 하늘을 찌른다.

2016-06-17

밀양과 가덕도 사이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선택이 멈추면 인생도 끝이다. 그만큼 우리 삶은 선택의 연속(連續)이다.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인간의 생은 마지막 날까지 지속된다. 버스에 한 자리만 비어 있으면 우리는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자리만 비어도 선택해야 한다. 그 정도로 선택은 축복이자 고민(苦悶)의 원천이다. 그래서 자의식(自意識)이 미약하거나 사소한 선택에도 괴로운 사람은 남에게 선택권을 넘긴다. 다수결에 순응하겠다는 얘기다. 요즘 신공항 얘기로 밀양과 가덕도가 시끌벅적하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나온 이야기가 급기야 종점(終點)으로 치닫는 모양이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 문제는 마침표를 대하는 사람들의 내면세계다. 신공항 부지 타당성 조사가 끝나면 어느 한 곳은 환호성을 지를 터이고, 다른 쪽은 고개를 숙일 터. 그런데 최종결론이 나기도 전에 불복(不服)하느니 어쩌니 하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흘러나온다.2005년 11월 2일에 있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일명 방폐장)` 부지선정을 보자.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겠지만, 전국 4개 예비지역을 두고 벌인 주민투표가 치열하게 전개됐다. 경주시가 89.5%의 찬성률로 군산과 영덕, 포항을 누르고 최종부지로 선정됐다. 환호하던 경주 시민들과 풀이 죽은 여타 주민들의 표정이 지금도 선하다. 하지만 경주 시민들은 방폐장 건설로 얼마나 행복하고 부유해졌는지, 묻고 싶다.`님비현상` 때문에 중앙정부가 부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현상금을 걸어야 했던 방폐장 사업. 돈을 내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돈이 없다면 위험시설이나 혐오시설을 짓지 못하게 하는 볼썽사나운 풍경이 되풀이되는 현실. 신공항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밀양과 가덕도가 마치 티케이와 피케이를 나누는 것처럼 진영싸움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기 때문이다. 양자대결이 과열되어 이대로 가다가는 파열음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원칙을 확인했으면 한다. 첫째, 밀양과 가덕도의 양자택일(兩者擇一) 전에 김해공항 확대방안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밀양이든 가덕도든 김해공항보다 나은 입지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존의 공항 인프라를 확충하고, 새로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필요한 부지를 구입한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리라 믿는다. 만일 이런 판단이 옳다면 공항부지 선정은 즉시 중단돼야 할 것이다.둘째, 결과에 승복(承服)하는 것이다. 밀양도 가덕도도 모두 대한민국 영토 안에 있다. 우리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후손들에게 넘겨주자는 일에 토를 달지는 못할 것이다. 결과에 군말 없이 동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셋째,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공정한 판단을 흐려서는 안 된다. 권력을 소유한 특정집단이나 정파의 유-불리를 따져서는 결과의 공정성이 의심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최대한 공정한 규칙에 따라야 할 것이다.넷째, 공항이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우리의 몸보다는 귀하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두 어깨가 천하보다 무겁다!”는 장자(莊子)의 말을 새길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가 의지해서 살아가는 육신(肉身)이다. 그것을 위한 공항이고 정치며 지역정서라는 얘기다. 눈앞의 크고 작은 이해관계에 함몰(陷沒)돼 진정으로 귀하고 값진 것을 소홀히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결정적으로 부언(附言)하자면, 결론이 나면 의연하고 당당하게 결론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순리(順理)고 아름다운 미덕이므로! 선택은 쉼 없이 우리를 찾고 또 찾아올 것이므로.

2016-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