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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변화하는 고담시티 대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대구 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 예전에는 능금, 미인, 무더위. 요즘엔 완고함, 박정희 부녀, 수구보수.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구는 `고담시티`로 불린다. 영화 `배트맨`에 등장하는 거악(巨惡)의 소굴이자 본산. 청산해야 할 적폐의 본고장 고담시티. 일반화가 야기하는 필연적인 오류에도 일말(一抹)의 진실은 있다. 우직할 정도의 고집스러움과 제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것이 대구에는 있다. 혹자는 `대구정서`라고도 한다.경북대에 부임한 지 25년 지나는 시점에 대구를 생각한다. 286컴퓨터를 쓰던 1992년 몸담은 대학생활이 한 세대에 이르렀다. 열혈청년이 초로에 접어든 형국이니, 어찌 회한이 없겠는가? 공중전화가 삐삐로, 묵직한 이동통신 단말기를 거쳐 무선전화기로,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변신을 거듭했던 광속의 시간대. 세로쓰기와 한자를 고집하던 신문들이 가로쓰기로 전환했던 시기. 문민정부를 거쳐 평화적 정권교체와 `국제통화기금 사태`가 있었던 격동의 전환기.25년 동안 내가 피부로 느끼는 대구의 유일한 변화는 최고기온이다. 1994년 여름 3주 내내 지속된 열대야와 39.4℃까지 치솟은 무더위를 기억한다. 아스팔트마저 녹아내렸던 전설의 흑역사! `응답하라 1994`에 그런 모습이 나왔는지는 모르되, 역대급 무더위였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한낱 추억이 되고 말았다. 아주 덥지도 춥지도 않은 도시 대구.25년 세월에서 거대도시 대구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것은 분명 내 탓이다. 둔감하거나 익숙해졌거나, 그것이 원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를 거부하는 대구 시민들의 생래적인 완악함이 까닭일 수도 있겠다. 경북대 인문대학은 `인문학기획위원회`와 `인문학술원`을 발족시킨 이래 칠곡군과 부산 기장군 같은 소규모 지자체와 협업해왔다. 칠곡군은 인구 13만, 기장군은 인구 16만 정도의 아담한 규모다. 대구는 250만 아닌가.칠곡군에 구상문학관이 개관한 것은 2002년 10월 4일. 대구 시민들 가운데 구상 시인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터. 시인이 1953년부터 20여 년 왜관에 정착해 문필활동을 전개했다 하여 군(郡) 당국이 나서서 지은 구상문학관. 그로부터 12년 세월이 지나 `대구문학관`이 개관한다. 대구의 자랑인 현진건, 이상화, 이장희 세 분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아마 광역시 포함해서 지자체 가운데 가장 늦은 행보 아닌가 한다. (수필문학가 한세광 선생을 기리는 `흑구문학관`이 인구 52만의 포항시에 개관한 것은 지난 2012년 일이었다.)대구를 거점으로 활동한 이육사 시인을 기리는 `이육사 작은 문학관`도 작년에 개관했지만 대구시는 행·재정적인 지원을 외면하고 있다. 그런 문학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대구행정은 지나칠 정도로 공무원과 정치가 중심으로 진행돼온 감이 크다. 거점 국립대인 경북대 앞에 여태 지하철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그런 대구시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21일 나는 `대구시민대학` 강연회에서 `대구와 문학`이란 제목으로 300여 시민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대구와 연관된 시인과 소설가를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자리를 빼곡하게 메운 시민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크고 작은 지자체에서 오래 전부터 베풀었던 인문학강연이 고담시티 대구에도 상륙한 것이다. 실로 놀라운 변화다.이런 유쾌한 변화가 몰고올 대구의 미래를 생각한다. 자연과학과 공학이 눈부시게 현현하여 변화속도마저 가늠하기 어려운 4차 산업혁명시기. 그럼에도 우리의 본령을 지탱하는 것은 인문학이다. 기술과 공학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자연과 교감하면서 창조와 생을 인도하는 인문학. 생명 가진 것들의 생장과 변화와 소멸을 응시하고 본원적인 내면을 성찰하는 인문학. 이제야 당도한 대구의 작은 변화를 보면서 대구의 도약과 웅비를 기원한다.

2017-03-24

불륜은 있는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혜원(蕙園) 신윤복의 그림 가운데 `월하정인(月下情人)`이 있다. 선인(先人)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애인이 아니라, 정인이라 일컬었다. 애인은 일본에서 들어온 왜말이다. `월하정인`은 정분(情分)이 난 남녀가 달 아래 어디론가 행보하기 직전의 정경을 담은 그림이다.요즘 그림에서 일상화된 원근법과 풍경묘사와 사뭇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담장과 달라붙은 듯 보이는 후원. 그곳에서 녹음을 드러내고 있는 나무. 부분월식으로 아래쪽이 보이지 않고 위쪽만 동그마니 드러난 달. 그런 배경을 두고 등잔을 든 사내가 은근한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며 괴춤에서 무엇인가 꺼내고 있다. 볼이 살짝 물든 여인네는 별로 주저하지 않고 사내의 제안을 선선히 받아들이는 품이다.`월하정인`의 `화제(畵題)`는 “월심심야삼경 양인심사양인지(月深深夜三更 兩人心思兩人知)”. 현대어로 번역하면 “달밤 깊어 삼경인데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정도다. 화가는 그들의 관계가 사뭇 은밀하다는 것만을 그려낼 뿐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림을 완상(玩賞)하는 사람이 나름대로 해석할 여지를 충분히 베푼 셈이다. 여염집 아낙이 처녀인지 과수댁인지, 그녀를 찾아온 사내가 무엇을 하는 사내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하되, 그는 유부남이다.대전의 젊은 천문학자의 노력으로 밝혀진 것은 그림 속의 부분월식이 1793년 8월 21일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천체(天體)에서 발생한 부분월식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한밤중의 사랑이야기가 화폭에 담겨 있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조가 다스리던 18세기 후반 조선시대의 반가(班家)에서 조차 남녀의 은밀한 만남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단원(檀園)과 혜원이 그려낸 풍속도가 알려주는 내용이다.각설하고, 요즘 세간에 회자되는 남녀 이야기를 생각해본다. 그들은 영화감독과 배우로 인연을 맺었고, 지난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그들을 둘러싼 비난이 거세다. 왜냐면 아내가 있는 남자가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정분이 났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혼하고자 하지만, 옛날 아내는 그럴 마음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도 한다. 결국 감독과 여배우는 `불륜남녀`로 각인됐다.호사가(好事家)들은 그들의 나이 차이와 끝나지 않은 이혼소송을 두고 그들을 비난하느라 골몰한다. 우리나라처럼 남의 일에, 특히 뭔가 낯설고 특별한 행보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나타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모두에게 익숙하고 일반화된 행동양식에서 조금만 일탈(逸脫)해도 대중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일이 다반사(茶飯事)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고 남들이 하는 양을 따라 하거나 가능하면 튀지 않으려 애쓴다.다수를 차지하는 그들처럼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휴가를 쓰고, 자동차를 구입하고, 아파트에 사는 편이 가장 안전하다. 중간 치기가 유독 많은 나라가 한국이다. 어딜 가나 중간만 하면 된다는 평준화된 의식이 사회여론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창의적인 사고와 독창적이고 독특한 괴짜의 사유와 인식 혹은 디자인이 나오지 않는다. “될성부른 싹은 어릴 적부터 잘라버리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그것도 모자라 낙인(印)을 찍어 마무리한다. “이상한 사람이라던데! 불륜이야!”몸도 마음도 떠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적절한 시기에 우아하게 악수하고 떠나보내고 떠나가는 것이 아름답고 상쾌하다. 그나 그녀가 누구와 무슨 인연을 맺든 그것은 그들의 몫이고 그들의 선택이고 그들의 운명이고 그들의 자유다. 그것이 불륜인지 아닌지, 불장난인지 숙명인지, 가늠하는 것은 그들만이 판단하고 평가할 일이다. `불륜타령`에서 이제는 조금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2017-03-17

닭장을 만들며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어릴 적부터 미술과 공작은 젬병이었다. 특히 입체를 만든다는 것은 은산철벽의 세계였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찰흙 만들기도 버거웠다. 그것은 선친의 유산이었으리라. 아버지가 못을 박거나 뭘 만드시는 걸 본 적이 없다. 전기나 수도, 그 밖의 모든 집안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두 살 터울인 형이 나이 들면서 그 일은 형에게 이관되었다. 어머니의 유전형질을 상속받은 형. 하지만 나는 그런 방면에 전연 무능했지만 뭐 그것을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마당이 소원(疎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나 고양이를 키워보라는 분들도 있었으나, 그것들이 아무도 없는 집에서 우두커니 주인을 기다린다 생각하면 내키지 않았다. 일곱 살, 열 살 무렵 개한테 물린 기억도 상처로 남아 있었으니 달가울 리 없고. 고양이는 또 뭔가 유쾌하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여하튼 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적막한 마당을 들여다보면서 작심한 것이 닭을 길러보자는 심산이었다.조류독감이 기승을 떨치는 판국이어서 닭에게 달걀을 얻자는 속셈도 없지는 않았다. 우리가 `치킨`이라 부르는 닭은 대개 30~40일 정도 키워서 잡아먹는 육계(肉鷄)를 가리킨다. 생육조건이 좋다면 닭은 10년 이상 30년까지도 살 수 있다는 정보가 있다. 보기보다 머리도 좋아서 아파트에서 기르던 닭이 집을 나갔다가 승강기를 타고 제 살던 집 앞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도 들린다. 더욱이 질병에도 강한 편이어서 기르기도 수월하다는 것이다.마침내 결심을 굳히고 고평에 사는 방송사 국장을 찾아갔다. 저간의 사정을 말하니 흔쾌하게 딸기농장을 하는 친구에게 나를 인도한다. 거기서 쇠파이프 여섯 개를 얻고 땅을 깊이 팔 수 있는 묵직한 도구를 빌린다. 가로 4m, 세로 2.6m, 높이 1.5m 규모의 닭장신축을 위한 사전준비는 그렇게 이뤄졌다. 다섯 개 파이프는 제자리를 잡았지만, 나머지 하나는 불가능했다. 그곳이 예전 집터여서 단단한 콘크리트가 바닥에 깔려있던 탓이다.직사각형에서 변형된 마름모꼴로 닭장의 외형이 바뀐다. 그것으로 하루일과 마무리. 일주일 뒤에 그와 함께 드릴로 파이프에 구멍을 뚫고 나사로 고정하는 난제(難題)에 도전한다. 졸렬한 내 솜씨로 드릴작업은 불가능했고, 국장의 힘과 기능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폐가에서 주워온 문짝으로 닭장 문을 달고, 자재상에서 철망과 차광막을 구입한다. 족제비나 쥐의 공격을 차단하려면 철망을 땅속으로 20~30㎝ 깊이로 묻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철망을 둘러치며 크고 작은 돌로 요새나 성채처럼 닭장 주위를 막아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이제부터는 독자적인 작업이다. 장마철을 대비해서 닭장 안에 아담한 비닐하우스를 지어주기로 한다. 바닥에 목재 팔레트를 두 개 깔고 그 위에 네 개의 지주(支柱)를 설치해 이층집을 만드는 작업은 고단하기 이를 데 없다. 작업을 지켜보던 옆집 아주머니는 청설모의 공격에도 대비해야 한다면서 이중철망 설치를 추천한다. 하, 이런 일이!그렇게 다시 하루가 간다. 온몸이 고달프고 통증이 찾아온다. 마침내 네 번째 주 일요일 저녁 사위(四圍)가 어둑해서야 닭장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아중철망을 촘촘히 엮는 작업은 미완(未完)이지만, 일단 닭장 형상만은 그럴 듯하다. 국장 댁에서 얻어온 모과나무 두 줄기를 가로세로로 엮고, 거기에 대나무로 횃대를 설치한다. 옆집 영감님도 잘 만들었다고 한 마디 거든다. 이렇게 커다란 공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닭장을 만들면서 대목(大木)과 그에 딸린 노동자들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다. 사람 살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의미 있는 일인지 새삼스레 다가온 게다. 봄날이 따뜻해지면 장터에 나가 예닐곱 마리 닭이나 중평아리를 사올 모양이다. 오랜 세월 육체노동과 거리 두고 살아온 인생을 돌이키는 닭장이 감나무 아래 오롯하다. 아직 보지도 못한 닭을 위한 인간의 고단한 노동이라니! 곤줄박이 울음소리 한가로운 아침이다.

2017-03-10

가로막는 벽, 장벽에 관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넘사벽`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캄캄절벽을 뜻한다. 고어(古語)로는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가까운 말이 아닌가 한다. 불가(佛家)의 선승들이 수행하면서 공안(公案) 하나를 붙들고 정진하다가 마주치게 되는 견고한 장벽(障壁)을 가리킨다. 행자가 아니라 해도 고단한 인생살이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벽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길고 크며 오랜 역사를 가진 장벽은 만리장성이다. 혹자는 장성이 달에서도 보인다는 `구라`를 풀어 좌중을 숙연한 분위기로 몰고 갔다 한다. 중화세계는 전국시대부터 초원지대의 유목민인 융적(戎狄)에 대한 두려움으로 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기원전 771년 호경의 서주(西周)가 낙읍의 동주(東周)로 천도한 사건은 서융의 공격을 견디지 못한 까닭이다. 만리장성은 시황제 정(政)의 독자적인 사업이 아니라 역사적인 맥락을 가진 것이다.중화의 서쪽에서 출몰했던 튀르크 계통의 융과 달리 장성의 북쪽에서는 흉노라 불리는 초원 유목민 세력이 강성했다. 단명했던 진제국의 뒤를 이은 한고조 유방은 기원전 202년 2월 `해하의 전투`에서 초패왕 항우를 격멸하고 황제를 칭한다. `초한지`의 근간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장성 북쪽의 장치세력 흉노와 `묵돌`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중화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에 익숙한 탓이다.진시황이 죽은 지 1년 만인 기원전 209년 흉노의 선우(왕) 두만이 아들인 묵돌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 권력을 찬탈하여 선우가 된 묵돌은 동호와 월지 등을 복속시키면서 세력을 확장한다. 흉노와 한은 기원전 200년 백등산(지금의 산서성 정양현)에서 맞붙는다. 이른바 `백등산 전투`다. 기병을 주력으로 한 묵돌의 유인작전에 걸려든 보병의 유방은 선우의 연지(왕비)에게 두둑한 선물을 주고 사지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다. 그 후로 한나라 황제들은 공주를 역대 선우의 연지로 바치고, 비단과 목화, 술과 쌀 같은 공물을 흉노에게 바쳐야 했다.일본의 몽골역사 전문가 스기야마 마사아키는 백등산 전투를 세계사에 일획을 그은 사건이라 평가한다. 기동성과 집단성이 뛰어난 유목민의 기마 전사들을 보병중심의 군대로 적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이다. 따라서 백등산 전투는 흉노와 한이라는 두 제국의 전쟁이 아니라 유목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대 사변이다. 이런 양상은 근대서양이 촉발한 총과 탄약과 해양의 시대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2천년 동안 지속되었다.기원전 129년 한 무제가 시작한 흉노전쟁은 소제(昭帝)가 흉노와 강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일단 마무리된다. 따라서 중원을 놓고 패권을 겨룬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묵돌 선우와 흉노를 빼놓으면 안 된다. 오랜 대립과 항쟁에도 불구하고 전한과 후한시대는 대체로 흉노와 한이 남과 북에서 공존하게 된다. 투르크-몽골계통의 유목세계인 흉노와 한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농경세계인 한나라의 두 체제가 성립하게 된 것이다.만리장성은 장성 너머의 오랑캐를 방어하는 목적보다는 장성 안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장성 안쪽 혹은 아래쪽은 화하(華夏)의 세계이고, 그 너머는 야만의 땅이라는 차별과 의식의 벽이 만리장성이다. 그러나 장성에 자리한 관시(關市) 혹은 호시(互市)를 통해서 초원지대 농경지대의 산물은 교환되었고, 문화교류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거대한 장벽으로도 막지 못하는 흐름이 있었다는 얘기다.초원 유목민이 세운 돌궐제국의 창시자 돈욕곡은 기막힌 명언을 남긴다. “성을 쌓고 사는 자, 기필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 그가 살아남을 것이다.” 21세기 `노마드` 시대를 살아가면서 생각해볼만한 구절이 아닌가 한다.

2017-03-03

흐르지 않는 강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1992년 출품된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 몬타나 주의 강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일가족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아버지에게 어릴 적부터 낚시를 배운 노먼과 폴 형제. 플라잉 낚시로 송어를 낚아채는 장면이 기억에 삼삼하다. 강물이 전진운동 하는 것처럼 영화의 시간도 앞으로 나아간다.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그리고 폴의 죽음으로 인한 깊은 상실과 지난날의 반추로 이어지는 숨 깊은 영화다. 햇살에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강물과 초록의 나무그늘과 형제의 멀리 퍼져나가는 웃음소리와 새파란 하늘과 손에 잡힐 듯 그려진 바람! 그런 자연의 향연만으로 넉넉한 선물을 부여하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인생의 비의(秘意)와 본질에 대한 성찰이 나의 생을 혼란으로 이끌던 무렵 이 영화는 숙제로 다가왔다. `강물이 흐르듯 시간 흐르고, 더 많은 세월 지나면 나는 무엇으로 남을까`하는 물음이 닥쳤던 시절.문득 생각한다. 강이 흐르지 않는다면?! `흐름이 정지한 강은 어찌 될까`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근자(近者)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수질개선을 위해 4대강에 2조2천억을 쓰겠다고 한다. 홍수예방과 수질개선을 목적으로 시작된 이른바 `4대강사업`으로 오히려 악화된 수질을 향상시키겠다는 명목으로 국민혈세를 투여하겠다는 얘기. 어느 조간신문은 그것을 일컬어 `2조원짜리 인공호흡기`라는 제목을 붙였다.4대강사업은 `한반도 대운하사업`으로 시작됐다가 빗발치는 여론악화로 수질개선과 홍수예방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집중호우로 인한 홍수는 4대강 본류가 아니라, 지류(支流)와 지천(支川)에서 발생한다. 지난 정부들이 노력한 결과 4대강 수질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4대강사업 결과로 수질은 지속적으로 악화됐고, 홍수예방도 성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 더해 4대강 준설토로 인한 피해도 해마다 수십억에 이른다고 한다.4대강 `녹조라테`라는 오명의 근저에는 흐르는 강물을 틀어막고 곳곳에 건설한 댐이 있다. 전직 대통령과 그 하수인들은 `보(堡)`라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보가 아니라 `댐`이라 한다. 소량이기는 하지만 각종 보에서는 전기도 생산한다. 도처에 생겨난 댐으로 인해 유속(流速)이 현저하게 느려졌고, 그로 인해 강물은 생래적 속성을 상실했다.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이 아니라 호수나 연못이다.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흐르지 않는 강물 역시 썩기 마련이다. 그 결과 녹조라테의 악순환이 그치지 않는다. 단순 공사비만 22조원이 투입된 4대강사업에 정부는 그간 지류·지천의 수질개선, 농업용수활용 등에 2조8천억을 들였다. 여기에 다시 2조2천억이 추가 투입되는 셈이다. 따라서 총공사비는 액면가로만 27조에 이른다. 그러고도 수질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지, 그것은 계속 물음표로 남는다.정부와 토건업자들의 배만 채워주고 실패로 돌아간 4대강사업의 해법은 단순하다. 그들이 주장하는 `보`를 허물어 강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다. 200만년 넘도록 흐르고 흘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강을 2년 만에 성형했으니 어찌 사달이 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의 큰 강들은 하나둘씩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그 강에 터를 닦고 살아온 허다한 생명들 역시 함께 사멸 중이다. 흐르지 않는 강물을 만든 인간의 죄악이 만들어낸 참사(慘事)다.많은 세월이 흘러 노먼은 그 옛날의 강에서 홀로 낚시를 던진다. 예전의 청춘과 활기는 없지만 그에게는 흘러간 강물과 시간의 추억이 있다. 시간이 흐르듯 유장(悠長)하게 흐르는 강에는 여전히 송어들이 노닌다. 그것들이 파닥거리며 맑고 푸른 대기로 뛰어오를 때 노먼은 이제는 없어진 폴과 부모를 떠올린다. 거기에는 예전처럼 투명하고 생생하게 살아 흐르는 강물이 있다. 흐르지 못해 죽은 우리의 강을 보면서 느끼는 소회(所懷) 한 자락이다.

2017-02-24

점, 선, 면 그리고 말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도형이나 입체를 그릴 때 최초 출발은 점(點)이다. 점과 점을 이으면 선(線)이 되고, 선이 셋 이상 모이면 면(面)이 된다. 면을 여럿 모으면 다면체가 된다. 다면체 가운데 모서리의 길이가 같은 것을 정다면체라 한다. 인류가 3차원 가시광선 세계에서 찾아낸 정다면체는 불과 다섯 개. 정삼각형을 기반으로 한 정사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와 정사각형을 기초로 한 정육면체, 그리고 정오각형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정십이면체가 그것이다. 점을 도시 혹은 농촌 같은 정착지라 생각하면 점의 거주자는 시민이거나 농민이다. 점과 점을 이어주는 선의 구실을 하는 자는 상인이며, 선으로 연결된 공간인 면의 거주자는 유목민이 된다. 이런 사유를 발전시켜 유목세계에 주목한 일본인 연구자가 스기야마 마사아키다. 현대 일본에서 몽골연구 분야에서 최고권위를 인정받는 그는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서 점, 선, 면의 사유를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장한다.우리에게 익숙한 `4대문명`이라는 개념도 점의 사고에 익숙한 정주의식(定住意識)에서 발원한다. 그 점이 매우 크다 해도 유라시아 전역을 포괄할 수 없다. 이집트 북부 지역까지 아우르는 아프로-유라시아(Afro-Eurasia)를 상정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정착민이 발전시킨 문명을 다른 지역으로 전파하고 교류하도록 인도한 유목민을 배제한 유라시아를 상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유목민들이 이동수단으로 삼은 대표적인 동물은 말과 낙타다.낙타는 주로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지역의 대상(隊商)들이 사용했다는 면에서 논외로 하자. 요즘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말`에 초점을 두고 생각한다. 젊은 역사학자 강인욱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는 적어도 2~3만 년 전부터 말을 식용(食用)으로 삼았다고 한다. 구석기시대의 말 그림은 프랑스와 러시아 알타이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라스코 동굴벽화는 채색화이며, 알타이 칼구타 유적의 말 그림은 암각화 형식이라고 한다.고기로 활용된 말이 기원전 3500년 전부터 운송수단으로 등장한다. 말이 운송수단의 총아가 되는데 필요한 세 가지 마구가 차례로 발명된다. 재갈과 안장, 그리고 등자다. 기원전 3000년 무렵 사용되기 시작한 재갈은 말을 순치(馴致)시키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이동과 정지를 적시에 명령하고 실행하는 도구가 재갈이었다. 재갈은 고삐와 전차발명으로 이어져 기동력이 뛰어난 전차의 발명으로 이어진다. 초원을 질주하는 전차군단을 연상하시라.재갈에 이어서 장거리 이동에 필수적인 안장이 발명된다. 기원전 7세기에 스키타이 군사들이 카펫을 안장으로 사용했고, 흉노는 나무안장을 발명했다고 한다. 안장 없는 승마의 불편과 불안정성은 재언의 여지가 없다. 그러다가 마침내 서기 3~4세기 무렵 고구려와 선비족이 금속제 등자를 발명해 말을 타고 내림에 불편함을 제거한다. 등자는 말 위에서 자유자재한 동작 가능성을 기수에게 선사함으로써 수렵과 전투의 일대전환을 가져온다.스키타이가 등자를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정수일 교수는 고삐나 재갈, 등자가 역사의 대변혁을 발생시켰다고 말한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이런 발명이 유목사회와 군대조직에 일대파란을 가져오면서 세계사의 변혁을 추동했다는 점에서 그것을 `역사적 사변`이라 부른다. 말이 없는 고대사와 유목사회 그리고 전투장면을 상상할 수 없다. 이동과 목축과 전쟁의 가장 일차적인 요소인 속도와 운송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늠하기 어렵다.그래서다. 열차를 철마(鐵馬)에 비유하는 까닭은! 근대의 상징으로 표상되는 열차와 그로 인해 밀려난 말의 대비는 100여 년 전 일이다. 국정농단의 비선실세와 그 여자의 딸과 굴지의 재벌 삼성이 `말`로 인연을 맺었다니 말의 가치가 새삼스럽다. `오관참수`와 `천리주단기`로 의리의 대명사가 된 관우의 `천리마`와 30억 짜리 `명마` 블라디미르를 생각하는 아침이다.

2017-02-17

단절은 어디서 오는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언제부턴가 대학사회에 균열이 생겨나더니 이제는 단절의 심연마저 깊어지는 형국이다. 25년째 대학에 몸담아오면서 이렇게 넓어진 틈새와 태무심(殆無心)을 본 적이 없다. 돌이켜보면 지난 세기 90년대에 우리는 여전히 희망 같은 걸 간직했던 듯싶다. 각자 다른 향기와 빛깔과 무게를 가진 희망이었지만, 그래도 바람 같은 것이 있었다. `87체제`가 그 첫머리를 아직 끝내지 못했을 무렵 대학에 부임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분단된 동서 도이칠란트가 하나 되는 장면을 베를린 한복판에서 목도(目睹)한 나로서는 더욱 그러했다. 고르바초프에게 100억 마르크(50억 달러)를 넘겨주고 분단에서 통일로 넘어가는 장면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좌든 우든, 극우든 극좌든 “피는 이념보다 강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던 도이칠란트 정객들의 인식과 실천은 놀라웠다. 그런 결실의 이면(裏面)에 빌리 브란트로 대표되는 `동방정책`이 자리하고 있음은 재언의 여지가 없다.그 나라와 8시간 시차를 가진 조국으로 귀환한 내가 희망의 미래를 전망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90년대의 허다한 아수라판과 격변과 사건사고를 기억한다. “우리가 남이가”에서 시작하여 성수대교와 삼풍아파트 붕괴를 거쳐 상인동 지하철 폭발사고를 지나 IMF 사태에 이르기까지.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믿고 살아온 지난 세기 90년대였다. 그것은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상을 상실하지 않은 성장하는 대한민국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1997년의 평화적 정권교체와 2002년 노무현의 승리를 기억한다. 거기 어디서부터 희망의 끈이 조금씩 풀려버린 듯하다. 대북송금 수사, 이라크 파병, 미군기지 평택이전, 한미자유무역협정, 그리고 대연정 제안에 이르기까지. 전사(戰士)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의 거리가 괴리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그 지점까지도 나는 장밋빛 미래기획을 놓지 않았다. 절망하고 좌절하기에는 너무나 젊고 탄탄한 육신과 영혼을 가진 조국과 자아가 있었으므로.“부자 되세요!”라는 슬로건과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가 불티나게 팔리는 나라로 곤두박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찰나였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물신의 나라로 급속히 탈바꿈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각료들 모아 선전해대는 나라꼴이라니. 천안함사태와 개성공단 가동 중단, 4대강사업, 자원외교 비리, 방위산업 비리가 하루가 멀다않고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막장 드라마가 준비되고 있었다.지난 25년을 돌이켜 보면서 새삼 대학사회의 단절과 절망을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거대담론이 시대정신으로 작용할 때 우리는 행복했다. 누군가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쳤을 때 우리는 분노했다. IMF가 닥쳤을 때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이라크 파병과 미군기지 이전문제가 불거졌을 때, 광우병 파동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절규했다. 그리고 싸웠다. 지금 대학사회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지고 있다.각종 프로젝트와 대형 국책사업에 교수들이 대거 동원된다. `문송합니다`의 주인공 인문대학마저 교육부의 `코어사업` 사정권에 포획됐다. `해야 한다`는 당위의 논리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의 간극(間隙)은 이내 망각된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사업일정에 무신경해지고 무덤덤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국책사업으로 인한 긴장된 피로와 성과주의는 거대담론의 파장과 달리 교수들의 내면세계에 적잖은 우울과 상처와 앙금을 남긴다.한국 대학에는 거대담론주의자들이 설 땅이 없다.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시대 전환기 21세기 한국 대학에 거대담론이 없다. 크고 작은 이해관계의 충돌과 사사로운 정의가 똬리를 틀고 간간이 깊은 한숨을 토해낼 뿐이다. 오래 전에 생긴 균열이 단절로 굳어진 대학의 미래향방은 어디일까, 자문한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단절의 끝이 지나면 새로운 지평이 시나브로 열리는 것일까. 그러하되 마당의 매화나무 꽃눈은 팽팽하게 부풀었다.

2017-02-10

시인을 위한 변명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한자어로 `시(詩)`를 보면 절(寺)에서 하는 말(言)이다. 구도자인 스님의 언어로 이해 가능하다. 참선수양에 기초한 선종(禪宗)의 영향이 강한 한국 불교에서 본다면 불가(佛家)의 언어는 소략하리라. 수다스러운 스님을 생각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화두 혹은 공안(公案)을 붙들고 맹렬하게 면벽 수도하는 수도승의 모습을 떠올리면 좋을 터. 진리의 요체는 간결함에 있고, `돈오돈수`를 깨달음의 방편(方便)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장황함은 문득 낯설다.시의 본질은 간결함 속에 깊이와 다채로움의 함축에 있다. 예외적인 형식, 예컨대 산문시나 서사시는 별도로 하고 말이다. 깊이 있는 성찰과 지성을 다채로운 언어 형식으로 간결하게 드러냄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시를 쓰는 고단함이 자리한다. 아무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동료교수 가운데 시인이 있으면, 나는 교수 대신 언제나 시인이란 호칭을 쓴다. 교수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시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요즘 시인들의 시는 이해하기 어렵다. 주관성의 영역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주변적인 일상이나 사유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나 이육사, 한용운과 김남주, 박노해 시인의 시는 어렵지 않다. 어려운 시는 독자들과 멀어진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시를 읽는다는 것은 강제노역에 가깝다. 시가 어렵기도 하지만 한국인들은 본디 시를 읽지 않는다. 시집을 사지도 않고, 시인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현대 한국사회의 거칢은 여기서 발원한다.언어는 인간사유의 창고이며, 소통의 기초적인 수단이자 실천의 기반이다. 언어로 자신의 사유와 인식을 정확하고 자유자재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식인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가지고 뒤흔들게 되면 사회는 거칠고 황막해진다. 그래서다.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시를 읽고 느끼며 써보려고 하는 까닭은 거기 있다. 시를 읽고 음미하면서 정서와 인식을 함양하는 사람들의 사회는 따스하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가 가능하다.우리 조상들이 남긴 45자 내외의 시조(時調)나 일본 대중들이 즐겼다는 `하이쿠`는 오늘날까지도 적잖은 의미를 던진다. 단순한 형식과 단출한 내용을 담은 시조와 하이쿠에서 깊이 있는 성찰과 대면하는 일은 실로 유쾌한 일이다. 그런데 시조나 하이쿠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다. 수능시험에서 필요한 최소한도의 문제풀기 능력만 지참한 채 대학생이 되고, 그런 상태로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이 차고 넘쳐나는 대한민국.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봄바람 소리 이젠의 귓가에 말방울 소리.” 일본의 하이쿠 시인 히로세 이젠의 하이쿠다. 봄바람은 겨울바람이나 여름의 태풍처럼 거세지 않은 미풍(微風)이 주류다. 하여 그 바람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계절에 민감한 시인의 귀는 봄바람 소리에서 말방울 소리를 듣는다. 누구의 귀에도 들리는 `짤랑짤랑` 하는 명징한 소리로 들려오는 봄바람.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감촉의 시인 히로세 이젠의 절창이다.하지만 대학생들은 이 시의 본질과 풍류(風流)를 이해하지 못한다. 가던 걸음 멈추고 봄바람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물론 말방울 소리도 헤아려본 적이 없다. 자연과 무관하게 시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범벅된 도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무감각한 세대. 문제는 그런 거칠고 둔탁한 서정의 변화와 발흥을 위해 기성세대가 해주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먹고사는 게 급선문데, 시 나부랭이가 뭐 대수냐, 하는 인식에 갇혀있는 한국의 거친 기성세대.사정이 이럴진대, 우리나라에서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사회적 인식은 고사하고 배고프고 등골 써늘한 직업인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노릇은 얼마나 고달픈 일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시인을 사랑하고 시를 읽어야 한다. 시에서 구원과 희망과 미래의 별빛을 독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여, 정유년의 밝히는 찬연한 횃불이 되기를!

2017-02-03

누구에게 충성할 것인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윤동주 시인이 남긴 `참회록` 1연이다. 시인은 녹슨 동경(銅鏡)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욕된 자태를 독서한다. 이제는 처참하게 무너져버린 왕조의 후신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시인. 오래도록 닦지 않아서 파랗게 녹슨 구리거울에 비쳐진 얼굴은 흐릿하기도 하고 나이에 비해 늙고 초췌해 보인다. 그것을 자조(自嘲)하는 청년시인.왕조의 유물이면 응당 박물관에 있어야 할 터. 거기서 치욕을 읽어내는 시인의 내면풍경은 스산하기 이를 데 없다. 기독교인의 원죄의식과 부끄러움이라는 두 가지 어휘를 끼고 살았던 윤동주. 시인은 한반도 어디, 어느 무렵쯤 있었을 왕조를 사유한다. 근사치(近似値)는 조선왕조였을 터. 반도를 떠나 용정 `명동촌`을 떠돌아야 했던 집안의 장손 동주. 식민지 청년문사를 자조와 회한으로 인도하는 동인(動因)은 무엇이었을까.조선왕조의 신민(臣民)은 국왕에게 충성했다. 그러나 충과 효를 근간으로 한 조선의 궁극적인 힘은 충이 아니라, 효에서 나왔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왕가의 인식저변에 깔린 것은 종묘사직이었고, 그것은 왕가가 끝난다면 국가도 소멸한다는 생각이었다. 불이 나더라도 조상들의 신주단지만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것이 양반들의 행태였다. 그래서일까?! 국난이 닥쳤을 때 조선을 구한 주체는 왕가도 양반도 아닌 불학무식한 민(중)이었다.`국뽕`이라 일컬어지는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이 큰아들 회에게 말한다. “충은 군왕이 아니라,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려 했고, 끊임없이 의심의 눈으로 통제사를 바라보는 암군(暗君)을 향한 충성에 문제를 제기한 아들 회. 그에 대한 순신의 간결한 대답이 백성을 향한 충이다. 국왕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민)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음을 설파한 것이다.16세기 인간 이순신의 사유는 그러했다. 그럼에도 조선은 망하고야 말았다. 나는 그 원인을 이순신의 충이 아니라, 사적(私的)인 관계의 충에서 본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이순신 사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야기한 자들의 사유와 실천의 근간에 자리한 것은 민이 아닌, 군왕을 향한 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영달과 가문의 영광을 위한 행동이었다. 국가와 민과 지도층의 충과 의리 대신 가문과 군왕과 신하의 거래가 똬리를 튼 것이다.신년벽두에 새삼 충을 생각하는 것은 그 잘난 머리와 실력을 가졌다는 자들의 대통령 1인을 향한 충과 그 이득에 문득 아득해진 까닭이다. 숱한 교수와 박사와 사시합격자들이 위증(僞證)을 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자리와 이득과 패거리주의에 끝내 절망하는 것이다. 입만 벌리면 국가와 민족을 말하던 자들의 마지막 모습이 돈과 권력에 귀착하지 않았는가!보수와 수구세력과 그 추종자들이 구두선(口頭禪)처럼 뇌까리는 애국과 애족은 어디 갔는가. 안보와 민생을 외쳤던 자들의 궁극적인 지향은 무엇이었는가. 부패와 무능과 타락과 패거리주의로 점철된 보수와 수구세력의 분탕질을 보면서 동주의 시를 떠올린다. 만 24년 1개월에 썼다는 처절한 시 `참회록`. 그 새파란 나이에 윤동주는 그런 고백을 해야 할 만큼 수치스러운 삶을 살았던가. 한국의 보수와 수구가 자랑스러운 자들에게 나는 묻는다.동주의 `참회록`을 읽고 그 뜻을 헤아린 적이 있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맑고 투명한 시인의 생애에서 솟구치는 고독과 설움과 성찰의 메시지를 꿈에라도 돌이킨 적이 있었는가?! 그리하여 마침내 수치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고자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던가?! 시인의 성찰이 새삼스런 냉랭한 겨울 아침이다.

2017-01-20

블랙리스트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시드니 포와티에 주연영화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은 흑백의 결혼문제를 다룬다. 교양 있고 지성적인 흑인의사와 청순하고 재기발랄한 백인처녀가 맺어질 수 있겠느냐, 하는 줄거리가 핵심이다. 영화가 개봉된 때는 미국에서 흑인이 백인과 결혼할 수 있는 권리가 공식적으로 부여된 원년인 1967년이었다. 공교로운 일치다. 하지만 불과 1년 후 인종차별에 저항하고 인종화합에 앞장섰던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한다.`검은` 색과 `검은` 것에 대한 백인들의 혐오와 공포가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아메리카의 흑인들은 제국주의가 불러온 것이다. 값싼 노예노동으로 최대의 이윤을 챙기려 했던 백인들의 더러운 욕망이 야기한 인신매매의 결과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인간 이하로 생각했고, 그런 관념은 남북전쟁(1861~1865) 이후에도 뿌리깊이 살아남았다. 언론에 보도되는 백인경찰의 비무장 흑인청년 살해나 구타는 연원이 깊고도 너른 것이다.밤과 어둠, 암흑에 대한 동물적인 두려움과 기피가 검은색에 불온한 딱지를 붙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계몽주의와 과학기술혁명, 민주주의 확산 이후에도 검은색과 검은 피부에 대한 혐오가 지속됨은 인간의 본능이 진화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우리 조상들은 양자의 대결보다는 조화를 찾으려 한 듯하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했던 선비가 있었지만,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고 백로를 비난한 선비도 있었으니 말이다.기억에 남는 명구(名句)는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이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주장이다. 거기 담긴 함의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중국 인민들의 배만 채워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중국굴기의 단초를 제공한 등소평의 유연한 사고는 배움직하다. 그것을 나는 바꿔 말한다. “나는 원칙을 타협하지는 않지만, 타협한다는 원칙은 가지고 있다.” 원칙고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과 아닌가?!나라안팎을 엉망으로 들쑤시는 `최박게이트` 때문에 정유년 벽두부터 우울하다. 근자에 회자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심사가 더욱 편하지 않다. 1만명에 달한다는 문화-예술계 인사의 목록에도 끼지 못했으니 “내가 이러려고 국립대 교수질을 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청와대와 정부의 관제행사와 사업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예외 없이 얽었다니 기가 막힌다. 반대자들의 사상검증을 광명천지 21세기에 감행한 시대의 희화(戱畵)가 아닐 수 없다.1천만 관객의 `변호인`(2013)과 `광해`(2012)마저 그 사슬에 걸려들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외국인과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상영에서 `천안함 프로젝트`(2013)와 `변호인`, `광해`를 금지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에 권부 실세들이 반감을 가지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국민들의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받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열등감과 열패감,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한 치기어린 사감(私憾)의 발로일 테니까.`광해`까지 상영을 금지한 것은 뜻밖일지 모르겠다. 500년 전 환란의 시대를 살다가 비운을 맞이하여 군왕의 호칭마저 빼앗긴 광해! `광해`는 조선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21세기 국민들이 바라는 최고 지도자의 덕목을 환하게 밝힌다. 그것은 가난하고 헐벗고 주린 백성들을 위한 정책집행과 자주적인 외교를 실행하는 것으로 요약 가능하다. 옹졸하고 졸렬하며 무능하고 부패하며 타락한 권력자와 부역자들의 금지와 칼질이 참 고약하다.국가권력의 실행이란 반대자들을 포용하는 것에 요체가 있다. 권력자와 생각과 정서와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적으로 돌리는 짓이야말로 유아기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어리석은 행위다. 그런 자들이 만들어내고 유포한 블랙리스트가 득세하는 암울한 시기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어쩌면 블랙리스트의 대상영역과 범위가 확장될지도 모를 일이라 한다. 그 어느 곳에 내 이름자가 오롯 자리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17-01-13

시대 전환기의 길을 찾아서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언제부턴가 각종 언론에 4차 산업혁명에 관한 기사가 하나둘 실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인공지능과 로봇, 사물(事物)인터넷, 빅 데이터와 3D 인쇄기, 자율주행차와 드론 같은 품목이 인구(人口)에 회자된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로봇이 등장해서 크고 작은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페퍼(Pepper)가 그중 하나다. 페퍼는 소프트뱅크가 제작해 2015년 6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Humanoid)이다. 페퍼의 키는 1m 21cm이며 몸무게는 29kg이다. 페퍼는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로 상대방의 감정을 인식할 수 있다. 기쁨과 슬픔 같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자신의 기분에 따라 한숨을 쉬거나 목소리를 조절하기도 한다.페퍼는 감정표현 외에도 인공지능과 통신기능을 탑재(搭載)하여 인터넷으로 뉴스와 날씨를 분석하고, 노인들의 체조를 돕거나, 퀴즈 프로그램을 함께 할 수 있다. 페퍼는 미국으로 진출하여 샌프란시스코의 쇼핑매장과 실리콘벨리에서 근무한다고 전한다. 고객이 원하는 물건의 위치를 알려주고 안내해주는 구실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로봇이란 용어는 체코어의 노동을 의미하는 단어 `로보타(robota)`에서 나왔다. 따라서 로봇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체코의 소설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가 1921년 `R.U.R (Rossum`s Universal Robots)`이라는 희곡에서 처음 사용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로봇은 1977년에 제작된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R2-D2다.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25년이면 인공지능-로봇이 대체할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 가운데 60%를 상회할 것이라 한다. 단순노무직과 농림어업분야의 인공지능-로봇 대체비율은 90% 내외까지 상승한다. 고도의 전문직은 상대적으로 대체비율이 낮지만, 2050년 무렵에는 이른바 `초(超)지능`이 등장하여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세계가 다가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상황이 이럴진대 2017년 신년벽두 대한민국의 사회-정치적인 지형은 어떠한가?! 지난 세기 군부독재의 하고많은 적폐(積弊)를 청산하지 못한 결과 온 국민과 나라가 고통 받고 있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면서 털어냈어야 할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가 우리의 발목과 영혼을 붙잡고 끝없이 흔들어대고 있다. 거리와 광장의 촛불이 불타오른 원인은 거기 있다!불의한 자들이 패권(覇權)을 장악하고 끼리끼리 해먹는 전근대의 악습과 악폐가 근절되지 않은 퀴퀴한 대한민국. 그것을 일거에 해소하고자 천만 개의 촛불이 광장과 거리를 빼곡하게 채우고 어둠을 밝힌 것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젊은이들을 근심하고, 나이든 분들을 염려하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국민을 첫 번째로 고뇌하는 지도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2차 대전 이후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룩한 유일국가 대한민국의 위상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2016~17년.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변혁의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하는 본원적인 문제를 숙고해야 하는 시점에 우리는 서있다. 추악한 과거와 작별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미래와 만날 방도를 사유해야할 시점과 우리는 대면하고 있다.각별한 시대 전환기에서 나는 주장한다.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무장한 기득권세력과 작별하자! 민주와 민권에 입각한 미래기획은 사악하고 타락한 과거와 작별한 연후에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1% 기득권집단과 싸우는 99% 민중의 땀과 피, 한숨과 절망을 웃음과 희망과 두둑한 주머니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 청년실업과 노인빈곤, 자살자들의 행렬과 자영업자들의 줄도산을 기억하고, 권력과 결탁한 재벌들의 행악질을 반드시 혁파해야 한다. 이제 정유년 새해와 더불어 우리 힘으로 국가를 재건하고 국민을 따사롭게 보듬을 시각이다!

2017-01-06

권력의 노예, 권력의 포로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한 조각 빵을 훔치려다 19년 옥살이를 해야 했던 장발장. 절도와 가택침입죄로 5년, 네 차례 탈옥기도로 14년, 도합 19년의 수형(受刑) 생활. 위고가 예수 탄생 이후 최대의 역사적 사변이라 격찬했던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죄수 장발장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가 여덟이나 되는 굶주린 조카들 때문에 절도(竊盜)를 감행한 때는 1795년 겨울, 수감된 것은 이듬해 초, 가석방된 시기는 1815년이었다. 대혁명 발발 이후 26년 만에 그는 출옥한다. 혁명은 위대했으되, 시간과 더불어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나의 세대가 꼬박 바뀌는 동안 지배질서는 눈곱만큼도 요동(搖動)하지 않은 것이다. 낭만주의자이자 학술원 회원이었던 위고가 주목하는 지점이 여기다. 어째서 혁명은 최하층 민중 장발장과 그의 불우한 이웃들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았을까?! `레미제라블`의 요체(要諦) 가운데 하나는 이런 모순적인 상황의 문제제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혁명이었는가?!위고는 1815년 출옥한 장발장의 행적(行蹟)을 따르면서 1832년 6월 5~6일 봉기까지 그려냄으로써 격변의 시대를 조명한다. 시대와 불화하면서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와 자베르 경감, 그리고 코제트와 조우하면서 인생의 비의를 깨달아간다. 소설 곳곳에서 위고는 자신의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데, 국민의회 의원 지(G)와 주교의 대화는 특히 흥미롭다. 루이16세의 처형과 사형제도, 혁명의 폭력성에 대한 양자(兩者)의 대화는 긴장과 역동성으로 가득하다.무엇보다 독자는 자베르와 장발장의 악연(惡緣)과 대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위고는 그들을 선명하게 구분한다. `법률의 포로捕虜)` 장발장과 `법률의 노예(奴隸)` 자베르. 우연한 범법(犯法)으로 법률의 포로가 됐다가 법률로부터 해방되는 장발장. 타고난 법률의 노예이자 가진 자들의 충견(忠犬)으로 살아오다 장발장으로 인해 속절없이 무너져 자살하는 자베르.우리는 2016년 11월과 12월 세계사적인 대변혁의 주인공으로 나날을 살아간다. 한국인들은 한낱 보잘것없는 60대 여성의 농단으로 불거진 한국사회의 난맥상을 극복해 변혁과 혁명의 역사에 획을 더하고자 한다. 그 최초의 빌미를 제공한 자는 `권력의 노예`이자 현직 대통령이다. 이른 시절부터 권력에 복무해온 경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뼛속까지 권력에 노예화한 인간으로 평생을 살아온 인간의 무표정한 원형질(原形質)과 우리는 대면하고 있다.권력의 노예를 자유자재로 부려온 `권력의 포로`는 지금 수인(囚人)이 되어 자신의 범죄사실을 모두 부인(否認)한다. 모든 것이 허위(虛僞)고 가짜이며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권력의 노예는 권력의 포로가 자행한 농단이 1% 미만이라고 강변(强辯)한다. 권력의 노예와 권력의 포로가 내뱉는 언어와 사기행각에 온 국민의 일상이 희화화(戱畵化)된 21세기 대한민국. 이 지점부터 우리의 형안(炯眼)이 절실하다. 어디로 어떻게 출구를 찾아 나설 것인가, 그것이 관건이다.1832년 6월 파리봉기는 처절하게 실패한다. 민중은 문을 닫아걸고 혁명가들을 방기(放棄)한다. 민중은 필요한 만큼만 움직이는 법. 2016년 한국인들이 어디까지 움직일 것인가, 여기에 세계시민들의 눈과 귀가 쏠려있다. 기막힌 역사의 소용돌이를 극복하는 시민혁명의 길과 우회로(迂廻路) 앞에서 회군(回軍)한 87체제의 도돌이표 앞에 우리는 서있다.곧 병신년이 가고 정유년이 오고, 이어서 2018년 무술년이다. 위태로운 잔나비 칼춤의 끝을 용감한 수탉이 목 놓아 노래하고, 충직한 개가 새로운 시대의 서막(序幕)을 든든히 지키는 첨병(尖兵)이 된다. 그러하되 사악(邪惡)한 시대의 종언과 부역자 무리의 잔당은 쉽게 그 자리를 놓지 않는 법. 하여 우리는 병신년 마지막 날까지 권력의 노예와 포로들이 현란하게 벌이는 칼춤의 향연을 주시(注視)할 노릇이다. 그러하되 정유(丁酉)의 봄은 과히 멀지 않다.

2016-12-30

재벌들의 돈벌이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재벌들은 이재(理財)에 밝다. 지난 12월 17일 서울시내 신규특허 면세점 사업자로 롯데 월드타워, 신세계 센트럴시티, 현대 무역센터가 선정됐다. 이로써 기존의 롯데 소공과 코엑스, 신라 서울, 동화, 호텔신라, 한화, 현대산업개발, 두산 등 13곳의 면세점이 각축을 벌일 전망이라고 한다. 면세점들 가운데 롯데와 호텔신라, 한화와 현대산업개발, 두산과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7곳이 재벌 대기업에 속한다. 이래도 괜찮은지 의문이다.신규 면세점 사업권은 일단락됐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이 중론(衆論)이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사건과 관련해 최씨가 면세점 사업에 개입한 의혹을 가지고 검찰과 특검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를 조사한 검찰은 신규면세점 추가특허 특혜의혹과 관련하여 기획재정부와 관세청, 롯데와 SK그룹도 압수수색했다. 향후 특검에서도 면세점 특허심사 로비-특혜의혹을 조사할 것이라 한다.검찰과 특검의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내 면세점 신규사업자 선정이 예정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관세청은 일정을 강행했다. 관세청은 면세점 결정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있었다면 허가를 취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서울시내 면세점 신규사업자로 선정됐지만 특허권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에 특검수사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에 국한(局限)되지 않는다.대기업이 선단식(船團式) 경영으로 일반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을 압박하면서 갑을관계로 한국경제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지난 세기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시절 행정부와 밀착하여 각종 특혜와 지원, 로비와 정경유착으로 오늘의 부(富)를 이룬 것이 한국의 재벌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그들의 돈벌이를 용인(容認)한 것은 국부(國富)의 확장이라는 긍정적인 면과 암울한 시대의 반민주적인 분위기 탓이었다.정주영 같은 탁월한 경영인이자 기업가가 한국경제의 견인차(牽引車) 구실을 해낸 적도 있다. 한국 근대화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경제인으로 정주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적잖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절대다수 재벌 총수들은 각종 불법-초법-무법-탈법-위법-범법으로 기업의 외형과 자산을 불려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18일 기업의 외면과 정부의 무관심 곳에서 삼성반도체-LCD직업병 피해자 가운데 78번째 사망자가 있었다.돈벌이에도 격(格)이 있어야 한다. 기업을 뜻하는 `엔터프라이즈`에는 모험심과 진취적 기상 같은 의미도 들어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마다하지 않고 용감하게 나아가는 것이 기업가의 기본자세다. 그런 기업가의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다. 편의점과 빵집, 커피에 이르기까지 골목상권마저 쥐락펴락하는 재벌기업들의 치사하고 뻔뻔한 작태(作態)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래서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을 받을 수 없다.자연생태계에도 먹이사슬 구조라는 것이 있다. 각자 생의 영역을 확보하고 그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자나 호랑이가 토끼나 쥐를 잡아먹는 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그것은 여우나 늑대가 할 짓이다. 하지만 한국의 재벌들은 보란 듯 중소-중견기업들의 팔목을 잡아 비튼다. 그들에게서 상도의(商道義)를 찾는 것은 한국에서 `오로라`찾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반세기가 넘도록 유지된 정경유착에 있다.우리는 `최순실 게이트`라는 미증유의 현상과 직면하고 있다. 사태의 본질 가운데 하나는 정부권력과 재벌자본이 음습(陰濕)하게 결탁했다는 사실이다. 재벌과 권력이 유착하여 국민세금과 미래기획과 개천의 용꿈을 거덜 내는 후안무치하고 방약무인(傍若無人)한 범죄행위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이제라도 재벌들은 최소한의 품위와 품격을 가지고 돈을 벌었으면 한다.

2016-12-23

가문과 국가 사이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의병장 이인영(1868-1909)을 아시는지. 그는 1895년 민비시해와 단발령 등에 반발해 유인석, 이강년과 합세해 춘천과 양구에서 일본군과 항전을 벌인다. 1896년 여름 고종이 의병 해산령을 내리자 문경에 은둔한다. 강원도 원주에서 2천여 의병을 일으킨 이은찬 등이 그를 지휘자로 모시려 간곡히 권유한다. 그러나 그는 부친의 병을 구실로 거절한다. 이은찬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어지는 천붕지복(天崩地覆)을 당해 국가의 일이 오히려 화급하고, 부자의 은(恩)이 가벼운데 어찌 공사(公事)를 미루려 하시오”라며 결단을 촉구한다. 1907년 7월 25일 그는 부친에게 작별 인사하고 원주에서 의병원수부를 설치한 뒤 관동창의 대장이 됐다. 같은 해 11월에 그는 `13도 창의대진소원수부`를 설치하고 총대장이 된다.수도진공작전을 펼치던 그는 1908년 1월 28일 부친의 사망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는 허위 군사장을 불러 군무를 위탁하고 총대장직을 사임한다. 삼년상이 끝나면 다시 합세하겠다는 뜻을 알리고 그날로 문경으로 달려간다. 여기서부터 나의 궁금증이 시작한다.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인데, 어쩌자고 그는 영면(永眠)한 부친에게 돌아간 것일까?!그에 따르면, 부모의 상(喪)을 치르는 것은 나라의 규칙인데 이를 행하지 않으면 불효요, 불효하는 자는 금수(禽獸)와 같아서 신하가 될 수 없으니 그것이 불충이다. 효에서 출발해 충에 이르는 논리가 강직하다. 효자가 아니면 충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가? 내가 알고 있는 한 충무공은 혼군(昏君) 선조의 우행으로 백의종군 하는 길에 어머니의 부음을 접한다. 그러나 그는 모친의 묘소로 달려가지 않는다. 누란지위(卵之危)의 국가를 걱정한 것이다.나는 이 문제를 개인의 선택 내지 가문의 논리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한 사유에서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동학농민군을 도살(屠殺)하도록 일본군을 끌어들인 민자영의 논리는 왕실이 있고 나서야 국가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효와 가문이 선행돼야 충과 나라가 존재한다는 이인영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그렇다고 해서 내가 국가주의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음과 무게의 경중을 가늠함에 차이가 남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일본이 막부시대를 거두고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세워 명치유신을 단행할 때 앞장섰던 자들은 가문이 아니라 국가를 먼저 생각했다.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무너뜨린 손문의 의기는 가문이나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조국과 백성들의 운명과 미래였다. 엇비슷한 시기를 살다간 민자영이나 이인영의 사유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촛불시위로 광장 민주주의가 살아나고 있다. 농단(斷)의 핵심이나 주변에서 이득을 챙긴 자들의 머릿속에는 국민이나 미래는 아예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직 지금과 여기에서 얻어낼 이권이며, 그것은 오롯 개인과 가문의 이득이다. 나라의 운명이 어찌 되든, 4·16 세월호 대참사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야 어찌 되었든 수수방관(袖手傍觀) 모르쇠로 일관한다. 하기야 승냥이들에게 인간의 도리를 어찌 구하겠는가?!국민의 함성과 분노로 횃불과 촛불로 일궈낸 민주주의의 결실을 탐하는 자들이 고개 들고 있다. `조중동`은 야권 지도자들을 이간질하느라 눈이 벌겋고, 여기저기 숟가락 올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조만간 종편들도 가진 자들의 편에서 나팔수가 될 것은 자명하다. 그들에게는 조국과 민족과 통일과 미래기획이 없다. 그저 아귀처럼 뜯어낼 고깃점만 있으면 족하니까.그러나 이번에는 1987년 항쟁과 분명히 다르다. 우리는 30년 전 어리숙한 백성이 아니라, 스마트기기로 중무장한 지식대중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정신 나간 가문과 영혼 없는 개인을 위한 희생양이 아니다. 그러니 명심하라. 그대들, 역사와 민중 앞에 거리낌 없이 침을 뱉는 무리들은 명심하라. 참혹한 응분의 대가가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2016-12-16

노래방에 관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1990년대 초반 노래방을 처음 찾았을 때 감회(感懷)가 떠오른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넣으면 한 곡을 부를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함께 유학했던 친구와 번갈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이런 기계도 있구나, 싶었다. 그때 나는 얼마 가지 않아서 노래방이 몰락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엉터리 추측이었고, 노래방은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도구로 제 구실을 하고 있다. 기쁨과 슬픔을 표출할 때 노래는 상당히 요긴한 방편(方便)이기 때문이다.학창시절에 배운 역사적 사실 가운데 하나는 조상들이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다는 것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그런 대목이 있다고 배웠다. 그런 까닭일까, 현대 한국인들 역시 음주가무에 능하다. 나라가 어찌 돌아가는지 무관하게 공영방송에서는 여전히 `전국노래자랑`프로그램이 목하(目下) 성황 중에 방영되고 있다. 각종 공중파는 이에 질세라 허다한 가요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다. 노래 못해서 목이라도 맨 사람들 같기도 하다.엊그제 오랜만에 노래방에 들렀다. 재작년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난 후 나는 만 1년 넘도록 노래방 출입을 하지 않았다. 단원고 학생들과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동행했던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불평이었다. 하지만 나는 1년 넘도록 고집을 꺾지 않았다. 가족을 잃은 분들은 얼마나 아픈 가슴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었다.노래방에서 내가 부르는 노래들은 애상이 깊이 각인된 우울하고 구슬픈 곡들이다. 속도가 빠르고 경쾌하며 밝은 노래는 거의 불러본 적이 없는 듯하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달아오른 노래방 분위기를 처참하게 박살내는 원흉(元兇)이 되곤 한다. 그런데 어찌하랴?! 그런 노래들 말고는 부를 줄 아는 노래도, 부르고 싶은 노래도 없는 것을! “최신의 노래가 최대의 갈채를 받는다!”는 격언도 있다지만 이 나이에 무슨 신곡이란 말인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노래를 부르다 문득 목소리와 감정의 노쇠를 느낀다. 술기운을 빌려서 고성을 내지르곤 했는데, 신통치 않은 소리에서 허약해진 기미가 느껴진다. 온몸으로 발산했던 감정의 폭과 깊이가 좁아지고 얕아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하, 이것도 변해가는 모양이구나, 하는 나지막한 탄성(歎聲)이 절로 나온다. 나이와 더불어 찾아오는 감정의 둔화와 평정심의 강화는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열패감 같은 것의 감촉이라니.나이 듦은 평정한 감정과 성숙한 지혜를 동반한다고들 말한다. 좋은 일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자신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출하는 것이 훨씬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짐짓 아닌 척하면서 불쾌한 감정을 감추거나, 즐거운 표정을 일부러 은폐하는 것은 그다지 온당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럿이 모여 각자의 개성과 감흥(感興)을 드러내는 자리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리라.그럼에도 노래방에서 느낀 소회는 `나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구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나의 문화적 도구를 상실(喪失)해야 하는구나,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다. 이런저런 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상을 엮어나가는 삶에도 적잖은 변화가 생길 것만 같다. 슬픔과 우수 혹은 애수와 처연(悽然)함이 찾아온다 해도 그런 감정을 드러낼 방책 하나가 멀어지고 있음은 무척이나 아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보낼 것은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오랜만에 찾아든 노래방에서 새파랗게 젊었던 시절의 화사(華奢)하고 빛났던 지난날을 돌이키면서 적잖게 쓸쓸하고 허전한 감회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지금이 가장 젊은 시절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혹시 알겠는가?! 느닷없이 예전의 풍부한 정감(情感)과 소리가 홀연히 나를 찾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하되 아쉽고 서운했던 시간이었다. 아, 옛날이여!

2016-12-09

감시와 망명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카톡방이 검열된다는 소식에 분개(憤慨)해 텔레그램으로 망명(亡命)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고 카톡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의 `단톡방`은 여전히 성업 (盛業) 중이다. 그럼에도 텔레그램 망명을 선택한 데에는 까닭이 있다. 누군가가 나의 동의 없이 나의 언어와 사유와 관계를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다. 남의 대화를 훔쳐보는 짓은 여자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한 관음증환자와 다를 바 없다.나만의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인간관계가 매우 단출한 사람들도 텔레그램으로 망명해온다. 그럴 땐 묻고 싶어진다. “무엇 때문에 망명하셨나요?” 그들의 대답이나 생각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성싶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은밀하고 음험하게 엿보고 있다는 끔찍한 생각 때문에 정신적 망명도생(亡命圖生)을 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부(權府)와 정보당국은 무엇 때문에 국민들의 사생활에 이토록 역겨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固有)한 영역을 가지고 싶어 한다. 나만의 비밀과 추억과 사연과 관계를 오롯이 향수(享受)하고 싶은 것이 본성이다. 거기에는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개입할 수 없다. 아내든 자식이든 애인이든 형제든 친구든 마찬가지다. 아무리 작고 하잘것없어 보이는 비밀이라도 소중히 간직하려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 무슨 권한이 있어서 하이에나마냥 남의 비밀에 더러운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는단 말인가?!권부와 하수들이 킁킁대며 냄새를 맡고 수신호(手信號)를 하고 음험한 눈길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아무 거리낄 것 없는 사람들도 견딜 수 없는 역겨움과 환멸과 구역질이 솟구칠 밖에 없다. 현 정권이 국민들의 일상을 낱낱이 감시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도 지속적이며 노골적이고 파렴치(破廉恥)한 방식으로 말이다. 국민들을 감시하는 것은 범죄행위다. 헌법에 명시된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야만적인 짓이다.헌법 제18조는 국민이 `통신-전화-전신 등으로 의사나 정보를 전달 또는 교환할 때 그 내용이 공권력에 의해 침해당하지 않는 자유`를 명시(明示)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보당국이 끈질기게 국민들의 전화를 도·감청하고, 카톡을 뒤지고, 밴드와 페이스북까지 검열하려 드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어떤 법적인 권리가 있어서 헌법마저 유린하려 드는 것인가?! 허다한 국민을 텔레그램으로 망명시킨 것은 결국 권부와 정권과 그 졸개 하수인들 짓이다.국민들을 이중인격자로 전락시키는 권력과 정부는 불의(不義)하다. 위대한 이중인격자 톨스토이가 아내를 위한 일기와 자신의 내면을 토로(吐露)한 별개의 일기를 써야 했던 것은 100년도 더된 일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세계최강 정보통신을 자랑한다는 나라의 백성으로 살면서 권부와 정보당국의 감시를 받는다는 것은 우울을 넘어 짜증과 분노가 치미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자신이 없으면 권력을 내놓고 산뜻하고 우아하게 내려오라!추하고 역겹게 남의 뒤나 캐면서 음습(陰濕)한 곳에서 뒷조사나 하고 국민세금을 봉급으로 축내는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친구들과 유쾌한 농담과 질펀한 음담(淫談)과 뒷담화로 저녁한때를 보내려는 장삼이사(張三李四) 백성들을 의심하는 권력이 어디 쓸모가 있겠는가! 정당하고 자신만만하며 제대로 작동하는 권력과 권부와 정부와 정보기관은 그런 참람(僭濫)한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그토록 많은 의심과 의혹을 흉중에 담고 무슨 일을 하겠는가?!얼마 전 텔레그램으로 망명한 수줍고 소심한 동료를 보면서 느낀 소회(所懷)는 이런 것이었다. 어째서 그마저 망명해야 했는가?! 무엇이었을까, 그로 하여금 망명하도록 한 것은?! 과연 이것이 나라인가?! 광장과 거리와 지하철에서 활짝 피어나는 참여 민주주의 열기를 확인하면서 더럽고 역겨운 감시와 우울한 망명을 생각한다. 이제 그만들 했으면 한다, 제발!

2016-12-02

영화 `신해혁명`과 여인의 욕망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성룡의 100번째 영화라 화제가 되었던 `신해혁명`. 중국 공산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제작되고 보급된 영화 `신해혁명`. 1911년 10월 10일 무창봉기를 기점으로 청나라 지배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신해혁명. 신해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신해혁명`이다. 중국 각처는 물론이려니와 미국과 유럽, 말레이시아 등 중국의 국부 (國父) 손문이 거처했던 곳과 혁명세력의 활동공간이 영화의 무대로 등장한다.영화는 허다한 전장과 숱한 인총(人叢)들의 죽이고 죽어가는 섬뜩한 장면들로 시종일관 혼란스럽고 소란하다. 한 나라의 명운(命運)과 민족적 명암이 뒤바뀌는 역사적 전변을 다루는 영화가 어찌 요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하되 영화의 대결과 갈등구조는 상당히 단출하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선통제)의 어머니 태후(太后)와 그 추종세력, 손문과 동맹회를 주축으로 하는 혁명세력, 원세개가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권력욕망 세력의 갈등과 각축.서태후에게 황제자리를 명받은 부의의 나이는 고작 세 살이었고, 따라서 그 아비인 순친왕 재풍의 섭정(攝政)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영화는 극적인 효과를 거두려고 어미인 태후를 전면에 배치한다. 태후의 생각과 판단은 간명하다. “황족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국가도 있다!” 고종의 비(妃)였던 민자영의 생각과 판박이다. “나라와 종묘사직의 근간(根幹)은 왕족이다!” 나라의 근간을 지배자와 그 일족에서 보았던 전근대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사유.2천년 이상 지속돼온 왕조를 타파하고 공화국을 건설하겠다는 손문의 사유와 인식이 태후와 그 일족의 생각과 현저한 대립을 이룬다. 공화국이란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나라다. 그것은 특정한 가문과 집안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원세개는 이들 세력 사이에서 교묘하게 사적인 이익과 권력을 편취한다. 그리하여 태후에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음을 강조하면서 퇴위(退位)를 종용한다.손문은 1912년 1월 1일 민국의 초대 임시대총통에 취임하지만, 2월 12일 선통제가 퇴위하자 그 다음날 손문은 대총통 자리에서 내려온다. 청조(淸朝)가 종언을 고하는 즉시 대총통 자리를 내놓겠다는 약속을 지킨 손문. 그 자리를 꿰차는 원세개. 영화 `신해혁명`의 관심은 오롯 손문과 동맹회원들의 피눈물 나는 투쟁과 우정과 역사인식에 맞춰져 있다.영화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태후의 욕망이었다. 황실의 여인으로 태후는 철도를 국유화하여 그것을 영국, 미국, 도이칠란트 같은 제국주의 열강(列强)에게 팔아넘기려 획책한다. 황실의 재정난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그녀가 취한 정책은 공공재를 사취(詐取)하여 황제와 그 일족의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국가와 백성보다 황제와 가문을 훨씬 중시하는 전근대의 행적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민주공화국이 왕국보다 우월한 까닭은 그것이 왕과 그 일족이 누렸던 특권을 철폐하고 천부인권(天賦人權)과 평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자유, 평등, 형제애를 전면에 내세운 프랑스 대혁명의 영혼과 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국가라는 공동운명체에 승선한 사람들은 모두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어느 개인이나 그를 둘러싼 패거리 몇몇에게 특권과 이익이 가능한 나라는 결단코 민주공화국이 아니다.2016년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초대형 국가재난은 민주공화국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인 21세기 세계최강 정보통신 대한민국에서 이런 희화적이고 전근대적인 사태라니?! 몇몇 여인들의 욕망과 거기 편승한 허다한 승냥이들 무리가 요절내버린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민초들의 저항과 투쟁의 함성이 여인들의 욕망과 거기 부역한 자들을 낱낱이 밝혀내고 탄핵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16-11-25

미국대선과 클린턴의 교훈

▲ 김규종 경북대 교수 인문학부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수많은 언론 매체에서 클린턴 당선을 예측했으나 결과는 대반전이었다. 막말과 추문으로 얼룩진 트럼프 후보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한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인종 차별주의자, 공격적인 성충동과 무분별한 돌출행각으로 악명 높은 트럼프가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미국은 물론이려니와 유럽 여러 나라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상의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허다한 매체와 선거 전문가들이 트럼프의 당선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 뒤집어 생각하면 어째서 클린턴이 패했는가, 하는 문제를 천착하는 셈이다. 재선(再選) 대통령의 아내이자, 국무장관 경력의 클린턴이 질래야 질 수 없는 싸움에서 무참하게 깨진 원인을 생각한다는 얘기다. 그 가운데 나는 딱 한 가지만 제시하고자 한다.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은 강력한 맞수의 대결이라는 구경거리를 선사했다. 버니 샌더스와 힐러리 클린턴의 후보경선이 그것이다. 재벌집안 부럽지 않을 정도의 재산과 억 소리 나는 강연료 수입, 월 스트리트와 밀착한 후보 클린턴. 서민 출신이자 변변찮은 정치적인 경력과 노령(齡)의 악재를 딛고 후보에 도전한 샌더스. 민주당 경선은 가진 자들을 대변하는 클린턴과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샌더스의 충돌로 연일(連日) 화제를 모았다.경선의 승자는 클린턴이었다. 그 이후 민주당 샌더스 지지자들은 냉담해지기 시작한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와 부부 강연재벌 클린턴 사이의 차이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월 스트리트의 큰 손들에게 정치자금을 받는 클린턴을 지지해야 할 어떤 명분도 의지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크지 않다. 정당보다 후보자 개인의 미덕과 장점이 선거판에 영향을 미친다.지난 미국 대선의 투표율은 56.9%였다. 43%에 이르는 미국인 유권자가 선거에 불참했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투표권을 가진 미국인 전체의 30%도 안 되는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되었다는 얘기다. 어째서 이렇게 취약한 대표성만을 확보하게 되었을까. `진흙밭의 개싸움(泥田鬪狗)`처럼 진행된 선거 국면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끝없이 표류하고 흔들렸다. 왜 클린턴을 찍어야 하는지,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한 이들은 투표에 대거 불참했다.이 지점에서 2002년 한국대선을 떠올려보자. 당시 대세론의 이회창 후보와 무명(無名)의 노무현 후보가 맞붙었다. 노무현은 정몽준과 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킨다. 그러나 투표전날 밤 정몽준은 단일화를 철회한다. 그 순간부터 휴대전화에 불이 나기 시작한다. 거리에서 정몽준을 한 시간 기다렸다 빈 손으로 돌아서는 노무현의 얼굴에서 지지자들은 강력한 위기감을 확인한다. 그리하여 밤새 휴대전화로 투표를 독려하기에 이른다.선거란 후보자가 얼마나 많은 지지자들을 투표소로 나오게 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한 표라도 더 얻는 사람이 독식하는 현행 선거법 아래서는 이런 상황이 가속화한다. 하지만 클린턴에게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투표소로 불러 모을만한 아무런 매력도 동력(動力)도 없었다. 그저 나이 들고 욕심 많은 여성 정치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트럼프에 대한 공포도 지지자들을 결집시키지 못했다. 패배는 정해진 것이었다. 클린턴의 교훈이다.한국에서 불타오르는 광장 민주주의를 보면서 국민들이 가진 위대한 역량과 미래 가능성을 확인한다. 저렇게 성숙한 시민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있다면, 우리 후손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마저 든다. 우리는 너와 나의 경계를 넘어 새롭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곧 닥쳐올 한겨울 칼바람을 이겨낼 우리 국민들의 든든하고 미더운 정치의식에 고개 숙인다.

2016-11-18

분노에 대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논개` 1연).수주(樹州) 변영로(1897~1961)의 절창(絶唱)이다.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의 목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투신한 논개를 떠올리며 지은 시다. 강낭콩과 양귀비의 대비(對比)도 그렇지만 푸른 물결과 붉은 마음이 어우러져 대조적인 색채와 함께 조화를 선사한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첫 번째 구절이다. 종교보다 깊은 거룩한 분노! 시인은 어떤 분노를 생각했을까?! 거룩한 분노는 어떤 형상과 내용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오래전부터 있었다.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체계화해 일컫는 오욕칠정(五慾七情)이나 사단칠정(四端七情)에서 분노는 한 자리를 차지한다. 어떤 선인(先人)은 수오지심(羞惡之心)에서 분노가 촉발된다고 보았다. 수오지심은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일컫는다. 분노가 수오지심을 근원으로 삼는다면, 논개는 왜적의 침략과 행악질에서 남다른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낀 여성이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만큼의 분노를 몸소 실천궁행 (實踐躬行) 했으니 말이다.그런데 시인은 분노를 형용하는 수식어 `거룩한`을 덧붙여 놓았다. 인간을 만들고, 인간이 만든 신(神)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보다 더 깊은 `거룩한` 분노. 나는 그것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망국의 한이나 왜적의 침략을 몸소 경험하지 못한 때문이려니와 시인의 감수성을 따라잡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에도 근거는 있을 터. 하되 1922년에 발표한 `논개`에는 실패로 돌아간 3·1 만세운동의 안타까운 회한(悔恨)이 서려있던 것은 아닐까?!2016년 11월 대한민국은 분노로 들끓고 있다. 거리와 광장에서 분노의 함성이 들린다. 대구와 부산, 광주와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중소도시와 촌구석에서도 분노의 목소리와 장탄식이 끊이지 않는다. 이참에 회자(膾炙)되는 구절이 “이게 나라냐”하는 것이다. 불과 다섯 글자로 드러난 민심의 표출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칼바람이 지구촌을 강타하는 시점에 터져 나오는 “이게 나라냐” 하는 분노.급기야 중고생들마저 `혁명정권`을 현수막에 내걸었다.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 햐, 이건 또 뭐냐, 하는 분노와 한숨이 터진다. 10대 초중반 되는 아이들마저 거리로 내모는 정권의 참상이 분노를 부른다.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중무장한 대통령과 그 졸개들이 무당의 추임새에 맞춰 작두 위에서 칼춤 추는 나라! 어쩌다 이 나라를 저런 망나니들에게 넘겨서 어린것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나, 하는 자괴심에서 생겨나는 한숨!나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분노하고 절망하며 탄식하는 이들에게 `거룩하기`를 권하고자 한다. 시인이 노래한 `종교보다도 깊은` 거룩한 분노를 가슴 깊이 새겨두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세(世)의 구원과 영생(永生)을 기원한다는 종교보다도 더 깊은 분노의 염(念)을 골수에 새긴다면 이런 망국적인 정권과 하수인들의 재등장은 우리 역사에서 다시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끝장내야 할 때 끝장내지 못하면 질질 끌려 다니는 법이다.그들의 행악질을 역사의 관 속에 묻고 대못 쳐서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도록 해야 우리 후손에게 재앙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인처럼 거룩한 분노를 간직해야 한다. `성스럽고 위대한` 분노를 국민 모두 새겨서 2016년 11월을 축제와 승리의 마당으로 인도해야 하리라. 그것이 미완의 3·1 만세운동을 기억하는 시인의 `논개`를 되살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분노하라! 하지만 거룩하게 분노하라!

2016-11-11

그것 또한 지나가리니?!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상강(霜降) 지나고도 밋밋하던 날씨가 부쩍 차갑다. 춥다하기에는 이르고, 쌀쌀하다 하기에는 냉한 기운이 제법이다. 길을 걷다가 양버즘나무 이파리를 주워든다. 상기도 초록을 잃지 않은 이파리가 색 바랜 낙엽들 속에 처연했다. 낙엽으로 지기에는 너무 이른 상실이 가슴속 깊이 다가온다. `세월호`에서 스러져간 250명 어린 녀석들 같아서 마음이 짠하다. 어쩌다가 우리는 그 많은 아이들을 죽였는가?! 나이든 축들의 무한반성이 절실한 참사 아니었나?!나라 곳곳이 폐허(廢墟)가 되어간다. 인공지능과 3차원 인쇄기, 로봇과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가 빛처럼 빠르게 일상화되는 21세기.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눈부시게 현현(顯現)하는 2016년에 대한민국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혼(魂)이 비정상인 무녀(巫女)`가 칼춤 추고 그 무당의 진언(眞言)에 의지해 권력을 휘두른 대통령!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대한민국의 `혼을 정상으로` 돌리겠다는 대통령을 떠받들던 자들의 끝 모를 행악질.필시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것 또한 지나가리니!” 승승장구하던 다윗이 총명한 아들 솔로몬에게 자경(自警)하려는 뜻에서 구한 지혜 “그것 또한 지나가리니.” 어떤 위대한 승리와 장엄한 업적과 빛나는 명성도 시간과 더불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같은 이치로 우울한 패배와 졸렬(拙劣)한 수치와 저급한 실패 또한 시간이 흐르면 망각되는 법! 아마도 그들은 생각하리라. “38일만 지나면 모든 걸 잊어버리는 궁민(窮民)을 믿어보자!”허나, 요즘은 스마트폰 세상이다. 어제는 어제로 죽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스마트폰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온다. `촛불시위`에 참가한 여성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눈물 글썽이고 있었다. 그녀가 애도(哀悼)하는 `민주공화국`을 위하여 수만의 촛불들이 거리와 광장에서 환하게 타올랐다. 권력자는 그 의미를 알고나 있을까?!`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란 “백성이 주인이며, 모든 사람들의 입에 쌀이 들어가는 나라”다. 그러나 보라! 2016년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지, 생각하고 돌아보라. 백성들은 그저 지나가는 길손이거나 적선을 바라는 거지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담뱃값을 2천원 올려도 감읍(感泣)하고 받아들이는 개돼지 하인배가 아닌가?! 누가 이 나라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는가, 살펴보라. 찌질한 궁민들이 낸 세금으로 그들이 무슨 짓을 해댔는지 돌이켜보라.잘 만들어진 각본에 따라 꼭두각시나 괴뢰(傀儡)처럼 권부(權府)의 시중이나 들던 자들을 상전으로 모셨던 그자들은 되뇔지 모른다. “그것 또한 지나가리니!” 그렇게 날려버린 허다한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동학농민전쟁, 3·1만세운동, 4·19혁명, 5·18광주항쟁, 87년 민주화 대투쟁을 우리는 낱낱이 기억한다. 얼마나 많은 청춘들을 민주공화국의 제단(祭壇)에 바쳤는지, 우리 모두는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기대하지 말라!“그것 또한 지나가리니!” 이것은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을 위한 언어가 아니다. 이것은 승냥이들과 악어들과 이리떼를 위한 언어가 결코 아니다. 이것은 한시권력에 의지해 민주주의를 짓밟고 시민들의 영혼을 도륙(屠戮)한 망나니들을 위한 언어는 더욱 아니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을 위해 산화(散華)해 간 고귀한 영령들을 위한 언어다.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무장한 권력자와 하수인들의 한시적인 지배가 지나갈 것이라는 확신의 언어다.양버즘나무 낙엽을 보면서 계절의 순환과 권력의 무상(無常)을 독서한다. 다가올 엄동설한과 냉기 가득한 북풍한설과 칼바람을 떠올린다. 하되, 시련이 없으면 따사로운 봄날의 훈풍과 훈향은 기꺼운 것으로 오지 않으리. 하여 우리는 굳게 믿는다.“그것 또한 지나가리니!”

2016-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