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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억에 대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잊지 않도록 혹은 잊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기억의 작용이다. 오래 기억하는 사람은 따라서 더 고통 받거나 혹은 더 많은 행운을 누린다. 망각하고 싶지만 잊어버리지 못하면 괴로운 노릇일 테고, 요긴한 것을 오래 담고 있음은 축복일 것이다. 인생은 이런 모순의 양극단(兩極端)을 진자(振子)처럼 요동치며 마지막 날까지 흔들리는 것일 게다. 그런데 아주 예외적인 일과 사람과 관계는 기억함이 좋을 듯하다. 벌써 오래 전 일처럼 들리지만, 안중근 의사와 긴토캉(김두한)을 헷갈린 연예인이 구설수(口舌數)에 올랐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하고 반응하는 사람들과 뭐, 그만 일을 가지고 젊은이를 닦달하느냐는 부류(部類)의 인간들로 패가 갈렸다. 결론을 서두르면 나는 전자(前者)에 속하는 사람이다. 최소한의 것은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문제는 사람마다 그 `최소한의 것`이라는 범주(範疇)가 많이 다르다는 데 있다. 사적(私的)인 영역이나 친밀한 범위 내의 것을 최소한의 범주에 넣는 사람이 있다. 거시적(巨視的)인 것과 역사적(歷史的)인 것의 범위(範圍)를 꼽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이런 범주화를 전연 염두(念頭)에 두지 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리라는 데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속도(速度)와 연관되어 있다.작년과 올해가 그 양상을 달리하는, 과장(誇張)하면 어제와 오늘이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시간대에 우리는 산다. 몇 년 전 일도 기억나지 않는데, 소중한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어찌 기억하겠는가?! 이것이 연예인을 옹호하는 논리다. 맞는 말이다. 분초(分秒)를 다투면서 시간이 나노의 범주까지 쪼개진 시점에서 역사적이고 거시적인 사건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현대인은 달력을 보지 않는다. 그가 들여다보는 `똑똑한 전화기`에는 언제나 지금과 여기만 나와 있다. 달력에 담긴 24절기(節氣)와 국경일과 역사적인 사건은 전화기(電話機)에 나오지 않는다. 그는 늘 현재에 주목(注目)한다. 그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처럼 과거 역시 사라진 지 오래다. 현재에 함몰(陷沒)된 현대인에게 어찌 미래기획과 과거역사를 물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거기가 나의 문제의식(問題意識)이 출발하는 지점이다.끝없는 현재를 잉태(孕胎)하는 무수한 과거와 무수한 현재에 기초하는 무한한 미래는 기실 하나의 연속선(連續線)에 자리한다. 우리가 의식하든 말든 그것은 자명(自明)하다. 시간은 분절적(分節的)이지만 연속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택적 기억과 기억의 창고를 경영하는 인간은 분절적으로 시간을 인식하지만, 어떤 사람은 시간의 연속성에 기초하여 역사와 만나려 한다. 그에게 안중근과 김두한을 동렬(同列)에 세우는 것은 불경(不敬)한 노릇이다.얼마 전 경북대에 대동제가 있었다. 그 첫날이 지난달 18일이었다. 나는 학생들이 건사하는 주막(酒幕)에 가지 않은 지가 오래여서 올해도 그러했으되, 부아가 치밀었다. 불과 36년 전에 있은 광주항쟁의 그날에 학교에 술판을 벌이며 아무런 추모행사도 갖지 않는 청년들의 집단적 무의식(無意識)에 소름이 돋았다. 1980년을 기억하지 않는 청춘들이 거점 국립대 학생들인데, 연예인이 1909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철종 13년인 1862년에 출간된 `레미제라블`에서 빅토르 위고는 한탄한다. “우리 프랑스에서는 어떤 일이고 간에 180일만 지나면 모두 망각된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떠올렸다. 38일만 지나면 모든 것이 망각된다는 `다이나믹 코리아`! 무려 6개월 동안 지속되는 자국민(自國民)들의 기억력에 분노했던 위고가 나는 새삼스러웠다. 구양봉의 여인이 병사(病死)하고, 서독은 사막의 객잔을 태우고 표표히 사라진다. 그 역시 잊고 싶은 것이다. 세상일은 취생몽사주 없이도 더러는 망각되는 모양이다.

2016-06-03

굿하는 할머니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겨우내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할머니는 석 달 열흘이 넘도록 부재(不在)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봄날 홀연히 돌아온 할머니였다. 허리 통증 때문에 수술을 받았다 하신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4남매를 홀로 키워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할머니였다. 언젠가 그녀에게 신이 내렸고, 그날부터 강신무(降神巫)가 되었다는 할머니. 그렇게 수십 년 세월을 느티나무처럼 버티며 견뎌온 세월이었다고 했다. 5월이라 봄이라지만 섭씨 30도의 대기(大氣)는 태양으로 달궈져 있다. 어깨에 띠를 두르고 뒷집 할머니가 신명나게 소리를 뽑는다. 장구와 징, 꽹과리 같은 무구(巫具)가 할머니의 신명을 돕는다. 팔순 넘긴 할머니를 땡볕 아래로 불러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겨울 이후 거동(擧動)이 더뎌진 할머니를 저토록 활기차고 강인하게 인도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할머니의 굿은 아침나절에 시작하여 점심을 거쳐 오후가 되어서야 끝났다.무당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은 안향(1243~1306)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무슨 대단한 학문이나 되는 듯 성리학을 고려에 이식(移植)한 안향. 중국에서 수입한 학문으로 신흥국가 조선이 성립되어 장장 500년 세월을 이어갔다. 그 첫머리에 안향이 있었다. 그가 어느 고을 원님으로 부임하여 첫 번째 행한 거룩한 사업이 무당을 축출하는 것이었다. 무속(巫俗)은 모두 사악하고 거짓되니 징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조선의 금과옥조(金科玉條)였던 억불숭유의 토대를 놓았던 인물 안향. 그러나 장구한 세월 성리학만을 떠받들고 추종했던 왕조는 쓸쓸하게 몰락한다. 그 왕조의 우울한 끄트머리를 장식했던 갑오농민전쟁과 을미사변의 주인공 민비 민자영. 명성황후라 불리는 민자영이 특히 굿을 좋아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함인가?! 무너져 내리는 이씨의 종묘사직을 지키려 온갖 수단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녀가 의지한 최후의 보루 무당과 굿은 무엇인가!지난 세기 60~70년대 한국에는 다시 미신타파(迷信打破)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진다. 그와 반비례하여 외래종교인 기독교의 교세(敎勢)는 날로 번창해간다. 무당과 박수의 자식들이라 하여 손가락질과 수군거림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고통의 날들로 기억된다. 군부독재가 종식(終熄)되고, 우리의 전래적(傳來的)이고 토속적(土俗的)인 것들에 대한 성찰이 일상화되기 시작한 90년대에 이르러서야 무속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박기복 감독의 기록영화 `영매(靈媒)`는 강신무와 세습무(世襲巫)를 다룬 역작(力作)이다. 인간과 신을 매개한다 하여 무당을 `영매`로 승화(昇華)시킨 박기복. 그리하여 영화관은 눈물과 한숨의 바다였던 기억이 오늘도 새롭다. 탐진치(貪瞋痴)에서 발원하는 수비뇌고(愁悲惱苦)와 생로병사를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중생을 위해 헌신하는 영매들 아닌가!알파고와 사물 인터넷 그리고 3차원 복사기가 등장한 인공지능 시대에도 영매의 구실은 여전하다. 인간의 육체적인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기계를 만들어내다가 이제는 정신적인 노고(苦)마저 덜겠다는 것이 인공지능 아닌가. 시대의 추이(推移)라는 것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그 본질로 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大勢)로 자리매김할 것이 자명(自明)하다. 그런 시대에도 영매들의 엄존(儼存)은 나를 숙연하게 한다.할머니가 귀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맏아들과 낮술을 먹게 되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 대신 그녀의 질부(姪婦)가 술상을 봐주었다. 질부라 해도 네 살이나 더 많은 파파 할머니였다. 그분들과 대면한 자리에서 나는 무녀의 기상(氣象)을 볼 수 없었다. 그저 나이 들고 병약한 노구의 내 어머니뻘 되는 노파가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의 조속한 쾌유(快癒)를 빌면서 소략한 주연을 마친 봄날이 어느덧 종언(終焉)을 고하는 시간! 아아, 봄날이 간다!

2016-05-27

글은 어떻게 쓰는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젊은 작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유수(有數)의 문학상을 받았다. 노벨 문학상과 프랑스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것이다. 영연방 작가에게는 `맨부커상`을, 비영연방 작가와 역자에게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여하는데, 한국 작가로는 한강이 첫 번째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 `채식주의자`는 읽지 못했으나, `몽고반점`을 읽고 그녀의 글쓰기에 적잖게 매료(魅了)된 적이 있었다.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는 것은 자못 유쾌하고 행복한 일이다. 연말만 되면 혹여 고은 시인이 노벨 문학상을 받지나 않을까, 노심초사(心焦思)하는 한국인들이 적잖고 보면 더욱 기쁜 일이다. 그런데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극작가는 어떻게 글을 쓰는 것일까. 핵심(核心)을 말하자면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한강의 수상소감과 남편 홍용희 문학평론가의 말에서 해답의 단서(端緖)를 찾을 수 있다.첫째 가는 덕목(德目)은 글을 쓰는 작가의 문제의식일 것이다. 어떤 글을 써서 자신과 독자에게 내놓을 것인지, 그것을 고민하는 작가의 심도(深度) 있는 사유와 인식 그리고 차원 높은 문제제기가 1차적인 관건(關鍵)이라 믿는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를 “인간의 폭력성과 인간이 과연 완전히 결백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 작품”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두 가지 문제의식을 추출(抽出)한다.그 하나는 인간의 폭력성이 어디까지 가능한가, 하는 것이며, 그 둘은 인간존재의 결백성(潔白性)이 얼마나 완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양자 공히 상당히 추상적이고 난삽(難澁)하여 쉽지 않은 사유와 인식론적 노력을 전제로 하는 듯하다. 나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긴다. 소설의 재미는 있지만 깊이가 턱없이 부족한 소설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런 진지한 문제제기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기 때문이다.좋은 글을 쓰는 두 번째 미덕은 퇴고(推敲)에 퇴고를 거듭하는 작가의 장인정신이라 생각한다. 한강의 글쓰기에 대해 홍용희는 말한다. “한강은 한 줄 한 줄 혼신(渾身)을 다해서 몸이 아플 만큼 쓰는 체질이다. 그렇게 열심히 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고치는 과정은 옆에서 보기에 굉장히 존경스럽고 경이로운 느낌이 든다” 글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장인정신, 끝없는 반성과 수정의 되풀이를 보여주는 헌신성은 시시포스를 연상케 한다.시시포스가 `도로(徒勞)`의 헛된 수고로움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면, 한강은 다듬고 또 다듬어 벽옥(碧玉)을 갈무리하는 장인을 닮았다. 서둘러 쓰지 않되, 그런 글마저 이리 보고 다시 살피는 인내와 자기결벽의 도저(到底)한 결과가 비평가와 독자를 사로잡은 비결이라 생각한다. 어느 글이고 고치고 다시 손을 보면 최초의 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지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우리는 백거이나 밀턴의 좋은 선례를 가지고 있다.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혼불` 10권을 썼다는 작가 최명희나, 근면하고 정직하게 글을 쓰는 김훈 소설가나 좋은 글을 남기려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있기에 한국어도 세계적인 문학어로 재탄생하는 계기(繼起)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돈과 명예와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의 글쓰기가 아니라 자아와 세계와 인간을 천착(穿鑿)하는 느리고도 진지한 성찰이 한국문학의 깊이와 폭을 심화 확대하기를 기대한다.한강은 `맨부커상`을 받음으로써 나처럼 글로 살아가는 인간을 경계하는 종요로운 구실을 하지 않았는가 한다. 문제의식도 치열하지 않고, 글쓰기 형식도 신통치 않으며, 퇴고의 수고로움을 마다하는 어쭙잖은 글쟁이를 깨우치는 죽비(竹扉)가 된 듯하다. 이로써 나는 재삼재사 숙고하고 살피며 바지런한 글쓰기로 `후생가외`의 기여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역시 글이란 작가의 열렬함과 고단함을 먹고 사는 것이다. 한강의 수상을 새삼 축하한다!

2016-05-20

바깥에서 찾는 사람들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수피우화`를 읽으면서 기시감을 느낀 적이 있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친밀함이 살갑게 다가온 때문이다. 논리 정연하고 사변적이되 수다스러운 철학자들을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날려버리는 수피의 지혜. 이슬람의 수피는 유대의 랍비나 불가(佛家)의 조사(祖師)처럼 도저한 깨달음에 이른 사람을 가리킨다. `수피(Sufi)`는 양털을 뜻하는 어휘 `수프(Suf)`에서 나왔다. 수피가 양털로 짠 외투를 입고 청빈한 생활을 한 데서 어원이 만들어진 듯하다.성스러운 여성이자 수피였던 라비아가 바늘을 잃어버린다. 그녀는 오두막 바깥에서 바늘을 찾는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라비아를 도와 바늘을 찾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어두워졌는데도 바늘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그녀가 바늘을 잃어버린 장소를 묻는다. 라비아는 집 안에서 잃어버렸다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황당해한다. 그녀는 안보다 바깥이 더 밝기 때문에 밖에서 바늘을 찾고 있다고 덧붙인다.라비아의 답변에 허망(虛妄)해진 사람들이 비아냥거린다. 그녀의 응수를 보자.“그대들 자신을 돌아보라. 그대들 또한 밖에서 찾고 있지 않았던가. 그대들이 찾고 있던 것은 사실 안에서 잃어버린 게 아니더냐. 그대들은 진리와 구원(救援)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안에서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지만 그대들은 바깥에서만 그것을 찾지 않았더냐. 바깥이 밝으니까, 밖은 쉽게 볼 수 있으니까, 바깥에서 찾고 있었던 게 아닌가.”라비아의 말은 명쾌하다. 우리가 구하는 진리와 구원은 우리 바깥에 있지 아니하고,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노자의 사유(思惟) 한 자락이 기시감처럼 떠오르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인가?!“사립문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고, 창문을 열지 않아도 하늘의 도리를 본다. 멀리 가면 갈수록 그 앎은 작아지나니. 그러므로 성인은 행하지 않고도 알며, 보지 않아도 밝고, 하지 않아도 이룬다.”(도덕경·제47장)`무위자연`을 설파한 노자는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섭리를 천하 주유(周遊)가 아니라, 내부에서 찾고자 한다. 사물과 관계가 `스스로 그러하도록 놓아두라`는 달관한 사상가 노자의 그윽함이 감촉(感觸)되는 장면이다.수피나 노자가 아니더라도 다산(茶山) 또한 깨달음을 선사한다. `신유박해`로 강진에 유배(流配)된 다산은 한양과 흑산도의 가족과 서신으로 교통한다. 한양의 아들들과 섬으로 유배된 둘째 형님 약전과 편지하며 내면을 토로(吐露)했던 다산. 그것을 한 권으로 묶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크고 작은 깨달음과 통렬한 비판으로 충만하다. 정조의 신료(臣僚)였던 정약용이 조선 지식인들의 사대주의를 비판한 것에 눈길이 간다.청나라에서 내려주는 서책으로만 정신적 자양(滋養)을 삼았던 무비판적인 조선의 지식인들이라니! 중국인들의 사유와 인식을 앞 다퉈 베껴댔던 조선의 매판적(買辦的)인 관료와 지식인 계층에 대한 다산의 신랄(辛辣)한 비판은 정곡(正鵠)을 찌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일본유학의 전통과 비교할 때 자생적이고 민족적이며 전통적인 기반을 완전히 상실한 조선유학의 근거 없음에 대한 다산의 비판은 실로 비난에 가까운 것이었다.문제는 그런 방법론 내지 세계관이 21세기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 지식인들의 작업이라고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외국의 이론을 직수입해서 지식 소매상 노릇을 선점(先占)하는 것이다. 이런 뿌리 깊은 지식 사대주의는 천석고황 수준이어서 난치병이 아닌지 생각한다.최소한도의 자존심과 역사의식이 있다면 남의 나라 지식인과 지식을 베끼고 전수(傳受)하고 팔아먹는 일은 이제 그만둘 때도 됐다. 모자라고 아쉽더라도 독자적이고 고유한 것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방법을 찾을 일이다. 집 안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이집 저집 두드리며 찾아다니는 것은 보기에도 민망할뿐더러, 성과도 미미(微微)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우리에게 소용되는 것은 우리 내부에서 참을성 있게 찾고 또 찾을 일이다.

2016-05-13

세상에서 숫자가 사라진다면?!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한 가지 가정(假定)을 해보자. 이 세상에서 어느날 갑자기 숫자가 모조리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실 숫자는 물이나 공기처럼 생활 깊숙이 밀착되어 있어서 그 종요로움을 잊고 사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다. 생물학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생명유지 활동에 필수적인 것이 물과 공기다. 사회-경제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정신적-지적 활동에서 그런 구실을 하는 것이 숫자다. 숫자를 빼놓고는 우리는 하루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다.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는다고 하자. 의사의 모든 소견(所見)은 숫자로 기록된다. 키와 몸무게, 시력과 청력,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 혈압과 심전도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항목들이 숫자로 빼곡하게 정리되어 의사의 판단을 기다린다. 알프레드 크로스비는 `수량화혁명`에서 유럽이 근대를 열어젖힌 원동력을 `수`와 `양`에서 보았다. 고대와 중세의 질적(質的)인 세계관에서 근대의 양적(量的)인 세계로 빠르게 전환한 유럽의 승리를 포착한다.대학을 필두로 그는 근대로 이행하는 전제조건으로 시간을 가시적(可視的)인 현상으로 확립한 기계시계, 기억력에 의지했던 음악을 오선악보로 혁신한 아르스 노바, 채무와 이익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복식부기, 인쇄술을 통한 인체해부도와 해도(海圖)의 광범한 보급 등을 거명한다. 그 모든 것의 세계 저류(低流)를 관통한 것이 수량화혁명이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의 논지에서 `오리엔탈리즘`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착목 자체는 설득력 있다.한국인들은 어릴 적에는 수학도사라 불리지만, 대학에만 들어가면 쩔쩔 맨다. 초중고교에서 한국인이 배우는 수학이란 거의 계산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공식(公式)을 암기(暗記)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계산을 반복하는 방식이 개선되지 않는다. 0(零)을 비롯한 수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계산에만 몰두한다. 당연히 암산은(속셈은) 빠르지만 수의 본령(本領)에는 이르지 못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본보기를 들어보자.이 세상에서 가장 큰 수를 생각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는지?! 고타마 싯다르타, 즉 붓다다! 그이는 `무량대수(無量大數)`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무량대수는 문자 그대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수`를 의미한다. 하지만 필자는 무량대수보다 더 큰 수를 알고 있다. 정말이다. 그것은 무량대수에 1을 더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어느 학생이 무량대수에 2를 더하겠다고 해서 필자에게 군밤을 맞은 일이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다.붓다는 수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큰 수에 1을 더하면 더 큰 수가 되고 이것은 무한반복 가능하다는 수의 기본적인 속성(屬性)!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의 본향(本鄕)은 아라비아가 아니라 인도(印度)다. 기원전 3세기 무렵 발명된 숫자가 기원후 458년 무렵 `명수법(命數法)`과 동반(同伴)하여 아라비아와 중동, 북아프리카의 무어를 거쳐 에스파냐에 도달하는데 무려 800년이 소요(所要)됐다고 한다.요즘엔 아라비아 숫자 대신 인도-아라비아 숫자라는 용어가 선호(選好)된다. 수의 나라답게 인도 출신 수학자도 많고, 수학분야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수상자도 적잖게 배출하는 나라가 인도다. 숫자는 피타고라스학파의 경우에는 수비학과 결부되어 밀교 (密敎) 수준까지 진척되었다. 그것은 숫자에 담긴 의미가 철학과 사상을 넘어 종교의 영역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첫머리의 `피보나치수열`을 상기하시라.조금만 신경 쓰면 재미나고도 유쾌하게 숫자와 수학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을 터인데, 입시만 보고 달리는 한국교육은 여전히 죽만 쑨다. 숫자와 관련한 허다(許多)한 서적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출간되고, 영화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건만 표피적(表皮的)인 드라마와 노래와 춤에 빠져든 이 나라에서는 고급한 취향의 지적 (知的) 오락 개발에는 무능하고 무심하다. 언젠가 숫자와 수학과 생활을 결합하는 한국형 문학과 예술과 철학이 나오기 바란다.

2016-04-29

새로운 시대정신을 위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4·13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났다. 많은 언론사가 절대적으로 틀린 예측결과를 사과하는데 적잖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틀려도 유만부동(類萬不同) 아니었는가? 그렇게 틀린 여론조사로 민심을 예단(豫斷)했으니, 망신살이 뻗쳐도 단단히 뻗친 셈이다. 언론사의 체면치레는 조만간 끝날 것이다. 언제 그랬느냐 하고 그들은 또 다른 대상을 찾아 길 떠날 것이다. 근면한 살육자(殺戮者) 하이에나처럼! 문제는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우리에게 21세기를 살아갈 내재적인 동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가 관건(關鍵)이다. 본래 선거는 미래권력을 선출하는 행위다. 물론 선거에는 회고적(回顧的)인 의미도 담겨 있지만, 선거의 핵심은 미래를 지향한다.2016년 4월 한국의 정치지형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20세기 중후반을 누비던 인사들이 주축이다. 60~70대가 주역을 맡고, 그 아래 세대가 조연과 단역으로 나오는 재미없는 드라마가 한국정치다. 통렬한 풍자(諷刺)와 신랄한 비판, 그리고 상큼한 대안제시가 사라진 정치판은 개그 콘서트보다 못하다.이쯤에서 우리는 미래로 가는 길을 물어야 한다. 21세기가 어느새 15년이나 지났건만 한국정치는 1970~80년대에 매몰(埋沒)되어 있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人工知能)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그늘에 갇혀 산다. 첨단 과학기술의 세례(洗禮)를 날마다 경험하지만 우리의 사유와 인식, 그리고 경험은 흑백 가정용 전화기 시대에 묶여 있다. 새 술은 반드시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내용이 바뀌면 형식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리는 어떤 내용으로 21세기를 채워야 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 준비하지도 않는다. 그저 외부에서 주어지는 지식과 정보를 답습(踏襲)하고 소화하는데 열중한다. 소련을 필두로 한 실존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崩壞)한 지 25년 세월이 흘러갔다. 동서 도이칠란트가 재통일되고, 유럽연합이 자연국경을 포기하고 출범했다. `흑묘백묘론`으로 시작한 중국은 `도광양회`를 거쳐 `대국굴기`를 지나 `돌돌핍인`의 지경으로 우뚝 일어서고 있다.그런데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우리는 반도(半島) 아닌 섬에서 살고 있다. 대륙을 향한 상상력은커녕 분단극복을 위한 그 어떤 진실한 노력도 없다. 세계적인 불황과 경기침체로 `헬조선` 담론(談論)이 일상화되었지만, 그것의 대안(代案)은 여전히 부재중이다. 여기서 필요한 학문이 인문학이며 그 가운데서도 역사학(歷史學)이다.“역사가는 돌아앉은 예언가”라는 말이 있다. 그런 형안(炯眼)을 가진 역사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하지만 우리에게는 역사교수나 역사교사는 많아도 역사가는 없다. “역사에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만 배운다!”는 속설을 입증하는 소논문만 판치는 세상 아닌가? 시대를 통찰하고 미래를 통관하는 장쾌(壯快)한 시각을 가진 신진기예가 배출되어야 함에도 현실은 막막하다.지역과 세대와 수저를 넘어서는 탁월한 담론이 나오고, 그것을 둘러싼 치열(熾烈)한 논쟁이 벌어져야 한다. 5천년 문화민족을 자랑하는 우린데, 어찌하여 세계적인 사상가나 철학자, 역사가 하나 없단 말인가! 안으로는 우리 민족과 국가의 명운(命運)과 어린것들을 사유하고, 밖으로는 전 지구적인 삶의 양상과 미래를 기획(企劃)하는 현인(賢人)의 등장을 고대한다. 그나 그녀가 아니라, 그들이라면 훨씬 더 유쾌할 것이다.20세기 담론과 정치철학, 그리고 행동방식으로 21세기를 살아감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번 총선 결과가 보여주는 핵심이 그것이다. 세계의 변방(邊方)이나 주변부에서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오르려는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치열하게 시공간을 사유하고 미래를 고민하는 깨어있는 인문학자, 역사가와 철학자의 등장을 고대(苦待)하는 시각이다.

2016-04-22

쓸모없음의 쓸모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빛과 소금이 되어라! 어릴 적부터 자주 들은 말이다. 필자는 어떤 특정종교 신자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의미를 되새길 따름이다. 어둠에 광명을 안겨주는 빛과 인체에 필수적인 소금이 된다는 것에 담긴 함의! 빛과 소금이 사라진 세계를 떠올리면 간명하다. 항상 어둠만 지배하는 세상과 싱거움으로 가득한 식탁은 어떤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계와 소금이 부재하는 음식을 연상함은 괴로운 일이다.빛과 소금은 그야말로 최상의 쓸모를 대변한다. 공기와 물도 절대적으로 유용하지만, 우리는 빛과 소금의 쓸모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사람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든 혹은 어떤 사람에게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명령이다. 그러므로 `쓸모없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하는 부모나 교사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 상황일 터이고. 그런데 과연 그러해야 하는가?!`장자`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대목으로 명성이 높은 장석이 제자를 데리고 쓸모 있는 나무를 찾으러 길을 나선다. 제(齊)나라로 향하던 장석은 곡원 지방에 이르러 수천 마리의 소를 가릴 정도로 큰 사당나무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는 아무 미련 없이 길을 재촉한다. 보다 못한 제자가 길을 막는다. 이렇게 좋은 재목(材木)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장석은 단호하게 제자를 나무란다. 이 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무라고!“이 나무로 배를 만들면 금방 가라앉고, 널로 쓰면 곧 썩을 걸세. 그릇을 만들면 쉽게 부서지고, 문으로 쓰면 진액이 흐르고, 기둥으로 쓰려 해도 좀이 생기네. 결국 이 나무는 아무데도 쓸모가 없어서 이렇게 장수를 누린 것이야!” (`장자`, `내편` 가운데 `인간세`)만일 장석이 본 사당나무가 쓸모가 있었다면 그것은 훨씬 오래 전에 베어져 제 수명을 다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사당나무는 쓸모없음을 견지해왔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천수를 다하고 있었던 셈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그런데 `장자` `외편`의 `산목(山木)`에서 우리는 정반대 상황과 대면한다. 장석이 제자를 데리고 옛 친구를 찾아간다. 장석을 반갑게 맞이한 친구는 하인을 불러 거위를 잡도록 한다. 하인은 잘 우는 거위와 못 우는 거위 가운데 어느 것을 잡을지 묻는다. 거위는 본디 집을 지키는 구실도 해야 했으므로 주인은 못 우는 거위를 잡으라고 명을 내린다. 여기서 장석의 제자는 혼란에 휩싸여 장석에게 묻는다.“사당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천수를 누렸는데, 이제는 울지 못하는 거위가 죽음을 당했으니 저는 장차 어찌 해야 합니까?! 쓸모가 없어서 천수를 누리기도 하고, 또 죽임을 당하기도 하니 대체 무엇이 올바른 방법입니까?”장자의 대답은 의외로 간명하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경계에 자리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경지`라고나 할까, 그런 경계를 장자는 말한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사회의 어느 부모가 장자의 이런 경지를 자식들에게 설파하고 있는가?!일컬어 `실용주의`라고 할 것인가?!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경지인지도 모른다. 도저한 깨달음의 경지이거나 시끌벅적한 저잣거리를 초월하는 범상한 기인의 경지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언제나 쓸모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능하고 똑똑하고 잘난 사람은 일찍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만큼 일찍 세상과 작별하는 법이다.“일찍 핀 꽃은 일찍 시들기 마련이다!” 천재와 미인이 박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너무 일찍 만개하면 범용한 세상의 미움과 질시가 하늘을 찌르는 법이다. 양생(養生)의 토대는 어중간함에 있을지도 모른다. 군영(群英)들의 화사함이 앞을 다투는 시절의 오래된 상념이 문득 머리를 쳐드는 시간이다. 천재는 경배하여 먼저 길을 내주면 그만이다! 사태의 진상이 그럴진대 왜 우리는 천재를 박대(薄待)하는가?! 비루(鄙陋)한 인간들의 허랑 방탕이여!

2016-04-15

근절(根絶)의 어려움에 대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모든 것이 솟구치는 시절. 대지에 뿌리 내린 것이라면 하나같이 봉기(蜂起)하는 계절. 저 양양(揚揚)한 기세는 그야말로 욱일승천(旭日昇天)이다. 아침저녁으로 표정을 바꾸는 초목의 약동은 봄의 환희를 웅변한다. 예전에는 꽃이 피어나는 순서가 있었다. 동백이 피어나고 영춘화가 세상과 만나면 매화와 산수유가 뒤를 잇는다. 그 다음 살구와 명자꽃이 피고 개나리와 목련이 얼굴을 내민다. 그 무렵이 지나면 벚꽃이 세상을 환하게 하고, 진달래와 싸리 등속이 단아(端雅)하고 처연(悽然)하게 고개를 든다. 키 작은 민들레와 냉이, 제비꽃도 뒤질세라 여린 몸을 열어 하늘을 우러른다. 그러다가 수수꽃다리가 번지면서 봄은 절정으로 치닫는 것이다.그러던 풍경이 언제부턴가 일순 (一瞬) 뒤바뀌어 백화쟁명이 되고 말았다. 매화와 산수유가 피고 질 무렵 만산홍화가 줄지어 개화한다. 꽃들에게도 질서가 사라져버린 불고염치의 시대가 도래(到來)한 것이다. 개화를 향한 무한경쟁 시대에 이 나라 초목도 발 벗고 나선 셈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명리와 출세만 바라보고 질주하는 인간군상의 집단군무가 세상을 혼탁하게 한 것이 어찌 어제오늘의 일이겠는가?!아마 그들의 욕망도 시초(始初)에는 작고 여린 것이었을 터다. 자그마한 소망이 하나 둘씩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제어 (制御) 불가능한 규모로 확대재생산 되지 않았을까. 노자(子)는 이것을 정갈한 비유로 설명한다. “9층 누대(臺)도 한 삽의 흙에서 비롯되고, 아름드리 거목도 미소(微小)한 것에서 생겨나며,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모든 것의 시작이 미미(微微)하고 하잘것없는 것이었음을 웅변하는 명구(名句)다.나의 봄도 노자의 가르침과 멀지 않다. 작년에 앞마당에 민들레가 일시에 피어나 민들레 정원이 되었다. 노란색 민들레꽃은 보기에도 그만이어서 그들의 번창을 멀거니 바라만 보았다. 민들레의 생명력이 얼마나 질긴지 확인하는 것은 커다란 수고를 동반한다. 지천에 널린 민들레 수효를 줄이고자 몇날며칠 고생해도 그들의 집착(執着)은 상상을 넘는 차원에 있었다. 거기서 알게 된 생명의 강인(强靭)함은 그야말로 충격(衝擊)과 공포였다.겉에 드러난 민들레의 잎과 줄기 혹은 상당 부분의 뿌리를 제거해도 민들레는 죽지 않는다. 약간의 뿌리만 대지에 내리고 있으면 언제 잘려나갔느냐 시위(示威)라도 하듯 민들레는 다시 우뚝 피어나는 것이었다. 지상의 이파리와 꽃대보다 훨씬 강력하고 긴 뿌리에 의지하는 민들레의 생명력이라니.거기서 `근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은 자명한 이치다. “뿌리를 잘라낸다”는 것을 뜻하는 근절. 원하지 않는 풀, 불원초(不願草)를 없애고자 한다면 근절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가 항용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욕망과 오류는 민들레처럼 작은 홀씨 하나에서 비롯한다. 그것이 적절한 생장조건과 만나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져나가는 것이다.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눈먼 정치가들의 탐욕도 그런 양상으로 번성하는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근절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데 있다. 불원초는 적절한 선에서 이파리와 꽃 심지어는 일부의 뿌리까지 쉽게 내준다. 퇴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후의 생명 저지선(沮止線)은 양보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도만 남기고 그저 물러서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마치 우리의 음습(陰濕)한 욕망이 근절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올봄에도 나는 며칠을 민들레와 이름 모르는 불원초 근절에 돌입(突入)했다. 그들과 씨름하면서 나의 저급한 욕망과 세상의 근절되지 않는 허다한 욕망과 그것의 충돌을 생각한다. 언젠가 세월이 더 흐르면 불원초를 근절하겠다는 나의 욕망마저 근절될지 모르겠다. 아직은 호미와 삽을 들고 설치는 꼴을 보이고 있으니, 철이 덜 든 것인지도 모른다. 창밖에는 직박구리들이 화사한 벚꽃을 탐식(貪食)하고 있다. 봄이다. 흐드러진 봄날이 간다.

2016-04-08

바둑을 두다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나는 어릴 적부터 바둑을 두었다. 외숙(外叔)이 아마 5급 정도 되는 기력을 갖추고 있어서 그분에게 바둑을 배운 것이다. 아홉 점을 깔고도 무수하게 죽어나가는 나의 대마(大馬)를 볼 때마다 가슴 서늘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 정도 기초를 배우고 난 다음에는 정석과 포석(布石)을 다룬 서책을 읽으며 기력향상을 시도했다. 그때 나온 바둑서적은 대개 일본 기사들의 책을 번역하거나, 그들의 대국(對局) 해설집이었다.중국에서 시작되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바둑. 하지만 바둑은 종주국 중국에서 오래도록 망각돼 있었고, 이런 정황은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광개토왕의 정복전쟁을 계승한 장수왕은 백제의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첩보를 입수한다. 그는 고구려 승려 도림을 첩자로 만들어 백제에 파견한다. 개로왕은 도림의 꾐에 빠져 국사(國事)를 내팽개치고 바둑에 빠져든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옛말이 적용된 사례다.그래서인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은 바둑을 잡기에 넣는데 익숙하다. 이른바 `주색잡기(酒色雜技)`에서 바둑과 장기를 잡기의 대명사처럼 되뇌어왔던 것이다. 그런 바둑을 일본인들은 `도(道)`의 경지로까지 승격시킨다. 이른바 `기도`의 탄생이다. 이것은 중국에서 시작돼서 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차`문화의 융성과 맥을 같이 한다. `다도(茶道)`라는 말이 얼마나 지난 세기 90년대 한반도를 강타했던가?! 바둑 역시 같은 경로를 거쳐 역수입된다.한국의 대표적인 고수(高手)들, 조남철-김인-윤기현-조훈현으로 이어지는 국수(國手)의 맥은 일본 유학파들이었다. 한국토종 기사 서봉수는 국수라기보다 명인(名人)으로 곧잘 불린다. 여하튼 이창호라는 불세출의 기사가 출현하기 전까지 한국바둑은 일본바둑에 전면적으로 의지해서 성장했다. 이것은 기록으로도 입증된다. 최근자료에 따르면 1765년 출간된 `기론(碁論)`이 한국바둑의 최고기보라 한다. 이것 역시 치밀한 고증을 거쳐야 할 작업이다.그런데 일본은 이미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이 1588년 어전시합이란 명목으로 바둑 전국대회를 개최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때 우승한 승려 닛카이에게 풍신수길은 `본인방(本因坊)`이라는 이름을 하사(下賜)했는데, 25대 본인방으로 등극한 이가 조치훈 9단이다. 400년이 넘도록 지켜온 본인방의 전통을 가진 나라가 일본이다. 각설하고, 이런 식으로 일본은 바둑과 차 문화를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린 당사자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임금 앞에서 두는 이른바 `어성기` 기록 역시 빼놓지 않고 가지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서기` 30권이 720년에 완성되었는데, 김부식의 `삼국사기` 50권이 1145년에 집필된 점을 고려하시기 바란다. 중국과 한국을 젖혀두고 일본이 오래도록 바둑 종주국 행세를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물론 세계 바둑계를 석권하는 기사들은 한국과 중국기원 소속이다. 그러나 바둑의 역사와 기록은 여전히 일본이 가히 독보적(獨步的)이다.얼마 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人工知能)의 가공(可恐)할 지적 능력에 놀라워했다. 거기서부터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 혹은 전쟁까지 상상하는 일이 생겨났다. 영화에서는 `터미네이터`(1984)가 그런 세계를 이미 오래 전에 열어젖히지 않았던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구체적인 직업까지 거명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교육은 어떠한가?!우리는 유치원 이전부터 영어와 수학 암산 같은 지식 교육으로 어린것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학원으로 향하는 5~6세 아동부터 20살 재수생까지 그들은 판에 박은 암기공부에 절망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의 진단(診斷)에 따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공부에 몸과 마음을 혹사당하고 돈을 낭비하는 어리석은 교육이 어제처럼 자행(恣行)되고 있는 것이다. 바둑을 두면서 조만간 불어 닥칠 미증유의 변화와 대학입시와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2016-04-01

봄날의 대학풍경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해마다 봄이면 학교는 소음과 환락의 광장이 된다. 신입생 환영회, 동아리 모임, 고등학교 동창회 같은 행사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예전에 만연(漫然)했던 신입생 길들이기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교내 도처에서 술과 이야기로 늦은 시각까지 청춘을 노래한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통과의례일 것이다. 초중등 장장 12년 동안 억눌린 육신과 영혼의 해방을 향수(享受)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국의 입시제도가 낳은 기형적인 풍경이다.대학생들이 해방과 자유를 노래하며 어지럽힌 캠퍼스를 말없이 치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청소를 담당한 분들이다. 분수가 딸린 `일청담` 호수에서, 녹지(地)가 살아남은 학내 곳곳에서 그이들은 오늘도 청소한다. 오로지 입시 하나만 보고 자라온 청춘들은 가정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다. “공부만 잘 하면 모든 게 용서된다!” 이기적이고 무질서하며 소란스러운 어린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한국의 대학생들!그들은 거리낌 없이 강의실과 연구실 앞에서 소리치고, 전화 받으며, 떠들어댄다. 그들이 머물면서 생겨난 쓰레기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들은 당연한 권리나 되는 것처럼 아무데나 쓰레기와 오물(汚物)을 버린다. 목련과 명자꽃, 매화와 산수유가 흐드러진 대학은 쓰레기장이 되어간다. 벚꽃이 만개(滿開)하는 시점이면 여기에 대구 시민들이 가세한다. 학교는 완전한 유희공간이자 쓰레기장으로 변한다.오늘날 한국의 대학에서 진리나 정의 혹은 자유를 추구하는 학생은 전멸했다. 한국 대학생들은 부모가 원하는 직장을 얻기 위해서 모여든 예비 직장인들이다. 직장인 양성소인 대학은 자유, 정의, 진리 같은 추상적인 가치(價値)를 버리도록 강요받는다. 응용학문을 가르치는 경영대학과 공과대학, 정보통신대학 등에 소속된 교수들은 교양 교과목 폐지를 부르짖는다. 취업에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것이 그들 주장의 요체다.가파르게 상승하는 청년실업과 심각한 대졸실업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학은 학생들을 취업시키는 기관만은 아니다. 대학에 부여된 기본적인 책무 가운데 하나는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것이며, 그 둘은 민주적인 시민의 소양(素養)을 길러주는 것이고, 그 셋은 인간의 본원적인 가치와 의미를 사유하도록 인도(引導)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한국의 황색언론들은 취업률을 대학평가의 중요한 잣대로 들이댄다.언론사의 평가기준에 맞춰서 교육부도 뒤질세라 칼춤을 춘다. 1995년에 있은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대학설립준칙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둔갑한다. 그 사품에 허다한 대학들이 난립하고, 2년제 대학들이 4년제로 승격돼 학력저하를 불렀다. 그것이 결과한 쓰라린 폐해를 감당하는 교육부 관료나 정치가는 하나도 없다.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구호는 허울 만으로만 존재한다. 코앞의 몇 년 세월도 내다보지 못하는 탁상행정이라니!대학생들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며칠만 방치하면 학교는 그야말로 아수라판이 된다. 그래서다. 우리가 청소하는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그런 연유(緣由)에서다. 남들이 버린 오물을 묵묵히 치우는 그분들이 없다면 우리는 하루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그렇게 치우면 된다. 하지만 앞선 세대가 만들어낸 시대의 쓰레기는 어찌할 것인가?! 대학 자율화 이름으로 양산(量産)된 허울만의 대학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버리는 자 따로 있고 치우는 자 따로 있는 세상은 혼탁하다. 권력을 누리는 자 따로 있고, 그로 인한 폐해를 감당해야 하는 자 따로 있는 세상은 황음무도(荒淫無道)하다. 21세기 대명천지를 살면서 여전히 낙후(後)한 관료제와 행정 서비스와 무너져가는 대학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시대의 쓰레기, 세대의 쓰레기, 무지와 이기와 탐욕의 쓰레기는 이제 그만 만들었으면 한다. 천지가 약동하는 봄에 이런 소박한 바람을 꿈꾼다.

2016-03-25

장자(莊子)와 곤줄박이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아침을 준비하다가 창밖의 기척이 느껴진다. 눈 들어 보니 곤줄박이가 창안으로 들어오려고 날갯짓한다. 닫힌 유리창이 곤줄박이를 들여보내줄 리 없다. 하지만 곤줄박이는 자꾸만 날개를 파닥거리며 안간힘을 쓴다. 포기하는가 싶더니 곤줄박이는 거실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다시 날갯짓하면서 곤줄박이는 창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얇고 투명(透明)하지만 견고한 거실 유리문이 곤줄박이를 막는다. 하릴없이 돌아서 날아가는 곤줄박이.무엇이 곤줄박이의 눈과 마음을 끌어당긴 것일까. 자신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거주공간을 욕망하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인가 먹을 것이 있었든지 혹은 둥지 틀기에 좋은 장소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도로(徒勞)에 가까운 허망한 날갯짓은 설명할 수 없다. 하기야 언젠가 복숭아 과수원에 버려진 종이상자에 구슬보다 조금 큰 알을 낳아 품고 있는 박새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의 담대함이라니!지금 나는 연구실 창안에 있다. 봄볕이 따사로운 산책길을 따라 인총(人叢)들이 한가로이 걸음을 옮긴다. 안에 있는 나는 밖을 느끼지 못한다. 곤줄박이처럼 유리창에 날개를 부딪쳐가며 밖을 연모(戀慕)할 수는 없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릴 수도 없다. 낯선 행동이거나 금지되어 있거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창밖 세상을 몸소 느끼려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거리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나의 곤줄박이는 그것을 모른다.안에 있는 사람은 밖을 그리워하고, 밖에 있는 자는 안을 지향한다. 무식한 자는 지식을 탐하고, 부자는 권력을 꿈꾸며, 권력자는 돈을 욕망한다. 일찍이 장자는 `내편`양생주에서 지식의 폐해를 갈파(喝破)했다. 유한한 인생을 사는 인간이 무한한 지식을 갈구하는 행위가 위태롭다고 말한 것이다. 지식은 돈과 권력으로 확장하여 해석할 수도 있다. 무한한 재화와 권력을 욕망하는 것은 결국 재난과 파멸을 동반하기 마련이다.전국시대 동란(動亂)의 시공간을 살면서 장자가 느낀 것은 허망한 권력과 은자(隱者)의 생존방식이었다. 권력자의 호오(好惡)에 따라 문득 상실되는 권력의 신기루(蜃氣樓)! 그것과 결부된 사자성어 `예미도중`은 장자의 흉중을 웅변한다. 푸른 소를 타고 `함곡관`너머로 숨어버린 노자와 달리 저잣거리에 은둔하면서 유유자적했던 장자. 재상자리를 주겠다는 권력자의 제안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한 패기와 지혜의 장자.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여기저기 권력과 연관된 자들의 다채로운 행태가 이목을 사로잡는다. 나는 그들에게 권력의 요체(要諦)와 쓰임을 묻고 싶다. 누구를 향한, 무엇을 위한 권력추구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돈과 지식 혹은 경륜(經綸)을 어디에 쓰려고 저토록 무진 애를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세상을 위해 나섰다면 시대의 등불 노자와 장자가 숨어버린 뜻은 최소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곤줄박이는 끝내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창밖에서 그것을 빤히 보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혀버린 것이다. 멧비둘기들 역시 애초의 희망을 관철(貫徹)하지 못했다. 둥지를 틀만한 장소가 아니었음을 간과(看過)하고 무작정 일을 시작한 탓이다. 열심히 하면 결과도 좋아지리라 여긴다면 어리석은 자일 터. 일에는 순서와 요령과 집중력이 소요되는 까닭이다. 지식, 권력, 돈과 결부한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평생 최고의 지식인으로 살았지만 장자는 빈한(貧寒)했다. 빈한했지만 장자는 돈과 권력을 탐하지 않았고, 그로써 천수를 누렸다. 지극히 제한적인 시공을 향수하는 인생의 유한함을 몸소 실천한 장자. 숱한 일화와 우화로 시대를 밝힌 무한 상상력의 소유자 장자. 그를 떠올리며 부평초(浮萍草)처럼 이리저리 떠다니는 이 나라 정치인들을 생각한다. 곤줄박이와 멧비둘기의 허망과 실패가 어디서 발원하는지 숙고했으면 한다.

2016-03-18

망명 권하는 사회?!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빙허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1921)에는 시대의 단면을 관통하는 풍속도(風俗圖)가 그려져 있다. 불학무식하지만 조신(操身)한 아내와 동경 유학까지 마친 엘리트 남편의 소통부재 상황이 그것이다. 결혼한 지 7~8년 지났건만 남편은 이해 불가능한 인간이다. 중학을 마치고 동경으로 유학 가서 대학을 졸업한 남편에게 아내가 기대하는 것은 흐뭇한 돈벌이다. 그러나 장구한 세월 공부에 시간과 노력을 쏟은 남편은 허구한 날 술만 마신다.남편이 날마다 술을 마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온갖 궁리와 고민을 거듭하지만 그가 도달한 최종지점은 절망과 환멸이다. 공부했다는 조선인들이 벌이는 명예와 지위 다툼, 무익한 선악논쟁, 주야장창 분열(分裂)과 투쟁으로 얼룩진 조선사회. 기미년 3·1 만세운동이 지나간 지 겨우 이태 만에 경성에서 벌어진 남루(樓)한 풍경이다. 때로는 밖에서 열렬하게, 때로는 두문불출 하면서 남편은 갖가지 해결방도를 추구한다. 하지만 결론은 `술`이다.사회란 것이 자신에게 술을 권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술을 먹는 것은 “몸은 괴로워도 마음은 괴롭지 않기 때문이고, 조선 사회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정꾼 노릇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그런 남편을 끝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다시 세월이 흐른 다음 두 사람은 어찌 됐을까, 궁금하다. 본성이 선량한 두 사람을 가르는 심연은 `사회`에 대한 관점이다. 아내가 지향하는 윤택한 삶과 남편이 지향하는 번듯한 사회의 간극(間隙). 그것을 요약하는 어휘가 `사회`다. 사회는 부부가 살아가고 있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을 시공간 배경으로 한다. 개인과 가정의 범주에 머물러 있는 아내와 지식인으로 식민지 조선사회를 고민하는 남편의 시선(視線)이 어긋나 있는 것이다.`지금`과 `여기`를 바라보는 눈은 `취향`의 문제처럼 복잡하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 판단하는 인간의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그것은 각자의 세계관과 역사관, 그리고 자의식에서 발원한다. `술 권하는 사회`에서 빙허가 주인공의 말을 빌려서 일갈하는 대목은 찌르는 듯 아프다.얼마 전 39명의 야당 의원들이 192시간 이어간 `필리버스터`가 끝나자마자 여당이`테러방지법`을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통과시켰다. 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법률이라는데 왜 야당 의원들이 기를 쓰면서 법안통과를 저지하려 했을까? 흥미로운 점은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이튿날 8만이 넘는 한국인들이 `카카오톡` 같은 `사회연결망 서비스(SNS)`를 버리고 `텔레그람`으로 `망명(亡命)`했다는 사실이다.식민지 조선시대도 아닌데 대한민국에서 망명객이 줄을 이었다는 사실은 무엇인가! 만일 누군가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생각해 보셨는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온 국민을 사찰(査察)과 감시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법률이 가결됐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러분의 휴대전화가 감청(監聽)될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여당 인사들도 적잖게 사이버 망명을 했다는 소식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국가를 구성하는 근간은 국민이다. 국민은 국가의 소유자산이 아니라 천부인권(天賦人權)을 가진 고귀한 생명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알고 있는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을 인용한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백성이 주인인 나라이되, 모든 사람의 입에 쌀이 들어가는 나라가 민주 공화국이다. 그들이 위임한 한시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 정부와 여당이다.헌법 제17조와 18조를 인용한다.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테러방지법`은 법률이며, 그것은 헌법 아래 자리한다. `하위법`으로 `상위법`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위헌소지가 있다. 텔레그람으로 망명한 한국인들이 평안한 소통과 통신의 자유를 누리기 바란다. 그리고`사회`로 인한 남편과 아내의 소통 불가능한 상황이 조속히 종결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16-03-11

항일시인 윤동주와 일본인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은 아마 윤동주일 것이다. 소월(素月) 김정식이나 미당 서정주를 애호하는 독자들도 적잖을 테지만. 소월의 정한(情恨)과 미당의 친일(親日)은 나름의 한계를 가진다. 나는 육사(陸史) 이원록 시인을 제일 사랑한다. 이육사-윤동주 시인은 간악한 일제강점기를 의연하게 견뎌낸다. 그들로 한국 문학사는 암흑기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얼마 전 일본 후쿠오카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일본인들이 동주가 옥사한 후쿠오카 형무소 자리에 윤동주 시비(詩碑)를 세우려 하는 것이다. 내년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인데, 일본인들은 그날을 시비로 기리고자 하는 게다. 한국인도 애송하는 `서시`를 함께 읽고 동주를 사모하고 기리는 일본인들이라니! 각박한 염량세태(炎凉世態)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시인과 역사를 일본인들이 추억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일본인들의 문학사랑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 대략 800만 정도의 일본인들이 전통적인 단시(短詩) `하이쿠(俳句)`를 즐긴다는 통계가 있다. 명치시대를 살다간 하이쿠의 명인 다쿠보쿠는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짧은 만화영화 `언어의 정원`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 시가집인 `만엽집`이다. 이밖에도 선승(禪僧)들의 선시나 중국에서 전래된 각종 한시(漢詩)를 애호하거나 창작하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작년에 중국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소주(蘇州)를 찾아갔다가 `한산사(寒山寺)`에 몰려든 일본인 관광객들과 마주쳤다. 50대 이상으로 이뤄진 일본인 관광객들이 한산사에서 주목하는 것은 당나라 시인 장계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이었다. 단 한 편의 시로 중국 문학사에 등재된 장계의 7언 고시 `풍교야박`은 일본의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고 한다.15년 전까지만 해도 윤동주의 시도 일본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고 전한다. 고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는 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는 정황(情況)까지 서술하면서 시인의 사인(死因)을 밝히는 것이 일본인들의 소명(召命)이라고 기술되어 있었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일본과 일본인은 더러 생뚱맞게 어긋나곤 한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맹방(盟邦) 미국과 미국인의 형상이 어긋나는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동주와 장계 두 시인의 예에서 나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실감한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어떤 국어 교과서에도 일본과 중국의 시인이나 작품은 소개돼 있지 않았다. 뜬금없이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나 `별` 혹은 스토우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같은 서양문학을 배운 기억이 새롭다. 지근거리(至近距離)의 중국과 일본문학은 치지도외(置之度外)하고 구미의 문학을 가르친 저의(底意)가 무엇인지 궁금하다.한반도는 근본적으로 한문-유교-도교-불교 문화권에 속한다. 남북한과 중국-대만 그리고 일본은 동일한 문화권에서 상호 교류하면서 장구(長久)한 세월을 살아왔다. 이런 역사적인 전통과 문화권 공유는 미우나 고우나 우리의 커다란 자산이자 전통의 일부분이다. 그렇다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과거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때마침 이준익 감독의 `동주`가 상영되고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귀향`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합의”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욕보인 정부는 역사적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그런 시점에 동주 시비를 건립하려는 일본인들의 노력이라니!죽는 날까지 맑음과 곧음과 보편적 사랑을 설파했던 동주와 반일투쟁에 평생을 헌신했던 백마 타고 온 육사. 우리에게 영원한 정신적 자양과 성찰의 근거를 만든 두 시인을 초봄에 사유한다. 반면에 연변의 용정에 자리한 윤동주 박물관과 서툰 중국어로 번역된 낯선 시편(詩篇)들이 널브러져 있는 풍경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항일시인 윤동주가 아니라, 중국 조선족 시인으로 소개되는 윤동주! 이 나라 문화 책임자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새삼스럽다.

2016-03-04

싸움의 미학과 화해의 미학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배치로 나라안팎이 어수선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그것에 대응하는 한국정부의 움직임이 전광석화(電光石火) 같다. 필연적으로 예정된 수순을 따라가는 바둑 기사처럼 흐트러짐 하나 없다. 여기에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야심과 거기 편승하려는 아베의 일본이 동조(同調)한다. 한반도 북단과 중국 및 러시아가 가세하는 동조세력의 규합 역시 불 보듯 자명(自明)해진다. 그것이 국제정세이자 외교다.며칠 전 언론은 북한이 제4차 핵실험 직전에 미국과 평화협정을 위한 비공식 접촉을 보도하고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촉발한 북미접촉은 한국 보수언론에게 민감한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을 배제(排除)한 북한과 미국의 비밀접촉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접촉하기 전에 강력한 대북제재가 우선이라는 것이 그들의 사유근저에 자리한다. 문제는 남북대화 창구가 완전 차단된 시점에서 북미접촉 보도가 나왔다는 점이다.지난 17일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을 동시에 추진하자”고 제안한 이후인 21일 북미접촉설이 불거져 나온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 공식적으로 미국정부는 한반도 비핵화가 북미 평화협정에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국제정세라는 것이 언제나 언행일치(言行一致)를 동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留念)해야 한다. 어느 나라건 자국의 최대이익을 위해 실행하는 것이 외교이기 때문이다.지난 23일 사드배치를 위한 한미 약정체결 연기(延期)는 곱씹어볼만한 대목이다. 왕이 외교부장과 케리 국무장관 회담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약정체결 연기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쯤 되면 한국 외교부와 국방부는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배치라는 초강수를 둔 지금 미국과 중국의 동향(動向)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분단 당사자를 놔둔 채 강대국에 민족의 운명을 떠넘기지 않았는지, 생각할 일이다.지난 세기(世紀) 1980년대 동구(東歐) 사회주의 국가들이 줄지어 몰락하고, 1991년 말에는 소련마저 무너져버린다. 세계정세의 급변 와중(渦中)에서 한국의 살길을 북방외교(北方外交)에서 찾은 이가 노태우 대통령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에게 손가락질 하지만 그가 이룩한 중국과 러시아 수교는 한국의 외교와 경제 및 국방에 활력을 불어넣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은 한국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우리는 중국과 러시아와 교류하면서 세계적인 변화를 수용한 반면 북한은 미국과 수교하지 못함으로써 정치 경제적 고립무원(孤立無援)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고 어언 4반세기가 흘렀다. 미국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쿠바와 이란과 화해와 교류의 마당을 열었다. 지구촌 최강국 미국과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는 북한이 유일한 듯하다. 북한이 미국과 수교하고 현재의 무력갈등과 대결국면을 해소(解消)한다면 우리로서도 마냥 반대할 일만은 아니다.어차피 우리는 통일한국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통일비용을 최소화(最小化)하는 것이 절실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살림을 통일비용으로 지불하는 것은 고통으로 점철되기 십상이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개혁과 개방에 나서도록 견인(牽引)하고, 화해와 협력으로 민족 동질성 회복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과제다. 북한과 미국의 접촉과 중국의 입장을 매양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상황이 이런데도 보수언론은 우리만 빼고 북한과 미국이 만나면 어쩌나, 그것만 걱정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남북관계를 바라보고 민족통일이라는 견지(見地)에서 미래를 기획하는 장쾌(壯快)한 시각을 가져야 할 때다. 한반도가 일촉즉발 위기상황에 처한 지금이야말로 `위기에서 기회를 찾는`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외교와 국제정세는 여자들 머리채 싸움이나 촌사람 신문타령 하는 한가한 여흥이 아니다. 근시안 보수 언론들의 자세전환을 촉구한다.

2016-02-26

경비원을 해고하라?!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만 55세 정년하면 끝나는 인생이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다. 정년을 늘리는 추세(趨勢)라지만 청년백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판국에 `오륙도`소리 듣기도 저어된다. “오십 육세까지 회사 봉급 타먹으면 도둑놈”이란 뜻이다. 거기서부터 중년 남성들의 고뇌가 발원한다. 30년 가까이 봉직(奉職)한 회사를 나와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려 봐야 오라는 데는 없고, 결국 등산이 시작된다. 등산객 대열에 합류한다.나의 선친도 예외가 아니었다. 퇴직하고 집에만 계시다보니 허구한 날 잔소리만 늘어서 모친과 말다툼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 두 분을 구원한 것은 등산도 자식도 친구도 아니었다. 아파트 경비 일이었다. 선친은 이틀에 한 번 꼴로 24시간 근무를 해야 하는 고달픈 경비원이 되셨다고 했다. 쉬시는 날에는 밀린 잠을 주무셔야 했기에 두 분 사이의 말다툼은 아예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거기다 약간의 용돈도 가능했으니 이거야말로 일거양득 (一擧兩得)!그 무렵 나는 베를린의 야경꾼이었다. 도이칠란트 정부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유능하지도 못했고, 부모님 신세를 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輾轉)하다가 찾아낸 것이 야경 일이었다. 금요일 저녁 8시부터 토요일 아침 7시까지, 토요일 저녁 7시부터 일요일 아침 7시까지! 그렇게 23시간 야경을 하면 세 식구 생활비가 마련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안양에서 동방의 밤을, 자식은 베를린에서 서방의 밤을 지킨 셈이다.야경꾼 노릇하면서 나는 베를린 장벽 붕괴(崩壞)와 실존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동서 도이칠란트의 재통일 같은 유럽의 격변(激變)을 목도했다. 주말마다 폴란드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도이칠란트의 질 좋은 생필품을 싹쓸이하고, 동도이칠란트에서 무작정 월경(越境)한 간호사의 지친 얼굴이 아직도 선연하다.어제 아침 포털에 `아파트 경비원 해고를 둘러싼 법정다툼`이란 기사가 올라왔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을 해고하고 자동시스템을 설치하려다가 주민들이 반발했다는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 경비원 해고를 둘러싼 찬반논쟁이 법정으로까지 비화(飛火)됐다는 기사에 망연자실(茫然自失)해진다. 가구마다 월 7만원이 절감된단다. 그걸 위해서 60-70대 경비원들을 몰아내려는 것이다.무인경비시스템 설비사업에 대기업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이 자꾸만 쫓겨나간다.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돈도 힘도 없는 민초들이 거리로 내밀리는 것이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돈 7만원. 경비원들의 업무는 경비 이외에도 택배보관과 전달, 아파트 주변청소와 화단정리, 폐지정리와 공병수거 등이다.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자 어른들이다. 형편이 넉넉한 분들도 있겠지만, 대개는 나의 선친처럼 주머니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다.기계화도 좋고 자동화(自動化)도 오케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잘려나가는 우리의 가까운 이웃을 돌이켜봤으면 좋겠다. 하기야 공동체는 고사하고 이웃도 어른도 없는 황량(荒凉)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 아닌가?! 조만간 우리도 노인들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고, 자식은커녕 친구도 돌아보지 않는 세태와 직면(直面)할 것이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고 판단하는 천민자본주의의 충실한 앞잡이로 길들여졌으니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그럼에도 나는 희망한다. 최소한도의 인간다움과 여유로움을 간직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 남편 내 새끼가 귀한 것처럼 이웃집의 남편과 자식들도 그만큼 소중한 사람들이다. 백세시대를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태에 살면서 그것에 담긴 함의(含意)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죽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미소(微小)한 존재임을 기억하는 일이다. 길지 않은 세월, 더러는 베풀면서 살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드는 아침이다.

2016-02-19

가족과 정치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설이 지나고 한국인들의 소란스런 대이동도 끝났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유쾌한 소동이 언제 그칠까 궁금하다. 아마 한 세대 안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3대가 모여 살았던 대가족이 1970~80년대 이른바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부모자식 4인 가족으로 바뀌었다. 요즘은 1인 가족이 전체가구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이런 추세(趨勢)는 앞으로 더욱 강화되면서 한국사회 주류(主流)의 가족형태가 될 것이라 한다. 그것도 10여 년 안으로!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크고 작은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런저런 사유(事由)로 떨어져 살던 식구들이 모이면 갈등이 생겨나는 것은 필연이다. 사위와 장모, 며느리와 시어머니, 시누이와 올케의 긴장관계가 곳곳에서 폭발하는 것이다.어쨌든 우리는 익숙하고 편한 관계라는 이유로 가족 안에서 언어폭력은 물론 물리적인 폭력까지도 행사한다. 단순한 손찌검에서 잔인한 살해와 시신유기에 이르기까지 가정폭력은 다채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의 폭력장면은 가정폭력을 방조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가정폭력은 지난 10여 년 동안 가파르게 상승해 왔다고 한다.가족 안에서 이뤄지는 폭력은 일종의 연쇄반응(連鎖反應) 결과다. 실직이나 파산 등으로 실의에 빠진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을 구타한다. 매 맞는 엄마는 아이들을 때리고, 그 아이가 폭력 아동으로 성장한다. 매를 맞던 사내아이 가운데 8할 이상이 폭력 가장으로 자라고, 6할 이상의 여자 아이들은 매 맞는 아내가 되고 마는 기막힌 현실. 여기서 우리가 눈감거나 모르는 대목은 가정폭력의 원천인 가장의 실직과 파산이라는 사회안전망 부재(不在)다.왜 아버지는 실직과 파산을 경험해야 하는지, 그런 상황을 방지하거나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없다는 얘기다. 타의로 인해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에 빠진 한국인 남성가장의 첫 번째 선택은 아마 음주(飮酒)일 것이다. 술을 먹고 또 먹고 취해서 손에 닥치는 대로 주먹이든 야구방망이든 휘두르는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유일한 출구(出口)라도 되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그렇다면 가정폭력과 비극적인 살인사건을 줄이는 분명한 방도가 하나쯤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가 대표하는 권력의 재분배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에 충실하면 된다는 얘기다. 국민이 정치권력을 4년이든 5년이든 위임했다면, 그것에 맞는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요체(要諦)는 뭐니 뭐니 해도 분배(分配)에 있다. 제한된 재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도를 마련해서 타의적인 실업자를 줄여야 한다.실업자로 전락한 가장이 구직에 거듭 실패하고 알코올 남용에 의지해 폭력을 휘두르는 기막힌 상황은 이제 멈춰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 암운(暗雲)을 드리우고 있는 실업문제는 기막힐 정도로 심각하다. 대학입시를 포기하면서 9급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는 고등학생을 일컫는 `공딩족`마저 생겨난 21세기 대한민국. 그런데도 정부와 청와대는 노동자와 노조의 반대 없이도 손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법률을 강행하고 있다.노조 조직률이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임에도 `민주노총`을 귀족노조로 폄훼(貶毁)하면서 노조를 파괴하려 한다. “노조가 없었다면 국민소득 3만 달러는 오래 전에 달성했을 것”이라고 떠드는 자가 정부여당의 대표로 있으니 두말 하면 잔소리다.정치가 부(富)와 일자리를 적절하게 분배하도록 한다면 가정폭력과 그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다. 설 명절에 사람들이 선거(選擧)나 정치가를 두고 설왕설래(說往說來)하는 까닭은 거기 있을 것이다. 마침 미국에서 불어오는 버니 샌더스 열풍이 한파를 녹이는 정치의 계절이다. 고희(古稀)를 넘어선 노정객의 한결같은 의지와 신념이 아메리칸 드림은 물론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부활을 위한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6-02-12

구들방에 불을 때면서!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아궁이에 불을 때는 일은 양면적(兩面的)이다. 재미나기도 하지만 귀찮기 때문이다. 꼬깃꼬깃한 신문지 위에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을 쌓은 다음 불을 붙인다. 어느 정도 불쏘시개가 자리 잡으면 작은 장작을 하나둘씩 올리며 불길을 살핀다. 그와 아울러 아궁이 입구에서 만든 불을 조금씩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굵은 장작도 몇 개 올려가며 보기 좋게 불 자리를 정리한다. 이런 식으로 20~30분을 보내다보면 어느새 아궁이에 열기가 들어찬다. 간간이 고개 들어 하늘을 볼라치면 굴뚝에서 잿빛이나 회색 연기가 굼틀댄다. 바람 드센 날이면 연기가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지만, 바람 잔잔한 날 연기는 모양새가 적잖게 다채롭다. 수령(樹齡)이 백 년도 넘은, 속 빈 감나무를 근경(近景)으로 흩날리는 연기는 향수(鄕愁)를 자극한다. 1980년대 아파트가 대대적으로 보급되면서 구들방과 아궁이가 신속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요즘에는 시골에서도 구들 놓는 장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역사적으로 온갖 고초(苦楚)를 겪는데 이골이 난 한국인들은 어느 민족보다 집단성이 강하다. 유교문화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유난히 의식하고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려는 의지가 강하다. 결과적으로 고만고만하고 튀지 않게 살려는 무의식이 지배적이다.농촌에서도 구들방과 구들문화는 기름보일러와 전기장판에게 밀려났다. 노인들조차 저렴한 전기판넬에 의지하며 `아이 따뜻해!`를 연발(連發)하는 세상이다. 하기야 고희팔순 넘은 노인네들이 한겨울 설한풍(雪寒風) 속에서 불을 때는 모습은 안쓰럽다. 홀로 늘그막을 견뎌야 하는 독거노인임에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럼에도 보일러연기 대신 굴뚝연기가 기운차게 오르는 집을 보노라면 가슴 한 구석이 따스해진다. 농촌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된다.작년 같으면 몇 번이나 뒷산에 올라 썩고 부러진 삭정이를 주워오느라 분주했을 터. 하지만 올해는 옆집에서 얻은 경운기 두 대 분량의 나무와 앞집에서 가져온 감나무 자른 것으로 구들과 벽난로를 지피고 있다. 그렇게 나의 겨울 3분의 2가 지나가는 시점이다.산업화시대를 경과하면서 숱한 한국인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주범은 연탄이었다. 정부는 `산림녹화`를 위해 입산(入山)과 벌채(伐採)를 강력하게 금지했다. 나무 대신 보급한 연탄을 얻으려고 세숫대야나 고무 통을 들고 길게 줄을 섰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자주는 아니지만 오밤중에 어머니 대신 연탄불 갈러 일어난 기억도 있다. 어떤 때는 연탄이 위아래로 들러붙어서 부엌칼로 떼어내기도 했던 기억이 삼삼하다. 따뜻한 물을 얻기 어려워 찬물로 머리 감고 수건 찾을 동안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맺혔던 스물 몇 살의 겨울날을 추억하는 것은 사뭇 유쾌한 일이다. 한겨울에도 반소매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21세기 대한민국 아파트 거실! 그렇게 30년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간다.문제는 지금부터다. 최근에 나온 미래서적들은 우리 어린것들이 감당할 삶의 본질적인 변화를 지적한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직장을 찾을 때가 오면 현존하는 직업의 65%가 사라질 것이라 한다. 늦어도 2030년에는 무인자동차가 상용화(常用化)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물 인터넷으로 연결된 정말로 `스마트한` 세상이 불과 10~20년 안에 펼쳐질 모양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20세기 교육방식과 대학입시를 고집한다. `프라임`과 `코어`로 대표되는 대학구조조정 역시 20세기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과 여기`에 함몰된, 전문가연하는 교육 관료들의 단견(短見)은 조만간 또 다른 구조조정을 야기할 것이다. 하기야 미래는커녕 현재와 과거도 제어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형국이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치열하게 현재를 살되, 과거를 의식하면서 미래를 기획하는 슬기로운 지식인과 양심적인 관료, 정치가들의 등장이 새삼 절실한 시점이다.

2016-02-05

`아랍의 봄`이 신기루였다고?!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2010년 12월 튀니지 남부도시 시디 부지드 거리에서 청과물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경찰 단속으로 과일과 좌판(坐板)을 빼앗긴다. 대졸 노점상이자 26세 청년 부아지지는 시청에 찾아가 항의하지만 당국은 귀를 막는다. 그는 2010년 12월 17일 시청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한다. 이 소식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급속히 퍼져나가 시위를 촉발한다. 이듬해 1월 4일 부아지지가 사망하자 시위는 확산일로를 걷는다. 튀니지 시위는 리비아, 이집트, 예멘, 시리아 등 북아프리카와 중동으로 퍼져나간다. 거명된 나라는 하나같이 독재정권에 시달리고 있었다. 독재기간은 튀니지의 벤 알리 24년, 이집트의 무바라크 30년, 예멘의 압둘라 살레 33년, 리비아의 카다피 42년에 달한다. 여기에 청년실업, 빈부격차, 물가폭등이 시위를 촉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들은 부아지지 분신사건이 일어나자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분노를 공유(共有)하고 시위를 확산시킨 것이다.우리는 시위결과를 알고 있다. 알리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살레는 미국으로 망명도생(亡命圖生)한다. 무바라크는 투옥되고, 카다피는 시민군 총에 목숨을 잃는다. 상전벽해(桑田碧海) 같은 변화가 불과 1년 안에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쓸고 지나간다. 작년 9월 2일 터키 해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세 살 박이 아일란 쿠르디 역시 시리아에 불어 닥친 아랍의 봄 희생자다. 2011년 3월부터 시작된 시리아 소요사태는 언제 막을 내릴 것인지 종무소식이다.아랍의 봄은 튀니지를 제외하면 현상적(現象的)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5년 전 시민들이 독재자들과 맞붙었던 리비아, 시리아, 예멘, 바레인은 내전으로 상황이 심각해졌거나 여전한 독재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봄`은 그냥 오지 않는 법인가 보다. 아랍의 봄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1980년 `서울의 봄`이 떠오른다. 박정희 군부독재 18년을 끝장내고 드디어 민주주의를 꽃피우리라 굳게 믿었던 서울의 봄!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우리는 아랍세계와 이슬람을 모른다. 전문가 집단을 제외하면 전혀 모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기 때문이다. 미국의 눈을 통해서 한국은 세상을 본다. 중국을 섬기던 때는 중국의 눈으로, 일본의 종살이를 할 때는 일본의 눈으로 세상을 본 것과 매한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우물 안 개구리`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홀로 서려는 일체의 노력을 포기한 채 큰 나라에 기대어 사는 사대근성이 체질화된 탓이다.이른바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유럽은 식민지 획득에 그럴 듯한 논리를 들이밀었다. 예일대 석좌교수인 월러스틴에 따르면, 첫 번째가 기독교 전파요, 두 번째는 문명화이며, 세 번째는 인권과 민주주의다. 이 모든 것에 기초적인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이다. 아주 미소(微小)하다 하더라도 동양문명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양의 지도편달을 받아야 한다는 `오리엔탈리즘`.어쩌면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을 가장 깊은 곳까지 내면화시킨 민족이자 국가의 구성원인지 모른다.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기초해서 세상만사를 판단하는 고위관료들의 행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전통과 습속은 자취를 감추고, 그저 미국과 유럽의 기준이 최고권위를 가진다. 그러다보니 남북한 문제에서도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 얘기마저 나온 것이다. 참으로 희화적(戱畵的)이고 우울한 장면이다.아베와 위안부 협상을 할 때도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제외하더니, 남북한 문제의 당사자인 북한을 빼고 회담하려고 한다. 미-중-일-러 네 나라 외교 담당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동서 도이칠란트가 재통일하는 과정에서 서도이칠란트가 동도이칠란트를 제외하고 네 나라와 협상했던가?! 아무리 문제가 있더라도 “피는 물보다 진한 법” 아닌가! `아랍의 봄`에 `서울의 봄`이 겹쳐지는 눈물겨운 시절이다.

2016-01-29

우랄산맥과 부친 기일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십여 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버리셨다. 모질게 추운 날 아버지를 영원히 보내드렸다. 그래서인지 아버지 기일(忌日)이 오면 어김없이 추위가 동반한다. 슈퍼 엘니뇨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이번 겨울은 이상 난동(暖冬)이라는 얘기가 떠돌곤 했다. 그런데 아버지 기일이 되자 한반도에 북극한파가 찾아왔다. 우랄산맥 이동(以東)에 자리한 강력한 고기압 때문에 제트기류가 맴돌면서 북극에 갇혀 있던 찬바람을 몰고 한반도 상공까지 내려왔다는 것이다. `어허, 참?!`고개가 끄덕여진다. 올해도 아버지는 예외 없이 매서운 동장군(冬將軍)을 선사하신 게다.맵짠 겨울 냉기 속에서 신영복 선생이 눈을 감으셨다.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그곳의 경험을 대학생활로 비유하신 선생이 영면(永眠)하신 게다. 43년 10개월로 세계 최장기수 기록을 가진 김선명씨의 기록에 견줄 바 아니로되, 20년 세월 옥살이는 결코 짧지 않다. 거기서 보고 느낀 기록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하 `감옥`)으로 남겨졌다.1988년 겨울 쾰른에서 유학생활 하던 나는 서울의 벗에게서 두 권의 책을 받는다. 그 하나가 이태의 `남부군`이고, 그 둘이 신영복 선생의 `감옥`이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 전국적인 반향(反響)을 얻고, 한국사회 전반에 과거사 성찰의 기운이 차고 넘치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1988년은 나에게 그런 서책들로 기억된다.`남부군`을 읽으면서 가슴 시렸던 것은 이념 하나로 `맞아죽고, 굶어죽고, 얼어죽은` 청춘 남녀들의 사연이었다. `산 자가 먹은 죽은 자의 밥`이란 대목은 그냥 읽어 넘길 수 없을 만큼 참혹한 것이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쫓기던 빨치산이 죽은 동료의 입가에 남아있던 밥알을 핥아먹는 장면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영혼을 쥐고 흔들던 `남부군`과 달리 `감옥`은 잔잔하다 못해 밋밋한 느낌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편지글 형식으로 엮어진 간명하고 응축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분이 어째서 스무 해나 감옥에 계셨던 것일까`하는 의문도 적잖게 들었다. 나중에 알려진 것이지만, 선생은 사형까지 언도받았다가 무기수로 감형(減刑)된 분이었다. 참형을 받을 정도도 아니었는데, 독재의 행악질은 무소불위(無所不爲), 그 자체였으니 두말할 나위 없다.어떤 편지에서 목수가 집을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집을 그릴 때 대개 지붕부터 그리고 그 다음 벽체(壁體)와 창문을 그린다. 하지만 선생과 함께 옥살이하던 목수는 주춧돌과 기둥을 먼저 그렸다고 한다. 거기서 선생은 삶에 대한 성찰에 커다란 전기(轉機)를 얻었다고 한다. 그저 지나갈 법한 작은 사건에서 인생의 비의(秘義) 하나를 깨우친 것이다.유학생활을 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이야기들을 깊이 생각하곤 했다. 여순사건과 제주 4·3항쟁을 거쳐 6·25 한국동란과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와 10월 유신, 10·26과 12·12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 87년 평화대행진과 노동자 대투쟁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굽이굽이에 흐르고 넘쳤던 함성과 선연(鮮然)한 핏자국을 기억하곤 했다. 그분들이 흘렸던 희생의 제단(祭壇) 위에 건설된 2016년 한국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안녕한지, 생각한다.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최소한도의 절차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대의제도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8·15 해방처럼 도둑처럼 느닷없이 우리를 찾아온 것도 아니다. 이런 정도의 민주주의나마 우리가 향수(享受)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많은 분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잊고 산다. 공기나 물처럼 애초부터 주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수도 서울 한복판에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다.우랄산맥의 고기압이 자리를 비우면 북극한파도 슬며시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입춘이 코앞일 터. 이제 추위도 절반은 지나가고 있다. 떠나는 것이 있으면 돌아오는 것도 있는 법이다. 겨울이 가면 따사로운 봄이 올 것이다. 겨울 한복판에 아버지 기일을 맞으면서 다가올 봄날의 향연(饗宴)과 만물의 생동을 감촉한다. 조만간 슈퍼 엘니뇨도 시나브로 우리를 뒤로 하고 멀리 떠날 것이다. 오늘따라 저녁햇살이 부시다.

2016-01-22

`혼밥`하시나요?!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예전에 없던 신조어가 양산(量産)되는 시대다. `혼밥`도 그 가운데 하나다. `혼자 먹는 밥`을 줄인 말이 `혼밥`이고,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혼밥족`이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1인가구는 400만을 넘어 전체가구의 27%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계속 늘어나 2020년에는 1인가구가 전체가구의 30%를 점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혼밥족`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 자명(自明)하다. 21세기 들어서기 전만 해도 우리 한국인들에게 `혼밥`이라는 용어는 상당히 낯설었다. 곰곰 돌이켜 생각해봐도 `왕따`라거나 어떤 특별한 사유(事由)가 아니라면 `혼밥`은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한국사회는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 좌충우돌(左衝右突) 하면서 지탱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2003년 `카드대란`과 2008년 `세계금융위기` 같은 대형사건 등으로 `혼밥족`이 꾸준히 늘어났다고 한다.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분열됐고, 핵가족마저 기러기 아빠로 표현되는 1인 가족으로 해체됐다. 이런 현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인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나 홀로 저녁을 먹는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인들이 소외와 고독에 내던져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50대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라면이나 햇반 같은 간편식을 더 많이 구입하는 실정이라 한다. 밥을 챙겨주지 않는 50대 이상 여성이 급증하면서 생긴 신풍속도라 하니 적잖게 씁쓸하다.가정에서 가장(家長)이 차지했던 사회-경제적 지위가 위축되면서 기러기 아빠와 `혼밥족` 증가가 일어난 것이다. `혼밥`을 먹고 또 먹다가 어느 날 문득 죽어버리는 기러기 아빠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세상 아닌가?! 20년 넘도록 불철주야(不撤晝夜) 헌신했던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끼니조차 대접받지 못하는 50대라니?! 그들이 사회 변두리를 헤매고 다니다가 어느 허름한 국밥집에서 소주 한잔 털어 넣는 장면은 얼마나 우울한가?!며칠 전 학생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려 했다. 기대했던 `돈까스`를 제공하는 학생식당은 문을 닫았다. 교직원식당은 살 빼는 사람에겐 최적의 장소지만, 여유롭게 저녁을 맛보려는 사람에겐 정말 아닌 곳이다. 거기서부터 나의 뜻하지 않은 저녁산책이 시작됐다. 일단 목표한 돈까스를 찾아 나서자, 하고 길을 떠난 것이 화근(禍根)이었다. 여기저기 떼로 몰려 왕성하게 저작운동(詛嚼運動) 하는 젊은 축들 사이에서 `혼밥` 하려니 오금이 저리는 것이다.이 거리 저 거리 찾아 헤매다 신호를 건너고 갔던 길을 되짚고 하면서 결국 낡은 돼지국밥집을 들어서는 자화상(自畵像)을 본다.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따로국밥`을 시켜놓고 허공을 바라보는 마음이 그렇게 허전했다. 우연처럼 맞닥뜨린 `혼밥`이었지만, 기분이 상쾌하지 않았음이다. 아직도 나는 `혼밥`에 익숙해지지도 않았고, 어쩌면 `홀로`란 사실을 심정적으로 인정하지도 못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반백년 넘도록 그런 반성도 없이 살아왔다니!일본이나 유럽에서는 1인분으로 포장된 식재료가 흔하다. 오래 전부터 1인가구가 등장했고, 그것이 주도적인 가구형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1인가구나 `혼밥족`이 비주류인 데다가 다품종 소량판매가 여전히 홀대(忽待)받는 현실이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혼자서 밥 먹는 사람들은 도처에 수두룩하다. 3포를 거쳐 5포를 지나 7포를 넘어 엔포에 이른 청년세대도 우리 주변에는 차고 넘친다. `혼밥`과 `혼밥족`은 엄연(奄然)한 현실이다.`혼밥`과 `혼밥족`이 늘어가는 것이 당연한 시대적 추이(推移)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족과 중년남성을 버리는 짓거리다. 그런 50대가 더 나이 먹고 건강을 잃어버려 이른바 `환부(鰥夫)`가 되면 그 결과가 어떨지 명약관화(明若觀火) 하기 때문이다. 상실되는 가족관계와 먹을거리의 건강한 복원이 시급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건강한 개인이 건강한 가족을 만들고, 건강한 가족이야말로 강건한 국민의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6-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