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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식혜

정미영 수필가 식혜를 만들기 위해 무명 자루를 꺼냈다. 엿기름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주둥이를 꽉 조여 맸다. 따뜻한 물에 담가 조물조물 만져 보니 감촉이 좋았다. 우러나온 물이 뽀얀 젖빛이었다.나는 아기를 낳으면 모유를 먹이고 싶었다. 아기를 보듬어 안고 눈을 맞추는 엄마의 모습, 실컷 먹고 활짝 웃는 아기의 얼굴, 얼마나 행복할까 기대했다. 아기의 작은 몸짓조차 흘려버리지 않으려면 엄마와 아기가 교감해야 된다고 믿었다. 그 첫걸음이 모유를 먹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다. 첫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했다. 환경이 낯설었는지 입맛이 없었다. 산모가 잘 먹어야 젖이 나온다고 했지만 미역국조차 먹기 힘들었다. 결국 초유마저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배고파 보채는 게 안타까워 분유를 먹였다.조리원에 있던 산모 중에 나만 모유를 먹이지 못했다. 첫 출산이라 내가 유독 예민했는지, 아니면 체질 때문이었는지, 모유를 먹이는 엄마들이 부러웠다. 때때로 나 자신에게 서운했다. 다른 엄마들의 모유 먹이는 모습은 왜 그리도 당당하고 쉬워 보였는지. 남들은 잘도 젖을 물리는데 나는 왜 내 아이에게 못해 줄까. 안타깝고 미안했다. 모유를 못 먹이는 것이 마치 자식 사랑이 부족해 그런 것만 같아 자꾸만 스스로를 괴롭혔다.미안함 때문일까? 엿기름을 물에 담가 우리다보면 젖먹이를 둔 엄마처럼 가슴이 찌르르해진다. 뽀얀 엿기름물이 마치 모유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엿기름물을 받아 식혜를 만들어 내 아이에게 먹이는 일이 즐겁다. 엄마 젖을 먹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처음 식혜를 만든 것은 아이의 돌 무렵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고열에 시달렸다. 마침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나에게 식혜를 만들어 보라고 하셨다. 엿기름의 찬 성질이 열을 금방 떨어뜨린다며 만드는 법을 대강 알려 주셨다.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아이가 나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곧바로 엿기름을 사다가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해 보았다. 아이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다음 날 아침, 밥솥을 열었다. 여섯 시간 정도 지나면 밥알이 서너 개 떠오른다고 했는데 밥알과 함께 엿기름이 빼곡히 떠 있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어머니, 밥알 아닌 것도 많이 떠있어요!”“밥알 말고 떠 있는 게 뭐꼬, 밥솥에 엿질금 물만 넣었제?”“엿질금도 깨끗이 씻어서 같이 넣었는데요.”어머니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렀다. 아차, 싶었다. 나는 어머니의 설명을 잘못 이해한 것이었다. 깨끗이 씻은 엿기름을 버리기가 아까워 쌀 안치듯이 물과 함께 밥통에 넣었다. 곡진하게 삭을 줄 알았다.결국 다시 식혜를 만들었다. 두 번째는 성공이었다. 그 걸 먹고 아이의 열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나을 때가 되어서 그랬는지, 엄마의 서툰 솜씨가 안쓰러웠는지, 아무튼 나았으니 다행이었다. 그 때 맛을 본 탓인지 아들은 음료 중에 식혜를 가장 좋아한다.아이가 식혜를 좋아하니 자주 만든다. 시장에 갈 때면 아예 엿기름을 서너 봉지씩 사다 놓는다. 아이에게 먹일 것이므로 엿기름을 사면서 꼼꼼히 따져본다.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제조일자는 최근인지. 요즈음은 봉지에 만든 사람의 얼굴 사진까지 박아 놓는 경우도 있다. 믿고 사라는 말일 테다.예전에는 집집마다 엿기름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엿기름을 만들 때 싹을 내기 위해 시루에 보리를 넣고 물을 주며 길렀는데, 기른다고 해서 ‘기름’이라 불렀단다. 집집마다 만들었으니 장맛이 다르듯 엿기름에 따라 식혜 맛도 달랐으리라. 그래서 이왕이면 엿기름 봉지를 고를 때 손맛 좋게 보이고 연륜이 묻어나는, 할머니 사진이 찍힌 것으로 고른다. 식혜 맛을 내기 위한 나름의 묘책이다.식혜가 알맞게 식었다. 단내가 은은하다. 아들이 연신 입술을 달싹인다. 엿기름으로 빚은 내 마음의 모유, 한 그릇 넘치게 퍼 담는다.

2022-09-28

그 후

배문경수필가 녀석의 눈이 훑고 지나갔다. 덩치가 커서 드리운 그늘도 넓다. 팔을 사방으로 펼치고 지나면 큰 나무도 쓰러지고 다 지어놓은 과실도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칼날같이 매서운 입김으로 집을 삼키고 강의 너비를 넓혀놓는다. 지나간 자리마다 새로운 길이 생기고 있던 길은 사라진다.방에서 자던 오빠도 처음엔 빗물이 방으로 들어오자 걸레로 슬슬 닦았다고 했다. 불어난 개울물이 안방으로 들어올 때도 이 정도야 뭐라고 심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둔 여수로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촌집의 앞뒤가 포위당했다. 낮은 곳에 있는 논들은 벼들이 고스란히 물속에 갇힌 수생식물이 되었다. 마당으로 내려서자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단다. 오빠는 어둠 속에서 겁이 덜컹 났다고 했다.그래도 추석 차례상을 차렸다. 집을 떠나 가까운 거처에서 밤 대추 곶감 잘 구워진 생선과 삼색 나물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매와 탕이 오를 즈음 바깥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 햇살이 서서히 빛을 발한다. 술을 한 순배 돌리고 다시 모두 절을 했다.친정이 있는 곳으로 향할 때까지도 이렇게 난리가 나 있을 줄은 몰랐다. 세간은 육이오전쟁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물건들이 길바닥에 나와 구정물에 절여졌다. 냉장고며 주방용품, 옷장과 옷들이 흙탕물과 섞여 널브러져 있었다. 오빠는 연신 호스를 연결해서 흙탕물을 씻었지만, 밖에 설치된 수도 하수구가 막혀 애를 먹었다.옛 기록을 보면 ‘태풍’이란 단어 대신 ‘영풍폭우(獰風暴雨·거센 바람과 거친 비), 대풍우(大風雨·큰 바람과 비), 구풍(98B6風·회오리치는 세찬 바람) 등으로 기록했다. 자연재해를 온전히 겪은 당시 선조들에게 바다는 더욱더 공포의 대상이었다. 바닷길로 떠난 중국 명나라 사행길 기록을 담은 ‘죽천이공행적록(竹泉李公行蹟錄)’도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위한 사명감과 숭고한 업적을 위해 떠났을 것이다.“회오리바람이 급히 일어나 산 같은 물결이 하늘에 닿으니…. 배가 물결에 휩쓸려 백 척 물결에 올라갔다가 다시 만 길 못에 떨어지니 어찌할 방책이 없어 하늘에 축원할 뿐이라. 밤이 깊은 후 바람의 기세 더욱 심하여 배 무수히 출몰함에 지탱하지 못하네. 부사가 탄 배가 가장 험한 곳에 정박해 배 밑 널빤지가 부러져 바닷물이 솟아 역류하여 배 안으로 들어오니 사람들이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더라. 부사가 복건을 쓰고 심의를 입고 뱃머리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축문을 지어 깨끗한 비단에 싸 바다에 넣고 군관과 노졸로 하여금 옷을 벗어 틈을 막고 또 막게 하더라.”과학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자연현상은 두려운 존재이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곳곳에 기후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국지성 폭우가 유럽의 도시를 휩쓸고 태풍도 점점 강해진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머지않아 사라지고 북반구 빙하도 사라진다. 그러면 해수면이 올라가 해안은 물에 잠기게 된다. 그 두려운 존재는 점점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누런 벼가 가득하던 곳이 태풍이 지나자 돌밭으로 변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손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어 하늘만 바라보았다. 하늘이 답을 하듯 곳곳에서 사람들을 보내왔다.돌이 덮인 논밭에는 세상의 포클레인은 다 이곳에 집결한 것처럼 돌을 밀어내고 있다. 길거리에 덮인 진흙을 씻어내려고 다른 지역의 이름표를 단 소방차들이 달려와 물을 뿌렸다. 자원봉사자들이 건네는 도시락으로 속을 채운다. 물이 쓸고 간 자리에 사람들의 훈기가 들어앉았다.정신을 차리고 집을 돌아보니 그나마 이가 나가지 않은 밥공기와 국그릇이 의지하듯 포개져 있다. 접시들도 흙탕물을 씻고 겹겹이 서로 떨어지지 말자고 눌러 앉아있다. 어제의 좌절을 벗고 씻고 닦은 바닥과 높은 곳에서 잘 버틴 몇 벌 옷을 까슬한 바람에 옷걸이에 걸어 말린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바람에 온몸이 한 점씩 꾸덕꾸덕해지고 있다. 물에 젖어 쓸 수 없게 된 삶터를 사람들이 일으켜준다.

2022-09-21

삶의 종점을 내려다보며

정미영 수필가 비바람이 하릴없이 들이치는 날이다. 창밖을 내려다보니 국화원이 소슬히 떨고 있다. 오늘 떠나는 망자의 삶에도 비바람이 많았는지, 국화원이 슬픔을 응축한 채 웅크리고 있다.작년, 신축 아파트 담장 너머에 이층 건물이 들어섰다. 세련된 외벽에 국화꽃 한 송이와 국화원이라는 글자만 간판으로 걸려있어 몇몇 사람들은 미술관인줄 착각하지만, 이곳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장례식장이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심 한가운데에 존재와 부재의 형체가 장례를 치르는 동안 서로 껴안고 이별하는 공간이다.나는 조문객의 움직임을 가만히 응시하며 가늠해 본다. 가까운 이와의 별리가 주는 슬픔의 깊이를. 가슴을 쥐어뜯으며 흐느끼는 사람, 땅을 치며 통곡하는 사람, 울음을 삼킨 채 눈물을 훔치는 사람 등 죽음 앞에서는 같은 상실의 무게를 지닌 것 같아도, 톺아보면 모두가 제각각의 농도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공무원이셨던 친정아버지는 출장을 떠난 길 위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나는 비보를 접하고 황망히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서 보았던 안내판에 쓰인 망자의 이름이 낯설었다. 내 아버지지만, 더는 부를 수 없는, 손을 내밀어도 잡을 수 없는 공허감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영정사진을 쳐다보면 짙은 슬픔의 농도로 무거워진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그 날의 장면들이 오버랩 될 때면 장맛비에 봇물 터지듯 가슴속에 눈물이 쏟아져 차오른다. 먹먹하게 온몸을 짓누르는 강렬한 슬픔이 상실감으로 변주되어 내 마음속으로 재빨리 휘감아 흘러 들어온다.며칠 전, 지인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죽음을 대하는 장례식장의 분위기가 무겁고 엄숙하지만은 않았다. 고인은 삼 년 동안 요양병원에서 생활했다. 죽음의 유예기간 동안 아흔여섯 살의 고인과 가족들은 많은 이야기를 했고, 서로 따뜻하게 감싸 안는 시간이 많았단다. 그런 연유로 현실을 받아들인다고 지인은 평온하게 전했다. 이미 마음속으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죽음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완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리라.서아프리카 가나에서는 댄싱 장례식이 유행이라고 한다. 상여꾼들이 관을 어깨에 짊어지고 박자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다. 바닥에 앉거나 드러눕는 등의 다양한 퍼포먼스로 장례식장을 흥겹게 축제 분위기로 이끈다. 망자를 절차에 따라 추모하는 엄숙하고 차분한 진행이 아니라 템포 빠른 음악과 경쾌한 춤을 통해 고인과 작별하고 유가족과 조문객을 위로한다고 한다.나에게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고인의 생전 삶을 따뜻한 마음으로 돌이켜보는 것은 좋은 의미인 것 같다.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에서 가장 준비가 필요한 일은 각자의 죽음을 잘 대비하는 일임에랴.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현재에 남겨진 사람에게도, 서로가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도록 이별 연습을 미리 해보면 좋을 성 싶다.웰다잉(Well-Dying)! 가족들이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는, 훈훈한 내 장례식 풍경을 만들려면 평소에 자주 떠올려야 될 단어다. 죽음을 기억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금기(禁忌)를 상기(想起)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아 성찰을 통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뚜렷하게 돋을새김으로 각인된 의미 있는 장례에 대한 나만의 인식을 바람결에 날려 보내고 싶지 않다.어느덧 나도 계절을 알리는 인생시계의 시침이 가을로 접어들었다. 오늘, 나의 장례식 장면을 두 눈 감고 상상해 본다.향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드는 듯하더니 울컥, 미세한 애잔함이 눈물로 변해 뚝뚝 흘러내린다. 장례식장의 차가운 공기, 껴안고 흐느끼는 가족들, 문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허가 온몸을 감싸고돈다. 삶의 종점, 먼 것 같지만 언젠가는 내가 닿을 곳이다.나는 지금, 나의 장례식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국화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2022-09-14

맞이하다, 슈룹(우산의 옛말) 아래서

양태순 수필가 곧 추석이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태풍이 지나간다. 늘 탈이 없이 지나가길 바라지만 올해는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추석맞이를 준비하고 있었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슈룹이 간절하다.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자리는 끔찍하다. 시간당 쏟아부은 폭우로 포항의 일상이 마비되었다. 뉴스 화면에서 확인하는 곳곳의 침수 지역과 하천 범람, 정전 상태 등이 놀랍고 무섭다. 이맘때면 수확 직전인 과일, 막바지 힘을 내는 벼농사와 고추 농사가 재해 앞에 속수무책 당했으리라. 떨어지고 잠기고 무너진 처참한 모습에 망연자실도 잠시 모두가 원상복구에 손을 보탤 것이다.어감의 차이가 미묘한 말이 있다. 사전에 찾아보면 어떻게 다른지 차이를 모르겠는 단어가 있다. 평안과 안녕처럼 맞이하다와 맞다가 그렇다. 맞이하다는 오는 것을 맞다, 맞다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오는 어떤 때를 대하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엇비슷한 경우 둘 다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태풍을 맞이하다와 태풍을 맞다가 아리송하다. 지금껏 맞이하다는 기쁘고 좋은 일에만 써왔는데 말이다.그래서 맞이하는 일에는 가벼운 설렘이 따라온다. 손님을 맞이하려면 집을 깨끗이 하고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쁜 중에도 기분이 좋다. 새해를 맞이할 때면 지난해를 돌아보고 반성할 것은 하고 잘한 것은 뿌듯해하며 새날을 향한 다짐으로 희망에 부풀기도 한다. 생일이나 승진, 기념일에는 마음껏 축하하기 위해 작은 선물과 꽃을 준비하며 대상자보다 준비하는 사람이 더욱 설레게 된다. 일련의 과정이 번거롭긴 하지만 함께 하는 즐거움이 더 크기 때문에 기꺼이 행한다.맞다는 불시에 찾아오는 불청객인줄 알았다. 예정된 것이 아니라 갑자기 맞아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란한 상황을 만든다고 믿었다.이번 태풍이 그런 상황이었다. 며칠간 뉴스에서 태풍 ‘힌남노’를 대비해야 한다, 어마무시한 초강력 태풍이라는 둥 엄청 열심히 홍보했다. 어디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당황하면서도 나름 대비를 했다. 일 층에 가게가 있는 사람들은 모래주머니를 쌓고 중요한 것은 높은 곳에 올렸고 집에는 창문 테이핑을 하고 자동차를 지하 주차장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태풍은 상상하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악질인 태풍을 맞다고 해야만 할 것 같다.인생에서 맞아야 할 것은 많다. 자연재해가 일부이긴 하지만 더 많은 경제적 감정적 문제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픔, 사고로 인한 정신과 신체의 어려움,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한 불안, 좌절, 사회생활에서 맞는 관계의 복잡성이 맞서 싸워야 할 문제다. 이럴 때마다 최선을 다해 견디다 보면 지나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혹독한 태풍이 지나고 파란 하늘에 건재한 태양처럼.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으면 씁쓸하다. 사실 우산을 쓴다고 비를 다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신발이나 종아리는 축축하게 젖기 십상이다. 덩치가 큰 사람은 어깨도 젖는다.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은 우산이 걷는데 방해가 되는 듯해도 쉽게 우산을 접지 못하고 살대가 부러지거나 찢어져야 포기가 된다. 아마도 붙잡은 우산이 미약하지만 의지가 되는 든든함이지 싶다.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는 일이다.부모님은 우산같은 존재다. 아주 어릴 때는 친구와 싸웠을 때 무조건 내편이 되어 우는 나를 어르고 달랬다. 친구를 혼내주지 않아도 힘이 되고 든든했다. 살면서 궂은일, 험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기댈 수 있는 뒷배가 되어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나보다 더 기뻐하는 바보다.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어도 내리사랑은 변함없이 비를 맞지 않도록 기꺼이 우산이 되어준다. 언제나 자식을 향한 마음길을 열어두고 눈비 걱정하며 그 그늘로 몸을 들여 쉬어가라 무언의 눈길로 어루만진다. 슈룹, 이름 안에 사랑을 내주고 가없는 사랑을 품는 뜨거움이 묻어난다.올 추석에도 보름달이 뜰 것이다. 어깨가 젖을 것을 알면서도 두 사람이 쓰기도 하는 우산이다. 그것은 서로를 생각하는 따뜻함이다. 사랑이 가득한 우산 아래서 얼굴을 맞대고 상처를 보듬으며 오순도순 맞이하는 추석을 그려본다.

2022-09-07

낭산(狼山)의 말(言)

배문경수필가 말이 씨가 된다. 바닥에 떨어진 말 한마디가 뿌리를 내리고 잎을 무성히 달아 꽃을 피우기도 한다. 말의 힘을 느끼며 나는 낭산(狼山)을 오른다. 도리천(忉利天)으로 가는 길에 여름 웃자란 소나무와 나무 백일홍이 길을 연다. 어디서 후드득 날아오르는 새들이 낯선 이의 방문에 저들끼리의 언어로 숙덕인다.413년 8월에 낭산에서 구름이 일어났다. 형상이 누각 같았고 향기가 가득 퍼졌다. 실성왕이 ‘지금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놀고 있다. 복 받은 땅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낭산에서 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했다. 훗날 고승 명랑법사는 ‘신들이 노니는 숲’이라 해서 낭산의 남쪽을 ‘신유림(神遊林)’이라고 말했다.낭산은 높지도 깊지도 않다. 사람이 오르며 하늘을 보기 좋은 곳이다. 더위에 숨을 헐떡이며 닿은 곳에는 푸른 잔디로 곱게 단장된 큰 봉분이 있다. 아귀가 맞는 돌을 능을 쌓기 위해서 주위에 일 이단으로 둘렀다. 단지 비석에 선덕여왕릉이라고 하니 이곳이 내가 찾던 그 곳이다. 항공사진으로 찍힌 선덕여왕의 능은 신비하고 신성했다. 이곳에 신라의 여왕이 자리 잡고 환생을 꿈꾸며 누워계실지도 모르겠다. 숱하게 본 영화, 드라마에 선덕여왕의 이야기는 들어도 질리지 않는 묘한 내용들이다. 왕(王)과 왕(王)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야말로 자신의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만들고야 만 대단한 여왕이 아닌가.“아무날 내가 죽을 것이니 도리천(忉利天)에 장사지내라”삼국유사에 따르면 그곳은 낭산의 남쪽이라 했다. 그날에 이르러 세상을 떠나니 낭산 양지에 장사를 지냈다. 30여년 후 문무왕이 여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 四天王寺)를 지었다. 사천왕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니 선덕여왕의 신령함을 알게 되었다. 지혜롭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여왕이 죽음을 예견하고 사천왕이 떠받칠 곳에 무덤을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심금(心琴)을 아련히 울려줄 것까지 계산에 넣은 것은 아닐까.말은 말하는 사람에서 시작되지만 듣는 사람과의 교감을 통해 더 큰 의미나 가치가 된다.후배가 소원을 말했다. 그녀는 스페인에 가보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정확히 3년 뒤에 스페인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순할 순順에 여자 희姬자를 쓴다. 본인은 까칠한 성격이지만 남들이 그렇게 불러주니 순하게 살아진다고 말했다.나는 글월 문(文) 서울 경(京)의 이름을 쓴다. 신라의 서울인 서라벌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의 힘이란 상상 이상일 수도 있겠다. 자꾸 불러주고 들려주면 알게 모르게 그리 된다. 누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는 글밭으로 한 걸음씩 가고 있었던 셈이다.선덕(先德)은 대방등무상경의 선덕바라문에서 유래하였고, 도리천의 왕이 되길 바라서 선덕이란 이름을 썼다.진평왕릉과 선덕왕릉이 낭산 일원에 들어서면서 낭산은 왕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신들이 머무는 공간에 왕이 다른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신라인들이 평안을 빌던 낭산이 이제 염원을 이루게 해줄 기도처로 자리매김한다.‘이리 낭(狼)’자를 쓴 ‘낭산(狼山)’이다. 이리가 엎드린 형상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사마천의 ‘사기’는 “동쪽의 큰 별을 ‘랑(狼)’이라 한다”. 그래서 왕궁(월성)의 동쪽에 있는 산이라 ‘낭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란 다른 설도 있다. ‘남산’의 오자가 아닌 ‘낭산’은 분명 경주 시내에 있는 해발 100m의 구릉이다. 짐승의 형상이든 큰 별을 의미하든 낭산은 그곳에서 선덕여왕의 능이 세상의 중심에 있게 한 산이다.선덕여왕도 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신라의 튼튼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분황사며 영묘사, 황룡사 9층 목탑 등의 사찰을 지었다. 첨성대를 올리고 반월성을 거닐며 신라의 백성을 위해, 국가의 안전을 부처님께 빌었을 일이다. 영험한 여왕의 기도가 곳곳에 남아있을 법하다.낭산에서 내려가는 길에 산새가 길을 열고 솔솔 바람 한 점 시원하게 아미(蛾眉)를 훑고 지나간다.

2022-08-31

동반자

정미영 수필가 시간의 곡선을 따라 흐르던 푸른 바람 줄기가 소나무에 부딪쳐 태고적 소리를 내는 오후다. 토함산 숲, 햇살로 잘 엮은 빗살문을 열어젖힌다. 수천 년 쌓여진 바람층의 느낌표를 음미하며, 불국사 주차장을 지나 동리목월문학관을 찾아간다. 바람결에 문인들의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가만히 느낌표로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인다.문학관은 김동리 소설가와 박목월 시인의 문학과 삶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곳이다. 동리문학관에는 작가의 대표작인 ‘황토기’가 애니메이션으로 상영되고, ‘무녀도’의 내용이 담긴 모형들이 있다. 목월문학관에는 테마 공간을 목실과 월실로 구분하여,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구성해 놓았다.저마다 공간에는 작가들의 서사가 넘쳐흐른다. 두 분의 문학적 성취를 천천히 음미하며 박목월 시인의 문학 동반자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향한다. 시인이 문학의 길로 나아가는 데 김동리 선생님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글귀를 읽고 또 읽는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고독감을 달래고 문학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단다. 또한 조지훈 시인과 박두진 시인을 만나면서 문학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는 전시 글을 읽으니 내 가슴에 짙은 여운으로 남는다.나에게도 문학의 동반자가 있다. 포항수필사랑 동인들이다. 십칠 년을 만났으니, 정분이 나도 보통 난 것이 아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남편보다 오래 붙어 있고, 취미가 같으니 사춘기 딸보다 소통이 더 잘 된다. 수필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을 열었기에, 때로는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나의 편이다.우리는 격주로 만나 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모임에 성실하게 참석하기 위해서 모두가 잠든 새벽에 수필을 쓰려고 깨어 있을 때가 많다. 고요함 속에서 촉촉한 안개 속살 더듬거리듯 나 자신 안에 고인 언어들을 탐닉한다. 내 안의 수많은 느낌표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소멸해 버린다. 꽃잎이 떨어져 날리면 어느 순간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그런 탓에 꾸준히 수필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의 편린들을 부여잡아 초고를 쓰고 퇴고를 거치면, 한 편의 잘 다듬어진 글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설렘 가득 안고 글을 챙겨 길을 나선다. 문학의 동반자인 나의 정인들을 만나기 위해서다.조지훈 선생님도 박목월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1942년 봄비가 꽃잎처럼 흩날리는 날, 경주로 찾아왔던 일화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박목월 작가는 한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건천역에서 조지훈 작가를 기다렸고, 그런 그를 조지훈 시인이 알아보고 플랫폼에서 내리자마자 얼싸 안았다는 장면은 유명하다. 그 후로 두 작가는 열흘 동안 매일 문학과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분이 문학적 동반자로 거듭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고향인 영양으로 돌아간 조지훈 시인은 목월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거기에는 ‘목월(木月)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완화삼(玩化衫)’ 시가 적혀 있었다.“구름 흘러가는/물길은 칠백 리/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조지훈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감격한 목월 시인도 밤새 화답시 ‘나그네’를 준비했다.“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했던가. 시를 써서 마음을 주고받았던 두 작가는 대단히 낭만적이다.나도 수필로써 동인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다. 내 문학적 동반자들의 글을 가슴으로 읽고, 정독하며, 경청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달콤한 수필 향기가 오랫동안 널리 퍼지기를 기원해 본다. 문학관의 존재가 새삼 고맙다. 이곳을 방문한 덕분에 오랫동안 수필 주위를 맴돌고 싶은 나에게, 글 쓰는 실력만큼 인생에서 무엇이 소중한지 깨닫게 해준 날이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공감해야 한다는 관계의 중요성을 동리목월문학관에서 깨닫는다.

2022-08-24

조계사의 연꽃 향기

전재영 동국대 출강 최근 장맛비가 세차게 쏟아붓던 시간대에 불교의 총본산인 조계사를 몇 번 찾았다. 빗줄기가 더위를 식혀주듯 내 마음속 번뇌를 조금이나마 씻기 위해서였다.자비로운 표정으로 온 세상을 끌어안은 부처님 앞에서 들려오는 고매한 스님의 청아한 목탁 소리, 겸허히 빗물을 받아내는 사리탑의 경건함을 기대하며 조계사 앞에 다다랐다.그러나 사찰 일주문 앞에 펼쳐진 색다른 풍경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곳에는 고성을 지르며 종교단체를 비방하는 시위꾼들로 북적였다. 신성한 기도 시간, 지나가는 행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여유로움을 방해하는 모습으로 보여서인지 영 민망했다. 당연, 그 시위가 비록 합법적이라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보일 리 없었다.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비판과 반대 의견은 늘 있어 왔다. 또 다양하고 균형 잡힌 시각은 사회 발전을 견인한다. 그러나 도처의 시위현장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물리력을 동원한 무질서한 시위나 인격살인에 가까운 비방 및 모욕행위, 고성방가 수준의 배려 없는 행위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목이 터져라 남을 물러가라며 누군가를 비난하고 비방하는 그들을 보면 팍팍한 삶의 애수와 고초가 느껴져 간혹 애처로운 마음이 든 적도 있다. 하지만 모든 문제나 갈등은 단지 목소리만으로 해결되기란 어렵다. 문제의 원인과 현재의 상황을 면밀하게 바라보고 건설적인 견해를 합리적이고 성숙한 방법으로 표현할 때 다른 이들의 공감을 더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번뇌를 잊고자 사찰을 찾은 중생의 번뇌와 시름이 쉽사리 사그라지지는 않지만, 세찬 빗줄기를 말없이 받아내는 연꽃잎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비를 베풀어 타인을 포용하라는 듯 작은 깨달음을 준다.불교는 연(蓮)꽃과 깊은 연(緣)을 가졌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 피어나는 꽃이면서도 그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청정과 깨달음, 성스러운 진리를 상징한다.연뿌리에는 질펀한 늪 바닥에 처해 있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본성을 간직하여 세상을 정화한다. 중생들의 몸은 비록 어지러운 사바에 있지만 정(淨)하게 지녀 세상을 구제해야 한다는 불교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연꽃잎은 잎사귀에 흙탕물 한 점이 없다.쟁반 같은 뽀송한 연잎은 물방울을 동그랗게 말아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한 점도 취함이 없이 그대로 떨어뜨린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을 신성하게 하며 불교의 가르침을 전한다.또한, 연꽃은 꽃을 피우면서 동시에 씨를 품는다고 하여 꽃과 씨가 동시에 탄생하는데, 불교에서는 이를 모든 결과는 이미 원인을 품고 있음에 비유하며, 태어남과 동시에 불성을 지니게 됨을 상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연꽃은 성스럽고 아름답지만 아무리 만개해도 결코 요염하지 않으며 향도 자극이 없어 있는 듯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 향기는 멀어질수록 그윽하기만 하다.퇴계 이황 선생은 만년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서당 동쪽에 네모진 조그만 못을 만들어 연꽃을 심고 ‘정우당(淨友塘)’이라 이름했다.‘정우’란 ‘깨끗한 벗’이란 뜻으로 곧 연을 가리킨 말이다. 이러하니 연(蓮)은 화중군자(花中君子·꽃의 군자)로 불린다. 송 주돈이(周敦履)는 그의‘애련설’(愛蓮設)에서 연을 “꽃 가운데의 군자로다”라고 칭송하기도 하였고, 초나라의 굴원(屈原)은 연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었다.해가 중천을 지나면 하루의 노고를 연지(蓮池)에 부리고 정하게 꽃잎을 오므리면 연대 밑으로는 개구리밥과 생이가 방석처럼 깔고 앉아있으니 연지불국(蓮池佛國)이 아닐 수 없다.개구리들이 개굴개굴 아무리 시끄럽게 울어도 연꽃이 피는 사찰경내의 염불 소리는 극락음이다. 물론 조계사 앞 일주문을 지나면서 본 집회 시위 현장 또한 그 나름의 이유는 있을 터다. 다만, 그곳이 한국 불교의 중심이니 연꽃이 주는 깊은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길 권한다.

2022-08-17

다리, 잇다

양태순수필가 여름을 이고 가는 여행이다. 집을 떠나면서 잡다한 생각을 구겨 넣고 문을 잠갔다. 따라오지 못하게 빗장까지 질렀다. 태양이 조각조각 쏟아져 대지를 굽는 열기에 코끝이 후끈해도 짜증이 나지 않는 것은 기분 탓일 거다. 잠시 일상으로부터 비켜서는 홀가분함에 마음이 부푼다.목적지는 신안 퍼플섬이다. 가고 오는 길이 멀지만 더 늦기 전에 다녀오자는 말에 친구들이 기껍게 찬성했다.차가 출발하자마자 수다가 폭발했다. 학교 때의 친구라 서로의 친구가 겹치기도 해 이야기의 소재는 풍성했다. 때로는 서로의 수다가 허공에서 얽혀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샘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과거에서 현재를 넘나드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흥미진진했다. 간간이 튀어나오는 고향 사투리가 이야기를 더 찰지게 녹여냈다. 이야기의 대상이 들으면 언짢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사는 것이 이 맛이라는 듯 웃으며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훌쩍 지나 천사대교에 이르렀다.천사대교는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다리로 신안군이 천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특성을 반영한 이름이다.입구에서 본 다리는 장관이었다. 다리의 주탑에 연결된 케이블은 은실로 짠 주렴처럼 아른거리고 바다와 하늘 사이로 천천히 달리는 차가 천사 날개를 지날 때는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듯했다. 파란 물을 잔뜩 머금은 하늘을 콕 찔러보고 싶은 아찔한 설렘이었다.몇 개의 짧은 다리를 더 지나 퍼플섬에 도착했다. 안좌도, 만월도, 박지도로 연결된 다리는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보라색 일색인 집과 건물들이 빚어내는 풍경은 신비스러웠다.보이는 곳마다 포토존이어서 그곳에서 만난 여행팀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추억을 쌓았다. 전동차를 타고 반월도를 둘러보는 내내 길가에는 버들 마편초가 한들거리며 반겨주었다. 원래는 자생하는 도라지꽃이 많아서 퍼플이었지만 지금은 오래 볼 수 있는 버들 마편초로 바꾸었다고 한다.비탈진 밭에는 고구마와 참깨가 많았다. 참깨를 보며 꺼낸 친구 이야기가 대박 사건이었다.들어보니 참깨를 받은 사돈이 전화를 해서 ‘사돈, 방앗간에서 중국산이 섞였다는데 아니지요?’ 했더니 ‘사돈이라서 중국산을 쪼매만 섞었니더’ 했단다. 솔직한 사돈 때문에 우리는 기막혀하면서도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퍼플교를 걷는 내내 포즈 잡으며 시시한 이야기로 깔깔거렸다. 그러는 동안 서로를 향한 다리는 더 단단해졌다.다리는 사이를 이어준다. 뭍과 섬, 섬과 섬, 길과 길,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게 한다. 이미 열린 길을 거리는 더 가깝게 마음은 더 두텁게 해주는 역할이다. 다리가 오래도록 튼튼하려면 오가는 이의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이번 여행은 새 다리를 놓기도 했다. 내 마음에서 신안으로 퍼플섬으로 다리를 놓았다. 많은 다리를 지나며 쌓은 이야기들이 기억 저장고에서 반짝이고 있을 게다. 언제든 꺼내면 2022년 여름과 함께 아련한 시간으로 피어날 것이다. 방송에서 또는 다른 사람의 여행 경험담에서 희미해진 다리가 다시 진해지기도 할 테지만 말이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는 자칫 끊어지기 쉽다. 사소한 실수가 쌓이거나 친하다고 번번이 예의를 무시하면 그 틈으로 의심의 물이 스며든다. 추억으로 이어진 줄에 어느덧 구린내가 날 때면 위험한 순간이다. 재빨리 귀를 세우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자만에 빠져 눈치코치 모른다면 자기도 모르는 새 다리는 없어지고 만다.아름다운 다리를 건넌 친구들과의 다리는 더욱 견고해졌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서로의 마음을 잇는 다리를 덧대고 삐걱대지 않도록 속마음 헤아리기와 배려란 기름칠을 꼼꼼하게 했다. 같이한 세월만큼 우정도 추억도 돈독해지는 너와 나, 우리의 다리가 오래 이어질 것을 믿는다.친구들, 참깨에 중국산 참깨는 섞으면 안 된다. 그것만 명심하자.

2022-08-10

다시 간호법으로

배문경 수필가 대한간호협회에서 발간한 ‘코로나 영웅, 대한민국을 간호하다’라는 책을 읽는다.전북이 고향인 김성덕 간호사는 대구동산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의료지원을 했다.그가 집을 떠날 때 가족을 설득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세 자녀와 남편이 꼭 가야하느냐는 말에 “지금 아니면 언제 가느냐? 나는 간호사(registered nurse·RN)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라고 당당하게 가족을 설득시켰다. 코로나 현장 파견을 마치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던 그녀가 촌집에서 혼자 기거했던 것도 다시 떠오른다.나는 왜 그녀처럼 모든 것을 훌훌 벗고 그 당시 코로나로 힘들어했던 그 곳에 지원서를 내지 못했을까. 아마 전국의 RN들이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미안하고 안타깝고 그래서 오랜 시간 자책하며 병원에서 조금 더 코로나로 힘든 직원과 환자를 도우려고 노력했다.그 당시 4대 일간지 1면에는 코에 반창고를 붙인 간호장교의 사진과 유사한 사진들이 실렸다. RN들이 이마에 길게 패인 주름과 콧등에 반창고를 붙인 채 기쁜 모습으로 훈장처럼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그들은 3킬로나 되는 방호복을 입고 15시간 환자들을 위해서 사명감을 가지고 강행군을 했다. 어떤 시민은 봉투에 비누 두 개와 “의료진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메모를 같이 보냈기에 받는 사람들이 눈물이 났다고 했다.올 가을 다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예견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4차 접종을 하느라 병원은 분주하다.얼마 전 경주간호사회 주관으로 정기총회가 개최되었다. ‘서른한 살, 간호사가 되었습니다’를 쓴 배윤경 작가 겸 간호사인 그녀와 북토크를 진행하였다. 그녀는 러시아어를 전공해서 취업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다녀왔다. 그리고 간호대학을 다시 도전해 취업까지 한 아주 똑똑하고 열정적인 여성이다. 그녀의 글에서 보여지듯 RN의 길은 멀고 험하다.RN은 삼교대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환자의 질환으로 인해 나타나는 크고 작은 변화를 인수, 인계받는 과정이 릴레이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신규RN이 질환과 환자를 이해하고 습득할 시간이 1달에서 3달이다. 미국의 경우 1년 과정이 주어진다. 신입RN의 많은 수가 일 년을 못 넘기고 자리를 떠난다. 신규RN에게 주어지는 환자의 목숨은 커다란 부담이며 두려움이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서 예민하고 날카롭다.이미 이 과정을 겪은 RN은 다시 신규간호사의 교육까지 맡아야하는 부담을 갖게 된다. 병원은 환경의 처우개선과 RN의 인원을 늘여야하다. RN이 일 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이미 많은 논문에서 발표되듯이 칠년에서 십여 년의 숙련된 RN이 환자를 간호할 경우 질환 치유율(治癒率)이 훨씬 높다. 그래서 경력RN의 중요성은 배제될 수 없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갖가지 요구를 들어주는 과정은 지난(至難)하다.이런 상황 속에서도 많은 RN들이 환자를 위한 봉사를 진행했다. 순천향대학병원 간호부는 10월 4일 ‘천사 데이’를 맞아 환자와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봉사활동은 ‘건강한 삶은 간호사와 함께, 건강한 100세를 위한 혈압관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이어졌다.환자와 보호자들이 오가는 곳에서 RN들은 혈압과 혈당, 체지방 등 검사를 진행했다. 건강 상담을 통해 혈압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내용을 접했다. 더 많은 병원들이 서비스를 늘일 수도 있으리라.초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복합적 질병을 간호하며 치매와 만성질환으로 건강에 대한 서비스는 더욱 필요하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의료법이 시행되고 있다. 경력RN이 현장에서 다양한 질환을 간호할 수 있는 ‘간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간호가 실천되어야 한다.양질의 의료서비스가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도록 ‘간호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참간호의 아름다운 현장을 꿈꾼다.

2022-08-03

매미

정미영 수필가 어제는 아침부터 온종일 여름비가 내렸다. 거실 창문에 빗물이 고여 있는 것을 기회로 삼아 모처럼 창틀에 쌓인 먼지를 닦으려고 했다. 창문을 열다가 매미 한 마리가 방충망에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아파트 16층은 웬만한 나무 우듬지보다 훨씬 높다. 이곳에서 만난 매미는 반가움을 넘어 뜻밖이었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에 매미 날개가 젖을까봐 신경이 쓰였다. 제비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듯 다행히 빗물이 들이치는 곳이 아닌 장소에 본능적으로 몸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척 대견스러웠다.방문객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손전화를 찾았다. 나 혼자 호들갑을 떨다 결국 방충망을 건드렸다. 놀란 매미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매미가 조용히 쉴 수 있게 혼자 둘 것을. 매미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쉬움을 달랬다.하루가 지난 오늘은 햇볕이 쨍쨍한 날이다. 전형적인 한여름 날씨를 보여 주려는 듯 후텁지근한 오후다. 갑자기 매미 울음소리가 수직으로 치솟는가 싶더니, 수평으로 눕기를 반복한다. 밀도 높은 울림소리의 방출이 계절을 알리는 전령사답다. 유달리 내 귀를 자극하는 커다란 소리에 혹시나 하고 작은 방 창문을 올려다본다.매미가 방충망에 붙어 자신의 존재를 우렁차게 알린다. 어제 우리 집에 방문했던 그 매미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으면서 자세히 살펴본다.몸매가 좀 더 통통한 것 같기도 하고, 다리가 좀 더 가느다랗게 긴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려면 어떤가, 연일 찾아와 생의 편린 중에 하나를 나에게 펼쳐 보인다고 여기니 매미가 정겹다.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매미는 대략 7년간의 땅 속 생활을 마치고 일주일 정도를 땅 위에서 살다가 일생을 마친다고 들었다. 수컷 매미는 살아있는 동안 구애를 하기 위해 배 안쪽에 있는 울림주머니를 맹렬하게 빨리 움직이는 것일 텐데, 암컷 매미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지 않고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아 안쓰럽다.몸피를 뚫고 큰 소리로 우는 매미일수록 암컷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집 안을 뒤흔드는 소리로 짐작을 하건데 필히 울음통이 커서 매미들에게는 매력적일 것 같다. 얼른 자기 짝을 만나면 좋으련만. 사랑을 찾지 못하고 애타게 울고 있는 매미를 응시하다 보니, 사랑에 버림받아 매미가 된 트로이 왕자 티토노스가 불현듯 떠오른다.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미남 왕자 티토노스를 보자 한눈에 반했다. 그를 에티오피아에 있는 자신의 궁전으로 데려가 남편으로 삼고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에오스는 인간인 남편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걱정했다. 제우스에게 티토노스를 불사(不死)의 몸으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제우스는 에오스의 부탁을 들어주어 영원히 죽지 않게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늙지 않는 불로(不老)의 몸은 주지 않았다고 한다.에오스의 사랑은 점점 식어갔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피부가 주름투성이인 노인으로 티토노스가 변하자, 그를 궁전의 구석방에 가두고 청동 문을 잠가 버렸다. 슬프게도 티토노스의 몸은 점점 쪼그라들더니 작아져서 결국에는 요람에 눕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우스는 티토노스를 불쌍히 여겨 매미로 바꾸어 버렸다고 한다. 매미는 벽에 붙어 에오스를 애타게 부르며 울고 있었다는 비극적인 그리스 신화다.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명한 대사로 인해 한 동안 내 가슴이 먹먹했던 것처럼, 변해버린 에오스의 사랑 때문에 매미로 변한 티토노스의 이야기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영원성을 믿고 싶은 나를 절망스럽게 만든다.요즘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이 칭찬 받는 세상이다.그러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사랑만은 변덕을 부리지 않고 영속성을 유지하면 좋으련만. 우리 집을 찾아온 매미도 서둘러 사랑을 찾아 결실을 맺고 난 뒤,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자신의 일대기에 한 줄 적히기를 바란다. 매미를 관조하며 사랑의 가치를 가늠해본 시간이다.

2022-07-27

안기러 가다

양태순 수필가 차가 느리게 달린다. 파도와 갈매기가 썸타듯 지분거리는 해안도로를 벗어나니 너른 내(川)가 펼쳐졌다.바다에 물들었던 눈이 파란색을 걷어 올리기 전 물소리가 젖어 들었다. 투명한 물소리가 차르르차르~찰 음악처럼 감겨들어 더없이 느긋하다.구부러진 길이 펴졌다 다시 구부러지는 동안 내가 따라왔다. 넓은 내를 꽉 채우지 못한 물길이 크고 작은 바위를 돌아서 혹은 틈을 비집고 저만의 길을 유유히 가고 있다. 깎인 바위가 둥그스름하다. 아마도 바위에 내려앉은 햇살이 고즈넉이 시간을 둥글게 익혔나 보다. 15킬로미터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에서 제각각인 바위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불영사 일주문 앞에 섰다. 천축산불영사 현판이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라 다그치는 듯하다. 부처의 그림자가 있는 절, 지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닿은 곳이다. 거대한 문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많은 번뇌가 일어섰다 사그라지고 다시 안개처럼 피어나는 길 잃은 마음을 문밖에 두고 문턱이 없는 경계를 넘었다.솔향이 달려와 반겼다. 길옆으로 늘어서 있는 소나무가 인사를 하듯 수굿이 가지를 살랑이고 있다. 한껏 들이켜서 깊숙하게 채운다.숨어있는 새소리도 정겹다. 꽁지깃 까딱까딱 흔드는 재롱둥이 새가 눈앞에 있는 듯 흐뭇하다. 눈을 돌리니 하늘을 가린 나뭇잎 틈으로 들어온 빛이 빗질을 열심히 하는지 잎새들이 반짝인다. 모두가 청량한 향기로 다가온다. 살짝 내리막길을 따라 걷는 걸음에 자박자박 박자가 실린다.초록이 빚어낸 풍경에 눈도 마음도 시원해진다. 솔숲을 지나니 굴참나무와 싸리나무, 나무를 기어오르는 덩굴들이 어우렁더우렁 어울려 있다. 서로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제자리에서 자신만의 색을 내는 모습에서 마음 수양이 한참 부족한 자신을 발견한다.늘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미련이 많다. 미처 채워지지 않는 물질적 정신적 허기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고약한 심보를 떼어내고 싶으나 쉽지 않다. 가끔 뒤죽박죽인 채로 날이 선 감정을 갈무리하지 못해 난감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이 고단하다. 이제는 정말 내려놓자 다짐한다.다리 아래로 계곡물이 출출 흘러간다. 없는 길을 만들며 수천 년을 굽이져 낸 길에는 갖가지 조형물이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탠다. 흔한 너럭바위를 비롯하여 새, 얼굴, 부처, 동물 등속이 보는 이의 심상에 따라 형상이 보인다. 내 마음이 부처면 남도 부처로 보인다는 말에 공감하는 순간이다.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불영사에 도착했다. 신라시대 기암절벽을 끼고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절, 저절로 신심이 우러나는 곳은 아니다. 일주문을 지나 걸어오는 동안 세속의 부질없는 생각들을 다 부려놓고 천축산에 폭 안기면 세상만사 다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절이다. 나보다 바람이 먼저 도착해 내 소식을 전했는지 품 벌려 맞아주는 불심이 향기롭다.불영지에 연꽃이 아련하다. 법영루 물그림자가 바람의 무늬를 밀어내고 연잎 위에 법경을 펼쳐놓았다.가만히 귀를 연다. 마음을 내리치는 죽비 소리에 속이 뜨끔 따가워진다. 모두가 내 탓이고 내가 부족한 탓이다, 방언 터지듯 고백한다. 슬며시 불심에 기대어 ‘그러나 오늘만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안아주세요.’ 털어놓는다.산에서 내려다보는 부처를 올려다본다. 불쌍한 중생이라 안타까워할지 측은지심으로 기회를 줄지 아리송하다. 아무렴 어떨까.내가 내 마음 둘 데 없어 안기러 왔으면 안기면 그만인 것을. 천 근의 무게로 짓누르던 화기와 슬픔이 한쪽으로 비켜났는지 속이 편안하다. 아늑한 품속 같은 불영사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물소리 바람 소리 휘휘 몰려 와 경전을 풀어낸다. 받아적는 손이 바쁘다. 거리가 멀어 그림자로 다녀가는 부처의 마음을 마음에 들이며 고요히 두 손 모은다.

2022-07-20

책(冊)탑을 보며

거실에 책장 세 개가 모두 빈틈없다. 책꽂이 위도 앞쪽도 숨을 못 쉴 만큼 책으로 들어찼다. 딸아이 사진조차 구석으로 쏠렸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밀리고 구겨진다.일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거실의 모든 물건을 꺼내고 책들도 바닥에 쏟아냈다. 이젠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챙길밖에 도리가 없다. 어제도 그저께도 누군가로부터 책이 왔다. 지인이거나 낯선 사람이 쓴 수필집이 봉투째 책상에도 쌓였다. 수필잡지, 개인 수필집, 동인지, 목차를 보면 알 만한 사람들의 이름이 책의 곳곳에 박혔다. 때론 펼친 책자에 나의 이름 석 자도 종이 위에 무늬 진다.바닥에 쌓인 책들이 탑처럼 높아졌다. 묵직한 서사가 초석이 된다. 그 위에 처마의 날렵함처럼 잘 써진 글들이 감탄을 자아내며 층을 이룬다. 수필의 근간을 만들어 갈 수필들이 한 층, 한 층 높이를 만든다. 그리고 어떤 책은 풍탁이 되어 바람이 지나갈 때면 청아한 소리로 세상에 한 줄기 고운 바람이 된다. 탑 꼭대기에 이르러 당대에 이름 석 자를 논할 문장가가 쓴 글이 떡하니 차지한다.그러고 보니 각각의 수필은 모두 그 사람의 사상, 문학에 대한 열정, 그리고 평생의 철학이 글자를 통해 우러났다. 때론 흥미롭게 가끔 눈물을 머금게 하고 파안대소를 낳게 한다. 어디 그뿐이랴. 황제에서 철학자, 교수와 소설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써놓았다. 에세이는 바로 삶을 우려낸 곰국 같은 글이다.나의 이야기에서부터 부모, 형제, 친구와 스승의 이야기다. 이웃과 고객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주인공도 다양하다. 작고 사소한 이야기부터 큰 사상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삶의 희로애락이 그 속에서 춤을 춘다. 들판에 핀 꽃 한 송이나 길가의 은행나무나 나무 백일홍과 다르지 않을 우리의 인생이 긴 강물처럼 풀어져 흐른다.흐트러지지 않도록 빨간 노끈으로 묶어보니 결코 작은 양이 아니다. 책장 두 개 분량의 책이 나를 빤히 본다. ‘어쩔거냐고? 너 또한 세상 어느 구석진 자리 시끄러운 자리에 냄비받침처럼 쓰일 이름자 하나 갖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다. 오죽하면 냄비받침이란 책 제목을 내놓았을까. 세상을 꿰뚫어 본 혜안이 아닌가. 그 책은 차마 노끈으로 묶을 자신이 생기지 않는 동류의 아픔이 느껴졌다. 배문경수필가 혼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는 사이 책탑은 쌓여가고 내려놓지도 펼치지도 못하는 작금의 사태에 커피 한잔을 마시며 창밖을 본다. 한 사람의 전 생애가 담긴 자서전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기막히고 답답한 사연이 녹아있다. 나의 동감 없이 서운해할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마음을 나누어 가져야 하지 않을까. 비슷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훈계도 있다. 삶의 지혜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곁에 많다. 따뜻한 커피 향기 같은 내용이 한 스푼의 설탕만 넣으면 하루가 행복할 그런 수필이 나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책탑을 다시 바라본다.내가 저 무거운 탑을 아파트에서 땅으로 내려놓으면 경비아저씨는 부녀회와 얘기해서 종이 무게로 몇 푼에 팔 것이다. 마음의 무게는 정녕 사라지고 활자의 무게마저 무시된 채 종이의 무게만큼 금이 그어진다. 나의 책조차 누군가에 의해 쓰레기통에서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온 생애가 녹아있다고 발문에 써놓았던 책은 김칫국물에 버무려져 빗물에 녹아 내려지고 구겨진 채, 아이쿠.책탑은 높아져 가는데 현관은 멀기만 하다. 지인의 북카페에 연락해서 무료 나눔을 하고 싶다고 했다. 차 한 잔 마시며 풍경 한 번 책 한 줄 읽으면 좋을 것 같았다. 차 트렁크에 실으며 그간 넘치도록 받은 관심에 감사하며 힘들게 책을 옮겼다. 카페 창가로 햇살이 한 줌 들어오더니 음악에 섞여 커피 향이 짙다. 커피와 어울리는 수필 한 편을 꺼내 읽어본다. 자리 때문일까. 글이 노랑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정원에 심어진 진분홍색 송엽국과 우단동자와 수레국화 사이를 오간다.무너진 책탑의 일부분이 꽃들 사이에서 배시시 웃고 있다.

2022-07-13

구두

정미영 수필가 수술 받았던 친정어머니의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하셨다. 병원에 함께 다녀올 요량으로 신발장에서 어머니의 빛바랜 운동화를 꺼냈다. 몇 년째 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한 켤레의 신발로 생활하다 보니 군데군데 실밥이 터지고 뒤축이 닳아 테석테석했다.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신발에 스며든 것 같아 마음이 먹먹했다.수술 전, 어머니의 무릎 통증은 오래 지속되었다. 약을 먹어도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길을 가다보면 몇 발자국을 못가 절뚝일 때도 있었고, 겨우 발걸음을 옮기는가 싶으면 이내 주저앉았다. 가까운 곳에 볼일을 보러 가는데도 남들보다 시간이 두 배로 걸렸다. 앉을 데가 있으면 무조건 쉬어야 했고, 마땅한 데가 없으면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쉬어야만 걸을 수 있었다.늘 푸른 물이 돌 것 같던 어머니의 육신이 쇠약해져 갔다. 내 어머니만큼은 세월이 비켜가기를 빌었는데, 자연의 섭리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음이 눈물겨웠다. 보다 못해 수술을 권했지만 한사코 망설였다. 나는 자식의 입장을 먼저 걱정하는 어머니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더는 수술을 늦추기가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기에 어머니에게 퇴행성관절염 말기라는 설명을 하며 날짜를 잡았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다.어머니가 병실에 있는 동안, 나는 구두를 사러 갔다. 전부터 어머니에게 구두를 사드리려고 했는데, 내 살아가는 형편을 핑계로 계속 미루었다. 구두를 고르는데, 어머니에게 묵혔던 구두에 대한 빚이 한 순간 빗장뼈를 세워 고개를 내밀었다.초등학교 때, 우리 집 앞에 개울이 있었다. 나는 동네 친구들과 자주 빨래놀이를 했다. 그 날도 세수 대야에 비누와 신발 몇 개를 챙겨나갔다. 신발로 물을 퍼내어 대야를 가득 채우고 나서 개울에 떠내려 보냈다. 그러고는 잽싸게 뛰어가 건져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한참을 뛰어다니면 지쳤다. 헐떡이는 숨을 고를 겸 물가에 자리를 잡고앉아서 신발에 비누칠을 했다. 이왕 빨 것을 찌든 때가 있는 빨랫감이나 걸레를 들고 갔더라면 칭찬 꽤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발에 어머니의 구두가 섞여 있었다. 가난했던 아버지가 내 입학식 때 신고 가라고 큰맘 먹고 어머니께 사다준 신발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가 구색을 맞춰야 하는 자리에만 신고 나갔던 하나뿐인 구두였다.나는 잠시 뒤에 알았다. 구두는 물에 빨면 안 되고, 불 옆에 두면 안 된다는 것을. 말린다고 연탄보일러 주위에 젖은 운동화와 함께 구두를 세워 두었더니 일그러지고 눌어붙어 영영 신지 못하게 되었다.정작 어머니는 야단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항상 자식 걱정이 먼저인 분이었다. 구두를 태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혼날까 봐 불안해 한다는 사실에 더 신경을 쓰셨다. 나는 오히려 그게 더 미안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어머니에게 구두를 사드려야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구두를 장만해 병실에서 꺼내 들고, 얼른 회복해 꽃구경 가자고 말씀드렸다. 자식이 마련한 선물을 귀하게 여겨 어머니는 구두를 들여다보며 흐뭇해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나는 새삼 코끝이 찡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새 구두를 신지 못했다. 무릎이 성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새 것보다는 예전 것이 좋다며, 운동화를 신었다.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진작 구두를 사다드렸다면 좋았을 것을, 후회가 밀려들었다.“엄마, 미안해.” 내 후회의 탄식이 길게 여음을 남겼다.나는 예전에 어머니의 구두를 연탄불 옆에 두었다가 눌어붙게 했던 날의 용서를 다시금 구했다. 어머니는 이제껏 마음에 두고 있었느냐며 본인은 벌써 잊었다고 말씀하셨다.오늘도 늙으신 어머니는 자식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셨다. 세월이 흘러도 덜어지지 않는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결이 소실점으로 향한다고 해도 끝없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 속에 은은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노모의 사랑이 짙어지는 오후였다.

2022-07-06

미루나무 꼭대기에 고무줄이 걸렸던

양태순 수필가 습한 기운이 몰려온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에 맞게 날씨는 종잡을 수 없게 제멋대로다. 쨍쨍한 햇살에 싱그럽던 잎마저 시르죽하다 싶은데 천둥이 우르릉 울리더니 한줄기 비가 내린다. 열에 달궈진 대지를 식혀준 비 때문에 습도가 높아져 몸이 까라진다.여름은 언제나 뜨거웠다. 십 리 길을 걸어올 때면 가방의 무게에 어깨가 늘어졌다. 정수리에 내리꽂는 빛살에 얼굴이 익어가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은 축축해서 잠시 다리쉼을 해야 했다. 그런 우리에게 그늘이 필요했고 그 그늘을 제공해준 나무는 미루나무였다.여름 하굣길을 지켜주는 미루나무였다. 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타박타박 걸을 때면 길가에 쭉 늘어선 미루나무가 잎사귀를 살랑살랑 흔들어 더위를 식혀줬다. 우리는 가방을 한데 모아놓고 그늘에 앉아 웃고 떠들다 지나가는 친구가 보이면 불러서 같이 고무줄놀이하고는 했다.마을 공터에는 미루나무가 있었다.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간 나면 거기로 갔다. 매미 소리 쨍하던 한낮의 열기가 조금 숙지면 고무줄놀이가 시작되었다. 노래를 부르며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고무줄에 발을 걸어 꼬기도 하고 고무줄을 잠시 지르밟았다 풀어주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여자애들 옆에서 남자애들은 저들끼리 키득거리며 놀이에 코를 박고 있다가 슬쩍 곁눈질을 했다. 때로는 슬금 다가와 훼방을 놓기도 했지만 고무줄놀이를 멈추지는 않았다.산 위로 노을이 펼쳐지고 집마다 인기척이 나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이 떠난 빈터를 미루나무가 지켰다. 아이들의 하루를 갈무리하여 결로 새기고 쏟아지는 별을 초록으로 받아내어 위로 위로 가지를 키웠다. 그 나무는 늘 그 자리에서 반가이 맞아주었고 우리 성장의 시간을 켜켜이 품었다.아이들은 자랐고 고무줄놀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에 관심을 보였다. 새로운 놀이와 새로운 친구에 빠졌고 고민거리가 늘어나면서 뒤를 보기보다 눈앞에 놓여있는 현실을 좇아 걸어가기 바빴다. 더 자라서는 할 일이 많았고 시곗바늘은 빨리 돌았다. 그렇게 미루나무는 잊혔다.미루나무가 사라졌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하는 이도 없이 뿌리마져 뽑혀 나갔다. 그 자리는 농협 창고가 차지했다. 무심한 사람들은 창고의 효용성에 고마워할 뿐이었다. 아무도 성장기의 소중한 한 페이지가 뜯어져 나가는 것을 알지 못했고 시간은 앞으로만 흘렀다.앞에는 무슨 대단한 것이 기다리는 줄 알았다. 이것이 맞는지 헷갈릴 때마다 조금만 더, 나중에, 라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일 센티미터만 벗어나도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지나고 보니 아픈 만큼 아파하고 슬픈 만큼 슬퍼하고 죽을 만큼 힘든 일도 겪어야 하는 사람다워지는 과정이었다. 가끔 곁길을 걸어도 좋았을 성싶다.이제는 숨이 차도록 달릴 필요 없는 안정기다. 재물에 안달복달하거나 자식에게 애면글면 매달리는 것에서 몇 발자국 뒤에 있다. 순리에 따르는 것이 모두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시간의 여유도 생겼다. 현재를 느긋하게 즐기면 되는데 내 시계는 자꾸 과거로 돌아간다. 앞으로 나아갈 시간보다 돌아볼 시간이 많아진 탓이다.여름이면 미루나무 아래서 고무줄놀이하던 때를 더듬는다. 놀이를 온전히 즐기며 순수하게 땀 흘렸던 그 시절이 가슴을 물들인다.씨아질로 뽑아낸 목화 같은 추억들이 몽글몽글 피어 흥건하게 고이는 날에는 잊었던 친구들의 얼굴이 곱게 어룽거린다.간만에 옛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여전히 단발머리인 그녀에게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그악스럽게 울어대던 매미와 고무줄놀이하던 친구들 어디 있는지, 추억팔이하며 더위를 식혀야겠다. 지나는 바람에 잎들이 쏴아쏴아 더위를 몰아간다.

2022-06-29

산책길 소묘(素描)

배문경 수필가 이른 새벽 산책하기에 좋은 계절이 있다. 지루한 겨울을 지난 뒤, 연초록 봄이 그렇고 녹음 짙은 여름이 그렇다.오뉴월은 뜨거움을 숨긴 채 맑고 그윽한 꽃향기를 가득 품었다. 밤을 희롱하듯이 깊게 들어온 여명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섰다. 여섯 시를 막 넘긴 시간은 한겨울엔 엄두도 못 낼 밝음으로 온 세상이 환하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타박타박 밖으로 나섰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올 거라며 까치가 꺅 깍 깍깍 나뭇가지에서 꽁지를 든 채 반긴다. 저도 누가 나오면 함께 길을 나서고 싶었던 모양이다. 까치 소리와 함께 내딛는 걸음이 한결 가볍다.푸른 잎이 투명한 햇살을 튕겨낸다. 나무 두엇을 지나자 차도가 나오고 초등학교의 계단을 내려가면 붉은 양귀비며 노란 금계국이 화단 가득하다. 오밀조밀한 보도블록을 지나는 길가에 맥문동이 이파리를 단단히 세웠다. 주어진 한 시절을 구가하는 생명의 잔치가 햇살을 받아 더욱 눈부시다.교문을 나서서 맞은편 길을 바라보며 걷는다. 이곳은 차들의 길이다. 사고로 가로등이 부서지거나 보도블록이 깨진 흔적이 낭자했던 곳이다. 인간을 위한 문명의 이기인 차가 인간을 해치는 이 아이러니는 언제쯤 사라질까. 문명은 세상을 밝히지만, 그만큼의 그림자도 생긴다는 사실을 실감한다.길을 건너 강으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낮은 담장과 낡은 건물들이 적당히 눈높이에 맞게 들어오다가 비닐하우스에 이르면 갑자기 눈이 뜨인다. 비닐하우스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푸른 부추가 자라고 있다. 자르고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저 부추의 매운 생명력이 새삼 부럽다.좀 더 걷다 보니 물을 관리하는 수문이 있다. 주의하라는 관리자의 공고문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아마 태풍이나 홍수가 나면 이곳을 여닫아 물 높이를 조절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가뭄에 강물이 많이 줄어들었다. 유속은 급하지 않고 넓은 강 중간쯤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배처럼 생긴 섬이 하나 있다.지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갈 때 나는 이곳에 서 있었다. 콸콸 소리를 내는 물은 강둑의 목까지 들어차 모든 것을 삼키며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저 나지막한 섬은 물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장마와 홍수로 인해 강둑조차 파괴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강물은 위세가 대단했다.문득 유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어린아이의 눈에 보이던 뒤꼍의 도랑이 장맛비에 살아 꿈틀거렸다. 세찬 물살에 떠내려가던 소와 솥과 나뭇가지와 잡동사니들이 흙탕물에 뒤섞였다. 소는 발버둥 치며 떠내려갔고 나뭇가지는 서로 얼기설기 엉키며 부피를 키웠다. 우르릉 천둥소리 쩌적 번개소리, 나는 엄마 옆에 붙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도랑물이 생전 처음으로 집을 삼킬 듯이 불어나자 동네는 소란스러웠다. 아득한 기억 속의 도랑물 소리가 지금의 강물 소리와 오버랩되어 두렵기까지 하다.오십 년이 지나고서야 태풍의 이름을 찾아보니 ‘올가’라는 이름의 태풍이었다.다행이다. 지금은 태풍에 잠겼던 섬은 푸른 나무와 잡초들이 무성하다. 군데군데 꽃들이 싱겁지 않게 장식한다. 섬 주위로 물고기들이 퍼덕거린다. 은빛 꼬리를 세차게 흔들자 중심에서 번져나가는 물결무늬가 종소리를 연상시킨다. 작은 숲이 살아있어 걷는 길이 충만해진다. 살아있다는 것, 얼마나 큰 기쁨인가.나는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산책은 놓친 것을 되새김질시켜주는 힘이 있다. 때론 일상에 지쳐 머릿속이 잘 감긴 테이프처럼 끊임없이 반복될 때 잠시 멍 때리는 휴식을 위해 걷고 또 걷는다.저 눈 부신 태양의 선물과 자연의 이름으로 부여된 각각 다른 모양의 꽃과 나무와 풀들이 기운을 내뿜는다. 나는 연초록 향연에 아득히 취한다. 가슴 가득 바람을 안고 총총히 강둑을 뒤로하며 집을 향해 돌아서자, 방전되었던 심신이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된 느낌이다. 일상이 천천히 다가온다. 산책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2022-06-22

사진 감상문

양태순수필가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들이 있다. 시선을 붙잡는 예쁜 물건과 반가운 얼굴을 보거나 튀는 행동을 볼 때다. 익숙한 멜로디, 그림과 사진에는 눈은 물론 마음까지 빼앗기고 만다. 그런 일은 계획되지 않고 불시에 일어나는 현상이어서 느낌의 파동이 크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만난 사진이 그랬다.할머니가 시원하게 웃는 모습이다. 건물 이층에 자리한 작은 휴게 공간에 걸려 있는 사진이다. 밤이라 간접 조명이 있어도 사물이 어른거려 계단을 조심히 올라와 소파로 가던 나는 홀린 듯 사진 앞으로 갔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팝콘인가 싶어 자세히 보는데 이였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번개가 일었다. 감당키 어려운 선한 기운이 몸에 들어와 심장을 마구 두드리는지 가슴이 둥당거렸다. 나는 할머니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말보다 먼저 찰칵찰칵 소리가 났다.아침에 지난밤 찍은 사진을 불러냈다. 밤새 되돌려 본 마음에 담은 이미지가 헛것일까 떨렸다. 숨을 길게 쉬었다. 서서히 전체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밝은 데서 찬찬히 보니 밤과는 다른 순박한 평화로움이 그곳에 있었다. 낡은 소쿠리와 버석한 손, 검게 탄 얼굴이 말쑥하게 피어나는 꽃 같은 웃음이다. 난전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가 앉은 자세로 쳐다보며 웃고 있는데 할머니 앞에는 분명 누군가 서 있겠지만 사진사는 그것은 생략한 채 웃음만 드러내었다.사진 속 할머니의 하나뿐인 이는 머리말이었다. 그것만으로 살아온 날들이 읽혔다. 아랫니 윗니 스물여덟 개의 이가 난바다를 헤쳐오면서 흔들리고 흔들려서 끔찍한 치통의 밤을 지새며 뭉그러졌을 것이다. 그뿐일까. 뭉그러진 이를 뱉지도 못하고 꾹 삼키고는 위에서 주물럭거린 시간이 또 얼마였을지 가늠할 수 없다. 길게 잇대어진 삶의 터널을 통과하느라 갖은 애를 썼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럴 때마다 새겨진 무늬는 밭고랑 같은 주름으로 남았다. 낱낱의 주름은 일기였고 남을 탓하기보다 그저 자신이 노력하면 되리라는 다짐의 연속으로 채워진 날이었다. 할머니는 폭우와 폭풍을 맨몸으로 맞서 왔기에 티끌 같은 부끄러움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 웃음은 진흙 속에서 무심으로 피워낸 에필로그다. 참 아름다운 책을 읽은 기분이다.아름답다는 말은 감동을 포함한다. 살아보니 감동할 일이 드물다. 여리던 마음은 세상사 격랑을 건너느라 점차 무디어지고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웬만해선 좋다와 멋지다를 적절히 섞어 감정의 구색을 맞춘다. 하지만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노동자의 하루를 경건히 갈무리 하는 노을의 품은 아득한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부지런히 퍼주는 넉넉한 씀씀이 또한 가치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럴 때면 나는 조용하고 엄숙한 감동으로 떨린다.꾸미지 않은 모습이 작품이 된다. 사진사가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사진을 찍는다고 이렇게 해주세요, 주문을 했더라면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 어색함이 묻어났을 것이다. 작가는 프로답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치와 각도를 달리하며 수백 장을 찍었고 그중에 하나를 건졌지 싶다. 아마도 종일토록 렌즈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 예술혼을 불태웠으리라. 한 사람의 삶을 필름에 압축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사진은 수명이 길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눈을 감을 때까지 살아있다. 종이나 손전화의 사진은 보관 상태에 따라 분실되기도 하고 오래되면 품은 이야기가 흐릿해진다. 하지만 눈으로 찍은 사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진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순간순간 되살림 기능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인물을 찍는 사진작가는 삶의 여러 형태를 보여준다. 오래된 골목이나 시장, 노동자와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두를 수식어 없이 담아낸다. 무심코 지은 표정이야말로 진솔한 인생을 담은 책이다. 어느 것 하나가 더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담백하게 보여준다. 삶이란 바다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나아가고 있는 모두가 훌륭하며 잘 살아내고 있다는 위로를 건넨다. 덧붙여 스스로를 안아 대견하다 다독였으면 하는 바람도 얹은 듯하다.

2022-06-15

콩주머니에 담긴 추억

정미영 수필가 양말을 꺼내 신으려니 구멍이 나 있었다. 아끼던 양말인데 엄지발가락이 쏙 얼굴을 내밀었다. 부끄럽기보다는 재미가 있어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실과 바늘을 찾았지만 구멍이 커서 꿰매 신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버리기가 아까워 오자미라고 불렀던 콩주머니를 만들기로 했다. 구멍난 곳을 촘촘하게 박음질한 뒤에, 콩을 넣고 양말목 부분에 땀의 크기가 고르도록 바느질에 신경을 썼다. 예전에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내가 어렸을 때에는 놀잇감이 흔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가끔 구멍 난 양말을 박음질해, 그 속에 솜을 넣고 인형을 만들어 주셨다.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인형을 움직이며,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로 시작하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할머니의 손놀림에 따라 그럴싸하게 움직이는 인형을 보면 이야기가 더욱 실감났다.할머니는 콩주머니도 만들어 주셨다. 콩주머니를 만드는 할머니의 모습은 여유로웠다. 춘향가의 한 대목을 흥얼거리기도 하고, 가끔 꽃이 핀 마당을 내다보기도 하셨다. 고개를 들지 않고 바느질에 집중하면서도 꽃밭에 나비가 나는지 벌이 날아드는지, 알아맞히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멋있어 보였다.나는 친구들이랑 공터에서 콩주머니를 가지고 놀았다. 콩주머니 놀이는 먼저 가위바위보를 해서 편을 가르고 땅에 선을 그어 영역을 나누었다. 그런 다음, 콩주머니를 힘껏 던져 상대편을 더 많이 맞혀야 이길 수 있는 놀이였다. 이리저리 뛰다 보면 이내 땀범벅이 되고, 손으로 땀을 훔치면 얼굴까지 시꺼메졌다. 꾀죄죄하고 지저분한 얼굴이어도 창피한 줄 몰랐다. 서로 마주 보며 키득거렸다.할머니는 우리가 노는 것을 한 번씩 구경하셨다. 상대편 아이가 던진 걸 손녀가 잘 받아 내면 손뼉을 치며 주름살이 펴질 듯 환하게 웃으셨다.내가 콩주머니를 받지 못하고 몸 어딘가에 맞으면 무릎을 치며 안타까워하셨다.콩주머니를 바구니에 던져 넣는 놀이도 했다. 한 친구에게 바구니를 지게하고 차례대로 던져서 누가 더 많이 넣는지 내기했다.그러면 술래가 된 친구는 큰 바구니를 등에 메고, 펄쩍펄쩍 메뚜기처럼 뛰어다녔다.그 놀이는 콩주머니가 수십 개 필요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저마다 콩주머니를 가져와야만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가져가고 싶었다. 구멍 난 양말이 없을 때에는 멀쩡한 양말을 들고 가서 만들어 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꿀밤을 맞고 울음을 터트렸다.그러면 할머니는 손녀에게 콩주머니를 한 아름 안겨 주셨다. 구멍 난 속옷이나 양말을 이용해 미리 만들어 놓은 것들이었다. 보물이 따로 없었다. 나는 보물 상자라도 안은 듯 친구들이 기다리는 골목길을 향해 의기양양 달려 나갔다.콩주머니만 있으면 혼자서도 잘 놀았다. 비가 오거나 혼자 집을 봐야 할 때 갖고 놀기 좋았다. 빈 요구르트 병을 세워 놓고 콩주머니를 던져 쓰러뜨리기도 하고, 공기놀이 하듯 손등에 받았다가 다시 움켜잡기를 되풀이했다. 천장까지 높이 던졌다가 잘못 받아 얼굴에 떨어지기도 했다.그러다 싫증나면 내가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천 조각을 부여잡고 씨름한 끝에 겨우 하나 만들기만 하면 야호 소리를 질렀다. 그만큼 뿌듯했다. 하지만 바늘땀이 엉성한 그것이 튼튼할 리 없었다. 한두 번만 던져도 툭 터져버렸다.오랜만에 바느질을 했더니 가슴 가득 설렜다. 콩주머니를 만드는 재미도 소소했지만, 할머니와의 추억 조각들을 떠올려 보는 것도 감회가 새로웠다. 어린이들의 장난감이 다양한 재질과 성능으로 넘쳐나는 요즘이다.하지만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위해 정성껏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이용한 인형이나 소품을 만들어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오늘따라 할머니가 그립다. 손녀에 대한 사랑과 따뜻한 손길이 담겼던 그 많던 콩주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2022-06-08

쓰레기 줍지 마세요

배문경 수필가 아침 운동을 하다 몇 명의 여성을 만났다. 손에는 집게와 종량제 봉투가 들려있었다. 밤새 지저분해진 거리를 정리하는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크고 작은 공식적인 모임에서도 쓰레기청소를 하고 정화작업을 한 후 인증 샷을 남기곤 한다.출근하면서 보니 앳된 여성 청소부가 형광조끼를 입고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직장 앞 정류장에는 할머니 두 분이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거미줄을 제거하고 유리를 닦았다. 잠시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청소를 하며 얘기를 나누곤 했다.누가 쓰레기를 거리에 함부로 버리는지. 그래서 애꿎은 노인네들 고생시키는지. 시민의식 실종이며 공중도덕 결여라고 비판할 일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쓰레기를 줍고 청소하는 일은 노인들 일자리면 좋겠다. 쓰레기 줍기는 중노동이 아니라 가벼운 일일 수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운동 삼아 할 일이라서 일석이조다. 그렇게 해서 받은 임금은 생활에 쓰거나 손자 손녀들에게 용돈을 준다고 한다.“전 아직도 하이패스를 설치하지 않았어요. 가능하면 아주 늦게 설치할 생각이에요.”후배의 친구가 톨게이트 수납원이었는데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직장을 잃었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이동하면서 남편 차에도 하이패스가 없다는 걸 알았다. 수납원이 많던 예전과 달리 혼자서 반가운 모습으로 결제해 주었다. 몇 년 전 수납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시위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들은 어딘가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식사하러 들어간 식당에 주인 내외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로봇이 나타나 메뉴판과 물 잔을 가져와서 주문을 독촉했다. 어쩌면 이곳도 2~3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곳곳에서 사람이 아닌 무인기계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득 내 일자리는 안전할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햄버거 가게에도 아이스크림 판매점에도 키오스크가 메뉴를 선택하라고 떡하니 섰다. 순서를 누르다 잘못 눌러 처음부터 다시 한다. 모든 것이 이렇게 되면 나이 든 세대는 머지않아 주문하지 못 해 굶는 일이 다반사이겠다. 겨우 선택된 메뉴와 영수증을 챙겨 들고 전광판에 번호가 뜰 때까지 기다렸다. 대화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제품을 조립, 포장하고 기계를 점검하는 전 과정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공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모든 설비와 장치가 무선통신으로 연결되어 있어 실시간으로 전 공정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할 수 있는 스마트 팩토리가 자리 잡았다. 사람들의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는 현상은 시대적 조류이다. 어디로 갈지 몰라 출렁대는 변화라는 큰 배에 올라탄 것은 분명하다.팬데믹 사태의 코로나를 거치며 변화를 더 많이 경험한다. 재택근무와 화상채팅으로 하는 업무 보고시스템은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듦을 느끼게 한다. 실직자는 늘고 오토바이 맨들이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질주한다. 택배차가 거리와 집 앞에서 끊임없이 물건을 나르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서 또 다른 일자리가 창출되긴 하는 것일까.일이 자동화되면 그로 인한 이익을 분배하는 문제가 생긴다. 큰 자본이 들어가는 자동화는 자본가들이 투자한다. 그러므로 이익은 자본가들이 챙긴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눠줄 리 없다. 낙수효과 또한 없는 셈이다. 그리하면 못 가진 사람은 더욱 빈곤에 빠지게 된다.커피를 살 때도 키오스크보다 아르바이트하는 청년에게 주문하자. 은행에 가서도 불편하더라도 번호표를 뽑아 직원과 대화를 하자. 고속도로가 조금 막혀도 하이패스 차선이 아니라 팔을 길게 뻗어 표를 뽑아 출구에서 사람에게 카드를 건네자. 이렇게 주장하면 억지일까?기계화를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속도를 조금 늦추며 새 일자리를 만들자는 이야기다. 노인들이 거리를 배회하면 그 부담은 누가 질까. 결국 젊은이에게 돌아갈 몫이다. 평생 할 수 있는 안전한 직장을 꿈꾸지 못하는 젊은이에게…. 덤으로.

2022-06-01

다람쥐, 간이 커지다

양태순수필가 산에서 다람쥐를 만났다. 대부분의 다람쥐는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면 부리나케 숨거나 달아난다. 그런데 도망가지 않고 뒷다리로 서서 입을 오물거리며 나와 눈을 맞추고 있다. 황당하기도 하고 어찌 나올지 궁금하기도 해서 땅에 앉아 지켜본다. 다람쥐는 나와의 눈싸움에서 결코 피하지 않고 볼록한 볼을 움직이며 태연하다. 마치 너는 나를 잡을 수 없다는 당당한 눈빛이다. 내가 어이가 없어 발을 쿵 굴리며 잡을 듯한 자세를 취하자 그제야 나무 사이로 사라진다.다람쥐의 간 큰 행동이 하루아침에 나오지는 않는다. 처음 낯선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숨기에 바빴을 것이다. 숨이 팔딱거려서 기절할 정도였지 싶다. 몇 번을 경험하고 나서는 호기심에 숨어서 콩닥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주위를 살폈고, 그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저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가 보다. 발소리에 서서히 적응하여 환경을 받아들인 반응이다.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엇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렵다. 변화하는 환경에 나름 적응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 키우는 문제만큼은 쉽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는 자식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서로에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내가 아이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이들이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 눈 앞에서 아이의 방문이 수없이 닫히고 내 입에서 독이 든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씩씩거리며 냉수를 마신 뒤에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부족한 부분만 도드라져 보인 적이 많았다. 밤이 깊어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아이의 자는 모습을 몰래 들여다보며 공부가 뭐라고 이리 안달복달하는지 반성을 하곤 했다. 아이의 좋은 점만 봐야지, 굳게 마음을 먹었다.사람마다 환겅의 적응 방법이 다르다. 내가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성적보다 인간성, 사교성을 우선이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아이는 엄마의 잔소리에 토를 달기보다 “알았어요, 알았어.”하며 반성하는 척 했다. 그렇게 나는 나대로 성적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산에서 만난 다람쥐도 이런 과정을 겪었기에 저리 태평한가 보다. 그러나 아직 사람 가까이 다가와서 재롱을 부리지 않는 것을 보니 조금의 경계심은 있다. 만에 하나 저를 해치려는 의도가 보이면 단숨에 사라지겠다는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듯해서 안심이다. 환경에 백 프로 적응보다는 나만의 색깔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듯해서 대견하다.간이 큰 다람쥐를 만나고 온 나는 자꾸 입꼬리가 실룩거린다. 사람을 보고 도망가지 않은 것이 기특해서다. 다람쥐 세계에서 반항아로 찍힐 만큼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의 산경험이 친구들에게 틀림없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지 않은가.주변의 환경은 늘 변화한다. 아침이면 새로운 소식이 쌓여있고 지구촌 어디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세계가 놀란 가슴이 되기도 하는, 속도의 경쟁이기도 하다. 또 어제 멀쩡하던 전화기가 고장이 나서 연락처가 다 날아가서 당황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크고 작은 사건들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준다.그러나 변화의 중심은 늘 사람이라고 믿는다.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내가 살아갈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무작정 두려워하는 것보다 개개인의 소중한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다람쥐는 자신의 영역만 고집하지 않았다. 조금씩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는 노력을 했다. 가끔 발소리를 듣고 놀라기는 하지만 무작정 도망가지 않고 서로 눈짓을 교환할 정도가 된 것이다. 그 작은 생명체가 덩치가 큰 사람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배울 점이기도 하다.서로를 향한 조금의 배려와 존중이 삶의 가치를 향상시킨다. 다람쥐는 조금 더 간이 커지고 사람은 더 큰 품으로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부족한 대로 어울려서 채워가는 세상, 큰 그림을 꿈꾼다.

2022-05-25

내 가슴이 뛰니 숭어도 뛰고

정미영 수필가 봄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순천만으로 향했다. 차창 넘어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여행의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여행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 마음은 끊임없이 너울댔다.상춘객들이 많아 예정보다 한 시간쯤 더 걸려 광양에 다다랐다.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가까운 음식점으로 찾아들었다.메뉴는 그 유명한 광양불고기였다. 불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여행지에서의 들뜬 기분 때문이었을까,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고기가 살살 녹아내렸다. 색다른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여행의 멋이지만, 그 고장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리라.남편은 반주로 지역 특산품인 매실동동주를 곁들였다. 매실동동주는 섬진강변의 매화향이 빚어낸 술이라고 한다. 섬진강변의 매화. 봄이면 매화축제로 강 마을이 온통 떠들썩하다는 그 꽃! 봄바람에 하르르 흩어지던 꽃잎이 술잔에 아른거렸다. 나도 운전을 하지 않았다면 한 잔의 유혹에 빠졌으리라.드디어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띄었다. 어찌 사람뿐이겠는가. 맑은 하늘 아래 살랑살랑 흔들리는 초록나무의 몸짓 또한 아름다웠다. 드디어 대대포구에 도착했다. 자연이 만든 생명의 정원에 도착하니, 나도 모르게 야호 소리가 나왔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갈대밭의 풍경이 장엄했다. 갯바람에 물결치는 갈대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구의 갈대밭 저편에는 칠면초 군락지도 들어서 있었다. 계절마다 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칠면초는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내 눈이 호사하는 순간이었다.갈대밭을 한 바퀴 돌아보기 위해 배를 탔다. 갯벌에는 새들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앉아 있었다. 갯벌에 내리쬐는 햇볕을 즐기는 듯 갈대들의 수런거림에 귀를 기울이는 듯. 잘 보전된 갈대 군락은 새들에게 은신처, 먹이를 제공하여 철새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국제보호조인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와 같은 조류 외에도 저어새, 황새, 흑부리오리, 민물도요 등이 서식하고 있단다.그때 갑자기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새떼가 아니라 나비 떼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 아름다운 비상(飛上)! 역동적인 몸짓이 황홀했다.물살을 가르며 배는 신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 배 뒷머리에 있던 남편이 소리쳤다.“물고기가 날아올랐다!”이게 무슨 소리인가. 뒤돌아보니 숭어였다. 장정 팔뚝만한 숭어가 배 안에서 펄떡거렸다. 숭어도 물속에서 내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을까? 여행의 기쁨으로 내 가슴이 뛰니 숭어도 덩달아 뛰어올랐는가? 숭어가 힘이 좋아 간간히 그렇게 뛰어든다며 선장은 우리에게 숭어를 선물로 주었다. 갑자기 우리에게 뛰어든 숭어는 이번 여행의 느낌표였다. 아주 크고, 아주 힘찬 느낌표….여유롭게 흐르던 물결 위로 햇살이 저물었다. 갈대밭 틈새로 땅거미가 내려앉자, 갈대도 물빛도 변했다. 장소에 따라 감흥도 달리하는 법이다.이번에는 마치 내가 순천만 갈대라도 된 것처럼 석양의 붉은 노을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 수 있도록 두 팔을 힘껏 벌렸다. 감동의 전율이 흘렀다. 물아일체가 이런 것이던가.저녁 식사로 재첩국을 먹었다. 가마솥에서 뽀얗게 우러난 재첩국물이 식욕을 돋게 했다. 숟가락 대신 대접을 들고 후후 불어 한 모금 마시니 담백하고 시원했다. 그 맛 그대로 집에 가져가고 싶어 포장을 부탁했더니, 인심 좋게 몇 국자 더 넣어주셨다. 사장님의 정까지 더해진 뜨거운 국물에 가슴까지 훈훈해졌다.여행은 삶을 따뜻하게 해준다. 혼자만의 여행도 좋지만, 나는 가족끼리의 여행을 좋아한다. 같은 추억을 만들어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다. 이번 순천만 여행은 다른 날보다 기대 이상으로 큰 수확이었다. 내 마음밭이 순천만의 갈대밭처럼 넓어진 느낌이었다.

2022-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