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순수필가 잎들이 떠나고 있다. 내내 붙들고 있던 가지에서 떨어져 바람을 잡고 날아오르거나 신발 밑창에 붙어서 어디론가 옮겨간다. 더러는 자신을 키워준 나무 주위를 이리저리 흩날리다 밑동에 엎드리기도 한다. 자신만의 색깔로 마지막을 마무리한다.때가 있다는 말이 크게 다가오는 계절이다.가로수에 몇 남지 않은 잎새에 새삼 마음이 간다. 친구들이 떠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연인의 떠난 마음을 귀찮게 하는 질척거림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 생각은 끈적한 미련으로 보여 곱게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모두가 떠날 때가 같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스스로 지금이라고 여기는 순간이 가장 좋을 때가 아닐까.우리는 흐름의 물결에 휩쓸려 갈 때가 있다.마치 내 생각이나 존재의 이유는 없는 것처럼 따라간다. 앞서가는 사람이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으로 나아가는지 알 틈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뒤처지지 않으려고 용을 쓸 뿐이다. 그래서 낭패를 보기도 한다.나는 가끔 다른 사람을 따라서 하다 실패한 적이 있다. 유행이라는 이유로 사들인 옷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특징이나 나이와 피부색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이외에도 헤어스타일, 여행, 맛집 등이 있다. 나에게 맞는다는 말을 잊은 선택이었다. 그중에 으뜸은 검색창에 뜨는 맛집 탐방이다. 수많은 리뷰가 맛있다고 하는데 막상 찾아가서 먹었을 때 이건 아니야, 느낀 적이 많다.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찾아본다. 남들과 어울려 가려면 같은 그룹에 속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이다. 내가 중심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행동하여 앞서가는 그룹의 끝자리라도 차지하면 잘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혼자 뒤처진다는 것이 무능력으로 비칠까 두렵기도 해서다.이성의 기능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다. 오십이 넘으면서 덜거덕거리며 더 심해졌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고 동작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음을 느꼈을 때부터다. 마음이 바빠지고 괜스레 허둥거리며 남을 의식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식에 얹혀간다면 보통은 하리라 믿으며 나를 주장하기보다는 나를 안으로 불러들였다.가로수 뒤로 공장 울타리를 만든 피라칸사스를 본다.봄부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익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사람들은 그곳에 겨울이면 빨간 열매가 있으리라는 걸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의 일부였다. 계절마다 눈을 빼앗는 갖가지 꽃들과 열매의 유혹에 넘어가서이다. 지금은 나무들이 잎을 떨구어 겨울이라는 여백을 만드는데 홀로 붉다. 근사한 작품으로 다가온다.지금부터 그의 계절이다. 바람이 차가울수록 마음이 시릴수록 더욱 돋보이는 피라칸사스다. 무채색 고요 속에서 흐트러짐 없는 존재를 붉게 드러내어 시선을 가둔다. 배고픈 새들에게 양식이 되어주는 보시로 사람들의 마음에 따스함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그 열매는 봄까지 가지를 붙잡고 있다.피라칸사스는 저만의 속도로 일 년을 산다. 온갖 꽃들이 앞줄에서 사랑을 받아도 시샘하지 않고 묵묵히 때가 되기를 기다린다. 기온이 널뛰기하듯 오르락내리락해도 서두르지 않고 줏대를 지켜 지긋이 내면을 키운다.무엇에 쫓기듯 달려가는 나에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큰 숨 내쉬고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으련다, 쉽지 않겠지만 흉내라도 내야겠다. 그러다 보면 가슴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고 시린 바람 드나드는 마음 구멍을 메울 방법도 찾을 수 있으리라.산다는 것은 살아내는 일이다. 각자의 앞에 쌓인 문제를 풀어가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호흡에 맞춰 인생시계를 설계하면 된다. 겨울 길목을 홀로 밝혀 건너가는 저 피라칸사스처럼.
2021-12-15
정미영 수필가 아파트 앞 양지바른 곳에 트럭이 왔다. ‘우산 수선’이라는 현수막을 붙인 차를 보니 처음에는 뜬금없었다. 입동이 한참 지난 탓에 제법 기온이 쌀쌀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비가 내리기는 했어도 우산을 고쳐 쓰기에 어울리는 시기는 왠지 장마철을 앞둔 시점일 것 같았다.하지만 나만의 편견이었다. 비는 지금껏 봄여름가을겨울 내렸고 눈이 올 때도 우산을 쓰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마침 내게도 우산 살대가 부러지고 손잡이가 끈적거려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기에 서둘러 챙겨 들고 나왔다.노인이 우산을 고치고 있었다. 노인은 손 때 묻은 도구들을 바꿔가며 부러진 살, 휘어진 대, 찢어진 천을 깁고 펴고 이어놓았다. 정성스레 깁는 모습에 믿음이 갔다.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볼 일을 보고 오라는 말에, 구경해도 되느냐고 말하며 앉은뱅이 의자에 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우산 고치는 분을 만나기가 어려워요.”노인은 우산 고치던 손길을 잠시 멈추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요즘은 우산을 고쳐 쓰는 사람보다는 버리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가 아닌가? 처연한 웃음을 지으며 오히려 나에게 반문했다.“그럼, 어르신은 왜 우산 고치는 일을 하세요?”내가 어줍지 않은 말투로 묻자,“나야, 할 줄 아는 재주가 이것밖에 없으니까.”그러고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내가 맡긴 우산의 차례가 되었다. 우산 고치는 모습을 지켜보니 오랜 세월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부러진 살대를 교환하고 실로 이어놓는 손길이 제법 꼼꼼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제 손질이 끝나면 우리 집에 있는 다른 우산들처럼 비 오는 날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학창 시절, 교실 입구까지 색 고운 우산을 들고 오는 친구엄마를 보면 부러웠다. 우리 엄마는 가게 일로 항상 바쁘셨기에, 갑작스럽게 비가 내려 우산을 챙겨가지 못한 날이면 나는 비에 젖어 집에 오기 일쑤였다. 몸과 마음이 흠뻑 젖은 채로 걷고 뛰기를 반복해 집에 오면 엄마는 미안하다며 수건으로 내 머리칼을 닦아주며 책가방을 받아 내렸다.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에 자식에게는 우산을 꼭 챙겨주고 싶었다. 그런데 올해 중학생이 된 딸아이는 우산을 잘 챙겨가지 않는다. 등교 전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으면 접는 우산을 책가방에 넣어두지만, 나중에 보면 슬그머니 책상 위에 빼놓고 갈 때가 많다. 감기 걸리면 어떡해? 걱정스런 눈길로 물어보면 괜찮다, 라는 대답만 무심하게 돌아올 뿐이었다.노인이 우산을 다 고쳤다며 나를 불렀다. 우산에 대한 과거 속에 빠져 있던 나는 기억의 편린들을 바람결 따라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우산을 받아들고 손잡이를 살펴보고 살대도 잘 고쳐졌는지, 접었다 펴기를 반복해 보았다. 손잡이가 끈적임 없이 매끈하고 우산 살대도 마무리가 튼튼하게 되어 있었다. 만족스러워 하는 내 얼굴을 보자, 노인의 얼굴에도 수선을 마친 사람의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우산을 집에 들고 와서 다시 한 번 펼쳐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 언행과 습관이 잘못되었을 때에도 우산을 고치듯 제때에 수정하고 보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말과 행동의 실수로 후회하는 일이 많았고, 잘못된 습관은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간해서는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순간순간 체득했다.지나간 삶은 우산처럼 수선해서 쓸 수 없다. 우산을 더 이상 고쳐 쓸 수 없을 때 새로 장만해서 사용하는 것처럼, 다시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마음속을 수시로 점검하고 수선하면 좋을 것 같다. 마음의 무엇이 부서져 있는지, 내 생각의 어디가 고장이 나 있는지, 자주 들여다볼 일이다. 그러면 앞으로 다가오는 생활 속에서 폭풍우가 쏟아져 감당하기 힘들거나 마음에 희뿌연 안개비가 내려 울고 싶을 때, 잘 견뎌낼 수 있으리라.
2021-12-08
백후자수필가 긴 세월을 묻어두었다. 어설픈 핑계들을 걷어내고 길을 나선다. 안동으로 향한 길이 한산하다. 산자락을 깎아 세운 터널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긴 터널 속 불빛 타고 애잔한 기억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2021-12-01
배문경수필가 가을이 익을 대로 익은 날 축제를 즐겼다. 경주 시민이라는 이름 덕분에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볼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화려한 노래와 춤사위가 우리들의 가을에 군불을 지폈다. 고인이 된 이영훈의 자작곡들로 만들어진 이야기에 맞춰 노래가 울려 퍼졌고, 배우들의 열연이 이어질수록 관객들의 마음도 아랫목처럼 뜨듯해졌다.그중에서도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가슴속에 피어나는 감정을 그대로 두자는 노랫말은 뭉클했다. 삶을 살아내면서 많은 사람이 다가왔다가 멀어져 갔다. 시절 인연이란 말처럼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미련의 끈을 길게 늘였더랬다. 옛사람이 떠난 자리로 새로운 사람들이 틈을 메우는 것을 다 알지 못해 아쉬움에 눈물을 흘릴 때도 많았다. 그렇게 떠남과 만남이 평생이란 인생을 만드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후배 순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녀가 즐겼던 십 대의 노래들은 거의 이문세의 노래로 가득했단다. 이문세가 ‘별밤지기’를 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는 인기 짱이었다고 말하는 얼굴이 환했다. 그 덕택에 그의 노래 제목이 어린 그녀와 친구들의 모임 제목이름까지 되며 요즘의 BTS만큼의 인기를 누리는 그 가수였다는 이야기가 뮤지컬을 보는 내내 떠올랐다. 그의 노래들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색 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어느 학자가 그랬던가. 태어나 십 대까지 듣던 음악이 평생을 찾아 듣는 음악이 된다고. 20대까지는 신곡을 찾아 듣지만 30대가 되면서는 자신에게 익숙한 음악만 되풀이해서 듣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익숙한 노래들이 음악에 대한 기억저장고에 묻혀 있다가 이따금 사람이 그리울 때 꺼내 듣는다. 그래서일까. 나 또한 나이 차이가 나는 나훈아의 노래를 왜 좋아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가 꿈속에 나온 적도 있으니 어른들이 흥얼거리던 그 시절의 노래를 귀 너머로 듣고 자란 탓이겠거니 싶다. 지금도 나는 그의 음악과 열정이 묻어나는 리듬이 흘러나오면 쉽게 따라 하고 어깨가 들썩인다. 그리움처럼 말이다.나의 저장고에 각인된 노래야말로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추억이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중에 앞면을 차지하는 곡은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노무라 소지로의 ‘대황하’, 최백호의 ‘작은 잎새’이다. 뒷면은 영화로 채웠다. 사랑스러운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로마의 휴일’이나 스스로 노래까지 부른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애송하는 노래처럼 쪽지편지로 접어서 마음 저장함에 넣어 두었다. 한 번씩 꺼내 보고 싶은 날, 넷플릭스나 OCN을 통해 다시 보면 추억의 그 영화가 내 등을 가만히 쓸어준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을 양산(量産)하는지도 모른다.퇴근하다가 문득 이름이 떠오르면 핸드폰에서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건다. 수화기 저편에서 어쩐 일이냐고 묻지만 반가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 기억 날 때 전화를 하지 않으면 다시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나의 말은 진심이다. 상대도 “ 그렇지, 세월이 너무 빨리 가고 있어.” 너무 바쁜 일상의 급류에 휩싸여 작고 귀한 것들을 잃어갈 때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나를 가다듬게 한다. 오래된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함께 했던 시간들이 영상기의 필름처럼 지나가며 세포 곳곳에 산소를 공급한다. 한동안은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기차가 지나가는 철로 옆에서 기차를 바라본 적이 있다. 기차에 탄 사람과 밖에 있는 내가 서로 겹쳐질 때가 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린 언젠가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서로를 단지 기억해내지 못할 뿐이란 생각을 하며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더러 데자뷔처럼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처럼 그것은 환영처럼 기억의 저편, 막힌 어느 부위를 긁는 느낌이다.11월 늦가을 들녘을 보니 경주의 벚나무에는 두 번째 꽃이 피고 은행나무는 이미 계절의 여운을 남김없이 거두어들였다. 연못에 비친 하늘과 나무가 데칼코마니다. 그리움이 그대로 투영된 것일까.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낙엽처럼 플레이리스트에서 흩날리고 있다.
2021-11-24
백후자수필가 가을이 만든 하늘·바람·빛을 먹은 이파리에 물이 든다. 초록이 빛을 잃으며 노란 물이 오른다. 노랑이면 단연 은행나무다. 은행나무를 찾아 떠난 길, 바알간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 밭을 지난다. 나지막한 산길을 따라가서 다다른 곳은 청도 적천사다.일주문 대신 은행나무가 마중을 한다.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바람소리만 스칠 뿐 고요하다. 발소리를 죽이며 둘러본다. 젊은 부부 한 쌍이 공양미를 올린다. 둘은 부처님 앞에 공손하게 삼배를 올리고 한참 머물다 나간다. 어느 한때 내 모습을 보는 듯하여 저절로 눈길이 따라간다. 법당을 나선 부부는 천왕문을 나서서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나란히 걷는다.적천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천년에 가깝다. 고려 명종 5년, 보조국사 지눌이 오백 명의 수도승을 머물게 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절을 중건할 당시, 절 부근 숲속에 도적이 들끓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조국사가 가랑잎에 범 호(虎)자를 써서 신통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풀어 놓으니, 도적이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한다. 당시 보조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곳에 은행나무가 자랐으니 천연기념물 제402호, 적천사 은행나무다.적천사 은행나무는 삼 미터까지는 하나의 줄기이다. 그 위로 세 개의 가지로 나뉘어 자란다. 높이 이십팔 미터에 둘레가 십일 미터 가량으로 암나무이다. 바로 옆에 또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수령은 다르나 비슷한 키 높이로 견준다. 두 나무는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려 맞잡으며 나란히 서 있다. 두 은행나무의 다정한 모습에 부부 은행나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열매가 맺히는 걸로 봐서 암나무이다.적천사 은행나무의 특별함은 유주(乳柱)이다. 유주는 오래된 은행나무에 생긴다. 은행나무의 줄기에 상처를 입으면 은행나무는 스스로 치유하는데, 그것이 바로 유주이다. 특정의 방어물질이다. 대체로 동글동글하게 생긴 것이 모유의 줄기인 유두와 흡사하다. 그런데 적천사 은행나무의 유주는 모양새가 독특하다. 굵직하고 기다란 고드름처럼 생긴 것, 짧고 뭉뚝한 방망이처럼 생긴 것, 둥근 혹처럼 생긴 것도 보인다.유주는 여인네의 젖가슴과 닮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글자 그대로 ‘젖기둥’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근과 더 닮은 이유로 예로부터 아들을 낳고자 하는 여인네들의 등살에 도려져 나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적천사의 은행나무 유주는 길쭉한 생김새가 남근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남아를 잉태하고자 하는 이들의 순례지가 되었다.법당에서 보았던 젊은 부부가 은행나무 밑으로 간다. 두 손을 꼭 모으고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가만히 유주를 쓰다듬는다. 아이를 간절히 바랐던 때가 있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젊은 부부를 가만히 지켜본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원하는 곳에 가닿기를 바란다.불투명한 일, 내가 가진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 있다. 마치 막다른 골목에 선 것 같을 때 인간은 신앙을 찾는다.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일지라도 내가 믿으면 신앙이다. 내 안의 울분을 토해낼 수 있는 곳, 내 안의 답답함을 기탄없이 다 들어주는 곳. 있는 자 없는 자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해주는 곳, 그것이 바로 신앙이다.모든 건 마음에 있다. 내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은행나무 아래 서서 유주를 바라보며 간절히 바란다면 그것 또한 신앙이다. 토테미즘이면 어떻고 샤머니즘이면 또 어떤가. 그 또한 마음이 가는 곳이다. 간절함의 끝에 닿으면 통한다고 했다.백 년도 채 못사는 인간이 천년 은행나무 아래에 선다. 울룩불룩 올라온 유주가 눈에 들어온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두 손이 저절로 모아진다.
2021-11-17
양태순 수필가 마음에서 말이 되기까지 순간일 적이 있다. 멋진 풍경을 볼 때, 늘 보던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여쁜 돌,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 떼, 서늘한 바람에 묵묵히 버티는 억새, 가을날 선물꾸러미를 터뜨리듯 툭 터지는 석류, 한겨울 몰래 피운 야생화들. 그것들을 마주하면 생각을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온다. 예쁘다와 좋다.울주군 간월재에 갔다. 억새가 일품이라고 너도나도 인증샷을 올려놓아서 가보고 싶어서다. 모처럼 나선 산길을 걷자니 눈이 시원해진다. 산 능선을 따라 오색 물결이 넘실거렸다. 골짜기와 골짜기가 겹쳐 빛과 그림자가 빚어내는 풍경은 명화 부럽지 않았다. 가을은 고개 위에서 떡갈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내려오고 있었다. 잎들을 개구쟁이 붓질하듯 휙휙 물들이며 오고 있었다.억새평원은 장관이었다. 좋다는 감탄사를 남기고 부리나케 간월재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밀려드는 사람이 많아서다. 그다음 주변 풍경을 둘러볼 여유가 되었다. 동서남북 두루 둘러볼 수 있었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으로 되어 있고 억새는 그 위를 덮을 듯 무성했다. 바위와 억새가 만들어내는 가파른 길은 아득하였으나 색색의 옷들이 무늬를 더해 절경이었다. 다른쪽은 억새 뒤로 산 능선이 그윽하게 둘러쳐져 포토존으로 사람들이 복작였다. 은빚억새 위로 사람꽃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나는 억새 사이로 난 산책길을 걸으면서 냄새를 맡고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가을 안으로 들어간 듯하였다.산을 오르며 연신 좋다는 감탄사를 뱉었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굽이진 길을 오르내리며 다가왔다 멀어지는 풍경 앞에서, 스스로 잎을 떨구는 나무 아래서 보라색으로 존재를 알리는 꽃향유를 보며, 가족끼리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에, 좋다를 고명처럼 얹었다. 그리고 저 홀로 익어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잎들과 잎들이 만들어내는 가을잔치에 마음을 빼앗겼다. 밖으로 나온 말은 좋다는 한마디였으나 속에서 일어난 감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감정은 섬세하게 분화한다. 좋다는 두루뭉술한 덩어리에서 여러 결로 나뉘어진다. 내 처지나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파동이 다르다. 바꾸어 말하면 똑같은 감정이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밖으로 나온 말이 같아도 다르게 읽히는 순간이 있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믿음이 있을 때는 따로 해석이 필요치 않고 저절로 필터를 거쳐 들어온다. 좋다는 말에 숨어있는 뉘앙스랄지 미묘한 차이를 캐치할 수 있다.좋다는 말을 열 번 한다고 같은 뜻이 아니다. 얼키설키 감겨오는 감정의 결에는 차이가 있다. 특별한 것이어서, 설레고 기뻐서, 영원할 것 같아서,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서, 동행한 사람과의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다시는 못 볼 아름다움을 숭배하기 위해, 수없이 읽어서 너덜너덜해진 시집의 구절 등이 모두가 좋다는 말에 포함되는 다른 무엇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는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얼렁뚱땅 좋다는 말속에 밀어넣고 만다.간월재 억새평원을 걸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말들이 어째서 꼭 필요한 순간에는 숨어있는가. 그동안 읽은 책 속의 명문장들을 복기한 것은 다 어디로 사라지는가. 나는 자연이 보여주는 풍경 앞에서 기껏 좋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인가. 내가 느낀 감동과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어서 머릿속이 쑥대밭이었다.시의 행간에 숨은 뜻을 읽어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몇 번을 읽고 나서 고개를 끄덕일 때가 있다. 감정을 말로써 조곤조곤 풀어내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생각을 끄집어내려 해도 마음 안에 뭔가가 있는데 건져지지 않을 때 답답해서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느껴봤을 순간이다.마음의 눈이란 말이 있다. 사물을 볼 때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뒷면을 보는 것이다.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어서 바람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는 이유를 알아야 풍경 속의 풍경을 풀어낼 수 있으리라. 아직도 나의 글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지 못하고 닫힌 문 앞에서 소멸하고 만다. 가을산에 촤르르 펼쳐진 멋진 문장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깝고 안타깝다.솜씨를 부린 글이 아니라 질그릇에 담아내는 정(情) 같은 글을 쓰고자 뾰족하게 날을 세우는 가을이다.
2021-11-10
정미영 수필가 립스틱을 바른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매끄럽게 덧발랐더니 색감이 선명해진다. 화장의 완성은 립스틱이라고 했던가? 그 순간 자신감으로 충만해져 거리로 나선다.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로 인해 립스틱 바른 입술을 드러내 보이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예뻐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본능에 가깝다. 립스틱은 신분이나 국적, 나이를 막론하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5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보석을 갈아서 입술에 화장을 했고, 클레오파트라는 딱정벌레와 개미로 만든 붉은 색을 만들어 썼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1세는 피부 톤을 하얗게 하고 입술은 붉은 빛으로 표현하는 화장법을 유행시켰다.립스틱 효과라는 말이 있다. 요즘처럼 경기가 불황일 때, 저렴한 가격으로 여성 소비자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해서 유래되었다. 대학 졸업반이었을 때 나는 립스틱 효과의 수혜자였다. 취업의 벽에 가로막혀 앞길이 막막했다. 직장을 못 구해 힘들어 하고 자신감을 잃을 때마다 심리적 압박과 우울한 기분이 밀려왔다.도전과 좌절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꿈을 향한 목마름으로 굳게 닫힌 취업의 문을 열려고 애를 써도 현실은 냉정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주름지고 눈동자는 흔들렸다. 푸를 것 같던 젊음이 점점 시들해지고, 마음은 흔들다리 위를 건너는 것처럼 위태로웠다.학기 중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거나 직장을 구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혼자서 긋고는 열등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취업 고민에 어깨가 처져 있던 날은 매서운 바람이 내 옷깃 속으로만 유독 몰려드는 것 같아, 잔뜩 긴장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런 탓에 자주 허방을 딛고 다녔다.그 시절, 주머니가 얄팍해 다른 화장품은 못 샀어도 립스틱만은 발랐다. 마음이 팽팽하지 않고 느슨해질 때 입술 선을 따라 색을 입히면 정신적 허기가 채워졌다. 립스틱이 마치 심리적 대변자라도 된 듯, 내 가슴에 담긴 수많은 문장들이 입술 색으로 표현되었다.립스틱을 바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맨얼굴에 립스틱만 바른 채 학교 도서관으로 향할 때면,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보이지 않는 실체지만 내가 꿈꾸는 이상향을 세밀하게 소묘하기를 반복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의 흔적은 어떤 무늬로 그려질까.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도했다.혹독한 마음의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내게도 봄이 찾아왔다. 마침 적성에 맞는 일자리에서의 까다로운 면접까지 무난히 합격했다. 다행이었다. 봄빛 머금은 발랄한 색상의 립스틱은 일터로 향하는, 생기 넘치는 발걸음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립스틱은 때때로 자국을 남긴다. 첫사랑을 심하게 앓은 남자 동창생은 상대를 떠올리면 분홍 빛깔의 입술이 선명하게 떠올라 아직도 마음이 달뜬다고 한다. 처음 소개팅 자리에서는 밋밋한 인상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눈을 감으면 수채화처럼 은은하게 그녀의 얼굴이 펼쳐졌다고 한다. 청순해 보이는 립스틱의 분홍 빛깔이 풍부한 사랑의 언어로 탈바꿈해 그녀의 입술 위에서 빛났을지도 모른다. 예쁜 빛으로 물들여진 사랑의 언어를 받고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헤어진 지 오래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그 빛깔을 잊지 못하는 것을 보면, 다분히 그럴 것이다.가끔은 즐겨 바르는 색 대신에 붉은 립스틱을 발라본다. 일상의 변화를 바라는 내 시도가 익숙한 안일을 밀어내고 싶은 순간에 입술 색을 바꿔보는 것이다. 그럴 때면 무언가 도전하는 일도 잘 마무리될 것 같고 용기도 생기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내 생활에 있어 당당함의 밀도가 느슨해져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 때 나는 립스틱을 짙게 바를 것이다.나의 립스틱에 대한 관심은 멈추지 않는 진행형이다.
2021-11-03
배문경수필가 청하에 내렸다. 도로변에 차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섰다. 시장 안쪽을 보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다. 청하(淸河)가 ‘공진’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태어나면서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 ‘갯마을 차차차’라는 순한 드라마 덕분이다. 억 소리 나는 액션도 대단한 기획 의도도 없는 요즘 보기 드문 소박한 드라마다. 포항 근교 어촌에서 펼쳐지는 두 남녀의 사랑과 조연으로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정을 나누는 에피소드가 모여 따뜻하게 마음을 덥혀준다.청하라는 지명은 육청에서 유래하여 ‘맑은 시냇물’ 때문에 지었다는 설이 있다. 시냇물은 삶을 거스르지 않고 순하게 흘러 바다에 몸을 맡기고, 그 냇물을 곁에서 보고 자란 사람들은 저절로 순하게 됐다. 그래서 드라마처럼 순박하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우리의 마음에 맑고 시원한 물 한 잔처럼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청’하면 치아 사이에 말이 동굴을 빠져나가고 ‘하’소리에 온몸의 나쁜 기운도 덩달아 모두 밖으로 배출하는 모양새다. 고여 있던 마음이든 소리이든 한꺼번에 넓은 바다로 몰려나가 저 넓은 대양이 되는 것이다.그런 청하라서 파도 소리도 순하다. 호미곶에 한 번 부딪힌 물결이 밀려와 은은하고 정다운 파도가 되어 모래펄을 훑고 사라락 부서진다. 파도를 응시한 바위 위 갈매기들은 퍼덕거리는 날갯짓으로 파도와 동무가 된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찬란히 빛나는 모래를 안으러 왔단다.’ 어릴 적 아이들과 손을 잡고 두 패로 나뉘어 왔다 갔다 하다간 틈을 봐서 상대를 잡아당기던, 아련한 추억처럼 파도는 가볍게 밀려와 모래펄 앞에서 나지막한 더미에 몸을 내맡긴다.청하는 바람 소리 또한 착하다. 아름다운 관송전 숲을 통과한 바람은 푸른빛으로 가슴을 쓸어안는다. 아름드리 숲은 청하중학교와 기청산 수목원을 감싸고 있다. 마을 어디에서도 숲을 지나는 바람을 만날 수 있다. 나무와 꽃이 사시사철 피고, 다양한 새들이 향기에 취해 날아오고 매미와 잠자리, 벌 나비가 수시로 넘나드니 사람과 숲이 동고동락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엔 해가 걸리고 달과 별이 걸린다. 잠자는 시간에도 어둠 속을 지키느라 나무와 별은 밤새 호위무사가 된다.착하고 순한 사람은 얼굴에 ‘나 착함’이라고 새겨져 있다. 내겐 삼십여 년을 함께 사는 순한 어른이 계신다. 시어머님이시다. 쉰 중반에 남편을 여의고 큰아들 가족과 지금껏 함께 산다. 오래전 기사 식당을 했던 솜씨로 만드는 음식은 예사롭지 않다. 더러 이웃에게 김치라도 나눠주면 어머님 솜씨 덕분에 내가 인사말을 늘어지게 듣기도 한다.그 지극정성을 먹고 자란 손자 손녀 셋이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낸다. 현관문을 열면서 “할머니, 할머니” 외치는 아이들에겐 어미는 없고 할머니만 있다. 음식을 오물오물 맛나게 먹으며 눈을 반짝인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반찬이 제일 맛있어.” 그 말에 힘이 나신다는 어머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챙기느라 하루가 부족하다. 오늘도 식탁 앞에서 막내는 갓 만든 김치를 맛보며 엄지 척을 한다.이젠 칠순을 넘은 몸으로도 가족을 건사해주시는 모습에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낄 때가 많다. 따뜻하고 정성들인 음식은 밖에 나가서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란 착한 두드림이다. 힘내 살라고 말보다 몸으로 늘 응원해주시니 그 순한 눈빛에서 힘을 받는다. 이젠 좀 편히 쉬시라고 해도 그 일을 관둘 수 없다는 어머님의 얼굴이 ‘청하’하다.맵지 않고 순한 드라마를 보다가 멋지고 황홀한 배경을 보면 어머님을 모시고 간혹 여행을 떠난다. 그곳을 찾아가서 배우가 연기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나도 어머니도 주인공의 순한 몸짓을 흉내 내어 본다. 우린 그 순간 그 누구나가 될 수 있으니까.코로나로 답답한 나를 밖으로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코스모스를 흔드는 바람과 이제 막 머리부터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나무가 떨어뜨리는 잎새. 여행은 한쪽으로만 쏠려가는 나를 일으켜 세워 눈이 깊은 사람이 되게 한다. 10월, 아직 햇살이 눈부시다. 한나절 청하에서 홍반장이 되고 윤혜진이 되어본다.
2021-10-27
백후자수필가 구름아, 좀 비켜주렴. 하늘이 푸른 산이 보고 싶어 애원했지만 구름은 들은 척도 안 한다. 지나가던 바람이 구름을 밀어댄다. 구름은 밀리지 않으려고 찔끔찔끔 눈물을 흘린다. 구름이 머물다 가는 곳, 하늘 아래 첫 동네에 부슬비가 내린다.
2021-10-20
양태순수필가 몇 해 전부터 포구가 머릿속에 똬리를 틀었다. 모양이며 맛이 생생하여 눈앞에 삼삼하다.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커 큰 시장에 가 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맛이 그대로인지 확인하고 싶어 포구를 먹고 싶은 갈증은 점점 커졌다. 가을바람이 귓불을 스치면 입맛을 다시고는 몸살을 앓곤 했다.포구는 토종 보리수 열매다. 보리똥, 물포구, 보리수로 불리기도 하지만 내 고향에서는 포구라 불렀다. 동글동글 작은 알이 조롱조롱 모여 열린다. 빨간 열매에 흰 반점이 무늬를 만들고 속에 씨를 품고 있다. 산에서 만나면 알알이 눈을 붙잡아 손이 바빴다. 주섬주섬 따 먹으며 주머니에 담고 보자기에 싸서 집에 가져 왔다. 알불 아래서 깨끗이 다듬어진 포구는 어머니가 이고 장으로 갔다.포구, 알싸한 그리움으로 가는 티켓이다. 한 알씩 먹는 것보다 한 움큼을 입안에 털어 넣고 씹어야 맛있다. 와작 씹으면 살짝 떫은맛에 이어 새곰한 맛이 몸을 부르르 떨게 한다. 연달아 우물거리면 달큼한 맛이 혓바닥을 어루만진다. 어느 해의 일이다. 그때는 자취를 하던 때이고 전화도 없어 서로 연락이 잘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어머니가 설탕을 솔솔 뿌린 포구를 먹으라고 주었다. 숟갈로 푹푹 떠먹었다. 어저께 먹어본 듯 선명한 감각이다. 입술에 붉은 물 들이며 뛰어다녔던 고향의 풍경도 스르르 살아난다.간만에 소꿉친구들을 만났다. 포구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는지 물었다. 산에서 포구를 따다가 가시에 찔렸던 일, 벌집을 건드려 줄행랑을 치다가 땄던 포구를 엎었던 일, 어느 골짜기에 많이 있어서 몇 번이나 따러 갔던 일 등. 그 시절의 추억담이 쏟아졌다. 포구라는 말에 저마다 잊었던 산천을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 아련한 웃음이 걸렸다.나는 어릴 적 시간을 더듬는 여행이 잦아졌다. 포구가 만들어낸 길이다. 오징어게임과 숨바꼭질하던 골목, 산딸기, 머루, 망개, 포구를 따먹던 산이며 두레상에 오르던 무밥, 호박범벅, 콩죽 따위를 지도에 그리듯 마음에 새겼다. 고샅길로 연결된 놀이터에서 일어난 일이며 계절별로 먹었던 먹거리를 조금씩 수정하기 몇 차례였다. 그래서 정확할 거라 믿었지만 가족이나 친구들과 맞춰보면 엉뚱한 것도 있었다. 순전히 나를 위한 나만의 맞춤형 여행지도일 뿐이었다.지도에 점으로 남은 것들은 지나온 시간을 연결하는 징검돌이다. 돌 주변은 희미해진 사건과 감정의 덩어리들이 부유한다. 언저리를 배회하는 흔적들을 잡아채서 얼기설기 엮으면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더러는 징검돌 사이를 연결하지 못해 끙끙대기도 하고 여기저기 전화질을 해서 기억을 이어보기도 한다. 담담히 시작된 순례길은 포구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는 횟수가 늘었다.이유를 알 수 없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누구나 가끔은 아궁이에 불씨를 뒤적이듯 추억 한자락을 곱씹는 날이 있다. 그뿐이다 답을 내리기에는 시원찮았다. 그 자리를 맴돌 때마다 무지근한 명치를 눌러야 했다. 기어코 포구를 먹어야만 몸살이 나을 것 같았다.자주 시장을 기웃거렸다. 난전에는 갖가지 채소와 가을을 담은 과일이 소쿠리에 올라앉아 손님을 부른다. 발소리 엇갈려 지나는 틈틈이 흥정하는 소리도 끼어든다. 나는 구석구석 바삐 눈을 굴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에 휩쓸려 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감을 소쿠리에 소복이 쌓아놓고 팔고 있는 펑퍼짐한 곡선의 뒷태를 본 순간이었다.포구, 나를 붙잡은 정체가 그이였구나! 나에게 포구의 맛을 알게 하고 포구를 팔던 야무진 장사꾼이자 내가 간절히 살 부비며 온기를 나누고 싶은 여인이다. 어떤 어려움도 끄떡없이 펄떡이는 심장으로 삶의 행로를 걸었으며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부족한 형편이지만 오남매 넘치는 사랑으로 키워 준 사람, 내 그리움의 여정에 언제나 불을 켜는 어머니.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수년째 병상에서 눈으로만 세상사를 읽으려 애를 쓴다. 뻐끔한 눈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다. 포구의 붉은 물이 추억으로 가는 문을 열길 바란 모양이다. 젊었던 날을 기억하며 스스로가 잘 살아냈다 인정할 수 있기를. 포구즙같은 비가 눈앞을 가린다.
2021-10-13
정미영수필가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어느새 물안개가 되어 산자락 사이로 피어오른다. 물의 윤회 속에 녹아든 풍경을 눈에 담으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남흥마을을 거닌다. 세월의 더께가 쌓여 있고, 오래된 이야기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안동의 남흥마을은 언제 둘러보아도 상념을 잊게 한다. 바쁜 일상에서 가졌던 날선 마음이 한결 누그러지고 편안하다.
2021-10-06
배문경수필가 낮 길이가 눈에 띄게 짧아진 추분(秋分)에 진평왕릉을 돌아본다. 여름의 흔적이 하나씩 지문처럼 지워진 자리로 단풍든다. 여름의 울울창창하던 시간이 버드나무의 짙은 그림자에 묻힌다. 주위는 논밭이 자리 잡고 있어 여름이면 개구리소리 요란하고 풀벌레 소리에 가을을 실감한다.진지왕과 선덕여왕사이인 신라 26대 진평왕, 그의 능으로는 아직 뜨거운 햇살 한줌이 고요히 내린다. 능을 휘돌아보면 그 흔한 호석도 없고 무신상과 문인상 하나가 없다. 그저 모든 것에서 해탈한 듯 보이는 능이다. 왕릉은 그대로지만 온 사람 간 사람의 추억이 여기저기 머물다 흩어진다.푸른 고요가 홰치는 아침과 함께 사라지면 돗자리를 들고 소풍 온 사람들과 웨딩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능 주위가 소란하다. 혹여 밤새 긴 연회로 왕의 곁에 있던 무희들도 휘모리장단에 맞춰 춤을 추었던 것은 아닐까. 빙그르르 돌던 놀이로 박제된 채 주름진 치마와 장구를 치는 모습으로 왕릉주위에 목석처럼 붙박이가 되어있다.오래전 문인들과 문화재 해설사가 왕릉주차장에서 만났다. 돗자리를 깔고 진평왕과 선덕여왕의 야사(野史)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열세 살에 왕위에 오른 진평왕의 첫 여인이 미실이었다. 화랑세기에 ‘용모가 절묘하여 풍만함은 옥진을 닮았고, 명랑함은 벽화를 닮았고, 아름다움은 오도를 닮았다’고 하였다. 세 명의 왕을 모신 대원신통의 여자로 역사서에도 다시없을 미실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선덕여왕도 부친의 영향으로 풍채가 좋았다고 한다. 맞은 편 해가 저무는 야산이 꼭 부처가 누워있는 듯이 보이는 것도 이야기를 듣고서야 동감하며 다시 보았다. 두 부녀가 평야와 산기슭에 능을 만든 이유는 신라를 지키고자 하는 똑같은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진평왕은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중앙 행정부서를 설치하고 중국의 수·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통해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막았다. 왕릉에서 봄 벚꽃, 가을 코스모스가 피고 수로를 따라 걷는 길의 끝이 명활산성이다. 그때 산성을 보수하여 수도 방위에 힘썼다. 천사백년 전 신라 땅에서 일어난 일이다.신라에서 이어진 이 왕릉은 찾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준다. 큰 나무의 가지가 뻗은 곳 아래 벤치가 있다. 그를 ‘나의 의자’라 칭하고 삶의 고단함으로 지칠 때 그 곳에 앉아 왕의 무덤을 오래토록 바라보았다. 아무것에도 묶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과 거리의 어디쯤에 왕과 마주친 운명의 시간이 있었던가. 알 길은 없지만 그 시간만큼은 편안했다. 왕릉의 소박함과 서있는 나무들의 생김새는 그 아래 있는 누구라도 품어 줄 것 같은 넉넉함이 있다. 설총이 태어난 남촌마을 곁의 햇빛이 소복이 모이는 명당이다. 삼년을 밤낮으로 찾던 시간이 지나자 기이하게 마음은 안정을 찾았다. 인(因)과 연(緣)의 화합에 의한 결과인지는 두고두고 나의 숙제다.가을태풍이 지나간 뒤 안개를 헤치고 들어서는 왕릉은 성처럼 넓으면서도 아늑하다. 왕의 신전에 도달한 내가 정원수들의 인사를 받으며 한 걸음씩 떼면 어디선가 궁녀들의 웃음소리 낭창하게 들리는 듯하다. 지나간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은 역사물을 많이 본 탓일까. 햇살이 안개를 가로지르면 신비한 상상과 공상은 지니의 램프처럼 사라진다. 어느 자리라도 좋다. 선 자리에서 나무와 왕릉을 바라보다 천천히 왕의 세계를 여행하면 된다. 아무도 금을 그어두지 않은 그곳이 안식처이며 평온의 세상일 수 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햇살이 눈부시면 눈부신 대로 비바람이 불면 우산 하나에 의지하거나 차 안에서 그냥 바라만 봐도 왕릉이 주는 신비한 아름다움과 평온함에 넋을 잃는다.시간여행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아무카페’에 앉아 능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린다. 카페라떼 한잔의 여유로움으로 왕릉과 주위의 나무에 눈길을 준다. 스친 숱한 인연과 역사와 희로애락이 저 푸른 팽나무와 버드나무로 남았다. 많은 왕릉과 과거를 잇는 문화재들이 경주에는 차고 넘친다. 그 중에서도 마음을 추스르게 할 왕릉이 여기 있으니 잠시 찬가를 불러본다.소슬한 갈바람에 추분의 아침고요가 지금 능을 감싸고 있다.
2021-09-29
백후자수필가 이팝과 아카시아가 다투어 속살을 드러낼 무렵, 봄바람이 차일구름을 밀어낸다. 하늘이 말개지자 봄빛이 더욱 화사하다. 이팝나무, 아카시아에도 햇살이 들어 뽀얀 쌀알 같은 꽃잎이 톡톡 향기를 내뿜는다. 꿀벌들이 꽃잎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엉덩이를 한껏 추켜둔다. 저 봄날의 밀어(密語)가 달콤하다.예천 지보면 대죽리로 간다. 언총(言塚) 즉 말무덤을 만나기 위해서다. 시골길을 한참 따라갔지만 안내판이 없다. 돌고 돌아 마을 입구에 닿았을 쯤, 저만치 조그마한 표지석이 보인다. 표지석 옆으로 갈라진 작은 들길로 가란다. 들길을 따라가다가 솔숲이 우거진 곳으로 방향을 튼다. 길이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다. 길옆으로 말(言)과 관련된 격언·속담이 새겨진 돌비석이 띄엄띄엄 줄지어 있다. 그것을 읽어가며 올라가니 평평한 등성이다.등성이 아래로 논밭이 펼쳐져 있고 마을이 길게 자리 잡았다. 마을을 등지고 돌아서니 말무덤이 보였다. 길을 건너 대여섯 칸쯤 되는 계단으로 올라섰다. 말무덤이라 표시된 둥그런 무덤 위에 풀이 자욱하게 덮였다. 이곳에 죽음의 형체도 없는 말(言)을 묻었다니, 말부터 기이했다.말무덤을 가운데 두고 노란 민들레가 지천이다. 민들레 꽃무리를 무심히 바라보다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방시레 웃는 민들레에게 말을 걸었다.“너는 아니, 이 무덤이 생긴 이유를?”“알지. 내가 이래봬도 이곳 토박이거든.”“한 번 들어볼까?”“사오백 년 전이었어, 이 마을에 각성바지들이 모여 살았거든. 그런데 사소한 말 한마디가 불씨처럼 틔더니 문중 간에 싸움이 일어난 거야. 그 싸움은 쉬이 끝나지 않았어. 그들은 얼굴만 마주치면 불을 뿜는 거야.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었어.”“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각 문중 대표들이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모였어. 그런데 대표들도 자기 말만 옳다고 우기며 다른 사람들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았어. 갈수록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엔 또 싸움으로 이어졌지.”“그럼 다른 문중과는 왕래를 안 하고 살면 되지 않았을까?”“한 마을에 살면서 그럴 수 없잖아. 골목만 나서면 마주치게 되는 걸. 또 이웃 이야기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다 들리잖아. 안 좋은 소문은 더 빠르게 퍼지고 말이야.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다니니까 사람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는 거야. 툭 건들기만 하면 펑 터져버렸지.”“다들 엄청 예민했나 보네.”“어느 매미소리 요란한 오후였어. 마을 가운데 정자에서 또다시 해결책을 논의하려 문중 대표들이 모였거든. 옥신각신 또 시끄러웠어. 그때 마침 지나가던 나그네가 왜들 그러느냐고 물었어. 자초지종을 다 들은 나그네가 처방을 내려줬어.”“어떻게?”“각 문중에서 뚜껑 있는 항아리 하나씩을 준비하시오. 그리고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항아리에 다 쏟아 담으시오. 그런 후 뚜껑을 꼭꼭 닫아서 무덤을 판 후 함께 묻으시오. 그러면 이 마을이 조용해질 것이오. 그러고 사라졌대.”“그렇게 해서 묻은 것이 말무덤이구나.”“그렇지. 참 희한하게도 말무덤을 만든 이후론 마을이 조용해지면서 평화를 되찾았다는 거야.”말무덤을 둘러본다. 저 안에 말이 묻혀 있다. 수백 년 전 그들이 뱉어낸 말들이다. 어쩌면 화근이 되어 마을을 혼란에 빠뜨렸을 말들이 항아리 안에 갇힌 채 잠들어 있다. 문득, 말들이 깨어나면 어쩌나 끔찍한 생각이 스친다. 내 모습을 본 듯 무덤 위의 민들레가 히죽 웃는다.말무덤에서 내려오는 길, 돌비석에 새겨진 ‘귀는 크게 열고 입은 작게 열어라.’는 말에 눈길이 간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험담하던 지난날의 한 순간이 머리에 스친다. 귓불이 훅 달아오른다.쉿! 자나 깨나 말조심.
2021-09-22
양태순수필가 추석이 코앞이다. 차례상에 올릴 제수용품을 메모지에 적은 후 식탁 구석으로 던져둔다. 모레쯤 시장을 한 바퀴 돌아야지, 혼잣말을 해본다.한때는 설레는 추석이었다. 선물을 들고 오는 언니 오빠들 기다리느라 꼬맹이들은 골목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해가 진 후에도 누군가의 집에 멀리 떠났던 식구가 돌아왔다. 저녁 늦도록 발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한 마을을 둥그런 달님이 반겨주었다.집집마다 고된 손에서 기쁨이 피어났다. 안팎으로 나뉘어 그릇 닦고 전을 부치고 청소하느라 마당을 도리뱅뱅이질 했다. 밤에는 멍석을 펴고 두레상에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다. 누가 예쁘게 빚는지, 누구 개수가 많은지 내기도 하면서 서로 놀리고 깔깔대느라 팔월의 밤은 깊어 갔다. 그렇게 날이 이울도록 어린 마음에는 분홍 물이 남실댔다. 우리 집은 인절미도 했다. 안반에 찰밥을 올리고 꿍떡꿍떡 떡메를 쳤다. 아버지와 오빠는 떡메를 치고 엄마는 밥을 욱여넣었다, 세 사람의 손이 장단에 맞춰 엽렵했다. 밥알이 떡이 되기까지 흥겨운 리듬은 귀로 듣는 춤사위였다. 초록 고물을 입은 인절미는 색이 고와서 자태가 우아했다. 씹으면 말랑하고 고소해서 입맛이 당겼다. 맛이 절미라고 인절미가 되었다는 말이 딱 맞았다.추석을 맞이하는 마음은 처지에 따라 변했다. 어릴 적에는 선물꾸러미와 인절미 생각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무슨 선물을 사야 할까 고민했다. 결혼해서는 어떤 음식을 차릴지에 신경 쓰였고, 종일 지지고 볶을 일거리에 괜히 명절이 있다고 투덜대는 마음이 컸다.올 추석 마중은 마음이 무겁다. 유례가 없는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으로 모임의 자유가 없어졌다. 또한 지역 간의 왕래가 조심스러워 동기간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대신 목소리로 안부를 전하고 건강해야 다음을 기약한다며 아쉬움 꾹꾹 담아 길게 늘여 보낸다. 추신으로 몸은 멀어도 마음만은 가까이 하자 덧붙인다. 더욱이 어머님의 갑작스런 투병으로 경황이 없다.어머님은 집안의 중심축이다. 결정권을 가져서가 아니고 경제적인 물주여서도 아니다. 형제들 사이에 기름칠을 하여 어머님을 중심으로 관람차처럼 적당한 거리를 벗어나지 않게 하는 축이었다. 추어탕 끓였다 불러모으고, 곰국 끓였다 나눠 주고, 오곡밥 먹으러 오라 기별을 했다. 명절을 비롯하여 기념일은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정을 쌓고 마음을 나눌 기회를 만들었다. 덕분에 시댁이 낯설던 내가 얼굴을 못 보면 궁금하고 보고 싶은 사이가 되었다. 어머님과 명절을 같이 보낸 지 삼십여 년이 되었다.어머님은 손이 컸다. 무엇이든 많이 해서 조상님께 올리고 자식들 먹이려고 일을 크게 벌였다. 그래서 음식 장만할 때 불퉁거릴 때가 있었다. 돌아보니 어머님을 돕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속 좁게 꿍얼거렸다는 후회가 든다. 아이들이 품을 떠난 지금은 투덜댔던 그 추석이 삼삼하다. 기름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어른과 아이들 서로 무탈하게 웃고 떠들었던 날들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수시로 설거지통에 손 담그며 앞치마 마를 새 없이 부산했던 옛 추석이 좋았다 싶다.사라져가는 추석 풍경이 아쉽다. 가족을 웃고 울리던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예전과 달라졌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인사차 들고나는 손님들로 들썩거렸던 분위기와 정겨운 말들도 건조해졌다. 아예 추석 인사말이라는 글귀가 정해져서 나온다. 그 시절 학교에는 운동회를 열었고 운동회는 학생들만의 놀이가 아니었다. 마을마다 어른들이 학교로 모였다. 줄다리기와 손님찾기 게임, 계주 달리기에 참여할 선수를 뽑아 열심히 응원하고 막걸리잔 기울이며 마음껏 즐기는 날이었다. 더이상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아련하다.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일하기 싫어 꾀병을 부리고 싶었던 명절이었다. 요즘은 가족끼리 송편을 빚었으면 싶고, 전도 푸짐하게 지져서 이웃과의 정을 수북하게 쌓았으면 싶다. 주고받는 인사에도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은근하게 마음을 전했던 옛 추석이 되기를 꿈꾼다. 지나간 것을 손으로 당겨 와 마당귀에 붙박아 놓을 수 없는 법인데 알면서도 꿈을 꾸는 내 마음을 모르겠다.달아, 내 마음이 보이니?
2021-09-15
정미영 수필가 사랑은 하나의 점이다. 임계점. 한 물질이 다른 성질의 물질로 변하는 계기를 임계점이라 하는데, 나에게 사랑은 임계점과 같다. 무뚝뚝한 내가 어설픈 애교를 부리며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나를 만난다.나는 첫 번째 점을 하나 둘 셋 쿵짝짝, 왈츠를 추며 찍었다. 초등학교 5학년 체육 시간에 세계 민속춤 중의 하나인 왈츠를 배웠다. 선생님은 스텝을 가르쳐 주시며 남학생의 왼손바닥에 여학생의 오른손을 얹고, 여학생의 왼손은 남학생의 오른팔 위에 얹으라고 하셨다.우리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싫다고 소리를 질렀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데 어떻게 손을 잡느냐고 너스레를 떠는 아이도 있었고, 남자끼리 여자끼리 하자고 타협하는 친구도 있었다. 시끄러운 소동에 선생님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셨다. 체육 실기를 왈츠로 한다며 잘 따라하라는 엄명을 내리신 것이었다.먼저 인사법부터 시작했다. 발의 움직임이 조화를 잘 이루어야 멋진 왈츠를 출 수 있겠지만, 그 보다 인사를 제대로 해야 격식이 갖춰진 우아한 춤이 완성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들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동작을 익히기에 바빴다.선생님이 카세트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움직였다. 멋쩍은 듯 웃으며 딴청을 피우던 아이들이 서서히 리듬을 탔다. 선생님은 우리들이 어느 정도 기본기를 익혔다고 생각하셨던가 보았다. ‘밀과 보리가 자라네’ 노래의 어린이 왈츠 율동을 가르쳐 주시며 모둠별로 시험을 본다고 하셨다. 마주보는 짝지와 손뼉을 치기도 하고,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짝을 바꾸는 동작을 가르치셨다.노래를 따라 부르며 연습하던 중이었다. ‘친구를 기다려 한 사람만 나오세요. 나와 함께 춤추세’를 부르며 짝을 바꿨다. 그런데 내 앞의 남학생이 빙글 돌면서 다시 제자리로 왔다. 자기는 짝을 바꾸기 싫다면서. 나는 반 아이들이 보는 앞이라 얼굴을 붉히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속으로는 친구의 엉뚱함이 싫지 않았다.우리 둘은 소꿉놀이 친구였다. 스스럼없이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놀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애를 멀리했다. 어느 날 알게 된 친구 아빠의 대학 교수라는 직업이 부담스러웠다. 두 집안의 생활 형편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졌다. 열등감은 때로는 진실이 아닌 것도 사실인 것처럼 믿게 만들었다. 친구네를 들락거리며 마주쳤던 그 애 어머니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나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구나, 스스로 단정 짓고는 마음 아파했다.그런 나 자신이 싫어 마음속에 울타리를 쳤다.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려던 친구의 마음이 넘어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사실은 그 애를 바라보는 것마저 설렜던 나 자신을 단속하기 위한 처방이었다.친구의 진심이 나비처럼 춤추듯 날아든 것은 순전히 왈츠 때문이었다. 설레며 두근거리는 내 마음의 박자와 왈츠의 리듬은 기분 좋게 일치했다. 그렇게 첫사랑은 왈츠를 추며 내 마음에 점을 찍었다. 임계점. 열등감이 옅어지며 더 이상 친구 앞에 섰을 때 주눅 들지 않았다. 예전처럼 친구의 집 서재 가득 꽂혀 있던 책을 빌려 읽기도 하고, 마당 한 켠에 붉게 익은 석류를 따다 함께 나눠먹기도 했다.우리 둘이 만들어 갈 이야기는 석류 알맹이처럼 빼곡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학년이 끝나갈 무렵, 친구네가 멀리 이사를 가면서 끝이 났다. 새콤달콤하면서도 아쉬운 기억만을 남긴 채로. 그렇게 시나브로 내 기억 속에서 그 아이는 잊혀졌다.아니, 잊힌 줄 알았다. 살면서 문득 나도 모르게 ‘밀과 보리가 자라네~’ 노래를 흥얼거릴 때면, 고개가 저절로 까닥거려지고 발장단은 신명이 난다. 그러면서 유난히 머루처럼 까맣던 친구의 눈동자를 아스라이 떠올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첫사랑을 만날 것만 같은 기대 때문일까? 어렸을 때 내 눈빛이 가장 반짝였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리움이라는 또 다른 점 하나를 찍는다.
2021-09-08
배문경수필가 창밖에는 장맛비가 내린다. 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을 엘렌 그리모의 피아노로 듣고 있다. 귀에 익숙한 선율에 조금의 슬픔과 고요히 차오르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단순하고 아름다운 선율 때문일 수도 있고 아련한 시칠리아노 리듬 때문이거나 누군가를 떠나보낸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작가 최인호를 본 적이 있다. 2011년 말께 동리문학상을 수상하기 위해 경주를 방문했을 때였다. 작은 체구의 그가 위트가 섞인 대화를 하며 식장으로 들어설 때의 모습을 기억한다. 더더욱 침샘암을 앓고 있을 때였다. 그는 연단에 서서 수상소감을 밝히며 글 잘 쓰는 작가인 자신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 또한 한 사람의 독자로 그를 위해 기도했다. 오년의 투병이 그를 기다렸고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평화로워졌을 사후에 책으로만 그의 문학세계를 읽을 수 있었다.십여 년이 지난 어제, 지인 몇몇이 모여 그의 에세이집 ‘인연’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암 진단 후 인생이란 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을 통해 얻고 기억해낸 추억을 가감 없이 혹은 이야기 형식으로 남겨 둔 내용이었다. 한 사람의 생애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연이 만들어지고 흩어지는지를 보았다. 역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천재작가답게 편안하고 솔직담백한 글들이 길고도 짧은 내용들로 가득 차있었다.이름만 대면 알만 한 사람들로 빼곡했다. ‘고래사냥’으로 의기투합했던 배창호 감독과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안성기 배우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다양한 감성을 전달했다. ‘바보들의 행진’, ‘깊고 푸른 밤’과 함께 그 시대를 대변할 아이콘들이 된 영화들을 만나보니 역시 작가의 끼와 입담이 느껴진다. 청바지와 장발의 그 시대가 실로 그립기까지 하다.인연만큼 인생 전반을 휘어잡을 단어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타로 나뉜 인연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가. 정자와 난자인 부모를 통해 이 땅에 삶의 의무를 띠고 태어난 이후부터 나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만들어지는 혈연관계와 태어난 땅에 의해 국가가 결정되니 인연이란 얼마나 큰 범위며 나를 규정짓는 잣대일까. 침략과 전쟁을 치르며 고통 받던 대한민국이 가난을 벗고 발전해가는 나라로 거듭남에 이 또한 감사한 인연이다.며칠 전, 오년을 함께 근무하던 동료가 직장을 관두게 되었다. 나간다고 할 때는 붙잡으려고 했지만 일이 힘들어 몸피가 반쪽이 된 모습에 잡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붙잡는 손에 힘이 풀렸다. 그래도 빈자리에서 불어오는 찬바람과 곳곳에서 함께 했던 추억들이 떠오르자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바람 불고 비 오는 시간들을 함께 견딘 날들이었다. 잠시 공원을 거닐며 지난 시간을 회상해보니 인연이 준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느끼게 했다. 인연은 어둡고 캄캄한 바다라는 인생을 항해할 때 어둠속에서 길을 제시해 주는 등대인지도 모른다. 그 등대를 벗 삼아 힘든 자갈길이며 진흙길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걸을 수 있었다.최인호는 전찻길을 건너다 철로에 떨어진 동생의 벗겨진 꽃신을 집어 들다 전차에 무참히 밟힌 어린 누이를 ‘죄가 있다면 이 가엾은 누이는 이 추악하지만 그래도 아름답고, 이 야비하지만 그래도 거룩한 생을 스스로 포기했다’라고 표현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쓴 작가의 깊은 마음속의 아픔이 아련하게 통점을 자극한다.결국 우리는 삶의 고리를 풀고 자유를 찾아 한 마리 새로 날아오를 때까지 얽히고설킨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더러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잡거나 더러 빈손에 좌절하지 않는 생애를 만든다. 하늘 높이 날던 조나단도 혼자 높이 멀리를 향해 날갯짓을 했을 때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래서 함께 할 때 더 많은 힘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나와 당신의 행보이기도 하다.나른한 봄날의 하루, 한 여름의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음악 속에서 느껴진다.아름다운 삶을 함께 나누어보지 않으시렵니까?
2021-09-01
백후자 수필가 “합시다. 러브. 나랑, 나랑 같이.”“좋소. 대답이 늦은 만큼 신중했길 바라오. 이제 무엇부터 하면 되오?”외나무다리 위에 마주 선 두 주인공, 국경을 초월하고 신분을 넘어선 애틋함이 내면에서 고요히 흐른다. 다리 아래로는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개울물이 그들의 마음을 안 듯 모른 듯 무심히 흐른다. 묵계리에서 길안천에 놓인 하리교를 건너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계곡의 물소리가 연인의 속삭임처럼 감미롭게 들린다. 송암계곡을 거쳐 송암폭포에 다다르니 시원하게 내뿜는 물줄기가 가슴팍의 땀까지 식혀준다. 폭포를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자연 속에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만휴정이다. 만휴정 안으로 들어가려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외나무다리는 개울 하나 건너는 길이에 한 사람이 설 수 있는 폭이다. 나보다 일찍 온 연인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외나무다리 위에 마주 선 연인의 모습에서 그 자리에 섰던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이 보인다. 애틋했던 그 모습과는 다르게 달달하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이 장소가 연인들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한 것 같다. 연인들도 이곳에선 드라마 속 주인공 못지않은 멋진 배우다. 얌전하게 또는 깜찍하게 그 순간을 연기하며 즐긴다. 풋풋하고 사랑스럽다.내가 건널 차례다. 여주인공처럼 조신하게 걷는다. 어깨가 좁고 가냘파서 한복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그녀, 그러나 건장한 사내 못지않게 당차고 용맹했던 그녀가 섰던 자리에서 멈춘다. 시대가 주는 아픔에 사랑마저 아파야 했던 그들의 삶이 찐한 연민으로 자리 잡는다.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이 자리에 서서 사랑타령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냥 건너기엔 아쉬워 나도 여주인공 흉내 내며 추억 한 장 찍는다. 어느새 또 다른 연인 한 쌍이 줄 서 기다리고 있다. 새로 이룰 사랑도 없는 내가 얼른 다리를 건너 만휴정 안으로 들어간다. 안동 만휴정은 조선의 문신 김계행(金係行)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앞면 세 칸·옆면 두 칸이며, 앞면 쪽 세 칸은 마루 형태로 개방하여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구조이다. 양쪽 툇간에는 온돌방을 들였는데 학문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번잡하지 않고 소박해 보이나 품위가 느껴진다. 옛 정취를 오롯이 담고 있는 그곳에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물소리 새소리 자연의 소리가 맑다. 불어오는 바람에 내 안의 탐욕이 모두 실려 간 듯 마음이 편안하다.보백당 김계행은 청백(淸白)을 보물로 삼았던 인물이었다. 만휴정에 걸린 편액에 그의 청렴한 마음이 한 구절 시로 반듯하게 깃들었다.‘吾家無寶物(오가무보물) 寶物有淸白(보물유청백)우리 집엔 보물이 없으니, 오직 보물이 있다면 청백뿐이니라.’청렴, 이 한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산들바람이 개울물을 타고 올라와 만휴정 우물마루에 앉는다. 보백당 선생이 산들바람과 벗하며 개울 건너 자연의 벗들도 부른다. 물 흐르듯 시 한 수 흘러나오고도 남을 듯하다.만휴정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외나무다리가 보인다. 여전히 사진 찍을 사람들이 띄엄띄엄 줄 서 있다. 다리 위, 마주 선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선 별이 총총히 쏟아진다.“통성명부터.”“아, 나는 고가 애신이오. 귀하의 이름은 아오.”두 주인공의 교차했던 감정이 한 방향으로 흘렀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이 가만가만 누르며 다가섰던 그 감정을 찾아보려 애썼다. 그 감정, 백분의 일도 찾지 못했다. 어찌 감히 그 감정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서로를 향한 마음이 차고 넘쳐 개울물을 타고 흘러 폭포수가 되었는걸.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다면 즐겨라. 외나무다리 위에 섰든, 폭포수 천 길 낭떠러지 앞에 섰든 함께라면 무엇이 두려우랴. 그들의 사랑이 그랬다. 사랑이냐, 조국이냐. 그녀는 조국을 택했다. 그는 그녀를 택했다. 그녀는 나라를 지키고 그는 그녀를 지켰다. 둘은 한 방향으로 걸었다. 사랑은 외나무다리를 걷듯 둘이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2021-08-25
양태순수필가 비가 온 뒤의 연못에 연잎이 활짝 기지개를 켰다. 해님은 찡긋 미소를 보내고 개구리가 연잎에 앉았다 물속으로 뛰어든다. 밀려가는 동심원 자락에 얹혀 있던 작은 곤충이 스르륵 사라졌다. 연못은 하늘과 구름을 담은 채 소리를 지웠다. 숨을 불어넣고 싶은 고요다.가만히 물속을 들여다본다. 비로 인해 한바탕 난리를 겪은 생물들이 연잎 아래서 동태를 살피고 있는지 기척이 없다. 손부채질을 하며 한참을 서 있으니 물 아래서 움직이는 것들이 있는지 물방울이 뽀글 일었다. 자세히 보니 붕어가 떼를 지어 왔다리갔다리 커다란 연(蓮)을 지분거린다. 살풋 간지럼을 타던 연들은 이내 새침한 표정이다.새침데기 연을 웃게 하는 것은 바람이다. 산바람 한줄기 징검징검 건너자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초록웃음을 푸르르 뱉어낸다. 돌연 연못에는 생기가 돈다. 어디에 몸을 숨겼다 나오는지 물맴이 맴을 돌고 게아재비 느릿느릿 물위를 걷는다. 몸을 낮추어 헤엄치던 붕어들도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더위를 피해 낮잠을 즐겼던 오리도 소리로 존재를 알린다.어미오리 뒤에서 새끼오리들의 해맑은 눈동자가 분주하다. 줄을 벗어나 곤충들을 쫓다가 부리나케 어미 품으로 달려오곤 한다. 발가락이 물속에서 어찌나 바지런한지 이쪽을 빙글 돌아 저쪽으로 쪼르르 간다. 어미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궁금한 것을 곽곽 물어댄다. 어미오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시간이 걸려도 재촉하지 않고 혹시 닥칠 돌발 상황을 위하여 항시 가시거리를 유지했다. 자리를 맴돌며 곁에 있는 새끼오리에게 먹이를 잡아주고 무심한 듯 깃털을 골랐다. 틈틈이 길게 목을 빼 멀리 있는 새끼가 들을 수 있도록 꽈~악 울었다. 새끼오리가 돌아오면 날개를 털어 앞장서 길을 잡았다.새끼를 향한 사랑과 서로를 온전히 믿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모습이다. 나는 교육이란 이름 아래 아이들에게 늘 재촉과 채근을 했다. 정한 목표보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모진 말을 해서 상처를 준적도 있다. 어미오리가 새끼를 기다려주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몰래 부끄러움을 삼킨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모자랐던 엄마였음을 인정하며 둘레길로 걸음을 옮겼다.연못 둘레를 걷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이다. 나무가 있고 그늘이 있고 새소리가 있다. 시원한 바람까지 보태져 피부가 보송해진다. 가볍게 걸으며 연꽃이 언제 피려나 눈길을 주었다. 연들이 막바지 작업을 하는지 수런거리는 잎들 위로 색을 머금은 봉오리가 어른거린다. 곧 연꽃이 가득할 연못을 상상하며 사진 찍으러 와야지, 했다. 그때 ‘으으음, 으으음’ 소리가 들렸다. 오리의 울음이 이상했다. 개구리가 짝짓기를 할 때면 크게 울듯이 오리도 짝짓기를 하려나 싶었다. 멈춰서 귀를 기울였다. 오리가 저런 소리를 내는 것이 신기해서 친구들에게 알려주려고 바짝 귀를 세웠다. 마침 내 곁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이 황소개구리는 외래종, 덩치가 크고, 하면서 지나갔다. 웬 황소개구리? 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황소개구리의 울음이 황소울음 같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나는 눈에 보이는 오리만 생각한 아둔한 머리를 탓하며 황소개구리를 찾아 주위를 둘레거렸다. 수풀에 몸을 가린 황소개구리는 소리만 들릴 뿐 보이지 않았다.하마터면 실수를 할 뻔했다. 내가 가는 연못에 있는 오리는 꽉꽉 울지 않고 으으음 운다고 했다면…. 아찔하다. 요즘은 이것과 저것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이 한 박자 늦어져 뒷북일 때가 있다. 내 머리가 더이상 말랑하지 않고 굳은돌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그것도 모른다 숙덕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잰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오리는 꽉꽉 울어 새끼를 부르고, 황소개구리는 ‘으으음’ 울어대는 연못의 여름 오후가 산그늘을 늘이며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다가올 저녁에게 자리를 내주는 쨍쨍했던 햇살의 뒷모습이 불그레하다. 연못의 주인이 바뀌려는 지금 왠지 모를 숙연함이 찾아온다. 나는 연못에 어물거리는 여름을 연잎에 올려두고 후 불어본다. 또르르 달아나는 시간들을 손바닥에 가두고 싶은 오후다.
2021-08-18
정미영 수필가 개구리가 없어졌다. 양동이에 넣어두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들이 뒷산에 갔다가 개구리를 데려와 거실에 들여놓으려는 것을 내가 손사래 치자 현관에 두었다. 양동이 반쯤 물을 채우고 비닐봉지에서 개구리를 꺼내 담더니,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책을 덮고도 모자라 신발 한 짝까지 올려놓았다.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개구리가 없어진 것이다. 공기가 없으면 죽을 거라 여긴 아들이 손톱만큼 구멍을 열어두긴 했다. 그 곳으로 나온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온 집을 이 잡듯 들쑤셔 찾았다. 신발 속에 들어갔는지, 소파 밑에 들어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식구들을 들들 볶으며 찾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딘가에서 툭 튀어 나오거나 방 안에 죽어있을 거라 생각하니 한시라도 빨리 행방을 알고 싶었다.주말 아침부터 한 바탕 개구리 소탕 작전을 폈다. 구석구석 한참을 찾았다. 온 식구가 기운 없어 더는 못 찾겠다며 주저앉았다. 나도 지칠 대로 지쳤다. 빨래나 널어야지, 베란다로 가서 햇볕 잘 받을 수 있게 탁탁 펴 널었다. 간만에 베란다 물청소도 해야지, 배수구 옆에 세워둔 빗자루를 들었다.순간 배수구 안에 까맣고 동그란 것이 보였다. 화분에 물주다가 잔돌이 몇 개 빠져 배수구를 막았거니 했다. 손으로 꺼내려다 흠칫 물러섰다. 그 속에 뭔가 움직였다. 나는 두서너 발자국 뒤로 더 물러서서 작은 구멍을 유심히 살폈다.개구리가 쑤욱 튀어 나왔다.드디어 찾았다. 그 작은 구멍에 숨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뼈가 분명히 있을 텐데 작은 구멍에서 길쭉한 고무풍선처럼 몸통을 빼낸 것이 마술 같았다. 저렇게 좁은 틈을 들어갈 수 있으니 양동이쯤이야 쉽게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개구리는 양동이 속에서 물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현관에 있던 개구리가 다른 방으로 가지 않고 마루를 가로질러 배수구로 향한 걸 보면 분명 그러했으리라. 간간히 배수구를 타고 흘렀을 물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자기가 살았던 뒷산의 작은 물줄기를 찾아가듯 밤새 바쁜 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그 물은 태어난 보금자리요, 생명을 이어주는 감로수기에.나도 언젠가 물줄기를 찾아 헤맨 적이 있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와 산에 나물을 하러 갔었다. 바구니 가득 나물이 채워질 때쯤이면 목이 탔다. 조금 전까지 신이 나 콧노래를 부른 나였지만 이젠 목마르다고 짜증을 냈다. 할머니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참아 봐라. 이 근방 어디 샘이 있었다 안카나.”나를 다독거렸다. 쉽게 찾을 것 같던 샘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옹달샘 찾아 비탈을 헤맸다. 나는 토끼마냥 그 뒤를 쫓았다. 드디어 물줄기를 찾았다. 땅에 귀 기울이기를 반복하던 할머니가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나무뿌리 근처에 정말로 손바닥만한 물이 고여 있었다. 겨우 목을 축일 정도였지만 나무 향이 깊게 밴 탓인지, 달콤했다.그 물맛이 그립다. 요즈음은 산을 찾아도 선뜻 계곡물에 목 축이기가 겁난다. 물이 오염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은 생명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므로 모두가 보호해야 한다. 나 또한 내 작은 관심이 물을 지키는데 제일이라 여겨 실천하는 것이 있다. 쌀뜨물을 버리지 않고 미용 팩으로 활용한다. 어머님께 배운 것인데 쌀뜨물의 윗물을 버리고 남은 것에 약간의 밀가루와 올리브유를 섞어 걸쭉해질 때까지 젓는다. 그것을 얼굴에 펴 바른 뒤에 약간 꼽꼽해지면 떼어낸다. 곧장 물로 헹구면 물을 더 오염시키므로 꼭 떼어내고 얼굴을 씻는다.물은 누군가에게 소망이고 희망이니 참으로 귀하다. 가뭄이 심할 때는 농부의 소망이 되고, 물 부족 국가에서는 희망이다. 오늘 같이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은 시원한 물이 더 생각난다. 나는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맨 후,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물줄기를 찾아서 뒷산으로 향한다.
2021-08-11
배문경 수필가 사람들로 웅성거리던 자리에 먼지가 내려앉았다. 번화했던 거리의 가게들이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았다. 가까운 은행도 이 환난을 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예전처럼 붐비지 않는다. 은행을 찾기보다는 집에서 손가락으로 인터넷 뱅킹을 이용했고 그 편리함으로 인해 은행을 찾는 횟수는 차츰 줄어들었다. 그래서일까. 영업이 어렵다던 은행은 결국 쇠문을 굳게 닫았다. 한여름 절규하듯이 우는 매미소리가 오히려 적막하게 들린다.몇 년 전, 병원 일층에 있던 은행이 길 건너편으로 이전을 했다. 큰 도로 하나를 건너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감수할 정도의 불편함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큰 글씨로 ‘임대, 매매’라고 써놓았다. 이 비싼 빌딩에 이만한 평수를 임대해서 운영하는 일이 만만찮았을 것이다. 빈 은행에는 버려진 집기류와 은행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홍보물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의 흔적이 사라지니 사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둠 속으로 고요히 사라진다.사라진 것은 은행만이 아니다. 근무지의 응급실이 문을 닫았다. 밤늦도록 흥청망청하던 술꾼들이 사라지고 잡다한 사고가 줄어들자 찾는 이도 많지 않았다. 그로인해 응급실의 밤은 전등만 환했다. 십여 년 같이 근무한 동료가 일자리를 잃었다. 권고사직으로 얼마 동안 실업수당은 받겠지만 갑자기 직장을 잃은 그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다. 24시간 환하던 공간이 저녁 6시면 자물쇠로 채워지니 가슴이 답답하다. 다들 어디로 내몰리는 것일까.십년이 넘도록 사용하던 사무실 문을 마지막으로 닫고 돌아섰을 때, 창가에 두었던 화분 속 꽃들도 말라비틀어졌다. 울컥했던 그 시간이 지나가서 차라리 다행이다. 과장실을 혼자 사용하다 직원이 여러 명인 검진실로 옮기며 그동안 사용했던 집기류와 살림살이를 꺼내놓자 구석구석 박혀있던 짐들이 두 세배로 늘어났다. 버리려고 내놓은 손때 묻은 물건들을 보며 지난날을 떠올렸다.삶이란 내려놓을 때 성숙해지는 것일까.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과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님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직원이 다 빠져나간 후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 은행에서 수명이 다한 물건 서너 개를 가져왔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앉았던 고객용 패브릭소파와 버리기 아까운 소품 몇 개를 챙겨왔다. 자물쇠로 채워진 서랍장의 열쇠가 한 꾸러미다. 열쇠에 매달린 종을 빼자 뎅그렁 소리가 울린다. 마술처럼 여기저기 닫혀있던 문이 열릴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것 같은 쑥부쟁이가 그려진 기왓장도 챙겼다. 쑥부쟁이 가득한 들판으로 나비 서너 마리가 날갯짓을 하자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듯하다. 버려진 기억이 누군가의 추억에 편입되었다.누군가가 떠나야만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선다. 물건도 낡아 버려야만 새 물건이 그 자리를 메운다. 하지만 사람이 일하던 자리를 때론 로봇이 차지한다. 좀 더 편리하고 쉽게 일하고자 만든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메우고 일자리를 빼앗는다. 나의 자리 너의 자리가 안전하지 못하다.많은 것을 잃고 헤매는 지금의 이 상황들이 가상의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일로 끝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존을 위한 일자리가 있어야만 그나마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이 소박한 바람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사치가 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지금도 은행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환한 미소와 친절한 목소리로 직원이 내게 말을 걸 것만 같다. 혹여 그들이 떠난 자리가 깨끗이 정리된 후 AI가 나를 맞는 것은 아닐까?“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나태주 시인의 ‘떠난 자리’가 생각난다. “나 떠난 자리 너 혼자 남아 오래 울고 있을 것만 같아 나 쉽게 떠나지 못한다. 여기 너 떠난 자리 나 혼자 남아 오래 울고 있을 것 생각하여 너도 울먹이고 있는 거냐? 거기.”
2021-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