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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죽도시장 할머니 막걸리집

그 한 평도 안 되는 막걸리집팔 십 생애의 생업(生業)찐 계란과 소금밖에 없다한 놈이 한 병 시켜먹으면 오 백 원이지만잔술 넉 잔 팔면 팔 백 원이다나는 적당히 계산적이다앉아 마실 자리도 없으니집세 걱정도 상대적으로 적으며알아서들 챙겨 마시고 간다나는 최소한 의자 몇 개는 준비하고 있으며누군가를 기다릴 줄 안다, 그 가난의 자리날품팔이의 고단함 대신할 십시일반의개념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저렇게 알아서 마시고 길을 나서니나의 권력도 적당하고 정당하다들락날락 온갖 잡놈들 종일 바쁘다허리가 아파도 사람구경이 좋다지랄하는 놈, 외상하는 놈 일체 없다인생에 있어 공짜라는 것이 없지 않겠는가사람은 기본적으로 싸가지가 장착되어 있다바닥이라고 바닥을 치지는 않는다배워서가 아니라 선험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그 가치를 스스로 지향하고 있다우리는 남루해서 눈부시고 그렇게 살아간다가치를 부여하지도 않고 그 의미도 모른다덧셈 뺄셈 구구단 정도면 충분하다인생의 일몰이 분주해서 행복하다이만한 남는 장사 또 없으리.원고료가 두둑하면 늘 가고 싶은 곳이 죽도시장 할머니 집이다. 더 돈을 버는 느낌이다. 천천히 한잔 마시면서 내가 생산한 결과물들에 대해 심도 있게 비평한다. 쓸데없이 진지하다. 수없이 많은 입술들이 닿았을 저 잔에 노을이 슬쩍 걸터앉는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3-05

검정고무신-오천초등학교 가을운동회

신새벽 찬물 한 그릇 마시고 안개를 뚫고 어제 씻어 놓은 찹쌀떡처럼 찰진 검정고무신을 신고 양철대문을 밀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도 걷고 있습니다 식구들에게 여러 모로 미안스럽지만 결코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뻔뻔하기도 하고 많이 닳았지요 때는 덜 타지만 도무지 멋대가리 없는 검정고무신이 아직도 신작로를 걷고 있습니다. 이슬에 미끄러지는 것이 약점이고 빗물에 강한 것이 장점이지만 어정쩡한 위상(位相)과 얕잡아 보는 시선에는 속수무책이었지요 난들 왜 기차표 운동화이고 싶지 않았겠어요 단지 질기다는 경제적 이유로 발바닥과 열을 낸 나날들 그렇게 소모되어도 따뜻한 것이 되고 싶었지요 가끔 송사리를 가두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했음이 너무 기특했어요 아직 걷고 있음이 사양하고픈 축복이지만 그렇지만 날이 저물어도 우리는 가야 해요 열심히 달리면 공짜로 공책과 연필도 생기는 그 화려한 축제는 가을 하늘에 고스란히 남아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해요. 소풍과 더불어 운동회는 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둘러앉아 음식을 나눈다. 알싸한 사이다는 왜 그리도 달콤한지, 세상을 다 얻은 듯 했다. 펄럭이는 만국기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뛰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꿈이 얼마나 원대한 것인지 절실히 느껴진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2-26

민주교사 정영상

민주교사 정영상은 잠결에 웃으며 심장마비로 죽었다 모든 죽음이 마찬가지다 청량리에서 밤기차를 타고 제천에서 내려 단양으로 총알택시를 갈아타고 정영상의 죽음을 확인하러 갈 때 어둠은 아늑하게 우리의 삶을 확인해 주었다 젠장,산다는 것이 눈물 한 방울로 정점을 찍어 살아갈 목표를 확인시킨다는 것 그 무심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관(棺)을 부여잡고 운들 무엇하리 살아 죄 한 점 없었던 사람이 어린 아들 딸 남겨 놓고, 마누라만 남겨 놓고 그렇게 간 죄가 많은 사람이 되어 떠났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이유도 없이 분노했다 정작 벌을 받아야 할 나는 멀쩡히 소주를 마시며 먼 월악산을 보고 있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마음이 저승에 닿아 강물로 흐르면서, 그가 굵은 손으로 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것, 그러나 그 감촉은 가을비보다 혹독했다 상(賞)보다 벌(罰)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 정영상은 결코 죽지 않았다. 정영상은 연일읍 출신으로 공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안동 복주여중에서 근무했으며, 전교조 활동으로 투쟁 중 심장마비로 세상과 이별했다. 내가 2학년 여름방학 때 임용대기 중이던 형은 자전거 뒤에 도시락을 묶어 화실로 출근하여 나와 자주 놀았다. 도시락과 막걸리를 나눠 먹으며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큰 자양분이 되었다. 털털거리는 그 자전거 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하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2-19

오일장 나이키 -오천 장날 2

장세(場稅)를 못 낼 형편이라외곽 담벼락 아래, 여기는햇살이 참 따끈해요그냥 모여 질끈 징검다리 놓아요종일 기다려 몇 단 판 봄나물파장 무렵, 눈길 끄는 저 신발 손주 생각기술력이 좀 떨어진다고나쁜 신발은 아니라네요식구들 거 다 챙겨요서울 것들, 눈여겨 보지도 않을 테지만임대료 유통마진 브랜드 파워세금까지 후려치고도 거뜬하다네요서민경제 기여한다고도 하고,그래서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더라도가야 할 길, 조여매고 가고 싶어요꼭 가요이류(二流)라도 일류 흉내 내면서결국에 가장 하류가 되면마음 편할 거라 생각해요나는 가당찮은 희망을 꿈꾸지 않아요옆 난전에서팬티도 몇 장 사서집으로거침없이달려볼까나.나이키도 닳는다. 오일장 나이키도 마찬가지다. 벤츠도 차가 막히면 속수무책이다. 모든 술은 다 취한다. 사람은 결국엔 죽는다. 나는 실용을 추구한다. 가난한 변명에 불구하지만 외형에 현혹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다. 별로 쓸모없지만 말이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2-05

죽여줄게요

죽도시장 새벽 세 시 자연산 잡어를 받아 여섯 시에 좌판 아지매들에게 도매로 넘기고 나서 해장술 하면 하루의 생업은 대충 마무리 그러나, 수줍게 한 할마시 다가오셔 아재, 혹은 죽은 거, 경매 안 되는 거 좀 주면 안 되것나 망설임 없이 즉답(卽答)한다 알았니더, 슬그머니 골목 뒤에 가서 남은 활어를 기절을 시키거나 아예 분질러 선뜻 팔라고 내어준다 시장의 교란이긴 하나 물러섬이 없다 경쟁은 비교의 우위가 아님을 몸으로 설파 뜻 모를 살생으로 하루를 구축함 오만 원이 이만 원이 되어도 그 잔잔한 거래, 그것이 적절한 환희가 된다 먹고 사는데 지름길이 있는가 직선이 곡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리 없다. 새벽 어시장 경매장에는 집어등을 보고 몰려드는 은빛 찬란한 오징어처럼 싱싱한 사람들로 눈이 부시다. 그렇게 삶은 치열하게 진행이 된다. 나는 경매가 정직한 거래라고 생각하지만 그 효율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나의 편견이리라. 경매를 떠나 간혹 상식을 벗어나는 이상한 거래를 하는 후배가 있다. 그는 스스로 약자이면서도 더더욱 약자의 편에서 살려고 한다. 그는 시장을, 세상을 아름다운 편견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1-15

몽주, 두루두루 넓은 꿈

나는 불후(不朽)를 생각하지 않았다 풀잎 끝 이슬이 곧 햇살에 추락해도 맑고 고운 뜻은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거친 바람과 빗속에서도 사람의 길을 지키고자 했다 약발 다한 왕조의 귀퉁이에서 버리면 산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징검다리가 되어 나 하나의 희생으로 명분이라도 생긴다면 참 즐거운 일, 운제산 기상이 훗날까지 이어지고 형산강 물길이 동해에 퍼지듯 사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구나 혹은 그럴 수도 있구나 반추하면서 나, 몽주, 꿈을 두루두루 펼쳐 세상이 아름답기를, 그 누구도 불후를 꿈꿀 수 없다 그래서 불후가 된다. 몽주 어른을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정치는 잡놈들이 하는 짓이다. 그런데 몽주를 영천에서도 팔고 용인에서도 판다. 세상살이가 그런 것이니 생각하면, 더욱 아득하다. 두루두루 넓은 꿈을 펼치기에는 세상은 협소한 비탈길이다. 버티고 살아야 한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1-08

하선대

포항 동해면 마산리와 입압면의 경계에 하잇돌이라고도 불리는 하선대가 있다. 왜 풍광이 좋은가 살펴보니 아득한 전설이 있다. 하늘의 내려옴 바다와 인간의 조화 그 궁극의 합일, 하선대는 바로 그런 곳이다. 연오랑 세오녀의 바다이기도 한 그곳은 드넓게 사람들의 넉넉한 삶의 배경이 된다. 윤슬이 반짝이는 곳 사람들이 천천히 거니는 곳 의식과 안목이 넓어지는 곳, 하선대에 서면 신화와 역사와 전설이 펄럭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제꼴 잘난 포악한 용왕이 개과천선하여 사람의 길을 따라 지극한 마음공부를 통해 지상의 평화를 열고 하늘의 근엄함은 이곳에서는 다정한 풍경이 된다. 하늘과 바다가 결혼을 한 곳, 이곳 하선대에서는 인간의 꽃이 핀다. 시시비비를 알고 수오지심을 알고 측은지심을 알라고 하늘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 하늘과 바다와 어울려 성장한다는 사실에 하선대의 바다는 자못 비장하지만 겸손의 끝에 선다. 열린 마음의 자세로 물길을 다듬고 바람을 길들여 하선대는 존재의 마지막에서 우리 곁에 남는다. 풍악은 필요 없을지 모른다, 우리 마음의 소리가 이미 각자의 가슴에 스며들어 있으니, 이 파도 소리가 그 증거가 아니겠는가? 한발 더 나아가 하늘과 바다가 우리를 궁휼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또 그것이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향하는 착한 연민임을 상기시키는 따스한 호흡임을 하선대는 증명한다. 그리하여 동해를 지나 태평양을 지나 우주를 뚫을 기세로 당당하지만 하선대는 늘 우리 곁에 있다. 누이와 같고 어머니와 같고 아, 아! 아버지와 같다. 평범한 바다라고 할 수도 있다. 전설이 보태지면 의미가 다를 것 같지만 암만 살펴봐도 평범한 바다다. 그런데 물소리가 좋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무책임하지만, 그냥 물소리가 좋다. 묻지 마라, 귀찮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12-25

진전리 구판장

경주에서도 포항에서도 어정쩡한 곳에 잔뿌리 내린 세월 이마 위의 잔설 소모되어 낡았어도 그래도 정갈한 시간이 진열되어 있네 별 아니면 올려다 볼 일 없는 냇물 아니면 내려다 손 내밀 일 없는 라면 끓이듯 간편한 삶 못마땅함이 보글보글 끓는 냄비와 같은 일상 솜을 씹듯 두부 한 점 우물거리면 그래도 달래양념장 향긋함이 콧등을 짚는다 코팅 된 과자봉지처럼 빛나던 시절은 언제였는가 달콤함에 저당 잡혔든, 그렇게 부풀어만 있었던, 기실 편방(偏旁)이거나 부수적(附隨的)이었던, 하산의 의미를 총총 재촉하며 바라보는 저 널려있는 시간과 사건들이여 문득, 처연하게 찬란한 아직 남아 있는 길의 보푸라기 반짝 빛나다가 사라지는 것들의 야무진 허술함 처마에 걸린 명태코다리가 바람, 바다, 산의 울음에 건조되면서 시간을 관통한다, 상처는 스스로 여며야 한다. 진전리는 오천에서 경주 기림사로 가는 길에 있는 마을인데, 거기에 조그만 구판장이 있다. 두부와 도토리묵과 국수를 판다. 듬성듬성 등산객들이 들리는 곳이다. 뼈에 좋은 동동주를 주는데 마음에 더 특효약이다. 자궁과 같다. 느릅나무 아래 앉으면, 저승이 보인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12-18

죽도시장 대성막걸리

부엌에 덧댄 쪽마루라도 임금님의 침상이지 그렇게 잠든 어머님의 주름살에 파르르 떨리는 형광등 불빛이 잔설(殘雪)로 내리면 단골이라는 이름으로 등쳐먹은 세월이 벽마다 가득하다 살며시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사발 퍼서 탁자 위에 내려놓으면 장아찌 몇 점과 멸치 몇 마리 경계의 벼린 눈빛 스파링 상대처럼 긴장하면서 도열하여 이내 종종걸음으로 입으로 집합할 운명 인생은 싸우는 거야, 상대도 없는 자유로운 술집 주인이 있어도 없어도 시스템 작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계산은 알아서 바가지에 넣을 것 마신 잔은 조용히 한쪽으로 밀어놓을 것 공화국은 이런 것이라고 민주의 기본은 이런 거라고 생기발랄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소굴 대성막걸리 팔순 어머니의 내공은 이렇게 정리된다 씨팔놈들아, 니들 꼴리는 대로 해라 돈도 필요 없다, 니 스스로 쪽팔리지 않으면 된다, 그 쫑알거림의 사자후, 그 그물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잔술로 속을 달래고 공짜 술도 너무 많이 얻어먹었다. 서울에서 고생한다고, 그 한 잔 못 주겠느냐고, 열심히 살아라, 말씀하셨다. 그 세월을 도저히 갚을 길이 없다. 아쉽게도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지금은 사라졌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12-04

오천 장날

상설장이 되었다 해도 오일장은 잊으면 안 돼요 냄새를 확인하고 추억을 상기하고 옛날 떡과 술떡을, 도라지와 냉이를 상업적이지 않게 먹고 살 수 있거든요 라이센스 없는 토박이 장꾼들 습관처럼 출근하는 사람들 구석구석 노인네들 다 모여 콘크리트 담장 아래 쪼그리고 앉아 꼬박꼬박 졸며 봄 햇살 보다 더한 온기를 확인해요 안부 전하면서, 죽지 않으면 보고 또 본다고,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요 제철 봄나물 마중 나오신 거 캐고 뽑아 드리워 주신 거 야박한 가격에도 선뜻 내미는 손 핏줄 빳빳한 마른 손 짓이기 듯 비비는 어설픈 악수 오일장의 자기증명, 그 허술하지만 야무진 목숨들 칼국수 다섯 그릇 시켜 일곱 명 나눠 먹고 동해댁 문덕댁 용산댁 우리 잊지 말아요 멀고 먼 시선 아지랑이에 묻히고 인생, 엄지 검지 모아 팽 하니 푸는 콧물 같은 것 해 지기 전에 버스를 타야지 마지막 버스는 너무 늦기도 하고 우리 운명 같아서 지랄 같아 종일 앉아 있어 시큼한 허리 부축하며 이천원 나물 향기 열댓 봉지 헐렁한 봉지에 담아 집으로 가는 오천 오일장 아쉬워 머물고 싶어도 가슴에만 담아둘 마지막 풍경 더 이상 뜨거운 것은 없어도 더 이상 시들 거 없어도 다음 장날 못 나오면 와병 중이거나 죽은 줄 아시게. 해도동에서 태어났지만 오천에서 오래 살았다. 삶의 언어를 거기서 배웠다. 바탕을 형성하는 인성은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낮은 것은 언제나 은은하다. 금빛이 아니라 은빛이어서 늘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흰 머리카락이 더 늘어가고 있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10-16

형산강 하구(河口)

들숨과 날숨을 나란히 교차시키는자맥질을 통해수평을 지향하는 강물의 긴 여정을지켜 보았네갈숲과 언덕들이무던히 응원해 주었네고마운 나날들윤슬이라고 했나우리는 반짝이고 빛났다그렇게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을동시에 경험하면서먼 길이 먼 길이 아니었네맑은 종아리 튼튼해지며바다로 가네돌아오지 않을 거야잠시 머뭇거려도 멈춤은 없었지참 기특했어, 장점이었지바람과 구름이 협박하면서도또 힘이 되었지대체로 조화로웠지기술이 아니라 기교였지차선이 최선이었어지금 의미 없어도 그것이 화석이 되면언젠가 발굴이 될까의미 없음이 최고의 효율이야아득한 가능과 희망, 그것이 없다면우리는 이미 강물이 아니야. 오직 나아가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시간에 의해 나아가고 있다. 거기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동적 삶이라면 더욱 좋겠다. 성과는 염두에 두지 말아야 한다. 최선이면 된다. 성공과 능력을 지껄이는 자들은 무시해도 좋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