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거든 애인아바닷가 언덕에 초분 해다오.바닥엔 삼나무 촘촘히 놓고솔가지와 긴 풀잎으로 덮어다오.저무는 바다에저녁마다 나 넋을 놓겠네.살은 조금씩 안개 따라 흩어지고먼 곳의 그대 점점 아득해지리.그대도 팔에 볼에 검버섯 깊어지고시든 꽈리같이 가슴은 주저앉으리.(부분)김소월의 ‘초혼’에서는 화자인 산 자가 허공에 대고 죽은 자를 헛되이 부른다면, 위의 시의 화자는 죽은 자가 되고자 욕망한다. 하지만 그 욕망은 완전한 소멸에의 욕망이 아니어서, 그는 점점 아득해질 “먼 곳의 그대”를 바라보며 넋과 살이 “조금씩 안개 따라 흩어”질 수 있는 초분을 원한다. 그는 실연의 슬픔에 못 이겨 죽음을 원하면서도‘그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서러움 역시 놓지 못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2-01
나는 너를 떠도는 별한 세계가 어둠 속에 기어드는 시간너는 나의 축태양을 향해 서성댄다바람에 눅눅해진 가슴과 눈빛이허름한 벽을 타고말라비틀어진 입술이 타고붉은 노래를 타고흐른다 평평한 허공저녁 창가에 걸린 노을 한 마디‘나의 축’인 ‘너’는 사랑하는 이일 터, 해지는 저녁 시간에 “한 세계가” 점점 어둠에 잠겨 갈 때 사랑하는 ‘너’도 나로부터 멀어져간다. 그리고 그를 향한 “가슴과 눈빛”은 “붉은 노래를 타고” “평형한 허공”을 흐른다….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태양을 향한 하늘의 피눈물이 노을이라면, ‘나’의 통절한 마음을 담아 사라져가는 ‘너’를 향해 불에 탄 듯 “말라비틀어진 입술”로 읊는 시가 노을처럼 ‘붉은 노래’이겠다. 문학평론가
2022-11-30
어느 생의 혓바닥이 불러온 업보인지딱딱한 뼈의 입술 두 쪽에혓바닥 하나 숨겨 생애를 건너가는 중이다물속에서 내다뵈는 것은먼 깜박임저건 시리우스 저건 좀생이 별저기에도 생을 기댈 짭조름한 물이 있을까바람 칠수록 명멸하는 찬란을 본다머나먼 거기뉘 손짓이 저리 반짝이는지조개는 날개를 펴듯 움찔 움찔패갑을 열었다 닫곤 한다 (부분)시에 따르면 조개는 “물속에서/내다뵈는” 별로부터 “바람 칠수록 명멸하는 찬란을” 보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저 반짝이는 별로부터 ‘뉘 손짓’을 감지하면서 “날개를 펴듯 움찔 움찔/패갑을 열었다 닫곤” 한다. 놀랍게도 시인은 조개껍질을 살짝 여닫는 조개의 미세하고 느린 몸짓에서 저 하늘 위의 별로 날아가려는 비상(飛上)의 몸짓을 포착하고는, 조개껍질이 날개로 변화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1-29
태풍은 잔인하지만, 봄바람은 꽃향기를 남긴다0.3평에 외롭게 핀 거제도 민들레들꽃이 피는데 넓은 땅은 필요하지 않았다기댈 구석도 없는 연약한 자세로코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만드는작은 것의 힘,세상을 들어올리는 힘은 덩치가 아니라너를 생각하는 작은 마음에 있다민들레의 고공행진새처럼 날아 하늘에 닿고우리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부분)작은 곳에서 피어나는 민들레는 봄바람에 향기로운 아름다움을 싣는다. 이 아름다움이 태풍이 할퀴고 간 대지를 풋풋하게 재생시킨다. 민들레는 바람에 날리며 “새처럼 날아 하늘에 닿”으면서, 하늘을 위로 들어 올리는 괴력을 발휘한다. “점점 낮아지고 있”는 우리와 대비되면서 말이다. 우리 인간은 ‘작은 것의 힘’을 인식하지 못하고 크고 강한 것들을 숭배하면서 그것들의 무게에 짓눌려 살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1-28
파도가 삼킬 수 없는 만큼만 남아그렇게 조용히 부드럽게너무 엄청나서마치 육지인 것처럼 착각하여내일을 모르는 물개가 되어유빙에 올라앉은 방랑자처럼날카로운 각을 허물며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마침내 뜨거운 적도의 바다까지 가서사람들 기억 속 오래오래 기억되겠지마지막 빙산의마지막 헤엄을빙신의 해빙이 가져올 결과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많은 도시가 물에 잠기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적도까지 내려가면서 바다에 용해되어버릴 빙산의 존재는, 인류의 안위를 상징한다. 인류의 운명이기도 한 빙산의 운명은 “마치 육지인 것처럼 착각하여” “유빙에 올라앉은” 물개처럼 “내일을 모르”게 되었다. 다만 방랑자처럼 바다를 떠돌 뿐이다. 하지만 그 방랑이 끝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2-11-27
친구 부음 소식을 받고밥 약속을 미룬 것이 후회되어 허공만 바라보지모든 죽음에는 이야기가 있듯이모든 이별에도 이야기가 있고다니던 일터에서 치워진 의자처럼소모품이 되어가는 누군가오늘의 수명이 가벼워지고죽어가는 꽃들을 향한 경건한 마음이 들어약점이 모여 강점이 되고 있는 나는병원 문을 비집고 들어와숨을 토하는 실핏줄 도드라진 여윈 햇살을 한 움큼 움켜쥐지 (부분)죽음은 허망해보이지만, 남은 자들에게는 깊은 마음을 일으키고 이야기를 남긴다. 이 마음은 어떤 사랑을 생성시킨다. “실핏줄 도드라진 여린 햇살을 한 움큼 움켜쥐”는 행위가 바로 사랑의 표현이겠다. 곧 사라질 것 같은 햇살, 이는 숨을 힘겹게 쉬고 있는 병자의 살갗이기도 할 것이다. 이 죽어가는 이의 살갗과 접촉하는 것은 허망에 빠질 수 있는 그의 삶을 껴안는 행위다. 죽음의 앞뒤에 사랑이 남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1-24
너에게 가는 길이 달팽이 속도였다면너에게 돌아서 온 길에 들은 찬바람 소리는시간의 어두운 쪽에서 흔들리고 흔들렸다죽순이 뿌리내리며 흙의 내력을 아는 것처럼너를 다 읽은 그 순간세상의 푸른색이 내 안에서 자라기 시작했다(중략)다시 한번 눈물방울이 뚝 떨어져 내렸다그리움의 기도가 피어나는 하지에는너에게로 갈 수 없는 날들이 빠르게 자랐다 (부분)시인의 사랑은 ‘너’의 살(‘흙’)에 뿌리내리며 ‘너’를 읽어나가는 일이다. 이때 ‘나’ 안에 “세상의 푸른색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시인은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달팽이 속도’처럼 더뎠던 데 반해 ‘너’와 헤어진 후에는 “너에게로 갈 수 없는 날들이 빠르게 자랐다”는 것. 특히 너와 헤어진 직후의 상실감을 “시간의 어두운 쪽에 흔들리고 흔들렸”던 ‘찬바람 소리’로 생생하게 드러낸 표현이 주목된다. 문학평론가
2022-11-23
도화살 매화살 이 화살이 꽃살 무늬로 새겨진 방 안에 머물면당신은 또 꽃 그림자처럼 스미겠지요묵화로 그린 댓잎 같은 바람이 불어도 좋겠습니다국화 향이 창호지에 스며 내내 달빛인양 고이면당신의 도화살과 나의 도화살이 나란히 누워꽃잎처럼 부드러운 서로의 살을 만지고봄밤 같은 세월을 바위에 꽃잎 떨구듯 한 잎 한 잎 흘리면바닥은 얼마나 놀랄까요?꽃을 입게 될 줄 몰랐을 겁니다 (부분)위의 시에서 ‘도화살’은 아름다움에 열려 있는 삶, 또는 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운명을 의미한다. 도화살이 인도하는 아름다움은 자연의 관능적 아름다움이다. 우리의 감각에 스미는 세계가 주는 향취 같은 것. 국화 향이 달빛처럼 창호지에 스며들어 고이듯이 “꽃 그림자처럼 스미”는 당신과 함께, “부드러운 서로의 살을 만”질 때 느끼게 될 아름다움. 하여 도화살의 ‘살(煞·죽임)’은 당신의 살로 의미가 변전한다. 문학평론가
2022-11-22
공원 벤치 밑에 구두 한 짝새처럼 잠들어 있다벤치 위엔 남자, 신문지를 덮고 잠든 둥근 둥지죽은 걸까, 꿈꾸는 걸까검은 구두 속에서 하얀 물감 빛깔의 새벽이 흘러나와남자의 몸을 수의처럼 감싸고(중략)누구의 입일까 검은 구두구두 속에서 흰 말이 날아오르고밤사이 대기가 흘린 꿈이남자의 입술 끝에 투명한 핏방울로 맺혀 있다노숙자일 저 사내가 신고 다녔을 검은 구두는 “하얀 물감 빛깔의 새벽”을 풀어놓으며 ‘흰 말’이 날아오르게 한다. 그럼으로써 “핏방울로 맺”힐 꿈-죽음-을 흘리는 저 구두는, “새처럼 잠”든 사내의 삶 자체를 삼켜버린다. 그런데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와 같은 존재인 그 ‘흰 말’은 죽은 이의 영혼이 지닌 아름다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것은 죽음의 찬양이 아닌 죽은 이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는 말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1-21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희멀건 눈으로 눈짓을 하셨다안개꽃을 보이다가 다시 거둬들이듯인공호흡기를 빼라는 신호였다아직은 아니라고, 좀 더 인공의 힘이 필요하다고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호흡기 줄을 건너 주름진 손을 겨우 내미셨다오래 마른 낙엽 위에내 얇은 체온을 꺼내 덮어드렸다마지막 온기가 미지근하게 도는저녁놀‘아버지’와 ‘나’의 몸이 접촉하고, 이 접촉을 통해 ‘아버지’와 ‘나’는 서로의 온기로 감전된다. 이 온기는 저녁놀처럼 곧 사라지겠지만, 몸의 기억으로 시인에게 각인될 것이다. 하여, 시인의 몸속에는 시인과 함께 했던 아버지와의 삶이 잠재화되어 존재하게 된다. 우리의 몸에는 그렇게 사랑하는 타인의 삶도 녹아들어 있는 것, 시인의 손에 아버지와 함께 한 사랑과 슬픔의 삶이 응축되어 존재하고 있듯이 말이다. 문학평론가
2022-11-20
건물을 올리며 네명이 죽었다자연스러운 일이다자연스러운 일이다건물은 보편적인 각도와 높이의 계단을 밟고차근차근 벽들을 소모하고 삽과 젓가락을 소모하고 함바집 할머니를 소모하고간이 화장실과 병실 침대를 소모하고 짱돌을 무더기로 소모하고본래 이곳에 있던, 집으로 구축된 집들이 소모되며누군가 기쁘고누군가 슬펐다자연스러운 일이다 건물을 올리며 세명이 더 죽었다자연스러운 일이다 (부분)“본래 이곳에 있던, 집”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공사판. 이곳에서 네 명이 죽고 세 명이 더 죽지만, 이는 이 사회 시스템의 입장에선 공사 중에 자연스레 일어나는 소모일 뿐이다. 이들은 공사에 소모되는 벽돌이나 삽과 젓가락, 간이 화장실과 병실 침대, 짱돌, 그리고 원래의 집과 ‘동등한’ 소모품인 것, 그 현장에서 살고 있었던 “함바집 할머니”도 저 죽은 노동자들처럼 내팽겨 쳐져 소모된다. 문학평론가
2022-11-17
시장의 오체투지는 해가 저물고야 끝났다으슥한 골목, 고무판 아래 접어둔 다리를 꺼내 주무르며통 속 수입을 헤아리는 그의 낯빛이 어둡다(중략)바닥을 기는 것만이 이제껏 익혀온 생활의 기술,가로등이 밝혀놓은 그의 손바닥에는타르초처럼 붉고 푸른 상처들만이 나부낀다(중략)이제는 하루 치 고행을 끝낸 두 다리를 위해남루한 전생을 벗어놓고 가지런히 누울 시간,통 속에 구겨진 영혼을 주워 담아 일어서는그의 손에는 아직도 먼 순례의 지도가 남아 있다“고무판 아래 접어둔” 그의 두 다리는 순례의 길을 걷는 고행자의 다리다. 그의 숨겨진 다리는 역설적으로 성스러운 언덕을 걸어 올라간 다리인 것이다. 고행은 그의 삶 자체가 되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순례의 끝은 멀리 있고 “그의 손에는” “먼 순례의 지도가 남아 있”는 것이다. 하여 그가 살아온 삶의 길 전체는 손바닥의 상처를 통해 몸속에 새겨지고, 그 길은 앞으로 살아갈 순례의 지도를 생성한다. 문학평론가
2022-11-16
첫눈 내리는 거리에서 말하다꺼질 듯 말 듯 되살아나는 촛불 아래서 말하다불길처럼 온 도시를 흘러가며슬픈 고래의 울음소리로 말하다누군가 귀를 열고 알아들으라고 말했다꽃 스티커를 경찰버스에 붙이며아직도 푸른 바다 밑이라고 말했다 (부분)도시는 “푸른 바다 밑”이다. 거리를 걸으며 불길이 되어 “도시를 흘러”간다는 것, 그것은 고래가 바다 밑을 유영하는 것과 같다. 도시는 수장되었다. 촛불은 그 수장된 거리를 유영하는 “슬픈 고래의 울음소리”다. 그 울음은 거리를 가로막은 경찰버스에 꽃 스티커를 붙이는 저항 행위이기도 하다.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울음소리로 말하는 것, 그 울음은 내향적이지 않다. 누군가를 향해 귀를 열라는 외침이기에. 문학평론가
2022-11-15
밤에 편지를 쓰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보고싶은 사람들이 겉봉에 낡아갔다회귀선 아래로 내려간 태양처럼따뜻한 상징은 돌아오지 않았다(중략)바람이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였으므로생각하는 것은 위험하였다 모두들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고 수상한 암호 만지듯동전만 만지작거렸다 나는어두운 창고에서 첫사랑을 생각해야 했다언 손을 불며 자전거 바퀴를 고치다가씀바귀며 여뀌며 쑥부쟁이를 몰래 생각하였다위의 시는 추억이 점점 빛바래가고 있는 모습과 눈이 거리에 쌓이고 바람에 얼어붙는 풍경을 중첩시킴으로써, ‘따뜻한 상징’을 다시 불러내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차가움을 쓸쓸하게 드러낸다.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시대이기에, ‘모두들’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수상한 암호 만지듯/동전만 만지작거”리며 살아나간다. ‘첫사랑’은 타인과 격리된 “어두운 창고에서” ‘몰래’ 홀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세상이다. 문학평론가
2022-11-14
오랜만에 집들을 벗어나니길이 탱탱해지고이른 가을 풀들이 내 머리칼처럼붉은 흙의 취혼醉魂을 반쯤 벗기고 있구나.흙의 혼만을 골라 밟고 간다.길이 속삭인다.계속 가요,길은 가고 있어요.보이는 이 길은 길이 잠시 멈춘 자리일 뿐길의 암호일 뿐길은 가고 있어요. (부분)안주의 장소인 ‘집’일 나와 길에 나서자 “길이 탱탱해지”기 시작한다. 길은 “붉은 흙의 취혼”을 가지고 있다. 무엇인가에 취해 있을 때 삶은 길이 된다는 의미일까. 시인은 취해 있기에 “계속 가요”라는 길의 속삼임을 들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 길은 보이는 길이 아니다. “보이는 이 길은 길이 잠시 멈춘 자리”이고 “길의 암호일 뿐”이다. 길 자체가 가고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삶은 흐름, 살아가기 자체이다. 문학평론가
2022-11-13
사방이 캄캄해져 있었고 나는 당신을 생각하던 마음을 마당에 내다 놓고 대못에 박히도록 했습니다 나는 흠뻑 젖었습니다그때 우리는 왜 까닭 없이 까닭도 없이 그렇게 흥건했던가요 왜 그토록 죽음의 왼손을 부여잡고 있던 것이었을까요가까운 바다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대못들을 한 움큼씩 삼키고 또 삼켜 한 겹 오래된 소금기를 없앴는지 한 뼘쯤 맑아져 있었습니다벗어 놓고 간 치맛자락이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듯 뻐꾸기가 또 웁니다내일 아침 내가 나가면 이 섬도 무인도가 됩니다당분간 나는 무진 애를 쓰며 멍하니 있으려 합니다 (부분)고독한 무인도의 풍경이 시인의 마음을 그립고 슬픈 기억으로 인도한다. 비 내리는 풍경이 가져온 ‘젖음’의 쓸쓸하고 매혹적인 이미지는 죽음으로 빠져들었던 연인을 환기시키고, 시인을 둘러싼 모든 자연 현상들은 시인의 절절한 추억과 점차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무인도 자체가 되어가는 듯하다. 추억의 끝을 통과했을 때 나타나는 섬, 무인도. 이 섬이 됨으로써 그는 어떤 무의 상태로 이행한다. 문학평론가
2022-11-10
내 방 벽에 귀기울이면 강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벽과 벽지 사이로 찰랑찰랑 스며드는 물소리꽃무늬 벽지의 마르지 않는 습기 사이로슬리퍼 한짝 떠내려가고짙은 안개가 조금씩 범람하는 방을 지나간다(중략)벽지 속 강물을 건너시는 아버지끝내 벽은 사라지지도 않고꽃무늬 벽지의 꽃들이 피어나고 시들어간다어느날 벽지 속 강물 어디로 숨어버렸는지들리지 않는 물소리,벽은 이제 바삭거리는 쎌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낸다꽃무늬 벽지의 꽃들이 폐허 속에서더욱 환한 꽃을 피운다 (부분)위의 시에서 ‘벽’은 기억의 끝에서 마주치게 되는 현실로서 나타난다. “끝내 벽은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다. 어린 시절 기억 속 아버지는 메마른 벽지 같은 지금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다.(시인은 이 현실을 ‘폐허’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벽지의 꽃무늬가 시인의 몽상을 유도하며, 기억과 현실 사이의 막인 ‘꽃무늬 벽지’는 그나마 시인이 현재의 삶을 견디며 몽상의 ‘환한 꽃’을 피울 수 있는 장소가 돼준다. 문학평론가
2022-11-09
봄은 뱀파이어처럼 온다저 산벚나무 피가 낭자하다Let me in불면으로 누렇게 튼 산수유 입술에서노란 탄성이 터져 나온다나의 사랑은 늙지 않아요꽃나무 아래 나의 목덜미가 창백하다(부분)뱀파이어는 늙지 않는다. 매년 찾아오는 봄이 언제나 신선하듯이. 사랑 역시 언제나 신선하다. 시에 따르면 봄은 뱀파이어다. 봄은 잠자고 있던 숲의 피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이 오면 산벚나무는 낭자하게 피를 뿜어내고 산수유는 ‘노란 탄성’을 터뜨린다. 그런데 이 흡혈은 사랑의 행위라는 것, 하여 ‘나’ 역시 창백한 목덜미를 “꽃나무 아래” 내놓고 피 빨릴 준비를 한다. 사랑에 감염되고 싶다는 듯이. 문학평론가
2022-11-08
석탄을 적재한 무개화차들이 굴러가는 철길 너머에 저탄장이 있다. 거대한 재의 무덤, 바람에 석탄가루들이 일어난다. 그것은 흩어진다. 그것은 바람에 불려간다. 검은 바람, 펄럭이는 검은 작업복, 탄부들이 움직이고 있다. 잠시 후, 이번에는 갱목용 통나무를 적재한 무개화차들이 지나간다. 그것은 멀어진다. 그것은 사라진다. 검은 바람이 불고 있다. 저탄장의 탄가루들이 철길 건너 저녁 골짜기로 멀어진다.(부분)이제 더 태울 것이 없는 재는 시체와 같다(재의 세계는 무덤이다). 썩은 시체의 분비물처럼 재도 ‘흩어진다.’ 그 시체의 가루들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죽음의 씨앗처럼 온 마을에 죽음을 전파하고 심는다. 바람은 그래서 ‘검은 바람’이다. 바람에 펄럭이는 작업복은 재에 뒤덮여 검다. 탄부들은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저탄장의 탄가루들이 바람을 따라 “철길 건너 저녁 골짜기로 멀어”지듯이 시인의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문학평론가
2022-11-07
불빛은 먼 데 있는 불빛은 흔들린다 깜빡인다 부들부들 떤다불빛은, 가까이선 흔들리지 않는다 노란 불티 그대로다먼 데 있는 불빛이 흔들리는 건 먼 데 있어서 위험하기 때문일까가까이선 하지 못할 표현을 조심스레 하는 걸까먼 데 있는 불빛은 비로소 입술을 벌리고 희미한 소리를 낸다울음도 노래도 아닌 소리의 파닥거림, 멀어져 가는 것들은저마다 자기 표현을 한다. 가까이선 엄두도 못 냈을 표현을불빛은 멀리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입을 연다. 멀리 있음으로 해서 불빛은 더욱 절실하다. 왜냐하면 불빛은 멀리 있을 때 더욱 깜빡거리며 흔들리기 때문이다. 시인에게서 멀어져 가는 저 불빛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엄두도 못 냈을”) 삶과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부들부들 떨며 표현한다. 촛불은 멀어져가기에 희미해지지만, 그것의 소리는 더욱 뚜렷해지고, 가슴은 아파만 간다. 이별의 현상학을 보여주는 시. 문학평론가
2022-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