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정적이 머물러 있는 숲에서는간간이 보일러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울리고 솔방울이 뚝뚝 떨어지고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던 유리새들이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라간다유리새여 무량의 시간 속으로오르는 새여너희 비상은 햇빛에 부딪히고마모되면서절대음처럼 소멸하고 시간들은우리에게상처를 남기고 사라져간다 (부분)정적 속에서 갑자기 비상하는 유리새는, 정적-시간의 정지-을 깨뜨리는 어떤 순간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갑작스레 비상한 그 새들은 곧바로 햇빛에 타버리기에, 그 순간은 눈이 부시도록 빛난다. 시인에게 진정한 시간이란, 이 비상과 소멸(삶과 죽음)이 통합된 순간이다. 하나 우연히 맞닥뜨린 이 순간을 붙잡을 순 없다. 다만 그 순간이 일으킨 강렬한 전율은 우리의 눈에 불에 덴 자국 같은 상처를 남길 뿐이다. 문학평론가
2022-11-03
밥상처럼 잘 닦여진 마당을 가로질러계단 앞에 섰네꽃잎 같은 비구니들눈썹 그리듯 비질한 자국 위에 찍히는발자국 가만히 돌아보다가문득 발자국 지우고 싶었네지붕을 타고서 휘돌아온 바람이물고기의 몸 흔들 때마다얇아질 대로 얇아진 몸추녀 끝에서 펄럭이던,하지만 방향도 없이찰랑 차르르 바람 속을 헤엄쳐 나가는물고기의 몸 이미 있어도 없는소리뿐인 몸이었네계단 끝 텅 빈 마루방 하나,이른 새벽 바람이 씻어내고 있었네정적 속에서 나는 ‘차르르’ 소리는 바람에 의해 목어가 흔들리고 헤엄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에 시인은, 우리 몸은 ‘헤엄침-흔들림’만이 그 실상임을 깨닫는다. 바람에 깎이고 휘둘려 “얇아질 대로 얇아”진 목어의 몸처럼. 나아가 시인은 그 몸이 소리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존재와 무가 뒤얽혀 있음을 인식한다. 시간이 소멸한 정적 속에서 들려온 목어 소리가 존재의 비밀로 시인을 이끌었던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1-02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들꽃을 따서 너는팔찌를 만들었다.말 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둥근 안팎은 적막했다.손목에 차기도 하고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네가 없는 동안 나는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너’가 팔찌를 완성시키는 순간, 그 ‘둥근’ 모양의 팔찌는 자신의 공간을 형성하며 세계를 적막 위에 놓는다. 팔찌 테두리 안의 빈 원 속으로 “우주가 수렴”되고(원은 우주적 전일을 상징한다), 그 덩그렇게 놓인 하나의 소우주는 더욱 쓸쓸함을 퍼뜨려 우리는 어느덧 우주의 무상성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하지만 이 적막 속에서 우리는 무상의 우주와 섞이며 존재 자체를 발견하고 그 우주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문학평론가
2022-11-01
지친 당신 곁에 눕는다내가 지금 부여잡은 당신의 손한 손으로 당신의 손을 잡았을 때다른 손은 빈손이 된다그 수많은 손금 중에내 것과 똑같은 것이하나는 있을 거라는 생각당신의 손금을 손끝으로 따라가다어디쯤에서 우리가 만났을지가늠해본다서로의 머리카락을 묶고 자면우리는 같은 꿈을 꾸게 될까어지러운 침대 같은 밤하늘에 뜬 반달밤의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겨 덮는다(부분)화자가 “지친 당신 곁에” 누워 “당신의 손”을 부여잡는 것은 자신의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일 터, “당신의 손금을 손끝으로 따라가”는 모습은 퍽 감동적이다. 하지만 한 손을 잡으면 “다른 손은 빈손이 된다”는 것을 시인은 알고 있다. 언젠가 “같은 꿈을” 꿀 수 있게 될지라도, 삶의 한 쪽은 비어 있을 것이다. 화자가 “밤의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겨 덮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문학평론가
2022-10-31
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너의 소식은 4월에 마지막으로 왔다8월에는 어깻죽지에서 날개가 돋았고9월에는 그것이 상수리나무만큼 커져서 밤에 나는 그 아래서 잠들곤 했다(…)우주의 툇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저 멀리 지구를 바라보니내가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이 늙은 개처럼 엎드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12월에 나는 돌아왔다그때 나는 달력에 없는 뜨거운 겨울을 데리고 돌아왔다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4월은 마지막 달이었고 다음해의 첫번째 달이었다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아주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부분)많은 한국인들이 2014년 4월 16일 이후 아이들의 구조 소식을 기다렸으며, 나중에는 시신이라도 발견되기를 바랐지만, 알다시피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슬픈 기다림을 통해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4월은 그들에게 “마지막 달이었고 다음해의 첫 번째 달”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전처럼 살 수는 없게 되었기에. 다른 세계를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기에. 문학평론가
2022-10-30
부음 소식에눈에 덮인 젖가슴이 다시 한껏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식구가 늘 때마다가슴이 파헤쳐지고 겨드랑이솜털이 날리고 구름이 만장처럼 떠 있다사람들이 떠나고 해 질 무렵이면가슴이 부스럭거리기 시작한다늘어진 배를 발로 찬다거나꼬물꼬물 젖을 빨며 한 삶을 준비하는 봉분은 빵빵하다하루의 노역이 힘에 부친 듯주둥이를 땅속에 묻고꿈쩍도 하지 않는 산발아래 얼음장 밑 실개울 물은말없이 흘러간다갓 태어난 몸이 저 물길 따라새 세상으로 들어가는봉긋한 숨소리에 산은 모로 돌아눕는다(부분)이승에서의 삶은 죽어 봉분 속으로 수축되지만, 그 ‘죽음-삶’은 뒷산의 젖을 빨면서 재생하여 다른 삶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 삶의 조짐을 보여주는 사물이 뒷산의 “가슴이 파헤쳐지”면서 날리는 “겨드랑이 솜털”이다. 이 솜털은 ‘새로운 삶’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봉분 속 주검의 소망에 의해 날리게 되는 것일 터, 그 새로운 삶이란 “발아래 얼음장 밑 실개울”의 물길 따라 들어가는 “새 세상”에서의 삶이다. 문학평론가
2022-10-27
생계에 질린 냄새들이첩첩산중을 이루고모두 탄력 잃은 삶들에걸려 있어 짠하다문턱이 튕겨지며 눈썹을 흩트릴 때마다떨리는 완력들각도대로 자주 인내의 모양을 바꾼다원을 그리다가 평행선으로 치솟고곡선으로 힘주다가 파선으로 쏟아진다뒤태들이 실수로 버려지지만헐렁한 등을 입고 있어 푹신하다내 등에도 뒤집힌 등들이실수로 옮아온다톡톡 터지는 뜨듯한 솜털들각자의 행선지로 같은 노선을기어가는 아침마다에갓 태어난 내가 안겨 있다한강을 건너면 오늘은 살아나고문턱이 쏟아질 때마다 하루씩어려진 나이를 먹는다(부분)생활인의 일상을 안은 ‘버스-삶’이 달리면서 튕겨지고 흔들리는 탑승객들의 뒷모습은 마치 “실수로 버려”진 것처럼 쓸쓸하다. 하지만 저 버려진 ‘뒤태들’을 보여주는 생활인들은 도리어 “헐렁한 등을 입고 있어 푹신”한데, 외로운 이들이야말로 따스함의 소중함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여 버스 속 이들 사이에 있는 ‘나’는 “갓 태어난” 아기가 되어 요람 속의 담요를 덮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0-26
쉽게 붙잡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너무 오래 흔들려왔으므로놓아주고 싶은 것들,해는 저물고 어김없이 시작하는 새해잠 못 드는 연휴 지나구년째 의식이 없는 병실에 간다궤도를 잃은 유성처럼 흔들리는그 눈빛에 안부를 물어야 한다촛불을 대신 끄고 손뼉 치며생일을 축하해야 한다늘 웃는 얼굴인 그가 크게 웃으면모두가 환해지던 때가 있었다,놔주기에는 아직 힘주어 따뜻한손이 있다(부분)‘구년’ 동안이나 의식불명인 분을 돌봐 와야 했던 고통은, 이제 저 분이 매달려 있는 생명의 줄을 놓아주고도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들 터이다. 하지만 그 줄을 놓지 못하는 것은, “놔주기에는 아직 힘주어 따뜻한/손”을 화자가 느끼기 때문이다. 아직 병자의 손은 온기를 잃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삶을 붙잡는 힘이 들어가 있다. 어떻게든 삶을 놓아버리지 않으려는 그 의지는 생명이 지닌 본질적인 힘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0-25
오래전 잡았던 손이여전히 내 손안에 있어요오래전 놓았던 손이 내 손을방한장갑처럼 끼고아직도 추운 내 손안에 있어요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울리는 손뼉 소리나는 당신의 손이 날아가지 않게주먹을 꼭 쥐고당신의 손은 내 손을 빌려 끼고내가 막 사랑하기 시작한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요당신의 손안에도 내 손이 가득하죠내 손이 당신의 손을 찢긴장갑처럼 끼고 있어요나는 당신의 손을 모아밤마다 기도할 거예요시도 때도 없이 벼락처럼 기도할 거예요(부분)타인의 손과 나의 손이 중첩된다. 그러나 타인의 손이 지닌 타자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울리는 손뼉 소리”가 날 수 있다. ‘나’의 손과 ‘당신’의 손이 맞부딪치며 나는 그 소리는, 우리의 삶이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의 몸속으로 따스하게 들어왔던 그 사랑의 손(타자)들은 ‘내’가 또 다른 타인과 손을 맞잡으며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이끈다. 문학평론가
2022-10-24
곁에 누웠던 누군가 황망히 떠난 새벽 한 때의 여관방 같은보도블록 위 십 원짜리십 원짜리를 주워 살그머니 제 주머니 속으로 들일 사람주머니는 참 따듯할 텐데붉은 담요를 두른 손이 있어 찬 등을 오래오래 쓸어 줄 텐데기다릴 수밖에 없겠지 기다림이 기다림의 잃어버린 모양을 문득 알아볼 때까지별수 없으니까바닥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보도블록 위 십 원짜리”는 시의 화자 자신의 현재를 말해준다. 그는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버려져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 존재로 전락했다고 느낀다. 이 느낌은 “곁에 누웠던 누군가 황망히 떠났을 때”의 치욕스러운 심경과 유사하다. 그러나 삶이 밑바닥에 놓여 있더라도 따뜻한 손을 기다리라는 시인의 전언에서 우울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 손은 사랑의 손이자 연대의 손일 테다. 문학평론가
2022-10-23
진동음이 불길하게 울리면또 맞았구나울지 마, 내가 대신 울어줄 게살아남아야 해넌 아무 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고그런 밤에 나는 악몽을 꾼다건장한 사내가 끌고 가는큼지막한 자루가호수 속으로 가라앉는 꿈우리가 눈부시게 빛났던 시절너는 백마, 나는 흑마우린 죽어라 붙어 다녔지중앙극장을 나와 목척교 위에서추위에 덜덜 떨면서도우린 낄낄거리곤 했어지금 너는 그곳에서 나는 이곳에서피멍 든 몸에 붕대를 두르고밥상을 차린다치욕을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는다(부분)말할 수도 없이 처참한 심경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가 그렇다. 시인은 그녀 대신 울어주고자 한다. 울음은 생존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대신 울어주는 것, 그것이 시 아닐까. 하여 이 ‘시-울음’으로 어떤 연대가 이루어진다. ‘나’ 역시 “피멍 든 몸에 붕대를 두”른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것, 치욕을 함께 삼키면서 ‘너’와 ‘나’ 사이에 자매애가 형성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0-20
그들도 우리와 같을까?아홉 명의 병사들이 택시를 세우고형의 피로 창문에 적었다: 우리는 제3부대 소속이다.우리는 사자(死者)를 방관하고 토요일의 예식을 위해 그의 생명을 앗았도다!우리 아버지에게 초콜릿 바구니를 선사했던 그 상인은초겨울엔 살해자로 일하고 있다.그들도 우리와 같을까?맞다, 다만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지금 차가운 호텔 객실 바닥에서 일어나외친다: 그들이 우리 친구들의 시체를 영안실에서 훔쳐어떤 사자들을 위한 여분의 장기(臟器)로 팔아치웠다.살해자가 되기 위하여 (부분)팔레스타인 시인 티리크 알 아라비의 위의 시는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 동포가 죽임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증언하고 강렬하게 고발한다. 그들에게 살해당하고 자신의 신체마저 도둑질 당한 죽은 자들은 “객실 바닥에서 일어나” 영안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외치면서 고발한다. 팔레스타인에서 시인이란 죽은 자들의 이러한 비통한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자이며, 그 외침을 산 자에게 전달하는 자이다. 문학평론가
2022-10-19
경찰 조사실에서도, 법정에서도직업을 물으면 ‘시인’이라고 답한다.그러면 꼭 다시 물어본다.그러고는 “아…” 하고, 복잡미묘한 표정.주머니 속에 감춰 둔은사시나무잎 삐라를 만지작거린다.수첩에는 바랭이풀과 엉겅퀴를 이용한사제폭탄 제조법, 아직은 실험 단계임.심문관이 무슨 생각을 하든,스스로 더 당당하려면진짜 시를 열심히 써야 하는데사발통문 같은 오월의하늘을 올려다보면다른 건 다 시시하다.다만 시적으로 살다가시적으로 죽고 싶을 뿐.(부분)변홍철 시인은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밀양과 청도에서 현지 주민들과 함께 투쟁했던 이다. 그에게 ‘시인’은 투쟁하는 자이며, ‘시적인 것’은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저항에서 발현된다. 그의 투쟁의 무기는 ‘은사시나무잎 삐라’와 ‘바랭이풀과 엉겅퀴’로 만든 ‘사제폭탄’, 즉 시다. 풀들로 이루어진 시는 ‘오월의 하늘’처럼 저항을 촉구하는 ‘사발통문’이 되어 시적 투쟁을 불러일으킬 것이기에. 문학평론가
2022-10-18
외진 골목밤 세시의 가로등은 나의 눈이다폐품은 항상 어두운 곳에 버려진다언제나 어둠을 밝히는 건 가로등이다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하루를 시작하기에는 어설픈 시간세상이 외면한 곳에서세상이 외면한 것들끼리의 만남폐품이 있는 곳으로 다가서는또 하나의 폐품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불빛을 향한나만의 시간은 깊어간다쓰레기가 모여 있는 저 뒷골목에서 시인은 시가 거주해야 할 장소를 발견한다. 뒷골목에 버려진 폐품과의 만남을 통해, 시인은 자신 역시 “또 하나의 폐품”임을 인식하면서 이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불빛을 향해” 이끌리는 것인데, 그 ‘불빛’이란 바로 시다. 그는 버려진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적 인식을 성취함으로써 시를 쓰는 ‘나만의 시간’을 심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0-17
작은 몸이 힘에 겨워 쇠똥에매달려 가는 것 같네문득 멈추어 달빛을 골똘히 들여다보네달빛 아래서만 제 길을 찾는두 눈이 반짝이네마치 달빛 문장을 읽는 것 같이 보이네무슨 구절일까 밑줄 파랗게 그어가며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가네갑옷 속의 붉은 심장이 팔딱팔딱 뛰네어느 날 내게 보여준 네 마음에밑줄 그으며 몇 번씩 읽어내려 가던눈부신 순간이 생각났네맑은 바람 한 줄기가 쇠똥구리몸 식혀주네태어나고 죽어야 할 집한 채 밀고 가네(부분)달빛이 새겨놓은 무늬에서 문장을 발견하고 이를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가”는 쇠똥구리 한 마리에서 시인은 참다운 삶의 자세를 본다. 쇠똥구리가 ‘달빛 문장’을 읽는 이유는 “태어나고 죽어야 할 집 한 채”인 “무거운 쇠똥”을 밀고 갈 길을 찾기 위해서이다. 어둠에 갇힌 세계에서 빛을 찾아내고 이로부터 갈 길을 발견하면서 쇠똥구리는 자신이 살 집을 유지시킨다. 이 모습이 시인에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문학평론가
2022-10-16
고장난 기계를 분해하다뒹구는 쇠구슬을 본다아주 작은, 사랑의 최초 형식인알(卵) 같은 눈동자를 본다돌아갈 때나 멈추었을 때나혹은 해체되어 이렇게 나뒹굴 때도눈감지 못하는 눈동자를 가진기름에 흠뻑 젖은 기름공주지금 누군가 불안하다면그대 망가져서 반짝이는눈빛은 무엇인가실패한 사랑도 삶이 아니냐사랑이 쉽진 않더라(부분)기계와 맞물려 부속품으로 기능하던 노동자의 삶을, 시인은 기계를 새로이 인식하고 노동자와 기계가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함으로써 주체적인 것으로 전화시킨다. 새로이 명명된 이 기계는 시인에게 무감각하게 소외된 물체가 아니다. 시인은 노동자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기계를, ‘고장난 기계’의 작은 쇠구슬에서 눈동자를 보는 상상력을 통해 같이 살아가는 대상으로, 나아가 사랑하는 무엇으로 인식한다. 문학평론가
2022-10-13
까치가 운다느티나무 잔가지에 앉아나무는 울음에 맞춰 몸 흔든다울음이 가지를 누르면 하늘이 올라간다울음을 먹고 자라는 이파리까치의 울음은나무가 살아가는 힘이다자신의 곁-‘잔가지’-에 앉은 까치의 울음으로부터 살아가는 힘을 얻는 느티나무. 이는 ‘클리셰’라고도 하겠지만 세계의 존재자들이 삶을 살아가는 양상임을 부정할 수 없다. 존재자들은 사물의 울음들을 먹으며 자라나며 그 “울음에 맞춰 몸 흔”들며 살아나가는 것, 이 몸 흔들기가 시인의 입장에서는 시 쓰기가 될 것인데, 그것은 “울음이 가지를 누르”자 올라가는 하늘을 향하여 비상하고자 하는 염원을 표현한다. 문학평론가
2022-10-12
입을 틀어막고 우는 울음도 있지만그냥 그래도고여 있는 울음이 있다놀러온 인간들이 다 꺼내 마시고웃고 떠들다 만취할 때까지쏟아지지 않고그저 자리만 옮기는 울음내 안에서 네 안으로그것은 옮겨간다역의 대합실에서잠든 밤 기차로 옮겨가는 여행자처럼끝내 고요한 울음이 있다늘 수평하고초지일관이므로누구도 그에 대해 뭐라 하지 못하고지나갈 땐 그 앞에서 예를 갖춘다울음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 시는, 흔한 감상에 빠지지 않고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슬픔의 어떤 면을 드러내면서 독자에게 묘한 감동을 준다. 시인이 주목하는 ‘울음’은 “쏟아지지 않고” “고여 있”다. 그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울음이 아니다. 도리어 울음 자체가 ‘여행자처럼’ “내 안에서 네 안으로” 자리를 옮겨 다닌다. 그 ‘초지일관’한 울음과 만나면 우리는 예를 갖추게 된다. 울음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문학평론가
2022-10-11
촛불도 없이 어떤 기적도 생각할 수 없이나는 어두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그때 난 춥고 가난하였다 연신 파랗게 언 손을 비비느라경건하게 손을 모으고 있을 수도 없었다그런데 얼마나 손을 비비고 있었을까그때 정말 기적처럼 감싸쥔촛불이 켜졌다주위에서 누가 그걸 보았다면, 여전히 내 손은 비어 있고 어둡게 보였겠지만젊은 날, 그때 내가 제단에바칠 수 있던 건오직 그 헐벗음뿐, 어느새 내 팔도훌륭한 양초로 변해 있었다나는 무릎을 끓고 어두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어깨에 뜨겁게 흘러내리는 무거운 촛대를 얹고시의 화자는 “손을 모으고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촛불도 없는 제단이지만 그 앞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아마 빛과 열을 달라고 할 그 기도는 화자도 놀랄 만큼 기적처럼 이루어진다. 그 기적이란 화자 자신이 촛불이 되어버림으로써 달성되는 것. 갈망이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그것은 갈망하는 이의 존재를 변이시켜 갈망을 이루게 한다. 기적을 만드는 갈망. 문학평론가
2022-10-10
북녘이든 남녘이든그래 맞다일만 하다 떠나가는 곳이니라얼마나 많이 기다렸는지너를 보게 될까 하여오래도록 기다렸다세상은 일만 하다 떠나가는 곳얘야 날아다니는 혼이 되어이곳에서나 다시 보자다시 만나자야, 38선 없애버리고 오너라. (부분)‘38선’을 없애는 주체는 역사와 체제에 희생당한, 일만하며 살다가 죽는 이들이어야 한다고 시인은 북에 계셨던 어머니의 입을 빌어 말한다. 분단은 가족과 이별해야 했던 민초들에게 가장 아픈 것이었으며, 분단 이후 남북은 그들에게 일만 시키는 세상이었다. 시인은 이젠 저승에 계신 어머니와 혼이 되어서라도 만나고 싶은 열망을 표현하면서,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업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해두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2-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