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한 손으로 젖을 움켜쥐고넓은 들에서 하늘로 무너지는강을 보고 있다강에는 강물이 흐르고물 속에서 날개가 젖지 않은새 한 마리가강을 건너가고 있다(부분)위의 시에는 강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과 그 아이를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시선이 교차된다. 아이의 시선에 의해 비추어진 대상은 뒤의 연에서 묘사되고 있으며, 시적 화자의 눈에 포착된 강을 바라보는 아이는 앞 연에서 묘사되고 있다. 이런 묘사의 교차 속에 놓여 있는 “하늘로 무너지는/강”이나 “물 속에서 날개가 젖지 않은”이란 모순적 표현은 착란의 느낌을 준다. 시인은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림으로 표현될 수 없는 독특한 언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0-05
심연에 내려가려면,날개가 있어야 하리(중략)심연을 잃고물 밖에 떨어진 잎사귀그게 나다.도망은 끝난 지 오래다물을 움켜쥘 어떤 발톱도가지고 있지 못하기에심연 속에가득한 날개가모래와 자갈을 헤치며물 속을 뒤엎을 때,흐린 잎맥의 기억으로폭풍을 예감할 뿐 (부분)시인은 비록 “심연을 잃”었지만, 심연과의 끈을 “흐린 잎맥의 기억”으로 놓치지 않으면서 심연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심연은 우리의 일상적 시간성의 선을 끊어버리며 저 깊이 검게 자리를 차지한 공간이다(그러나 외연을 짐작할 수 없어 공간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러한 심연에 감히 들어간 ‘날개’가 그 속의 물을 “뒤엎을 때”, 시인은 어떤 폭풍의 시간이 오게 될 것이라고 영매처럼 알려준다. 문학평론가
2022-10-04
아내가 다녀갔다베란다 빨래줄에 매달려 있는양말과 철 지난 옷들이 증거다(중략)흙갈이를 하지 않아 돌멩이보다 단단하게 굳은검은 흙덩이가벌써 여러 해 전에 죽은 고목나무와 함께 말라가고 있다아내는 눈물이 많은 여자다말라 가는 빨래의 소매에서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물방울빈 항아리의 주둥이를 적시고 있다세상이 한증막 같다는죽은 아내의 목소리가햇볕에 달구어진 붉은 항아리에서거미와 함께 올라온다(부분)시적 화자는 빨래에서 죽은 아내를 생각할 만큼 그리움에 사무쳐 있다. 그는 그리움에 지쳐, 고목나무처럼 이미 죽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물 많은 아내에 대한 기억은 그 말라버린(빈) 항아리의 주둥이를 적셔준다. 하나 아내와의 상상적인 만남이 아내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게 할 터, 더욱 절절한 그리움의 심정에 그를 빠뜨려 그가 홀로 한여름의 뜨거운 적막 속에 던져져 있음을 아프게 깨닫게 만든다. 문학평론가
2022-10-03
강화에 와서 눈 덮인 벌판을 바라본다간이역도 없는 마을에웬일로 텅 빈 기차는 어둑하게벌판을 달려가고그때마다 길은 다시 끊기고,나는 지나간 밤 여인숙 방에서 치던낯선 여자와의 그 서툴던 화투판을생각한다나에게 집이 있었던가,돌아보면 희미한 풍경으로남아 있는 먼 데 마을몇 채의 집들눈벌판이 끝나는 곳에서는 또 갯벌이,염하(鹽河)마저 얼고 있을 것이다“텅 빈 기차”라는 이미지는 텅 빈 마을과 공명하면서 삶의 허허로움을 애잔하게 느끼게 한다. 삶은 이 외진 곳에서 무엇인가를 채우지 못한 채 텅 빈 기차처럼 지나가고 있다. 이 허허로움에 맞닥뜨리게 되면 삶의 목적-길-은 끊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터, 자신이 떠나왔던 집은 보이지 않고, 다만 보이는 것은 “몇 채의 집들”만 “희미한 풍경”일 뿐, 이제 시인은 “나에게 집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문학평론가
2022-09-29
서귀포에서는 누구나 섬이 된다.섭섬, 문섬, 범섬이 새섬 같은 섬이사람의 배후여서세연교 난간에 한 컷의 생을 걸어놓은 사랑은섬으로 건너가는 일몰이 된다.서귀포에서는 누구라도 길을 묻는다.바다를 향해 흘러내리는길 위에 서서 여기가 폭포냐고,서 있는 곳을 묻는다.당신이 서 있는 거기서부터 서귀포는언제나 서쪽이다. (부분)“언제나 서쪽”에 있는 서귀포는 죽음과 연결된 장소일 것이다. 그곳에서 “생을 걸어놓은 사랑”이 “섬으로 건너가는 일몰”이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서귀포에서의 사랑은 일몰, 즉 죽음을 통과하면서 타인-다른 섬-에게로 건너갈 수 있다. 서귀포는 사람들을 섬으로 만드는 동시에 눈앞이 점점 어두워지는 일몰에 빠뜨리기 때문에, 누구라도 “길 위에 서서” 길을 묻게 되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묻게 된다. 문학평론가
2022-09-28
피아노에 앉은여자의 두 손에서는끊임없이열 마리씩스무 마리씩신선한 물고기가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쏟아진다.나는 바다로 가서가장 신나게 시퍼런파도의 칼날 하나를집어 들었다.시인은 ‘여자’의 하얗고 가녀린 손가락의 놀림과 이에 따라 연주되어 나오는 선율의 어우러짐을 햇빛을 받으며 튀어 오르는 물고기의 “빛의 꼬리”라고 표현한다. 그 파닥거리는 ‘꼬리’는 연주하고 있는 음악과 함께 고동치며 흐르고 있을 여자의 싱싱하고 약동하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외면적·내면적인 이미지를 발산하는 음악은 ‘나’를 눈부신 푸른 바다로 이끈다. 건반을 누르는 저 여자의 손가락은 시인의 마음 역시 누르며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9-27
왜 여기서만 만날까누가 우리를 풀었나나는 탐지견경수로 안의 실험용 쥐살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날려 보낸 새(중략)위험한데 비명을 지르지 않아서여기가 아니라고 울부짖지 않아서우리가 터지지 않아따라오던 아이들이 다 죽은 날우리의 인내는 협상이 되고상호 거래를 위해 은밀히조직된 대원들이 선두에 섰다남다르다는 건 무슨 말일까 (부분)시인에 따르면 이 시대의 전위가 할 일은 “살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날려 보낸 새”처럼 위험을 선취하여 경고음을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전위는 “여기가 아니라고 울부짖”으면서 폭탄처럼 터져야 했지만, 우리 시대엔 그 일을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시인의 진단이다. 결국 전위는 상호 거래하기 위해 ‘선두에’ 서 있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는 것, 전위가 되고자 했던 세대의 자기반성을 보여주는 시로 읽힌다. 문학평론가
2022-09-26
나는 칼이다. 나의 말로 인해 당신은 패대기쳐진 심장이다.(중략) “정확”하게 비뚤고, 서툴게 “정직”한 나는 당신을 내장처럼 벗겨 버린다.폭죽처럼 터지고, 권투 글러브처럼 터지고, 고름처럼 터지는, 관계.그것이 나와 당신의 관계다.소통은 소통하지 않기 위해 소통한다.관계는 관계하지 않기 위해 관계한다.없는 당신의 세계에서 나는 시인이다.(* 위의 글은 시가 아니라 ‘칼로’라는 산문의 일부이다.하지만 시라고 해도 손색없는 문장이라고 생각되어 옮겨왔다.)위의 글에서 ‘당신’은 독자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만 시인의 또 다른 자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읽으면, 시적 자아는 자신의 다른 자아를 “내장처럼 벗겨 버”리기 위해 정확하게 비뚤고 서툴게 정직한 말을 발화한다고 하겠다. 하여 시적 자아는 자신의 껍질을 벗겨버리는 ‘칼’이 된다. 그렇게 ‘당신-나’를 고문하는 ‘칼’은 ‘당신-나’에 대해 “소통하지 않기 위해 소통”하면서 엄격한 시적 자세를 갖게 한다. 문학평론가
2022-09-25
산에서 내려와서아파트촌 벤치에 앉아한 조각 남아 있는 육포 안주로맥주 한 병을 마시고지하철을 타러 가는데아 행복하다!나도 모르겠다불행중 다행일지행복감은 늘 기습적으로밑도끝도 없이 와서그 순간은우주를 온통 한 깃털로 피어나게 하면서그 순간은시간의 궁핍을 치유하는 것이다. (부분)맥주 한 병을 마시고 지하철을 타러 갈 때 ‘기습적으로’ 밀려드는 행복감. 우리는 이러한 삶의 환희를 알게모르게 자주 경험한다. 그런데 시인에 따르면, 바로 그 순간이 “우주를 온통 한 깃털로 피어나게” 한다. “시간의 궁핍”-시간에 사로잡힌 삶-을 치유하는 것은 바로 그처럼 기습적으로 밀려드는 행복감이다. 이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에서 우리 장삼이사들은 온 우주의 존재에 가볍고 즐겁게 동참하게 되기에. 문학평론가
2022-09-22
아무도 모르게 달려온 시간들이들녘에 깔려 밤을 재촉한다길게 울며 언덕을 내려가는염소들은 이제 밤을 볼 것이다구름들은 추억을 볼 것이다더욱 급하게 시간들은 들을뒤덮고 염소와 나무들은어둠속에 있다 우리는모두 어둠속에 있다걸어온 길의 발자국을 기억하는데도우리는 숨가쁘다 대지는 신음으로가득하다 언제 우리는 밤과 함께독이 될 수 있으리오 (부분)위의 시에서 어둠은 어떤 긴박함을 느끼게 하는데, 그 긴박성은 어둠에 내포된 종말의 이미지에서 온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 이제 구름들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몸을 감출 것이고, “우리는 모두 어둠속에 있”게 될 것이며, 우리가 걸어왔던 흔적들인 발자국은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하여 “대지는 신음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이 시는 밤으로 표상되는 시간의 정지(끝)를 전율적으로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2022-09-21
때까치는 무리짓지 않는다혼자서 행동한다꽃이 있는 공간을 날지 않는다한 마리 새가잎 진 느티나무 아득한 우듬지외로운 높이에 이를 때까지투명한 가을 하늘 전부를가랑잎 뒹구는 스산한 계곡 캄캄한 깊이를노을에 물든 날개를 흔들며단독자처럼 혼자서 건너지 않으면 안된다 (부분)“높이의 의지”는 혼자서, “가을 하늘 전부를”, 그리고 “계곡 캄캄한 깊이”를 건넘으로써 이룰 수 있다는 시인의 포부가 거대하다. 시인은 대상을 내면화하면서, 상상력이 가진 변용의 힘을 통해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한다. 그것은 바로 “캄캄한 깊이”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이루어내지 못하는 일이다. 그는 ‘혼자서’ 언어와 삶의 심연을 건너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깊이가 시인의 “외로운 높이”이다. 문학평론가
2022-09-20
게임 중독에 빠진 게이머처럼 사내는 오로지물수제비 떼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사는 동안 그에게도 수평에 배 대었다 떼며 비상하는 돌의그 아슬아슬한 찰나처럼 짜릿한 긴장에 전율할 때가 있었다하지만 물수제비 뗀 돌들 이내 물 속으로 가라앉듯삶은 지나는 순간 지워지고 만다 흔적이란 그런 것이다노을이 떠메고 간 자리 졸졸졸 어둠이 고여물수제비 보이지 않고 풍덩, 돌 빠지는 소리 산을 울린다. (부분)위의 시의 사내는 왜 중독된 듯 물수제비를 뜨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일까? 물에 빠질 듯 수면 위를 타고 날아갈 때 돌이 느꼈을 긴장에 따른 전율을 대리 경험하고 싶기 때문일 테다. 위의 시의 사내가 시인이라면, 그가 느낀 짜릿한 긴장은 시 쓰기의 순간이 주는 긴장과 같다고 유추 해석할 수도 있겠다. 시 쓰기야말로 삶이라는 평면에 배를 대었다 떼면서 아슬아슬하게 비상하는 순간을 마련하지 않겠는가. 문학평론가
2022-09-19
하늘 향해 뻗은 가느다란 가지마다빈틈없이 잎을 달고 있는 모습 보시게가느다란 가지만이 잎을 다는 생의 경이를 보시게우람한 역사의 줄기를 살찌우고우수수 낙엽이 되어 종적 없이 사라질초록 이파리같이 빛나는 이야기들 보시게느티나무가 자라 옹이투성이 거목이 될 때까지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라다 부러진까치집 삭정이 같은 이야기들 보시게.(부분)“우람한 역사의 줄기를 살찌우”는 것은 결국 “종적 없이 사라질” 초록 이파리 같은 이야기들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역사는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라다 부러진”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역사 역시 이야기 아니던가. 저 부러질 듯 “가느다란 가지”에 빈틈없이 달린 이파리들이 모여 “옹이투성이 거목”이 되듯이, 평범한 이들의 희망과 지혜가 담긴 이야기들이 모여 ‘우람한 역사’를 형성한다. 문학평론가
2022-09-18
하염없이 우는 영혼이 우리에게는없습니다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자궁 속에서 죽은 태아같이 웅크리고만 있습니다숨결이 간결해지려면 맑은 어둠을더 많이 들이켜야 합니다울음을 조심해야 하는 밤울음의 구근을 쥐들에게 던져주는 밤은밀하게 흡혈하기 위하여우리는 서로의 흰 목덜미를드러내놓습니다누구의 피가 가장 달까요? (부분)시인에 따르면 “죽은 태아같이 웅크린” ‘우리’에겐 우는 영혼이 없다. 그러므로 “울음을 조심해야” 한다. 우는 영혼이 없는 우리들에겐 운다는 일은 감당하기 힘든 일일 테니까. 대신 우리는 흡혈하듯 “맑은 어둠을 더 많이 들이켜야” 한다. 간결한 숨결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로 상징되는 상대방의 ‘삶-죽음’을 빨아 마셔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뱀파이어’라는 것일까. 문학평론가
2022-09-15
불행한 과거에 찍힌슬픈 낙인,붓이 어루만지자 백한 가지 고뇌가 흘러나온다캔버스에 다 담을 수 없는음지와 음지대칭점에서 만나면 찬란한 빛을만들어내는지압생트 없이도 황시黃視를 자주 본다예전엔 색이란 색 다 섞어보고꽃에도 구름에도 붓을 찍어 보았으나찾을 수 없었던 색,색의 한계를 넘어선 빛이 붓끝에일렁거린다 (부분)고흐는 지금 매춘부였던 클라시나(고흐가 시엔이라고 부른 여인)를 그리고 있는 듯하다. 그는 클라시나의 몸에 찍혀 있는 고뇌들에서 태양광과 같은 황금빛이 번져나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하여 고흐의 붓끝에는 “색의 한계를 넘어선 빛”이 일렁거리기 시작하고, 고흐는 비로소 자신만의 색채를 확보하게 된다. 즉 클라시나의 고뇌가 고흐를 위대한 화가로 만든 것, 그녀는 고흐에게 신성한 존재였던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9-14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집 앞은 이미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고 나면 보낼 수 있다.죽지 않았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나를 내다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 같다.한밤중 누군가 버리고 갔다.한밤중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창밖 가로등 아래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고” 있는 시인. 그도 역시 누군가에게 버림받았던 자이다. 하여, 시인도 저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이여서, 누군가에게는 죽은 사람과 같다. 하지만 시인은 ‘누군가’보다 일을 하나 더 하는데,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일이 그것이다. 즉 그는 시인 내면에 자신이 버려서 쌓여 있는 것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들추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시 쓰는 날은 모두 ‘기일’이다. 문학평론가
2022-09-13
꿈이 하나여서 무겁지는 않지만속이 훤히 보여서비밀을 넣어 두면 뜨끔거렸다간직해야 하는 비밀이 두꺼워질수록아픔은 무뎌지고 파도는 순해졌지만섬은 선홍의 피로 물이 들었다가끔 바다의 호명을 받으면가난한 내 꿈은하나뿐인 불구의 날개로파도의 현을 타고 날아다녔다어느 태양계의 혈통인지나는 내가 궁금하다시인은 내밀하게 고통을 겪으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보여준다. 그를 초대하지 않는 이 세계에서, 그 꿈은 비밀로 간직해야 했다. 그리고 비밀스럽게 오래 간직한 그 꿈이 점차 두꺼워지자 아픔도 무뎌졌다. 하나 그 꿈이 사라지지 않고 삶의 내부를 “선홍의 피로 물”들여 왔다는 것을 감지하면서, 시인의 정열은 ‘바다의 호명’에 반응하기 시작하고 꿈이 다시 활성화된다. 이것이 그를 시로 이끈 이유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9-12
아주 사적인 생각에 빠져뼈다귀들이 설설 끓고 있다거품이 악성 댓글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담 든 몸에 파스 붙이듯이름을 계속 갈아 붙이고 살던 남자가아파트 11층에서 떨어졌다, 단풍 붉게 물든 늦가을회 뜨고 남은 살점 군데군데 붙어 있는 뼈다귀가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어디론가 헤엄쳐 가고 있다짠물에 새기던 사소한 고독의 가시 무늬익명탕이 홀로 졸아들고 있다 (부분)저 서더리탕은 광어의 것인지 도미의 것인지…. 우럭의 것인지 당신의 것인지 모르는 뼈다귀들로 만든 ‘익명탕’이다. 자살한 그나 당신이나 나나, 서더리탕의 뼈다귀들처럼 “사소한 고독의 가시 무늬”만을 남기고 “홀로 졸아”드는 익명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렇게 서더리탕과 익명의 삶을 동시에 포착하여 두 존재를 겹쳐놓으면서, 시인은 자신의 살을 다 해체하게 되는 현대인의 운명을 생각한다. 문학평론가
2022-09-07
봄은 당신의 잇몸 발가락 엉덩이향기롭다 시끄럽다 다정하다나는 인생의 정점에서 입술을 잃었네뒤통수를 잃었네당신의 표정과 눈빛이 되살아났지신발 한 짝을낡은 가방을뜨겁게 노래한다네나와 어울리지 않는 걸음걸이로 비딱하게뿌리가 없어도 좋다네여러 개의 목소리로 서서길이 지워지는 것을새로 태어나는 것을본다 (부분)도래한 봄은 향기롭고 시끄럽고 다정하다. “당신의 표정과 눈빛이 되살아”난다. 되살아난 당신의 육체를 감각할 수 있게 되면서, 시인은 “여러 개의 목소리로”, “뜨겁게 노래”하며 살리라는 의지를 갖게 된다. 삶의 과정과 함께 할 “신발 한 짝”과 “낡은 가방”에 대한 노래를. 시인의 시 원고가 담겼을 “낡은 가방”은 시인으로서의 삶을 상징하리라. 그러자 이제 지나왔던 길은 지워지고 새로운 길이 태어난다. 문학평론가
2022-09-06
간밤 온 비로얼음이 물소리를 오래 앓고빛 드는 쪽으로엎드려잠들어 있을 때이른 아침맑아진 이마를 짚어보고떠나는 한 사람종소리처럼빛이 번져가고본 적 없는 이를 사랑하듯이깨어나물은 흐르기 시작한다 (부분)얼음 속에 잠재해 있던 물소리가 나면서 ‘물의 언어’는 해방되고 시적인 것이 충만한 생명의 세계가 재생될 것이다. 사랑이 숲에 새로이 퍼져나가면서 생명을 가져올 봄이 도래한다. 그 사랑은 “본 적 없는 이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사건이다. 세계가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맑아진 이마를 짚어보고/떠나는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그의 귀환을 향한 사랑의 기다림이 숲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는 힘을 가져오기에. 문학평론가
2022-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