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전 총장이 횡령한 해군 복지기금은 장병격려금, 시설보수비 등으로 쓰일 국가예산이다. 병역의무를 다 하기 위해 입대한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고, 안전한 군생활을 위해 각종 시설을 유지·관리하는데 써야 할 재원이다. 군의 최고위 지휘관인 참모총장이 이런 돈을 빼돌려 자기의 배를 채웠다는 것은 `모럴해저드의 극치`다.
다른 한편으로는 참모총장이 이러한데 그 아래는 어떠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최고지휘관이 도덕적으로 무장해제된 마당에 그가 이끄는 조직이라고 기강이 섰을 리 만무하다. 나아가 해군만 그럴까 하는 걱정을 떨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잊을 만하면 터지는 것이 군납, 인사 등을 둘러싼 군내 금품비리가 아닌가. 정 전 총장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만2년의 재임 기간 중 초기 5개월만 빼고 계속 공금에 손을 댔지만 재임하는 동안 전혀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퇴임 후 11개월이 지난 올해 2월에야 검찰이 정 전 총장의 공금유용 혐의를 내사중인 사실이 처음 외부에 알려졌다.
군의 상부지휘구조 개편을 골자로 하는 국방개혁안을 놓고 육군과 해·공군 사이의 신경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 불거진 이 사건은 국민 앞에 더 근원적인 질문을 하나 던지고 있다. 과연 우리 군의 정신과 체력이 국방개혁을 추진할 만큼 건강한가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장병들이 충심으로 지휘관을 믿고 따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도덕한 전직 참모총장의 공금횡령 사실이 알려져 군 장병들 사이에 뿌리 깊은 불신 풍조와 냉소주의가 조장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