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은 지난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특히,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어 외국 고고학계에서도 찬사를 보내고 있다.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해 23년 만인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한 통일신라시대 불교문화의 최고 걸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석굴암은 고려와 조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수난을 겪었다. 일제는 1910년에 훼손된 석굴암을 발견하고 해체 복원하면서 팔부신 중 한 쌍을 다른 팔부신 중과 90도 각도가 되도록 세웠다. 이는 일제가 우리 유산을 발굴은 했지만, 복원은 처음이라 해도 무리가 없으며,여기서 `많은 공부`를 했을 것이다.
이어 박정희 정부 때 석굴암이 또 수리된다. 당시 학계는 `일제가 석굴암의 원형도 모르고 복원시켰다`고 비난한 것을 박정희 정부는 복원에만 급급해 부실 복원한 것이 현재까지 40년째 논쟁이 되고 있다.
일제는 강점기 동안 우리 민족과 문화 말살 차원에서 석굴암 복원에 고의성이 있다고 보여지며, 곳곳에 증거가 남아 있다.
강희정 서강대교수 “일제강점기의 석굴암 복원이나 신라고분 조사가 일제의 문화정책 홍보와 식민지배 정당화에 이용됐다”고 주장했었다.
일제는 석굴암을 마치 이전에는 없었던 것인 양 발견됐다고 선전했으며 수리와 복원을 통해 누구나 한 번쯤 가봐야 하는 제국주의의 성공적 지배의 상징인 관광지로 탄생시켰다며 자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학계는 `역사바로세우기`차원에서 복원을 위한 대안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논쟁만 하고 있어 유감이다. 특히 보존만 강조하는 학자들은 “이 시설을 설치하면 유적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며,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그런 일을 추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재 진행상황은 보존을 위한 검토단계다. 더욱이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과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정확히 알리기 위해서도 부실 복원은 원형 복원돼 영구 보존해야만 한다. 따라서 문화재청은 제2석굴암의 `적지`를 물색하고, 이를 위해 유네스코와 반대 여론을 충분히 수렴한 후 절차를 거쳐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