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상비약을 약국이 아닌 슈퍼마켓, 편의점 등에서도 팔게 하자는 배경에는 국민 편의가 있었음을 잊어선 안된다. 약국이 문을 닫는 공휴일이나 야간에는 약을 구할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3%가 상비약의 약국외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고 찬성했다. 국민의 뜻은 명확히 드러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약사회 여론은 반대였다. 지난해 9월 가정 상비약의 약국외 판매를 포함한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약사회의 반대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다 12월 23일 약사회 집행부는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한정적인 장소에서 야간과 공휴일에도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상비약의 약국외 판매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현재 겪고 있는 약사회 내부의 혼란은 이 같은 방향선회 과정에서 집행부가 약사들의 의견수렴절차를 소홀히 해 야기된 후유증으로 풀이된다. 회원들의 중대한 이해가 걸린 문제를 안이하게 처리한 집행부가 지금과 같은 뒤탈을 겪는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 결과 내부 이견과 반발을 자초했고, 그 혼란이 토론과 투표를 통해서도 잠재워지지 않을 만큼 커지지 않았는가. 26일 총회에서 약국외 판매 반대건이 부결된 것이 아니어서 기존의 집행부 발표는 일단 효력을 잃지 않게는 됐으나 약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집행부가 얼마나 소신을 갖고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당초 일정대로 2월 국회에서 약사정 개정안을 처리하고 8월부터 시행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애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 같은 절차상의 아쉬움이 있긴 하나 가정 상비약의 약국외 판매건은 이용자인 국민의 뜻을 존중해 수용하는 방향으로 처리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