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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치매 환자의 비극 이대로 둬선 안된다

등록일 2012-11-01 21:36 게재일 2012-11-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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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1급 장애가 있는 남동생(11)을 돌보던 13살 어린이가 불길 속에서 동생을 구하려다 중태에 빠지는 일이 벌어졌다. 맞벌이 부모 대신 동생을 돌봐온 박모양은 집에 불이 나자 동생을 껴안고 피신했다가 함께 연기를 마시고 질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며칠 전엔 같은 뇌병변 1급 장애인 김영주(33)씨가 집에 홀로 머물던 중 불이 나 숨지고 말았다. 장애인운동가인 김씨는 터치펜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눌러 119에 구조를 요청했지만 끝내 피신하지 못한채 화마에 스러졌다. 치매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돌봐온 78세 노인이 간병의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를 살해하는 일도 있었다.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한 일들이다.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는 한국 사회에 잇따르는 이런 비극들을 보면 이 사회가 아직도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뇌병변 1급 장애인 동생을 왜 13살짜리 누나가 돌봐야만 한단 말인가. 중증 장애아를 어린이 홀로 돌보도록 방치하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뇌병변 1급 장애인 김영주씨도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뒤 혼자 집에 있다 변을 당했다. 저녁에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척박한 현실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치매 아내를 살해한 이모(78)씨 역시 2년간 병시중을 도맡아 하다 살인 참극에 이르고 말았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장애인은 251만여명에 달한다. 이들 중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중증 장애인을 약 40만명으로 추산한다. 그러나 실제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은 5만여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가족이 있는 장애인의 서비스 시간은 월 최대 103시간으로 떨어진다.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에 대한 보조 서비스를 늘리지 않는 한 비슷한 비극을 막기 어렵다. 치매환자 역시 이미 53만여명에 달하고, 2025년에는 1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그런데 치매환자의 72%를 가족이 돌보고 있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의 덫에 걸리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지금처럼 가족에게만 맡겨둔다면 간병 살인의 비극 역시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 정부와 사회가 나서지 않으면 비슷한 비극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다.

복지의 확대를 공약하고 있는 대선후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학교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도 필요하겠지만 눈앞의 장애와 병마에 시달리는 수백만 사회적 약자들의 절박한 현실을 돌보는 정책이 훨씬 더 시급하다.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복지공약을 남발할게 아니라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도 더불어 살 수 있는 복지공약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장애인이나 치매환자들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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