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선 때 후보 대상 TV토론회 54회, 2002년 후보단일화 토론과 법정토론을 합쳐 TV토론 27회, 2007년에는 후보 대담·토론 11회였던 것과 사뭇 대비가 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13~15일로 예정됐던 순차적 개별토론 형식의 KBS TV토론이 무기한 연기된 것을 두고 세 후보 측은 설전을 벌이고 있다. 문, 안 후보 측은 박 후보의 불참 통보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나, 박 후보 측은 “두 후보가 먼저 하고, 우리가 하는 방법이 있다는 의견을 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현재 문 후보는 모든 형식의 토론에 응하겠다고 밝힌 반면, 박 후보 측은 야권 후보단일화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3자 토론에는 응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만둘지도 모를 후보와 토론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지만, 2대 1 토론이 부담스럽기 때문인 듯하다. 안 후보 측도 문 후보와의 양자토론에는 소극적이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은 후보는 만회를 위해 TV토론에 적극적이고, 지지율이 높은 후보는 최소한 현상유지를 하고자 TV토론에 소극적인 것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각 후보 진영에서 TV토론 참석을 놓고 면밀하게 득실 계산을 하는 것을 무작정 나무랄 일은 못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정치지도자들이 보여줘야 할 자세는 아니다. 토론에 소극적인 모습에서 유권자는 후보들이 스스로 내세운 공약과 정책에 정통하지 못하거나 자질 검증과 관련해 뭔가 해명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자신의 미래를 맡길 국정 최고 책임자를 선택하는 중차대한 선거인데도, 유권자에게서 세 후보를 비교·평가할 기회를 박탈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유권자는 세 후보를 비교하면서 그들의 국가운영 비전과 철학, 정책, 자질 등에 관해 더 많은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이런 점에서 TV토론 참석은 유력 대선 후보들에게는 선택사항이라기보다는 유권자에 대한 의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소통을 외치는 21세기에 자신들이 편한 방식으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일방통행식 행태야말로 과거로 회귀하는 구태라고 하겠다. 대선후보들은 더 이상 구구한 변명을 대지 말고, 즉각 TV토론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