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공약제시가 선거일에 임박해 이뤄진데다 분량마저 지나치게 방대한 것은 문제다. 막판에 `대량 방출`된 공약들의 재원조달 방안 등을 따져서 옥석을 가릴 시간과 기회가 충분하지 않은 탓이다.
대선후보 토론회가 실종된 현 상황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준다. 유권자들은 여야 후보들이 일방통행식으로 발표한 공약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수동적 위치에 놓여 있다. 후보들이 참여하는 상호 검증토론회가 열린다면 능동적인 판단에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은 유권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스스로 비교, 검토해야 하는 수고를 감내해야할 형편이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과정이 싫은 유권자들이라면 후보의 이미지에만 의존한 `묻지마 투표`를 하게 될 공산이 크다.
여야 대선후보 캠프 모두 `공약 생산`과정에서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최대 공약 중 하나인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재벌의 순환출자 문제 등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김종인 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의 `노선 충돌`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조속히 결론을 내서 분명한 입장이 담긴 공약을 내놓는 게 유권자들에 대한 예의다.
후보단일화를 놓고 경쟁 중인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따로국밥식` 공약발표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후보단일화가 성사된다면 종국엔 공통분모를 지니지 못한 두 후보의 공약은 사장될 것이 뻔한데도, 경쟁적인 공약남발은 단일화를 염두에 둔 기선제압용으로 비쳐질 우려가 크다. 같은 맥락에서 법정선거비용의 절반만 쓰겠다는 안철수 후보의 공약은 단일후보를 따낸 뒤 했다면 호소력이 더 있었을 것이다.
우리 대선후보들의 뒤늦은 정책공약 발표는 지난 주 막을 내린 미국의 대선에 비교된다. 미국의 민주, 공화 양당은 선거 2~3개월전 열리는 후보지명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 선출과 함께 대선공약(플랫폼)을 추인한다. 국내문제에서부터 외교·안보분야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된 공약이 채택되고, 그 후 공약을 상호검증하는 토론이 이어진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공약제시가 더디고, 완성도도 떨어진다. 게다가 어느 후보가 내세운 공약을 봐도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헷갈리기만 한다는 게 유권자들의 하소연이다. 향후 대선에서는 `묻지마 투표`를 초래하는, 이번 대선에서 빚었던 절차적 하자들이 빠짐없이 개선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