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전 장관의 발언은 우경화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 정계에 대한 준엄한 경고다.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일본 각 정당의 공약은 자위대의 군대화를 비롯,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 고노 담화 수정 등 주변국과의 우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시대착오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자민당은 총선에서 승리하면 지방자치단체(시마네현) 가 치르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행사를 정부 차원으로 승격하는 등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잦은 극우망언으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주도하는 일본 유신회는 아예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자주헌법을 제정하겠다고 공언했다. 여당인 민주당도 집단자위권 행사에 적극적이다.
일본 정계의 국수주의 쏠림현상은 일본의 국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존재감 약화에 대한 초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잘 나가던 일본`에 대한 국민의 향수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강한 일본`을 내세우는 공약이 등장한 셈이다. 그러나 강한 일본은 공약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 공약이 실행에 옮겨질 경우 한국, 중국과의 대립 격화는 물론 역내 안정을 바라는 미국과도 갈등을 빚을 공산이 크다. 미국의 안보전문가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는 대신 국내 문제에 집중해 반동적·대중영합적 국수주의를 추구하면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도 나쁜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으로 전세계, 특히 아시아 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전후 일본 부흥의 토대가 된 평화헌법도 그런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고, 일본 국민은 그 평화헌법의 토대위에서 오늘의 일본을 건설했다. 인근국가와의 선린우호 관계 없이 일본의 발전을 생각할 수 없다. 일본 정계 지도자와 국민이 고노 전 장관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