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에서 통상기능을 분리해서 산업통상자원부에 넘기는 정부조직법 시안을 놓고 당선인측과 정부 부처가 힘겨루기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김성환 외교장관이 통상기능 분리를 “헌법을 흔드는 것”이라고 반발했고, 이에 맞서 진 영 인수위 부위원장이 “궤변이자 부처이기주의적 발상”이라고 공박하는 모습은 상명하복의 관료사회 문화를 감안할 때 매우 낯선 풍경이다. 외교통상부는 업무특성상 국내 정치권과 각을 세울 일이 거의 없고, 이권을 다퉈온 부처도 아니다. 그런데도 `하극상`내지`항명`으로 비쳐질 수 있는 행동을 하고 나선 이유가 뭘까. 곧 외교부를 떠나는 김성환 장관이 `소영웅 심리`에서 부처이기주의의 총대를 메고 나섰을 것 같지는 않다. 베테랑 외교관의 안목으로 국제정치, 외교환경, 통상추이 등을 두루 고려해서 통상기능을 외교통상부에 존치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싶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김 장관이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인 국가대표권과 조약체결권을 위임받은 각료는 외교장관이라고 주장하며, 정부조직개편 문제를 헌법의 영역으로까지 끌고간 것은 적절한 대응방법이 아니었다. 가뜩이나`순혈주의`와`배타주의`가 유독 강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외교부가 영역지키기에 나섰다는 인상을 풍길만한 주장이었다. 당장 판사출신인 진 영 부위원장은 조약체결권을 어느 각료에게 위임하느냐는 대통령의 권한인만큼 김 장관의 주장은 월권이라고 역공을 취했다. 박 당선인이 집권 청사진에 맞춰 정부조직개편을 하기 위해 인수위가 외교부 제압을 시도한 형국이다.
사실 이 문제는 법리논쟁으로 따질 사안은 아니다. 박 당선인이 집권후 펴 나갈`통치 행위`에 해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외교통상부에서 통상기능을 분리해야 하는 절박하고도 납득할만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은 채 일방통행식으로 진행된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안 성안작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면 얘기가 달랐을 것이다. 박 당선인은 `통상기능 분리`반대론에 대해 “부처간 이기주의·칸막이만 없애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외교부에 통상기능을 그대로 놔두고, 이기주의와 칸막이를 제거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도 나올 법하다. 현상변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명쾌한 이유와 배경 제시가 없었기에 나오는 의문이다. 결국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찾는 일은 국회가 맡아야 한다. 심도있는 논의와 토론을 통해 새 정부의 얼개가 제대로 짜여질 수 있도록 국회가 충실한 `감리역`을 수행해야 한다. 견제와 균형은 행정부 내부가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에서 이뤄지는 게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