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국가 제삿날` 현충일을 보내며

등록일 2013-06-07 00:03 게재일 2013-06-07 23면
스크랩버튼
현충일의 원류는 고려 현종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4절기중 망종(芒種)날은 보리 수확을 끝내고 모내기를 시작하는 날이어서 가장 바쁘면서도 가장 즐거운 날이다. 또 이 날은 손이 없다 해서 국가제사를 지냈다. 전쟁에 나가 목숨을 잃은 장병들의 유해를 이날 각자의 집에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는데, 그 망종일이 6월 6일이어서 정부가 그날을 현충일로 정했다. 6·25가 일어났던 6월을 정부는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하고,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읽은 국군 장병들과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순국 선열들을 기려 마음 깊이 감사를 표하며, 그 정신을 이어받아 애국심과 충성심을 새롭게 했다.

현충일이 되면 임진왜란때의 의병들, 6·25때 형산강 전투에 투입된 학도의용군과 왜관 낙동강 전투가 생각난다. 포항 출신의 김현룡 창의장군의 활동상은 이미 포항시립극단이 연극무대에 올린 바 있다. 포항 수도산에는 현충탑이 서 있고, 그 아래에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영화 `포화속으로`는 포항여중에서 있었던 학도의용군의 용맹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이날 71명의 학도병 중 47명이 전사했다. 이 희생에 의해 북한군 766 유격대와 제12사단의 형산강 도강을 지연시켰고, 연합군은 시간을 벌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 그 때의 학도병 희생을 기념한 추념비가 각 학교에 세워져 있는데 경주고, 경주공고, 문화고에 있던 추념비를 경주보훈지청은 올해 `현충시설`로 지정해 국가적 보호를 하게 했다.

포항시 화진포 해안훈련장 내 화산불에는 입으로 전승돼오는 임진왜란때의 격전지가 있다. 왜병들이 그 해안에 진지를 구축하고,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고 식량을 빼앗았다. 그 때 종5품 찰방이 앞장서고, 보부상 등 백성들이 호응해서 밤중에 왜병 진지를 급습했다. 전투가 끝난 후 왜병들은 함정을 타고 도망을 갔고 전사자의 시신은 모래밭에 흩어져 있었는데 쌍방간 100명 가량이었다고 한다. 이 일은 역사에 기록돼 있지 않고 마을 사람들의 입으로 구전(口傳)돼온 사실이며, 일제시대때 한 일본인 교장이 밤중에 현장을 찾아 통곡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 화산불 현장에서 포항 노거수회는 매월 현충일에 제사를 올리고, 추모공연도 베푼다. 그리고 이 지역은 `해당화 남방 한계지점`이라 매년 해당화 보육행사도 실시한다.

우리는 현충일의 노래를 잘 모른다. 일년에 한번 불러보기 어렵다.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노랫말이라도 되새겨 보며 호국 영령들에게 감사를 표해야 하겠다. 조지훈 작사 임원식 작곡이다.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날이 갈수록 아 그 정성 새로워라”

공봉학의 인문학 이야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