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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 이후

등록일 2013-12-09 02:01 게재일 2013-12-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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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흑인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은 시위대 69명을 사살했다. 만델라는 이 `샤퍼빌 학살`이후 무장투쟁에 돌입했고, 서방세계는 테러리스트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64년 그는 국가 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독감방에 갇혔다. 레이건 미 행정부는 86년 남아공에 경제제재를 가함으로써 만델라의 방면을 압박했고, 90년 2월 마침내 클레르코 남아공 백인 대통령은 만델라를 석방하면서 흑인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까지 주어 만델라를 대통령에 당선시켰으며, 이 공로로 두 사람은 93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

만델라는 테러리스트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평화의 사도`가 되어 나왔다. 그는 `용서와 화해 위원회`를 구성하고, 흑백 간의 화해·화합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과거 흑인을 고문하고 죽였던 경찰도 잘못을 고백하면 용서하는 행사를 전국적으로 진행했다. 백인에 대한 보복은 없었다. 화합물결이 전국에 넘쳤다. 마침내 넬슨 만델라의 이름 앞에 성자(聖子)란 존칭이 붙었다.

그는 가정적으로 불운했다. 세번 결혼하고, 두번 이혼했으며, 아들 둘과 딸 넷을 두지만, 두 아들과 딸 하나를 일찍 보내 가슴에 묻었다. 첫 부인 에블린은 만델라의 과격 노선에 반대하면서 이혼했고, 둘째 부인 워니는 만델라의 온건노선에 반대하며 급진 투쟁을 강조하고 다른 남자가 있었으며, 뇌물수수 혐의까지 받아 이혼했다. 만델라는 80세 생일날 세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그 몸에 자식은 없고 `등 긁어 줄 할멈`으로 살아가는 노후의 동행인이었다.

지금 딸만 셋 남아 있다. 첫 부인이 낳은 마카지웨(60)와 둘째 부인이 낳은 제나니(55)와 진지(53)이다. 이 딸들이 지금 재산분쟁에 돌입했다. 만델라는 생전에 자서전 인세와 펀드 27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가족들은 브랜드 `만델라`를 붙인 와인, 의류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자산가치는 1천만파운드(173억원)에 이른다. 이들은 결국 `만델라 유명세`를 이용해 `주식회사 남아공`을 만들 것이고, 만델라의 옛 동지들이 경영하는 회사와 이미 반환청구소송을 벌이고 있다.

가족의 재산분쟁은 `작은 문제`이고, 흑백간의 정치적 분쟁이 더 걱정이다. 인종갈등이 재연될 조짐이 벌써부터 보인다. `백인 대학살` 괴담이 이미 나돌아 민심이 뒤숭숭하다. 지금도 흑인 봉급은 백인의 7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백인은 교육을 많이 받아 경영층을 형성하고, 흑인에는 단순노무직만 돌아오기 때문이다. 만델라의 권위에 버금갈 만한 후계자를 키워놓지 못한 것도 화근인데, 한 성인에 의해 잠시 봉합되었던 남아공의 갈등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중동에 이어 남아공까지 화약고가 되어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게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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