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법이어서 그동안 남북은 숱한`비`를 맞아 땅이 많이 굳어졌다. 부부간에도 고운 정 미운 정이 교차되면서`부부의 정`이 완성된다는데, 남북관계도 그 같은 과정을 겪어왔다. 그래서 정치적 문제는 잠시 뒤로 미뤄놓고 비정치적 교류, 가령 언어나 과학기술 같은 학술교류와 북의 인적 물적 자원과 남의 자본 기술이 만나는 경제교류 같은 것이 활성화되도록 하는 접근방법이 바람직하다.
2007년 6월30일 평양에서`민족과학기술학술대회`가 처음 열렸다. 포항공대(남)와 김책공대(북)·민족과학기술협회(북)가 공동주최하고 박찬모 당시 포스텍 총장 등 24명의 남측 인사, 150여명의 북측 인사, 재중 동포 학자 10여명, 미국 학자 10여명, 재일동포 학자 1명 등 200여명이 참가해서 IT(정보기술), NT(나노기술), BT(생명공학), ET(환경공학) 등 4개 분야에 대한 학술교류를 했고, 박찬모 당시 총장은 기조연설에서 “분단사상 첫 과학자들의 역사적 만남이고, 남북이 공동연구를 할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이받이할 이 학회를 매년 지속적으로 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2011년 7월 제7차 고려학국제학술토론회에서 남북 과학기술 용어 통일에 관해 논의했다. 북한은 1960년 `말 다듬기 운동`을 벌여 한자를 폐지하고, 외래어와 고유어를 정리했는데, 전구가 불알로, 코너킥이 구석차기로 변했고, 표준어를 문화어라 불렀는데, 북한 사투리가 많이 문화어가 되어 사전에 올랐다. 그러나 김정일 대에 와서 그 언어정책이 폐지돼 한자도 가르치고 외래어도 사용하고 영어도 배우게 되었다.
남북 언어학자들이 모여서`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을 벌여왔었는데, 천안함 사태 이후 지난 4년간 회의가 중단됐으나 지금의 화해분위기를 만나 그 논의를 다시 일으킬 움직임이 보인다. 남북간 언어의 이질화는 세월이 갈수록 심해진다. 북한말을 들으면 외국어 같고, 탈북자들도 남한 언어가 너무 생소하게 들린다고 했다. 통일의 길은 차근차근 닦여야 하는데, 그 첫걸음은 언어의 통일이다. 일상용어든 과학용어든 `말과 글이 통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겨레말 큰사전의 편찬은 통일로 가는 고속도로를 닦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