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에도 서독과 동독은 빈번한 교류가 있었고, 서독은 동독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 소련을 통해 많은 지원금을 보내주었으며, 정치범 한 사람당 상당한 돈을 주고 데려왔으며, 서독 의회는 공개적으로 동독 지원금을 의결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동·서독은 서로 잘 알았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래도 통일이 되고 나니 서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더라는 것이다.
남북이 서로를 더 많이 알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최우선 과제이므로, 그 일을 맡을 컨트롤 타워로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통일후, 동독은 “경쟁체제가 너무 어려워 통일 전이 나았다”는 말이 나왔고, 서독은 “동독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바람에 우리는 더 가난해졌다”고 했다. 통제체제 속에서 수동적으로 살아온 사람과 자유 경쟁체제 속에 살아온 사람 간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 논의때 북은 “한국의 언론을 정부가 다스려달라”는 요구를 했다. 한국의 언론자유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관제언론밖에 없는 북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북은 언론의 비판기능을 이해하지 못한다. 북은 `비판`을 반역으로 보아 극형으로 다스리지만 남은 `당연한 일`로 여긴다. 이석기 의원 사건도 북에서라면 `장성택 처형`과 같이 다스리겠지만 남에서는 검사와 변호사 간의 법리공방을 거치며 3심까지 가는 긴 세월이 지난 후 기껏 징역형과 자격정지 정도이다. 남북이 서로 `이해되지 않는 일`의 한 사례다.
`통일준비`란 이와 같은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낱낱이 드러내어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준비과정이다. 그런 이해의 과정 없이 통일이 됐을때 독일처럼`엄청난 투자를 하고도 쌍방이 불만인 불완전 통일`이 되고 말 것이다.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서도`공동의 적`이 생기면 `한 편`이 되는데, 일본의 후안무치·망언 망동에 대응해서 그 죄악상을 밝혀내 고발하는 일은 남북이 손을 잡을 수 있는 일이다.
또 산림녹화나 구제역 등 전염병에 대한 공동대응, 과학기술이나 역사 문제, 언어문제 등 학술적인 면에서도 공동연구의 길을 틀 수 있다. 그리고 경제적 이익이 되는 과제를 발굴 협력하는 일을 서로 연구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