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 박정희정권 때였다. 당시 재무장관은 김용환씨였고, 외환관리과란 부서가 있었다. 해외여행때 갖고 나갈 달러의 한도를 정해 허가해주는 일을 맡았다. 김 장관은 그 규제를 풀고 업무를 은행에 넘기라고 지시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장관이 담당 국장을 바꿨지만 과장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장관은 외환관리과를 아예 없애버렸다. 뿌리를 뽑아버린 극약처방이었다. 중국인들 사이에 도는 말이 있다. “위에서 정책을 내면 우리는 대책을 세운다” 중국정부가 부패구조를 척결할 정책을 발표하면, 아래에서는 이를 피해갈 대책을 세운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위에서 몰아붙이면, 공무원은 복지부동한다”라고 한다.
기업들은 국회를 `규제공장`이라 부르고, 이번 대통령 주제 끝장토론에서 “봄이 되면 쳐들어오는 황사와 같은 존재가 의원 입법”이란 말까지 나왔다. 김도훈 산업연구원장의 말이다. 입법조사처의 한 관계자는 “시민단체들이 의원 평가를 할때 제출 법안 숫자도 포함시키는 바람에 의원들이 마구잡이로 법안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행정부가 법안을 낼 때(행정법안)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하지만 국회의원의 의원입법에는 그런 과정이 없다. 그래서 행정공무원들이 국회의원에 `청탁`해서 의원입법 형식으로 법안을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청부 의원입법`이라 하는데, 그래서 국회를 `규제공장`이라 하는 것이다.
경제관료 출신인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감사원을 바꿔야 규제 개혁을 할 수 있다” “감사원이 선진화돼야 공무원의 복지부동, 무사안일이 없어진다”고 했다. 감사원은 공무원이 기업에 무엇을 해주었는지만 살피고, 무엇을 해주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기업을 위해` 한 업무는 꼭 말썽이 생기지만, `안 해준 일`은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니 어느 공무원이 `기업 편에 서서` 행정업무를 처리하겠느냐는 것이다. 감사원은 우선 `공무원과 기업의 커넥션`에 대한 의심부터 하고 보는 특성이 있으니, “감사에 지적당하지 않기 위해 복지부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권력 내려놓기, 국회의원의 각성, 감사원의 선진화 없이는 규제 개혁의 성과는 미미할 것이고, 잠시 잠복했다가 다시 살아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