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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빠진 핵안보정상회의

등록일 2014-03-26 02:01 게재일 2014-03-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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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는 감회깊은 회의였다. 구한말 고종황제 시절, 우리는 국권을 뺏겼으니 당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할 자격도 없는 국가였다. 고종은 3명의 밀사를 파견해 “을사조약은 강제로 맺은 것이므로 무효”임을 주장하려 했으나,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회원국들은 약소국 조선의 호소를 무시했다. 결국 이준 열사가 현지에서 순국하는 비극을 맞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한 회원국이고, 직전 의장국이었으며, 우리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했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연설을 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모습인가.

그러나 이번 헤이그 정상회의는 두 가지 점에서 맥빠진 회의였고, 세계인의 관심을 그리 끌지도 못했다. 하나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흡수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국회가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대책법(방재법)`을 통과시키지 못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할 당시에는 핵강대국이었다. 대륙간탄도탄(ICBM)급 전략핵 미사일 176개를 포함해 1000개의 핵탄두가 배치돼 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미국, 영국, 러시아 등 5대 핵보유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양해각서를 채결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 핵무기를 포기했다. 그런데 이번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군사개입을 당했을 때 그 각서는 아무 소용 없었다. 각서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것이 아니고 `정치적 약속`일 뿐이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핵무기 포기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동부 침공이나 크림반도 합병에 대처할 수단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같은 사례는 북한으로 하여금 “그것 봐라. 우리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라고 말할 명분을 주었으며,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의 주제인 `북핵문제`를 김빠지게 했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국회가 `핵방호법`을 통과시키지 않아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핵테러억제협약` 등에 대한 비준과 발효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이 협약을 뒷받침할 `핵방호법`을 국회를 통과시키지 못했다. 국회선진화법이라는 기상천외한 법 때문에 야당이 합의해주지 않으면 어떤 법안도 통과될 수 없다. 민주당이 방송법 개정안과 한 세트로 처리하자고 주장하며 120개 법안들이 주저앉은 것이다. 직전 의장국으로서 국제사회를 향한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으니,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우리 대통령의 연설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야당은 대통령의 외교적 행보에 흠집을 내고 싶었는지 모르겠으나, 실상은 자신들의 위상에 흠집으로 남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신당의 지지도가 자꾸 내려가는데도 그 이유를 모르겠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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