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이 있은지 고작 11시간 만에 일본은 그 본색을 드러냈다. 한 야당 의원이 “고노담화가 정부의 통일된 견해에 포함되는가”라고 묻자 시모무라 문부과학상은 “고노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정부의 통일된 견해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문부상의 말은 `교과서 수록 기준`이 된다. 정부의 통일된 견해만이 교과서에 수록할 수 있는데, 고노담화와 무라야마담화는 교과서에 실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아베 총리가 “고노담화를 폐기하지 않았다”라고 한 말과 상치된다. 자신의 치부를 교과서에 싣는 일이 달가울 리는 없겠지만 독일의 자세와는 너무 다른 `섬나라 근성`의 발로다.
`고노담화`란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사과한 담화이고, `무라야마담화`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사과한 것이다. 일본에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준 인물들이다. 그러나 현 아베 정권 관료들은 그 두 담화를 폄하하고 있다. 그래서 늘 독일의 `나치 인종청소 사과`와 일본의 `모르쇠`가 비교되는 것이다.
일본정부가 잡아떼기로 일관하는 것은 전쟁 끝난 후 모든 증거자료들을 불태우고 폭파했으므로 더 이상 증거물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거는 지금도 간간히 발견된다. 특히 미국 문서고에서 비밀해제된 자료가 공개되는 중이다. 위안부 강제동원과 성노예 강요에 관한 증거는 대부분 파기됐지만,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치심을 극복하고 증언을 해준 할머니들의 용기는 실로 영웅적이라 할만하다.
대구의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목적으로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 길거리모금으로 5억원, 여성가족부 지원금 2억원, 생활용품 판매 대금 등을 합해 현재 8억5천만원이 모였고, 12억원 목표가 채워지면 기념관 건립에 들어갈 것이다. 이 일은 대구 시민단체 만의 일이 아니다. 경북도민 전체가 성의를 표해야 할 일이다. 이 기념관은 일본의 비겁한 태도에 대한 항변 질책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