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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탈을 쓴 호리(狐狸)꾼

등록일 2014-04-07 02:01 게재일 2014-04-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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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狐狸)란 말은 여우와 살쾡이란 뜻인데, 겉으로는 선량한 척하면서 뒤로는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문화재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단체`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실은 호리꾼 짓을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과거 모 재벌 총수가 많은 호리꾼들을 거느리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골동품을 수집했던 일도 있었지만 그는 전시관을 지어 유물들을 잘 보관함으로써 “문화재의 국외 유출을 막았다”는 칭송도 들었다.

장모(57)씨는 경북 구미에서 잘 알려진 문화재 애호가였다. 야은 길재 선생을 추모하는 정자`채미정`을 매달 청소하고 낙산리 3층석탑을 돌봐왔다. 1984년부터 20년간 향토사 연구와 문화재보존회 활동을 해온 그는 2005년 비영리단체 `A문화지킴이`를 설립해 구미시로부터 5천여만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보조금은 문화재 주변 정비에 드는 비용으로 준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보호 간판을 내건 장 대표가 주로 한 일은 도굴이었다.

그는 탐침이라는 긴 쇠꼬챙이를 들고 혼자 다니며 골동품이 있을만한 지점의 땅을 찔러보았고, 구미시로부터 받은 보조금은 문화재 유존지역 정보를 수집하거나 돌아다니는 여비로 사용했다. 탐침으로 쩔러보고 걸리는 느낌이 오면 곧바로 발굴을 했는데,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 현 시가 40억원 가량으로 평가되는 `통일신라 시대 석조 약사여래 좌상`을 캐내기도 했고, 조선 초기 도자기인 `분청 인화 국화문 접시`를 발굴하기도 했다. 문화재 당국의 허가 없는 발굴은 도굴(盜掘)이고, 나라 마다 도굴범에 대해서는 엄히 처벌한다. 국가의 정신유산이 국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데 장씨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도굴한 문화재는 무려 233점이나 되었다. 물론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매매하기도 했는데, 석조여래좌상은 고작 3억원에 모 사찰 권모(50) 주지에게 팔았다. 권 주지도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어떤 사람이 집터 공사 도중 문화재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가 구입하기도 했는데, 훼손된 부분을 전문적으로 보수하지 않고 본드로 때우는 바람에 `2차 훼손`이란 평가를 받아 값이 폭락했다. 수십억원으로 평가되는 이런 국보급 문화재가 일본 등지로 팔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이다.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이형호(70) 한국한방산업진흥원장은 직원들과 관련 업체로부터 금품을 뜯어내고, 업무추진비를 개인용도로 사용하며 간담회를 한 것처럼 허위공문서를 꾸며 비용을 결제,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경찰에 적발됐다. 공기업의 비리는 끝이 없다. 발본색원에 많은 세월이 걸리겠지만 중간에 멈출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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