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과 울산시에서 온 국민이 분노할 사건이 터졌었다. 계모가 어린 의붓딸의 가슴을 때려 갈비뼈 16대가 부러졌고, 그 갈비뼈가 허파를 찔러 숨졌다. 계모가 어린 의붓딸을 오래 폭행하고 배를 발길로 차 내장이 파열됐고, 배 아프다는 아이를 방치해 숨졌다. 선량한 계모도 많지만, 사이코패스 계모에 의해 사건이 저질러졌고, 이를 방관한 친부에 대한 원망의 소리도 높았다. 또 두 사건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태도에 대해 “국민의 법감정과 상식에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란 비난의 소리가 높은 즈음에 세월호가 침몰했다. 온 국민이 집단트라우마에 걸렸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가족이 무엇인가, 가정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없어질때 그 빈 자리가 얼마나 넓은지를 다시 느끼게 되고, 없어진 가족이 얼마나 고귀한 가치를 가지는 존재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가족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도 간접경험을 통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게 된다. 어린 아이에서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국화 한 송이 들고 분향소를 찾아 눈물 뿌리며 애도하지 않는 국민이 없고, 넋을 잃고 TV앞에 앉아 가슴앓이를 하는 국민이 대부분이다. 이것이야 말로 국상(國喪)이고, 온 국민이 상주가 된듯하다.
“거기서 어서 나와 같이 저녁 먹자.” 한 어머니가 여객선 속에 갇혀 있는 딸에게 쓴 `기원의 말`이 국민의 가슴을 쓰라리게 흔들었다. 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단순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가지는지를 알려주는 한 마디였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빠진 식탁에 앉는 가정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아픔의 시간들은 영원만큼 길 것이다.
2001년 9·11테러 후 미국에서는 `가정을 만드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독신녀가 결혼을 하고, 떨어져 살던 식구들이 모여드는 가정이 늘었고, 무자식 상팔자라던 사람이 입양을 하거나 자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후 부모와 자식이 같은 부지내에서 이웃해서 사는 일이 많아졌다. “살아 있는 동안 내 식구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자”는 생각이었다. 큰 불행은 `가정이 삶의 근원`임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