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송전탑 문제가 밀양과 청도만의 경우만은 아니다. 한전에 들어와 있는 민원이 30여건이라 한다. `고압선 송전탑 설치 결사반대` 현수막이 전국 여기저기에 보인다. 근래에 들어 `고압선 반대, 지중화` 요구는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전자기파의 영향으로 사람은 질병에 걸릴 수 있고, 농작물에도 피해가 심하며, 산불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는 인식이 보편화된 것이다.
한전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규정에 없는 일”이란 이유로 지중화를 거부해왔다. 반대시위에 부딪히면 편법으로 무마시키면서 밀어붙였다. `내부적 갈등상황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수법으로 반대세력을 약화시켜왔다. 주민 일부에만 `무마비`를 주어 내부적으로 반목 갈등하게 만드는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밀양의 경우, 한전의 회유에 응하는 주민과 계속 투쟁하려는 편이 갈라져서 반대시위의 힘이 약화됐다.
밀양은 당초 무려 4천명이나 되는 외부 세력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들이닥쳤다. 그중에는 직업적·전문 시위꾼들도 있었다. 갈등 마찰이 있는 곳 마다 몰려가서 반대시위에 힘을 실어주는 세력들이다. 밀양의 일부 주민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외부세력은 물러가 달라”고 요구하면서, “외부의 선전 선동에 휘말리지 말고, 냉철한 판단으로 지혜를 모아 정겹고 살기 좋은 밀양을 만들자”고 말해 반대시위는 현저히 약화됐다. 한전의 회유에 응한 주민들과 아닌 주민들 간에는 `깊은 골`이 파지고, 이웃사촌 끼리 반목 불신, 공동체 파괴 현상을 만들어 냈다.
청도에서 경찰서장이 한전의 돈을 받아 일부 할머니들에게 돌리다가 들통난 일은 `실패한 사례`에 속한다. 청도 출신의 인사가 서장이 돼 금의환향했고, 그 고향사람 경찰서장의 이름으로 돌린 수 백만원의 돈봉투를 신고·고발한 할머니들의 양심과 용기는 상찬할만 하다. 지금 청도군 삼평리 여성들은 “보상금 받을라고, 돈 몇푼 받을라고 한거면 벌써 치앗다! 보상 필요 없다고 몇번이나 말해야 되노!” “돈 십원짜리 하나 필요 없다. 공사하러 오면 목숨 걸고 지킬끼다. 지중화해라!” “지중화하도록 도와주이소” “우리 재산 우리가 지킬라 카능기다”이렇게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다.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려는 심보가 괘씸하다. 마을에서 1㎞ 이내에 고압철탑 6개가 서는데, 민가에서 150m 거리에 있는 1기만이라도 지중화해달라는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는다”며 주민들은 분노한다. 그러나 한전측은 “도심지역이나 신도시의 지중화를 제외하고는 지상으로 송전탑을 설치하도록 돼 있다. 야산이나 농경지에는 지중화한 전례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돈으로 무마하면서 공동체를 파괴할 것인가. 전례가 없으면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