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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en City 경주` 기대된다

등록일 2014-11-20 02:01 게재일 2014-11-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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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지역 문화 예술인들이 경주의 도시브랜드 슬로건을 현재의 `Beautiful 경주`에서 `Golden City 경주`로 바꾸자고 한다. 최양식 경주시장은`황금박물관`을 세우자고 한다. 황금을 좋아하는 것은 세계 공통적 성향이다.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찾아나선 것도 황금을 얻기 위함이었고,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정복한 이유도 황금 때문이었다. 잉카제국은 유난히 황금이 많이 나는 나라였다.

신라도 잉카제국 못지 않은 황금 생산국이었다. 페르시아의 옛지도에도 `Silla`가 표기돼 있고, 설명에는 “황금이 많은 나라. 사람들은 황금을 온몸에 휘감고 다닌다”라고 했다. 신라는 우수한 철과 제련기술을 가졌기 때문에 강한 무기를 만들 수 있었고, 강에서 사금이 많이 났기 때문에 그 자금력으로 3국을 통일할 기틀이 마련되었다. 거기에다가 화랑정신까지 완벽했으니, 3국 중 최강국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다를 통해 아라비아와 교역한 것도 신라에 황금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중국 황제의 복식은 황색이었다. 5방색 중에서 황색은 중앙 색인데, 중국인들은 중국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경주의 슬로건을 바꾸고 황금박물관을 세우려는 것은 2020년 중국 요우커 1천만 명 시대를 맞아 그들의 눈길을 끌기 위함이고, 세계적으로 경주의 위상을 드높이려 함인데, 경주의 황금문화라면 무엇보다 금관이다. 5~7세기 무렵의 금관 6개가 발굴됐는데, 그 아름다움이나 정교한 세공예술은 다른 나라들의 금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나무와 나뭇잎, 영락과 곡옥, 화려한 드리개, 봉황무늬와 꽃봉오리, 사슴뿔 모양의 기둥 등등 실로 화려함의 극치다. 그러나 이러한 금관도 7세기 중국 복식이 전해지면서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중국의 면류관을 금관 대신 착용했기 때문이다.

경주 최초의 금관은 천마총 옆 한 민가에서 집터를 닦던 중에 발견됐다. 1921년이었고, 이를 `금관총 금관`이라 이름 지었다. 지금은 `대능원`으로 잘 정비됐지만 그 당시에는 민가가 촘촘히 박혀 있는 마을이었다. 그 외에 금관 드리개에 방울이 달렸다 해서 `금령총 금관`,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가 금관을 들어냈고 봉황이 달려 있다 해서 `서봉총 금관`, 교동 폐총에서 도굴됐다가 되찾은 어린이용 금관 등은 일제때 발굴된 것이고, 천마총 금관과 황남대통 금관은 해방후 우리 정부가 발굴했다.

인류가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는 금관중에서 절반 이상이 신라의 것이다. 이 쯤되면 경주는 황금의 도시라 할만하다. 황금박물관을 전부 진품으로 채울 수는 없겠지만, 경주 하동에 복제 전문공방이 있으니, 거기 의뢰하면 흡사하게 만들 수 있다. 황금박물관이 순조롭게 추진되도록 경주시민들이 마음을 모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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